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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모음/늙지 않는다

제3부 엔트로피 물리치기

by FraisGout 2020. 5. 14.

인체의 기본재료는 극도로 약하다. 세포 하나를 떼내어서 포근한 결월의 낮에 바깥에 놔두면 몇 분도 안 가서 말라죽어 버릴 것이다. 모 든 세포의 내부에는 그보다 더 약하고 미소한 DNA라는 유전물질이 치있다. DNA가 세포핵 속 깊숙이 감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 의 유전자는 방사선과 자외선, 공해와 독성 화학물질, 돌연변이, X, 길 그리고 심지어는 생명작용 그 자체에 의해서조차 날마다 손상을 입는다. 음식이 세포 속에서 대사될 때 유리기(free radicals)라 불리는, 반작용을 매우 잘 나타내는 산소원자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DNA를 포함한 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에 달라붙어서 손상을 입힌다.

이 세계는 생명이 살아남기에는 위험한 장소이다. 그리고 이 행성위의 국지적인 위험을 벗어나면 우주의 힘이 호시탐탐 생명을 파괴하려고 노리고 있다. 그것은 엔트로피entropy라 불리우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무너져 가는 범우주적인 경항성이다. 엔트로피는 대폭발의 순간부터 존재해 왔다. 우주의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열과 빛과 모든 다른 형태의 에너지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우주가 확장되면서 분산되고

퍼져 왔다. 이처럼 에너지를 더욱 넓은 영역으로 움직여서 퍼지게 하려는 경향이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는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화살이다. 고물 차가 녹슬고 망가지기 시작하면 그 과정이 저절로 역전되는 법은 없다. 같은 이치록 노화된 신체가 저절로 젊어지는 법도 없다.

물질과 에너지가 질서있는 형태 속에 집중될 때마다 엔트로피는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물리학은 이 '부겔엔트로피의 섬 islands ofnegative entropy'은 행성, 항성, 은하계 등과 같이 매우 오래 견디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견지해 왔다. 끝내 별들은 불타서 없어지고 행성들은 궤도운동의 원심력을 잃어버리고 은하계는 흩어진다. 행성 지구는 태양에서 빌려온 에너지를 먹어치우는 부 엔트로피의 섬이다. 태양이 없으면 우리는 엔트로피에 굴복하여 싸늘하게 식어 생명을 잃을 것이다. 엔트로피는 온 우주를 그 종말,즉 모든 에너지가 막막한 공간 속에 균등하게 분산되는 시간을 향하여 끌고 가고 있다. 이 궁극적인 열사망heat death은 수십억 년 뒤에나 일어날 일이지만 모든 분자 하나하나가 그것을 향해 떠밀려 가고 있다. 양자와 같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 중의 일부는 수명이 매우 길어서 그것이 소멸되는 데에는 수억 겁이 걸린다.

그러나 중간자와 같은 다른 신종 소립자들은 수백만분의 일초라는 지극히 짧은 순간 동안 물질적 존재를 반짝 비쳤다가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질서가 무너지는 성질은 우주의 물리적 구조 속에 내재되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몸이 세월과 함께 쇠퇴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우리가 노화를 물리치고자 한다면 먼저 엔트로피를 물리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혼돈을 거슬러서

 

인체는 엔트로피를 전적으로 거스르면서 존재한다. 인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질서정연하며, 그 질서 위에다가 그보다 더한 복잡성을 덧붙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왜 살아 있는가? 대체 어떤 힘이 혼돈을 거슬러서 점점 더 높은 복잡성을 지닌 질서를 만들어 내는가? 정교하게 부호화된 수백만 개의 화학 기를 가지고 있는 인체 DNA는 그보다 덜 복잡한 화학물질(아미노산과 당)의 능력에 의존하여 수십억 년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점점더 복잡한 분자의 사슬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었다. 이 구조물은 언제든지 붕괴되어 자의 수프로 녹아들 수 있었다. 엔트로피의 힘은 예외를 봐 주지 않는다. 그것은 만물을 용해시켜 혼돈 속으로 밀어넣는다.

순전히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물리학은 엔트로피에 거 스르는 힘의 작용은 기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가 대폭발 이후에 마냥 팽창하기만 한 것은 아님이 명백하다. 대폭발 이후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원시 수소원자는 그 단순한 존재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복잡성을 더해서 헬륨 원자를 형성시켰다. 헬륨 원자의 질서정연한 구조는 안정된 채 유지되었곤 다시 그보다 더 복잡한 원자로 진화하여 큰 질량을 가진 우라늄과 플루토늄으로까지 발달했다. 진화 혹은 성장은 단순한 구조에서 좀더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단세포의 조류와 박테리아에서 자연계의 비복잡한 유기체나 인간의 두뇌로까지 이어지는 진화의 전체 연쇄고리는 무작위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과학의 주장에 의해 진화의 이론에는 커다란 구멍이 리게 되었다. 동물의 생존은 무작위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설명에는 명백히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태아가 임신될 때마다, 수정된 난자는 그 이전에도 수십억의 태

아를 만들어 낸 세포분열의 과정을 반복한다. 세포가 하나에서 둘루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로 계속 커져 가는 것은 진화의 작용이다.

여기에는 무작위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생명을 만들어 낸 과정을 임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가? 분명히 진화작용을 진행시켜 생명을 만들고 엔트로피의 위협을 비껴게 하는 반대의 힘이 존재한다.

이 반대의 힘은 지능이다. 그것은 양자의 차원에서는 단순한 정신적현상을 넘어선 그 무엇이다. 지능은 모든 세포의 청사진을 DNA 속에 지니고 있으며 이제 많은 과학자들은 전체 우주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라고 믿고 있다. 영국의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Paul Davies는 그의 저서 <우주의 청사진쏟 Cosmic Blueprint>에서, 우주가 마치 우리외 세포처럼 스스로 자기조직하여 내부의 사건에 반응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지지하는 많은 이론적 발견물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주는 한갓 풍선처럼 마냥 부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처럼 성장한다. "우주는 새롭고 더욱 많은 영감을 주는 빛 속에 드러나게 되었다. 우주는 그 원시의 태초로부터 전개되어 단계적으로 진화하여 끊임없이 더욱 더 복잡하고 정교한 상태로 피어난다"고 데이비스는 말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주류 과학이 아무리 거부감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성장하는 것은 모두 지능의 징표를 보이고 있다.

지능은 창조력과 동의어이다. 그것은 혼돈 속에 손을 뻗어 양자의 수프를 가지고 아름다운 균형물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죽은 분자들에 생명과 호흡을 불어넣는다. 엔트로피가 세력을 떨칠 때는 지능은 이지러져야 한다. 이 두 힘은 끊임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둘다 대폭발 이후부터 존재해 왔다면, 두 힘이 격돌한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태어난다. 이것은 지능의 기념비적인 승리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늙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엔트로피의 승리이다. 노화를 엔트로피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여기서 그 미묘한 구분의 금을 분명히 그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창조와 파괴는 공존한다. 모든 세포 속의 어떤 화학반응은 창조적이다. 즉 새로운 단백질, 예컨대 아미노산을 이루는 기본물질을 생산한다. 반면에 어떤 화학반응은 파괴적이다. 예컨대 복잡한 음식물을 단순한 화합물로 개는 소화작용이나 당을 태워서 그 속에 저장된 에너지를 풀어 놓는 대사작용이 그렇다.

파괴가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노화는 단순히 신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점이지만 생명을 무작위적인 물질적 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간과해 버린다.엔트로피는 실제로 생명의 편이다. 그것은 복잡한 힘의 균형 속에서 한 가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능이 없이는 이 균형은 당장 깨어져 버릴 것이다.

예를 들어 신생아의 수십만 개의 유전자 중에서 단 하나의 유전자가 기형이 되어서 생기는 조로증이라는 무서운 내분비 장애가있다. 지극히 드문 이 조로증은 노화를 급속도로 진행시킨다. 주름살, 탈모 근육의 감퇴, 동맥경화 등의 증상이 유년기 초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열두 살쯤 되면 조로증에 걸린 아이는 심한 뇌졸중을 이미 겪었거나 관상동맥 우회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되어 있을 것이며 대개 20세 이전에 요절한다.

조로증은 급진적으로 무섭게 가속된 엔트로피이며, 인체 지능 패턴의 미세한 파편인 단 하나의 유전자 이상으로 인해서 일어난다. 각각 의 세포가 살아 있기 위해 유지해야 하는 균형이 기울어짐으로써 무질서의 힘이 풀어 놓여진다. 정상적인 노화에도 이와 동일한 교훈이 해당된다. 인체가 그 질서의 청사진에 의거하여 자신을 새롭게 재정비할 수 있는 한 엔트로피는 막아 낼 수 있다. 노화된 위장이나 피부세포 하나가 망가지면 그것은 새로이 교체된다. 음식물 한 조각이 대사되면 노폐물이 배출되고 새로운 음식물이 도착한다.

우리는 이 생성과 파괴의 균형을 '역동적 항상성'이라고 불러

도 될 것이다. 달리 말해서 변화는 안정된 틀 안에서 일어난다. 인체에 관한 한 이 역동적인 항상성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지면 재난이 덮친다. 변화의 결핍이 사망을 재촉하는 것이다.너무 지나친 변화는 심한 무질서를 가져온다(암세포 하나가 닥치는 대로 분열을 시작하여 끝내는 치명적으로 중요한 조직을 삼켜 버리고는 인체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자신도 파피시키고 마는 경우처럼).

모든 세포들은 무질서 상태가 침투하기 시작하면 언제든지 지능을 동원하여 이를 구제함으로써 엔트로피의 공격을 물리치는 방법을 알고있다. DNA자체가 가장 단적인 그 예를 보여 준다. 세포핵 속에 변하지 않는 상태로 들어 있는 불활성의 화학물질이라고 오랫동안 생각되어 온 DNA가 이제는 놀랄 만한 자기회복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리기의 공격과 기타 파괴적인 영향력들 아래에 놓여있는 DNA는 한 개의 나선상에서 최소한 일곱 가지의 다른 종류의 착오를 나타낼 수 있다. (DNA를 컴퓨터용 자기 테이프로 생각해도 된다. 테이프가 구겨지거나 파손되면 기록된 정보가 손상될 수도 있다. )

만일 우리의 유전자가 다른 모든 화학물질들처럼 그저 수동적으로 이 러한 손상을 받아들이고만 있었다면, 이중나선 위에 부호화되어 기록된 정보는 갈수록 점점 더 왜곡되어서 질서있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DNA는 자신을 정비하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다. DNA는 정확히 어떤 종류의 손상이 생겼는지를 감지할 수 있으며 특수한 효소를 통하여 상실된 연결부위를 제자리에 가져다 이어 놓는다. 이처럼 놀라운 지능의 발휘는 인체의 노화와 곧바로 직결되었다.

수명이 팎은 뾰족뒤쥐와 생쥐로부터 시작해서 수 코끼리, 인간에 이르기끼지 다양한 동물들의 기대수명을 그래프로 나타낸 곡선은 각 동물들의 DNA가 얼마나 자기회복을 잘 하는가와 거의 완려하게 일치한다. 예컨대 꼬리긴 뾰족뒤쥐는 대개 1년도 안되는 지극히 팎은 수명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인간은 알려진 최대 수명이 115세에서 120세로,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긴 수명을 지니고 있다.

1970넌대 초에 두 사람의 젊은 노화학자인 론 하트Ron Hart와 리처드 세틀로Richard Setlow는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의 DNA에 특정 한종류의(DNA의 이중나선상에서 서로 인접해 있는 분자들이 비정상 적으로 융합되는) 손상을 입히기 위해서 자외선에 노출시켜 놓았다. 그리고는 한 시간 동안에 그것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지를 측정해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뾰족뒤쥐의 세포는 그보다 수명이 좀더 긴 생쥐의 세포보다 스스로 회복되는 속도가 느렸다. 자기회복의 속도는 소에서 코끼리로 넘어갈수록 빨라지고 인간에 와서는 가장 빨랐다. 이후에 국립 노화연구소의 에드워드 슈나이더Edward Schneider 박사는 늙은 세포는 젊은 제포의다 자기회복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밝혀 냈다. 전반적인 결론은, 노화는 DNA1년에도 수백만 번씩 끊임없이 가해져 오는 손상을 회복시키는 능력을 잃어버린 결과라는 것이었다.

만일 이것이 우리의 내부에서 힘의 균형이 깨어지는 이유라면, 자연은 왜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게 내버려 두는 것일까? 인체 세포의 자기회복 능력이 79퍼센트를 상회하는 효율을 가지고 밌다면 진화에 의해서 그 나머지 결함마저 메워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난처한 질문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생명 자체의 비밀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우리 몸의 세포는 살아 있는 동안에 회복시킬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손상을 입는다는 것이다. 노화는 바로 이러한 결함의 결과이다. 만일 세포가 손상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완벽하게 회복시킨다면 모든 세포가 갓난아기였을 때의 상태와 똑같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코 늙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상의 착오를 가능한 한 많이 막아 낼수록 그 착오의결과인 노화현상을 막아 내는 셈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지능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 몸의 세포는 매순간 새롭게 남아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늙은 세포는 독성 노폐물, 색소 덩어리, 뒤엉켜 있는 분자들, 손상된 DNA 등의 물리적 형태로 누적된 과거의 착오들로 더럽혀져 있다. 이 뻑뻑한 물질의 파편들에는 생명의 요구인 흐름도,변화도 더이상 없다. 이 장에서 우리는 지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체의 살아 있는 청사진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이 어떻게 그런 착오가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인지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그러한 착오는 어떤 생리적인 필요성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정하거나 피하기 위한 기법은 많이 있다.

뾰족뒤쥐, 생쥐, 손 코끼리 등과는 달리 우리의 유전자 회복율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면 우리의 신체 전체가 의식의 단일장이다. 그리고 세포 속의 활동은 우리의 생각과 행위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대뇌에서 보내지는 화학적메시지를 통해서 DNA와 대화하고 있으며 이 메시지는 DNA 정보의 출력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년 간의 심신상관 체계 연구가 남긴 업적은 지능이 생리작용으로 변환되는 메커니즘을 매우 정확하게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게 스쳐가는 생각과 감정이 모든 세포의 기초적인 화학작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되면, 노화라는 착오를 그근원인 세포의식의 근저에서부터 막아 낼 수 있다는 희망이 떠오른다.

 

양자장의 주름살

메시지에서 분자로의 변환

 

보이는 것에서부터 양자 차원까지, 엔트로피의 흔적을 추적해 보자 면 노화의 유일한 징후인 주름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욕실의 거을 앞에 서서 나이와 함께 눈이나 입가에 하나씩 둘씩 생기는 잔주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얼굴에 생기는 선은 오래되어 친숙해진 감정의 흔적이다. 그리고 걱정과, 노여움, 불만과 성취감파 행복, 그리고 기쁨의 이 지도는 해마다 더 깊이 피부 속에 새겨진다. "주름살은 단지 웃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리켜 주는 표시로만 존재해야 한다"라고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그러나 모든 주름살이 웃음의 흔적일

뿐이라손 치더라도 그것은 대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세포생리학자의 관점에서는, 주름살의 원인은 피부조직의 구조 속에 있다. 피부는 많은 종류의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혈관, 신경, 모낭, 소름이 끼치게 하는 근육, 지방세포, 그리고 두 층의 피부세포 즉 내피와 외피-이 모든 조직이 물과 느슨한 연결조직으로 둘러 싸여 있다. 이 연결조직은 콜라겐(교원질)이라는 단백질이 주요 구성 성분이며, 콜라겐은 물과 결합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성질을 지니고있다.

콜라겐은 피부에 부드럽고 촉촉한 피륙과 같은 완충력을 제공하여 살갗을 부드럽고 탄력있게 하며 또한 몸이 움직일 때 접히거나 늘어날수 있게 한다. 콜라겐 그 자체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인접한 세포가 이것을 만들어 내고 또 보수한다. 그러므로 이 연결조직의 상태는 DNA의 감독하에 있다. 인체가 노화됨에 따라 이 콜라겐이 변하여 점점 굳어지고 수분이 없어진다. 이렇게 탄성을 잃어 감에따라 콜라겐은 접히거나 늘어졌을 때 곧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하여 주름선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것이 오래되면 주름살이 형성되는 것이다.

 

유리기 이론

 

흡연, 과다한 일광 노출, 비타민 결핍, 영양부족, 탈수, 갑상선 기능부전, 유전적 소질 등 많은 물리적 영향력이 콜라겐의 노화를 부추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들과 심리적인 요인들 간에 뚜렷한 구분은 없다. 남편을 사별하고 슬픔에 잠긴 과부는 매우 빠르게 늙고 주름살질 수도 있다. 항암요법을 받는 암환자는 악물의 부작용과 정서적 혼란에 의해 피부가 나이보다 빨리 노화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영향력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콜라겐의 분자구조에 특정한 종류의 혼란이 일어나도록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서로 떨어져 있는 콜라겐 분자들이 원자의 바깥층을 영구적으로 고정시키는 교차결합cross-linkage이라고 알려져 있는 화학반응 에 의해서 서로 달라붙어 버린다. 분자간 교차결합의 원인은 유리기의파괴적인 성질에 있다. 이 유리기는 매우 불안정한 산소 원자로서 DNA를 포함한 체내의 많은 중요한 분자들에 닥치는 대로 달라붙는 다. 1950년 중반에 네브라스카 대학의 덴험 허먼Denham Harman박사는 유리기가 세포 차원에서 노화를 일으키는 으뜸가는 원인은 아니라 해도 중요한 원인임을 처음으로 이론화한 학자였다.

교차결합은 유리기가 일으킬 수 있는 손상 중의 일례에 불과하다. 유리기는 또한 근처에 있는 분자를 쪼개어 놓을 수도 있고, 분자들을 서로 떼 놓을 수도 있으며, 세포 내의 여러 부분에 있는 정보를 왜곡시켜 놓을 수도 있고, 세포막에 들러붙거나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미토콘드리아(각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공장)의기능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콜레스테롤을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콜레스테롤이 인체에 입히는 해는 유리기의 짓이라고 믿고 있다. 실험실 조건에서 세포가 정상적인 상태의 콜레스테롤을 흡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일단 유리기가 콜레스테롤과 반응하여 그것을 산화(지방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게 하는 작용과 동일한 과정)시키면 세포는 그것을 쉽게 흡수한다. 유리기는 마치 상어떼처럼 세포 주위를 배회하면서 거의 어떤 분자이든지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이들이 입히는 손상의 범위는 너무나 넓어서 노화의 유리기 이론은 수십 년 만에 일반화되었다.

유리기는 엔트로피의 작용을 보여 주는 훌릉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이들이 일으키는 변화는 한 가지 방향에다 비가역적이과 영구적이기 때문이다. 주름진 피부는 주름지지 않은 피부보다 질서가 없으며 스스로 회복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접시가 깨어지면 그 손상은 되돌려 놓을 수가 없다. 이것은 엔트로피가 시간의 화살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질서있는 어떤 것이 일단 깨어지면, 흩어진 물질과 에너지는 저절로는 모아지지 않는다. 미래는 오직 더욱 심한 무질서만을 수용한다. 깨어진 단지 조각은 끝내는 더 작은 조각으로 부서진다. 또한 늙어가는 피부는 결국 쪼그라들고 죽는다.

