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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이야기

바다로 날아간 까치

by FraisGout 2020. 5. 16.

내 고향은 바닷가 솔숲이다. 우리들은 대대로 이 솔숲에서 살아왔다. 사람들이 
방풍림이라고 부르는 이 솔숲을 나는 참으로 사랑한다. 아마 우리 까치들 중에서 
나만큼 이 솔숲을 사랑하는 까치도 드물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해 뜨는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 바퀴 솔숲을 휘돌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의 집은 2백여 년도 넘는 세월 동안 절벽 바위틈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 위에 있다. 파도가 심하게 치면 바닷물이 곧 튀길 듯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날아갈 염려가 있다고 다들 송림 한가운데가 집을 지었으나, 나만은 고개만 내밀면 
곧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다 집을 지었다. 
  몇 해 전 여름이던가. 폭풍에 집이 날아가 버리자 부모 형제와 다정한 친구들이 
이제는 송림 한가운데에다 집을 지으라고 야단이었으나, 나는 그들의 염려와 권유를 
적당히 무시했다. 집은 언제나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다 지어야 한다는 내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 둥지에 편안히 쉬고 있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바다를 바라볼 
수 있기를 원했다. 공연히 외롭다고 느껴질 때, 왠지 쓸쓸하고 마음이 스산할 때 
가만히 둥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일을 내 행복의 으뜸으로 삼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의 그런 행복은 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느 날 문득 
내가 바다로 날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저 수평선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수평선 너머에도 바다가 있을까. 어머니는 왜 우리가 바다로 날아가면 안 
된다고 하늘 것일까. 나는 늘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한번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예전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없었다. 힘차고 멋진 날개를 지니고 있는 내가 막연히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아무리 바다를 바라보아도 수평선 이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싶었다. 바다 한가운데에도 
내가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정말 그곳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바다를 향해 날아가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몇 번 망설이다가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 저도 한번 바다로 날아가 보고 싶습니다."
  "네가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내가 입이 닳도록 그렇게 얘길 해도 
아직도 못 알아들었단 말이냐? 우리가 바다로 날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일이야. 우린 갈매기가 아니야. 우리는 바다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바다는 
우리에겐 죽음 뿐이야. 아침에 해가 뜰 때를 조심해야 돼. 아침해는 그 아름다운 
빛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거야. 그 유혹에 못 이겨 바다로 날아갔다가 그만 영영 
돌아오지 못한 네 형제들을 나는 알고 있어."
  어머니는 놀라 펄쩍 뛰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기운이 쑥 빠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바다가 정말 
나를 유혹하는 걸까. 나는 날이 갈수록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침에 해가 뜰 때마다 눈부신 햇살에 몸살을 앓았다. 오직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것만이 소원이었다. 바다를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던 어머니의 
말씀을 결코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 바다로 날아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는 결국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말았다. 찬란한 아침해가 내 마음을 못 
견디게 만들던 그날, 나는 기어이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펼쳤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죽음을 각오하고, 아침놀이 붉게 타오르는 바다를 향해 날았다. 바다는 
끝이 없었다. 얼마간 날아가면 그 끝이 보일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날아도 
날아도 수평선뿐이었다. 바다가 끝없이 수평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해는 어느새 바다 위로 떠올라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내가 살던 
솔숲이 멀리 조그맣게 한 점 점처럼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정말 어머니 말씀을 들을 걸하고 금방 후회가 되었다. 내 옆에서 갈매기들이 줄곧 
나를 보고 히죽거렸다. 
  "까치가 바다로 날아가다니! 저런 병신도 다 있나? 자기가 우리처럼 날 수 있을 줄 
알아? 분수를 알아야지, 분수를. 재는 얼마 안 있어 곧 죽을 거야! 저것 좀 봐, 저 축 
처진 꽁질 좀 봐. 날개에도 벌써 힘이 빠졌는걸!"
  정말 나는 날개에 힘이 없었다. 힘을 주면 줄수록 날개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죽어도 좋다. 바다는 내가 그 얼마나 
날아오고 싶었던 곳이냐. 날아갈 수 있는 데까지 날아가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 
가슴에, 내 두 눈에 바다를 모두 담았다. 
  얼마나 바다 위를 날고 있었을까. 이젠 나를 놀리던 갈매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아침 햇살만이 내 온몸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햇살에 반짝거리는 푸른 바다의 
물결을 황홀했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가 볼 수 없을 것만 같던 바다를, 
오직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던 바다를 내가 직접 날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그러나 
나는 점점 지쳐 가기 시작했다. 이제 곧 돌아가지 않으면 죽음이 내게 다가올 것 같아 
한순간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솔숲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힘이 없었다. 이제 곧 완전히 지쳐 버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다가올 죽음을 생각했다. 우리에게 
바다는 오직 죽음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다. 죽음이란 어머니의 
품속에 고요히 안기는 것과 같은 것일까. 나는 발아래 넘실대는 푸른 바다의 물결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그 물결 위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내 눈에 한 점 점처럼 뭔가 육지 같은 게 보였다. 아, 그것은 
섬이었다. 아아, 바다에는 섬이 있었다. 나는 바다에 섬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 섬을 향하여 힘껏 날아갔다. 나는 그 섬의 솔숲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고향 마을을 향하여 힘차게 날았다. 바다에 섬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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