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특이성
지금까지 인간에 관해서는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러 인간을 제
외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내가 '생존 기계'라는 말을 써 온 이유는 '동물'이라고 하면 식물이
제외될 뿐만 아니라 일부 사람의 머리 속에서는 인간까지도 제외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개해 온 논의는 언뜻 보기에는 진화의 모든 산물에 해당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종
을 예외로 해서 제외하려고 한다면 특별히 타당한 근거가 없으면 안 된다. 우리가 속하는
인간이라는 종을 특이한 존재로 보는 타당한 근거는 있는 것일까? 나는 그와 같은 근거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문화, 문화적 돌연변이
인간에 관한 특이성은 대개 '문화'라고 하는 하나의 말로 요약된다. 물론 나는 이 말을 통
속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과학자가 쓸 때의 의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보
수적이면서도 어떤 형태의 진화를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점에서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
과 유사하다. 초서(Geoffrey Chaucer)와 현대 영국인은 사슬같이 이어진 20세대정도의 시간
적 간격이 계속 연결되어 있지만 대화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세대의 사람들
이라면 자식이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처럼 서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비유전적
인 수단에 의해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게다가 속도는 유전적 진화보다 더 빠르다.
문화적 전달은 인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이외의 동물에 관해서 내가 알
고 있는 적합한 예는 뉴질랜드 앞바다 섬에서 사는 안장새의 울음소리에서 볼 수 잇는 에로
최근 젠킨스(P.F. Jenkins)에 의해 기록됐다. 그가 연구한 섬에서는 약 아홉 종류의 서로 다
른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각각의 수놈은 이들 소리 중에서 하나 또는 몇가지만 지저귄
다. 제킨스는 수놈들을 방언의 그룹으로 나눌 수가 있었다.. 예컨대 인접한 영역을 가진 8마
리의 수놈으로 이루어진 한 그룹은 'CC song'으로 불리는 측정한 노래를 했다. 다른 방언
그룹은 각각 다른 노래를 했다. 같은 방언 그룹에 속하는 개체가 둘 이상의 다른 노래법을
공유하는 예도 있었다고 한다. 제킨스는 아비와 수놈 새끼의 노래법을 비교함으로써 노래의
패턴이 유전적으로 아비에게서 수놈 새끼에게로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개개의 젊은
수놈은 근처에 영역을 갖는 다른 개체의 노래를 인간의 경우처럼 모방이라는 수단에 의해
자기 것으로 삼는 것 같다. 제킨스의 체류 기간 중 섬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의 수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그들이 소위 '노래 풀'을 형성하고 젊은 수놈들은 그로부터 소수의 노래법을
자기 것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제킨스는 운좋게도 젊은 수놈이 옛 노래법을 모방하다가
새로운 노래를 '발명' 는 장면에 몇번 부딪치게 됐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로
운 노래는 음의 고저의 변화, 같은 음성의 추가, 음성의 탈락 또는 다른 노래법의 부분적 편
입 등 각종의 방법으로 탄생한다. 새로운 노래의 형식은 돌연히 출현하는데 그 후에는 몇
년에 걸쳐 극히 안정된 형으로 유지됐다. 다시 몇 개의 예에서 변이형의 노래가 그 새롱누
형식대로 어린 초보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어 그 결과 잘 닮은 가수들의 그룹이 새로이 다른
것과 식별될 정도로 됐다." 젠킨스는 새 노래의 출현을 '문화적 돌연변이(cultural mutation)'
라고 표현하고 있다.
