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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모음/몰입

5. 여가는 기회이며 동시에 함정

by FraisGout 2020. 5. 12.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하나는 남는  시간을 현명하게 쓰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세기  중엽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1958년에 정신의학 진흥을  위한 모임은 연례 보
고서를 매듭지으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대다수  미국인에게 여가는 위험천만하
다." 그런가 하면 미국이 문명으로서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미국인이 자유 시간을 어떻게 사
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왜 그런 암울한  경고가 나오는 것일까? 여
가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은 여가가 평범한 사람에
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여가의 총체적 영향력은 개개인이 한 
경험을 모두 더한 것이므로, 전자를 이해하려면 후자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앞에서 다양한 이유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우리는 누구나 가장 소망하는 목표의  하나
가 자유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일은 필요악으로 여겨진 반면 쉴 
수 있는 것,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로 받아
들여졌다. 여가를 즐기는 데는 특별한 재주가 필요 없고 아무나  즐길 수 있다는 믿음이 널
리 퍼졌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임을 보여준다. 여가는 일보다 즐기기가 더 어렵다. 마음대
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쓰는 요령을 모르면 삶의 
질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로 사람이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신분석학자 산도르 페렌치는 세기말에 이미 환자들이 다른 날보다 일요일에 유달리  히
스테리와 우울증 증세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것을 일러 '일요신경증
'이라고 불렀다. 그후로 휴일과 휴가  시간에 심리 상태가 오히려  악화된다는 사례 보고가 
잇따랐다. 한평생 직장을 자신의 전부로 알고 살아온 사람은 퇴직을 하고 나서 만성 우울증
을 앓는 경우가 많다. ESM 연구 조사에서 우리는  사람이 어떤 목표 하나에 집중할 때 심
지어는 몸까지도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말에 아무런 할 일일  없이 집에 혼자 
있는 사람들은 몸이 아프다고 호소할 때가 많다.
  이 모든 증거들이 게으름이 사람의 천성이 아님을 시사한다.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
고, 불안감만 조성하는 해결 불능의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
의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은 드라마 시청일 수도 있고 연애  소설이나 추리 소설 같은 판
에 박힌 이야기를 읽는 것일 수도 있으며  도박이나 섹스에 빠지는 것일 수도 있고 술이나 
마약에 탐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들은 의식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짧은 시간 안에 줄여
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감과 불쾌감이다.
  사람의 신경계는 외부 신호에 관심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중
간중간 장애물이나 위험이 끼여들지 않은 상황에서  오래도록 한곳에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단계까지 적응하지는 못했다. 내부에서부터 정신력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은 극
히 드물다. 성인들에게 여가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여유로운  사회에서는 마음을 분주히 만
들기 위한 정교한 문화적 관습이 발전하였다. 바로 의식이나 춤, 그리고 때로는 몇 날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하는 경쟁적 시합 같은 것이다. 유럽사의 여명과 함께 시작된 올림픽 경기
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종교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적어
도 마을 전체가 끝없이 소문과 이야기 기회를 제공하였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은 커다란 나
무 밑에 모여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가벼운 환각 상태를 유발하는 잎 따위를 씹으면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았다.  지중해 지역의 카페나 북유
럽의 맥주집에 가면 남아도는 시간을 이렇게 쓰는 남자들을 아직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의식의 혼돈을 이런 식으로 피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는 먹혀들지만 경험의 질을 긍정적으
로 바꾸어주지는 못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람의 기분은 몰입 상태에 있을 때 절정에 이른
다. 그것은 도전을 이겨내어 문제를 해결한 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몰입
을 낳는 활동은 대부분 명확한  목표, 정확한 규칙, 신속한  피드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이런 외적 조건들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집중하고 긴장한다. 그런데 여가 시
간에 운동을 한다거나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몰입을  위한 
조건이 갖추어진다. 하지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주어졌을 때는 몰입과는 정반대의 
현상인 심리적 혼돈과 무기력 상태로 들어간다.

