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맹세를 한 사람은 모두 번개를 내림으로써 벌을 주었다고 하는 고대 제우스 신은 후일 사랑에 빠진
사람의 거짓 맹세는 용서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작가와 인간심리학의 '관계' 전문가는 이에 비해 덜 관용
적이다. 솔직함과 진실성은 파트너십에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 사업상의 관계에선 자신의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주 흔하다. 산업화된 삶의 아주 작은 틈새까지도 파고드는 광고는 체계를 옹호하는 거짓말에 속한
다. 흡연가는 항상 젊고, 생동적이며, 모험정신이 강하다. 결코 폐암이나 다른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
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파트너십의 영역은 안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파트너에 대해 모든 것을
알 때 안전하다. 정신분석적인 관계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차례로 열거한 방어 메커니즘도 역사적 발
전 단계를 따른다. 이 과정은 '억압'에서 시작되어 '부정'까지 이어진다. 억압은 역사적으로 더 먼저 나타난
메커니즘이다. 억압 속에서는 의식에서 내용이 사라진다(혹은 내용이 결코 의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내용
은 다만 잘못된 행위를 했을 때 누설되거나 아니면 기억과 해석 작업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 억압된 표상
과 바람들은 당사자에게 마치 다른 사람을 체험하는 것처럼 낯설기만 하다. 그의 삶의 역사는 마치 검열에
의해 삭제된 문구들과 같은 틈새를 가진다.
한 여자가 '금지된' 남자, 이를테면 언니의 파트너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이런 욕구의 꿈이 오래된 환
상, 즉 어머니로 하여금 아버지를 등지게 하는 환상을 되살리는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갑자기 그녀의 언니
가 죽는다. 몰래 사랑한 연인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어떤 육체적인 원인도 발견할 수 없는 무
력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미 젊은 여성의 그런 증세에 익숙한 의사는 이 무력증을 '히스테리' 라고 명명하
고, 전문가에게 보낸다. 그 전문가는 환자와 특이한 '대화식 치료' 방법을 쓰는데, 이를 정신분석이라고 부
른다. 이 전문가는 그녀의 말에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며, 그녀가 기억해 내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
지기 때문에, 무력증에 시달리는 이 환자는 마침내 언니의 죽음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토록 젊은 여자
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리고 그녀의 남편, 이 환자의 형부는 놀랍게도 잘 견디고 있다. 아주 매혹적
인 남자다. 그는 벌써 여러 명의 여자를 현혹시켰다. 억압을 의식하게 되면 치료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체험상의 틈새가 채워지고, 환자는 억압되었던 내용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러면 의식적인
판단을 통해, 억압이 간접적으로 단념하도록 강요했던 행위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억압에 속하는 것으로
서 나이가 들수록 더 발전하고 더 강해지는 오르가슴이 있다. 오르가슴은 성인의 성숙된 의식을 통해 어려
움을 극복하지만, 어린아이는 이 어려움을 다를 줄 모르고, 그래서 억압할 수밖에 없다. 부정은 이와 다르
다. 부정은 더 쉽게 드러나지만, 억압보다 더 치료하기가 어렵다. 원하지 않는 의식의 내용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먼저 인식된 후에 갈등의 대상이 된다. 부정은 더 이상 억압할 수 없는 갈등들과 함께 살 수 있도
록 도와준다. 부정은 의식적인 자아의 활동을 이용한다. 그것이 억압을 제거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는 마치 불쾌한 진실을 은폐하는 것과 같다. 원래 엄한 체벌과 외적인 압박이 지배적인 교육 단계에서는
이에 배반적인 이론과 접촉하는 것이 저지되어야만 한다. 이교도와 마녀는 화형에 처해지고 책들은 금지된
다. 하지만 그 이후 외적인 벌칙은 더 이상 효력을 잃고, 양심의 내면에 호소하는 식으로 바뀌어 간다. 이
방식에 복종하는 사람은 물질적인 그리고 나르시스적인 보상을 얻게 된다. 그는 양심적이고 선하며, 훌륭한
사람이다. 그는 '진짜 인간적인' 면, 즉 성숙한 본성이 변형시킨 만들어진 양심을 갖고 있다. 부정은 산업사
회의 것이다. 부정은 이 사회에서 마치 스프에 들어가는 소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정은 자기
행위의 결과가 위험하고, 어쩌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를 한다는 곳
을 알게 해 준다. 여기서는 단추 하나를 누르거나 어떤 기계 장치를 잡아당김으로써 적은 시간 안에 산 사
람을 화염에 휩싸이게 하는 폭격기 조종사뿐만 아니라, 수백년 동안 존속된 종교 재판소의 사형 집행인을
떠올려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그 안에서 꽁꽁 얼어 버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자동차 운전자는
