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롭고 이상적인 상태를 향한 추구는 진보적인 역할 수행 세계가 바라는 꿈이다. 사적인 관계는 그 꿈
을 이를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진보적인 수단의 차가운 지배욕으로부터 파트너가 도망치고, 그래서 사적인
관계는 따뜻함을 통해 신뢰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휴식과 평화가 파괴된다. 규범
투쟁은 마치 수면 위를 퉁겨나가는 돌처럼 자기의 희생양을 다시 역할 수행의 세계로 몰아간다. 하인즈 코
후트는 조화롭고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환상을 연구했고, 그 환상이 완벽한 모자 합일의 재창조를 향한 욕
구와 연관이 있다고 가정했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사례들은 많다. 하지만 도피의 연구에서 어디로
도망가는가만 주시하고,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는지는 간과하기 때문에 그런 시도는 근시안적으로 보인다. 그
러므로 사회적인 발전을 배경으로 한 공생적인 조화 추구의 형태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화시키는'
형태를 취하면서 그 당사자는 자기가 함께 녹아들어 하나가 될 수 있는 대단한 상대를 찾는다. 어머니와
아이가 하나가 되듯이 그런 통일을 꿈꾸는 것이다. 여기서 조증과 우울증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는 건 분명하다. '쌍둥이' 혹은 '거울'의 형태를 취하는 관계에선 반대로 그 당사자는 그 자신과 똑같거나,
혹은 자기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닮은 상대를 찾는다. 물론 관계의 형태가 모두 질적으로 다르게 때문
에 다만 그것의 장애 내용을 기준으로 위와 같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겠다. '정상 상태'에서는 이상화와
거울 반사라는 위의 두 가지가 동시에 발생한다. 욕구 해소와 나르시시즘(나르시시즘은 프로이트의 초기
충동이론에서 성적충동과 자아충동 간의 갈등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간의 투쟁은 사회적 발전의 후기
단계에 속한다. 베르트 브레히트가 말한 바대로, "처음엔 약육강식이, 그 다음엔 윤리가 온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현대인을 마치 고대 테바이 산 동굴의 은둔자처럼 고층 아파트의 고독과 단절로
내모는 것은 전지전능한 성적 충동에의 공포가 아니다. 그보다는 나르시스적인 동질화의 모델에 따라 '감정
의 역할 수행 대 감정의 역할 수행' 이라고 간단히 요약될 수 있는 파트너십의 요구에 상대해서 이길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공포다.
오른쪽의 네 가지 관계 유형 중에서 '의존적' 유형이 확실히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처음으
로 사회를 구성하면서 나타나는, 감정과 충동에 의해 규정되는 행동 형태 다음에 온다. 여기서는 사랑의 욕
구와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이 파트너의 일차적인 과제다. 삶은 위태롭고, 자연환경에 맞서 싸우는 것이 개
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다. 초기 사회에서도 공적으로 지배적인 감정의 결속이 '문명화의 과정'(N.
엘리아스가 쓴 문명화의 과정 참조) 속에서 개인의 사적인 영역 안으로 점점 더 압박해 들어왔다. 초기 시
민사회에서 부부관계는 파트너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였다. 남자에게 의존하고, 그의 인격을 이상화
시키는 것은 '전형적으로 여자다운' 태도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봉건적 관계, 개인적인 예속의 관계
는 사회적인 예속 관계와의 투쟁 속에 더 이상 그대로 머물 수 없었다. 봉건주의로부터 해방된 시민사회는
사적 영역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여자들을 산업 역군으로, 상품의 소비자로 내몰았다. 그 결과는 파트
너 관계에 있어서 나르시스적 유형과 거울반사 혹은 쌍둥이 유형에서 나타나는 곳과 같다.
프로이트가 나르시스적인 대상 선택을 무엇보다도 여자의 몫이라고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에 의하면
여자는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모습을 갖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봉건적, 가부장적 가족 내지
는 파트너 관계가 붕괴됨으로써 나타나는 심리학적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아직은 외부세계에서 지배적인 역
할 수행과 즉물화의 압력으로부터 안전했던 사적 영역이, 이제는 그 자체가 역할 수행과 경쟁, 늘 바뀌는
요구들의 터전이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유행의 영향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즉 인격체가
하나의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파는' 동안에는, 행동 방식에서 거의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다. 거울반사 혹은 쌍둥이 관계는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란 것이 더 이상 아무런 구속력도 갖지 못하
고 대신 각각의 파트너가 자율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게 된 상황의 결과다. 자율에 맡겨진 이 관계의 지향
점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일화다. 만일 각자가 서로의 쌍둥이라면, 그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동질화가 매우 어렵고, 또 결코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관계를 거
부하고 혼자 지내게 된다. 적어도 몇 번의 관계에서 '성공하지 못한' 뒤에는(스벤데 마리안의 동화 속 왕자
의 죽음을 분석한 부록 참고)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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