  여가 활동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능동적 여가와  수동적 여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며 심리적 효과도 당연히 판이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10대는 TV를 보는 동안에는 13퍼
센트가, 취미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34퍼센트가, 운동이나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44퍼센트가 
몰입을 경험하고 있다.(<표 4>참조). 이것은 TV 시청보다 취미 활동이 두 배 반 가까이, 적
극적으로 임하는 운동이나 게임이 세 배나 더 강한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데도 이들 10대는 취미 활동이나 운동보다는 TV를 보는  데 무려 네 배나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어른들도 이 비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왜 네 배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조사에 응한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더니 대체로 반응이 일관되게 나왔다. 자전거를 
타거나 농구를 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것이 하릴없이 상가를 쏘다니거나 TV를 보는 것보다 
즐겁다는 걸 청소년들도 인정한다. 하지만  가령 농구를 하려면 시간이 만만찮게  들어간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야 한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도 적어도 반 시간 
가량은 연습을 하면서 손을 풀어야 슬슬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은 하나같이 처음에 어느 정도 집중력을 쏟아 부어야 그 다음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활동을 즐기려면 그런 '시동 에너지'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너
무 피곤하거나 너무 불안하거나 혹은 처음의 그런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재미는 덜하더라도 더 편하게 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족할 것이다.

  <표 4> 여가 활동과 몰입 경험
각각의 여가 활동에서 경험하는 몰입, 이완, 무심, 불안의 상태를 시간의 백분율로 나타냈다. 
824명의 미국 청소년으로부터 얻은 27,000항의 응답에서 나온 결과다. 각 용어는 다음과  같
이 정의한다(몰입: 높은 난이도와 높은 기량, 이완: 낮은 난이도와 높은 기량, 무심: 낮은 난
이도와 낮은 기량, 불안: 높은 난이도와 낮은 기량).

                    몰입           이완           무심           불안
게임과 운동          44             16             16             24
취미                 34             30             18             19
어울림               20             39             30             12
사색                 19             31             35             15
음악 듣기            15             43             35              7
TV 시청             13             43             38              6

출처 : 비드웰, 칙센트미하이, 헤지스, 슈나이더(1977) 참조.

  바로 이 틈새를 비집고 '수동적 여가' 활동이 들어온다. 친구들과 시시덕거리거나 부담 없
는 내용의 책을 읽거나 TV를 켜는 동작은 처음부터 특별한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실력
이나 집중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따라서 비단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아무 생각 없이 수
동적 여가에 먼저 손을 내밀기 쉽다.
  <표 4>에서 우리는 각각의 여가 활동에서  청소년이 얼마나 자주 몰입 경험을  하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게임과 운동, 취미, 어울림 같은 능동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은 음악 감상, 사
색, TV 시청 같은 고독하고 덜 체계적인 활동보다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런데 몰
입을 낳는 활동은 그만큼 까다롭고 어려워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자주 있다. 이와는 
달리 수동적 여가 활동은 불안을 거의 낳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사람을 이완시키고 무감
각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여가 시간을 수동적 활동으로 채우면  아주 즐겁지는 않아도 어든 
골치 아픈 상황은 피해갈 수 있다. 사람들은 수동적 여가  활동의 바로 이런 점에서 끌리는 
듯하다.
  쉬는 게 나쁘다는 소린 아니다. 누구에게나 긴장을 풀고  시시껄렁한 소설을 일고 소파에 
기대앉아서 허공을 쳐다보거나 TV를 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인생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
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적정선에 머물 수 있느냐다. 수동적 여가가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그것이 자유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편으로 쓰이는  순간부터다. 그런 습성이 뿌리내
리면 생활 전반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심심파적으로 도박에 손을 댄 사람은 직장과  가정, 
결국은 본인의 인생 전부를 파탄으로 이끄는 습벽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TV를 남
달리 많이 보는 사람은 좋은 직장에도 못 다니고 인간  관계도 원만치 못한 경향을 보인다. 
이 문제를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몰
입 경험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몰입 경험을 적게 하는 것
으로 나타났다. 몰입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TV를 적게 보는 사람
이며, 몰입 경험을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은 책은 거의 안 읽고 TV로 소일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상관 관계가 있다고 해서  여가를 수동적으로 보내는 습성이 나쁜  직장, 나쁜 인간 
관계의 원인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 관계의 고리는 다른 뿌리에서 시작되었을 가능
성이 높다. 다만 직장에 불만을 가진 외로운 사람은 자유로운 시간을 수동적 여가로 탕진하
기 쉽다. 혹은 살아가면서 이렇다 할 몰입의 대상을 찾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부담스럽지 않
은 수동적 여가에 의지하는지도 모른다. 인격 발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과 관계는 대체
로 순환성을 갖는다. 처음에는 결과였던 것이 나중에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부모에게 학대받
고 자란 아이는 억눌린 공격성에 바탕을 둔 방어 의식을  발전시킨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
면 처음의 정신적 상처 때문이 아니라 이 빗나간 방어 의식이 발동하여 또다시 자기 자식을 
학대하는 길로 빠져들기 쉽다. 그러므로  수동적으로 여가를 보내는 습성은  이전에 누적된 
문제들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봉쇄하기에 이른다.