몇 분 안에 자신이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 아래 나뒹굴지도 모른다는 것을 부정해야 하고, 비행기의 승
객은 비행기가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는 부정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의 살을 칼로 도려내면서 역겨움과 공
포를 부정해야 하고, 같은 환자와 벌써 이백 번째 상담을 하는 심리상담가는 그 환자의 고통을 듣는 지루
함을 부정해야 한다. 정치가는 여론조사의 결과만을 주시하며, 자기가 공적으로 표명한 다른 정견들을 개인
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 기자는 기사를 작성할 때 광고주와 방송언론위원회를 떠올린다는
것을 부정해야 하며, 자동차 공장의 감독위원장은 판매량만 증가한다면 주변의 숲이 죽어 가든 전혀 상관
않는다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 부정의 압박은 초기 산업사회의 절약과 욕구 억제의 정신과 오늘날의 소비
이데올로기 지향적인 역할 수행의 정신 사이의 갈등에서 첨예화된다. 현대사회는 역할 수행의 원리를 확장
하는 데 예전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감정의 영역을 종속시킨다. 즉시 구입하고 나중에 지불하는 것이 사회
적으로 바람직한 원칙이 되었다. 이전에는 억압에 의해 속박받고 조정받던 감정의 세계가 이제는 역할 수
행이라는 새로운 형태(자아를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 게다가 감정의 세계는, 특히
감정의 어두운 측면은 흥미있는 학문적인 대상이 되었다. 바로 정신분석이 이러한 학문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부정은 더 이상 검열의 감시를 지나 의식 안으로 숨어드는 억압된 감정을("형부와 결혼
이라고요? 말도 안 돼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설사 그런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그는 나한
테 관심도 없는걸요. 난 그가 좋아하는 유형이 아니에요. 요즘 의사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
그건 짐작일 뿐이지 학문이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다시 복구하고, 안전하게 하는 기능만을 담당하는 게
아니다. 부정은 역할 수행, 소비사회가 개인과 대립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한 예가 중독증에서도 나
타난다. 거의 모든 중독자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기의 중독 사실을 부정한다.
베아테는 자기의 남자 친구를 위해 스웨터를 짰다. 비록 그가 이런 식으로 올가미를 씌우는 여자들에 대
해 단호히 부정적으로 말한 것을 기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정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망과 거부 사이의 방황을 가능케 한다. "처음엔 내가
원했고, 그(녀)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가 원하고, 나는 아니다." 관계가 진행 중에 파트너가 경계
선을 긋고, 장애물에 둘러싸이거나, 스스로 장애물을 만드는 동안에는 그에게서 갈구되는 측면은 인식되는
반면, 기대되지 않는 측면은 부정된다. 누군가 '가끔은' 멋지고, 감성적이며, 흥미를 유발하고, 성적으로 매
력적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정은 갈망의 토대고, 갈망은 간격을 유
지하게 한다. 그러한 갈망의 대상은 자기가 일상생활의 모습을 드러낼 때, 자기의 매력을 일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건 참을 수 없어"라고 외치며 그는 도망간다. 가까워지는 곳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된 부정들은
당사자의 유약함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도 산업사회의 부정들이 논의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완성을 향한
도정에서 어떤 유약함도, 어떤 두려움도, 어떤 슬픔도, 어떤 포기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이 자동차 생산,
혹은 화장술, 혹은 안락한 주거 환경, 혹은 의학 분야에서건 상관없이 말이다. 늘 서로 갈망의 대상이 되는
남자와 여자들은 단거리 주자와 같다. 그들은 달리는 동안에만, 즉 최고의 능률을 발휘할 때에만 눈에 보이
고, 그 다음에는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관중들은 자기들도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는 그 선수들처럼 그
렇게 빨리 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약함의 부정은 결국 모든 독신자들을 혼자서 어렵게 살아가도
록 만든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고백한다.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는 이미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부정의 압
박에 복종적이기 때문에, 그의 현존은 무리한 요구이며,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
