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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두려움

사랑은 간단하나 적응은 복잡하다

by Frais Feeling 2020. 8. 24.

  나는 이제까지 '관계의 어려움'을 두 종류로 나누어  기술했다. 관계의 어려움은 비록 여러 가지 형태
로 나타나지만, 하나의 비슷한 '근본 장애'를 갖고 있다. 그것은 '적응을  통한 표현의 보상'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기 고유의 감정과 기대치를 표현함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는 인간관계의 문제가 통제적인 
적응 능력을 통해서 더 악화되고 있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강렬한 사랑의 감정에 대한 두려
움은 파트너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든지, 상대방에게 모든  문제를 맡겨 버리게 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가 충분히 사랑을 맡겨 버리게 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가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리게 된다. 관계는 늘 '더 좋아져야 하고', '종사
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그러므로 그런  장애는 자신의 일에 적극적이고,  사회적 지위에 집착이 강한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략이 종종 서로 결합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를 관계에 성의가 없고 마
음이 닫혀 있다고 비난하면서 다른 애인을 향해 강렬한 욕구를 분출시킨다. 이것이 한 전략이라면 다른 
전략은 본질적인 역할 부분에서의 분열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배우자는 대화와 친밀감의 대상이
다. 그렇지만 그 배우자와 같이 잠자리를 할 수가 없다. 혹은 아주 드물게만 한다. 그리고 어떤 상상 속
의 애인, 아니면 실제 애인이 따로 있다. 그(녀)에게 느끼는 친밀감은 아주 적다. 대신 그(녀)는 강한 성
적 만족을 준다. 카르멘의 명대사 "집시에 뿌리를 둔 사랑... 그대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활활  타올라 
재가 되고 말리"를 이미 인용한 바 있다.  사람들은 늘 '불가능한(기혼자이거나 독신주의자거나 혹은 아
주 멀리 있는 사람의 경우)' 애인을 향해 자신의 정열을 바친다.  위의 인용문은 집시의 생활 방식이 아
니라 현대인의 두려움을 표현한다. 현대인은 감정의  자유분방하고 무제한적인 힘을 갈구하면서도 회피
한다. 예전엔 겁많은 남자들이 카르멘류의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시켰다.  지금은 그 남자들이 카르
멘을 믿을 수 없는 여자라고  비난한다. 카르멘은 자신이 획득한  남자들을 마치 잡아먹을 듯한 불길로 
태우고, 그리고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남자들을 이글거리는 눈길로 응시한다.  이런 이유에서 수도사나 비
교도(카스타네다 교 같은)들은 성적 환상의 포기를 정신 수양을 위한 전제로  요구한다. 그런 식으로 감
정의 힘이란 것이, 특히 이승에서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위에 기술한 관계장애의 다른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카르멘처럼  그 마음을 읽을 수 
없고,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애인이 있다. 이들은 감정을 폭발시키고,  갈망하면서 질투하기도 하고, 멀
리 있는 행복을 꿈꾼다. 결속되고 안정된 동반 생활,  아이 문제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이때 감정은 순
수한 형태로 유지된다. 왜냐하면 감정이 그와 같은 현실 문제와 대립해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
다. 여기에는 환상에 실린 감정의 권력만  남는다. 이러한 환상은 현실의 본질적 부분들을  그냥 남겨둔
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감정적 헌신에 대한 공포는 더욱 어둡고 은밀한 그늘 속에 감춰져 있
다.
  공생 관계의 부부는 서로 마주 보고 앉은 두 로봇의 관계와 같다(나아가 이 둘은  각자 말한다. "나도 
한번 정말로 사랑받고 싶어."). 두 로봇 다 상대방의 머리뚜껑을 열고, 온갖 가능한 도구들로 중앙통제기
관의 프로그램과 조작 장치를 바꾸려고 한다. 목표는 조화와 상호동일화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적
합과 부적합, 사랑과 미움으로 분할해야 한다. 공생관계는 조화롭지 못하다. 상대방을 자기 자신의 이상
향으로서 사랑한다. 그는 그러므로 발전해야 하고, 마침내  변해야 한다. 만일 그가 그렇지 않으면 비난
받고 거절당한다. 상대방 역시 거의 늘상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 역시 적응을 유도하고, 사랑의 부분에
선 늘 결핍을 느끼게 한다. 이런  상황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같은  작은 국가 간의 관계로 그려질 
수 있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다. 하지만 세상은  불신, 조약 파기, 전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서로 인질을 교환한다. 그리고 인질은 평화가 깨질 경우 처형될 운명이다. 그들은 각자 상대방의 
영토에 점령군을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국경 분쟁이 야기된다. 교섭 대상은  독립적인 자치 구역이 아니
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의 내부에 인질과 동시에 적의 점령군을 갖고 잇다. '인질'은 상대방에 선행되
는 적응 노력이고, '점령군'은 상대방이 약속한 만큼의 노력을 실천하지 않았을 때 행사할 수 있는 양심
의 압박이다.