  몇 세기에 걸쳐 진행된 쇠락의 시기에 로마 제국이 시민을 다독거리기 위해 동원한 책략
을 사람들은 흔히 '빵과 원형경기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지배 계급은 몸을 만족시키기 위
해 충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사회
적 불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런 정책이 의식적으로 도입되진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 효
과는 상당했던 것 같다. 여가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공동체의 붕괴를 모면하려는 현상은 
로마 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서양 최초의 역사가인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사>에서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인 아티스가 잇따른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백성의 
관심을 호도하기 위해 이미 삼천  년 전에 구기를 도입하였다고  전한다. "기근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한 전략은 하루 종일 경기에 몰두하게 하여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었다. 먹을 것은 시합이 없는  그 다음날에야 나왔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십팔 년을  끌었
다." 
  비잔틴 제국이 기울어가던 무렵 콘스탄티노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다. 지배 계급
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도시에서 대규모 전차  경주를 벌였다. 뛰어난 경주자들
은 명예와 재산을 얻었고 원로원에 힘 안 들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스페인 정복이 있기 전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마야인이 농구와 비슷한 정교한 시합을 발전시켜 사람들은 몇 주  동안 
그것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오늘의 소수민
들은 스포츠나 연예 분야로 진출하여 사회적 신분상승을 이루겠다는 꿈에 젖어 있다.  농구, 
야구, 권투, 대중 음악은 부와 명예를 약속하면서 사람들의 남아도는 막대한 정력을  흡수하
고 있다. 입장에 따라서는 이것을 두 가지의 전혀 상반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마
르크스가 종교를 두고 한 말을 끌어오자면 여가가 '인민의 아편'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
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뾰족한 대안이 없는 위험스러운 상황 앞에서 창조적으로 
나온 반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과거의 예를 보면, 한 사회가  사회 성원에게 의미 있고 생산적인  직업을 제공할 능력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여가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시작한다. '빵과 원형경기장'은 사회의 붕괴를 
오직 잠정적으로만 지연시키는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엿볼 수 있다.  가
령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대다수가 일과 공동생활에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
였으므로 예전의 즐거웠던 생활을 흉내내는 여가 활동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몰입을 경험하
려고 애쓴다. 나바호족의 젊은이들은 가축떼를 몰고 고원 지대를 누비거나 일주일씩 계속되
는 춤과 노래의 축제에 참여하면서 환희를 맛보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터전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스포츠카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몰입감을 
되찾으려고 노력한다.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이 부족간의 전쟁이나 사나운 가축 때문에 목숨
을 읽을 확률보다 반드시 높다고 말할 수야 없겠지만 그것이 헛된 죽음이라는 사실만은 분
명하다.
  마찬가지로 이누이트족도 위험한 과도기로 접어들었다. 바다표범을 사냥하고 곰을 생포하
는 희열을 더 이상 맛보지 못하게 된 청년들은 일상의 따분함에서 벗어나려고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기 위해 자동차에 몰두한다. 북극에 가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도로는 없어
도 순전히 스피드 경주만을 위해 닦아놓은 도로는 있다. 오일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우
디아라비아의 부잣집 젊은이들은 낙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길이 뚫려 있지 않은  사막이나 
리야드의 거리를 신형 캐딜락으로 질주하면서 과거의 희열을 되찾으려고 애쓴다. 여가는 생
산 활동이 너무 구태의연하고 무의미해진 시대에 득세한다. 앞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여가에 쏟을 것이고 더 정교하고 인위적인 자극에 의존할 것이다.
  직장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껴 생산 활동의 책임을 던져버리고 여가 활동에서 몰입을 맛보
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유능한 엔지
니어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겨울에 음식점에서  그릇을 닦아서 모은 돈으로 여름에는  암벽 
타기에 전념하는 경우가 있다. 파도타기에 좋은 해변에 가보면 입에 겨우 풀칠만 할 정도로 
벌면서 열심히 파도만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호주의 짐 맥베스라는 사회학자는 일 년 내내 남태평양의 이 섬 저 섬을 떠돌면서 살아가
는 항해자 수십 명을 면담하였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모아 사들인 
배 한 척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배를 고치고 식량을  살 돈이 떨어지면 
아무 항구에나 정박하여 어느 정도 돈이 모일 때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그리고는 다
시 바다로 나간다. "나는 책임을 던져버리고 단조로운 생활을  박차고 나와 모험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흐리멍덩한 삶은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 항해자는 토로한다. "내 인생에서 두
고두고 기억할 만한 정말로 해볼 만한 일을 찾았다."고 말하는 항해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진단을 내리는 항해자도 있다.

