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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유전자

세대간의 싸움

by Frais Feeling 2020. 9. 20.

        가족 내부의 이해관계
  우선 앞 장의 마지막에 제기되었던 여러 문제 중에서 첫 번째 문제부터 취급하기로 하자. 
어머니는 아이를 편애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아이에게  동등하게 이타적으로 대할 것인가? 
지루하게 생각될지는 몰라도 나의 습관적인 경고를 여기서도 다시 해야 한다. '편애'라는 말
에는 주관적인 의미가 없으며, '해야 한다'란 말도 윤리적인 용어로서 쓰이고 있지  않다. 나
는 어머니를 하나의 기계로 취급하고 있다. 이 기계의 내부에는 유전자가 제어자가 되어 삽
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게는 유전자의 사본을 증식시킬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
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독자와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의식적인 목적을 갖는 것이 어떤 것
인지를 알고 있다. 생존 기계의 행동을 설명함에 있어서  목적에 관련된 용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면 편리하다.
      편애
  실제로 어머니가 아이를 편애한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답은 그녀가 이
용할 수 있는 여러 자원을 아이들에게 불균등하게 투자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투자할 수 
있는 자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먹이가 뚜렷한 예인데 그것을  취하는 데 드는 노력도 어
머니에게 어떤 부담이 되는 이상, 이것도 분명한 자원이다. 포식자로부터 아이를 지킬  때의 
위험은 그 '행사'나 회피가 어머니의 수중에 있는 또 다른  자원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집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쓰이는 에너지나  시간, 폭풍우로부터의 보호, 또한 일부  동물종에는 
새끼 훈련에 쓰이는 시간 등 어느 것이든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대해 공평히, 또는 어머니의 
'선별'에 따라 불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다.
  어미 동물이 투자할 수 있는 이들 모든 자원을 측정하는 공통의 척도를 생각해 내는 것은 
어렵다. 인간 사회에서는 음식물, 토지, 노동 시간 등의  어느 것과도 변환 가능한 보편적인 
척도로서 화폐가 사용되고 있다. 그것과 꼭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개개의 생존 기계가 다른 
개체, 특히 새끼의  생명에 대해 투자하는 여러 자원을 측정하기 위한 단 하나의 척도가 필
요하게 된다.. 에너지의 척도인 칼로리 등이 적절하게 보이므로 일부의 생태학자들은 야외에 
있어서의 에너지 비용의 계산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이 척도는 불충분하다. 중대한  의미를 
갖는 척도, 즉 진화의 '궁극적  척도'인 유전자의 생존에 그것을  실제로 적용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애매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솜씨 있게 해결한 사람은 투라이버스  (R.L. 
Trivers)였다. 그는 1972년에 ' 부모에의한 보호 투자'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그것을 풀어 보
았다(단 20세기 최대의 생물학자인 피셔(R.Fisher) 경의 압축된 문장의 행간을 읽으면  그가 
1930년에 '부모의 경비'라는 말로 트라이버스의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와 거의 동일한 사건
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parental investment, PI)는 '한 아이에 대한 부모의 투자 중 그 아
이의 생존 확률(그 때문에 번식에 성공할 확률)은 증가 시키지만  동시에 다른 아이에 대한 
부모의 투자 능력을 희생시키는 모든 것'으로서 정의도니다. 트라이버스의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라는 사고 방식의 장점은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궁극적 척도에 가장 가까운 단위
로 평가되는 것이다. 예컨대 한 아이가 모유의 일부를 마셔 버리면 모유의 소비량은 파인트
(pint) 또는 칼로리 단위로 측정되는 것이 아닌 이것에 의해 다른 형제가 입는 손해의  단위
로 측정된다. 지금 어떤 어머니가  X와 Y라는 두 아이를 키우는데,  X가 1파인트의 모유를 
마셔 버렸다고 하면 이때의 상기의 양의 모유에 대응하는 PI의 대부분은 그 모유를 못 마셨
기 때문에  Y의 사망 확률아 얼마큼  증가하는가에 따라 측정된다. P.I.는 이미 출생했거나 
또는 앞으로 출생할 다른 아이들의 평균 여명의 감소도에 의해 측정된다.
  그러나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도 이상적 척도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다른 유전적 관계를 
제쳐놓고 친자 관계만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  어떤 일반화된 '이타적 투자'
의 척도를 이용해야만 할 것이다. 개체 A가 개체 B의 생존 확률을 증가시킨다면 A는 자기 
자신 및 다른 친척에 대한 투자 능력을 희생하여 B에게 투자했다고 해도 좋다. 이때에 치러
지는 모든 희생은 적절한 유전적 근친도에 의해 가중치가 더해진다. 즉, 이상적으로 어떤 아
이에 대한 어머니의 투자는 다른 아이들뿐만 아니라 생질 혹은 그녀 자신 등의 평균 여명의 
감소에 의해 측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점에서 억지 주장이다. 실제로는 트
라이버스의 척도로도 충분하다.