역설적이게도 유리기는 생명을 위해 필요한 존재이다. 화학적으로 인체의 유리기는 대부분 여러 가지 형태의 불안정한 산소 원자(흔한 예는 과산화수소와 수산기이다)로서 이것은 바깥 전자층에 전자를 하나 더 가지고 안정한 모체로부터 이탈하여 나온다. 이 음 전하가 유리기로 하여금 잉여 전하를 내려놓고 안정된 상태가 되기 위해서 근처의분자에 달라붙게 만든다. 그러므로 유리기는 사실상 안정된 한 분자로부터 또다른 안정된 분자로 이어지는 일시적인 체류장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입자들의 평균 수명은 수천분의 일초로 측정된다. 각 세포 속에서 생명의 공급자인 산소를 양분 대사 과정을 통해서 처리할 때, 수백만 개의 이 같은 떠돌이 분자들이 방출된다.

유리기가 그토록 해로운 것이라면 인체는 왜 그런 것을 만들어 낼까? 세포 주위를 날아다니는 총알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지게도 유리기는 인체의 전체적 균형과 조화된다. 어떤 경우에는 유리기가 있는 것이 극히 좋을 때도 있다. 면역계통의 백혈구는 침입해 오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이 유리기를 이용하여 붙잡아 죽인다. 어떤 것에든 보이기만 하면 달라붙는 유리기의 성질이 여기서는 우리의 생명을 구해주는 것이다.

모든 세포는 자신을 손상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유리기를 퇴화, 중화, 해독시키는 효소를 만들어 낸다. '유리기 청소부'에는 반응력이강한 산소 이온이 취약한 분자를 공격하기 전에 그것과 결합하여 무력화시키는 여러 종류의 산화방지제-카탈라아제(catalase, 과산화수소 분해효소).수퍼옥사이드 디스뮤타제superoxide dismutase와 같은것-가 포함된다. 여기서 또한 생성과 소멸 간의 균형이 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분자나 화학반응 같은 것은 개입되지 않는다. 단순한 박테리아의 형태가 나타났던 생명의 태초에서부터 자연은 산화방지 효소를만들어서 유리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미 마련해 놓았다. 이러한 대비가 없었다면 대기 중의 산소는 지구상에서 생명이 태어날 기회를 쉽사리 박탈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고맙게도 세포의 지능은 엔트로

피를 밀어내곤 산소로 인해서 생명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1983년에 더크 피어슨Durk Pearson과 샌디 쇼Sandy Shaw가 함께 펴낸 <수명 늘이기Life Extension>이라는 책 덕택에 노화의 유리기 이론이 많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그들의 접근방식에 전제된 것은, 유리기는 인체의 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온갖 종류의 산화방지제를 복용하도록 다그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자신이 투철한유리기 이론의 옹호자인 일본의 저명한 의학자 유키에 니와 박사는 실험실에서 배양 세포에 산화방지제를 투여하는 것이 유리기 생산의 감소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사람이 산화방지제를 먹는 것은 이보다더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 대부분이 세포에 도달하여 세포를 보호하기도 전에 입과 위와 장 속의 소화액에 의해 효력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비타민, 식품 첨가제, 처방약 등의 형태로 온갖 종류의 산화방지제를 삼킨다. 그 중에서 도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비타민 CI(니와 박사가 시험관 세포에게 주었을 때 가장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두 가지 물질)이다. 역설적이게도 장수를 바라는 사람들은 매우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서 빵, 과자, 인스턴트 곡물, 기타 가공식품에 식품첨가제를 못 넣도록 해야 한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이다. 이 책이 말하는 오래 사는 법을 따르기 위해서 이제 그들은 식빵을 신선한 상태로 보존하는 데에 필요한 양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BHTBHA 등의 식품보존제를 복용하고 있는 것이다.

산화방지제가 들어 있는, 이보다 좀더 색다른 처방약 중에는 하이더진Hydergine, 엘 도파L-dopa, 브로모크립틴bromocriptine(프로락 틴 분비 과잉 억제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어느 것도 애초에 노화방지제로서 복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가 부작용이 많은 독한 약물로서, 과용하거나 장기 복용하면 고질적인 장해를 일으킬 수 있다. 장수 약품의 남발 실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인기있는 노화방지 보조제-베타 카로틴, 비타민 B 복합제, 아연, 셀레늄 등-를 몇 가지만 더 복용하면 유리기에 의한 신체의 자기파괴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방어무기를 지닌 셈이된다.

하지만 그보다도, 인체가 자기파괴적이라고 믿어야만 할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믿기로는 장수 산업계 전체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유리기가 일으키는 장해는 근원적인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이다. 그것은 날아가는 총알이 방아치가 당겨진 것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신체는 유리기를 당연한 것으로 다룬다.

우리의 신체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맹목적으로 '나쁜' 화학물질과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다. 세포가 수없이 많은 유리기와 수없이 많은 산화방지제를 동시에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본다면 이 두 가지가 갑판 위를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포탄모양이 아니라 DNA의 고도의 지능에 의해 감시와 통제를 받으면서 동일한 환경 속을 떠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 쓰여진다. 유리기가 자학자들의 관심을 그토록 강하게 끄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게를 달고 측정하고 이름붙일 수 있는 물리적 대상을 좋아하는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

유리기가 장해를 일으키며, 사망의 두 가지 주요인인 암과 심장질환과 함께 노화현상과 수상쩍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들이 반드시 세포 내 유리기의 수치가 높다거나 산화방지 물질의 수치가 낮다는 사실이 밝혀진 예는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리기의 장해는 세포 지능 차원에서 엔트로피 쪽으로 무게가 쏠릴 때 일어날 수 있는 한 가지 형태의 불균형 상태에 지나지 알는다는것이다. 만일 신체 지능이 완전히 발휘되고 있다면 무질서와 혼돈이 세포를 공격해 오지는 않는다. 장수의 근본적인 교의-유리기의 장해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는 옳다.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포의 지능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운동-엔트로퍼에 맞서기

엔트로피를 방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의 하나는 신체에 할 일을 주는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는 일과 반대이다. 일의 정의는 '에너지를 질서있게 가하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에너지는냥 흩어져 버린다. 정신적 육체적인 무관심('불사용 증후군)이 조기노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하루 종일 앉아서만 지내는 사람들보다 우울증, 발병, 조기 노화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 은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규칙적인 운동이 모든 연령층에게 좋다는 사실은 충분히 그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생리학자들은 지금까지 근육이 발달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운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믿어 왔었다.

그러나 100세가 넘은 노인을 포함하여 어떤 나이에서건 운동을 하면 근육이 발달하고 힘이 세지고 정력이 강해지는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결론적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것은 남녀에게 모두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운동에 관한 연구가 남성에 대해서만 행해졌지만 이제는 여성도 어떤 연령대에서건 남성과 똑같이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운동이 가져다 주는 특별한 이점 중의 하나는 그것이 이전의 엔트로피 효과를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연방정부에서 큰 규모의 노화 연구소를 지원하고 있는 터프츠 대학의 연구진은 생리적 노화의 주요 증세들을 활동량을 증가시킴으로써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식단을 개선하는 데에 부차적인 중점을 두면 더욱 그 효과가 커진다. ) 터프츠 대학의 두 학자 월리엄 에반스William Evans와 브라이언 로젠버그Brian Rosenberg는 이러한 발견들을 그들의 공저서인 <생체 지표Bidmarkers>속에서 개괄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책의 제목은 현재로서 역전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노화의 열 가지 지표를 말한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제지방체중

체력

기초 대사율

지방질

산소 소비효율

혈압

혈당 내성

콜레스테롤치/HDL(고밀도 리포 단백질) 비율

뼈의 밀도

체온 조절 능력

 

전형적으로 이 지표들은 나이가 들수록 악화된다. 개인에 따라서 다양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터프츠 연구진의 연구결과가 발표되가 전까지는 노화는 다음과 같은 증세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1. 제지방체중:평균적인 미국인은 장성기 이후 10년에 3킬로그램 꼴로 근육을 잃는데 45세 이후로 이 속도는 증가된다.

2. 체력:노인들은 근육과 운동신경('운동단위라 불린다)이 퇴화되므로 체력이 떨어진다. 30세에서 70세 사이에 평균적으로 20퍼센트의 허벅지 운동단위를 잃으며 신체 다른 부위의 대소 근육군도 이와 비슷하게 퇴화된다.

3. 기초 대사율:신체의 대사을(신체가 자체를 지탱하는 데 소요되는 열량)20세 이후부터 10년에 2퍼센트씩 떨어진다.

4. 지방질:20세에서 65세 사이에 근육에 비하여 지방질의 비율 구이 평균 두배로 늘어난다. 앉아서 지내는 생활과 과식은 이 비율이 더 높아지게 할 수 있다.

5. 산소 소비효율:65세까지 신체의 산소 이용효율은 30 내지 40 퍼센트 떨어진다.

6. 혈압:미국인 대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혈압이 꾸준히 올라간다.

7, 혈당 내성:혈중 포도당을 이용하는 능력이 나이가 들수록 떨어져서 제2형 당뇨병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8. 콜레스테롤/HDL 비율:전체 콜레스테를 양은 50세까지 남녀가 모두 올라가는 경항을 보인다. 그리고 심장질환을 막아주는 '좋인 HDL 콜레스테롤이 심장마비 발생률을 높이는 '나늰 나쁜 LBL 콜레스테롤로 대치된다.

9, 뼈의 밀도:늙을수록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가서 뼈의 밀도가 낮아지고 부스러지기 쉽게 되어 골격이 약해진다. 이러한 경향 시이 너무 심해지면 골다공증이 된다.

10. 체온조절 능력 : 체내 온도를 36.5도로 안정되게 유지하는 능력 이 나이와 함에 떨어져서 노인들을 더운 날씨나 추운 날씨에다 약하게 만든다.

 

터프츠 대학의 연구진이 노인들의 이 열 가지 지표 모두를 되돌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운동의 이점을 전적으로 찬양하고 나섰다. 에반스와 로젠버그는 처음의 두 가지 지표-제지방 체중과 체력-가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65 내지 70세까지 지방질이 배로 늘어나고 근육의 반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신진대사상에 있어서 다른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방질이 아닌 모든 조직을 가리키는 의학용어인 제지방체중, 즉 배, 근육, 체내 장기등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오랫동안 노화의 고전적인 지표 중의 하라로 여겨져 왔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청년기를 지나면 10년에 3킬로그램의 제지방체중을 잃는다. 중년 이후에 체중이 자꾸 늘어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는 단지 지방질이 너무 많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터프츠 대학 연구진에게는 진짜 문제는 너무 많은 지방질과 너무 적은제지방질(특히 근육질)의 조합이다. 지방과 근육의 조직은 대사율이 같지 않다. 비교적으로 지방은 훨씬 더 비활동적이다. 지방은 에너지 를 저장하는 조직인 반면에 근육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조직이다.

만일 당신이 선사시대 수렵채취 사회의 인간이었다면 두꺼운 지방질 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용했을 것이다. 저장된 에너지는 기근이들면 몸에 연료를 공급해 주곤 겨울에는 찬 기후에 단열 효과로써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지방질은 생리적으로 매우 비활동적이므로 현대인의 생활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지방질은 자신을 유지하는 데에 근육 조직보다 훨씬 더 적은 칼로리를 요구한다(기타 부위의 제지방체중, 즉 뼈와 체내 기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좀 덜하다). 지방질보다 근육이 많은 사람은 대사율이 높을 것이며 식사량이 많아도 체중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노화학자들은 의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도 근육이 신체의 전반적인 활력과 매우 밀접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에반스와 로젠버그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근육질은 체력과 함께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노년에 근육을 단련함으로써 전반적인 생리상태를 눈에 띄게 회춘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45세 이후부터 제지방질이 감소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므루 터프츠 연구진은 활발한 육체활동은 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회의 통념과는 반대로 45세 이상의 연령층에 대한 본격적인 운동 프로그램에 관심을 쏟는다.

전에는 나이가 들면 근력의 감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 넓었다. 온몸의 근육들은 운동신경에 의해서 중추신경계에 연결되어 있다. 신경과 근육은 함께 '운동단위'를 형성하는데, 생리학자들은 근육조직의 단면을 조사하여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운동단위가 감소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터프츠 연구진은 이러한 경향은 역전시킬 수 있다는 A'실을 결론적으로 증명했다. 60세에서 72세 사이의 남자 열두 명에게 석 달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규칙적이고 엄격한 역기 운동을 시켰다. 그들은 한번만에 들 수 있는 가장 무거운 무게를 최대반복 횟수의 80퍼센트로 훈련받았다. 실험이 끝났을 때 이들의 체력은 극적으로 증강되었다. 대퇴의 사두근은 크기가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소금의 슬와근은 세 배이상 커졌다. 이 노인들은 실험실에서 일하는 25세의 젊은이들보다 무거운 상자를 더 잘 들 수 있었다. 95세 이상의 노인들을 위한 이보다 약한 훈련 프로그램포 이에 못지않게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것이 분명히 시사하는 점은 만년에는 '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은 재점검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근육을 형성시키는 이 운동요법은 전일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생체 지표들까지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한다. 혈압과 혈당 내성이 개선되었고 노인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대사율 감퇴도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며 체온조절 능력도 안정되었다. 육체적인 건강은 전반적인 행복의 정도와도 밀접히 연관된다. 터프츠 대학의 연구진은 그것이 연구의 일차적 목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노인들이 훨씬 더 젊은 기분을 느끼며 종전보다 매우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운동을 해야 할까? 실험실에서는 무엇을 연구하느냐에 따라서 활동의 종류가 매우 달라졌닸 일주일에 세 번 20분 동안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콜레스테롤/HDL 비율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체중,나이, 건강상태 등을 고려하여 운동을 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고대에도 일평생 육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수렵채취 사회의 인류는 키가 크고 꼿꼿했다. 그들은 뛰어난 골격과 근육을 가졌고 그것은 나이가 먹어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관절염이 흔했던 것만은 눈에 띄는 예외이지만 골다공증은 거의 없었다. ) 모든 사람들이 건강했고 일생 동안 육체적으로 왕성히 활동했다.

현대의 미국과 비교해 보자. 건강사업가들이 펑생 건강 개념을 외치고 있는 반면에, 통계수치를 보면 미국 성인의 40퍼센트가 완전히 앉아서 생활하며(이 비율은 노인의 경우에는 훨씬 더 높다) 활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 비율은 단 20퍼센트뿐이다.

 

균형의 가치

 

열심히 일하는 것이 노화를 방지하는 길이라고 결론내리기 전에, 물 리학에서 말하는 '일은 땀흘리고 애쓰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일은 엔트로피의 힘에 맞서서 질서를 창조해 내기 위 해서 필요하다. 운동은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하는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신체에 미묘한 기능의 패턴을 저장해 놓을 수 있게 함으로써 양자적 효과를 가져온다. 운동이 지닌 양자적 성질은 다양한 연구의 단편들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났다. 1960년대에 스웨덴의 생리학자인 벵크트 솔틴Bengt Saltin은 침대에 누워서 완전히 휴식하는 것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를 관찰해 보려고 했다. 중환자에게 들려 주는 상투적인 충고는 누워서 푹 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충고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있었다. 솔틴은 지극히 건강한 사람에서 늘 앉아서 지내는 사람에 이르는 다양한 건강상태를 지닌 다섯명의 젊은이를 3주일 동안 24시간 내내 침대에 누워 있게 했다. 3주일 간이 지난 후 그는 이들이 모두 이전의 건강상태와는 상관없이 20년의

노화와 맞먹는 정도로 산소 소비효율이 감퇴된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것은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부분은 이들에게 하루에 5분 동안만 침대에서 나와서 서 있도록 허락했더니 기능 싱실의 거의 대부분이 예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돌아다니거나 근육을 어떻게든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양자의 힘-중력-에 노출시키기만 해도 그들의 신체가 정상으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최근에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여자 육상선수들을 대상으로 힘든 육체운동이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조사해 보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병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칼슘이나 에스트로겐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뼈가 단단해지게 발육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뼈에 체중이 많이 실릴수록 뼈가 강해지므로 장거리 달리기는 다리뼈의 밀도를 상당히 높일 것이 틀림없다. 뼈가 엷어지는 극단적인 형태의 하나인 골다공증은 노인들에게는 그것으로서 그치지 않는다. 골다공증에 걸리지 않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으면 뼈가 약해진다. 그리고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들 중에서는 여자의 경우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 남자의 경우는 여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고관절 골절을 당한다.

터프츠 노화 센터에서는 젊은 여자 육상선수들과 규칙적인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여성들의 뼈의 밀도를 서로 비교해 보았다. 육상선수들은 운동을 하지 않는 여성들보다 20퍼센트 더 가벼웠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뼈가 더 강했다. 이것은 육상선수들의 다리뼈가 더 많은 일과 무게를 견며 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연구원들은 이들이 체중을 더 받을 일이 없는 팔뼈까지도 역시 더 단단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어떻게인지는 모르지만 전체 골격이 뼈 조직속에 더 많은 칼슘을 저장하라는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양자 차원에서 발신된 화학적 신호(아마도 호르몬 형태를 띤)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양자적으로 말하자면 질서를 조장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엔트로피에 대항하는 데에 유익하다. 생리작용 전체가 하나의 부 엔트로피의 섬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측면에서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을 전일론적인 관점에서 쏟을 필요가 있다. 신체는 자신의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창조와 파괴 양쪽을 다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일만 하는 것은 답이 되지 않는다. 운동은 휴식에 의해 균형이 잡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회복을 위한 휴식도 없이 운동을 하면 근육의 광범위한 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생명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열쇠는 균형이다. 그것은 네 가지의 항목으로 나눌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인 개념이다.

중용은 극단으로 가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규칙성은 지속적안 일상성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휴식은 쉬는 것을 말하며, 활동성은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는 단순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자의식을 지닌 유일한 종으로서 오직 인간만이 이에 대해 의식적인 통제력을 지니고 있다. 하등동물에 있어서 휴식과 활동의 순환은 본능의 명령에 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본능을 그른방향으로 무시해 버리면 우리는 엔트로피를 재촉하는 결과를 빛는다. 이것은 현대인의 가장 나쁜 생활측면에서 드러나 있다. 현대인의 생활은 역설적이게도 육체적 쾌락의 증가와 누적되는 무질서의 혼합이다.

신체가 우리 생활방식의 불균형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하는 충격적인 일례는 우리 사회의 노인들이 가진 가장 흔한 질병이자 다른 모든 질병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큰 사망 원인인 심장질환이다. 1920년대에 들어서 신기할 정도로 우리 사회를 쉽쓴 심장마비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으로서 심장의학이 전문과목으로 등장해 번창했다. 심장마비의 만연은 이후 50년 동안 아무런 거침없이 더욱 악화되었고 1770년대 언제쯤인가부터 마침내 그 기세가 누그러졌을 때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왜 미국인이 전세계에서 오직 핀란드인만을 제뵈하고 가장 많은 관상동맥 질환을 앓는가 하는 의문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존스 홑킨스 의과대학의 창립자이자 금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외과의였던 월리엄 오슬러William Osler는 한 병원에서 10년 동안 임상근무를 하는 동안 심장질환을 표시하는 전형적인 가슴 통증인 협심증을 한번도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7년간 있는 동안 오슬러는 협심증의 사례를 도합 네 번 보았다. 오늘날은 모든 심장전문의들이 한 시간에 그만한 수의 예를 본다. 미국에서 심장 마비가 일어나는 일은 1700년 이후 20년마다 두 배로 늘어났다. 오슬러 다음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심장전문의였던 폴 두들리 화이트PaulDudley White 박사는 심장병의 유행은 20세기 들어서 미국에서 일어났던 두 가지의 변화에 주로 기인한 것이라고 믿었다. , 일상생활의 리듬이 엄청나게 가속된 것과 '전반적으로 영양이 풍부해진 식사,두 가지이다.

