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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두려움

개체화의 위험

by Frais Feeling 2020. 8. 24.

  인류의 수천년 역사 동안 자기가 가진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한 사람은 없
었다.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삶에 최소한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자연환경에 대항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진취적으로 투쟁을 벌이는  동안에 이미 충족되었거나,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감정에 적대적인 세계에서  감정의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유감
스럽게도 그는 대개 이 투쟁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벌인다. 그리고 이렇게 투쟁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사회구조보다 더 그에게 가까이 있고, 더  상처받기도 쉽다. 이
에 비해 사회의 구조는 그의 고통에 영향을 미치며, 그리고 부모, 교사, 직장 상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이러
한 사회 구조의 집행관 역할을 떠맡고 있다.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심리상담가들은 충족되기 어
려운, 환자의 공생적 욕구의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긴다.  그들은 감정적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감정 부재의 상태에서 환자를 구해 냄으로써 환자 개인에게 내면화된 부모의 영향을 제거하
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혁명적인 특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환자
들이 그들의 역할 수행 측면에서 성공하도록 도와 주지만,  타인과의 감정관계에는 아주 적은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들은 개인에게 깊이 파고드는 적응을 생산해 낸다.
  사람들은 진실해야 하고, 자발적이며, 솔직해야 하고, 몸과 마음이 말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말
하고 있다고 머리가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상담가 자신만이  중시되는 상담치료는 흔히 새로운 역할을 수
행하도록 환자를 압박한다. 정신분석가는 자기의  경력을 과시하고, 심리상담가는 자기의  감정이입 능력을 
과시한다. 그들은 모두 누가 더 빨리,  더 깊은 내면의 감정을 분출시킬  수 있는 가를 곁눈질하며 살핀다. 
"사창가에 가 보는 것, 그걸 나는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틸만 모저가  그곳을 그토록 아름답게 
묘사했는데도 말입니다..." 라고 목사이자, 심리학 석사인  성인교육기관의 기관장이 말했다. 예전에는 사창
가에 가는 것을 목사 스스로 금기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는 죄의식이 가미된 욕구를 가지고 어
둠 속으로 몰래 잠입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날 죄의식 때문에 숨기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일종의 의무다(그 목사는 이 단어를 언급했다).  이 상황은 역할 수행의 압박이 이제까지  접근이 어려웠던 
영역까지도 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늪지대는 건조하게 메마르고, 정글
은 허허벌판이 되어 간다. 프로이트에게는 여전히  숭고한 문화적 행위로 보이던 것이("이드로부터  자아로 
발전해야 한다... 조이데르 해 간척사업처럼") 근원적인 야성을 착취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받는 동시에, 그
럼으로써 우리가 자연적인 다양성을 점점 더 많이 잃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문
제점은 감정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그것과 함께 작업하며 또한  그것을 해명해야 하는 직업의 세계에서 더
욱 극명해진다. (역할수행)성과의 압박은 상담가의 인성 영역(다른 모든 직업에서는  그래도 안전하게 보호
되는 영역인데 비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가 거기서 환자의 문제를 윤리적으로 접근했던 것을 나도 알아
요" 라고 신참 분석가가 작업을 재검토하며  말했다. "그건 아마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인 것 
같아요!" 라고 덧붙여 말했다. 성과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성과가 된다.
  관계의 영역에서 쓰이는 심리치료의 도구는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런 도구는 인간의 성과에 대한 압박을 덜어 주는 게 아니라, 더 확장시키는 위험을 수반한다. 심리상담가
는 더 확장된 성과 의식을 가지고  장애를 확실하게 규정하고, 인상적이며 반박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개념의 체계를 세운다. 이는 문가를 하게 하기보다는 뭔가가 되어지는 형태다. 이런 방향으로  사고하고 행
동하는 것이 (개척 과정을 통해 적이 되어 버린) 자기  내면의 야성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더 좋아  보인다. 심리상담가는 종종 이런  도정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못하다. 그는 기껏해야  자기보다 더 불안에 떠는 사람들 앞에서  그 힘을 
확인시켜 줄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심리상담가의 권력 역시 그러하다. 심리상담
가는 미하엘 엔데(역자주 소설 모모의 저자)가 묘사한 적 잇는  사이비 거인처럼 멀리서 보면 거대하고 큰 
감동을 심어 준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가냘프고 허약한 모습이다. 심리상담가는 자기의 실제 과시함으로
써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대감을 심어 주지만, 그는 실제  가엾은 모습으로 비루해 보이는 이론의 누더기를 
걸치고 있으며, 자기가 해결을 약속한 문제들 중 하나를 혼자서 해결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이것은 권력
과 성과에 대한 요구를 배제하고 다시 생각해 본다면 부끄러운 보습이 아니다. 오늘날, 뭔가 생동적인 것을 
유지하면서 그것의 발전에 참여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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