안장새는 노래는 분명히 비유전적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조류와 원숭이의 무리
에는 이외에도 문화적 진화의 예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것이나 별다르고 흥미
로운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문화적 진화의 위력을 정말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속
하는 인간이라는 종인 것이다. 언어는 그 많은 측면의 하나에 불과하다. 의복과 음식물의 양
식, 의식과 습관, 예술과 건축, 기술과 공예 등 이들 모두는 역사를 통하여 마치 극히 속도
빠른 유전적 진화와 같은 약식으로 진화하는데, 물론 실제로는 유전적 진화와는 전혀 관계
가 없다. 그러나 유전적 진화와 같이 문화적인 변화도 진보적일 수 있다. 현대 과학은 실제
로 고대 과학보다 우수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우주에 관한 우리의 이해는 시대와 더불어 변
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개선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이해에 관해 현재와 같은
폭발적 진보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확실히 오래 전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그네상스 이전
에는 음산한 정체기가 있었고 유럽의 과학 문화는 그리스가 달성한 수준에 동결되어 있었
다. 그러나 제5장에서 말한 대로 유전적 진화에도 닮은 현상이 보인다. 그것은 안정된 정체
기간에서 일련의 돌발적 변화를 나타내어 진행하는 것 같다.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의 유사성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의 유사성은 종종 지적되고 있다. 때로 그것은 단지 전혀 불필
요한 신비적 함축이 있는 문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학의 진보와 자연 선택에 의한 유
전적 진화의 유사성에 관해서는 특히 포퍼(Karl Popper) 경이 해명을 하고 있다. 포퍼 경을
시작으로 하여 유전학자 카발리 스포르자(L.L. Cavalli-Sforza), 인류학자 클록(F.T. Cloak),
그리고 동물 행동학자 컬렌(J.M. Cullen)등이 탐구하고 있는 방향을 더 끌고 나가고 싶은
것이 나의 목적이다.
열렬한 다윈주의자로서 나는 같은 열렬한 다윈주의자인 동료들이 인간 행동에 가하는 설
명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문명이 나타내는 각종 특성의 '생물학적 유리
함'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예를 들면 부족 종교는 집단으로서의 dflcprka을 높이기 위한
나아ㅢ 메커니즘으로 간주되어 왔다 무리를 지어 수렵을 하는 동물의 경우 각 개체의 생존
은 크고 발빠른 먹이를 잡기 위한 협력에 의존하며, 상기의 메커니즘은 이와 같은 종에게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종의 이론을 짜맞출 때 그 전제로 되어 있는 진화론적인 견해가
종종 은연중에 그룹 선택주의자적인 것이 되어 있는 수가 있은데, 그들은 정통적인 유전자
수준의 선태으로 바꾸어 말할 수가 있다. 확실히 인간은 과거 수백만 년의 태반을 소규모의
혈연 집단 단위의 생활로 지내 온 것 같다. 따라서 우리의 기본적인 심리적 특성이나 경향
은 대개 우리의 유전자에 대한 혈연 선택과 호혜적 이타주의를 촉진하는 선택이 작용한 결
과로서 만들어졌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생각도 그 자체로서는 훌륭한 것 같다.
그러나 문화나 문화적 진화, 더 나아가 세계의 인간 문화가 나타내는 끝없는 차이-턴빌
(Cilin Tumbill)이 기록한 우간다의 IK 족의 극한적인 이기성과 미드(Margaret Mead)가 보
고한 아라페시(Arapesh) 족의 온화한 이타주의가 그 양극이다-를 설명한다고 하는 망막한
난제는 아직 상기한 바와 같은 이론으로는 매우 대처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나의 생각으
로는, 우리는 또 한번 다시 고쳐 첫 번째 윈리로 되돌아가 보지 않으면 안되겠다. 현대인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를 생각할 때에 유전자만을 그 유일한 기초로 보는 입장을
버려야만 된다는 것이 내가 이제부터 전개하려는 논의이다. 만약 내가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와 같은 것을 말했더라면 놀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확실히 열렬한 다윈주의자이다. 그러나
나는 유전자라는 좁은 문맥에 비해 다위니즘은 너무나 큰 이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다. 이하의 나의 주장에서 유전자는 유추의 대상으로서만 등장할 것이다.
유전자의 특성-자기 복제자
도대체 유전자의 특성이란 무엇일까? 자기 복제자라는 것이 그 답이다. 물리학의 법칙은
도달될 수 있는 전 우주에 타장하다고 보아진다. 생물학에도 이에 해당하는 보편 타당성을
가지는 원리가 있는 것일까? 우주 비행사가 저 멀리 떨어진 행성에 도달하여 생물을 찾는다
면 우리는 상상도 못할 기묘하고 기괴한 생물을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에 살
고 있드, 어떤 화학적 기초를 가지고 살고 있든 모든 생물에 필히 타당한 그 무엇은 없을
까? 가령 탄소 대신에 규소를 혹은 물 대신에 암모니아를 이용하는 화학적 구조를 가진 생
물이 존재했다고 해도, 또는 가령 -100도에서 생존하는 생물이 발견된다면, 또한 가령 화학
반으에 일체 의존하지 않고 전자 방향 회로를 기초로 한 생물이 발견되었을 경우, 이들 모
든 생물에 타당한 일반 윈리는 없는 것인가? 물론 나는 그 답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무언
가에 내기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어떤 기본 원리에 내 돈을 걸 것이다. 모든
생물은 자기 복제를 하는 실체의 생존율의 차이에 의하여 진화한다는 것이 그 원리이다. 자
기 복제를 하는 실체로서 우리의 행성에 세력을 뻗친 것은 유전자, 즉 DNA 분자였다는 것
이다. 그러나 다른 것이 그 실체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그와 같은 것이 존재하고 다
른 어떤 종의 여러 조건이 충족되면 그것이 어떤 종의 진화과정에 기초가 된다는 것은 거의
필연적일 것이다.