에 하룻저녁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곤란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격을 유지하는 데 도가
트인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남자나 여자들은 자기의 고유한 느낌을 부정한다(이때 다만 그들의 바람은 거부
되지 않으면서 충족되지도 않은 채 유지된다). 그와 반대로, 겉보기에 강한, 갈망의 대상들은 자기의 민감성
그리고 의존과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을 부정한다. "혼자 있을 때 강한 자가 가장 강한 자다." 자유투쟁가
빌헬름 텔은 쉴러의 작품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혼자 있을 때라면, 강인함의 허구를 늘 유지할 수 있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스탁사노프(구소련의 노동자 알렉세이 스탁사노프. 스탁사노프 운동이라는 증산 운동
을 주창함)라는 한 노동자는 수많은 개인의 사적 영역에서도 자신의 초당위성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
당시 부모로부터 좌절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어머니, 이상적인 아버지를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완전무결성이라는 허구는 간격을 필요로 했고, 그 간격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다. "나
는 약점이 있어요." 이 말은 우리가 감정적 관계의 측정할 수 없는 내용에 관해 말할 때 하는 말이다. 오늘
날 남자와 여자들은 서로에 대해 단지 강인함만을 가지며, 또 강인함만을 요구하면서 불행을 느낀다. 안전
을 위한 서로의 간격은 작은 불행들의 연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협적인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
다. "우리는 감정을 자유롭게 놔두는 걸 다시 배워야 하고, 그것을 약점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자
명하고도 진부한 외침은 그러나 별로 실효성이 없다. 과연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엄청난 힘과 파괴력으
로 번지고 있는 역할 수행의 원칙을, 그것도 이미 우리의 사적 영역까지 잠식하는 그러한 원칙을 정말로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흔히 발견되는, 유약함에의 강요, 감정의 자유에 대한 성
과적 압박이란 것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부정의 능력은 너무 과도하게 요구되
는 경우가 많다. 나는 환자들이 자기의 질병보다는 의사의 진단에 더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관찰해 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안다. 우리의 감정처리 능력은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던 시대의 갊에 비유될 수 있
다. 그 시대에는 먼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오늘날 기술적으로 진보한 수단들이, 치료 불가능한
질병을 심각해지기 훨씬 이전에 알아낼 수 있게 함으로써 환자에게 부정의 작업이라는 엄청난 짐을 부과한
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가
그 진단을 말해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부정이라는 짐을 의사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 사적 영역에서
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파트너는 강력한 부정의 메커니즘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정
보들과 의문들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질투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결국 관계 내에서 자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생활로 괴로움을 참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대사회
를 살아가는 연인들을 위해 적합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생활의 규범은 실제 사적 감
정을 부정하도록 강요한다. 능률 지향적인 규범이 사적 영역으로 침투함으로써 감정적인 완벽에의 요구는
커진다. '옳은 것이' 아닌, '정말로 진지한 것이' 아닌, '정말로 좋은 것이' 아닌 관계들은 장점이 있다. 바로
그런 관계들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종종 관계의 당사자들은 자기의 파트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고민하
는 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당장의 순간적인 욕구에만 집착할 수가 없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물
음 앞에서 사랑은 마치 성수 앞의 악마처럼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감정이 풍부한 삶을
계몽한다는 미명 하에 진행되는, 욕구의 식민지화는 종교 재판적인 진리의 집착에 속한다. 그런 식으로 관
계라는 이름의 상자는 과장된 말들로 넘치도록 채워지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모든 것에 관해 말해야 한다는 건 기정 사실이다.