  모든 어미 동물은 자신의 생애를 통산하여 새끼에게 투자할 수 있는 어떤 총량의 PI를 갖
고 있다고 가정하자(새끼뿐만이 아니라 다른  혈연자와 어미 자신에 대한  투자도 고려해야 
하나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아이만을 생각한다). 이 양에는 어미가 일생 동안 노동을 통하여 
획득 또는 생산할 수 있는 음식물의 총량, 어미가 스스로 대처할 용기가 있는 유험의  총량, 
그 밖에 어미가 새끼의 복리를 위해 주입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와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성숙기에 달한 젊은 여자는 그녀의 생애에 자원을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그녀가 따라야 할 
현명한 투자책은 어떤 것일까? 랙의 이론에서 이미 밝혀졌듯이 많은 아이에게 투자를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그녀는 충분한 수의 후손을 확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매우 많은 유전자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아주 소수의 아이, 즉 과보호로  호강하는 
아이들에게 모두를 투자해 버릴 수도 없다. 그 경우  그녀는 확실히 '약간'의 후손을 확보할 
것이다. 최적수의 아이에게 투자한 경쟁자쪽이 최종적으로 보다 많은  손자를 얻게 될 것이
다. 공평한 투자책에 대해서는 이상으로 하고, 당면한 관심은 아이에 대해 불공평한  투자가 
어머니로서 득이 되느냐 하는 일이다. 바꿔 말하면 그녀는 아이를 편애할 것인가, 어떤가 하
는 문제이다.
      편애에는 유전적 근거가 없다.
  어머니의 편애에 관해서는 유전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해답이다. 그녀의 아이
에 대한 유전적 근친도는 1/2로 같이 때문이다. 즉, 그녀의 최적 전략은 번식 연령까지 양육
해 낼 가장 큰 수의 아이에  대해 '공평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6장에서 다룬 
바와 같이 일부의 개체는 다른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생명 보험의 피보험자로서  훌륭하게 
생장한다. 평균 크기 이하의 작은 아이도 더 성장이 좋은  한배 새끼들과 같은 수만큼 어머
니의 유전나를 갖고 있으나 그의 평균 여명은 다른 동료들보다  짧다. 바꿔 말하면 다른 형
제들과 최종적으로 같은 상태까지 그를 키워  보려고 하면 다른 형제들과 최종적으로  같은 
상태까지 그를 키워 보려고 하면  그만큼 공평한 배분량 이상의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가 
'필요하게 된다.' 사정에 따라서 이와 같은 작은 아이에게  급식을 거부하고 보호 투자의 배
분량을 모두 다른 형제 자매에게 분배하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유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육에 실패한 새끼를 죽여서 그 형제 자매들에게 먹이거나 자기가 그 새끼를 먹
고 모유의 생산에 보탬이 되게  하는 편이 어미에게 득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어미 돼지가 
자기 새끼를 실제로 먹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미 돼지가 키울  수 없는 새끼를 
골라서 먹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평균 크기 이하의 작은 새끼의 문제는 특수한 예의 하나이다. 더 일반화하면 새끼에 대한 
어미의 투자 경향이 새끼의 연령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관해 몇 가지 예측이 가능하
다. 우선 만일 어미가 어느 한편의 새끼의 생명만 구하고 구조를 못 받은 새끼는 죽일 수밖
에 없는 양자 택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면 어미는 나이  먹은 새끼를구하려고 할 것이다. 나
이든 새끼가 죽는 것과 어리고 작은 새끼가 죽는 것을 비교하면 지금까지의 보호 투자량은 
전자쪽이 많기 때문이다. 단, 이것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만일 어미가 
작은 새끼를 구했다면 큰 새끼와 같은 연령까지 키우기 위해서는 다시금 귀중한 자원을 투
자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만일 어미가 직면하는  선택이 상기와 같이 새끼의  생사를 가늠할 정도로엄격하지 
않을 때에는 어린 새끼에게 원조를 많이 하는 것이 안전하다.  예를 들어 어미가 한입 분량
의 먹이를 어느 새끼에게 줄 것인가라는  양자 택일에 직면한다면 자력으로 먹이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새끼보다는 그럴 능력이 없는 작은  새끼에게 줄 것이다. 왜냐하면 어
미에 의한 급식이 중지되더라도 큰 새끼는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스스로 먹
이를 얻을 줄 모르는 작은 새끼는 어미가 그 먹이를 큰 새끼에게 주어 버리면 죽을  가능성
이 커질 것이다. 이럴 경우에 어미는  비록 큰 새끼를 죽게 하느니 작은  새끼를 죽게 하는 
편을 선택하려는 경향에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그 먹이를 작은  새끼에게 줄 것이다. 그렇게 
해도 큰 새끼가 죽을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포유류의 어미가  새끼에 대해 일생 동안 급식
을 계속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새끼가 그의 생애의 어떤 시기에 달하면 어미는 새끼에 대한 투자를 장래의 새끼에 대한 
투자로 대체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시기가 오면 어미는  새끼를 이유시키려고 한다. 단, 최
후의 새끼를 안고 있는 어미는 만일 어떤 방법으로 그 새끼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면 남은 생애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자원을 그 새끼에게 투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새끼
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수유한다고 예상된다. 특히 이때에 막내에게 그렇게 투자하기보다 
손자나 조카 및 질녀에게 투자하는 것이 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은 어미가 잘  '판단'해야 
한다. 손자, 조카 또는 질녀와 어미와의 근친도는 어미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의 절반이지만, 
어미의 투자에 의해 그들이 받는 이익의 크기는 자식에게 한 것보다 두 배 이상이 될 수 있
기 때문이다.