다른 종의 자기 복제자와 그 필연적 산물인 다른 종의 진화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아주 먼
세계로 나갈 필요가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신종의 자기 복제자가 최근에 바로 이 행성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과 현재 코를 맞대고 있다. 그것은 아직 미발달한 상태에 있
고 전과 다름없이 원시 수프 속에 꼴사납게 떠 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헐떡거리며 멀리
뒤떨어진 옛 유전자를 버려 두고 일정한 속도로 진화적 변화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인간의 수프-문화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이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
이 필요하다.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명사여야 할
것이다. 모방에 알맞는 그리스어의 어근을 따면 'mimeme'라는 것인데 내가 바라는 것은
'gene(유전자)'이라는 말과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이다. 그래서 상기한 그리스어의 어
근을 '밈(meme)'이라고 줄이기로 했다. 나의 친구인 고전학자들에게는 관용을 바라는 바이
다. 만약 위로가 된다면 밈이라는 단어는 '기억(memory)', 또는 이것에 상당하는 프랑스어
의 'meme'라는 단어에 맞추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또 이 단어는 '크림(cream)'과 같은 운
을 밟아서 발음해 주길 바란다.
곡조나 사상, 표어, 의복의 양식, 단지 만드는 범, 또는 아치 건조법 등은 모두 밈의 예이
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번식함에 있어서 정자나 난자를 운반체로 하여 몸에서 몸으
로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밈이 밈 풀 내에서 번식할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매개로 하여 뇌에서 뇌로 건너다니는 것이다. 만약 과학자가 좋은 생각을 듣거
나 또는 읽어나 하면 그는 동료나 학생에게 그것을 전할 것이다. 그는 노문이나 강연 속에
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그 생각이 평가를 받으면 뇌에서 뇌로 퍼져 자기 복제한다고
할 것이다. 나의 동료인 험프리(N.K. Humphrey)가 이 장의 초기 원고를 솜씨 좋게 요약하
여 지적해 주고 있듯이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
야 한다. 네가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문자대로 네가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 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
으로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용의 운반체로 되어 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사
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밈은 신경계의 하나의 구조로서 막대한 횟수에 걸쳐 세계
속의 사람들 속에 육체적으로 실현되어 있지 않은가."
신과 ala의 생존가
신에 대한 생각을 고려해 보자. 그것이 어떻게 해서 밈 풀 속에서 발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자칫하면 그것은 독립된 '돌연변이'에 의해서 몇 번이고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해서 자기 복제를 하는 것일까? 말하기에 따라 그리고 글쓰기에 따라서 위대
한 음악과 위대한 예숙이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면 그 밈은 왜 이와 같이 놓은 생종가를
나타내는가. 여기서 말하는 '생존가'란 유전자 풀 속의 유전자로서의 값이 아닌 밈 풀 속의
밈으로서의 값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상기의 의문이 의미하는 것을 과장되게 표현
하면 다음과 같다. 문화 환경 속에서 신의 관념이 안정성과 침투력을 주는 것은 도대체 그
관념이 갖는 어떤 성질일까? 밈 풀 속에서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가는 그것이 갖는 강력
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이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의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주고 있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이 내세에서 바로 고쳐진다
고 주장한다.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해서는 '신의 팔'이 구원해 주신다고 한다. 의사가 쓰고
있는 위약과 같아서 이런 것으로도 공상적인 사람에게는 효력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
의 뇌가 세대에서 세대로 용이하게 신의 관념을 복사해 가는 이유의 일부이다. 인간의 문화
가 만들어 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가령 높은 생존가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이라는 형태로만
실재하는 것이다.
