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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좋은글

내면적인 고독 사색의 실마리(II)

by Frais Feeling 2020. 3. 24.

 1. 집중의 의미

  앞에서는 외면적인 고독에 이르는 방법을 검토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방해가 되는 것은 모조리 쫓아내 버려라!'라는 방식이었다. 즉 '배제법'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다 직접적으로 마음속에 고독을 끌어넣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수단이 바로 집중이란 것이다. 몰두한다, 빠진다는 것도 같은 이야기이다.
  집중은 배제와 비교하면 훨씬 적극적이다. 그만큼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집중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마음의 진행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과정을 분석해
보면,
  #1 집중 속에 들어간다.
  #2 집중의 방해가 되는 이미지를 배제한다.
  #3 나머지 부분이 '사상의 연쇄'가 되어서 앞으로 계속 뻗어 나간다.
  우리들은 #1-#3의 운동을 일컬어 '생각한다'고 말한다.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1-#3의 진행이 순차적으로는 행해지는 것이 아니고
거의 동시에 시작된다고 하는 점이다. 즉 집중의 과정은 '배제'의 계속 상태이고, 동
시에
'흡수'의 과정이다.
  제각기 제멋대로 노는 이미지는, 그것이 아무리 풍부하다 하더라도 우리들을 사색의
길로 이끌어 가지는 못한다. 이미지라는 것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하나의 질서를 이루

경우에만 사색의 실마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혼자 있어야만 '고독'해지느냐 하면, 결코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시인이나 예술가는 친한 친구라든가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고독 속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마음속은 '자기 자신의 문제'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열렬한 사랑에 빠져 버린 젊은이들과도 같다고나 할까.
  알퐁스 도데(1840-1897,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그냥
돌려보낸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찾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이 현재 집필 중인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도데는 상대방이 자기의 작품에 대해서
관심이 있건 없건 전혀 개의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신은 사람들로 붐비는 길거리에서
고독을 맛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감'은 누구나가 경험하는 바이
다.

  2. 집중의 명수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고독의 집중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

왜 그럴까?
  '저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상당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확실히 맞다. 변호사라든가
성직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척척 처리해 가는 솜씨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형사, 민사상의 온갖 복잡하고 신경 쓰이는 소송사건이라든가 자기가 맡은
교구 신자들의 온갖 고민을 능숙하게 처리해 내는 숙련된 솜씨야말로 전문적인
훈련의 성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폴레옹은 이미 알려져 있듯이, 천재적이 전략가인 동시에 빼어난 정치가였다. 그

언제나 능숙한 솜씨로 화제를 이끌고 나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전술론을 화제로 삼고 있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화제는
국립극장의 칙허장 문제로 옮겨지게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그 큰 머리 속에는 잘 정돈된 서랍이나 정밀한 지도책이 차곡차곡 있었던
것이다.
  변호사라든가 '영혼의 고민'을 풀어 주는 성직자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검토해 보
자.
그들의 주의력, 집중력은 정말 놀랍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를 이미 그 전에 다루었던 사례와 비교해 보면서, 하나의 결론(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한다면 집중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방문자들을 상대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내면적
고독의 세계만은 굳게 지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전문적 태도는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훨씬
'사상'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고. 마치 도서관의 사서가 길거리의 행상인보다 책에
가까운 곳에 있듯이...

  3. 기억력이 왜 나쁜가?
  "나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나쁠까요?"
  이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을 주위에서 자주 듣는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왜 나는 

가지 일에 집중이 안 될까?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이 변덕스럽다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들은 의식을 어떤 대상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면-그것을 '의식'한
순간에-집중을 방해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차례차례로 솟아 나와서 뭐든지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그래서 결국에 가서는 이 사람들은 '고통'보다는 '경박'함을
택하고 만다.
  그러나 기억력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불치의 병은 아닌 것이다. 우리들은 이런
실례를 잘 알고 있다. 강의의 내용이 흥미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품을 하는 학생

반대로 따분하고 흥미 없는 강의를 할 때는 생기가 되살아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알고 보면 그러한 학생들은 흥미 있는 강의 시간에 열중할 수 있는 동료들을
무의식적으로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처럼 집중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쑥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쓸모 없고 싫증나는 따분한 강의 때에는 정신이 집중이 안 되어서
고민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은 그 시간에 마음껏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뭔가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4. 집중을 방해하는 것과 극복하는 방법