      폐경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여성이 중년기에 돌연히 생식  능력을 잃어버리는 현상, 
즉 폐경이라는 기묘한 현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 보자. 우리의 선조들  사이에 이 현상은 
그리 일반적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장생한 여성은 그다지 많지
는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생애에 있어서  이 갑작으런 변화와 남성의 
생식 능력의 점차적 감퇴와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차이는 폐경에 관해 무엇인가 유전적으
로 '의도된 것'이 있는 것, 즉  폐경이 '적응'이라는 것을 생각하게끔 한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조금 귀찮은 일이다. 모친이  고령이 됨에 따라 아이의 생존은  점점 어렵게 된다고는 
하나, 여성은 죽을 때까지 산아를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지 모른다. 실제로  출산을 
계속하는 것을 해봄직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그녀가 
아이에 비하면 비록 절반 정도이기는 하나  손자들과도 친척 관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마도 메다워의 노화 이론(제3장 참조)과도 관련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자연 상태의 여
성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육아의 효율이 점점 감퇴할 것이다. 이 때문에 노령의 모친으로부
터 낳은 아기의 평균 수명은 젊은 모친이 낳은 아기의 수명에 비해 짧을 것이다. 이것은 가
령 어떤 여성이 자기 아기와 손자를 같은 날 받았다고 하면 손자가 자기 아기보다 장생한다
고 예상됨을 의미한다. 자기가 난 아기가 어른이 되는 평균 확률이 동갑내기 손자가 어른이 
될 가능성의 꼭 1/2을 기록하는 연령에 도달하면 자기 자식보다  오히려 손자쪽으로 투자하
려고 하기 때문에 그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번창할 것이다. 이유전자는 손자 4명당 1명의 
비율로 옮겨지게 되는 한편 그것과 경쟁 관계에 있는 유전자는 자식 2명당 1명에게 옮겨지
게 된다. 그러나 손자의 수명의 길이가  이 관계를 역전시키기 때문에 '손자에 대한  이타적 
행동'을 재촉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널리 보급된다. 자기 아이를 계속 낳는  여성은 
소낮에게 충분히 투자를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중년기에 이른 여성의 번식 능력을 상실하
도록 작용하는 유전자가 점점 증가했다. 이 유전자가 조모의  이타적 행동에 의해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은 손자들의 몸 속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상은 여성의 폐경의 진화에 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설명이다. 남성은 아이들에 
대해 여성만큼 큰 투자를 하지 않는다. 남성의 경우 생식  능력이 돌연히 사라지는 것이 아
니라 점차로 쇠퇴해 가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만일 남성이  젊은 여성에게 아이를 
낳게 할 수 있다면 심지어 그가 고령의 남성일지라도 손자에게 투자하기보다는 자기 자식에
게 투자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앞 장과 본장의 여기까지에서는 모든 것을 부모의 관점, 특히 모친의 관점에서 보아 왔다. 
부모가 자식을 편애하게 된다고 예상되는지 어떤지, 더욱이 일반적으로 부모로서의 가장 좋
은 투자책은 어떤 것인가가 지금까지의 문제였다. 그러나 각 아이는 다른 형제 자매보다 자
기가 양친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투자를 받는가에 대해 스스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부모가 자식을 편애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도 아이들  사이에는 측별 대우를 
둘러싼 경쟁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런 싸움은 아이들 자신을 위해 유리할
까, 더 엄밀히 말하면 유전자  풀 속에서 아이들 사이에 이기적인  고집을 부리는 유전자가 
각자가 공평한 분배량을 바라는 경쟁 유전자보다 다수가 될 수 있을까? 트라이버스는 '부모
와 자식간의 다툼'이란 제목의 1974년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잘 분석하고 있다.
      어미의 이타적 행동
  모친은 이미 출생했거나 지금 출생중이거나 상관없이 그녀의 모든 아이에 대해서는  같은 
유전적 근친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미 말 한 대로 유전적인 배경만을 문제로 삼는다면 
그녀에게는 아이를 편애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친이  실제로 편애를 
한다면 그 이유는 자식들간의 나이와 다른 요인에 의존하는 평균 여명의 차이가 있기 때문
에 그렇다. 다른 어떤 개체와 마찬가지로 모친도 그녀의 아이에 대한 근친도의꼭 두 배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그녀는  그 자원의 거의 모든 것을 자
기 자신에 대해 이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조건이라는 것은 
실제로 같지 않다. 스스로 자원의 많은 부분을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그녀 자신의 유전
자에 대해서보다 더 잘 공헌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그녀보다 어리고, 따라서 단위 
투자량당 그들이 획득할 수 있는 이익이 그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이
다. 자기를 제펴놓고 더 무력한 개체에 투자하려고 하는  유전자는 이타적 유전자가 수혜자
에게 극히 일부밖에 공유하고 있지 않은 경유에도 유전자 풀 속에 퍼질 수가 있다. 어미 동
물에 의한 이타적 행동은 이 때문이며, 특히 그들 사이에  혈연 선택에 의한 이타주의가 발
견되는 것도 모두 이 이유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제 문제를 특정한 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형제자매 가각에 대한 그의 
유전적 근친도는 그 형제 자매에  대한 모친의 근친도와 같고, 모든  경우에 그 값은 1/2이 
된다. 따라서 그는 모친의 자원 중에서 어느 정도를 그의 형제 자매에게도 투자하도록 '바라
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유전적으로 말하면 형제 자매에 대해 그는 모친과 꼭 같은 이타적 
경향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 자신에 대한 근친도가  어떤 형제 자매에 
대한 근친도의 꼭 2배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때문에 다른 조건이 동일하면 그는 모친이 
다른 어느 형제 자매보다 자기 자신에게 많이 투자해 주도록 바라는 경향을 나타낼 것이다. 