'풍부해졌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방질 섭취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1920년대,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는 버터나 크림, 소고기와 같은 음식을 돈많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생활 리듬의 가속은 자동차 사용의 증가에 의한 것이다. 자동차 사용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목적지에 토달하는 시간은 엄청나게 줄어 들었곤 그것은 '조급성 질환the disease of being in a hurry'에 또 하나의 촉진제가 되었다. 이 두 가지의 큰 변화는 분명히 사람들의 물질적 생활 향상에 대한 갈망을 채워 주었다. 양배추와 토마토 대신 소고기를 식탁에 올릴 수 있었던 아일랜드계 이주민은 자신이 가운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이 끄는 마차를 신형 자동차로 바꾸는 것은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되었다.

붉은 살코기와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 달걀과 같이 불포화 지방산을 많이 함유한 다른 음식들의 소비 증가는 특히 불균형한 상태이다. 세계 각국의 심장마비, 동맥경화, 유방암, 결장암 등의 발생률을 지도상에 표시해 보면 거의 모든 병에 대하여 최하위에 머무는 경향이 있는 나라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본, 대만, 태국, 엘살바도르, 스리랑카 등이다. 반면에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등은 상권에 든다. 이번에는 세계 각국이 얼마나 많은 양의 버터, 치즈, 우유, 은 살코기, 달걀 등을 소비하는가에 따라 표시를 해 보면 동일한 분포가 나타날 것이다. 낮은 발병률을 가진 나라는 지방질이 많은 음식의 소비가 매우 적은 나라이며, 가장 기름진 음식을 먹는 나라는 심장발작, 동맥경화, 암 등의 발병률이 파국적으로 높다.

심장혈관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 또한 여가시간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는 더 어렵다.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등의 오락이 최소한 피상적으로나마 운동보다 더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운동은 인위적이다. 20세기에 플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좋든 싫든 간에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미국이 기계화된 사회가 되기 전에는 운동 그 자체만을 위한 운동의 개념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매일의 일상생활이 엄청난 양의 육체적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의 아내 에게 에어로빅을 해 보라고 권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을 것이다. 트랙터와 콤바인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1900년까지도 농사에 사용되는 에너지의 80퍼센트를 인력이 충당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농사일이 기계화된 오늘날에는 농사에 사용되는 총 에너지의 단 1퍼센트만을 인력이 충당한다. 신체가 요구하는 정상적 활동량을 회복하기 위해

서는 육체적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에 우리 모두가 의식적으로 역 실행해야만 한다.

이보다 더 눈에 띄지 않는 다른 변화들이 마찬가지로 두드러진다.

1920년 이전에는 반수의 미국인들이 대부분 농사를 지으면서 작은 마을에 살았다. 그 이후로는 도시 인구가 더 많아졌다. (중상층민들이 농촌지역으로 되돌아가는 움직임이 일부 보이기는 하지만 도시지역으로의 이주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중상층민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공기를 찾아서, 그리고 소음을 피하기 위해서 돌아간다. ) 사람들의 생활은 더이상 해가 뜨고 지는 것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내키는 대로 아무 때나 일어나곤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외기 와의 접촉이 차단된 사무실에서 일한다. 원한다면 밤새도록 일할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고 대개 다른 누관가의 목표에 종속되어 있다. 회사는 시간표와 마감 시간을 정하고 업무와 일의 내용을 배정하고 의사결정권은 소수의 특권층의 손안에서만 효과적으로 관리된다.,

신체의 내재적인 요구에 반하여 현대인의 생활이 이처럼 불균형해져 간다는 사실을 신체생리가 놓칠 리는 없다. 우리의 신체는 자신의 요구가 만족되지 않을 때마다 어김없이 신호를 보낸다. 위장은 너무포만해 있다고 말한다. 일정 강도 이상으로 무리를 가하면 근육은 경련한다. 육체적인 활동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 현대생활에도 불구하고 조급하게 밀어부치지 않고 일상적인 활동을 자연스럽게 따르려고 노력하며 신체의 본능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자연의 리듬을 몸에 익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게 된다.

1965, 지금은 UCLA의 보건 책임자인 레스터 브레슬로Le,iterHreslow와 나디아 벨록Nadia Belloc이 이끈 남부 캘리포니아 연구팀이 앨라메다 카운티 주민들의 노화 패턴을 추적함으로써 균형잡힌 생활방식 전반적인 이점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거의 7,000명의 대상자들에게 현재의 건강상태와 생활방식에 관해 상세한 대답을 요구하는 23페이지에 달하는 설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5년 반이 지났을 때 371명의 응답자가 사망했다. 그들이 처음에 설문에 대답했던 내용을 다시 검토해 본 연구원들은 생존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이점은 그들의 수입이나 건강상태, 유전형질 같은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지극히 단순한 몇 가지의 생활습관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 하루에 7-8시간 잔다.

2. 아침식사를 거의 거르지 않는다.

3. 간식을 먹지 않는다.

 

4. 정상체중: 5퍼센트 이상 표준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며 1020퍼센트 이상 표준보다 올라가지 않는다. (10퍼센트는 여성의 경우, 20퍼센트는 남성의 경우)

5. 규칙적인 육체활동을 한다: 활동적인 스포츠나 오래 걷기, 정원일, 기타의 운동을 자주 하는 것.

6. 술을 절제힌다: 하루에 두 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

7. 흡연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이들이 엄마의 무릎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균형잡힌 습관의 매우 간단한 사항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통계를 분석한 결과 벨록은 이 습관들 중에서 0 내지 3가지를 지킨 45세의 남자는 평균 21.6년의 기대수명을 더 살 수 있고 6내지 7가지를 지킨 사람은 33년의 기대수명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달리 말하자면 무엇을 먹든 간에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 혹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과 같은 아주 단순한 일이 사람의 수명을 11년 이상 연장시켜 준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80세 이상을 산 부모와 조부모를 가진 사람도 기대수명은 3년밖에 더 증가되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에는 누적된 결과는 이처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모든 연령층에서 동일한 양상이 관찰되었다. 최소한 여섯 가지의 좋은 습관을 가진 45세의 여성은 네 가지 이하의 좋은 습관을 가진 여성보다 7.2년을 더 살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것은 55세에 이르러서는 7.8년으로 늘어났다. 이 수치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전반적인 건강의 측면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는 점이다.일곱 가지의 좋은 습관을 다 지킨 중년 후반(55세에서 64세까지)의 사람은 한두 가지의 습관만을 따른 25세에서 34세까지의 젊은이만큼이나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노년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곱 가지의 습관을 모두 지키면, 75세가 되었을 때의 건강은 좋은 습관을 가지지 않은 30,40대의 건강과 비슷했다. 이러한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순전히 규칙성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식사의 내용이나 육체활동의 내용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행한 이와 비슷한 인구조사 결과, 많은 비타민을 복용하고 건강식을 엄격히 지킨 65세 이상의 사람도 기대수명이 별로 증가되지는 않았다. )

UCLA의 연구진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에 좋은 생활방식을 지키고 있다는 점도 알아내었다. 이것은 좋은 생활방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젊어서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노년에 겪는 병의 3분의 2는 예방할 수 있다는 공중위생국의 판단과도 일치한다. 이 연구에서 가장 일찍 사망한 사람들의 가장 흔한 습관은 앉아서 지내는 생활방식과 흡연이었다.

전체적으루 이 연구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들보다 30년 더 젊은 건강상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UCLA의 연구 결과가 발표된 지 거의 30년이 지나는 동안 아무도 이 연구의 중요한 결론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균형잡힌 생활방식은 노화현상을 지연시키는 가장 중요한 단계의 하나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이 균형의 좀더 심층적인 메커니즘을 탐사하여 이렇게 좋은 효과를 더욱 개선시킬 수 있을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인체는 질서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만들어 내는 궁극적인 책임은 각각의 세포에게 있다. 지능이 끊임없이 생명의 균형을 유지시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만 파괴를 막는 비밀은 드러난다.

 

지능의 흐름

생명의 균형을 유지하기

 

인체를 구성하는 분자는 그 자체로서는 지능이 없다. 산소나 수소가단지 인체 세포 속을 순환한다고 해서 더 '명민해'질 것은 없다. 각설탕 속에 불활성으로 들어 있는 당의 분자와 동일한 분자가 약간의 변화를 거치면 DNA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당은 일단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활성화된다. 인체의 기본적인 연료는 글루코스(I), 즉 혈당이다. 이것은 대뇌의 유일한 음식이다. 가스 불꽃으로 각 설탕을 연소시키면 빛과 열, 그리고 기름 같은 탄소 찌꺼기가 나온다.그러나 대뇌 속에서 연소되는 똑같은 당분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모든 생각과 정서를 만들어 낸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실락원 Paradise lost2>베토벤의 9번 교향곡 등이 모두 당이 연소되어 성취해 낸 것이다. 또한 이 책과 여러분이 이것을 읽는 능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DNA, RNA,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효소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몸의 세포는 질서있게 정확히 반응하는 분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오도된 것이다. , 진짜 결정은 보이지 않는 신체의 지능에 의해 내려진다. 그것은 모든 무용 스텝을 고안해 내지만 무 (2)-17세기의 영국 작가 존 밀턴John Milton의 서사시.대 중앙에 나타나기는 좋아하지 않는 안무가처럼 행동한다. 신체의 모든 세포는 DNA가 지시한 대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생리작용은 지능의 작용 이상의 아문것도 아니며 모든 세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작용은 본질적으로 지능이 혼잣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클리브 백스터Cleve Backster라는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는 이 이론을 증명하는 수백 가지의 놀라운 실험을 행했다. 거짓말 탐지기의 기본원리는 피부의 전기반응(피부의 전기 전도성)의 미세한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신체가 긴장상태(거짓말과 관계됨)에 있는지, 이완상태(진실함과 관계됨)에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일한 전기 부하 변동은 겁을 먹거나 각성되거나 할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관능적인 그림을 본다거나 과거의 정신적 충격을 되새기면 거짓말 탐지기는 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놀랍게도 백스터는 신체에서 떼내어 다른 방에 놔둔 세포도 그 사람이 이러한 자극에 반응을 보일 때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입속에서 긁어 낸 약간의 세포를 다른 방에다 두고 거짓말 탐지기에 연결하면, 그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는 세포의 전기 부하에 변동이 없다가 포르노 사진을 볼 때에는 마구 날카로운 변동곡선을 그린다. 그가 사진을 보기를 멈추면 그에게 연결된 그래프는 다시 밋밋하게 되돌아오고 거짓말 탐지기에 연결된 세포도 마찬가지로 되돌아온다.

이 소름끼치는 결과는 거리의 영향은 받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한 실험에서 백스터는 2차 세계대전시 해군 참전용사였던 사람에게 태평양전쟁의 영화를 보게 했다. 전투기가 화영을 뿜으며 추락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의 그래프는 매우 높은 전기적 반응을 보였다. 동시중계 된 비디오 화면을 통해서 나타난 '7마일 떨어진' 곳에 있던 그의 구강 세포의 그래프도 동시에 갑작스러운 변동을 나타내었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사람은 몸소 전투에 참가했었곤 적기의 총격에 격추되는 전투기들을 목격했었다. 그 공포스러운 기억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몸의 모든 세포가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능이란 추상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알려지려면 반웅이 관찰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대뇌는 말과 개념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지능을 알린다. 우리의 몸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분자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지능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지능이 어떻게 서로 섞여드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혹적이다. 그 전체 작용은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경계가 흐려지는 양자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다음의 간단한 예가 보여 주듯이 지능의 근원에서는 생각파 분자 간의 차이가 매우 미세하다.

 

정보로서의 신체

레몬을 깨물면 레몬 과즙은 즉시 혀 밑에 있는 타액 분비선으로 하여금 아밀라아제amylase와 말타아제maltase라고 불리는 두 가지의 소화효소를 분비하게 한다. 이 효소들은 레몬 과즙 속에 있는 당분을 소화시키기 시작하여 그것을 위 속의 좀더 복잡한 소화액에게 넘겨 준다. 여기에는 신비할 것이 별로 없다. 입 속에 음식이 들어오면 저절로 소화작용이 촉발되는 것이다.

그런데 레몬의 모습을 마음 속에 떠올리거나 '레몬'이라는 말을 세번떠올린다면 어떻게 되나? 소화시켜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역시 입 속에 침이 고이고 동일한 효소가 분비된다. 대뇌에서 보낸 메시지가 실제로 음식이 입 안에 들어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말과 이미지가 '진짜 분자와 똑같이 생명작용의 진행을 유발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하나의 순환고리로 그려 볼 수 있다.

메시지는사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그것을 사물로 꾸어 놓는다. 이것이 자연이 물질적 현실이라는 환상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유물론적인 경향이 분자를 생명의 근원으로 보도록늘 압력을 가한다. (금방 죽은 몸도 전량의 DNA를 포함하여 죽기 전의 몸이 지녔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분자을 지니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무시하고 말이다.) 우리는 레몬 주스는 진짜이고 '레몬'이라는 말은 가짜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타액이 말을 소화시키는 것은아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늘상 메시지를 소화시키고 있다. 레몬주스의 분자들은 혀의 미뢰에 있는 수용체에 들어맞게 되면 메시지를 대뇌에 보내곤 미뢰는 반응 메시지를 타액 분비선에 보내 타액 분비를 유발한다. 연계에서 이 변환보다 더 기적적인 것은 없다. 이에 비한다면 금으로 변하게 하는 것은 별것 아니다. 납과 금은 몇 개의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를 약간 재배치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랑해요기는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할 때에는 이보다 훨씬 더 놀라운 변성이 일어난다.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있는 감정이 당신의 피 속으로 밀어닥치는 아드레날린 분자로 변환된 것이다. 이것은 다시 심장세포의 외부에 있는 수용체를 활동시키고 그것이 다시 각 심장세포에게 사랑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정상보다 빨리 수축 하는 것이라고 말해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체가 자신이 변화된 것을 느긴다는 점이다. , 당신이 사랑받고 있으며 당신이 기쁨과 가뿐한 기분을 느끼며 세상이 더욱 생기있어 보이고 모든 일상의 문제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왜 적절한 반응일까? 신체가 대체 어떻게 '사링이란 말이-'사팅이나 '사잉이 아니리-심장이 뛰는 기쁨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을까? 이 신비는 생리학, 의학, 심리학, 화학과 물리학의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으로도 풀 수가 없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심장은 유전자로부터 보내오는 일련의 메시지에 의해 물리적 손상으로부터 보호되는데, 이 메시지는 양자의 춤 속을 이리저리 누비는 아원자적 메시지 로부터 형성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하는 언어는 암암리에엄청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어린아이들이 부모가하는 규범적인 말(예컨대 '식사 전에는 꼭 손을 씻어라, '장남감을 입에 넣지 마라, '학교에 늦지 마라는 등)보다는 규정적인 말들(예컨대 '넌나쁜 애야, '넌 거짓말쟁이야, '넌 네 언니보다 머리가 나빠 등)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달리 말하면, 아이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해 주는 것보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심신 체계는 실제로 이러한 언어적 경험을 둘러싸고 자신을 형성시킨다. 그리고 말로써 가해진 상처가 육체적인 상처보다도 휠씬 더 영구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말로써 우리 자신을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젊다 혹은 '늙었다라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두 가지의 말을 살펴보면 이것은 특히 중요해진다. '너무 피곤해서 할 수가 없어기는 말과 기는 너무 늙어서 할 수가 없어가는 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앞의 말은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잠재의식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있다. 지금 당신이 피곤하면 나중에는 다시 힘이 나서 피곤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무 늙었다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확정적인 말로들린다. 왜냐하면 서양 문화권에서는 늙는다는 것은 직선적인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며 낡은 것은 다시 새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의식을 프로그램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늙었다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노년에는 더 많은 문제와불만이 쌓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젊음을 그 특별함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모든 문제가 닥쳐오기 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 찬양한다. 음에 관한 미국의 통찰적인 책인 글띤의 파도Age Wav팃에서 젠 디히트발트Ken Dychtwald는 이렇게 쓰인 생일카드를 읊는다.

() 늙었다고는 생각 마세요 당신 나이의 친구가 있어요.

()...끄는 상태가 좋은 날에는 아직도 혼자 힘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답니다.

이런 식의 블랙 유머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면으로 대하면 압도되어 버릴 수도 있는 근심을 약간만 노출시킴으로써 웃어 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재미있든지 혹은 그저 우울할 뿐이든지 간에 이 농담은 다른생일카드에는 나쁜 말이 씌어 있다는 불만을 암시한다. "당신은 이제30 고개를 넘었어요 이제 다시는 좋은 시절이 돌아오지 않아요" 이메시지가 내놓고 말하는 것은 늙음이란 심히 한탄스럽다는 것이며,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서글픈 사실은, 노화의 좋은 모델이 없음으로 인해서 우리의 사회가 늙음이란 말에다가 편견의 옷을 두껍게 입혀 놓았다는 것이다.

디히트발트는 늙음과 젊음을 서로 반대의 극에다 놓은 결과를 이렇게 명시한다.

젊음이 좋은 것이라면 늙음은 나쁜 것이다.

젊음이 모든 것을 가졌다면 늙음은 그것을 잃는 것이다.

젊음이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것이라면 늙음은 둔감하고 고착된 것이다.

젊음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늙음은 추한 것이다.

젊다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고 늙는다는 것은 지겨운 것이다.

은이는 열정으로 가득하고 늙은이는 관심 밖에 난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늙은이는 우리의 과거이다.

이러한 양극성에 대처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방식은 영원히 젊음으로 남아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신체가 잡지 표지와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고 있다. 대중광고에 비추어서 판단하자면 미국은 황홀한 미소와 탄탄한 근육과 탄력적인 피부를 지닌 30세 미만의 사람들만 사는 천국이다. 그러나 영원한 청춘의 나라 미국의 이미지는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19836월 현재 미국에는 10대보다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더 많았다. 그것은 곧 우리의 청춘은 이미 10년 쩐에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젊음''늙음을 양극에 대치시켜 놓고 젊음을 긍정적인 쪽에다 두고 있는 가치체계와는 화해하기가 어렵다. 젊음을 인생의 이상으로 부추기는 것은 동전의 한쪽 면이다. 다른 한 면은 노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인구의 16퍼센트가 65세 이상인데 비해서 텔레비전에 나로는 인물들의 단 3퍼센트만이 65세 이상이다. 노인들은 광고 모델로 거의 기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무례한 일로 간주되는 사회적 조건에서는 설사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몇 살을 빼고 말한다. (반면에 나이를 인정받는 중국과 같은 나라들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나이를 몇 살쯤 덧붙여 말한다.)

디히트발트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현대에 와서 전에 없이 건강한 성숙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기발랄하고 정력적이며 성적 매력이 넘치는 젊음의 이미지는, 무기력하고 경직되고 과거에 매달려 있으며 성적으로 무력하며 이창조적이고 불쌍하고 병들고 느려 빠진노인네들의 이미지를 그 그림자로서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불명예스러운 말들이 노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 같은 규정적 언사가 어린아이들에게 죄책감, 수치감, 무가치함을 느끼게 만드는 규정적인 말만큼이나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말은단순한 상징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생체정보를 보내는 방아쇠이다.자세히 살펴보면 '젊다'는 말은 젊음과는 실제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여러 가지 것들을 대신하는 상징어이다. 가장 높은 범죄율, 마약, 알코올 중독, 자살, 정신분열, 사회불안 등이 젊은 층에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징 적 이상이다.

