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그가 상아로 비너스를 조각했는데, 자신의 조
각상을 너무도 강렬히 사랑하게 되자 절망에 빠진 그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인해 조각상이 살아 숨쉬
는 생명체로 변했다고 한다. 이상적인 파트너는 사람을 그 대상과 혼연일체가 되도록 이끌고, 단 한순간
에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감정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이상적인 파트너를 향한 동경이, 수많은 피그
말리온들이 그들의 파트너를 힘겹게 조각하는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각의 과정에서 대부
분의 사람들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파트너를 만들어 내겠다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
떤 것도 정당화되곤 한다. 베아테는 이상적인 남성상(실제로는 남성화된 베아테 자신)을 조각품으로 완
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 미완성으로 보이고, 그를 위해서 뭔가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유약하고 의존적인 남자와 결혼한다. 그녀는 이제까지의 교우관계와 흥미거리를 다 포기하고 그에
게 헌신한다. 동시에 그가 언젠가는 그녀가 필요로 하는 남자가 되어(현재는 그가 그녀를 필요로 하지
만), 그녀의 모든 헌신적 노력에 보답을 하고, 이제까지 그녀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위해
줄 것을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를 이해 더 많이 염려하고, 더 많이 노력
할수록, 그는 더 수동적으로 된다. 마침내 그 모든 노력이 허사라는 게 분명해졌을 때, 신뢰는 의심으로,
혼연일체가 되고자 하던 갈망은 헤어지고자 하는 강한 욕구로 급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오
랫동안 곁에서 보살피던 그를 버린다. 하지만 이혼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그녀가 그토록 지치고 힘겨워
했던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남편의 모습을 인정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를
테면 그녀는 그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매번 새로운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그녀는 뭐가 뭔지 제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고, 그때마다
이렇게 속는 게 처음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고는 매번 "정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
어요"라고 한탄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 남자는(물론 내가 알지는 못하고, 베아테의 시각으로 왜곡된 모
습이기는 하지만)피그말리온의 순진무구한 조각상과는 달리,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그녀의 이런 경향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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