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누구보다도 상대방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은 이미 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일부, 즉 반신입니다. 자기 이상으로 남을 사랑한다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
겠습니까?
40억이나 되는 세계인구 가운데 자신의 반신으로 택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이 반신이야 말로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입니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서로가 반신이라는 사실을 잊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산다면 이것은 부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같이 존귀와 영광을 함께 누리고, 고통과 수
고를 나누어야 할 부부가 아닙니까?
자주 아내들은 그들의 남편들을 '돈 버는 도구' '일하는 꿀벌'처럼 생각하기 쉽고,
남편들도 아내들을 부엌에서 일하는 '가정부'나, 혹은 '향락의 도구'나 '종자를 번식
시키는 도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컨대, 남편이 아내의 옷을 사 준다 해도 그것은
자기의 체면을 위하고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요. 아내가 남편의 건강을 돌보
는 것도 돈을 잘 벌어 오게 하는 수단인 경우를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부부는 상대방이 살아 있는 혼을 지닌 나의 반신이라고 생각하는 한나와 그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잘못이 내 잘못이고, 그의 일이 내 일이고, 그
의 슬픔과 실수가 내 슬픔과 실수이며, 그를 행복하게 하기 전에는 내게 행복이란 없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 인류 가운데서 선택한 유일한 배우자가 바로 나의 반신입니다.
서로의 성장을 위해서,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의 생활과 경험과 물질과 모든 것
을 나누어 가지기 위해서, 서로의 부모와 자녀를 위해서, 서로의 위로와 안락을 위해
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반신인 것입니다. 얼마나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까?
이와 같은 첫째 사랑의 자리를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차지한다면 이 부부는 이미
부부관계가 아니고, 간음이나 이혼관계와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형식적인 부
부, 형식적인 동거생활이 참다운 부부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남자와 여자를 더 사랑한다면 이것은 이
혼보다 더 큰 부도덕을 저지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앞에서 그들이 한 몸이 되어서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겠다고 서약을 하고 양심의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러셀은 사랑 없는 부부관계를 "간음관계"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장 깊고도 열렬한
사랑, 만물을 태울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이 없으면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부
부는 영원한 애인이어야 합니다. 평생 같이 살면서도 항상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하
며, 볼수록 사랑스럽고 감격스러운 것을 느껴야만 참다운 부부입니다.
첫째의 사랑을 하는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마음을 다 해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헌신적
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헌신은 몸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가진 모든 것, 내 자신 전부를 내어
주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이요. 몰아적이요, 전심전력을 다 쏟는 것이고,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
을 희미합니다.
아내(남편)는 남편(아내)에게 기쁘게 자신의 몸을 내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가
지 고이 간직해 왔던 성을 오로지 이 한 결혼상대자에게만 바쳐야 합니다. 그를 기쁘
게 하기 위해서 언제나 그가 요구할 때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헌신이 근본적입니다. 제3자에게 연심을 품지 않고 오로지 자기 남편이나 아
내에게만 진실된 사랑을 쏟아야 합니다.
남편에게 실망한 아내가 그 옛날에 자기에게 친절했던 어느 청년을 그리워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도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 이외에
다른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몸단장하는 것도 마음의 헌신에서 탈선하는 것입니
다. 남자의 경우 아내 이외에 다른 여자에게 특별한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것도 아내
에 대한 헌신에서 이탈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친구들에게 자기 아내의 결함을 말하고 비판한다든지, 친정에 가서나 친구에게 자기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는 것도 피차에게 헌신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헌신은 자기를 극복하고 상대방 중심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랑의 정신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이것이 이토록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이러한 사랑은 그들 자신들만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사랑 때문에 자
녀들도 올바르게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올바른 자녀교육에서는 생명이 약동하거
나 자라나지 못하며 행복이 있을수 없습니다.
람브로즈의 "천재론"을 보면 사랑이 열렬한 부부간에 위인이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양친이 서로 깊이 존경하고 신뢰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곳에는 반드시
아름답고, 선하고 총명한 자녀가 태어나고 양육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 있기에 부부는 각자의 가장 귀한 것을 전부 아낌 없이 기쁘게 상
대방에게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단한 사람에게만 바치는 정조
를 그의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바치는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의 의의는 상대방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
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결혼생활은 사랑생활입니다.
인간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결혼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받아 온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내어 주는 사랑을 제공
받는 것이 결혼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가 사랑을 받고 주는 것이라면 결혼은 이
요구를 최종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즉, 사랑을 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
다. 거기서 생의 참 행복과 기쁨과 감사와 보람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생명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것보다 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주기 위함이요. 받기 위해 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엘리자베트 부라우닝의 "포르투갈인의 소네트"라는 시에서 그녀는 남편에게 바치는
사랑을 아래와 같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당신을 사랑해야 할까요?
내게 그 길을 알게 하옵소서.
나의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합니다.
보이지 않을 때는
영원한 은혜의 손끝을 내어 만질수 있습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온 시간을 다 바쳐 사랑합니다.
아주 궁핍할 때, 햇빛과 촛불에서도 정의를 찾듯.
당신을 자유롭게 그리고 찬사로부터 돌아오듯.
오직 순결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모든 정열을 다해, 슬플 때도
어린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사랑할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미소와 눈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죽은 후라도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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