원하기만 하면 우리는 늙음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은 긍정적인 가치를 가져다 붙일 수 있다. 솔로몬 왕조 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구약 속의 한 구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가슴 속의 기쁨은 사람의 생명이며 희열은 그에게 수명을 주도다.

다른 문화권들, 특히 오래 산 사람을 존경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더큰 가치가 부여되는 그런 문화권들에서는 오래 사는 것이 최대의 희열을 의미한다는 동일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위대한 목판화가인 호쿠자이는 나면서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여섯 살에 그림을 능숙하게 그렸다. 그러나 그는70세에 이르기 전까지는 자신의 솜씨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그는 "여든이 되면 나는 상당한 기량을 지니게 될 것이고 100세가 되면 최고가 될 것이며 110세가 되면 나는 하나의 선, 하나의 점에 인생을 담아 낼 수있을 것이다. "라고 내다보았다. 호쿠자이는 110살까지 살지 못했다.그는 아흔이 되던 1849년에 죽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나이를 많이먹었어도 최고의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믿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늙었다'는 말은 무질서와 나약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은 무질서란 불균형의 결과로서 어떤 나이에서나 생길수 있다. 70세 된 조깅하는 사람은 앉아서 생활하는 45세의 사람보다 면역체계가 더 나을 가능성이 많다. 두뇌가 노화되면 노인성 치매증에 걸린다는 우리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노인들은 전혀 기능의 이상을 보이지 않으며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다양한 창조적 능력을 더욱 성숙시켜 간다. 1992년에 99세의 놀라운 피아니스트인 미치슬라프 호르조프스키Mieczyslaw Horszowski100회 생일 기념 연주회를 카네기 홀에서 가지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토스카니니, 호로비츠, 루빈스타인, 세르킨 등치 거장들이 80, 혹은 90회 생일에 연주회를 가졌던 초랜 전통을 따른 것이다. 우리는 창조적인 천재들이란 모차르트 처럼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던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창조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가장 오랫동안 경륜을 친 사람은 대개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이다.

'늙음과 '젊음이라는 그릇된 이원론을 넘어서면 거기에 보이는 것은 색다른 현실이다. 신체란 끊임없이 주고 받는 메시지의 회로망이다.어떤 메시지는 우리를 살찌게 하여 지탱시켜 주며 다른 메시지는 무질서와 쇠퇴로 이끈다. 생명을 살찌우는 경험은 세포생리학의 차원을 넘어서 멀리까지 영향을 미친다. 첫걸음마를 하는 아기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부드러움은 아기의 신체를 살찌운다. (엄마의 사랑을 하루라도 받지 못한 아이가 얼마나 기운을 잃는지를 한번 살펴보라.)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의 재치있는 격려의 말이 따뜻한 점심식사만큼 이나 중요하다. 어깨가 펴지게 해주는 것은 비타민 D가 든 우유일까,자신감일까?

성년이 되면 동료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얻는 것이 콜레스테를치를 조절하는 것만큼이나(그리고 당연히 그보다 더)효율적으로 심장질환을 막아 준다. 타인의 존경은 심장으로 하여금 신뢰감과 확신감을 느끼게 하며, 이 두 가지는 건강한 신체 속에는 반드시 들어 있는 성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기본적인 행복과 성취를 위해서 내리는 판단은 곧 우리가 어떻게 노화하는가를 결정하는 판단이 된다.

영양공급이야말로 생리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의학계에 대두되어 왔다. 갓난아기를 부드럽게 만지고 쓰다듬어 주면 성장호르몬치가 올라가고 운동신경을 보호하는 피막인 미엘린myelin이두꺼워진다. 엄마가 아기를 사랑스럽게 꼭 껴안아 주면 그것은 곧바로 생명을 떠받치는 생화학 반응으로 번역된다. 갓난 붉은털원숭이를 어미에게서 떼내어 어미 대신 젖병이 달린 철사로 만든 인형과 젖병이 없는 부드러운 천인형을 놔두고 실험을 해 보았다. 새끼 원숭이는 젖이 없어도 언제나 부드럽고 따뜻한 '엄마 쪽에만 매달렸다. 정서적인 양분을 갈구하는 본능이 물질적인 양분을 갈구하는 본능보다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체의 음악

 

사람은 어떻게 하여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환경의 거친 조건 속에서 대답하기에는 애매하고 곤란한 질문이다. 어떤 두 사람도 똑같은 삶을 살지는 않으며 심신체계 속에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렇지만 모든 사람의 신체 내부 지능을 지배하는 기본규칙은 존한다.

 

1. 지능은 흐르게끔 되어 있다.

2. 지능의 모든 자극에는 그와 대응되는 육체적 상응물이 있다.

3. 신체는 복잡한 리듬과 주기를 통해 균형을 유지하며 이 생리리듬은 우리를 자연계의 더 큰 리듬과 연결시켜 주는 연결고리이다.

4. 신체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평안감의 신호를 외부로 보내며, 균형을 잃었을 때에는 불안감의 신호를 보낸다. 평안감은 그 사람이 자신의 환경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 있음을 가리키며, 불안감은 뭔가 부조화스러운 상태가 생겼다는 것을 가리킨다.

5. 신체의 리듬에 조화되게 생활하면 생리정보가 마찰없이 잘 흐르게 함으로써 엔트로피를 극복하게 되며, 신체의 리듬에 거슬러서 생활하면 엔트로피가 증가되어 무질서 상태를 일으킨다.

 

나의 의도가 내 주위의 환경과 조화롭게 살려는 것이라면, 그 의도가 성공했음을 알려 주는 최선의 유일한 척도는 내 몸이 편안하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너무나 많은 경험을 거쳐가기 때문에 평안감의 실질적인 근거를 자각하기가 어렵다. 많은심리적 . 육체적 요인들이 존재의 매순간 속에 뒤섞여 있다. 그러나 자연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놀라을 정도로 비슷한 리듬과 주기로써 우리를 생리적으로 프로그램시켜 놓았다. 시간생리학chronobi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일상생활 속의 이러한 주기들의 영향을 연구해 왔다. 미네소타 대학의 의과대학 교수인 프란츠 홀버그Franz Halberg 박사가 창시하고 명명한 이 시간생리학은 우리의 신체 속에는 우리가 공명시킬 수 있는-또 그래야만 하는-음악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이 글을 읽기 위해서 안구를 움직이려면 십여 가지의 동작이 완전한 정밀도 속에 조화되어야만 한다. 세포막을 드나드는 칼륨과 나트륨 이온에 의해 발생하는 전기부하가 망막세포와 대뇌신경에 초당수백 회의 펄스를 일으킨다. 뉴런(신경세포)과 뉴런 사이 연접부의 틈인 시냅시스synapsys는 시각피질 전체와 시각신경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신경전달물질을 연사하고 안구를 움직이는 미세한 근육이 화학물질의 방출에 의해 마치 공회전하는 엔진처럼 끊임없이 움직인다. 또한 이 모든 세포의 움직임은 양자 차원의 원자'시끼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진동에 의존한다.

바이오리듬은 의학적으로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모든 사람의 체온은 하루의 주기를 가지고 있고, 호르몬은 하루의 주기와 달의 주기, 그리고 계절적인 주기가 복잡하게 서로 얽힌 주거 속에 움직인다.(예를 들어 성장호르몬은 날마다 바뀌곤 여성의 월경 주기는 1개월 단위의 호르몬 주기를 따른다. ) 류머티스 관절염은 신체의 천연 소염제가 적어지는 아침에 가장 통증이 심하다. 이때가 아스퍼린이나 기타 의 진통제를 복용하기에 가장 알맞은 때이다. 혈압과 아드레날린치는 아침에 가장 높아진다. 이것은 심장발작이나 뇌졸중이 주로 오전 아홉 시에 잘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천식의 경우에는 아침보다 늦 저녁에 기관지가 더 수축된다. 환자 개개인의 주기를 연구함으로써 질 병을 예방할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신생아들은 성인이 되어서 고혈 압에 걸릴 것을 예고하는 혈압 주기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유방에 파동성 열이 나는 것은 종양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홀버그 박사는 수술이나 화학요법을 행하는 시기가 병의 예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냈다. 예를 들면, 월경 1주일 전이나 월경 전후에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여성 환자는 월경이후 7일에서 20일 사이에 수술받은 환자보다 재발 확률이 네 배나 더 높고 10년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뉴욕의 앨바니 의료 센터에서 향한 예비적 단계의 연구 결과에 의한 것이다. ) 그 이유는 아마도 여성의 월경 주기를 전후로 해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면역체계를 억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월경 주기 사이의 기간에는 면역세포가 활동하여 수술로써도 제거되지 않고 돌아다니는 악성 세포들을 잡아서 파괴시킨다.

휴스턴의 텍사스 대학 연구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신체의 바이오 리듬에 맞추어서 화학요법의 시기를 정하는 것도 방광암, 대장암, 췌장암, 난소암 환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는 다른 행동양태를 지니고 있으므로 암세포가 활동을 하고 정상세포가 활동하지 않을 때 투약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투여량이 줄어들므로독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하루의 여러 시간대에 여러 가지 중요 신체기능들을 면밀히 시험해 본 후 시간생리학자들은 최대효과 시간표를 만들어 내었다.

 

아침

의식의 경각성이 점점 날카로워진다.

단기적 기억력이 최대이다.

알레르겐(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에 대한 감수성이 저하된다.

성 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된다.

 

정오

체온이 최고로 올라간다. 경각성이 계속 높아진다.

기분이 가장 좋아진다.

시력이 가장 예민해진다.

 

오후

수작업 능률이 최고이다.

유연성이 가장 좋아진다.

장기적 기억력이 최대이다.

 

늦은 오후/이른 저녁 .

단순한 반복작업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운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미각과 후각이 가장 예민해진다.

알레르기가 가장 심한 시간이다.

 

저녁

체중을 줄이고 싶다면 가장 주의해야 할 시간이다.

신진대사율이 최저로 내려간다.

 

자정에서 새벽까지

3시에서 6시 사이에 경각성이 가장 저하된다.

사고 위험이 가장 높다.

출산률이 가장 높다.

 

이 시간표를 정확히 지켜서 생활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지에 대해서 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신체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저절로 25시간의 주기(서캐디언 리듬circadian rhhm으로 알려져 있다)로 잠자고 일어나고 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무리없이 24시간 주기로 잠자고 일어나고 하는 것이 방해받지는 않는다. 야간 교데 근무자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그들의 신체가 기상 . 수면 주기의 역전에 결코 완전히 적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간 근무자들은 주간 근무자 들보다 감기와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더 많고 면역체계가 만성적으로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믿기로는, 바이오리듬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점은 그것이 역동적인 항상성의 기반이 된다는 점이다. 나는 신체가 무질서에 대항하기 위해서 유지해야만 하는 상반되는 성질 간의 균형을 설명하는 데에 이말을 사용했다. 우리는 균형잡힌 주기 속에서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여야 한다. 당신이 마라톤 경주를 하기로 했는데 당신의 몸은 '정상상태'의 기능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곧 쓰러지고 말 것이다. 맥박수가 높아지고 체온이 올라가고혈압이 높아져야만 뛸 수가 있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미약한 열 증상과 빈맥,그리고 고혈압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한 상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리고 달리기를 멈추고 쉴 때 다시 평형점으로 회복되는 한, 달리기를 하는 상태에서는 너무나 정상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드나드는 균형과 불균형의 조수에 이리 저리 밀리고 있다. 매초당 수십 가지의 신체 기능들이 흔란되고 있다. 이것은 건강에 대하여 어떤 고정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뜻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케스트라를 한 화음에서 멈추게 해 놓고 그 교향곡을 함부로 정의하려고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수십 가지의 변화요인과 경험의 앙금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율동적인 패턴으로 우리의 몸을 지나가는 음식과 물과 공기의 흐름이 마치 해변의 모래언덕처럼 쌓인다. 정상구조와 움직임, 즉 고정된 것과 변하는 것이 모두 중요하다. 의사는 당신에게 휴식 상태에서 맥박수가80이고 혈압이 120/70이며 체온이 섭씨 37도로 모두 정상치라고 말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순전히 편이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한 측정치는 오직 그것 을 재는 순간, 즉 살아 있는 신체의 음악을 만들어 내며 균형점 주위를 돌아가는 춤사위의 포착된 순간동작 속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음악이 끊길 때

 

노화란 신체의 여러 가지 중요한 균형점이 상실되는 것을 상징한다. 노인들은 매우 덥거나 춥거나 한 상태로부터 체온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이 전보다 더뎌진다는 사실을 자주 깨닫게 된다. 또한 균형 감각이 손상되어 걸음을 걷기가 힘들어지고 혈당치와 호르몬치, 신진대사율 등이 균형을 잃는다.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화현상 중 가장 악성의 불균형 현상인 고혈압에 주목해 볼수 있다. 고혈압은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평균 20년의 수명을 단축시키므로 어떤 단일 질병보다도 훨씬 더 치명적이다. 고혈압은 질병이 아니라 신체의 자연스러운 리듬의 주기가 흐트러진 것이다. 혈압은 뇌에 의해서 조정되는데, 뇌는 신체 내 외부의 모든 종류의 신호에 반응하여 하루 단위로 오르내리는 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혈압

을 잰다는 것은 마치 오락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스냅사진으로 찍는 것과도 같다. 자신의 혈압 주기의 고저치를 어렴풋이나마 알자면 충분한 시간 간격으로 최소한 세 번은 혈압을 재 보아야만 한다. 이것은 제대로 하자면 며칠이 걸리는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의 혈압은 높아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한번 올라간 혈압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혈압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고 주기적인 고저의 변화가 흐트러져서 고혈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노인들에게는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어서 예측할 수 있는 일반적 양상을 따라서 진행된다. 다음은 남성의 20세에서 70세까지에 해당되는 표이다.

 

남성의 평균 혈압

 

20122/76

30125/76

40129/81

50734/83

60140/83

70148/81

 

이 표는 최대혈압과 최소혈압이 모두 꾸준히 증가되어 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단지 최소혈압은 증가속도가 최대혈압의 반이다. (여성의 경우에도 증가 속도는 좀더 느리지만 같은 경향을 보인다. ) 이러한 증가 현상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신체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일시적으로 이보다 좀 높은 수치를 보이는 것은 괜찮지만 늘 120/80의 범위를 지켜야만 한다.

의학적으로는 보통 140/90을 넘어서는 것을 고혈압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평균적인 남성은 70세 이전까지는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6,000만 명의 미국인(전체 성인의 약 3분의 1)들이 이미 고혈압의 문턱을 넘어서 있어서 약간만 악화되어도 위험스러운 상태이다. 고혈압과 관련된 사망 중에서 반수는 혈압이 130/90 범위 에 있는 '경계선의 환자들에게서 발생한다. 30대의 많은 남성들이 이미 이 범위에 들어서 있다. 건강한 사람에 비해서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이듬해에 사망할 위험성이 두 배 높고 심장마비로 사망할 확률은 세 배 높으며 심부전증에 걸릴 확률은 례 배나 높고 뇌졸중에 걸릴 위험성은 일곱 배나 높다. 신체 내부의 균형을 잃음으로써 치르는 대가는 매우 값비싼 것이다.

혈압을 올라가게 하는 요인을 열거하자면 매우 길고 광범위하다. 신체를 심하게 부리면 혈압은 올라간다. 정서적인 스트레스와 불안도 같은 결과를 가져을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아무런 영향이 없이도 하루의 어떤 시간이 혈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고혈압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복잡한 문제 중의 하나는 사람에 따라 최고치가 밤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 그러나 90퍼센트의 고혈압 환자들은 '본태성' 고혈압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한 상태의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일단의 연구진이 정상 혈압을 가진 비서, 간호사, 월 가절의 증권중 매인들에게 휴대용 모니터를 지니고 있게 했다. 이 모니터는 전형적인 일상의 일들이 정상혈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지속적으로 읽어서 보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진은 어떤 고정된 수치로서 말할 수 있는 정싱상태란 허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서가 상사에게서 야단을 맞을 때, 간호사가 총상을 입은 응급환자를 처치할 때, 증권 중매인이 불투명한 시장정세 속에서 목청껏 입찰에 임하고 있을 때는 혈압이 마치 로켓처럼 치솟아 올라갔다. 그것이 얼마나 올라가는지는 사람과 스트레스의 내용에 따라 달라졌다. 그 고혈압 상태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 하는 것 또한 사람에 따라 달랐다. 응급사태가 일어난 지 여섯 시간이 지나 표면상으로는 저녁상 앞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데도 간호사는 여전히 고혈압 상태로 있을 수도 있다. 몸에 관한 한 그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은 스트레스 그 자체만큼이나 생생했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기억은 정상적인 주기를 흐트러트려 균형이 깨어지게 한다. 그것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대신 거기서 약간 벗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그 결과는 역동적인 불균형상태가 된다. 오르내리는춤사위는 계속되지만 약간씩 선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로화에 적용한다면 다음과같은 간단한 다이어그램으로 옮겨 놓을 수 있다. 표시하며 신체의 지능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것은 통째로 위치가 이동되었다가 신체가 휴식상태로 되돌아오면 원래의 위치로 회복된다. 위와 같은 상태를 당신이 20세였을 때의 상태라고 해보자. 당신이 60세가 되면 그림은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을 때에도 스트레스 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휴식상태

휴식상태와 스트레스 사이의 차이는 이제 훨씬 더 커졌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지나가도 몸은 여전히 그 영향을 느낀다. 균형점들은 스트레스의 기억을 너무 많이 가진 나머지 위치가 이동되어 있다. (육체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여러 가지 세포들에 손상을 입힌 것이며, 주관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그 사람은 기운이 없어지고 장해가 시작된다는 모호한 느낌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커지는 것이 다. ) 오른쪽으로 쏠린 점들은 노인네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걷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 구부정한 모습은 그들의 생리기능을 파괴하고 있는 불균형상태를 나타내는 것만 같다. 마침내 사망에 이르면 균형은 무너진다.

사망에 이르는 과정

흩어진 점들은 질서있는 상태로부터 흐트러지는 균형점들을 나타낸다. 이것은 신체의 지능이 균형점들을 더이상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망에 가까워지면 신체는 전반적인 불균형상태에 매우 접근해 있어서, 질병이나 정서적인 충격, 혹은 단순한 일상적 문제등의 형태로 약간의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생명의 청사진인 정보의 허약한 회로망에 지나치게 큰 충격을 주게 된다. 균형점들은 중요한 부분에서 헝클어져 버리기 시작하여 맥박이 불규칙하게 모르내리고 면역체계가 망가지며 궤양이 심해져서 구멍을 낸다. 역동적인 항상상태는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죽음에 이르면 균형점들은 무질서 속으로 흩어진다. 엔트로피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파국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신체의 균형 본능을 유지시키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혈압이 자율신경계에 의해서 조절된다는 사실은 한때 의사들로 하여금 혈압은 의식적인 지배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이라고믿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바이오피드백, 명상, 최면술, 그리고 기타의심신상관 기법들에 관한 30여년간의 연구는 마음이 자율기능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음을 밝혀 내었다. 그보다 더 깊은 의문은 불규칙한 혈압과 같은 한 가지의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연 노화와 같은 그보다 광범위한 현상도 조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늙어갈 때마다 백 소리를 울리는 바이오피드백 장치를 아무에게나 갖다 댈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신체에는 노화과정을 직접적으로 반영해 주는 매우 광범위한 기반을 지닌 주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호르몬 주기이다. 이 전령 분자들은 우리 내부에 순환되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운반해 준다. 이 호르몬의 균형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정보의 흐름 또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신뢰할만한 지표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중요한 연령상의 변화의 대부분이 스트레스로 인하여 분비되는 호르몬에 의해서 조정되며, 스트래스 를 조절함으로써 그것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조사해 나갈것은 바로 이 가능성이다.