이제 나는 파트너십에 관한 토의에서 특별히 민감한 어떤 주제, 바로 '거짓말'에 있어서의 부정 메커니즘
을 서술하면서 이 부분을 종결지으려 한다. 이전 시대에서는 사랑의 거짓말은 대개 무해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으로, 때로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장 나쁜 범죄로 지목하는 것이 바로 거짓말이다. 아이들조차도 훔치거나, 손으로 음식물을 집어먹고, 수
업을 빼먹는 것보다 더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과 감정의 부정 중 하나를 선
택하라고 한다면,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육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의 연인들 대부분은 부
정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말해야 하고, 절대 거짓말을 해선 안 되면, 또한 파트너에게 상
처를 주거나, 아니면 자기의 욕구를 포기하고, 감정을 억제하고, 이러한 억제를 부정해야 하는 것 중 택일
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과 상황에 따라 진실을 대하던 것이 이제는 일종의 통제되고 모든 것에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에 의존하게 되었다. 사람들 중에는 누구조차도 듣기 싫어하는 외도의 사실
을 들으라고 강요하는 파트너들도 있다. 이에 비해 묻는 것에 대해서만 말한다는 규정도 있다. 또 규정이
정한 바의 반대로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한 파트너가 말한다. "당신은 뭐든 해도 좋아. 하지만 다 나한테 말
을 해야 돼!" 상대방은 동의하고 나서, 자기가 터놓고 하는 말이 파트너에게 어떤 정보를 주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 대신 뭐든 서로를 분리시킬 수 있는 가능한 소지들을 재빠르게 알아내어 그
것이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없애 버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솔직함을 꾸며
내는 건물을, 다시 말해 거짓말의 집을 세우기로 한다. 그 집은 상대방이 그에게 드리운 통제의 그물망과
똑같이 광범위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결과는 양극화다. "난 당신에게 '한 번도' 거짓말한 적이 없어. 그
런데 당신은 '언제나' 거짓말만 했어." 이것과 비슷한 양극화의 표현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당신
은 '한 번도' 나랑 같이 자려고 한 적이 없어. 늘 내가 먼저 노력해야 했어." "당신은 '한 번도' 우리 관계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언제나' 내가 얘기를 시작해야 했어." 거짓말이 사람과 현실 사이를 이분화
해서 나누는 반면, 부정은 한 사람의 내부를 수직으로 가른다. 거짓말이 가끔은 감정의 편에 서서 현실 속
에 존재하는 제한적 요소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비해, 부정은 감정을 베어 버린다. 부정과 거짓
말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파트너 관계의 사람들이 두려움과 슬픔을 피해 갈 수 있도록 한다. "나도 모르겠
어. 당신을 사랑하는지. 어쨌든 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이 말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래에 지게
될 책임, 관계의 지속성, 예측 가능성 등을 미리 고려하지 않고, 자기 감정을 분명히 고백하는 것이 과연
거짓말이란 말인가? 앞에서 인용한 대로 불확실성 뒤로 숨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예방하려는 것이
다. 그는 한 달 뒤, 혹은 일년 뒤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당신은 날 사랑한다고 했어.
그런데 지금은 날 사랑하지 않아. 당신은 거짓말을 한 거야. 당신은 언제나 날 기만했어." 여기, 오늘날까지
도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돈 주앙과 카르멘이다. 그들은 둘 다 자기 방식대로, 파트너
십이 감정의 영역에 원칙을 규정함으로써 생기는 갈등을 표현한다. 돈 주앙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여자
들과의 모험을 즐기는 그런 전형적인 귀족은 아니었다. 물론 그가 아주 예외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면은
단지 그의 광적인 집착을 가리는 우아한 가면(이것은 그를, 위대한 돈 주앙 드라마가 형성된 시대의 실재
인물 마르키 드 사드와 결부시킨다. 역자주:마르키 드 사드는 프랑스의 작가로서, 그의 이름에서 가학증, 사
디즘이란 말이 생겨났다)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광적 집착은 역할 수행을 통한 감정 영역 식민지화의 초
기 형태다. 그에게는 정복당한 여자들의 엄청난 숫자가 모든 것을 위한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자
본주의가 도래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사적 영역마저 정복할 것임을 알렸다. 동시에 돈 주앙은 위험에 처
한 감정적 가치들을 위해 싸웠다. 그는 매혹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거짓말하고, 아양을 떨고, 모든 것을 자
기의 성적 욕구 아래 종속시키며, 종교적인 원칙과 귀족 계급의 체면 따위는 새로운 평민 계급 연인들이
절제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간단히 무시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중은 돈 주앙의 거짓말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놀이에 완전히 빠져든 사람과 같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돈 주앙은 자기가 그렇게도
꺼리던 '관계의 단단한 결속'을 개척한 사람이었다. 그는 끝없는 과장 속에서 저항하면서 오히려 그 반대의
힘을 강화시킨 것이었다. 결국 악마가 그를 데려갔다. 그리고 이러한 초월적인 힘의 결집은 스페인의 많은
우아한 귀족들을 제쳐 두고 담배를 파는 노동자 카르멘의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짚시 카르멘은 돈 주
앙과 마찬가지로 평민의 세계 밖에 있었다. 이미 정복한 연인들에게 쉽게 싫증을 느끼는 면에서는 돈 주앙
과 같다. 하지만 그녀는 사회의 체계를 그녀의 규범 저항이라는 성안으로 들여올 만한 사람은 아예 건드리
지도 않았다. 주변 환경이 그녀의 감정에 적대적이었던 것처럼, 그녀도 자기의 감정을 가지고 잔인하게 굴
었다. 카르멘은 자기의 자유를 옹호했고, 그것을 위해 죽음을 감수했다. 그러므로 그녀를 없애기 위해서는
질투에 빠진 군인 한 명이면 족했다. 카르멘은 위선적이며, 가식적이라고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단 지
자기의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진실에 충실했을 뿐이다. 비극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진실의 매력이