  베로니카는 크사버를 사귀게 되었다. 그는 아이가 한 명 있었고, 부인과는 헤어지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의 부인은 크사버가 아이를 양육하길 바랐다. 그는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다. 크사버를 잃지 않고 싶은 
베로니카는 자기가 아이들을 좋아하니 그의 아이를 함께  기르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와 함께 살면서부
터 베로니카는 그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자신을 이용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크사버는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심한 상처를 직장 일에 집착함으로써 잊으려고 했다. 베로니카는 종종 불평했다. 
그는 전부인을 더 사랑했고, 그래서 결혼했으며(자기와는 결혼을 망설이는 데 반해), 아이도 가졌다(그는 
지금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크사버는  베로니카와 결혼했고, 그녀와 엄마로서도 무
관심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꼈다. 크사버는 그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그 둘은 싸우기 시작했다. "난 한 번도 당신 아이를 기르고 싶은 적이  없었어." 베
로니카가 말했다. "당신은 항상 날 착취하고 기만하기만 했어.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인질은 처형되
고, 점령군이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크사버는 크나 큰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난 당신이 원하는 
대로 결혼했고, 둘째 아이도 낳았어. 난 아이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었어.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왜냐하면 당신을 만족시키는 건 영영 불가능하니까 말야." 크사버가  말했다.(인질은 처형되고, 점령군이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그렇게 불평하는 자신에게 죄의식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상대의 
영토에서 최상의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베로니카는 예를  들어, 크사버를 붙잡아 두려
고 한다. 왜냐하면 결혼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크사버는 베로니
카와 성관계만을 원한다. 서로 공격성을 드러낸 지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당신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나랑 살고 있어" 라고  크사버가 말하면, "당신은 나랑 자려고만  들지. 차라리 다른 여자한테나 
가 보라구" 베로니카는 이렇게 대꾸한다.
  크사버와 베로니카 부부의 사례는 "사랑과 계산이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말을 잘 증명해 준다. 크사
버와 베로니카는 가정 어딘가에는 신비스런 사랑의 나라가  있을 거라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정과 
학교 안에서 그들이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점수를 매김으로써 앞으로 
그들이 행할 일을 준비해 나갔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릴 것인가? 그 
반대다. 그들은 제대로 된 방식으로만  사랑했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혁명적인 힘을 발산해 보지 못했고,  그들이 헤엄쳐 나가야 할 적응의 조류를  제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서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모든 노력은 기존에 이루어진 것을 답
습할 뿐이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들이 정말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물음을 던지지 않는 사회에서 어
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감정이 사라진 사회에선 사랑도 없다. 규범이 없는 사회는 혼란을 의미한
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질서 관념엔 대부분 사랑이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질서 관념은 목적
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근절시킨다. 문제는 권력 형태에 놓여 있다. 사회 질서는 광폭하게 흐르며, 인간
의 감정을 자기 아래에 예속시킨다. 시녀에게 합당한 적응력이 주인으로  올라서려고 하는 것이다, 사회
의 발전 과정에 상응하는 변화가 인간 내면에서 일어난다. 관료 체계, 국가,  법, 군대가 인간을 위해 존
재한다는 것을 거꾸로 생각해 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모든 가치 평가 중에  '최고 점수'가 사랑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누가 믿는가? 사랑에 다가서길 두려워하는 것은 아래의  현상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주로 무의식적으로)매우 윤리적인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과  결속되길 기피하는데, 이는 강한 
감정의 표현이 일종의 사랑의 규범이 되어 그를 구속하고,  결국엔 거기에 벗어날 수 없게 만들 것이라
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다음에서 관계를 규정 짓는 큰 개념으로서의 '적응'과 '사랑'을  그 전형적인 유형을 통해 고찰하
고자 한다. 가족심리상담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이런 논지가, 예를 들어 '공생'과 '경계긋기', 성
숙되지 않은 '나르시스적인' 관계와 '성숙한' 관계, 또 '이원론적인' 주장과 '변증법적인'  주장이라는 대립
적인 용어 사용과 분명히 비슷한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이다. 나는 이 문제를 가능한 한 일상 용어로 설명하고자 한다. 더욱이 나는 '관계병리학' 혹은  '병적인', 
'건강한' 관계라는 개념을 순진하게 인용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적응과 사랑 둘 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
해서는 꼭 필요한 가치들이다. 물론 이와 같은 개념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또 적응이란 개념이 감
정적인 영역을 내면에 안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문명화된' 이중관계적 상황에 
연관지어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충분히 납득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규범에 대
한 모든 비판 역시 규범화될 위험이 있다.