보이지 않는 위협

노화, 스트레스, 신체리듬

 

생리학자들은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매우 빨리 노화된다는 사실을 5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생쥐를 전극 위에 놓고 전기충격을 가하면, 치명적인 수준으로 전압을 올리지 않아도 죽어 버린다. 임의적인 간격으로 약한 충격을 가하기만 해도 쥐는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그럴 때마다 쥐의 몸은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그런 식으로 며칠간 스트레스를 받으면 쥐는 죽어 버리고, 그 조직을 해부해 보면 노화가 촉진된 많은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충격 자체는 약했으므로 죽음의 원인은 외부의 스트레스가 아니라 쥐의 반응 때문이다. 쥐의 신체 깨는'스스로를 죽인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인간도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뎌 낼수 있지만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의 스트레스 반응은 자신의 신체에게로 방향을 돌려 정신적 . 육체적 파괴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극도로 높은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상황인 전쟁에서는, 최전방의 군인은 전투에 너무 오래 시달리면 모두 기억상실증이나 전투치매증에 걸려 버린다. 이 두 가지 증후군은 모두 신체의 저항 메커니즘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신호이다.

인간의 두뇌는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호랑이를 대적했던 때와근본적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스트레스에 대처하도록 프로그램된 원시기억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쏘겠다고 위협하면 당신의 상태는 즉시 극적으로 전환하여 극도의 경각상태가 된다. 만반의 태세를 갖춘 방위반응fight-or-flight reaction3이 몸 전체로 팽창하여 행동을 준비하게 한다. 대뇌로부터 보내진 경고의 메시지가 부신피질로부터 아드레날린을 뿜어나오게 하며, 그것은 혈관을 타고 흘러서 신체의 평상적인 상태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체세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재생을 위해서 보낸다. , 90퍼센트의 세포 에너지는 새로운 단백질과 DNA, RNA 등을 만들어 내는데 쓰인다. 그러나 대뇌가 공포를 인식하게 되면 물질을 새로 만들어 내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어진다. 방위반응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기로 결정하든 간에 우리의 몸은 근육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요구한다.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신체를 조직하는 정상적인 대사방식, 소위 동화작용은 그와 반대로 역전환되어 조직을 파괴하는 이화작용으로 바뀐다.

아드레날린은 반응의 연쇄작용을 촉발한다. , 혈압이 오르고 근육은 긴장하고 호흡은 약해지고 빨라진다. 성욕과 식욕은 억제되고 소화 작용이 멈춘다. 두뇌는 초긴장하여 감각들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전쟁과 같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병사들은 자신의 호흡 소리가 풀무질 소리처럼 크게 들리고 접근해 오는 적군의 눈이 접시만큼 커져 보인다. ) 일시적인 방편으로서 스트레스 반응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적당한 시기에 끝나지 않으면 이화작용의 결과는 재난을 불러온다. 스트레스에 의한 각성상태는 그것이 오래되면 특정한 장애를 야기한다.

 

(3)-갑작스런 자극에 대하여 자기의 행동반응을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

에너지 동원 피로, 근육 파괴, 당뇨병

심근 에너지 증가 스트레스성 고혈압

소화부진 궤양

성장부진 심인성 왜소발육증

재생부진 발기불능, 성욕상실, 월경불순

면역반응 부진 발병위험 증가

지각과 사고가 예민해짐 신경세포 손상, 혹은 사망

 

스트레스의 장기적인 결과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점은, 이것을 전체 적으로 보면 노화현상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고혈압, 위궤양, 발 기불능, 근육쇠약, 당뇨병 등은 노화의 일반적인 신호이다. 노인들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며, 노쇠현상은 대뇌의 신경세포 손상이나 상실과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서 로 관련이 없는 증상들로 보이지만 이들은 스트레스 반응의 극단적인 결과로 귀결된다. 스트레스를 연구한 사람들은 각성상태가 스트레스가 시작될 때에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위협에 대한 노출이 없

어지지 않으면 각성상태는 기진상태로 바뀐다. 왜냐하면 신체는 자신 이 조직과 에너지를 비축하는 정상적인 신진대사 작용으로써는 회복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노인들은 삶의 고투에 너무 시달린 나머지 기진하여 전투치매증 환자처럼 되어 버린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스트레스 반응이 점진적으로 약해지는 것이 일 반적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로부터 회복하는 데에 시 간이 걸리고 강한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젊은 사람이 슬픔으로 죽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 우가 많아진다. ) 이처럼 반응이 약화되는 경향은 직선적인 저하가 아니라 지수함수적으로 배가된다. , 늙어서 한 해의 나이를 먹는 것은 중년에 두 해의 나이를 먹는 것만큼이나 스트레스 반응의 퇴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매우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여섯 달과 맞먹게 될수도 있다. 결국 균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본능이 완전히 와해되어 아주 미약한 스트레스-한 차례의 감기를 앓거나, 가볍게 넘어지거나,돈을 조금 잃어버리거나 하는 등-에도 극히 견디기 어렵게 된다.

스트레스가 우환의 원인으로 거론될 때마다 사람들은 성급하게 문제는 스트레스가 과도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사실상 문제는 신체의 방어체계에 숨어 있다. 너무 많은 충격 때문에 죽는 쥐가 좋은 예이다. 만일 쥐에게 충격에서 회복할 시간을 주었더라면 쥐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충격의 빈도가 생리기능에 파도한 무리를 가했고 결국은 정상상태로 되돌아갈 능력을 소모시켜 버린 것이다.

한스 셀리에Hans Selye1930년대에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도입했을 때, 육체적인 손상이나 굻주림, 열기나 냉기에 노출되는 것, 혹은수면부족과 같은 강한 외부적 스트레스 요인은 그것이 가해질 때마다 동일한 스트레스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두 마리의 원숭이에게 오랫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이들의 몸은 글루코코르티코이드glucocorticoid라고 하는, 지금은 우리에게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잘 알려져 있는 물질을 분비함으로써 이에 반응한다. 굶주림에 몹시 지치면 원숭이의 몸은 생존을 위해서 근육을 분해하기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 원숭이에게 영양가가 전혀 없는 인공감미료를 탄 물을 먹이면, 영양을 섭취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원숭이의 글루코코르티코이드치는 올라가지 않는다. 원숭이는 상황이 개선되었다고 '인식한다. 원숭이의 몸에는 이것이 굶주림의 위협은 지나갔다는 충분한 신호가 되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는 이 놀라운 발견의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였다. 어떻게 가짜 음식이 진짜를 대신할 수가 있는가? 내 생각에는, 이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원숭이가영양을 섭취했다 고 속으로 느꼈고 원숭이의 몸은 그러한 만족스러운 인식을 음식으로 서 받아들인 듯하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의 이론은 심신의 상관관계를 포용하도록 수정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해석이나 믿음, 태도 등이 스트레스 반응의 실제 작용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게 관여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의 단계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우리의 반응에는 세 가지 단가 있다.

1)스트레스를 주는 사건

2)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

3)우리 몸의 반응 같은 것들이다. 스트레스 반응을 다루기 힘들게 하는 것은 그것은 일단 시작되면 마음의 지배권을 벗어나 버린다는 점이다. 차가 밀리는 길에 멈춰 서 있거나, 근무중에 잔소리를 듣는과 같은전혀 부적절한 상황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의도대로-맞서 싸우거나 달아나거나-실천할 수 있는 가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현대인의 생활은 피할 수 없는 외부적 스트레스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는 본질적으로 과속, 과밀, 범죄, 불친절 등과 함께 소음과 매연을 뿜어 내는 하나의 거대한 스트레스 기계이다. 널리 퍼져 있는 소음공 해라는 단일 스트레스만 보더라도, 연구결과에 따르면 많은 손상 효과를 가져옴을 알 수 있다. 공항 부근의 항공로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신병의 발생률이 증가한다. 로스엔젤레스 공항 주변에 사는 아이들은 평균 혈압보다 높은 혈압을 보이고 있곤 어쩔 수 없는 소음 곁에서 사는 사람은 이쯤이면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수면장애가 계속된다. 소음이 심한 근무환경에서는 폭력이나 거친 태도를 보이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손상을 입힐 정도가 되기위해서 소음이 반드시 커야 할 필요는 없다. 신경을 건드리는 잡음이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반복해서 들리면 스트레스 효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스트레스를 제2단계, 즉 평가의 단계에서 대처해야만 하는부담을 준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나 그에 대한 신체의 반응은 통제할 수 없다고 해도 그에 대한 평가, 즉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 간의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는 평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겉에서 보기에는 똑같이 보이는 상황이 그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하면 강한 스트레스로 바뀔 수가 있다. 범죄자에게는 범죄현장에 나타나는 경찰이 엄청난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희생자에게는 크나큰 안도가 되는 것이다.암이라는 진단은 환자를 걷잡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몰고 가지만 의사에게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건들을 개인이 어떻게 여과시키는가에 따라 그 사건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느냐가 결정된다. 기본적으로는 외부적인 스트레스가 촉발요인이다. 촉발됨을 느끼지 않는다면 스트레스는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 속에서도 잘 살아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높은 스트레스의 한계선에서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생리적으로 그런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몸에서 코르티졸(부신피질 호르몬의 일종)과 아드레날린이 계속 분비되면 아무도 잘 살지 못한다. 이 호르몬들은 알다시피 조직을 해체하는 작용을 하며 이것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질병이 온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다룬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임을 알수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한 개인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그의 기억 속으로부터 투사되는 것이며, 새로운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언제나 과거의 경험들에 의해 채색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각의 새로운 상황들을새로운 눈으로 평가하는 대신, 낡은 개념의 범주에 빠져 버린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며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밖에 있다. 당신이 생굴을 싫어한다면 그것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을 일으킬 것이다. 억울하게 이혼당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다면 길거리에서 상대방과 마주치면 다시금 분노가 치밀어오를 것이다. 이 과거의 인상들을 중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 지 못하면 스트레스에 대해 통제력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스트레 스를 주는 사건은 자동적으로 당신의 반응을 유발해서 당신을 포로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 불행한 상태는 '절망상태/무력상태라고 하여 광범위한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늙는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상태를 깊이 느끼게 하므로 이 연구는 매우 가치가 있었다. 생리학의 고전적인 실험으로서, 두 마 리의 생쥐를 서로 매어 놓아 한 마리는 자기 마음대로 먹고, 자고, 돌 아다니고, 활동하도록 하고 다른 한 마리는 수동적으로 따라다니기만 하도록 한 실험이 있었다. 두 마리의 쥐는 이내 눈에 띄게 달라져 있 었다. 선택의 자유를 가졌던 쪽은 여전히 튼튼하고 건강했으나 자율성 을 잃어버린 다른 놈은 멍청해지고 병에 잘 걸렸으며 겉늙어 버렸다.

끌려 다니던 쥐는 아무런 물리적인 학대를 당하지도 않았지만 선택의 자유를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그 몸에 무수한 파멸적 반웅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방법을 이용하여 실험용 동물들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종류의 질병이든지 생기게 만들 수도 있다. 혹은 화학적으로 유발한 종양과 같이 어떤 병을 생기게 한 후에 그것을 훨씬 더 빠르게 진척시킬 수도 있다. 빈민굴에서처럼 쥐를 서로 복닥거리며 팔도록 하면, 이들의 면역체계가 약해지고 고혈압, 노이로제, 우울증, 무감각증 등의 징후가 나타난다. 새끼원숭이를 어미한테서 떼내어 영양공급을 끊어 버리면 방향감각 상실, 활동항진증, 내향성 여러 가지의 학습기능 장애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쥐나 토끼 등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일반적으로 암의 전이가 촉진되고 심장발작이 유발된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큰 위협을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은 다음과같다.

예측가능성 결핍

통제력 결핍

욕구불만의 배출구 결핍

 

이러한 요인들이 있을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이 때때로 그 실제적인 자극보다 훨씬 더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비틀거리는 차를 따라가는 것은 신경쓰이는 일이다.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타고 갈 비행기가 무기한 연발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두 가지 상황이 모두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요인을 가지고 있다. 차를 밖에서 잠가 버렸을 때열쇠 전문가가 오기를 한 시간 동안이나 기다려야만 하게 되면 극도로 짜증스러워진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평상시에는 늘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자동차가 지금은 갑자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던 중에 상대방이 갑자기 나의 주장에 승복을 해버리면 아주 김이 빠진다. 비록 내가 이기기는 했어도 화를 분출할 구멍이 갑자기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일상 생활 속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허다하게 일어난다. 그런 일들이 쌓여 가는 동안에 우리는 이들에 대한 기억을 내면화하여 틀에 박힌 반응을 고착시킨다. 스트레스 연구가들은 일련의 정밀한 실험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의 사건이 없이도 단지 예측불가능성이나 통제력 결핍, 그리고 욕구불만의 탈출구가 없다는 '인식만으로써도 스트레스 반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밝혀 냈다.

이 실험 중에는 생쥐를 작은 철장 속에 가둬 놓고 여러 가지 조건에서 전기 충격을 가해 본 실험도 있다.

 

예측 불가능성: 전기 충격을 가하기 전에 붉은 등으로 경고표시를 해준 생쥐는 아무런 경고 없이 충격을 가한 생쥐보다 스트레스 반응을 적게 보였다. 경고 신호는 쥐가 충격을 예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그럼으로써 불안이 없어지자 쥐의 몸은 안심하고 쉴 수 있었다. 예측이 불가능한 충격을 받은 쥐는 늘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고 그러한 경계심이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통제력 결핍:전기 충격을 받는 두 마리의 쥐 중에 한 마리에게는 손잡이를 누르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해 주었다. 반면에 다른 쥐는 그냥 고스란히 충격을 입고 있었다. 이 쥐는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통제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같은 정도의 전기충격에도 더높은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한 가지 기발한 변화를 주었던 바, 한 마리에게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손잡이 장치를 해주었다 가 나중에 손잡이를 못 누르게 하면 충격을 가하지 않았는데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전에는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만 해도 스트레스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욕구불만의 배출구 결핍: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할 때 갉을 나무막을 주거나 다른 쥐를 공격할 수 있게 해주면 스트레스 반응을 덜 보인다. 먹을 것이나 물을 주거나 타고 놀 첸바퀴 같은 것을 주어도 같은 결과를 보인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너무나 짜증스러운 생활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는유일한 희망으로서 과식이나 음주에 매달리곤 전체 사회는 다른 나라를 공격함으로써 불행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쓴다.분쟁은 국외자가 보기에는 사소한 문제로 시작된다. 그러나 욕구불만이나 통제력의 결핍은 참기가 매우 고통스러운 조건이다.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슬픔이 보이지도 않게 완강하게 달라붙는다. 죽음을 예상할 수도 없었고 그것을 멈출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런 상실과 자포자기 상태의 울적한 기분을 실컷 표출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자신의 기분을 하소연할 상대가 바로 그 죽은사람일 경우에는이것은 특히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이러한 요인으로 야기된 병은 그 대가가 크다. 로체스터 대학의 정신의학자인 조지 이글George Eagle 박사는 의학적으로 원인 규명을 할 수 없는 갑작스런 사망의 경우를 160건 조사해 보았다. 그 중의 58퍼센트는 가까운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났 거나 실패를 겪은 순간에 발생했고 35퍼센트는공포의 순간에 일어났다. 단지 6퍼센트만이 즐거운 시간과 우연히 일치되었다. 죽음을부르는 것은 스트레스 그 자체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은 실패와 공포를 겪고도 견며 내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르는 것은 스트레스를 견며 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취약점이 육체적인 요인보다 우선한다. 예컨대 심장마비로 사망한 50대 미만의 사람들 중에 반수는 심장질환의 고전적인 위험인자-고혈압, 콜레스테롤치 상승, 흡연등-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한다. 흡연은 미국인들에게 흔한 폐암과 직결되어 있는 바,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순전히 욕구 불만의 배출구로 삼는 하나의 습관으로서 쥐가 갉을 나무토막을 붙잡듯이 사람들이 붙들고 매달리는 하나의 오락이다.

실험실 조건에서 쥐보다 진화가 덜 된 동물(예컨대 개구리 같은)은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 핵심은 기억인 것이다. 원시적 기억능력만 지니고 있는 동물은 어떤 상황과 다른 상황 간의 차이를 식별하지 못한다. 생쥐는 전기격을 받을 때의 불쾌한 느낌을 기억한다. 그래서 쥐는 그 되풀이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긴서 손잡이를 누르도록 길들일 수 있다. 또한 쥐는 손잡이를 없애 버리면 다음의 전기 충격을 예상할 만의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쥐는 예 상도 할 줄 아는 것이다. 이은 치과 의자에 앉아 있다가 드릴 소리 만 듣고도 펄쩍 뛰는 소심한 환자와도 같다. 소리만 들어도 고통을 예상하게 하곤 그것이 통증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예상되는 것은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이다. 이것은 노화에 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 속에 하나의 세계, 곧 우리의 과거 세계를 품고 다닌다. 우리는 이 세계와 그 위에 새겨져 있는 마음의 상처에다 비추어 봄으로써 자신의 스트레스를 만들어 낸다.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 스트레스도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인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도리도 없고 짜증만 났던 과 거의 일을 너무 비슷하게 떠올리게 하는 상황을 만날 때 어쩔 도리 없어지고 짜증이 난다. 기억의 저주는 우리를 안에서부터 늙어가게 만든 다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점점 더 늙어가고, 우리를 결코 늙지않는 실재로부터 차단시킨다.

인간 기억력의 완벽성은 놀람다. 정신분석학의 개척기에 프로이트는 그의 환자가 과거를 무의식 속에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는 우울증 환자로 하여금 두 살 때 편도선 수술로 엄마품을 떠나 하룻밤을 보냈던 일 따위의 과거의 정신적 충격의 기억으로 거슬러올라가도록 안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억이 모든 것을 분명히 드러내기를 꺼려했다. 흐릿한 장막과 부인이 버림받았을 때의 첫 느낌을 막아서서 가리고 있었으나, 환자에게 충분한 용기만 있다면 그런 장막들은 서서히 다시 벗겨 놓을 수가 있었다.

환자는 극도로 명료하게 그날 밤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정확히 기억해 내었다. 세세하고 미묘한 느낌들뿐만이 아니라 자세한 실제 상황-예컨대 시계 바늘이 가리키고 있던 시간, 수술실로 가는 계단의 층계 수, 간호사의 머리 색깔-까지도 하지만 우리는 왜 그처럼 세세히 기억해 낼 수 없을까? 그 기억들은 마이크로칩처럼 우리 위에 각인되어 있으면서, 출력될 것들을 장차 일어날 모든 사건들에다가 덧붙인다.

인간의 삶에는 간단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면 당장 옛 기억의 흔적이 되살아나서 우리가 예상하는 종류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트레스는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 우리의 반응은 우리의 기대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모든 사건이 불가피하게 그에 대한 해석과 함께 각인된다는 사실은 기억에게 스승의 권위를 부여한다.