    현대 문명은 라디오, TV, 나이트클럽을 비롯한 기상천외한 오락을 수도 없이 고안하여,  
  얼핏 따분하게 여겨지는 땅과 해, 바람과 별로부터 벗어나 우리가 색다른 자극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오래 전의 현실로 돌아가려는 것이 바로 항해다.
  
  직장을 아주 그만두지는 않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일보다 여가에 더 비중을 두면서 살아가
는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암벽 타기에 빠진 어떤  이는 암벽을 타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싸움, 자신을 상대로 벌이는 이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에게는... 속세
의 싸움이 힘겨워 보이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산으로 들어가 목수가 된 사람은 자
기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한다. 

    회사에 다녔으면 돈을 많이 벌었겠지만,  어느 날 내가 싫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나는 삶을 값지게 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뒤바뀌어 내 시간을 온통 회사에  쏟아붓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목공일이 좋다.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살면서 밤마다 산을 탄다. 내  
  가 지금 마련해 주지 못하는 물질적 풍요보다 느긋해지고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  가족에  
  게는 더 소중할 거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에서 목수로 변신한 사람은 창조적  적응의 본보기로 꼽을 만하다.  그런 사람들은 
최대한 몰입 경험을 할 수 있는 생산 활동이 나타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는다. 이들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거나 온 시간을  여가에만 쏟아붓는 삶을 도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지긋지긋한 업무와 판에 박힌 오락 사이를 다람쥐처럼 오가는 생활에 적응
하며 산다. 몰입 경험이 노동의 영역에서 점점 여가의  영역으로 옮겨지는 흥미로운 현상은 
밀라노대학의 안토넬라 델레 파베와 파우스토 마시미니가 알프스의 한 마을을 대상으로  벌
인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폰트 트렌타즈라는  산촌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마흔여섯 명의 사람들과 일일이 면담하였다. 그곳 사람들은  집집마다 TV와 자동차를 가지
고 있지만 여전히 목축, 과수, 재배, 벌목 같은 전통적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심리학
자들은 이 마을에 사는 청년층, 중년층, 노년층의 사람들에게 언제 어떻게 몰입 경험을 하는
지를 물었다(<그림 2>).
  몰입 경험이 가장 많은 세대는  조부모 세대였고, 대부분 일을 하는  동안에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목초지에서 풀을 베거나 헛간을 고치거나 빵을  굽거나 젖을 짜거나 정
원을 가꾸거나 하는 활동이었다. 중년 세대-40대에서 60대 사이-는 일과  여가 활동에서 얻
은 몰입 경험의 비중이 엇비슷했다. 그들이 즐기는 여가 활동은 영화 관람, 바캉스, 독서, 스
키 등이었다. 가장 젊은 세대는 조부모 세대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였다. 그들은 몰입 경험을 
가장 적게 했을 뿐 아니라 그 태반이 여가 활동에서 얻은 것이었다. 춤, 오토바이, TV가 그
들의 낙이었다(<표 2>는 각각의 집단이 몰입 경험을 어느 정도나  했는지는 보여주지 않으
며 일이나 여가에서 몰입 경험한 비율만을 알려줄 뿐이다).
  폰트 트렌타즈에서 이처럼 세대 차이가 나타난 것은 반드시 사회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세대가 한 번은 거치게 마련인  정상적 성장의 특징을 여기서도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 젊은이가 모험과 자극을 찾아다니면서  희열을 맛보는 것은 어디서
나 나타나는 현상이며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는  공동체에서는 그런 정상적 차이가 
확대되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아야  한다. 노인들은 아직도 전통적  생산 활동에서 