  "집중하는 요령을 어떻게 하면 배우지요?"
라는 말을 바꿔 말하면
  "집중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된다.
  우리들은 기억력이 나빠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실례에서 신경과민증이야말로
정신을 집중시키는 데 매우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보통 '과민증'에 걸린
사람은
  #1 친구나 다른 사람이 외관이라든가 지능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인다.
  #2 다른 사람이 농담이라든가 제 자랑이 유난히도 불쾌하게 생각되어진다.
  #3 따라서 친구들 앞에서는 어쩐지 마음이 흐트러져서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
라는 식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신경'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주 얼빠진 사람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과민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너무 자책을
해서는 안된다. 만일 당신이 과민증에 걸려 있는 듯하다고 한다면 나는 솔직히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즉 당신의 기분을 흩으러 놓는 친구와는 당분간 만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골드스미드(1728-1774, 영국의 작가)는 왜 "웨이크피일드의 목사"를 썼으며, 더욱이
미완성인 채로 붓을 꺾고 말았을까?
  그는 신경질을 참고 못하고 '뭔가를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쓴
것이다. 동시에 동료 작가들이 칭찬하는 말을 듣기가 거북해서 작품을 중단하고 만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골드스미드는 친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자칫하면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할만큼 '훌륭한 친구'와의 교제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그 대신,
  #1 친절하고 단순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2 만일 당신의 '집중'을 방해할 것 같은 친구와 만났을 때에는 기죽지 말고 침묵을
지킨다.
  #3 침묵은 반드시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처음에는 기분이 언짢겠지만 곧 침묵의
도움으로 결코 꿀리지 않게 될 것이다.

  5. 흥미는 집중의 어머니

  우리들은 집중의 방해가 되는 과민증에서 해방되는 실마리를 얻었다. '친절하고
단순한' 친구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이것은 무엇에든지 잘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해 본다면 대체로 흥미하고
하는 것은-가령 그것이 어떤 종류의 흥미이든 간에-저절로 집중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싫증나는 수업 시간에 한해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학생들의 태도에 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이런 조그만 수수께끼도 흥미라고 하는 열쇠를 발견함으로써 금방
해결되어 버리고 만다.
  그들은 자기네 마음속에 상상력을 자유로이 나래 치게 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인 것이다. '주의산만'이라는 딱지가 붙은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열등감을 부추기는 적이 잠잠해진 시간인 것이다. '기분
좋은 상태'로 오로지 자신의 흥미의 대상과 씨름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가 있다는 것만큼 강한 힘은 없다. 글짓기는 싫어서 죽을 지경인데 뜰의 잔디
깎기 같은 것은 좋다, 글짓기 시간에 도망친 학생이 라디오의 조립이라고 하면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이런 광경은
우리가 자주 목격하는 광경이다.
  가벼운 소설밖에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떤 때에는 보기에도 싫증나는 유명 인사의
회고록 따위에 열중해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큰길에서 백 보쯤 떨어진 곳을 걸어가야만 한다'라고 권고한 사람이 있는데
우리들은 그런 금언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흥미가 솟는 대로 백 걸음쯤 떨어져서
역사를 읽고, 과학 하는 마음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의 효용은 실제로 따지기 어려우리만큼 놀라운 데가
있다. 집중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는 '열등감'도 이 흥미에 의해서 극복할 수가
있다. '흥미 본위'라는 비난도 열중하기만 하면 되었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흥미의 강도는 의식적인 노력이란 것 가지고는 도저히 다다를 수가 없는
정신적인 높이에까지 우리들을 끌어올려 준다. 흥미를 통해서만 우리들은 관심을
높이고 나아가서는 좋은 의미로의 '우월감'까지도 가질 수가 있다.
  그렇다. '생각의 기술'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올바른
해결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될 수 있는 대로 번거로운 길은 피하고 힘 덜 들이고 우리들의 지성을 보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하고 질문을 할 것이다.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당신

흥미를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첫째이다. 그렇게 하면서 보다 높은
곳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확실하게 나가자.