 

스트레스와 호르몬

 

스트레스 반응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신체가 손상을 입기 전에 반드시 차단해야만 할 강력한 화학물질의 분비를 수반한다. 내분비학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클루코코르티코이드로 분류한다. 이것은 스트레스하에서 신체가 높은 경각상태를 요구할 때 그 일환으로서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기능은 동화작용을 이화작용으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특히 글루코코르티코이드는 신체가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도록 간에 저장되어 있는 저장 에너지의 일종인 글루카곤glucagon을 분해한다. 이 글루카곤이 다 소모되면 글르티코이드는 계속하여 단백질을 분해한다. 굶주림과 같은 극한깨 상황에서는 신체는 혈당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근육을 소비하기 시작하여 아사를 막아 낸다. 이때도 역시 이 일을 맡는 화학물질 긴은 클루코코르티코이드이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코르티졸cortisol 인데, 이것은 특히 태평양 연어와 같은 특정 생물의 노화에 숨은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부화된 어린 연어는 첫 네 해를 바다에서 보내고 신비롭게도 수천 마일을 헤엄쳐서 자신이 태어난 민물 호수로 정확히 돌아온다. 급류와 인공댐을 거슬러서 영웅적인 여행을 한 후에 성어가된 연어는 산란를 하고는 거의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린다. 이 고기를 하룻밤 만에 쇠약한 존재로 늙어 버리게 만드는 것은 단지 탈진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의 DNA 속에 들어 있어서 산란기까지 견디다가 부신피질로부터 다량의 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을 일시에 분비 되게 하는 내부의 '노화 시계 때문이다. 코르티졸은 모든 동물이 가지 캐고 있는 강력한 스트레스 호르몬으로서 연어에게는 이것은 죽음의 호르몬이다. 죽음을 부르는 이 호르몬의 분비는 연어를 그 격렬한 이주 여행 이전에 잡아서 최고의 컨디션에서 산란하게 해도 일어난다.

노화 시계는 주변환경은 무시한 채 자신의 고유한 시간표를 따른다. 강을 거슬러올라가는 연어를 잡아서 적당한 먹이를 주고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해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연어의 생체 시계는 산란을 마치면 죽음을 맞이할 적당한 때가 왔다는 것을 안다. 당한이라는 말은 자연계에서는 매우 응통성이 많은 단어이다. 하루밖에 못 사는 하루살이도, 100년이 넘게 사는 큰 대합조개도 제각기 '적당한수명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한 생물이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많은 구성요소가 그 생물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어 준다. 다른 요인들 중에서도 크기, 무게, 신진대사율, 음식물 공급, 잡아먹는 동물, 새끼를 낳는 나이, 그리고 새끼의 수 등이 노화가 언제 시작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쥐는 야생 상태에서 1년 미만을 산다. 그러나 그 1년 동안에 이 동물은 성장하고 교미하여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아 종족을 유지시킨다.자연의 균형 속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종이 늙어서 죽기 전에 그 숫자를 유지할 수 있으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동물에 있어서 노화의 시작은 육체적인 진화와 판계가 있다. 각 동물 종들은 생존에 가장 알맞는 일정한 수명으로 진화해 왔다. 쥐가 100년을 살면서 해마다 수십 마리씩 새끼를 낳았다면 이 세상은 쥐와 그것을 잡아먹는 육식동물로 뒤덮여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식의 조잡한 불균형이 발붙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종들은 각기 고유한 수명의 범위에 맞게끔 살고 있고 자신의 고유한 노화패턴을 따르고 있다. 가끔은 자연의 의도가 무엇인지 해독하기 힘들 때가있다. 예컨대 작은 갈색박쥐는 왜 12년이나 살며, 반면에 같은 체중에다 같은 신진대사율을 지닌 들쥐는 고작 몇 개월을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가 등이다.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너무나 복잡미묘해서 동물이 어떻게 노화하는가를 설명하기란 힘든 일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 현재 300가지가 넘는 이론들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노화 시계는 상상에 혼란을 준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동물들이 자신도 모르게 내부에 안고 사는 시한폭탄, 즉 자기파괴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많은 생물학자들이 인간의 DNA는 노화 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연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유동성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인간의 사망은 극도로 광범위한 연령범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인간의 평균 기대 수명이 28세였다. 오늘날 그것은 미국에서는 75세로 올라 갔고 세계 최장수국인 일본에서는 여성의 경우 82.5세이다. 이러한 수명 증가는 인간을 다른 하등동물파 구별짓는 특징, 즉 자유의지 의해서 달성되었다. 우리가 죽는 순간은 탄생시부터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비바람을 피해서 집을 짓고 굶주림에 맞서서 농사를 지으며 질병을 치료하는 의술을 개발함으로써 운명을 물리친다. 그러나 우리가 몸 안에 지니고 다니는 생화학적 유산은 끊임없는 위협을 가한다. 태평양 연어처럼 우리의 신체는 우리 의지의 통제 밖에서 다량의 호르몬을 분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두려움에 떠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치사량에 못 미치는 소량의 코르티졸이 분비된다. 많은 생리학자들은 이 사실이 우리의 신체가 현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근육소무 당뇨병, 피론 골다공증, 피부박화, 지방질 재분배, 면역기능 억제, 정신기능 장애 등 일단의 다른 파괴기능을 지닌 글루코코르티코이드의 작용 또한 우리 의식의 지배 밖에 있다.

위에 열거된 것들은 스테로이드 중독의 징후들이다. 이것은 다량의 스테로이드를 너무 오랫동안 투여받은 환자에게도 나타나는 위험들이다. 스트레스 반응을 멈추지 못하거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벤사람의 경우에 그의 신체는 미량의 스테로이드 중독 증상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부적당한 스트레스가 반복될 때 일어나는 위험성은 치명적인 스트레스 하나의 경우보다 훨씬 더 커진다.

 

명상이 생리적 연령을 낮춰 준다

노화와 스트레스 호르몬 간의 연계성은 명확히 드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호르몬들을 어떻게 제어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스트레스 반응은 아무 예고도 없이 순간적으로 유발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분자군 자체를 제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새로운 스트례스를 유발하는 기억된 스트레스를 풀어 버림으로써 스트레스의 뿌리로 직접 접근하는 심신상관 기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명상이다.

오랫동안 명상을 한 사람은 코르티졸과 아드레날린의 수치가 종종 낮 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의 대항기제coping mechanism는 보통 사람들보다 거의 언제나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197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사람들은 명상이 그러한 이점을 지니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케이스 월리스R. Keith 7allace라는 이름의 UCLA의 젊은 생리학자가 명상이 영적인 의미 이외에 신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전까지 명상은 서양 의학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월리스는 연구활동의 일환으로서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일련의 실험에서 대부분이 대학생 연령으로 TM(초월 명상) 수행자인 자원자들을 그들이 명상하는 동안 신체의 중요 기능들을 시험하는 모니터에 연결해 보았다. 이 젊은 자원자들은 평온감과 내면적 침묵상태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여태까지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여러 해의 수행이 요구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지만 TM 기법은 매우 신속하게 호흡, 맥박수, 혈압 등에 중요한 변화와 깊은 이완효과를 가져왔다.

초월명상 기법은 특정한 산스크리트어인 만트라를 속으로 외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 만트라 소리의 진동은 마음을 평상시의 사고 작용으로부터 서서히 끌고 나와 사고의 배후에 려 있는 침묵 속으로 인도한다. 이처럼 만트라는 신경계에 삽입되는 매우 특별한 메시지인 것이다. 인도에서는 만트라가 수천 년 동안 사용되었으므로 그것이 생리에 미치는 정확한 효과는 요가(합일을 의미한다) 과학의 일부로서 잘 알려져 있다. 요가의 목적은 생각하는 마음을 순수의식 속의 그 근원과 합일되게 하는 것이다.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순수의식'은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자궁인 정적 속의 텅 빈 공허, 즉 양자공간을 의미한다. 순수의식은 생각과 생각 사이의 틈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일어나는 모든 정신 작용의 변하지 않는 배경이다. 우리는 보통 그런 상태가 존재하는지를 의심해 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깨어 있는 의식을 채우고 있는 생각, 바람, , 공상, 감각 등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대 인도의 현인들은 마음으로 하여금 양자의 심연 속에 있는 근원을 보게 하기위해서 명상이라는 특정한 기법을 고안해 내야만 했던 것이다. (4)-여기서 독자에게 초월명상의 기법에 대해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초월명상의 기법은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훈련받은 초원명상법 지도자로부터 개인적인 지도를 받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시작했다가는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포기하곤 한다. 그 이유는 명상이 열어 놓는 자기 자신과의 깊은 관계는 그 어떤 것보다도 도전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명상 수행을 그저 가끔 가다가 한두번씩 해 보는 것만으로는 거의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볍게 내릉개쳐 버리기에는 그것이 주는 혜택이 너무나 깊고 크기 때문에 부득이 명상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이 때문에 명상 수행에 입문하는 사람의 수는 더 적어질지 모르지만, 그 가르침의 순수성과 가치는 잘 보존되언서, 제대로 수행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 편이 한층 더 좋을 것이다. (원주) -

월리스가 연구에 착수했을 당시에는 명상의 메커니즘에 관한 과학적인 이해의 수준은 보잘것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명상에 들면 신경계가 '편안한 각성restful alertne긴치 상태, 즉 신체가 깊은 이완상태에 빠지지만 마음은 깨어 있는 상태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여준 사람이다(월리스는 이것을 생리학 용어를 빌어서 '대사저하적 각성상태hypo-metabolic wakefulness기핑 불렀다. 이것은 명상하는 사람의 의식은 깨어 있지만 신진대사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처음발견했을 때 이 편안한 각성의 상태는 의학계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휴식상태와 각성상태눈 꺼로 반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수면은 산소 소모량이 감소하고 심장박동수가 줄어들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신진대사저하 상태이다. 반대로 각 성상태는 산소 소모량이 높고 심장박동수가 빠르며 마음이 깨어 있는것을 특징으로 한다.

월리스는 이 상반되는 상태가 명상상태에서는 통합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TM 실험대상자들은 초월상태(순수의식의 체험을 느끼는 상태)에 들어갈 때마다 단추를 누를 수 있을 만큼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면보다 두 배나 깊은 휴식상태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수면중에 가장 깊은 이완상태에 도달하려면 4곤시간이 걸리는데에 비해서 그들은 매우 빨리, 보통 눈을 감은 지 10분 만이면 할 수있었다.

1978년부터 월리스는 명상이 인간의 노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편의상 전반적인 노화상태를 손쉽게 측정할수있는 지표로서 세 가지 생리적 노화현상, 즉 혈압, 근시력, 청력범위등 늙을수록 점차 약해지는 기능들을 택했다. 그는 이 모든 지표들이 장기간의 초월명상 수련을 통해 개선되어서 생리적 노화현상이 실제로 역전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었다. TM 기법을 5년 이하의 기간 동안규칙적으로 수련한 사람은 평균적으로 시간적 연령보다 다섯 살 젊은 생리적 연령을 나타내었다. 7년 이상 명상한 사람은 시간적 연령보다 평균 열두 살 젊은 생리적 연령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젊은 사람에게나 늙은 사람에게나 동일하게 나타났 다. 그 이후에 단체보험에 가입된 2,000명의 명상가들에 대한 전반적 건강상태 조사를 해 본 결파, 그들이 모든 연령대에서 눈에 띄게 양호한 건강상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TM 수행자들은 병원에 드나드는 횟수가 대조군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열세 가지의 주요 건강지표에서는 대조군보다 심장질환이 80퍼센트 이상 적고 암이 50퍼센트 적은 것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았다. 특히, 75세 명상가들은 상태가 가장 많이 호조되었다.

10년 후에 나는 이러한 이점들이 내가 노화의 주요 지표로서 논해왔던 종류의 호르몬들과 정확히 연관되어 있는지를 조사하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1980년부터 환자들에게 TM 수행을 권하고나 자신도 수행을 계속해 왔다. 1980년대 말에 동료인 제이 글레이저 Jay Glaser 박사가 매우 흥미로운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DHEA (dehydropiandrosterone)라는 물질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 나의 참여를 권해 왔다. DHEA는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풍부하지만 잘 연구되 어 있지 않은 물질로서 에스트로겐estrogen, 테스토스테론testo- sterone 등의 성호르몬보다도 수천 배나 많은 양이 혈류 속에 순환되고 있는데, 이것이 신체 내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글레이저 박사는 DHEA의 성질 중에서 그것이 노화와 함께 직선적으로 감소되는 유일한 호르몬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연구를 해 보기로 근하였다. DHEA의 양은 25세를 전후하여 절정이 되었다가 갱년기 이후에는 가속적으로 떨어져서 말년에 가서는 최고치의 5퍼센트로 감소된다. DHEA는 아드레날린이나 코르티졸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선구물질로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신체가 이러한 호르몬들을 만들어 낼 때마다 체내에 탄생시부터 저장되어 있던 7HEA의 일부를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DHEA가 시간이 감에 따라 양이 감소해 가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감소 자체가 노화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다만 생애에 걸쳐서 계속 누적되고 있는 스트레스를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말에 템플 대학의 생화학자인 아서 슈바르츠Arthur Sch-wartzDHEA를 생쥐에게 투여하여 눈에 띌 만한 노화의 역전현상을 관찰함으로써 굉장한 흥분을 일으켰다. 늙은 생쥐는 젊음의 활력을 찾았고 털은 매끄럽고 윤기나는 모습으로 되돌아왔으며 저절로 발병한 것이든 인공적인 방법으로 발생시킨 것이든 간에 초기증상의 암이 사라져 버렸다. 뚱뚱한 놈들은 정상 체중으로 돌아왔고 면역반응이 증가되었으며 당뇨증을 가진 쥐는 증상이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모든 호르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성이 있고 소화과정에서 분해되어버리기 때문에 DHEA를 경구제로 복용하는 것은 거의 소용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곤 DHEA 분자의 변형물질에 대한 특허권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와 마찬가지로 글레이저는 DHEA가 신체의 스트레스에 대한 노출도를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트레스 가 가중됨에 따라 글루코코티코이드가 증가하여DHEA의 비축량도 동시에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띤다. 한편으로 DHEA치가 높은 것은 관상동맥 질환, 유방암, 골다공증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감소되는 것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노인성 장애들이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되기 때문에 이것은 개연성이 있다. 높은 DHEA치는 또한 긴 수명과 노인성의 모든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와 관계가 있다.

이 사실에 대한 그 이상의 증거로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의 코르티졸치가 눈에 띄게 올라간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수술 이튿날에도 코르티졸치는 그대로 유지되고 DHEA가 약간 상승한다. 2주일이 지나면 코르티졸치는 아직도 그대로이나 DHEA는 떨어져 있다. 이것은 DHEA 비축량이 스트레스에 의해 소모되었다는 이론을 됫받침해준다.

이 증거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논리적 결론은 DHEA치를 그대 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가 스트레스를 간며 내고 있 음을 뜻하는 것이고 스트레스 반응이 적어짐으로써 노화도 지연될 것 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TM 수행자들이 생리적 노화현상을 적게 보인 원인에 대한 단서일까? 분명히 그렇다. 글레이저는 328명의 경험 많은 명상가들의 DHEA치를 1,462명의 일반인들의 것과 비교해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호르몬인 DHEAS (dehydropiandro,iterone sulfate)를 관찰한 것이었다. )

그는 조사 대상자들을 연령과 성별로 구분했다. 여성의 경우 모든 피룹에서 명상하는 사람들의 DHEA치가 높았다. 남성의 경우에는 열 한 개의 그룹 중에서 여덟 개의 그룹이 같은 결과를 보였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높은 DHEA치를 보이므로 글레이저는 이것을 생리적 노 화가 TM 수행의 결과로 감소된다는 증거로 보았다. 흥미롭게도 나이 가 많은 대상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났다. 45세 이싱치 명 상가들은 남성의 경우 23퍼센트, 여성의 경우 47퍼센트나 더 많은 DHEA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인상적인 결과는 식이요법이나 운동, 알코을 섭취, 체중 등과 같은 요인들과는 상관이 없었다. 글레이저는 전체적으로 명상가들의 DHEA치는 그보다 5 내지 10년 젊은 사람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평가했다.

'정신. 육체, 영혼의 연결

 

DHEA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중요한 것으로 밝혀지든지 않든지 간에 명상과 반토노화와의 이러한 연관성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이모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명상은 영적인 수행이다. 그것은 인도와 전체 동양권 사람들의 목표이다. 수백만의 서양인들은 이 때문에 명상을 뭔가 머리 속에서만 하는 비물리적인 일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사실 그 어떤 것도단지 머리 속이나 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에 초월명상법을 소개한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 가지 압도적인 논점으로써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 영성은 육체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질병과 노화는 육체가 그 본질적인 목표에 도달할 능력, 즉 완전하고 충족스럽게 정신과 합일될 능력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성장의 모든 단계에서 가장 큰 협력자는 자신의 육체이다.

이 말이 당신에게 놀라운 것인가? 우리들 대부분은 육체와 영혼이 존재영역의 반대쪽 끝에 서로 떨어져 있다고 믿는다. 허기나 갈증, 고통이나 쾌감 등의 육체중심적인 감각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을 영적인 체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육체적인 쾌락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감각적인 것들은 영혼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에 비해서 저급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영성도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것이어야만 한다.왜냐하면 영적인 사람은 현재의 순간 속에 완전히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육체 속에서 완전히 사는 것을 뜻한다. 마하리쉬는 나로하여금 명상을 노화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 영적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문화는 인체가 자체의 지능 없이 움직이는 비활성 물질의 덩어리, 즉 하나의 기계라고 결론짓는 실수를 범했다. 이러한 잘못된 관념은 우리를 제2의 오류로 인도했다. , 가장 영적인 사람이란 육체를 버리고 그것의 열정을 부정하는 사람, 혹은 최소한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에 대한 이런 식의 선입견은 자연이 우리를 만들어 놓은 취지와는 정반대이다. 자연은 정신과 육체와 영혼에 우리의 개아적 현실의 공동 창조자로서 균형을 부여하였다. 사랑에 빠지는 것에서부터 기도를 하는 것, 당분의 한 분자를 대사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가지 일도 우리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할 수있는 것이 없다. 육체는 어떤 경험이든지 밝은 대낮의 빛 속에 한데 어루어지게 하는 플랫폼이다. 그것은 신의 실체를 깨닫는 것처럼 심오한 과정을 망라하며, 매순간 진행되고 있는 수백만 가지의 분리된 과정들의 3차원 투사체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영혼이란 근본적으로 자신과는 따로 떨어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육체는 음식, 공기, 물 등을 영혼이 없이도 너무나 완벽하게 처리한다. 정신은 영혼과 접촉하지 않고도 수백만 가지의 일들을 거침없이 생각해 낸다. 우리는 영적인 생활을 한쪽 구석에 미뤄 두는 것은 쉬운 일임을 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어떤 도약을 함으로써 일상의 생활로부터 좀더 고양된 영역으로 가게 되기를 기다린다.