신의 밈의 생존가에 대한 상기와 같은 나의 설명은 논의의 관점의 중심을 피하고 잇는 것
이 아니냐고 지적해 주는 동료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항상 정해 놓고 '생물학적 유리
함'에 되돌아오려고 한다. 그들은 신이 '갈력한 심리적 매력'이 있다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불
만일 것이다. 그들은 왜 그것이 강력한 심리적 매력을 가지는가를 알고 싶어한다. 심리적 매
력이라는 것은 뇌에 대한 매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뇌란 유전자 풀 속의 유전자에
대해 자연 선택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상기와 같은 뇌를 가지는 것이 어떤
방도로 유전자의 생존 촉진에 연계되어 있지나 않나 하는 것을 그와 같은 방도로 밝혀내고
싶은 것이다.
DNA-자기 복제자
나는 이러한 태도에는 크게 공감을 가지고 있고, 또 현재와 같은 뇌를 우리가 소유하고
있음으로 해서 유전적인 유리함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에도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
러나 그 위에 더욱 나는, 만일 동료들이 그들 자신의 논의의 여러 전제를 그 근본에서 상세
히 검토한다면 그들 자신도 나와 똑같이 논의의 관점을 회피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현상을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
이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는 유전자가 자기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분자의 자기 복제를 가능
케 하는 조건이 윈시 수프 속에 갖추어지면 즉시 자기 복제자가 원시 수프에서 그 일을 떠
맡았다. 그리고 30억 년 전부터 이 지상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기 복제자는
DNA였다. 그러나 DNA가 영원히 그 전매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종류의 자기 복제자가 자기의 사본을 만들 조건이 생기기만 하면, 바로 그 새로이 나타난
자기 복제자가 세력을 잡고 그 자체의 새로운 종류의 진화를 개시하게 된다. 일단 새롭게
개시된 진화가 이미 낡은 타입이 된 진화에 따라야만 할 필연성은 없다. 유전자를 단위로
하는 낡은 진화는 뇌를 만들어 내는 것에 의해 최초의 밈이 등장하면 그들은 낡은 타입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타입의 진화를 개시한다. 우리 생물학자는 유전자에 의한 진화
의 사고 방식에 완전히 숙달되어 있으므로 실은 그것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진화 중의 일례
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칫하면 잊어 버리게 된다.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함
넓은 의미에서 모방은 밈의 자기 복제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자기 복제가 가능
한 모든 유전자가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어떤 밈은 밈 풀 속에서 다른 밈보다 성
공적일 수도 있다. 이것은 자연 선택과 흡사한 과정이다. 밈에 높은 생존가를 부여하는 등
의 특성에 관해서는 이미 몇 개의 특수한 예를 들었다. 그러나 일반화하여 생각하면 그 득
성은 제2장에서 자기 복제자에 관하여 논한 것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즉, 수명, 다산성 그
리고 복제의 정확함이 그것이다. 밈의 사본이 표시하는 수명은 유전자의 경웨 비하면 그다
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머리 속에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선율은
나의 수명이 있는 동안만 존재할 것이다. 내 수중에 있는 (스코틀랜드 학생 가곡집)에 인쇄
된 같은 선율의 사본도 상기한 사본에 비하여 그리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같은 선
율의 사본은 종이에 인쇄되어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 앞으로 수백년이라도 계속 존재할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자의 경우와 같이 여기서도 특정한 사본의 수명보다 다산성인 것이
훨씬 중요하다. 문제의 밈이 과학적인 아이디어가 인용되는 수를 셈으로 해서 그 아이디어
의 대략적인 생존가를 측정할 수 있다. 가요곡이라는 밈의 경우, 밈 풀 속에서의 번식 정도
는 그곡을 휘파람으로 불면서 지나가는 사람의 수로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숙녀화의 스
타일이라는 밈이 문제라면 집단 밈 학자는 구둣방의 매상 통계를 이용할 수도 있겠다. 유전
자의 경우와 같이 밈 속에도 급격한 증식에 의해 아주 단기적인 성공을 달성하면서 밈 풀
속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는 것도 이싸. 유행가나 필요 이상으로 뾰족한 스파이크힐 등이
그 예이다. 한편 유대교의 율법과 같이 수천 년에 걸쳐 자기 복제를 계속하는 것도 있다. 이
러한 밈은 기록된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출한 잠재적 영속성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보통
이다.