  6. 싫은 것에 집중하려면

  언제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문제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들은 향상을 원하

한, 때로는 싫은 것, 싫증나는 것과도 씨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까?
  셸리(1792-1822, 영국의 시인)는
  "나는 시를 좋아한다. 그러나 역사는 싫어한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셸리는 천재였다. 우리들은 죽어도 셸리를 흉내는 낼 수

없다. 또 흉내내 볼 필요도 없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어떤 부인이 솔직하게 말한 '반성'의 말이다.
  "나는 같은 것을 주의 깊게 되풀이해서 생각하기로 하고 있다"
  그녀의 사고 방법은 우리들의 집중의 대상이 단순한 것일 때에는 확실히 유익한
지침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란 것은 일반적으로 복잡한 형태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복잡한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집중을 해야 할까?
  우선 당신 자신의 체험을 생각해 보자.
  "어떤 컨디션에 있을 때 당신은 집중이 안 되어서 고민했습니까?"
  여기서는 대상 이전의 문제, 우리들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생각해 보자. 자기의
경험을 쭉 되새겨 보면
  #1 수면 부족일 때나 반대로 너무 많이 점을 잤을 경우,
  #2 너무 음식을 많이 먹었을 때나 반대로 배가 고플 때,
  #3 운동 부족 또는 지나친 운동으로 몹시 피로했을 때,
  이와 같은 육체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에는, 우리들의 마음은 좀처럼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와 같은 나쁜 몸의 컨디션을 정비해서 집중
을 위해 조
금만 신경을 써 보는 것이다. 즉,
  #1 여유 있게 마음 푹 놓고 담배라도 한 대 피운다.
  #2 창문을 열고 멍하니 경치를 내다본다.
  #3 더운 날에는 나무 그늘을 찾아서 산책이라도 한다.
  #4 때로는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이와 같은 준비나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는 당신도
잘 알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상쾌한 기분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골치 아픈 문제와 대결할 때 쓸 만한 테크닉이며 기억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모두가 깨끗이 처리된 것은 아니다.
  일단 집중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복잡한 분야를 다루게 되면
아무래도 어떤 불안이 따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것을 쓸데없는 것과 뒤섞어 치워 버리지는 않았을까?'
라는 걱정을 하게 되는 사람이(지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면 더구나 이런 경우가 많다)
많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이 경우, 가장 우리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기억된 데이터'인 것이다. 즉 자기의
기억력에 뭔가 의지할 것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가지고 복잡한 문제의 집중에 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어떻게 하면 '기억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검토할 예정이지만 --

  7. 로빈슨 크루소의 경우

  여러분도 알다시피 로빈슨은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 혼자 버려져서 의논할 상대도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살기 위해서 그는 여러 가지의 골치 아픈 문제와 씨름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오직 혼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했었을까?
  #1 우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면 종이에 적는다.
  #2 처음 것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종이에 적는다.
  #3 이렇게 해서 두 가지를 비교해서 검토하면서 더 좋은 방법을 선정한다. 이것이
#1 #2의 장점을 취한 제3의 방법이 된다.
  #4 종이 위에 적은 '생각할 자료'는 소중히 보존한다.
  #5 그래서, 판단에서 얻은 결과는 실행에 옮겨지게 되는데, 실제로 해보고
어떠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마지막으로 첨부된다.
  이렇게 해서 #1 #5까지의 기록은 메모의 형태로 남겨지고, 로빈슨이 살아남기 위한
지혜의 양식이 된 것이다.
  자기의 기억력에 자신이 없을수록 이 메모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인데, 메모가 자꾸
쌓여 간다고 하는 것은, 필경 써서 남긴 '기억'이 확실히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더욱이 놓쳐서 안될 것은, 메모는 단순히 지식의 기억이 아니고, 사고
그 자체의 기록이고 살아 있는 데이터로서 그 사람의 일생의 재산이 되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1491-1556, 스페인의 승려, 제수이트 교단 창시자)는 (물론 펜

종이도 풍부하게 있었으므로) 로빈슨이 경우보다도 훨씬 치밀하게, 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자기의 문제를 계속 써서 생활의 규범으로 삼았던 것이다.
  또 같은 방법으로 써 두었던 알버트 전하(1819-1861,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황서)의
일기도 빅토리아 여왕에게 주어진 전하의 조언의 둘도 없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당신도 이제는 여러 가지의 소음, 충고, 불안에 위협받음이 없이 자기의 대상에
집중할 수가 있을 줄 안다. 지금 여기에 한 잔의 레몬 스코치나 당신 자신의 노트가
있다고 하면 아무것도 겁낼 것이 없다.
  우리들에게 예컨대, 미슐레(1796-1874, 프랑스의 역사가, "대혁명사"로
유명하다)나 카알라일(1795-1881)과 같은, 보통 사람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조직되어진 기억력'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들에게는 자기의
노트가 그 구실을 충분히 해 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되풀이해 보자.
  '우리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두는 준비를 지금 즉석에 해 두자.
  안톤 채호프(1860-1904, 러시아의 작가, "벚나무 뜰" 등의 작품이 있음)가 그렇게
소설을 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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