  1. 적응 관계의 경우, 우선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 해 보기로 하자. 만일 내가 그를 
단지 사랑하기만 하고 그를 위해서 나를 제한하거나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의 요
구를 충족시키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어떤 부분에 노력해서 성과를 얻어내고, 그 대신 뭔가 받
기를 원한다. 즉, 내가 다가가는 형태는  교환이 제한적이고 규범화된 곳에서, 그리고  노동력, 상품, 돈, 
서비스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에서는 성공을 약속한다.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고, 단지 그것으로만 날 
증명한다. 나는 내 감정을 일정한 기대치로 제한하지 않는다. 말로, 혹은  침묵으로도, 내 기분이 어떤지 
말한다. 이런 표현은 그 자체가 목표이며, 무엇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
라는 것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아마도  슬프긴 하겠지만 그것이 잘못이거나 나쁘거나 착취당한  건 아니
다. 난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쁘고, 내가 주는 것이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2. 적응은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적응하지 못한 것을 내가  나의 내부에서 억압하게 만드
는 사람에게 증오를 유발시킨다. 이  증오는 오래된 감정의 창고에서  새어 나와 예전의 폭군에게 향할 
수도 있다, 증오는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에 감춰져야만 하고, 없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리고 새
로운 적응을 통해 증오는 더 강해진다. 억압된 증오는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그 
대신 잘 조절된 증오가 나타난다. 관계는 사랑의 증거물로 거래하는 일종의 사업이며, 각자 상대방의 성
과를 감시하고, 정확하게 테스트 한다.
  3. 사랑으로 결속된 관계는 쉽다. 이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음은 증명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감탄하는 대신, 다정하게  서로를 대한다. 그들은 각자 서로의 약점과 강
점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둔다. 이들의 목표는 서로 함께하는 시간  동안 편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들
의 행동은 모든 세세한 부분에서  이 목표에 부합한다. 이에  비해 적응으로 결속된 관계에서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게 봉사한다, 사랑과 행운은 미래에는  희망의 빛을 던지지만, 현재
에선 오래 견딜 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크나큰 관제를 해결해야 하는 지금, 사람을 너무 나태하게 만
들기 때문이다. 이런 일 저런 일이 더 좋아진 다음에라면 몰라도! 이런 숭고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일상생활 속의 크고 작은 사랑의 결핍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허용된다.
  4. 사랑의 관계는 단순하고, 서로 오래 알게 될 수록 점점 더 단순해진다. 반대로 적응의 관계는 복잡
하고, 서로 오래 알게 될 수록 점점 더 복잡해진다. 사랑의 관계는 힘들지 않다. 두 사람은 그들 사이에 
잇는 장애나 그들이 짊어져야 할 짐을 최소화하려고 함께 노력한다. 적응의 관계는 힘들다. 각자 자신이 
이뤄 낸 것을 장부에 기록하고,  그 장부는 점점 더 두꺼워지고,  복잡해진다. 동시에 각자 상대방이 한 
일에 대한 장부 역시 작성하고,  자기 것과 비교한다. 누군가 사랑에서  우러난 어떤 일을 하면, 자기의 
행동으로 보상받는다. 그는 생생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적응하기 위해 뭔가를 하거나,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무엇을 포기한다면, 그의  내면에는 하나의 
계산서가 작성된다. 그 계산서는 그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 주지만, 그에게서 현재를 빼앗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적응관계의 두 사람은 과거의 행동이나 채무 불이행을  가지고 긴 시간 동안 자주 다투거나, 희
망적인 미래를 계산한다. 그건 바로 함께 있는 그들의 현재가 충족되지 않고 공허하기 때문이다.