이때에 다른 조건은 실제로 같아질 가능성이 있을 것같다. 가령  어떤 아이와 그 형제가 동
갑이고 게다가 양자 모두 모친의 1파인트의  모유로 같은 이익을 받을 입장에 있다면  그는 
그 공평한 배분량 이상을 탈취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 형제쪽도 같이 공평한 배분량 
이상의 획득을 목표로 애써야 할 것이다. 어미 돼지가 수유를 위해 누우면 첫 번째 젖을 차
지하려고 새끼 돼지들이 꽥꽥거리며 크게 요동치는 것을 독자는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남은 과자 조각을 가지고 어린 사내아이들이 앞을 다투는 광경도 본 적이 있을  것
이다. 이기적 욕심 근성은 아이들의 많은 행동에 특징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내가  한입의 음식물을 가지고 동생
과 경합하고 있고 게다가 동생은 나보다 훨씬 어리므로 그 음식물에 의해 그가 받을 수  있
는 이익은 내가 그것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크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그 음식물을 그에게 양보하는 편이 나의 유전자를 위해서도  유리할 것이다. 연상의 형제는 
자식에 대한 모친의 경우와 꼭 같은 근거에서  어린 형제에 대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어느  경우에도 근친도는 1/2이고, 두 경우 모두  젊은 개체편이 
연상의 개체보다 문제의 자원을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음식물을 포기하
는 유전자를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하면 나의 동생이 같은 유전자를 소유할  가능성은 50%가 
된다. 이 유전자는 내 몸 속에 있는 유전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있을 가능성은 동생
의 경우의 2배, 즉 100%인데 내가 그 음식물을  필요로 하는 긴급한 정도는 동생의 경우의 
1/2이하로 될 수 있다. 이상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각각의  아이는 공평한 할당
량 이상으로 부모의 보호 투자를 얻으려고 애써야만 '할  것'이나,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
다. 그러나 어디가 그 한계인가? 그  한계량이란 그가 기존의 형제 자매  및 앞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어린 동생이 입을 손실이 그가 얻는 이익의 꼭 2배로 되는 분량이라는  것이
다.
      이유 시기 결정
  다음은 이유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기로 하자. 어머니는 태어날 자
식을 키우리 위해 현재 돌보고 있는 아이의 수유를 끊으려고 할 것이다. 한편 지금 젖을 먹
고 있는 아이는 아직은 이유할 수 없다고 바둥거릴 것이다. 젖은 편리하고 수고를 덜어주는 
음식물이고, 아이는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스스로  생활해 나가기 싫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며느 궁극적으로 아이는 어미에게서 떨어져 스스로 생활하려고 하는 것이다. 단, 그것은 
자기가 어미품에 있는 것보다 그 곳을 떠나 어미가 어린 동생을 자유로이 키우도록 하는 것
이 그 자신의 유전자로서도 유리하게 되는 시점이 될  때의 이야기다. 1파인트의 접에서 아
이가 받는 상대적 이익은 아이의 연령이 많을수록 적어진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그의 요구
량 중에서 1파인트의 젖이 차지하는 비율은 적어져 가는 반면에 자활하는 능력은 점차로 증
대해 간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즉, 연상의 아이가 어린 아이에게 투자할 수 있었던 젖  1파
인트를 마신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그에 대한 급식을 중지
하고 대신에 새 아이게게 투자하는 것이 어미로서는 유리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일정한 시
간이 지나면 연상의 아이의 유전자 자신도 이유에 의해 유리하게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1
파인트의 젖이 그의 '체네'에 있는 유전자보다도 그의 어린 동생에게 있는 유전자  사본에게 
보다 큰 이익을 줄 수 있게 될 때가 바로 그 시기가 되는 것이다.
      모자간의의견 불일치
  모자간의 의견 불일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데, 이 경우는 시기를 맞추는 양적인 의견 차
이이다. 어미는 아이의 여명이 이미  그에게 가해진 투자량을 감안하면서  투자량이 그에게 
할당된 '공정한 '양에 달하는 시점까지는 현재 돌보고 있는 아이의 수유를 계속하려고 한다. 
의견의 불일치도 이 시기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때어날 아이들이 받을 불이익
이 그가 받는 이익의 2배 이상에 달한다면 이후 어미가 그에 대해 수유를 행하려 하지 않는
다는 점에 관해서도 모자의 의견은 일치한다. 모자간에 의견  불일치가 생기는 것은 중간적
인 기간 - 아이가 어미의  입장에서 본 공정한 배분량 이상으로  투자를 얻으면서도 또 그 
결과 초래되는 다른 아이의 불이익은 아직 그가 얻는 이익의 2배 이하로 머물러 있는  기간 
-에서이다.
