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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어른동화

핏줄

by FraisGout 2020. 6. 21.

 어느 가난한 마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남자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자 자신은 본래 다른 곳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황새가 자신을 
물고 가다가 실수로 이런 집에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큰 꿈을 
품고  집을  나와 도회지로 나왔습니다. 남자는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면서 
열심히, 아주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이십년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남자는 큰 부자가 되어 모든 사람이 머리를 
숙여  인사할  만큼 당당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곁에 있는 아름다운 
아내는 자신처럼 재산이 많은 훌륭한 가문의 딸이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은 아라비아 상인에게 샀다고 하며 진기한 거울을 보여 주었
습니다.  상인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을 등에 짊어지고 있다
는 것이었습니다. 백인의 신은 하얗고 흑인의 신은 검은 색이며, 그 사람이 
태어난  땅과 혈통을 나타내며 사람에 따라 얼굴도 모습도 다르다고 했습니
다.
 거울을 아내엑 비춰보니 젊은 아내의 뒤에는 그녀 어머니나이 정도의 온화
하고 현명하게 생긴 귀부인 풍의 신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신을 거울에 비춰 보았습니다. 자신의 뒤에는 형편없는 몰
골의  가난에  찌든 중년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평소 아내에게 자신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
났다고 말했기 때문에 아내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신을 보자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 얼굴은 거의 생
각나지  않았지만 왠지 중년신과 같은 얼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아버님과 여동생을 버려둘 수는 없지 않아요."
 고향에는 늙은 아버지와 한창 나이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아내를 상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남자는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십년만에 고향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
다.
 길을 가면서 남자는 가난한 고향 마을의 모습을 아내에게 얘기해 주었습니
다.  아내를  너무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 도착해 돌만 남은 황량한 땅에 거의 쓰러져가는 고향집을 보
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길가에는 예전의 앉은뱅이가 지금도 있었습니다. 남자가 말을 걸자 앉은뱅
이는 까마귀가 우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석수쟁이  프리츠 말이지. 석수 일은 벌써 옛날에 그만두고 지금은 술을 
마시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 딸 안나와 함께 여관을 하고 있네만, 그런 집
에  머무는 손님은 거의 없지. 아들 카알은 당분간 세상구경하기 힘들거야. 
안나는 그 애가 낳은 개구자이 자식과 같이 집에 있지. 임신을 시킨게 자기 
아버지인지 카알인지 알 수는 없지만 둘 중 하나가 틀림없어."
 앉은뱅이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졌습니다. 사람 죽이
는  것  말고는 무슨 짓이든 하는 카알이라는 형이 있다는 것은 아내에게도 
숨기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습니
다.
  그날  밤, 남자는 아내와 하인을 마을의 좀 나은 여관에 묵게 하고, 자기 
혼자서  아버지와 여동생이 있는 점을 찾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내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저물자 마을은 죽음의 세계처럼 아두워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도깨비 
불같은 등불이 새어나오는 집이 바로 남자가 태어난 집이었습니다. 집 안에
서는 어린애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계십니까?"
 문을 두드리자 여자가 나와 수상하다는 듯이 남자를 훑어보았습니다. 남자
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나지 않아서, 길을 잃어 곤경
에  빠진 나그네라고 말하고 하룻밤 묵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자
는 그제야 애교 띤 얼굴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추악한 얼굴이 한층 더 기분 
나쁘게  일그러져 속이 메스꺼울 정도였습니다. 안쪽에는 짐승같은 것이 어
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 같았습니다.
  남자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눈을 돌리고 허둥지둥 지갑을 열어 아
기와  노인에게 주라며 몇 장의 지폐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꺼내 머
리를  다듬는  척 하면서 아버지와 여동생 뒤에 있는 신을 비쳐보았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신과는 틀리다는 것을 확인해서 위안을 받고 싶었습니다. 거
울 안에는 원숭이도 사람도 아닌 흉칙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남자는 고향집
의 벽도 부서질 정도로 고함을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변변치 못한 식사를 끝내고 이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지만, 남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아래층으꾿서 짐승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 틈새로 들여다 보니 아버지와 여동새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돈'이라든가 '거울'이라는 말들이 들렸
습니다. 그러는 아버지의 손에 빛나는 물건이 보였습니다. 정육점에서 쓰는 
칼이었습니다.
  남자가 자는 척을 하고 있자 잠시 후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
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여동생이었습니다. 칼은 들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
니다. 남자가 일어나려 하자 여동생은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앞가슴을 풀
어헤치고, 게다가 치마 밑에 있는 것을 드러내 보이면서 남자에게 안기려고 
했습니다.
  남자는  추악함과 고약한 냄새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여동생을 밀어내고 도망치려 하자 아버지가 칼을 머리 위로 번쩍 치
켜들고 달려들었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남자는 두
사람이  당황하는 틈을 타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습
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는 훌륭한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
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떠난 후, 그대로 있으면 남편이 위험할지도 모
른다고 생각해서 다소 연고가 있는 그 지방의 유력자에게 부탁해 경찰의 손
을 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이 분의 도움이 컸지요."
 아내는 자신의 뒤에 신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다 해도 저런 거울로 자신의 신을 보는 게 아니었어."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태어난   고향이니   육친이니  뭐니하여  눈이  뒤집혀  찾아오는  게 
아니었어......"
 두사람이 집으로 돌아온지 며칠 후, 재판소에서 아버지와 여동생이 고수형
에 처해졌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예전에도 같은 수법으로 여러번 나쁜 짓을 
한 것이 탄로가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은 그날 밤 습격
한 살마이 이십년만에 돌아온 자식이고, 오빠인 것을 알았다고 자백한 것이
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남자는 핏줄과 고향의 일을 잊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 교훈 - 그대의 뿌리를 찾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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