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나 페스탈로치
페스탈로치는 1746년 1월 1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습니다. 5세때에 부친이 사
망하여 어머니와 형, 여동생과 가정부인 바베리, 이렇게 5인이 다정하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남편이 죽은 이후에 일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가정에
봉사하였습니다.
어느 날 페스탈로치는 과자를 사려고 가게로 갔습니다. 가게에는 안나라고 하는 그
보다 7세나 위인 아름답고 영리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 처녀는 페스탈로치가 올 때
마다 "너는 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항상 돈을 조금씩 모아 두었다가 책을 사서 보
면 얼마나 유익한지 모른다!"라고 타일렀습니다. 안나의 가정은 부유했지만 어머니가
너무 엄격해서 도무지 따뜻한 맛이 없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이상하였습니다. 허리는 굽고 얼굴은 못생겨 인상
이 나빴으며, 학교 성적도 안 좋고 언제나 혼자서 얼굴을 찡그린 채 사색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과는 거의 놀지 않는 원기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의 그
의 이름은 하인리히였는데 "바보 하리"라고 놀림을 받았습니다. 커다란 구두를 신은
페스탈로치를 장난꾸러기 친구들은 끈을 가지고 구두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고는 좋아
라하며 웃어 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바베리의 사랑을 받고 순수하고 착하
게 자라났습니다.
취리히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그의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9살 때 여름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집으로 놀러 갔습니다. 목사인 할아버지는 인자하고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을 페스탈로치와 함께 가서 매일 돌보았습니다. 그는 누더기 옷
을 입고 음식도 잘 못먹는 불쌍한 아이들을 보고 자기는 아무 부족함이 없이 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을 생각하고는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달았습니다.
이 때 그가 생각한 것은 "나도 커서 이런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야지"하는 것
이었습니다. 어리지만 그는 확실한 빈민구제와 이런 사람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사회사
업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학업에 열중하였습니다. 특히 희랍어를 잘해서 선
생님을 도왔습니다. 대학시절에는 특별히 친한 친구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가스빠루인데 하루는 가스빠루의 누나인 안나를 만났습니다. 교제하
는 동안에 알게 된 것은 그 여자가 어릴 때 가게에 갔다가 저금한 돈으로 책을 사서
보라고 일러주던 아름다운 소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이미 안나는 아름다운 기품이 넘치는 총명한 처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
의 집은 사업상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적인 예의를 배우게 되었
고, 스위스 국내외를 여행해서 견문도 넓히고 불란서 말도 잘하고 시도 쓰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문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며 상점 일도 보고, 부
엌에서 요리도 하고, 가정 살림살이 및 세탁, 재봉 등의 가정교육도 잘 배웠습니다.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엄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용모가 보기 싫고 풍채도 좋지 못한 페스탈로치에 대해서 안나는 그의 내면에 숨어
있는 고귀한 것을 발견하고 존경하였습니다. 깨끗하고 고상한 품성과 자기 일에 대한
정열과 위대한 정신에 깊은 애정을 느꼈습니다. 신앙과 사회산업, 빈민구제면에서 두
사람의 마음은 일치하였습니다. 그 후 2년 동안에 약 500여 통의 아름다운 편지가 왕
래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나의 부모는 나이도 훨씬 어리고 인상도 안 좋고 못난 페스탈로치와의 교
제를 반대하였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너는 그 사람과 결혼하면 물과 빵만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라고 비난하였습니다.
냉정한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정신적으로 어머
니와 고전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에 마침내 어머님도 감동해서 그들의 결
혼을 허락하였습니다.
1769년 8월 30일, 드디어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페스탈로치는 23세, 안나
는 30세였습니다. 그의 희망은 농토를 사서 대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신선하고 깨
끗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안나의 어머니도 이들의 사업을 이해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이들은 밤낮 농사에 정력을 쏟았습니다. 함께 날마다 기도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슬
퍼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노력에 노력을 다해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그 위에다 재정적인 곤란까지 심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마침내 농원을 그만 두고 빈곤한 아이들을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용을 다 들여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대단히 좋아하였습니다. 안나도
같이 가사 일체를 정리하고 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바짝 마른 거지같은 아
이들, 병든 아이들, 도저히 손댈 수 없는 나쁜 아이들이 계속 모여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 불쌍한 고아들을 보며 울었습니다. 이 불쌍한 아이들을 꼭 행복하게
해주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청명한 날이나 무더운 여름철에는 이들과 같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비오는 날 추운
날은 방에서 글을 가르치고 물레질을 하였습니다. 안나는 불우한 아이들의 비뚤어진
성격을 고치려고 애쓰며, 모든 일에 항상 맑고 바르고 깨끗하고 깊게 보는 눈을 길러
주기 위해서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곳은 어린이들의 지상낙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현저하게 얼굴이 좋아졌으며 밝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상실현에는 많은 고난이 가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안나의 옷가지가
하나 둘씩 아이들을 위한 식량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어떤 때는 침착해졌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나쁜 길로 걸어가고 있었고 도망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나
는 "하나님을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도와 주십니다. 우리들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라고 페스탈로치를 격려하였습니다. 이같은 괴로움의 절정에서도 안나의 격려
와 고취로써 페스탈로치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어 계속 노력할 수가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겨울은 추웠습니다. "석탄이 없습니까?""한 개도 없습니다." 추운 집에서
그대로 몇 날이고 떨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쓰라린 경험 가운데서도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전력을 다해서 남편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애쓰는
안나의 성스러운 모습!