  이유 시기는 모자간에 다툼이 생기는  문제의 한 예인데, 이것은 또  어떤 개체와 앞으로 
태어날 그의 어린 동생과의 다툼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때 어미는 장래에 생길 아이의 편
에 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배 자식인  형제들, 또는 같은 보금자리 형제들과 같은  연령의 
경쟁적 개체간에는 어미의 투자를 향한 더 직접적인 경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도 
어미는 아이들 간의 경쟁을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이기적인 새끼
  많은 새끼새는 둥지 속에서 부모의 급식을 받는다. 새끼들이 큰 입을 벌리고 울어대면 어
미새는 그들 중 한 마리의  입속에 벌레나 또는 한입거리의 먹이를  넣어 준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개개의 새끼가 질러대는 소리의 크기는 그 새끼의 공복의 정도에 비례할 것이다. 만
일 그렇다면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새끼이게만 항상 먹이를 주게 되면 아이들은 모두 공정한 
분배를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실컷 먹이를 받은 새끼는 그다지 소리칠 필요가 없
기 때문이다. 개체가 속이기만 않으면 적어도 생각할 수  잇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하에서는 
그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체는 속
이려 할 것이고 새끼들은 공복도에 관해 거짓을 행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
기 행위는 차차 심해져서 분명히  무의미한 것에 이르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갰기가 
매우 큰 소리를 질러가며 속이려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젠 이 큰 소리가 표준 수준으로 
되어 그것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기 행위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소
리를 작게 하는 방향으로 진해을 시작한  개체는 급식량의 감소라는 형태로 즉시  불리하게 
되어 굶어 죽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새끼의 소리가 한없이  크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다. 이를테면 큰 소리는 포식자를 끌어들이기 쉽고, 또 에너지 소모도 클  것
이다.
      열등한 새끼
  이미 말했듯이 한배 자식 중 한  마리가 특히 작은 경우가 있다. 대개  이런 새끼는 다른 
형제들처럼 힘차게 먹이를 취하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 수가 많다. 어미에게 있어 이와 같은 
새끼는 죽게 놔두는 것이 실제로 유리하게 되는 수가 있다.  도대체 어떤 조건일 때에 그렇
게 되는지는 이미 고찰해 보았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새끼 자신은 최
후까지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
성 이론으로는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작은 아이
의 여명은 소형화, 쇠약화에 의해 짧아지고,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나 그에게 주는  이익이 
동량의 투자에 의해 다른 아이들이 획득할 수 있는 이익의 1/2이하로 되면  그는 스스로 명
예로운 죽음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의 유전자에게 가장 크게 공
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몸아, 만일 네가 다른 한배 자식 형제보다  훨씬 작았
다면 바둥거릴 것 없이 죽어라."라고 하는 지령을 내리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서 성공
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에 의해 구조되는 개개의 형제 자매의 몸에는 그의 유
전자가 50%의 확률로 들어 있고 한편 잘못 키운 그의 체내에서 그 유전자가 살아  남을 가
능성은 어쨌든 극히 작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잘못 키운 아이의 생애에는 회복이 불가능하
게 되는 시점이 있음이 틀림없다. 이 시점에 달하지 않는 한은 그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달하면 그는 즉시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기의 몸을 한
배의 형제나 부모에게 먹히고 마는 편이 더 났다.
  랙의 한 둥지의 알 수 이론을  논할 때에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해의  한 둥지의 최적 
알 수가 몇 개인지 미리 정하고 있는 어미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타당한 해답이 된다.
즉, 어미가 진짜 최적수이겠지하고 '생각하는  '알 수보다 1개만 여분으로 산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을 경우, 만일 그 해의 먹이가 예상보다 양호한 것을 알게 되면 어미는 추가해 
놓은 새끼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먹이가 예상보다 적으면  밑지는 투자를 중지할 
수 있다. 새끼에게 급식을 항상 같은 순서, 이를테면 크기 순으로 행하도록 주의하면 어미는 
나머지 한 마리, 아마도 발육이 미숙한 새끼를 빨리 죽게 하여 그를 위해 애초의 난황, 또는 
이에 상당하는 다른 형태로 투자된 분량 이상의 과잉 음식물을 낭비하는 것을 확실히 회피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미의 관점에서 본 경우의 발육 미숙아 출현 현상의 설명일지  모른다. 
그는 어미가 짜 놓은 투자의 손실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많은 
조류에서 관찰되고 있다.
      세대간의 싸움
  이 책에서는 동물 개체라는 것이 마치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생
존 기계인 양 보고 있다. 이 비유에 따라 우리는 부모와 자식 간의 다툼, 즉  세대간의 싸움
을 논할 수 있다. 이것은 양자 모두가 모든 수를 써서 전개하는 치열한 싸움이다. 아들은 부
모를 속일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실제 이상으로  배고픈 척하거나 실제보다 어리광을 
부리거나 또는 더욱이 실제 이상의 위험에 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할 것이다. 부모를 
물리적으로 위협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허위, 위장, 이기적 이용 
등 자유로이 쓰이는 심리적인 무기가 있다. 그는 그것들에 의해 혈연자가 받는 불이익이 유
전적 근친도가 허용할 수 있는 한도를 넘는 아슬아슬한 선까지 그러한 모든 심리적 무기를 
구사한다. 한편 부모들은 사기나 위장에  대해 방심을 해서는 안 되고  그것에 속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언뜻 보아 간단한 것처럼 생각되나  공복도에 관해 자식들이 거짓맗
쟁이라는 사실을 부모가 안다고 하면 부모는 자식에게 일정량의 먹이밖에는 주지 않고 아이
가 계속 소리치더라도 그 이상은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방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책을 취할 때 문제가 되는 점은 아이가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을 경우인데, 그래서 먹이를 
받지 못하고 죽고 만다면 그 부모는 귀중한 유전자를 잃고 말 것이다. 야생 조류는 단지 몇 
시간 동안 먹이를 받지 못해도 사망하는 수가 있다.