계속하여 자기 복제자가 성공하기 위한 세 번째의 일반적 성질, 즉 복제의 정확도에 문제
가 있다. 이 점에 관해 나의 논의의 토대가 좀 불확실함을 인정해야겠다. 언뜻 보아서는 밈
이라는 자기 복제자가 복제상의 고도의 정확도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어떤 아이디어를 듣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할 때 그는 그것을 어느 정도
변화시키게 된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이 트라이버스의 아이디어에 힘입고 있는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의 아이디어를 그의 말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았다. 나는 강조하는 점
을 바꾸거나 내 자신의 또는 다른 연구자의 아이디어를 혼합해서 그의 아이디어를 나의 목
적에 맞게 바꾸어 놓았다. 본래의 밈은 변형되어 독자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입자의 성
질같이 전부냐 아니냐 하는 성질을 가진 유전자 전달과는 전혀 닮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밈의 전달은 계속되는 돌연변이, 그리고 나아가서는 혼합에 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견 이 비입자적인 성질이 실은 착각일 수도 있고 유전자와의 유사성도 무너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신장이나 피부색과 같은 많은 유전형질의 유전을 보면 그것
들이 분할 불가능하고, 또한 혼합 불가능한 유전자의 손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면 그들의 아이는 흑색도 백색도 아닌 그 중간의 피부색으로 나타난다. 그러
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해당 유전자가 입자적이 아님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피부
의 색에 관해서는 미약한 효과를 나타내는 유전자가 매우 많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아 그것들이 혼합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밈이 하나의 단위로 구
성되어 있다는 것을 마치 확실한 것처럼 말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확실치 않다는 것은 분
명하다. 나는 하나의 곡조를 하나의 밈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 하나의 교향곡은 어떻게 되
는가, 그것은 몇 개의 밈으로 되어 있는가, 각각의 악장이 밈에 해당하는가, 선율상으로 식
별되는 악구가 밈에 해당되는가, 각각의 코드가 밈인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제3장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말의 기교에 호소하기로 하자. 제3장에서 나는 '유전자의 복
합체'를 크고 작은 유전자 단위로 분할하고, 그것을 다시 더 작은 단위로 분할했다. 그리고
나는 '유전자'를 엄격히 전부냐 아니냐 식이 아닌 편의적 단위로서, 즉 자연 선택의 단위로
서 지속적으로 일하기에 만족할 만큼의 복제상의 정확도를 갖춘 염색체상의 부분으로 정의
해 놓았다. 자, 이제 베토벤의 제9교향곡 중에 충분히 뛰어나고 외우기 쉬운 한 악구가 있다
고 하자. 더욱이 그것은 화가날 정도로 밀어붙이는 유럽의 한 방송국이 시그널 뮤직으로 쓸
정도로 뛰어나게 외우기 쉬운 악구라고 하면 이 경우 그 악구는 상기 사정에 걸맞은 범위에
서 하나의 밈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말하거니와 이 밈 덕분에 원래의 심포니
를 즐기는 나의 능력은 크게 감퇴되고 말 것이다.
다윈 이론과 밈
이와 비슷한 예로서 가령 우리가 "오늘날 생물학자는 모두 다윈의 이론을 믿고 있다.:라고
했다 해도 모든 생물학자가 다윈의 말을 정확히 그대로 머리 속에 새겨 넣고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개개의 학자는 다윈의 이론에 과하여 독자적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칫하면 다윈 자신의 저작에서부터 그것을 배운 것이 아니고 보다 최근의 저자의 것으로부
터 배웠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다윈이 말한 것에는 자세히 말하면 다소의 잘못이 있다.
더욱이 나는 그가 나의 설명법에 대해서는 마음에 든다고 말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으나,
만약 다윈이 나의 이 책을 읽는다면 거기에서 그 자신의 본래 이론을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모든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위니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
는 것은 이 이론을 이해하고 잇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 확실히 현존한다. 만약 그와 같
은 것이 있을 수 없다면 두 인간 사이에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에 관한 모든 설명은 무의
미하게 되고 말 것이다. '아이디어의 밈'은 뇌와 뇌 사이에서 전달 가능한 실체로서 정의되
어야 할 것이다. 즉, 다윈 이론의 밈이란 이 이론을 이해하고 있는 모든 뇌가 공유하는 그
이론의 본질적 원칙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 이론을 표현할 때의 수단상의 차이점은
정의에 의하면 다윈 이론의 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만약 다윈의 이론이 A와 B의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 가령 어떤 사람은 A를 믿는데 B는 안 믿고,
다른 사람은 B를 믿고 A는 불신하는 상황이라면 A와 B는 다른 밈으로써 구별되어야 할 것
이다. 그러나 A를 믿는 사람은 대개 B도 믿는다. 유전학 용어, 즉 두 밈은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 경우에는 양자를 합하여 하나의 밈으로 보는 것이 편리하다.