그러나 사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봐라,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할 수 없는 일을 왜 시작했지?"하며 비난하였습니다.
이제 페스탈로치는 완전히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한 가족이 살아 갈 수 있
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같은 가난과의 고투 가운데서 페스탈로치는 유명한 저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라인 하루도와 개루도 루도""행인의 처""음자의 석양"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들 속에
는 아동의 교육에 관한 마음과 이상이 씌여 있습니다. 오늘에 와서도 교육적으로 없어
서는 안 될 불후의 대 저서입니다. 그 때는 글을 쓸 종이도 없어서 옛날에 쓰던 노트
의 빈 곳과 편지의 뒷면에다 썼습니다. "행인의 아내"의 내용은 동네 사람들이 술을
먹는 것을 그만 두고 학교를 세워 아동들을 교육했기 때문에 훌륭한 동네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마치 날개 돋친 듯이 다 팔렸습니다. 이때부터 세상 사
람들이 그의 교육을 점점 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이 체험 속에서 우러나온 진실의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자신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지 지식의 부분에서 따올 수는 없는 것
입니다.
1798년 스위스군과 불란서군이 슈탄쯔에서 전쟁을 했습니다. 슈탄쯔의 집들은 다 불
타고 많은 사람들이 전사나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때 고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 때 페스탈로치 부부는 그 고아들을 다 모아서 열심히 고아교육에 힘 썼습니다. 그
동안 전쟁이 끝났으므로 그는 국민학교를 세웠습니다. 그의 이름은 구라파 여러 나라
에서 유명해졌으며, 스위스는 물론 독일, 불란서, 이탈리아, 스웨덴, 러시아, 미국 등
그의 교육을 견학하러 왔습니다.
이 시기에 학교는 선생이 회초리를 들고 무서운 얼굴로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있었습
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맞아야 했습니다.
그의 교육은 학문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생과 생도가 함께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면서 놀고 노래를 부르고 구름이 떠오르는 장관을 보고, 꽃을 따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성경이야기, 역사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같은 그런 나날을 함께
즐기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안나는 이 때부터 몸이 약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몸의 건강이 허락하는 대
로 남편을 돕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보고 "인자
한 페스탈로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항상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
다.
힘이 있는 대로 선생님들과 아동들을 초대해서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써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1815년 12월 11일, 만인의 어머니인 안나부인은 75세로 그의 갸륵하고 깨끗하고 아
름다운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강한 신념과 승리의 표현이었습니다.
페스탈로치의 이면에도 그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볼 수 있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페
스탈로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남의 행복만을 위해서 산 한
여인의 삶입니다. 남편과 온전히 뜻을 같이 해서 평생을 가난과 고난과 남의 비판 가
운데서도 끝까지, 그의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으로 일관했습니다. 고아들을 위해서 바
친 이 아름다운 생애를 우리도 본받아서 우리 주위에 있는 무수한 어린 생명들, 가난
과 학대와 사랑의 기근이 들린 어린이들을 위해서 살아봅시다. 사랑은 승리합니다. 사
랑은 영원합니다. 지식도 폐하고....... 다 지나가도 사랑만은 영원합니다.
2. 엘리노어 루즈벨트
남편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든 가장 모범적인 내조자이자, 훌륭한 어머니이며, 이
름난 사회봉사자이고, 인권선언문 통과 등, 유엔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세계 여성들의
횃불처럼 군림했던 엘레노어 루즈벨트.
한 평생을 이와 같이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훌륭하게 살았던 루즈벨트 여사의 이야
기는 진실로 감명 깊은 것입니다. 엘리노어는 불구의 남편을 대통령까지 되게 하고,
훌륭한 정치를 하게 하는 데 있어서 남편의 손발이나 음성이 되어 주었고, 때로는 그
의 머리나 양심의 역할까지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서 사교계에서, 정치계에서, 동분서주하면서 활약했고, 빈민구
제, 상이군인 돌보기, 자선단체나 여성단체를 후원했고, 노동문제, 복지문제, 농어촌
문제, 경제문제 등을 연구해서 남편에게 보고했습니다. 전국에서 혹은 세계 여러 나라
에서 오는 수많은 손님들을 날마다 맞이하고 대접하는 일, 그녀의 도움을 호소하는 산
더미같은 편지들도 일일이 점검하고 회답하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였
고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고상하고 청렴하고 상냥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음은 엘리노어의 아내인 훌륭한 점들만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1920년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민주당 후보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하
여, 때를 기다리면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이 때 루즈벨트는 38세이고, 엘
리노어도 아직 젊었던 것입니다.