  5. 감정으로 결속된 사랑의 관계에서는 육체적인 결합이 두 사람의 관계를 생동적으로 표현한다. 그들
에게 '사랑의 기술'과 오르가슴을  향한 노력은 의미가 없다. 감정과  바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충족될 수 잇는 것과 충족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도 좋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적응의 관계
에서 정해진 행위를 교환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바람을  말하는 사람은, 무척 불안정한 땅에 발을 내딛
는 것과 같다. 바람은 미루어 짐작되어야 하고,  욕구의 솔직한 표현없이 충족되어야 한다. 육체적인 결
합은 서로의 행위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파생되는 고통과 불만을 마비시킨다. 육체는 행
위와 보상에 포함된다. 육체적 저항은 자기의 기대에 너무 적은 보상을 한 데 대한 형벌이며 복수다. 혹
은 육체가 사랑이 아니라 적응 때문에 허용되고, 상대에게 내맡겨진다.  그러고는 그로부터 다른 요구를 
이끌어 낸다. 한편에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난 당신과 함께 잘 수 없어!", 다른 한편에선 
"당신이 나랑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면,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라고 한다. 이런 무승부의 상
황은 매우 흔히 발생한다.
  6.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자기가 느끼는  사랑과 상대방의 사랑에 대한 
믿음보다 더 크기 때문에, 끊임없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두려움은 적응에 의해 진
정된다.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그것이  상실된다 하더라도 견딜만하다. 사랑을 잃게  된다면 슬프긴 
하지만, 그것이 실패나 무능력을 듯하지는 않으며, 분노나 복수의 동기가 되지 않는다. 적응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늘 분노가 복수의 동기가 되지 않는다. 적응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늘 분노가 사랑을 위협하고,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참을 수 없다. 적응은  예측할 수 없는, 그리고 마치 삶  자체처럼 늘 기계적으로 
동일할 수 없는 감정으로부터 일종의 기술적인 안전을 확보하게 해 준다. 안전에의 집착은 그러나 결국 
어떤 것도 안전하게 지켜주지 않는다. 이는 마치  지속적인 행운에 집착함으로써 끊임없는 불행에 귀착
되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 기대되지 않은, 미리  예견되지 않은 변화는 위협적인 것이다. 상대를 감시하
는 것은 어린 시절 엄마와의 관계가 부활한 것이며, 이 관계를 이번엔 성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힘으로 
지킨다. 근본적으로 이 관계에선 하나의 인물만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 상대방은 자기 자신의 확장이며, 
자기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위협적인 세계에서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대방이 안전을 위
한 노력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할 때, 분노가 생기게 마련이다. 분노는 적응과, 이제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유지해 온 관계를 위험에 빠뜨린다. 그것이 두려움을 낳는다.
  7. 적응은 동일성을 요구하고, 사랑은  각자의 차이를 중개한다. 동일성이  뜻하는 바는 이렇다. 감정, 
가치관. 시간, 장소, 성적 흥분 등이 서로 일치해야 하고, 상응하는 기대치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가 깨지고, 고독해진다. 두 명의 서로 다른 인격체 간에 결코 형성될 수 없는 동일성에 의존
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덜기 위해, 적응의 자세를 갖추고 잇는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짐을 덜어 주
고자 한다. 이 사람은 바로 '어려운' 상대,  즉 낯설고, 뭔가에 힘들어하고, 또 그를 위해  많은 걸 할 수 
있고 또 해 줘야 하는 그런 사람을 고른다. 그는 상대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어려움을 감수한다. 
그래서 자신이 상대방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도록  만든다. 그는 상대방을 마치 불안한 평화 협
약을 체결한 적대국을 대하듯 다룬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귀족의 자제(인질)를 서로 맞교환해야 한
다. 그리고 평화가 깨질 경우, 그들은 처형되어야만  한다. 자기가 적응한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고 깨
닫게 되면, 그 사람은 복수에 불타는 사냥꾼으로 돌변하고 만다. 그는 이제,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의 죽
음보다 더 깨끗한 관계의 정리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아이들, 집안 살림, 돈은 이전에 추구했던 
동일성과 조화의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다른 목적을 위해 희생된다. 그  새로운 목적이란, 다름 아닌 착
취인(앞으로는 더 이상 착취하지 않으려는, 즉 관계를 끊으려는 배우자)을 처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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