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중과부적이라 할지라도 이대로 후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적의 군사가 열 명이라면 아군의 군사는 단 한 명.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은 수효였다. 더구나 아군 병사들은 몇 차례 접전 끝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적은 곧 다시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적의 진지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공격의 북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진퇴양난. 천 근이나 되는 바위가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전멸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먼저 공격을 감행하거나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장군은 드디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늠름한 자세로 백마를 타고 병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나를 따르라! 우리가 먼저 공격을 감행한다! 승리는 승리하려고 하는 자만의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우리가 승리한다!"
장군은 목청껏 소리를 드높여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는 병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전의마저 상실한 채 묵묵히 장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적진을 향하는 병사들의 행렬이 마침 한 불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장군은
잠시 병사들을 멈추게 하고 혼자 불당 안으로 들어가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나왔다.
그리고는 병사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보라, 내가 지금 너희들 앞에 동전 하나를 던지겠다. 동전이 앞면이 나오면 우리가
이길 것이요. 뒷면이 나오면 우리가 지고 말 것이다. 자아. 기다려라, 운명의 손길은
우리를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장군은 떨리는 손으로 동전을 높이 던졌다. 동전은 급히 땅에 떨어지면서 앞면이
나왔다. 병사들은 갑자기 사기가 충전되었다. 그들은 그 길로 적진을 향해 달려가
대승을 거두었다. 다음 날, 한 병사가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저는 이번 전투에서 운명의 손길은 그 아무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장군이 말했다.
"그렇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면서 장군은 어제 던졌던 동전을 병사에게 보여주었다. 그 동전은 양쪽이 다
앞면인 동전이었다.
천국의 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여부를 심사 받기 위해서였다. 봄눈이 내린 그날도
남자 세 사람이 문 앞에서 심사를 받고 있었다. 심사 위원장은 성베드로였다.
"자, 맨 앞에 있는 사람부터 차례대로 오시오."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베드로가 소리치자 맨 앞줄에 서 있던 사내가 베드로 앞으로
썩 나섰다. 그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금박을 한 '성경 전서'가
들려 있었다. 표정은 어찌나 근엄해 보이는지 심사를 맡은 성 베드로가 오히려 더
초라해 보였다.
"자넨 무슨 일을 했나?"
베드로가 다짜고짜 사내의 직업부터 물었다.
"저는 장로교 목사였습니다. 25 년간이나 주를 찬미하고 불쌍한 우리 인간들의
영혼을 구하는 설교를 해 왔습니다."
"으음."
베드로가 한참 동안 신음 소리를 내다가 입을 다시 열었다.
"자신의 영혼은 구했는가?"
"제 영혼은 지금 천국의 문 앞에 와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내가 넙죽 땅에 엎드려 베드로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어어, 이게 무슨 짓인가? 자, 저리 가 있게. 그 다음 사람 들어오시오."
베드로가 목사를 한쪽 편으로 몰아세운 뒤 다음 사람을 불렀다. 이번에는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다소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베드로 앞으로 나섰다.
"자넨 그게 무슨 옷인가?"
"의사들이 입는 가운입니다."
"자넨 병원에서 일을 했는가?"
"네, 지난 25 년 동안 내과 의사로서 죽어 가는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으음."
베드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의사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생명은 구했는가?"
"구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분은 바로 당신입니다. 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병마의 고통에서 시달리며 죽어 가는 많은 생명들을 구해야
합니다. 저를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사내가 흰 가운을 벗어 땅에 펼치고는 넙죽 베드로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베드로의 손등에 입을 쩍 맞추었다.
"어허, 이게 무슨 짓인가? 저기 저 목사 옆에 가서 서 있게. 그리고 다음 사람
들어오게."
세 번째 사내는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평범한 사내였다. 그는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성 베드로의 구레나룻에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자네 무슨 일을 했는가?"
베드로는 앞의 두 사람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는 시내버스 운전삽니다. 25 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차를 몰았습니다. 명색이
무사고 25 년의 모범 운전삽니다."
"오호, 그래?"
베드로가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는 자기 자랑을
너무 노골적으로 했다 싶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허리를 굽혀
베드로에게 절을 하지 않고 손등에 키스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천국의 문 앞에 서서
오직 심사 결과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으음. 으음."
베드로는 몇 번이나 짧은 신음 소리를 토해 내었다.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리저리 문 앞을 거닐기도 하였다. 세
사람의 마음은 초조했다. 눈앞에 지옥의 불길이 어른거렸다. 그때 베드로가 환히 웃은
얼굴로 세 사람을 보고 말했다.
"버스 운전사, 자네만 이리로 오게."
"네에?"
"빨리 들어오게!"
베드로는 버스 운전사에게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사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베드로에게 항의했다.
"아니, 버스 운전사는 들어가는데 우리는 왜 못 들어가는 겁니까? 도대체 이런
불공평한 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죽어 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자네들이 평생 동안 한 일보다 저 운전사가 더 많은 인명을 구했기 때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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