      공갈치는 새끼
  자하비(A. Zahavi)는 새끼가 철없이 악마적인 공갈을 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
다. 그에 의하면 새끼는 포식자를 집으로 불러들일 정도로 일부러 울어대는 수가 있다는 것
이다. 그 새끼는 "여우야! 여우야! 나를 잡아먹으러 오렴." 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새끼의 
울음 소리를 그치게 하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
이다. 그래서 새끼는 공정한 분배량 이상의 먹이를 입수한다는 것인데, 그 자신도 어떤 위험
을 각오해야 한다. 이 무자비한 전술의 원리는 몸값을 받지 못하면 자기를 비롯해 비행기를 
폭파한다고 협박하는 납치범의 행동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술이 진화 과정에
서 선택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그  전술이 너무 무자비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공갈치는 아이가 그 전술에  의해 이익을 얻는다고는 조
금도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식자가 나타나면 매우 난처한 사태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다. 자하비는 다 s하나의 자식일 경우를 고찰했는데 이때 그 전술의 불리함이 분명히 
이해된다. 어미가 어느 정도의 투자를 새끼에게 했다고 해도  어미는 새끼의 유전자를 절반
밖에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새끼의 생명보다는 자신의 생명이 여전히 가치가 있을 것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공갈자에게 형제가 있어 그의 약한 갓난아기들이 모두 같은 둥
지 속에 있다고 해도 그의 전술이 그에게 유리하게 되는  일은 없다. 공갈자인 새끼는 자기 
자신에게 100%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술에 의해 위기에 처해 있는  형제의 각각
에게 50%이 유전적인 '밑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단, 유력한 포식자가 둥지 속의 새끼 중 
가장 큰 것만을 먹어버리는 습성을 가졌다면 자하비의 이론에도 연구할 여지가 있을 수 있
다고 생각된다. 이 조건하에서라면 작은 새끼가  큰 위험에 처할 걱정은 없고, 따라서  그는 
포식자를 불러들이는 겁주기를 써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폭한다고 
겁주는 방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형제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는 방법과 흡사하다.
  뻐꾸기 새끼는 포식자를 불러들이는 공갈 전술로 이익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상기의 
예보다 진실성이 있을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듯이 뻐꾸기의 암놈은 다른 새 둥지에 한 개씩 
산란을 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양부모(아주 다른 종의 새)에게  자기의 새끼를 키우게 한다. 
이 때문에 뻐꾸기 새끼는 젖형제들에게는 유전적 밑천을 전혀 걸지  않는다(뻐꾸기 새끼 중
에는 젖형제를 갖고 있지 않는 종이 있다. 그렇게 되는  불길한 이유에 대해서는 후에 다루
기로 하고 여기서는 새끼 때에 젖형제들과 동거하는 종류의 뻐꾸기를 다루는 것으로 가정하
자). 뻐꾸기의 새끼가 포식자를 유인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다고 하면 그는 자기의 생명
이라는 큰 희생을 치를 가능성이 있으나 양모는 더욱 큰  희생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 자칫
하면 어미는 새끼를 4마리나 잃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뻐꾸기 새끼가 큰 소리를 지
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 놈에게 특별히 많은 먹이를  주는 편이 양모에게 유리하다. 포
식자의 습격 위험보다 많은 먹이를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쯤하고 존중해야 할 유전자 용어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주관적 
비유에 너무 빠져들지 않았음을 재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뻐꾸기의 새끼는 "포식자야, 포식자
야, 이리 와서 나와 나의 젖평제를 잡아 먹어라."하고 큰 소리를 지름으써  양모를 공갈한다
고 하는 가설을 세운 것인데 실제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전자의 용어로  그 
의미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울음소리-공갈 유전자
  뻐꾸기 새끼가 큰 소리로 떠들면 양부모가 그에게 먹이를  줄 확률은 늘어난다. 그러므로 
큰 소리로 울도록 하는 유전자는 뻐꾸기의 유전자 풀 속에  수를 늘려 왔다. 새끼의 울음소
리에 대해 양모가 먹이를 준다는 형태로 반응한 것은 이와 같은 반응을 나타내도록 하는 유
전자가 이미 양모의 유전자 풀 속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 유전자가 양모에게 퍼진 것은 
울어대는 뻐꾸기 새끼에게 여분의 먹이를 주지 않은 양모들이 뻐꾸기 새끼에게 실제로 여분
의 먹이를 준 경쟁자보다 소수의 새끼밖에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뻐꾸기의 소리가 포식
자를 둥지로 불러들인 것이 그 이유이다. 큰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는 유전자는 큰 소리
를 지르는 유전자에 비해 포식자에게 먹힐 가능성은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여분의 
먹이를 받지 못함으로써 더 큰 실점을 입은 것이다. 큰  쇠를 지르게 하는 유전자는 상기와 
같은 이유로 뻐꾸기의 유전자 풀 속에 퍼진 것이다.