밈과 유전자의 유사점
밈과 유전자의 유사점을 더 조사해 보기로 하자. 이 책의 전체를 통하여 나는 유전자를
의식을 가진 목적 지향적인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유전자는 맹
목적인 자연 선택의 작용에 의해 마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인 양 만들어져 있다.
또한 목적 의식을 전제로 한 표현으로 유전자를 설명하는 편이 편리하다. 예컨데 "유전자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가시의 사본 수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표현할 경우 실제
의 의미는 "우리가 자연계에서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전자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자
기의 수를 결과적으로 증가시킬 수가 있는 거동을 하는 유전자다."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 목적 지향적으로 일하는 능동적인 존재로서 유전자를 생각하는 것이 편리했던
것처럼 밈에 관해서도 같게 생각하면 편리하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표현을 신비적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목적이란 생각은 어느 경우에서나 단순한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
전자의 경웨 이 은유가 어떻게 유용했었는가는 이미 본 바대로이다.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은유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나서 유전자에 대해 '이기적인'이나 '잔인한'이라든가 하는 형용
사까지 쓸 정도이다. 이들 경우와 똑같은 심정으로 이기적인 밈이나 잔인한 밈을 물색할 수
가 있을까?
경쟁적인 유전자
여기서 경쟁의 성질을 가지고 문제를 하나 생각해 두자. 유성 생식의 경우, 개개의 유전자
는 대립 유전자, 즉 염색체상의 같은 장소를 점하려고 하는 대립 유전자와 경쟁하고 있다.
ala에는 염색체에 상당하는 것이 없으며, 대립 유전자에 상당하는 것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극히 작은 의미에서라면 많은 생각에는 '대립하는 생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적으로 밈은 적절하게 짝을 이룬 다수의 염색체 형태로 존재하는 오늘날의 유전자와는 별로
닮지 않고, 오히려 그것은 예 원시 수프 속을 무질서하게 제멋대로 떠 있던 초기의 자기 복
제 분자를 닮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밈은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
인가? 대립하는 밈이 없는데로 밈이 '이기적' 이라거나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도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답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서로 일종의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컴퓨터를 사용한 적이 있는 독자는 컴퓨터의 연산 시간과 기억 용량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잘 알 것이다. 많은 대규모의 계산기 센터에서는 그것을 문자대로 요금에
환산하고 있거나, 사용자에게 초 단위의 사용 시간과 '문자'의 수로 표시된 기억 용량을 각
각 일정량 씩 할당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이다. 거기서는 시간이 아
마도 저장 용량보다 중요한 제한 요인으로 되어 있고, 심한 경쟁의 대상으로 되어 있을 것
이다. 인간의 노와 그 제어하에 있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한 인간의 노의 처리 요구를 독점하고 있다고 하면 '라이벌'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밈이 경쟁의 대상으로 하는 필수품은 다른 것에도 있
다. 예컨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
관의 책장 공간 들이다.
상호 적응적 밈
유전자의 경우, 유전자 풀 속에 상호 적응하는 유전자의 복합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제3장에서 이야기했다. 예컨대 나비의 의태에 관여하는 다수의 유전자는 동일 염색체상에
극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것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 하나의 유전자로서 다룰 정도이
다. 제5장에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자 세트라는 더 복잡한 개념을 끄집어냈다. 예컨대
육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서로 적합한 이, 발톱, 소화관, 그리고 감각 기관이 진화하는
한편 초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위와는 다른 모든 특성이 안정된 세트를 형성하고 있다.
밈 풀 에서도 닮은 일이 생길 것인가? 예컨대 신의 밈이 다른 특정 밈과 화합이 가능하고,
또 이 화합이 각각의 밈들의 생존에 도움을 줄수 있을까? 자칫하면 독특한 건축, 의식, 율
볍, 음악, 예술, 그리고 문자로 이루어진 전통을 가진 교회 조직 등은 서로 돕는 밈의 상호
적응적 안정 세트의 일례일지도 모른다.
