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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동서고전

육조단경

by Frais Feeling 2020. 4. 27.

(육조단경)
        저자:혜능 (638--713)

  (육조단경)은 중국 남방 선종의 창시자인 제6대 혜능의 문인들이 그의 말씀과 행적을 엮은 것으로, 중국인의 저술로 유일하게 불경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이 책에는  모든 존재에는 다 부처님이 될 바탕 이 있다는  일체중생 개유불성 의 도리와  명심견성   견성성불  등의
이치,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깨달을 수 있다 는 선불교의 생활화를 주장하여, 좌선을 중시하는 인도식 선불교와는 상당히 다른
중국불교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일자무식에서 성인으로
  중국 선종의 6대 조사이자 동아시아 선불교의 대표적 계통으로 발전한 남종선의 창시자인 혜능은 당나라 때 중국의 광동성에서 태어났다.
혜능은 그의 법명이고, 성은 노씨였다.
  그가 태어나자 상서로운 빛이 방안을 비추고, 방안이 향기로 가득 찼다. 새벽에 신비한 두 스님이 대사의 아버지를 찾아와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낳은 아이의 이름을 혜능이라 하시오 라고 했다.  혜자와 능자는 무슨 뜻입니까? 라고 부친이 묻자   혜 는 중생에게 베푼다는
뜻이요,  능 자는 부처님의 일을 감당할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라고 말한 뒤 그들은 사라졌다 한다.

    홍인의 제자
  (육조단경)에 의하면 혜능은 젊었을 때 가난하고 무식하여 장작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24세 때 어느 날 장작을 지고 시장에
나갔다가, 한 객승이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불교에 귀의할 뜻을 굳혔다.
  그는 당시 중국불교의 중심지였던 중국 북부로 가서 선종의 5대 조사로서 명망이 높은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다. 처음에 홍인이  너는
어디서 왔느냐 라고 묻자 혜능이  영남에서 왔다 고 대답했다. 이에 홍인이  영남 사람은 불성이 없다 고 하자 혜능은  사람은 남북의
구분이 있지만, 불성에 무슨 구분이 있느냐 고 대답하자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고 행자 노릇을 하게 했다고 한다.

    신수와 동문수학
  홍인의 문하에 들어온 지 8개월 가량 지났을 때 홍인은 자신의 법맥을 이을 제자를 물색하기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했다. 그간
가장 촉망을 받았고, 후에 북종선의 창시자가 된 신수는 다음과 같이 지었다.
   몸음 보리수요 / 마음은 밝은 거울 /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 때묻지 않게 하라. 
  그러나 이를 본 홍인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했으나, 문안에 들어오지 못해 자성을 보지 못했다. 다시 지어오라 고 명했다. 그러나
신수는 며칠이 지났으나 짓지 못했다.
  이때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면서 이 게송을 외우는 것을 들은 혜능은 이 게송이 견성하지도 못했고 큰 뜻을 알지도 못했음을 알았다.
8달 동안 방아만 찧던 혜능은 동자의 안내를 받아 조사당 앞으로 가서 홍인이 볼 수 있도록 글을 쓸 줄 아는 이의 도움을 얻어 복도에
자신의 게송을 붙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 밝은 거울은 또한 받침대 없네 /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니 / 어느 곳에 먼지나 티끌은 끼겠는가? 

    홍인의 법통전수
  이를 본 홍인은 곧 큰 뜻을 알았으나, 다른 사람들이 이를 시기하여 해칠 것을 염려하여 대중에게는 이를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리고
홍인은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었다. 혜능이 한번 듣고 문득 깨쳐서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다. 이내 홍인은 단박에 깨치는 법과 의발(스승으로부터 전해받는 옷과 나무그릇)을 전달하시며 말했다.
   네가 육조대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서 신표를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혜능아, 예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낱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 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떠나라.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고 하지 마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 

    16년 은거 후 설법
  이에 혜능은 가사와 법을 받아 남쪽으로 떠났다. 광동성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16년 동안 사냥꾼의 무리들 속에 숨어서 생활하던 어느 날,
이제는 마땅히 설법을 할 때라는 생각으로 산에서 나와 법성사에 온다.
  법성사에는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그때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한 중이  바람이 움직인다 고 말하자
다른 중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여 논쟁이 계속되자, 혜능이 나서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라고 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홍인의 뒤를 이은 6대조사임을 밝히고 공식적인 활동에
나서 37년간 널리 가르침을 폈다.

