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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두려움

역할 수행이란 고정관념의 극복

by FraisGout 2020. 8. 24.

  유타는 자기의 남자 친구를 따라 자아발견 모임에 나왔다. 유타의 남자 친구는 결혼해서 아이를 갖고 싶
다는 유타의 소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둘 다 너무 바빠서 겨우  이 주일에 한 번 정도 긴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뭔가 즐거운 일을 계획했고, 한번은 산에 오르기로 했다. 산으로 가
는 도중에 유타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예전에 당신은 그러
지 않았어." 라고 그가 말했다. 유타는 이 모임 안에서도 예전엔 달랐다. 그녀는 자기의 직업, 해야 할 많은 
일, 뭔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 등에 대해 말하곤 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녀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었고, 동시에 이렇게 성실하고 즐거운 생활 뒤에  숨겨져 있던 자기의 감정들을 드러낼 수 있
었다. 그녀는 7년 동안 남자 친구와 함께 살았으며, 이제까지 관계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수동적이었고,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이제 그들은 둘 다  직업 교육을 끝마쳤다. 그들은 이제까지 편
안하게 살던 기숙사를 떠나야 했다. 이런 현실 앞에 이제  남자 친구가 관계를 위해 함께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유타는 그에게 자기의 바람을  단지 익숙한 방식으로만 전달할 수 있을 뿐이었
다. 그녀가 그 책임을 떠맡았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싶고, 그와 동시에 자기도 보살핌을 박고 싶다는 욕구
를 '속물적' 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힐책했다. 왜냐하면 그가 그녀의 이런 욕구의 억제
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녀의 소극적인 욕구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혼  문제에 대해 강자
인 듯이 행동했으나, 실은 약자의 편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런 모습을 솔직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하고 싶고, 뭔가를 이뤄 내고, 성취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다. '나 혼자 새집을 구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남자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라고. 그리고 또 생각했다.  '하긴 그도 나랑 결혼
하려고는 할거야. 하지만 그건 분명 나 때문일 거야.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들기 위해서. 그건 
진정한 결혼이 아니잖아!' 라고. 이런 식으로 생각을 몰아가다 보니 그녀는 너무도 슬퍼졌다. 그녀는 안락하
고도 값이 싼 옛 집을 떠올렸다. 이제 기숙사를 나가게 되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룹 내 사람들
은 그녀가 아직 남자 친구에게 그녀의 바람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았으며, 그가 그녀의 걱정거리들을 이해
할 것이라는 믿음을 실제로 갖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를 너무 힘들게 할 
것이라는 걸 알아요. 난 그를 더 많이 이해해야 해요." "난 나의 약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줄 수 있는 법
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은 역설적이다. 사람이 적극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지 나약함을 통제하고, 숨
기는 것이다. 하지만 유타의 반응은 매우  보편화된 현상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나약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기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하기 때문에 강인한 태도를 함께 습득하고, 그럼으로
써 행복해지기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상담가의 '역할 수행'은  이러한 어려움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미 통제와 적응에  익숙한 환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사회의  과도한 요구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꿈에 근거한 슬픔에 대한  두려움을 인식시키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다만 해결책일 따름이다. 그렇게 사회적인 역할에 성실하고,  성공에 집착하는 사람
들이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면, 적어도 상담가가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상담가들은 그들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말해 줘야  한다. 이 딜레마로부터 빠져 나가려는 모든 시
도는 환자들을 딜레마로 도로 돌아오게  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상담가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딜레마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상담가들은 답답할 정도로 엄격하고 
차가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들이 내 어린 시절에  생긴 모든 일이 잘못되었다고 차갑게 말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나를 이해하고, 나한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
아요. 그리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줍니다. 그게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종종, 이건 제대로 된 정신분석이 아닐지도 몰라, 그다지  심층적이거나 철저한 것 같지 않아, 라고 생각해
야 돼요. 어쩌면 내가 모든 걸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상담하시는 분  역시 너무 
간단하게 처리하는 건 아닐까요?... 지금 불쾌하신건 아니죠?"  친밀감에의 욕구가 좌절되면서도 이와 상관 
없이 계속 누적되기 때문에, 환자는 늘 양쪽 다 놓치고 싶지  않다. 다시 말해, 긴장된 역할 수행과 완전한 
이완 상태에 대한 욕구를 말이다. 그래서 환자와 상담가의 관계는 유대인 엄마와 아들에 얽힌 유명한 이야
기를 연상시킨다. 다시말해, 환자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담가가 엄격한  태도를 취하면, 
따뜻함이 결여된다. 반면 따뜻하게 대하면 엄격성이  요구된다. 유대인 엄마가 아들에게 두  개의 넥타이를 
선물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아들이 넥타이 하나만 맨 것을 보고 울면서 말했다. "넌 날 사랑하지 않는구
나. 그래, 늘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다른 넥타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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