  위와 같은 유전자 논의에서 우선 더 주관적인 논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어떤 종의 뻐꾸기의 유전자 풀 속에서 공갈 유전자가 퍼질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어도 보통의 종류의 새의 유전자 풀 속에서는 퍼질 것 같지 않다(적어도 울음소리가 포식
자를 유인하는 원인이므로 공갈 유전자가 증가한다는 가능성은 없다). 물론 보통 종에도 큰 
소리를 지르게 하는 유전자의 증가를 재촉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앞에서 언
급했고, 이들의 부수적인 효과로서 때로는 포식자를 유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포식이 만일 무엇인가 선택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면 울음소리를 작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설적인  예로서 소개한 뻐꾸기의 경우에는  일견 역설적이나 
포식은 최종적으로 울음소리를 더욱 크게 지르게 하는 것 같은 효과를 새끼에게 보급할 수 
있다.
      공갈 전술
  뻐꾸기 또는 유사한 '탁란' 습성을 가진 다른 새가 실제로 공갈 전술을 채용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잔인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예컨대 뻐꾸기처럼 
다른 종의 둥지에 산란하는 새로는 꿀잡이새(honey guide)가  있다. 이 새의 새끼는 깃털도 
없고 눈도 못뜬다. 또 아주 가냘픈 놈이면서도 끝이 뾰족하고 예리한 부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부리로 젖형제를 마주 쪼아서 죽여버린다. 형제를 죽이면 먹이를 놓고 경합할 걱정은 없
어진다. 영국에서 보통 볼 수 있는 뻐꾸기는 이것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같은 목적을 달
성한다. 알을 품는 기간이 짧으므로 그  뻐꾸기 새끼는 젖형제들보다 빨리 부화할 수  있다. 
부화된 새끼는 그 직후 맹목적. 기계적이라고는 하나 놀랄 만한 효과를 내는 방법으로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그는 알 밑으로 기어 들어가  그것을 등의 오목한 곳에 올려놓
고 두 개의 작은 날개로 알의 균형을  잡으면서 뒷걸음으로 서서히 둥지 벽을 기어 올라가 
알을 땅으로 떨어뜨린다. 그는 나머지 알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되풀이하여 결국은 둥지
와 양모의 관심을 독점한다.
      이종에 대한 이기적 행동
  지난 1년 사이에 내가 배운 가장 재미있는 사실의 하나는  스페인의 알바레즈(F.Alvarez), 
아리아스 드 레이나(L. Arias de Reyna), 그리고  세구라(H. Segura)가 보고한 제비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뻐꾸기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가진 양모가  침입자인 뻐꾸기 알이나 새
끼를 검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련의 실험 중에서 
그들은 뻐꾸기의 알과 새끼를 까치 둥지에 넣어 본 적이  있다. 이때에 비교하기 위해 제비
를 위시하여 타종의 알이나 새끼를 까치 둥지에 넣었다. 또 그들은 제비 새끼 한 마리를 까
치 둥지에 넣어 보았다. 다음날 그들은 둥지 아래 지면에 까치 알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이 깨지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주워서 다시 둥지에 넣고 어떤 일이 일어
나는가를 관찰해 보았다. 그들이 본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제비 새끼가  뻐꾸기 
새끼와 똑같은 동작으로 까치의 알을 내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떨어진 알을 또 한번 둥지
에 넣어 보았다. 전과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제비 새끼가 사용한 방법은 알을 등에  업고 
작은 날개로 알의 균형을 잡으면서 뒷걸음으로 둥지의 벽을 기어올라가서 알을 밖으로 떨어
뜨렸다는 것으로 보아 뻐꾸기와 같은 방법이었다.
  이 놀랄 만한 관찰에 알바레즈 등이 아무런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이 제비의 유전자 풀 속에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가. 이 행동은 제비의 보통 생활의 어떤 측면에 대응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제비  새
끼로서는 까치 둥지 속에 있다는 사실에는 익숙하지 않다. 정상적인 경우에 그들이 같은 종 
이외의 둥지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결코  없다. 그렇다면 문제의 행동은  역으로 뻐꾸기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진화된 하나의 적응일까. 뻐꾸기에  대한 대항책으로서 자기의 무기로 
뻐꾸기를 공격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자연 선택에 의해 제비의 유전자 풀 속에 확산됐다는 것
인가. 그러나 통상 제비의 둥지가 뻐꾸기의  기생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자칫하면 
이 설명이 옳을 가능성도 있다.  이설에 따르면 알바레즈 등의 실험에  제공된 까치의 알은 
뻐꾸기의 알과 같이 제비의 알보다 크기 때문에 뻐꾸기에 대하는 것과 같은 취급을 우연히 
받았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제비 새끼가 정상의  제비알과 그것보다 큰 알을 구
별할 수 있다면 아마도 어미 제비도 같은 능력을 가질 것이다. 만일 이 설이 옳다면 어미는 
왜 뻐꾸기의 알을 내던지는 짓을 하지 않는가. 알을 없애는  일은 새끼보다 어미가 더 손쉽
게 할 수 잇지 않은가. 새끼 제비의 행동은 본래 썩은 알아니 쓰레기를 둥지 밖으로 내버리
는 데 한정한다는 사고 방식도 하나의 설명이 되기는 하나 이에 대해서도 상기와 똑같은 반
론이 제기된다. 즉, 이 일도 어미가 더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알을 버
리는 작업은 귀찮고 기술을 요하는 일이다. 어미 제비편이 훨씬  쉽게 이런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약한 새끼가 그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 결론지으면 어
미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새끼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른 설명은 뻐꾸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서
운 생각일지도 몰라도 제비 새끼의 상호간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최초
로 출생한 새끼는 다음에 부화되는 동생들과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를 가지고 결국은 경쟁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는 그의 생애의 첫 번째 일로서  우선 다른 알을 둥지에서 내던지는 
것이 이익이 될 수 있다.