      선종과 혜능 대사
    선종의 근본 사상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한 이래 그의 제자들 사이에는 성불하는 과정에 있어 방법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석가모니가 남긴 말씀이 담긴
경전연구를 통한 독도를 추구하는 교종과, 참선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종으로 분파된다.
  이중 선종은 자신의 내적 성찰에 의해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중시하여  선불교 라고도 한다. 이러한 선종의
근본사상은 진리는 경전의 문자보다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교외별전, 이심전심 과 마음에 갑자기 와닫는 체험을 통해 자기
마음의 본성을 깨달음으로써 성불한다는  직지인심 견성성불 에 담겨 있다.
  이러한 선사상의 배후에는 언어와 문자를 초월하여 직관적 지혜와 무위자연을 강조하는 중국의 노장사상과 인도의 공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선종에서는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부처의 마음을 중생의 마음에 전하고 수행법으로 좌선을 택한다. 그런데 선종은 좌선을
중시하긴 하나 그것만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깨달음의 종교로서 일상생활에서도 선을 실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집단 노동을 중시하고
속어를 구사하는 일상적인 문답으로 종지를 선양했다. 이처럼 인도의 전통적인 좌선이나 수행보다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깨달음을 중시하는
현상은 중국 선불교의 특징으로 간주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수많은 선사들의 깨달음의 설법과 선문답을 담은 어록을 발간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경전보다 오히려 중시했다.

    선종의 계보
  이러한 선종은 인도승려 보리달마대사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졌다. 선종의 제1조는 부처님의 후계자인 마하가섭이고, 제2조는 아난존자,
제3조는 상나화수존자, 제12조는 (대승기신론)의 저자 마명대사, 제14조는 (중론)의 저자 용수, 제28조가 달마대사로 중국선종의 제1조가
된다.
  이후 제2조 혜가, 제3조 승찬, 제4조는 도시, 제5조는 홍인, 제6조는 혜능으로 이어지는데, 제5조인 홍인까지는 단일계통으로 전해졌으나,
홍인 제자들인 혜능과 신수에 오면서 혜능은 홍인의 정통을 이어받아 강남으로 가서 남종선을 열었고, 신수는 장안과 낙양에서 북종선을
열었다. 이것을  남능북수 라 한다.
  이후 북종선은 쇠퇴하고 혜능의 제자들이 융성하여 청원과 남악의 두 계통이 출현한다. 청원의 후계로
조동종운문종법안종남악의 후계로 임제종과 위앙종의 여러 종파가 출현한다. 당나라에서 송나라에 걸친 5가가 다시
임제종으로부터 황룡 양기의 2파로 나누어져, 선종은 5가 7종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중국 불교의 주류를 차지한다.

    선불교의 생활화
  중국 선종의 6대조인 혜능은 기존의 선종 수행방식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보리달마대사가 중국의 소림사 동굴에서 9년간 벽만 보고
수도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의 수행은 한 곳에 자리잡고 조용히 마음을 보는 좌선중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지 않은 수도승 중심으로 전래되어왔다. 이에 반해 혜능은 견성을 종지로 삼아 생활선동태선창조선을
주창했다.
  이로써 선종은 민간 속으로 전파되고 선불교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가 중국 선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의 설법을 담은
(육조단경)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경 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을 말하고, 걸출한 스님들의 말씀은  어록 이라 하는
것이 보통인데, 혜능대사만은 예외로  경 으로 취급하고 있다.

