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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두려움

사랑이 깃든 이별

by Frais Feeling 2020. 8. 24.

  환자는 사랑의 대상을 자기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으로서가 아니라,  역할 수행 능력을 통해서 묶어 두려
고 하고, 그런 식으로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기 때문에, 헤어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처음부터 
간격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의존 성향이 담긴 모든 말들은 마치 살인 의도를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
다. 이런 관계 안에서 그는 안정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동시에 감정의 지속성을 신뢰할 수 없다. 감정이 가
진 순환 운동적인 속성이 그에게는 예측 불허로 보인다.
  질비아와 귄터는 사귄 지 여러 해 되었다. 질비아는 예전에 그와 확실한 관계를 맺고  싶었다. 하지만 그 
동안 변해서(최소한 그렇게 믿었다), 귄터가 이 주일에  한 번 전화해서, 식사를 같이 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고, 그러고는 그가 잠자리를 같이하길 바라는 것에 만족했다. "같이 식사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이면, 나중
에 내가 현찰로 계산해야 할 것이란 걸 늘 미리 알지요." 질비아가 그룹 상담 시간에 말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에 그가 말했어요. 우리 관계가 지금 너무 좋다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
죠. 난 아니라고. 더 이상 그와 연관되기 싫어요."
  그룹 내 사람들은 질비아가 나쁘거나, 아니면 귄터가 나쁜 게 틀림없다고 여긴다. "멍청한 원숭이들"이라
고 그녀가 남자들을 지칭해서 말했다. 그러고는 조금 뒤, "그 사람을 아직도 만나는 걸 보면, 난 정말 바보
예요." 라고 했다. 헤어지는 것은 관계가 나쁠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적어도 우
리 둘 중 한 명은 멍청한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헤어질  수 있겠어! 라고 한다. 낙원이 바로 여
기 있는데, 단지 나 자신의 멍청함이나 남자들의 사악함 때문에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비아는 
그날 저녁을 같이 보내고자 한 남자를 자기의 고유한 감정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귄터라는 이 남자 안에
서 삶의 파트너를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날 저녁을 망친 것이다. 그건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모든 벽돌
을 하나하나 마치 이미 만들어진 집인 거처럼 자세히 검사하며, 그것이 집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씩 
버리는 것과 같다. 사랑이 깃든 이별의 반대는 이별의 파국이다. 그것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헤어지려
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정말로 긍정적인 감정의 마지막 티끌마저 사라져 버리고 없다면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사랑의 감정이  분명할수록, 헤어지는 것은 간단하다. 사랑의  감정은 아무리 파트너 간에 
서로 간격과 자유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사랑의  대상에 대한 확고한 표상을 지속시킨다.  상대방이 접근과 
친밀감을 거부한다면, 사랑이 깃든 이별을 상상할 수 없다. 그는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중간적인 위치
에 멈춰 선 채, 가능한 한 고정적으로 머물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공생의 소용돌이에 빠지지도 않고, 상대
방과의 모든 접촉 또한 잃지 않으려고 한다. 상담치료에서는  직업적인 특성상 관계의 적당한 간격이 보장
되므로, 환자는 거기에서 자유로운 친밀한 관계를 처음으로 체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점차 관계 
내부에 새로운 여유 공간을 만들어 갈 가능성을 제공한다.  사랑이 깃든 이별은 당사자가 이제까지 상대방
에 대한 지나친 적응과 통제를 통해 회피하려고 했던 슬픔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감내할 때 이루어진다. 질
비아는 귄터가 다음날 아침 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녀는  그들이 함께 저녁을 보낼 때 거리감을 느끼
도록, 심지어 잠자리에서마저 더 분명히 계산적인 행위를 하게 되고, 그럴수록 쉽게 헤어질 수 있다고 믿었
다. 그녀는 음식의 맛을 보기보다는 아무것이나 입에 넣고 보는 굶주린 사람과 같이 행동했다. 그녀는 자기
가 한 말을 곰곰 생각해 보고는, "잠자리를 같이하다"란 말 뒤에 "현찰로 계산하다"란 말을 한 것이 자꾸만 
걸렸다. 이런 표현은 이미 불안해진 감정 상태의 혼돈을 정돈시켜 준다. 다시 말해, 만남을 위해 돈을 지불
하고, '결국 만남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도출해 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걱정을 하
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사랑이 깃든 이별이 불가능하다. 헤어지려는 사람은  자기가 선
불로 냈던 것은 포기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던 것을, 또 상대가 줄 수 있는 것을  다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깃든 이별은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어렵다. '천재 소년의 드라마'는  평범한 부모에게는 희비극이 
된다. 그들은 '아이를 기르면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적어도  인식해야 한다.' 이 이면에는 투자했던, 적응이
라는 자본을 되돌려 받으려는 아이들의  희망이 숨어 있다. 성공은 없다.  부모는 쓰라린 고통을 느끼면서, 
이제까지는 비이성적이고, 왜곡된 애정 표현, 그리고 아이의 '거짓된 자아'를  향했던 사랑을 그만 단념하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다르지  않다. 단지 양심의 가책만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당사자는 억지로 
노력하는 행위를 통해(이를테면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재교육을  받는 것처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자 한다. 그들은 자식이 부모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별의 순간에 부모로부터 받은 물건들 중 특별히 애정을 
느끼는 몇 가지를 가방에 싸는 모습을 보고는 참을 수  없이 괴로워한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간섭을 친
절하게 거절하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는 대신, 부모의 간섭이야말로 필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부디 제
대로,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이성적으로, 그리고  감정을 넣어서, 라고 부탁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는 양쪽 
다 엄청난 정열을 낭비했던 만성적인 투쟁을 매듭짓는  것이거나(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수익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공항이나 수로 건설 프로젝트가 여전히 폐기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관계에 
'투자' 한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  언젠가 모든 접촉을 끊는 것, 둘 
중 하나다. 그리고 투쟁관계의 사람들은 가면을 쓴  채 예의 바른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점차  매우 드물게 
만나게 된다. 상담치료의 과제는 새로운 규범을 정하는 것이다. 환자가 자기가 유지해 온 관계의 상황을 인
식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식견이 생길 수 있는 통로는 상담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경험, 방법론적인 혹
은 기술적인 취향 등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 행동상담가는 환자들에게 관찰 가능한 상
호반응에, 분석가는 자유롭게 떠오르는 기억에, 가족상담가는 경우에 따라 자기와 환자 간에 생겨나는 관계
의 연계성에 주목할 것이다. 환자의 인식을  구조조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려는 
환자 자신의 노력을 파악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흔히 '동일한 것을 
더 많이' 라는 원칙에 따른다. 이에 따르면, 이미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난 방법이 더 강화되어 적용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뭔가를 잘못했을 때, 이제까지 욕을 하던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계
속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보일 경우, 두들겨 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로서는 계속 욕
을 하면서 다른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별을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역시 역설적
인 면에서 비슷하다. 드러내놓고, 혹은 몰래 배신을 하고 실망시킨 사람과 헤어지는데  어떻게 애정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흔히 생각한다. 게다가 사랑의 감정을 허용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의존성이 높아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이러한 이별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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