종교와 믿음
하나의 특별한 예를 들어 보자. 사람에게 종교 의식을 강요하기 위해 유효했던 교의의 하
나는 지옥불이라는 협박이다. 많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일부 어른들까지도 성직자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사후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중세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게 하는 극히 음험한 설득 기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이 기술은 효과적이다. 또는 심층 심리학적인 교화 기술의 훈련을 받은 권모술수적인 성
직자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기술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성직자들이 그렇게까지 머리가 좋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는 의
식을 갖지 않는 밈이 성공하는 유전자가 나타내는 것과 같은 모조적 잔인성이라는 특성을
가진 덕분에 스스로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편이 당연하다는 기분이다. 지옥불이라는
관념은 아주 단순히 그 자체가 가지는 강렬한 심리적 충격력 때문에 자기를 영속화하고 있
는 것이다. 그것이 신의 밈과 연관된 것은 양자가 서로 강하게 화합하여 밈 풀 속에서 서로
의 생존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하는 밈 복합체의 또 하나의 구성원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증거가 없어
도 -증거를 무시하고라도- 맹신한다는 것이다. 불신의 '도마(Thomas)의 말은 도마로 하여
금 믿도록 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와 비교 대조함으로써 우리가 다른 사도들을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도마는 증거를 요구했다. 어떤 종류의 밈에게는 증거를
찾는 경향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다른 사도들은 아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증
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이야말로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지지받고 있는 것
이다. 맹신의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 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함으로써 자
기의 영속을 확보하는 것이다.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으면 아니, 만약 사람
이 같은 신을 믿는데 다른 의식을 쓴다면 다만 그것만으로도 맹신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단다, 화형을 한다,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 베이루트 노상에서 사살한
다, 벨파스트의 술집에 있는 것을 폭탄으로 날린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이다. 맹신이라는
밈은 몸에 밴 잔인한 방법으로 번식해 가고 있다. 애국적,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
든 상기의 성질은 똑같은 것이다.
독신주의
밈과 유전자는 종종 서로 강하게 화합하는데 때로는 서로 대립하는 수도 있다. 예컨대 독
신주의의 습관 같은 것은 유전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성 곤충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독신주의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실패로 운
명지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신주의의 밈은 밈 풀 속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밈의 성공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시간
을 T는가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된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 밈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 이외
에 쓰인 모든 시간을 그 밈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 낭비로 보일 것이다. 독신주의의 밈은 성
직자들로부터 아직 인생의 목표를 정하지 않은 소년들에게 전해진다. 전달의 매체가 되는
것은 각종의 인간적 영향력을 가지는 것, 예컨대 오가는 말, 쓰여지는 문자, 사람에 의한 모
범 등이다. 여기서 논의의 편의상 대중에 대한 성직자의 영향력이 결혼에 의해 약화된다고
하자. 이는 결혼이 그의 시간과 관심을 크게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것은 성직자에
게 독신 생활을 강요할 때에 공식적인 이유로서 제시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위와 같은
사태가 있을 수 있다면 독신주의의 밈은 결혼을 촉구하는 밈보다 높은 생존가를 나타 낼 수
있다. 물론 독신주의를 촉구하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독신주의의 밈과
는 완전히 역의 결과가 될 것이다. 승려를 밈의 생존 기계라고 한다면 독신주의라는 것도
그에게 짜 넣어지면 필요한 속성이 된다. 독신주의는 다수의 호조적인 종교적 밈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복합체의 작은 파트너인 것이다.