의미를 찾는 반면 아들과 손자 세대는 시대에 되지고 성가시기만 한 일에서 점점 손을 놓고 
오락에 몰두하여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한다.
  미국에서도 아미시, 메노나이트 같은 전통 마을에서 사는 주민들은 일을 하면서 몰입감을 
자주 경험한다. 농부의 하루 일과라는 것이 언제 일 끝나고 언제 여가가 시작되는지를 구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뜨개질, 목공, 노래, 책읽기 같은 '여가 활동'이 물질적, 사회적, 정신
적 의미에서 모두 유용하고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거기에는 희생이 뒤따르는데 이제
는 화석처럼 별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기술적, 정신적 단계의 한 지점에 묶여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진 건강한 삶을 누리는 방법은  과연 이 길밖에 없을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 몸을 담그고서도 이러한 특성을 결합하여 삶의 방식을 새롭게 창
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여가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일을 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정력을 쏟아야 한
다. 사람을 성숙시키는 능동적 여가는 저절로 굴러오는 게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의 실
력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데서 여가의 의미를 찾았다. 과학과  예술이 전문화의 길로 들어
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 연구, 시작, 그림 그리기,  작곡 등은 여가 활동으로서 이루어
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레고어 멘델은 그 유명한 유전  교배 작업을 취미 삼아서 했
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직업 의식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에서  렌즈를 깎고 피뢰침 실험을 
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삶에 질서를 만들기 위해 유려한 시를 썼다. 지금은 전문가만
이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며 아마추어가 섣불리 나섰다가는 전문가의 영역을  건드렸다
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러나 단지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아마추어는 자신의 삶을 흥미
롭고 즐겁게 만들 뿐 아니라 모든 이의 삶을 값지게 한다.
  여가를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다. 모든 
민족 예술-각각의 문화에 특별한 개성과 명성을 주는 노래, 자수, 도자기,  조각 등-은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 자신의 기량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평범한  사람들이 이루어낸 것이다. 우
리의 선조가 자유로운 시간에 아름다움과 지식을 추구하는 대신 수동적 여가 활동으로 일관
했다면 지금의 세상은 얼마나 따분할까.
  현재 우리가 쓰는 재생 불능 에너지-전기, 석유, 종이, 금속-의 7퍼센트 가량이 여가 활동
에 투입되고 있다. 골프장을 건설하여 물을 대고 잡지를  찍어내고 휴양지까지 승객들을 비
행기로 실어나르고 TV 프로그램을 연출하여 방송하고 모터보트와 눈썰매를 만들어 기름을 
넣는 데 지구 자원의 상당량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여가에서  우리가 얻는 만족과 즐거움은 
여가 활동에 드는 물질 에너지의 양과 관계가 없는 듯하다. 있다면 오히려 역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 쪽에서 기량, 지식, 감정 등 내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활동이, 외부 에너지
와 많은 장비를 소모해야 하는 활동보다 결코 만족감을 적게 주는 건 아니다. 유익한  대화, 
정원 가꾸기, 책읽기, 병원에서 하는 자원 봉사,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행위 등은 그보다 열 
배는 더 자원들 소모하는 활동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보람을 안겨준다.
  한 사람의 삶이 알차려면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한 사회의 