      네 마음을 보거라 
  (육조단경)은 육조대사가 16년 동안 은둔생활을 지내고 대범사 강단으로 나아가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연설하는 데서 시작하여 열반에
드시는 최후 설법까지를 담고 있다. 모두 10개 부분으로 구성되 있는데, 다른 불교서적에 비해 어렵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볼
만한다. 각 부분에서 중요한 부분을 그의 육성을 통해 직접 들어보자.

    법을 깨닫고 법의를 받다
  대사의 첫번째 음성은  선지식아 모두들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다밀을 생각하라 이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과 출가, 홍인
스님과의 대면 및 홍인 스님의 후계자가 되어 법과 의발을 전수받고 은밀하게 빠져나오는 과정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의발을 탐낸 무리들의
추격과 16년간의 사냥꾼들과의 생활, 인종 법사와의 만남을 이야기한 후 다시 대중들에게 말한다.
   선지식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세간 사람이 다 본래부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미혹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할 따름이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가르침과 인도를 빌어서 견성하여야 하느니라. 마땅히 알라. 어리석은 자와 지혜 있는 사람이 불성에는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요, 다만 미혹함과 깨친 것이 다를 뿐이다. 이 까닭에 어리석음도 있고 슬기로움도 있는 것이다. 내 이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너희들로 하여금 각기 지혜를 얻게 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이렇게 말한 후 큰 지혜로 피안에 이른다는  마하반야바라밀 을 자세하게 설한다.

    공덕과 정토를 밝히다
  다음 날 한 스님이 옛날 양나라의 무제가 달마대사에게  짐이 일생 동안 절을 짓고 스님을 봉양하고 널리 보시를 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달마대사는 이에  실로 공덕이 없느니라 라고 대답한 점을 상기시키며  공덕 에 관해 묻는다. 이에 대사는  안으로
마음이 겸양하여 낮추면 이것이  공 이요, 밖으로 예를 행하면 이것이  덕 이다. 선지식아, 공덕이란 모름지기 자성 안에서 볼 것이요,
보시나 공양을 올리는 데서 구할 바가 아니다. 
  이어 서방정토에 관한 질문에  어리석은 범부들은 자성을 밝히지 못하여 자기 몸 가운데 정토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에 부처님이 
머무는 곳은 어디든지 항상 안락하다 고 말씀하셨다. 사군아, 다만 마음 바탕에 착한 마음이 가득하면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만약
착하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설사 염불하여도 서방극락에 가기 어렵느니라. 

    정혜는 일체임
  정(고요한 마음)과 혜(지혜)의 우선 순위 문제에 대해서도 대사는 이것이 둘이 아니고 한 가지임을 밝힌다.  선지식아, 정혜는 무엇과
같을까? 비유하면 마치 등불과 같으니, 등이 있으면 빛이 있고 등이 없으면 곧 어두우니 등은 빛의 본체요 빛은 등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나 체는 본래 동일하니,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그리고  돈오점수 와 관련된 생각을 말한다.  선지식아, 정교에는 본래 돈점이 없건만, 사람마다 성품이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어 더딤과
빠름이 있다. 그러나 본성을 봄에는 차별이 없으니, 여기서 돈점이라는 거짓이름이 있느니라. 

    좌선법
   선지식아, 좌선이란 무엇이냐? 이 법문 중에는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나니, 밖으로 일체 선악경계를 당하여도 신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좌이고, 안으로 자성이 원래 동함이 없음을 보는 것이 선이 되느니라. 