나는 상호 적응한 유전자 복합체의 진화와 같은 방식으로 상호 적응한 밈의 복합체가 진
화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선택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문화적 환경을 이용하는 밈에게 유리
하게 작용한다. 이 문화적 환경은 같은 식으로 선택을 받고 있는 밈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
라서 밈 풀이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로서의 특성을 나타내게 되어 새로운 밈은 쉽게 침입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밈의 밝은 면
지금까지는 밈의 어두운 면만을 이야기해 온 것 같다. 그러나 밈에도 밝은 면이 있다. 우
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즉, 유전자와 밈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기계이다. 그러나 유전자 기계로서의 우리는 3세대 정도 경과하면 잊
어버리고 말 것이다. 자식이나 또는 손자도 우리와 어딘가 닮은 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얼굴의 모양새가 닮았을지 모른다. 음악적 재능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또는 머리칼
색깔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우리 유전자의 기여는 반감해 간
다. 그 기여도는 머지않아 무시할 정도로 될 것이다. 유전자 자체는 불사신일지 몰라도 특정
개인을 형성하는 유전자의 집합은 붕괴될 운명에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윌리엄 1세의 직
계 자손이다. 그러나 그녀가 옛날의 대왕의 유전자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할 가능성은 많
이 있다. 번식이라는 과정 속에서 불사를 희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계 문화에 무언가 기여할 수가 있다면, 예컨대 좋은 의견을 내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발화식 플러그를 발명하거나, 시를 쓰거나 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유전자
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 버린 후에도 변함없이 길이 생존해 나갈지도 모른다.
윌리엄스가 지적한 대로, 소크라테스의 유전자 중에서 금일 세계에 살아 남아 있는 것이 과
연 하나라도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을 두고 있을 것인가.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마르코니 등등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전재한 밈의 이론이 아무리 사변적이었다고 해도 여기서 또 한번 강조하고 싶은 중
요한 논의점이 하나 있다. 문화적 특성의 진화와 생존가를 문제삼을 때에는 누구의 생존을
문제삼는가를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본대로 생물학자들은 유전자
수준에서의 유리함을 탐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취미에 따라서는 개체, 집단 또는 종
의 수준에서 유리함을 탐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단지 그 자신에게 유리하다
는 이유만으로 문화적 특성이 진화할 수 있는 그런 진화의 양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
해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조차도 해 보지 않았다.
종교, 음악, 그리고 제식춤 등에는 생물학적인 생존가가 있는지 몰라도 그것에 관해 꼭 통
상의 생물학적 생존가를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유전자가 그 생존 기계에 빠른 모방 능
력을 가진 뇌를 제공하게 되면 밈들은 필연적으로 득세한다. 모방에 유전적 유리함이 있다
면 확실히 도움이 되지만 그런 유리함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뇌에 모방 능력이 없다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이것만 충족된다면 그 능력을 충분하게 이용
하는 밈이 진화해 나갈 것이다.
선견 능력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의 화제는 이제 이 정도로 하고, 적당한 희망에 접하며 한 마
디의 말로 이장을 끝맺고 싶다. 그 진화가 밈에 의해 유래됐는지 어떤지 정해진 것은 아니
나, 인간에게는 의식적인 선견 능력이라는 하나의 독자적 특성이 있다. 이기적 존재인 유전
자는(그리고 독자가 이 장의 사변을 인정한다면 밈에게도) 선견 능력이 없다. 그들은 의식을
갖지 않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인 것이다. 그들이 자기 복제한다는 사실과 어떤 종의 부가
적인 여러 조건과를 조합하여 생각하면 그들은 이기적(이 책에서 쓴 특수한 의미로)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성질을 불가피하게 진화시킨 것이다. 유전자이든 ala이든 무지한 자기 복
제라는 것은 눈앞의 이기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공격 행동을 다룬 장에서 보았다. 어느 개체이든 진화
적으로 안정된 전략보다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를 취하는 것이 유리한데도 자연 선택은
필히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해 나간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진짜 이타주의의 능력이 인간의 또 하나의 독자적 성질일 가능성도
있다. 꼭 그리됐으면 좋을 것이나 이 점에 관해 나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논의할 생
각은 없고, 그것에 관한 밈적인 진화의 가능성을 이것저것 사변할 생각도 없다. 내가 여기서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다음의 한 가지 점이다. 우리가 비록 어두운 측면으로 눈을 돌려 개
개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 능력,
즉 상상력을 구사하여 장래의 사태를 시뮬레이트 하는 능력에는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이
일으키는 최악의 이기적 폭거에서 우리를 구출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단순한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오히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촉진시킬 정도
의 지적 능력은 있다. 우리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참가하는 것이 장기적 이익에 이어
짐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경쟁자와 함께 앉아 그 공동 행위를 잘 실행하는 방법을
서로 말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고 만일 더 필요하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는 자
연계에 안주할 여기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
는 그것을 계획적으로 육성하여 교육하는 방법을 논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
자 기계로서 조립되어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상에는 유일하게 우리 인간만이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적
지배에 반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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