현실의 모든 단면들은 한 가지 신비, 즉 만물을 지배하는 온전히 하나로 이어진 전체wholelless, 존재라는 총체성의 일개 파편이다. 원자, 분자, 바위, , 그리고 인체 등은 존재의 물질적 표현이다. 고통과 쾌락은 존재의 심리적인 표현이다. 연민과 사랑은 존재의 영적인 표현이다. 이 물질적, 심리적, 영적 영역들이 서로 균형있게 조화되면 삶은 한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이 합일은 위안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우주 속의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느끼기만 하면 우리는 자신이 끊임없이 일렁이는 창조와 파괴의 과정 속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과 대면하기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엔트로피를 하나의 물리적인 힘으로써 물리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엔트로피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로 올라갈 수가 있다. 가장 심오한 차원으로 내려가면, 지능은 쇠멸에 대한 면역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생겼다가는 없어지지만 세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육체의 지식은 그대로 남아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 DNA가 체화시켜 놓은 진화의 지능은 많은 차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의 과업은 그 모든 차원을 경험하고 그것을 모두 우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일이다.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엔트로피가 도달할 수 없는 다섯 가지의 깨달 음이 있다. 그것은 모든 영적 전통 속에 표현되어 있으며, 시대를 가 로질러 개인적인 진화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1, 나는 영혼이다.

2. 이 순간은 그래야만 할 그대로의 순간이다.

3. 불확실성은 사물의 전반적 이치의 일부이다.

4. 변화 속에는 불변성이 주입되어 있다.

5. 엔트로피는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력을 가진 무한한 힘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러한 깨달음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와 파괴의 싸움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이원성의 세계를 뛰어넘게 하기 때문이다. 당장에는 아무리 고통스럽고 비참한 일이라도 모든 일이 지적이고 사랑에 넘치며 질서정연한 한 가지 목적에 바쳐진 것이 되는 일체의 경지를 신약성서에서는'한 눈으로 봄'이라 부른다고 보는 설이 있다. 이러한 통일적인 관점은 그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강요될 수가 없다. 당신이 자신의 고통 속에 갇혀 있고 자신의 삶이라는 드라마 속에 빠져

있다면 그것이 당신의 관점이며 당신은 그에 대한 권리가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고통과 환란의 종식을 원하며 개인적인 진화의 어떤 지점에서 이 다섯 가지의 깨달음이 마음으로 하여금 고통을 벗어나는 길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각각의 논점을 새로운 패러다임의 언어로 옮겨 보기로 하자.

 

1. 나는 영혼치다.

나의 육체적 존재는 시간과 공간 속에 한정되어 있지만 나의 의식은 그것에 제한받지 않는다. 나는 창조와 파괴의 유희인 전체을 자각하고 있다. 물질과 에너지는 하루살이 벌레처럼 존재 속에 깜박거리면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사건들은 만물을 관철하는 심

오한 지능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서로 엮어져 있다. 나는 그 지능의 한측면이다. 나는 국부적인 사건들 속에 자신을 펼치고 있는 장이다. 나의 영흔은 인식의 렌즈를 통해서 물질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설령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즉 의식의 영원한 현존이다.

실질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외부의 어떤 사건도 자아의 느낌을 흔들어 놓지 못할 때 이러한 자각은 현실이 된다. 자신이 영혼임을 아는 사람은 결코 경험의 한가운데에 있는 경험자의 시각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의 내면의 진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유한한 생 가운데서도 불멸의 의식을 지니고 있노라."

 

2. 이 순간은 그래야만 할 그대로의 순간이다.

현재의 이 순간은 영원한 연속체 속의 시공간적 사건이다. 그 연속체는 바로 나이므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도 나의 밖에 있지 않다.그러므로 모든 것을 나의 더 큰 자아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 하나의 세포가 신체의 전반적인 작용을 반영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다른 순간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자각은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해 보고자 하는 욕구를 버릴 때 생겨난다. 이러한 욕구는 과거의 고통이나 욕구불만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조작하고 미래를 예상하도록 몰아부치는 것은 지나간 정신적 충격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통일성 속에서는 모든 순간들이 그래야만 할 그대로이다. 과거의 그림자는 오직 현재의 순간 속에서만 가능한 충만함을 깨뜨리지 못한다.그러므로 매순간은 당신 앞에 펼쳐지고 있는 바와 똑같은 희열과 인식의 가능성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깨끗한 유리창과도 같다. 내면의 진실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욕망은 이 순간의 일부이며,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주어져 있노라."

 

3. 불확실성은사물의 전반적 이치의 일부이다.

확실성과 불확실성은 우리 본성의 두 가지 단면이다. 한 차원에서는사물이 분명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질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다른 차원에서는 사물은 불확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움이란 없을 것이다. 진화는 갑작스러운 사건에 의해 전개된다. 가장 건전한 태도는 '미지의 것이란 '창갖를 달리 표현한 말일 뿐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우리를 공포로부터 구해 준다. 공포는 불확실성에 저항할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통일성 속에서는 사람은 불확실성의 지혜로움을 본다. 그는 바로 다음의 호흡, 다음의 맥박, 혹은 다음의 생각이 전혀 예측불가능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적인 개방성으로 해서 질서는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다. 반대되는 것들은 공존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실제로는 우리는 모든 상반되는 것들을 우리 자신 속에 안고 있다. 마치 양자의 장이 두 가지의 너무나 상반된 것, 즉 엔트로피와 진화를 포용하고 있듯이 통일성의 의식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물의 불확실성은 아무런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확실하기 때문이다. 내면에 있는 진리의 목소리는 이렬게 말한다. "나는 미지를 포용하노라. 그것은 나의 새로운 단면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4. 변화속에는불변성이 주입되어 있다.

생명은 영원한 춤이다. 춤사위의 움직임은 우리의 의식을 통서 안무된다. 우리의 욕망과 주의력이 우리를 성장의 길로 인도한다. 주의력은 언제나 흘러가는 것이므로 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삶의 핵심이다. 매순간이 이 춤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모든 시공간의 사건은 의미있고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혼돈 속의 질서이다.

우리가 이 변하지 않는 틀 속에 안전하게 들어 있음을 깨달으면 자유의지의 환희가 솟아날 것이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불확실성과 사고와 재난을 가져을 것을 두려워하면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가 없다. 그러나 통일성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 하나의 선택이 전체의 패턴속에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갑을 선택하면 장이 우리에게 그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복종한다. 우리가 을을 선택하면 장은 설령 을이 갑과는 정반대의 것이라하더라도 우리에게 복종한다. 장은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다. 왜냐하면 정의에 의하면 장이란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의 상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목소리는 내면으로부터 이렇게 말한 다. 나는 여기 상대성 속에서 놀면서 절대성과 친숙해지고 있도다. "

 

5. 엔트로퍼는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력을 가진 무한한 힘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는 혼돈과 질서의 동시성을 반영한다. 혈액 속을 소용돌 이치는 음식과 공기와 물의 분자들은 혼란스럽게 움직인다. 그러나 세 포 속에 들어가면 그것들은 정확한 질서 속에 사용된다. 대뇌 속에서 깔박거리는 신경세포들은 흔란스러운 전기신호의 폭풍을 일으킨다. 그 러나 거기서 나타나는 것은 의미있는 생각들이다. 그렇다면 혼돈이란 단지 하나의 시점일 뿐이다. 제한된 의식으로는 무질서하게 보이는 사물도 의식이 확장되면 각기 완벽하게 제자리에 들어선다. 통일성 속에서는 쇠멸과 분해와 파괴를 향하는 모든 발걸음이 질서의 새로운 패턴을 조직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당신의 인식이 소멸속에서 솟아나오는 탄생을 볼 수 있게 되면 내면의 진리의 목소 리는 이렇게 말한다. "득과 실, 정과 동, 생과사가 교차되는 발걸음을 내딛으며 나는 영원불멸의 길을 가노라."

이것은 단지 설명일 뿐이다. 종이 위의 말이 각자에게 펼쳐지는 그 대로의 깨달음(내가 내면의 목소리라고 부른)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 러나 우리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없애고자 하며, 그것은 우리 가 누구이며 또한 왜 여기에 존재하여 그 내면의 불만족을 종식시키고 자 하는가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요구한다. 생명은 그 진정한 본질상 편안하며, 강제되지 않으며, 본능적으로 올바르다.

이것은 자아를 깨달은 상태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뜻한다.

누적된 스트레스는 그것이 일으키는 노화현상과 함께 긴장과 불편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우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한 삶은 하나의 투쟁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고 과거의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며 마음대로 할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다루어 보려고 애쓴다. 다음에 나오는 '연습' 부분은 가장 효과적인 기술을 통해 이 같은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며,자신의 삶을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최대의 환희와 충족을 목표로 하는 깨달음의 길로서 포용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한...

 

7. 연습

불확실성의 지혜

 

삶의 불확실성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대항기제coping mech-anism를 끊임없이 요구하게 한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포용과 저항이다. 포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변에 사건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곤 것들을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저항한다는 것은 사건들을 그 본래의 성질로부터 변화시켜 보려고 애쓰고 안전하고 익숙한 방법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포용하는쪽이 건전하다. 왜냐하면 스트레스가 일어나는 즉시 지워 버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저항하는 쪽은 건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욕구불만과 그릇된 기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의 찌꺼기를 누적시키기 때문이다.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데이비드 비스콧David Viscott은 그의 저서 <감정적 자Emotionanny Free>에서 정서적인 빛으로서 감정이 누적되어 있는 상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이것은 노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짓는다. "슬픔은 사람을 겉늙게 만든다. 감정적인 빛을 지니고 있으면 그 사람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이 되며 젊은 사람조차 자신이 겪었던 사랑과 기회의 결핍을 구제해 보려고 과거로 되돌아 가기를 갈망한다. 때로 그는 좀더 많은 보살핌을, 지금 여기에 없는 사람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속마음을 털어 놓아 감정의 빛을 청산할 기회를, 혹은 그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의 진정한 의미를 최 종적으로 발견함으로써 혼란에서 헤어나게 되기를 갈망한다."

얼마나 되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날 이 갈수록 자꾸만 커져 가는 감정의 빛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한다. 늙 어간다는 것은 감정적인 빛이 늘어 가서 신체의 대항기제가 현재의 스트레스를 더이상 적절히 처리할 수 없게 된 심리적 상태이다. 그 결과는 쇠약과 질병과 사망이다. 이 함정애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 하나의 새로운 순간이 미지의 것이며 따라서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는 하나, 과거로 움츠려 봤자 진정으 로 안전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비스콧이 말하듯이, "깊은 생각에 빠 질 수도 있고 비탄에 잠길 수도 있으며 갈망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감정적 경험을 자꾸만 돌이키고 바꾸어 보려고 애쓸수록 다시는 그 곳 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진정한 그곳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현 재야말로 행동과 실천과 생성과 성장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 생리적으로 우리의 신체는 현재 속에서 살아가도록 완벽하게 조정 되어 있으며 거기서만 최대의 환희와 만족을 얻는다. 신체는 다음 순간에 혈압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신체는 폭넓은 범위의 혈압을 포용할 수 있는 내재된 유연성을 지니고있다. 다른 모든 자율반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유역성이 신체 속에는 내재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미지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그것을 성장과 이해의 근원으로서 맞아들이는 불확실성의 지혜이다. 우리는 모든 세포와 기관들이 지닌 자율성 속에 이러한 지혜가 표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대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신호의 깜박거리는 패턴은 일생 동안 단 한번도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이같은 극적인 불확실성이 우리로 하여금 새롭고 독창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매분마다 3억 개의 세포가 죽어서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되며,이 죽음의 물줄기는 신체의 기능을 지탱해 주는 더 큰 생명의 물줄기 속에 홉수된다.

그러나 마음은 불확실성을 포용하기가 훨씬 더 힘듦을 깨닫는다. 마음은 변화와 상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저항의 근원이며 신체는 그 저항을 스트레스로 옮겨 놓는다. 우리는 정신적인 저항으로써 신체가 대항해야만 하는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어떤 사람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지만 어떤 사람은 겁에 질려서 소리를 지른다. 똑같은 경험을 하지만 움츠리고 몸을 긴장시켜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 사람은 공포를 경험한다. 그냥 열차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앉아 있는 사람은 유쾌한 흥분을 경험한다.

다음의 연습에서는 현재 속을 사는 것이 최대한 만족스러운 것이 되도록 자신의 의식을 포용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먼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심리적 방어기제는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하도록 감쪽같이 감추어 놓고 있다. 누적된 감정이란 말의 정의 자체가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뜻한다. 그러나 저항은 자신을 폭로하는 행동 양태, 즉 무엇을 통제하려는 행동을 일으킨다. 통제할 수 있는 상태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은 두려움과 위협감에 뿌리를 둔 충동이다. 위협감을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통제해 보려는 자신의 행동이 그것의 존재를 폭로하는 것이다.

 

통제 성향에 대한 설문

다음의 설문들에 대해 자신에게 해당되는 사항을 표하라. 쌕 내키지 않는 질문도 있겠지만 가능한 한 자신에게 정직하게 자발적으로 답해 보라.

 

거의 전혀 해당없음 0

가끔 해당됨 1

대체로 해당됨 2

거의 항상 해당됨 3

 

1.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근무조건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2. 다그침받을 때 가장 나타내기 쉬운 감정은 분노나 흥분이다.

3. 나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일이 거의 없다.

4. 나는 과거의 정신적인 상처를 숨기는 경향이 있다.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말하기보다는 앙갚음을 하는 상상을 한다.

5. 나는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쌓인 한이 많다.

6. 내가 어떤 사람에게 돈을 많이 쓰면 그것은 그만큼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7.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매우 불공평하게 대한다는 신념을 가 지고 있다.

8. 사이가 나빠지면 나는 속으로 그동안 그 사람에게 사 줬던 것을 모두 뺏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9. 내 집에 온 사람들은 내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10. 내게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내가 잘못했어 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일은 별로 없다.

11, 내가 약하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 주기보다는 정신적인 상처를 혼자 돌보는 것이 낫다.

12. 남의 말을 들어 주기보다는 말하는 쪽이 낫다.

13. 내가 하게 되는 말은 대개 중요한 내용이다.

14. 나는 남들이 내 말을 필요만큼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15. 나에게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채는 감각이 있다.

16. 지금까지 최소한 한 번은 남의 편지를 뜯어 본 경험이 있다.

17. 사람들이 나를 냉소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고 했다.

18. 나는 수준이 높아서 남들이 가끔 비판적이라고 오해를 한다.

19. 나는 완벽주의자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일을 엉성하게 마무리 하면 마음이 찜찜하다.

20.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감정적으로 너무 친밀해지면 불편하다.

21.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끝장난 다음 돌이켜보면 대개 내 쪽이 옳았다고 생각된다.

22. 나는 말끔하고 단정하다. 나는 내 방식을 좋아하고 어수선한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힘들어한다.

23. 나는 하루 일을 잘 계획하며, 약속을 지키는 것에 매우 큰 가치를 둔다.

24. 나는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필 줄 안 다. 그러나 그가 내 생각만큼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사실을 알게 되면 실망한다.

25. 비록 다른 사람들이 항상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논리적인 해명을 할 수 있다.

26.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든 않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27,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진정한 동기를 말하지 않는 것 같다.

28. 나는 소란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한다.

29. 나는 아직도 내가 가진 많은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말한 적이 없다.

30. 배우자나 애인과 말다툼을 하게 되면 걸핏하면 나는 지나간 불만을 끄집어낸다.

 

총점-

당신의 점수에 대한 평가

0-10

당신의 인격은 과도한 통제력의 요구에 의해 지배받고 있지 않다. 당신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편안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당신은 자신이 불완전한 것을 알므로 다른 사람의 실수를 이해한다. 당신은 모든 일이 절로 일어 나도록 편안히 내버려 두며, 놀라운 일로 인해 균형감각을 잃는 일도 없다. 당신은 아마도 자발성과 감정의 표현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일 것이다.

 

. 10-20

통제력을 가진다는 것이 당신에게는 종종 관심사가 된다. 당신은 스스로 나타내는 것보다 많은 두려움과 상처받은 느낌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불려고 크게 애쓰지는 않는다. 책임자가 되는 것이 당신에게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개 자신의 방식대로 하는 것은 중요하다. 당신은 자신이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이 약간 어긋나더라도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 앞에서도 얼마만큼 안심하고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 20점 이상

당신은 통제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감정을 매우 상하게 하기 때문에 통제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은 어릴 때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더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매우 조심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려 하거나 책임자가 되려고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필요를 배려해 주려고 열심히 애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당신을 멀리한다. 당신이 쉽게 드러내는 유일한 감정은 분노나 흥분이다. 당신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의 동기를 설명하고 삶의 방식에 이유를 단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것은 당신이 바라는 것, 즉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애정을 얻는 데에 도움이 안된다.

 

이 설문의 목적은 통제 성향이 강한 사람을 나쁘다고 딱지붙이려는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통제력을 잃는다는 것은 지극히 불쾌한 상태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통제력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쓴다.그런데 통제력을 지키는 데에는 건전한 방법과 건전하지 못한 방법이있다. 건전한 방법은 자신(자신의 가치, 매력, 성철를 의미한다) 속에서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아서 외부의 일이 자신의 대항기술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다. 건전하지 못한 방법은 사람들과 일을 조종함으로써 자신의 나약함과 흔들림을 감추려는 것이다. 첫번째 방법을 따르려면 자신에 대해서 정직해야만 한다. 다양한 상촹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여 어떤 상황이 나약한 느낌이 들게 만들고 어떤 상황이 강인하 게 만드는지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자기에 대해 안다는 것은 예측불가능성이라는 파도를 견디게 하는 닻이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언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상황에 대한 나의 접근방식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 때, 거기에는 뭔가 배을 것이 더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제공할 수도 있고 일의 흐름이 내게 무엇이 필요했던지를 드러내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든 먼저 내가 자신의 반응이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하기 전에는 해답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 건전하지 못하게 통제력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유연성과 겸손이 결핍되어 있다. 그들은 일을 혼자서 도맡아 해내려고 고집하며, 모든 분쟁에서 자신이 옳은 편에 서기 위해서 핑계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내부나 주위 환경과도 부조화를 일으킨다. 무엇을 그냥 놓아두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삶이 자신 속으로 주위로 또 자신을 꿰뚫고 흘러가도록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얻게 되는 풍요로움을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룬다.

 

연습 1. 해석에서 벗어나기

당신의 삶은 오직 그에 대한 당신의 인식만큼만 자유로을 수 있다. 모든 사건이 해석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해석은 과거에 뿌리를 두고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본다. 어릴 때 거미를 무서워했다면 당신은 지금도 거미에 그 두려움을 투사시킨다. 당신의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였다면 술을 마시는 사람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으로 잔뜩 채색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사소한 것에라도 보는 것마다 해석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자신을 과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중요한 단계이다. 자신이 사물을 언제나 어떤 하나의 시각으로 부터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라. 예컨대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과 싸우고 있다면, 당신이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는 것은 그에게는 위협이 된다. 반대로 두 가지의 상반되는 관점이 모두 가치있는 것일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그 위협은 없어진다.

스트레스 반웅의 두번째 단계-평가-가 신체의 반웅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단계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떤 상황을 일단 위협으로 해석하게 되면 당신의 신체는 자동적으로 모종의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그러므로 자신의 해석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 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 원래의 상황에서 가했던 해석은 다음의 상황에서는 효과를 지니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종식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지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모든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그것이 내 속에서 가지고 있는 위협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다음 다섯 가지의 단계들이 매우 클 도움을 주었다.

 

1, 자신이 사물을 해석한다는 점을 자각하라. 분쟁의 상황에서는 나의 시각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주지끈키려고 애쓴다. 내가 진리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 과거의 사고방식은 벗어 놓으라. 긴장감이 느껴지면 그것은 바로 내가 자신의 관점에 너무 집착해 있다는 신호이다.