그녀의 매력을 결정짓는다. 카르멘은 감정이 얼마나 낯설고, 불확실하며, 비논리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다. 그녀는 돈 주앙처럼 병적이고, 극단적이며, 삶을 희구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무릅쓴
다. 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자기 감정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은 좌절을 겪을 수밖
에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몇 시간, 혹은 몇 일, 몇 주일간 실재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실재성은, 돈 주앙과 카르멘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걸려들 수밖에 없었던 적대적이고 차가운 이성의 세
계, 역할 수행의 세계보다도 감정의 세계에 더 부응한다. 감정을 속임으로써 치명적인 좌절에 빠지는 것을
보는 관객은 자기가 가진 부정의 메커니즘이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파트너십의 관계에서 거짓
말은 친밀감에 적대적인 이 세계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감정을 위한 공간을 얻고자 하는 절망적인 시도다
(어쩔 수 없이 개별화된 이 시도는 파트너간의 연대조차도 이룰 수 없다). 거짓말은 삶에 적대적인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짧은 시간에 완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부정보다 너무 비난해서
는 안될 것이다. 부정은 이성과 위주의 사회에서 어떤 유연제 역할도 해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는 크사버와 관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미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크사버에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고, 또 능력없는 사람으로 평가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그의 마음에 들고자 무진 애를
썼으면, 그가 별로 노력하지 않고도 자기 마음을 빼앗는 것이 종종 화가 났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그녀
는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가부장적인 생각을 한다며 화를 냈다. 그러면 그는 큰 소리로 허풍을
떨었다. 크사버는 그럴 때마다 늘 심한 모욕감을 느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다시 평
화 협정을 맺고,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가 느낀 모욕감을 부정했고, 자기
에게 배로니카의 불만을 일깨우는 슬픔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베로니카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얼
마 후. 그는 몰래 다른 여자를 사귀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몹시 질투가 강한 편이었다. 그녀는 거의 모든
사소한 일을 다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거짓말을 했지만, 별로 세련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속
임수'를 조금씩 알아채기 시작했다. 그녀가 실토하게 할 때마다 그는 매번 다음번엔 더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리라고 맹세했다. 반면에 그녀는 점점 더 그를 신용할 수 없게 되었고, 그를 더 비난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솔직하게 나오면 비난하거나 거절하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한 번도 실천된 적
이 없었다. 그녀는 두 가지를 다 원했다. 그가 자기의 여자관계들을 다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게오르크는 자기를 정말 사랑하느냐고 수잔네가 물을 때마다, 어떤 답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의기소
침해 있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그는 그녀가 어느 정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가끔은 완전히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일을 매우 많이 했고, 주중에는 거의 대화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도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져서 수잔네한테 그 사실에 관해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 관계를 정리
하곤 했다. 그리고 수잔네가 끝내야하겠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자기가 그녀에게 너무 의존적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한나는 어떤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전에 만났던 어떤 남자들보다도 훨씬 더 자기의 감정을 솔직
히 표현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감동했다. 그는 작가였는데, 한번은 상품 진열장 앞에서 그가 가명으로 출간
한 책들을 보여 줬다. 그러면서 그는 소득에 대한 추가세금징수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는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한테서는 절대 돈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한나는
더 이상 신용카드 대출을 하지 말라고 그를 설득했고, 결국 막대한 금액을 그에게 빌려 주었다. 그는 자주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는 전화든 뭐든, 어떤 것으로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요한나는 점점 더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늘 그녀의 걱정거리들을 분산시키는 대 능력이 있었다. 마침내 그녀
는 탐정 사무실을 찾아가.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그가 이미 결혼사기
전과가 있는 서적 판매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녀는 탐정 업무에 대한 비용에 대해 미리 합의하는 것을
잊어버림으로써 이 잔인한 진실에 대해 9,000마르크라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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