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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으로 들어간 황소 농사꾼 김씨 집에 사는 황소 한 마리가 우연히 주인 김씨와 막내딸 순이가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아빠, 나 중학교 보내 주세요." "또 그 소리." "보내 주세요. 아빠. 나보다 공부 못하는 옆집 숙이도 간단 말이에요, " "넌 내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겠니? 나도 널 중학교에 보내고 싶다. 나라고 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겠니? 그렇지만 우리 형편이 그렇지 않다. 네 위로 오빠 둘 공부시키는 것만 해도 정말 힘들다. 우리 집에 너마저 학교 보낼 돈은 없어." "그럼 이대로 국민학교 졸업하고 말란 말이에요?" "그럼 이대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말란 말이에요?" "어떡하니?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다. 널 중학교에 못 보내는 이 애비 마음도 정말 아프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2020. 5. 15.
목기러기를 날려보낸 목공 나무 다루는 솜씨가 너무나 뛰어난 사람들은 그를 목공의 귀재라고 불렀다. 길가에 버려진 나무토막 하나라도 그 청년의 손에 건네 지기만 하면 때깔 나고 쓸모 있는 것이 되었다. 특히 그는 어릴 때부터 새를 잘 만들었다. 새 중에서도 기러기를 가장 잘 만들었다. 초례상에 그가 만든 목기러기를 놓고 혼례식을 올리면 누구나 복을 받고 잘 산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는 장가를 갈 때는 자기가 만든 목기러기를 안고 신부집으로 가서 전안례을 올리고 혼례를 치르었다. 그리고 첫날밤에는 신부에게 사랑의 징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목기러기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목기러기를 하늘로 날려 보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 예전에 어는 유명한 목공이 나무로 새를 깎아 하늘로 날려보내자, 그 새가 사흘이 .. 2020. 5. 15.
딸의 어머니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서울로 보냈다. 딸이 서울로 가서 남의집살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선뜻 허락하는 말을 했다. 딸이 보내 주는 돈으로 논밭이라도 몇 마지기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딸은 아름답고 영리했다. 처음에는 이 집 저 집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일을 했으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남들이 천대하는 궂은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녀는 젊음과 미모로 돈 많은 남자들을 끌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이 남자 저 남자한테로 옮겨 다녔다. 옮겨 다니면 옮겨 다닐수록 그녀에게는 돈과 쾌락이 주어졌다. 사고 싶었던 옷과 보석과, 타고 싶었던 고급 .. 2020. 5. 15.
댓잎 뱀장어의 삶 그는 어릴 때부터 남을 탓하기를 좋아했다. 잘 되는 일은 자기 탓이고 못 되는 일은 조상 탓이라더니 그는 무슨 일이든 잘못 되는 일이 있으면 꼭 다른 데에다 그 원인을 돌렸다. 처음 대한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때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흔한 과외 한번 제대로 못해 봤기 때문에 재수생이 되었다고 가난한 부모를 원망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에도 가난이 원수라고 생각했다. 시골 농투성이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여자가 자기를 떠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중소기업에 취직했을 때에도, 맞벌이할 수 있는 아내를 얻지 못했을 때에도,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되었을 때에도, 아이들이 지지리도 공부를 못할 때에도, 친구의 빚 보증을 섰다가 결국 아파트까지 날려 버.. 2020. 5. 15.
사과 세 개의 축복 눈이 내린 날 저녁이었다. 발목까지 푹 빠질 정도로 내린 함박눈에 어둠조차 환히 밝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녀는 퇴근길에 집에서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고 평소 단골로 다니던 한 과일 가게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되었으나 아이들에게 뭐 하나 제대로 사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서 오세요." 늙스그레한 주인 남자가 그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는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사과 3천 원어치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아예 한 상자 들여놓으시지요. 상자로 먹으면 2천 원 정도 싸게 먹힙니다." 그녀는 망설였다. 무작정 사과 한 상자를 들여놓았다가 가난한 가계에 혹시 금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20 대 청년 한 사람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2020. 5. 15.
배추흰나비의 기쁨 산기슭 배추밭에 배추 애벌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30 밀리미터 정도 되는 몸길이에 녹색의 피부를 지닌, 잔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 그는 매일같이 배추 잎을 갉아먹는 것이 일이었다. 한없이 먹을 것도 많고 초봄의 햇살도 눈부셔서 사실 그는 요즘 부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밤마다 배추잎 위로 기어올라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빛마저도 눈이 부셔 행복했다. 그런데 그에게도 고민이 하나 생겼다.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배추밭을 찾아보는 경애 할머니가 배추밭에 와서 화를 벌컥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고, 이놈의 벌레들 때문에 배추 농사 망치겠네. 껍데기만 남기고 다 갉아 치우니, 아이고, 이걸 어떡하나? 벌레 먹은 배추잎 같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제 알겠네." 그는 경애 할머니가 왜 그렇게 화를 .. 2020.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