    참회법
   선지식아, 어떤 것이  참 이며 어떤 것이  회 일까?  참 이란 이제까지의 지은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니, 지금까지 지은 모든 억압인
어리석고 미혹하고 교만하고 속이고 질투하는 등 죄를 모두 다 참회하여 영영 다시는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회 라 함은 미래의 허물을 뉘우침이니 지금부터 이후의 짓는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하고 교만하고 속이고 질투하는 죄를 지금
미리 깨닫고, 모두 다 영영 끊고 다시는 짓지 않는 것, 이것이  회 다. 범부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다만 이전의 허물만 뉘우칠 뿐, 미래의
허물을 뉘우칠 줄 모르나니, 미래의 허물을 뉘우치지 않으므로 앞의 허물도 멸하지 아니하고 또한 뒤의 허물이 생기나니, 이미 앞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 허물이 또 생기니 어찌 참회라 할 것이냐? 

    참청한 기연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사가 답변하는 내용으로 특히 (법화경)을 3천 번 외웠다는 법달에게 말한다.  너 이제 이름을 법달이나 하나,
부지런히 외울 뿐 마음을 밝혀 법을 보지 못했구나. 공연히 외움은 소리만을 따르는 것, 마음을 밝혀야 보살이 된다. 너 나와 더불어 인연
있으니 내 이제 너 위해 말하노라. 부처님은 말 없음을 오직 믿어라. 입에서 연꽃이 피어나리라. 

    남돈과 북점
  당시에 신수가 이끄는 북종선에서는 점점 닦아 점점 깨달아가는 점수점오를 주장하고, 혜능이 이끄는 남종선에서는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깨달아 단번에 닦아 마친다는 돈오돈수를 주장했는데, 이를 남돈북점이라 한다. 이에 대해 혜능은  법은 본래 하나이건만
사람들이 남과 북을 가른다. 법에는 본래 돈점이 없건만 사람에게 영특함과 우둔함이 있으므로 돈점의 이름이 있게 된다 고 질타한다.

   당의 초청과 거절
  당의 중종이 설간을 보내 대사를 초청했으나 아프다고 사양하며, 숲 아래에서 종신하기를 원한다. 설간과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법문의 대
  대사가 신회 등 10대 제자들을 불러 이들이 훗날 법을 전할 때 강조해야 할 점과 주의해야 할 점을 이야기한다.

    유통부촉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너희 모두 잘 있거라. 나는 이제 간다. 내가 간 뒤에 세속적인 눈물을 흘리지 말고,
사람들의 조문을 받지도 말며 돈도 비단도 받지 말고 상복도 입지 말라. 그렇게 하는 것은 성스러운 법도 아니고, 나의 제자가 아니다. 내가
살아 있던 때와 같이 모두 앉아서 좌선을 하라. 너희가 오직 평화롭고 고요하고 조용히 하여,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옴도 없고 감도 없고 옳고 나쁨도 판단하지도 않고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으면 이것이 대도다. 내가 떠난 뒤에도 법을 따라
수행하면 내가 너희와 같이 있던 때와 한 가지일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있다 하더라도 너희가 가르침을 어기면 내가 여기 있어도 소용이
없다. 

      인간 성찰의 서
  (육조단경)에 담긴 혜능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불성이 있으며 사람의 본성은 원래 순수하다.
경전을 읽거나 사찰을 건립하거나 부처의 이름을 암송하는 일보다는, 오로지 자기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기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려면 마음이 고요하고 지혜로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인위적 사고와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앉아서 명상하는 등의 전통적 수법은 무익한 것이니 진정한 마음의 고요란 움직임이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 본성이
혼란되지 않은 상태이며, 도착된 사고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누구든 자기자신을 보면 어떠한 외적인 도움 없이 즉각적으로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혜능은 이처럼 즉각적인 깨달음, 곧 돈오에 대한 혁명적 선언을 하여 온갖 전통적인 불교의 개념과 경전수행법 등을 철저히
배격함으써 점진적 깨달음을 옹호하는 신수의 북종선과 그의 남종선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심연이 생겼다.
  (육조단경)의 곳곳에서 우리는 인간의 영원성과 만인의 평등성, 그리고 혜능의 지혜와 자비가 온전히 우리의 체온으로 맥박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현대의 인간상실, 역사의 방향부재, 이성의 혼미 속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광명과 생동의 평원으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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