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수잔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잇는 모든 일을 다했다는
것을. 지상에 남아 있게 된 유일한 사람으로서 죽은 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것을.
그러면 된 것이다‥‥‥.
그런데도 왜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그를 마침내
다시 만나고, 운명처럼 그를 품에 안은 채 서로의 생존을 음미하고 있건만
왜 이다지도 가슴이 무너지는듯 아파오는 것일까.
그는 엄청난 출혈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회생의 기적을 다시 찾을
것이다. 적어도 생명에 관한 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1년의 모진 방황 속에서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충분히 보여주어
왔으니까.
그러나 그는 정녕 알까. 오직 한 사람의 남자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황야에 몸을 던진 여자의 마음을, 그 절박한 여자의 사랑을 그가 알까.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강이 보이는 창가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보낸 시간들을 그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가 죽었다면 그의 무덤
이라도 찾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미주리를 거슬러 올라온 그 용기가
단지 그를 향한 목마른 그리움 하나 때문에 생겼던 것임을 그가 알까.
그가 남자로서, 또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다고
여기며 움켜쥐었던 푸른색 가방. 그것을 움켜쥐었던 그 간절한 힘
속에 수잔나란 존재는 과연 얼마나 포함되어 있었을까.
그는 그것을 지상에서 가장 고결하고도 슬픈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녕 알까. 여자에게는 오히려 한 마디의 사랑의 언약이
지상에서 가장 고귀하고도 슬픈 약속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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