질적 수준은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외의 주택 단지가 암
울하게 다가오는 것은, 고운 잔디가 깔려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 안에서 흥미로운 일에 몰입
하는 사람이 그야말로 극소수일 거라는  어느 정도는 근거 있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도 돈, 가족, 패션, 휴가,  소문 외에
는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반면에  이 세상에는 고전시에 푹 빠져 
자신의 서가를 낡은 시집으로 꽉 채우는 은퇴한 전문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자기 마을의 역
사를 책으로 써서 조상들의 업적을 후대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농부가 아직도 어엿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우리는 여가 활동이 사회적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원인과 결과로서 동시에  작용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사회 집단의 생활 방식이 생명력을 잃고, 일이 지겨운  타성
으로 변질되고, 공동체의 책임감이 그 의미를 잃어갈수록 여가의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이
다. 오락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는 앞으로 직면하게 될 기술적, 경제적 난제를  창조적
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음반, 영화, 패션, TV 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전세계에서 엄청난 돈을 긁어
들이는 지금 연예 산업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을  줄는지도 모른다.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비디오 가게는 실업자 수를 줄여준다는 장점도 있을 법하다. 아이들
은 매스컴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을 우상으로 삼고 있으며 우리의 머리에는 스포츠계나 영화
계의 스타들에 대한 정보가 수두룩하다. 성공하는 게 잘못이란 말인가? 우리가 만약 세태를 
금전의 잣대로만 평가한다고 해도 특별히 잘못된 건 없다. 그러나 수동적 오락에 중독된 세
대들이 장기적으로 미칠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장밋빛 그림은 어둡게 변할 것이다.
  자유롭지 못하므로 의미가 없는 일과 목적이 없으므로 의미가 없는 여가로 삶이 양극화되
는 위험성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앞 장에서 소개한 창조적 개인들의 실례가 하
나의 출구를 제시하는 건 아닐까. 전통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처럼 창조적 개인의 삶에서
도 일과 놀이는 별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옛날 사람과는 달리 그들의 삶은 화석화
된 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로부터 얻은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미래
를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우리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며 남아도는 
시간을 두려워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일이 여가처럼 즐거우며, 일을 잠
시 접어두었을 때는 마음을 텅 비게  만드는 여가가 아니라 진정한 재충전으로서의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직장일에서 도저히 흥미를 못 느끼겠다면 여가 시간만이라도 몰입 경험을 할 수 있는 참
다운 기회를 찾아나서는 데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자신과  주변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이 세상은 흥미진진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그걸 모르고 살아갈 뿐이다. 시인이나 음악가, 발명가나 
모험가, 아마추어 학자나 과학자, 예술가나 수집가가 될 수 있는 길리 우리 앞에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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