3. 매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라. 나는 내 몸의 느낌에 의식의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사물을 약간씩 달리 보기 시작한다.

4. 자신의 해석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해 보라.

5. 결과 대신 과정에다 초점을 맞추라. 스트레스는 항상 당신이 어떤 일이 어떻게 결말이 나야 된다는 것에만 관심을 둘 때 일어난다. 어떤 일을 조종하여 예측가능한 결말을 향해 몰아부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생각의 함정이다. 잘못된 통제력을 가하려는 이러한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가고 있는 길을 즐기기 위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

내가 이 다섯 가지 단계를 실천하면 터무니없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상 속의 성가신 일들은 매우 빨리 사라져 버린다. 나는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어떤 상황이 너무나 많은 자극을 가져와서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그런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적인 일은 그것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신체는 반응을 끝내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 오지 않는다.

연습할 것은, 당신의 해석에 변화를 기하기 위해 이 다섯 가지 단계를 읽고 생각하 보고 나서 그것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기법을 당신의 과거에 있었던 골치아픈 일에다 적용시켜 보라. 당신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해서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다섯 가지 단계들은 당신을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1. 나는 기분이 나쁘지만, 그건 그 사람이 나빴다거나 그가 내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의 과거를 모두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도 그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나의 감정과는 별도로 사건의 다른 측면이 항상 존재 한다.

2. 전에도 나는 이런 식으로 기분이 상했었다. 아마도 그래서 이일을 너무 성급히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매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3. 여가서 내가 희생자라고 볼 필요는 엄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가 반대쪽에 섰던 적이 있던가? 나는 자신의 입장에만 집착해 있지 않았나? 내가 지금 내 기분을 중요시하고 있는 만큼 그때 상대편의 기분을 존중해 주었던가?

4. 내 기분은 잠간 잊어버려 보자. 그 사람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마 그는 너무 흥분했거나 너무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어서 나의 기분을 살피지 못했을 것이다.

5. 이 일은 나에게 도움을 준다. 사실 이 사람을 탓하거나 앙갚음 하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위협감을 주는 일이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아내고 싶다.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그것은 내 기분에 대한 책임은 나 스스로 지게끔 해주는 기회로 보인다.

그러니까 용서하기가 쉬워진다. 누구든지 나 자신을 깨우쳐 주는 사람은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과거의 해석을 의식적으로 주의깊게 살펴보는 습관이들기 시작하면 당신은 자생적인 해방의 순간이 자리잡을 공간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것은 과거의 사고방식이 내적 통찰의 불빛 속에서 지워지는 순간이다. 그 불빛과 함께 계시의 감각이 생겨난다. 당신은 자신의 과거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생에 가장 가치있는 모든 것들-사랑, 연민, 아름다움, 용서, 영감-은 저절로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이 길을 준비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한 도반은 이것을 '4차원 세계로 구멍을 뚫는다라고 표현한다. )

내적 통찰 속에는 크나큰 해방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여러해 동안 추수감사절에 집에 가 보지 못해서 아버지와 큰 말다툼도 없이 자냈던 사람이 있다. 그러다가 그가 40세가 되고 아버지는 75세가 되던 해 추수감사절이 돌아왔다. "내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아버지께서 나를 맞아 주셨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다정하게 찾는 곳으로 향해 갔지. 우리가 평소처럼 서로 논쟁 상대가 되어 주기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리지. 나는 긴장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하지만 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아버지가 내 운전방법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 놓아서 내 속을 부글부글 끓여 놓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라.

우리는 별로 말도 나누지 않은 채로 화물운반대 앞에 서 있었지. 그때쯤 되면 늘 이야깃거리가 끊어지곤 했거든. 내 가방이 나오고 있었어. 내가 다가가자 아버지가 나를 밀치고 가방을 드셨네. 2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또하나의 의식이 치루어지는 거였지.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지가 무거운 가방을 들면서 약간 비틀거리셨어.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네. 자네는 그것을 그리 큰 의미가 있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맷집 당당하고 힘센 장년의 아버지와 다투는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 행세를 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나는 아버지에게서 가방을 받아들지 않았네. 자존심 강한 분이시거든. 그렇지만 이번에는 나도거들먹거리는 아버지한테 무안을 당한 아이처럼 뒤따라가지는 않았네. 나는 아버지가 나를 돕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아버지가 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네, 그러한 변화가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지는 설명하기가 어렵군."

이것은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면 또다른 현실이 구름을 뚫고 비쳐나오는 것을 보여 주는 완벽한 예이다. 나 자신도 연설여행을 할 때 이상하게도 자주 비행기를 놓쳐 버리고는 그때마다 점점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날도 나는 공항 대합실을 가로질러 헐레벌떡 뛰어갔지만 이동 트랩이 비행기로부터 서서히 물러서는 광경만 바라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속이 꽉 막히는 느낌과 미칠 듯이 짜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이런물음이 떠올랐다. '이 비행기를 놓쳤다고 해서 지금부터 1년 후의 내인생이 얼마나 변하겠나?' 그 효과는 거의 마술적이었다. 심장은 두근거리기를 멈추고 호흡이 가라앉고 근육이 풀렸다. 꽉 막혔던 속도 불리고 창자도 울렁거리던 것도 그쳤다.

자신의 해석에 의문을 던져 봄으로써 나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비행기를 놓친 것이 아니라 속으로 품고 있던 나의 가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나의 몸은 아이구 이번만은 제발.'이라고 생각하도록 조건에 길들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스트레스 반응이 이런 식이다. 스트레스 반응은 기대된 대로 나타난다. 지난번의 부부싸움, 전번에 상사에게서 들었던 잔소리, 악의에 찬 질문을 받았던 기억 등을 떠올리면 부어오를 대로 부어오른 스트레스 반응이 튀어나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비행기를 놓친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마치 충격도 가하지 않았는데 펄쩍 튀어오르는 생쥐와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릇된 해석을 깨어 버림으로써 나의 몸은 과거의 습관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연습 2. 과거의 양파껍질 벗기기

 

과거는 우리 내부에 매우 미묘하게 겹겹이 쌓여 있다. 우리의 내면 세계는 복잡다판한 관계들로 꽉 차 있다. 그 속에는 일어난 그대로의 과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모든 방식으로 각색된 과거가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달리 나타났어야 할 모든 일이 우리가 공상 이나 복수심, 동경, 슬픔, 자기질책, 죄책감 속으로 달아나는 그 자리 에서는 제각기 달리 나타난다. 이러한 혼란을 제거하려면 짠사가 다 제대로'인 그윽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내면에는 언 제든지 숨어 들어서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는 침묵의 성소가 있다. "이 성소란 단순히 안도감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곳으로는 세상의 혼란이 파고 들어오지 못한다. 이곳에는 마음외 충격도 없으며 정신적인 상처도 쌓여 있지 않다. 여기가 바로 명상으로써 찾으려고 하는 정신적인 공간이다. 내가 믿는 바로는 이것이야말로 누구나 찾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추구점이다. 다음의 연습을 따르면 굳이 명상을 하지 않고도 이 고요의 자리에 다가갈 수 있다.

이 단언문을 받아 적으라.

나는 이대로 완전하다. 내 인생의 모든 일이 나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서 진행되고 있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며, 나는 곧 사랑이다.

이 말을 따져 보려고 멈추지 말라. 그저 그대로 받아 적으라. 다 쓴후에 눈을 감고 어떤 반응이든지 마음에 떠오르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리라.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르는 말을 적어 놓으라. (이 반응을 단언문 바로 밑에다 적으라.) 첫 생각은 많은 저항감, 심지어는 분노를 품은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누구의 삶도 완전하지 않으며 만사가 원하는 대로 되어간다고 믿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반응-'잡소리!', '말도 안돼', '아냐!') 만일 당신의 반응이 이와 비슷하다면 그것은 정직한 반응이다.

이제 곧바로 단언문을 다시 쓰라. 눈을 감고 마음에 떠오르는말을 다시 써 보라. 따지거나 자신의 반응에 빠지지 말라. 단언문을쓰고 반응을 적는 일을 되풀이하여 열두 번까지 하라. 자신의 반응이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알면 놀랄 것이다. 대부분의 람들은 처음의 반응보다 마지막의 반응이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이 연습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의식의 가장 내밀한 차원을 살짝 엿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가장 큰 저항감을 마음의 표면에 지니고 있다. 그것이 가장 대중적이고 방어적인 반응이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적인 자아, 즉 기대대로 행동하는 자아는 표면적인 자아이다. 그것은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너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고려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의식의 이 표면층은 '나는 사랑이다' 와 같은 강한 선언에는 그리 깊은 반응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좀더깊이 들어가면서 우리는 가장 최근의 욕구불만이나 희망사항, 풀지 못했던 감정의 층을 건드린다. 이 층을 건드리면 매우 뜻밖의, 혹은 비이성적인 반응이 튀어나을 수가 있다. '나는 사랑이다. ' 하는 말이 최근에 전혀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을 주었던 일과 연결되어 분노를 폭발 시킬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깊숙한 층은 우리의 가장 은밀한 감정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자신이 기본적으로 남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고 느끼고 있다면, 이 의식층에서 많은 고통과 저항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고착된 규정의 이면에도'나는 사랑이다'는 말에 대해서 아무런 의혹도 없이 동의하는 의식의 층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의식층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가치가 인식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인식-단지 사랑만이 아니라 아름다움, 연민, 신뢰, 강함, 진리 등에 대한 인식도-이 없이는 그런 말들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이다. 의식의 표층으로부터 아무리 먼 곳이라도 그것이 우리 안에서 진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의식층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이 완전한 성취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오직 우리의 저항을 이루고 있는 분쟁과 모순의 의식층을 풀어 놓은 다음에야 일어난다.

삶의 흐름에 저항할 때, 실제로 당신이 저항하는 대상은 바로 자신의 내면의 본성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의 본모습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비주의적인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식이라는 기구의 일부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의 의미를 파악한 다는 것이다. 바위는 우리가 바위라는 개념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바위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위란 마치 모르는 아랍어나 러시아어 글자를 보는 것처럼 한갓 의미없는 감각의 입력물일 뿐이다. 외래어는 배워야 한다. 그리고 '저 밖이 있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존재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존재는 저절로 나타난다. 인간의 신경계를 지니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다. 그신경계 속에 자신이 다른 종과는 다른 인간임을 아는 인간의 의식이 들어 있다.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사랑이나 연민 같은 본질적인 감정의 상태에 반응하게 하는 원초적인 느낌들이 일어난다. 그것들이 우리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각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이다. ' 하고 말하는의층에서 산다는 것은 곧 사랑이 클 수 있는 의식층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이러한 본질적인 상태에 대해서 당혹감을 가진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지, 신뢰성이 있는지, 강한지, 가치있는자 등으로 혼란스러워 한다.그것을 자신에게 입증시키려고 해서는 이러한 상태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선하고 친절하게 행등하고 사회적인 관심을 끄는 게임을 배우는 방법 등으로써 사랑을 얻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훈련된 행동을 일단 그만두면, 우리에 게 남는 기본 태도는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그 의심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추구의 끝은 행위 너머에 있다. 왜냐하면 때가 되면 마음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추구는 본질적인 자아, 나는 곧 사랑임을 알고 있는 나에 대한 탐구로 변화된다. 우리 의식의 모든 층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양파의 쩝질을 모두 벗기고 나면, 가장 기본적인 진실은 이것이다: 그대는 사랑이며 연민이며 아름다움이다. 그대는 존재이며 실재이다. 그대는 의식이며 영혼이다. 이 중에 어떤 것이든지 단언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그 말이 의미하듯이 그저 어떤 것을 확언하는, '그렇다고 말하는 한 가지의 방법이다. 이 기법은 자신의 본성을 일깨우는 데 있어서 지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발 더 나아가서, 이것은 당신의 목표가 씨는 곧 사랑인 곳이 깊은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않은, 당신의 의식의 바로 표면이 되는 데까지 성장하는 것

임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연습 3. 현재 속에 살기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다. 의식의 표면층에서 느끼고 생각하면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다. 자아의 좀더 깊은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바라건대, 자신이 곧 사랑이고 연민이고 신뢰이며 진실인 그 곳에 도달하려면 자신의 현재의 반응을 따라 올라가야한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순수한 사랑의 느낌을 가로막고 있는 저항의 의식층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감정은 과거의 모든 인상을 지니고 있는 신경계의 현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어떤 것을 경험할 때마다 이러한 인상들이 우리의 반응 속에 개입되어 들어온다. , 우리가 보이는 반응의 대부분은 과거로부터 반향되는 메아리인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현재 속에 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현재 속에서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참자아를 찾아 나서는 출발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감정이야말로 가장 현재 중심적이다. 감정이란 감각과 연결된 생각이다. 생각은 대개 과거나 미래에 대한 것이지만 감각은 현재 속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마음은 감각을 재빨리 생각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의 최초의 경험과 감정은 육체적 감각에 훨씬 더 가까웠다. 비를 맞거나 춥거나 혼자 남겨졌거나 두려을 때, 울음을 참는다거나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 마음속에는 '나쁘다', 안돼' 등의 권위적인 말이 없었다. 나쁘다는 말은 어떤 생각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가르치고 '안돼'라는 말은 자신의 충동에 처항할것을 가르친다.

좀더 복잡한 말과 해석은 뒤에 나타난다. 성인이 되었을 때, 감정을 통해 겪은 즉각적인 경험을 부정하면, 마음은 말이라는 스크린을 내려건다. 이것이 우리를 현재로부터 들어내어 과거 아니면 미래 속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다. 감정을 완전히, 충분히 느끼는 것, 그것을 경험하놓아 버리는 것, 그것이 늙지 않는 유일한 순간인 현재 속에 머무르는이다.

감정은 그 밑바닥까지 벗겨 보면 고통과 쾌락이라는 오직 두 가지의 감각으로부터 일어난다. 우리는 누구나 고통은 피하고 싶어하고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빠져 있는 모든 복잡한 감정상태는이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따르지 못한 견과인 이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비스콧은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삶을 통하여 무수히 반복되는 단 한 가지의 주기로 환원시켜 놓았다. 이 주기는 오직 고통 아니면 쾌락만이 느껴지는 현재 속에서 시작되어 죄의식이나 우울증 등 과 같은 전적으로 과거에 뿌리를 둔 복잡한 감정으로 결말지어진다.감정의 주기는 다음과 같다.

 

현재의 고통이 정신적인 상처로서 경험된다.

과거의 고통이 분노로서 상기된다.

미래의 고통이 근심으로 인식된다.

자신에게로 방향을 바꾸어서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표출되지 않은 분노를 죄의식이라 한다.

분노가 내면으로 향할 때 일어나는 에너지의 고갈상태가 우울증을 만든다.

 

이러한 주기가 말해 주는 것은 누적된 마음의 상처가 광범위한 심리적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감추어진 마음의 상처는 분노와 근심,죄의식, 그리고 우울증으로 위장된다. 이러한 고통의 층들을 처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고통이 생길 때 무엇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계속 처리해 나가는 것이다. 현재 속에 산다는 것은 쉽게 나타나는 감정인 '분노'를 피하곤 맞서기에 더 힘든 '정신적인 고통'을 노출시킬 수 있기에 충분할 만큼 정직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속에서 상처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노와 근심과 죄의식, 누을 등의 좋지못한 누적물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갈 뿐이다.

다음 연습은 현재 속에서 느끼는 법을 깨우치는 단계적 방법이다.

 

1. 마음의 상처가 가장 근본적인 부정적 느낌임을 자각하라. 마음의 상처를 기꺼이 느끼려고 하지 않고는 현재 속에 머무를 수가 없다.

2. 감각과 함께 하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분노로 바꾸려는 충동에 저항하라.

3. 당신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준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라.

4, 당신의 감정을 풀고 계속해 나가라.

 

이것은 고통을 연습하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해방을 연습하는 것이다. 상처받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그것은 당신을 현재 속에 데려다 놓는다. 반면에 분노나 근심, 죄의식, 우을 등의 조건반사는 당신을 현재에서 쫓아낸다. 일단 현재 속에 머무르게 되면 당신은 자신의 감정의 흔적을 따라 그 근원으로 찾아갈 수 있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랑이며 연민이며 진실이다. 그것이 진정한 당신인 것이다.

고통은 자신의 진실로 향하게 해주는 안내역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고통 속에는 당신을 고통으로부터 끌어내 주는 신호로서의 가치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어린아이는 상처를 받으면 울곤 자신의 시스템 속에서 그 고통을 끄집어내고는 다시 이완상태로 되돌아간다. 몸의 기본적인 상태인 쾌적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이런 느낌을 느껴 보고 싶다면, 해야 될 일은 오직 자기자신이 되는 것뿐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지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다른 데로 돌리려는, 어린 시절에 누구나 배우게 되는 경향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고통에 의식을 집중시킴으로써 순간 속에 머물게 되면 고통이 일어나는 순간 그 고통에서 해방된다. 이러한 해방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며-이것이 신체가 바라는 일이다-의식의 집중은 그러한 해방을 유발하는 치유력이다. 자신의 느낌에 의식을 집중시키면 당신은 관조의 상태에 다가가게 된다. 당신은 흔히 2차적으로 따라오는 비난이나 도피, 부정 등에 휩싸이지 않고 고통을 관조하게 된다. 관조 속에서는 통찰이 가능해진다. 이해를 위해서는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에 빠져 버리면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원인을 보지 못하게된다.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는 누구도 지금 당신에게 상처를 주지 못한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기분이 상했어'라고 말할 때 참으로 그러한 느낌과 함께 하는 법을 깨우치면 마음은 점점 더 열리게 될 것이다. 무서운 것은 복잡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해방의 메커니즘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죄의식이나 우울감은 간단히 풀어 놓을 수가 없다. 그것은 당신이 정신적인 상처를 풀어 놓는 법을 잊어버렸을 때 생긴 2차적인 생성물이다. 정신적인 상처를 더 많이 정직하게 느낄수록 고통 속에서도 더욱 편안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을 풀어 놓는 능력이 점점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자신의 다른 모든 감정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는 종종 사랑과 신뢰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증오와 불신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둘 다 과거에 풀지 못한 정신적인 상처가 회피해 온 것들이다. )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편안해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꼬여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당신은 자신을 해친 사람을 탓하는 대신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연습의 교훈은 매우 심오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의식 차원에서 행위한다. 이것이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의의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는 오직 자신의 상처를 풀어 놓을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상처를 완전히 풀어 놓을수록 더욱 더 진실하게 용서하게 된다.

상대방에게 그런 힘을 주지 않는 한 누구도 진정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다. 이 힘은 바로 당신 자신의 풀리지 않은 고통 속에 숨겨져 있다. 당신은 과거의 고통을 다스릴 수 있으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권한을 다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당신의 감정은 늘 다른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끌려 다닐 것이다.

외부의 사건은 당신에게 상처를 입힐 만한 힘이 없다. 정신적인 상처는 당신의 마음 속에서 해석이 가해질 때 생긴다. 당신은 해석을 초월하여 순수하고 때묻힐 수 없는 의식, 진정한 당신 자신을 관조하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연습이 노화를 물리쳐 주는 이유는 이것이 당신을 다시금 현재론 그리고 결코 늙지 않는 현재의 순간의식 속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섯 살이든 여든다섯 살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현재 속에 있는 자유를 발견한다면 무시간성의 영속적 체험이라는 문이 열리게 된다. 그것은 과거나지금 여기'인 진정한 현실에 비하며 현재와 미래라는 것이 '언제 한갓 환상입을 폭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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