이 부부는 캄포베르의 조용한 피서지에서 아들 넷과 안나를 데리고 모든 것을 잊고
즐거운 여름을 보내는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평화스러운 캄포베르의 집에
돌연 폭풍우같은 급격한 비극이 물결이 덮쳐 왔습니다. 호수에서 멱을 감고, 오한이
나서 자리에 누운 루즈벨트의 가벼운 감기가 알고보니 소아마비였습니다. 급속도로 몸
의 경직이 왔습니다. 여러모로 손을 써봤으나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전신마비는 모
면했으나, 그는 생애의 불구자로 선고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덮쳐서 결혼 당초부터 새부부에게 잔소리를 늘어 놓던 시어머니의 잔
소리는 더해서, 엘리노어를 무척 괴롭혔습니다. 시어머니는 프랭클린을 루즈벨트가에
서 대대로 물려 내려온 하이드 파크의 저택에 들어 앉히어 일체의 공직 생활에서 손떼
게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평안하고 즐거운 생활만 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루즈벨트 여
사가 장차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 보여준 저 굳센 개성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역경 속에서였습니다.
엘리노어는 먼저 무엇보다도 남편을 사랑하고 이해했으며, 격려하는 일을 잊지 않았
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불구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병자로서의 생활을 보내
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그에게 주어진 천직인 정치의 길을 걸어 나가려는 남
편을 이해하고 돕는 데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엘리노어는 얌전했고, 수줍어 하기를 잘하고 남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얼굴을 붉히
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어엿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
어머니, 몸이 부자유하다고 해서 마음의 자유까지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프랭클린에
게 필요한 것은 독립심과 불굴의 의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그녀는 월급도 많이 주는 신문기자의 일을 팽개치고, 병상의 친구와 더불
어 밤낮으로 뜻을 나누는 루이스 하우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남편을 돕는 일에 나섰습
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 때문에 가졌던 열등감도 극복하고, 남편이 쓴 초고를 손
에 들고 여러 강연회에 나가, 남편의 대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꼭 3년 동안, 남편과 세상과의 사이에 다리 노릇을 하는 것으로 장차 자기가 걸어 갈
길도 발견했습니다.
얌전하고 부끄럼을 잘 타는 그녀는 마음이 내키든 내키지 않든 남편의 역을 해야 하
는 수많은 공식석상을 거쳐, 부끄럼이나 열등감 때문에 더욱 구변이 없어지던 말솜씨
도 극복해 갔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복잡한 병자의 심리를 끊임없이 살펴보고, 괴로운 남편
과 더불어 괴로워 함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불굴
의 사람, 유용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바퀴의자를 버리고 두 대의 소나무 지팡이
에 기대어 몸을 이끄는 연습을 하게 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보고만 있을 뿐 돕지 않
았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아파해도, 지팡이를 헛짚어 넘어지더라도 '독립시키지 않으
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마음 속에서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으로 하여금 차가
다니지 못하는 대회장의 계단을 어떻게든지 걸어 다니도록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엘리노어는 종래 남편을 미국의 대통령으로, 아니 세계적인 위대한 정
치가로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서 불구자인 남편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흥미를 가지는 일에는 그것이 정치이건, 책이건 또는 특별한 요리이
건 간에 무엇이나 흥미를 가져야 한다고 고백한 일이 있었습니다. 엘리노어는 아침마
다 아침인사를 하러 대통령의 방에 들어가서 대통령이 기분을 살피고, 대통령의 그의
계획에 대해서 부인의 의견을 물으면 그녀는 기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국내
에 일어나는 모든 것, 여행 때의 보고 들은 것을 세밀하게 남편에게 보고하는 습관도
가졌습니다.
엘리노어 앞으로 오는 우편물은 산더미 같았다고 합니다. 대개 비서들이 분류하고
처리했지만 그래도 그녀 자신이 특별한 개인적인 편지를 전부 읽고, 꼭 자신이 답을
써야 할 곳에는 친필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오는 손님
접대와, 자선단체를 도우는 일들을 모두 남편인 대통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 많은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엘리노어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남태평양 제도를 여행한 것은 그곳에
서 싸우고 또는 아파서 누워 있는 병사들을 위문하고 위해서였습니다. 그녀는 거의 병
원에서 생활하면서 침대에서 침대로 찾아 다니면서 상냥한 말로 위로하고 격려했습니
다. 뉴욕에 돌아 왔을 때는 체중이 30킬로나 줄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일이 항상
남편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것과 남편을 괴롭게 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나누어 가진
다는 기분에서 그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녀는 대통령과 사별한 후에도 남편이 못다 한 일들을 위해서 미국내 뿐 아니라,
국제무대에 세계 평화와 인권옹호를 위해서 계속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1962년 11월 7일 밤, 프랭클린-데라노 루즈벨트 여사는 두 달 반동안의 와병 끝에
빈혈과 폐충혈로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루즈벨트 여사가 그토록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그 비밀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남편을 극진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은 능력을 낳고, 그리
고 기적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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