      형제 살해 유전자
  랙의 한 둥지의 알 수 이론은 부모의 입장에서 본 최적 알 수를 문제 삼고 있다. 가령 내
가 어미 제비라고 하면 나의 입장에서 본 한 둥지의 최적 알 수는 예컨대 5개가 된다. 그러
나 만일 내가 새끼편이라면 이 입장에서 자기를 포함한 한 둥지의 알 수의 최적치는 전자의 
경우보다 작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에게는 어떤 일정량의 보호 투자가 가능하고, 어
미는 그것을 5마리의 새끼에게 각각 균등 분배  '하고 싶어한다.'그러나 개개의 새끼편은 각
각 1/5의 할당분 이상의 투자를 강요한다. 그러나 뻐꾸기의 경우와는 다라서 개개의 새끼는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의 독점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는 다른 새끼들과 혈연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알을 하나 내던지기만 해도 그는 부모의 투자의 1/4을 획득하는  것이 되고, 하나 
더 버리게 되면 투자의 1/3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유전자의 말로 번역하면 형제 살해
를 하는 개체의 몸 속에서 형제 살해를 촉구하는 유전자는 100% 확률로 존재하는데 희생이 
되는 개체 속에는 50%의  확률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형제  살해를 촉구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퍼질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형제 살해설에 대한 첫 번째 반론의 근거는, 실제로 그런  것이 행해지고 있다면 그 악마
적 행동을 지금까지 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이에 관해서는 나
에게도 독자를 납득시킬 만한 설명은 떠오르지 않는다. 단,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품종이 다
른 제비를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제비는 몇 가지 점에서, 예를 들면 영국에 사는  제비의 품
종과는 다르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스페인의 제비에 관해서는 영국 제비에 관해서 
행해진 것과 같은 정도의 상세한 연구는 아직 실행되고 있지 않다. 스페인 제비에서도 실제
로 형제 살해가 일어나는데 단지 그것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형제 살해의 가설 같은 일견 있을 것  같지 않은 생각을 여기에 제시한 이유는 일반적인 
노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서이다. 즉, 뻐꾸기 새끼가 행한 무자비한 행동은 어느  가족에서도 
볼 수 없는 극단적인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뻐꾸기  새끼와 그 젖형제와의 
관계에 비하면 같은 양친을 가진 형제간에는 훨씬 진한 혈연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나 
이 차이는 단순히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느닷없는 형제 살해가 진화될 수 있다는 데까지는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 정도가 약한 이기성의 많은  예는 아이들이 얻는 
이익이 형제 자매에게 피해의 형태로 그가 입는 손실의 2배 이상이 되는 조건하에서라면 많
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이유 시기의 예와 같이  부모 자식 간의 이해가 실
제로 대립한다.
        승리자
  세대간의 다툼에서는 누가 가장 많이 이길 수 있을까? 알렉산더는 그가 발표한 흥미로운 
논문 중에서 이 물음에 하나의 일반적인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항상 부모가 이길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 독자가 이 장을 읽는 것은 시
간 낭비가 된다. 알렉산더가 맞다면 흥미로운 일이 많이  파생될 것이다. 예를 들며, 이타적 
행동은 아이 자신의 유전자가 받는 이익 때문이 아니고 단지 부모의 유전자가 받는 이익만
을 이유로 해서도 진화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 이타적  행동을 지놔시키는 원이이 되는 것
은 단순 명쾌한 혈연 선택이 아닌  알렉산더가 '부모에 의한 아이의 조작'이라고 하는  다른 
요인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알렉산더의 논의를  검토하여 우리가 왜 그
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본래 이 작업은 수학적으로 취
급해야 할 것이나 이 책에서는 수학의 명백한 사용은 피하고 있다. 그래도 알렉산더의 주장 
중에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직관적인 설명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이긴다는 논리
  그의 기초적인 유전적 논점이 다음의  일부 생략된 인용문에 내포하고  있다. "가령 어떤 
아이가... 부모로부터 이익 분배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하여 그 결과  모친의 번식 성적을 
전체로서는 감소시킨다고 하자. 어릴 때의 개체의 적응도를 상기의 수단으로 상승시키는 유
전자는 부모가 되면 이번에는 먼저의 상승분 이상으로 자기의 적응도를 감소시키는  처지에 
빠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돌연변이 개체의 아이들 중에는 그 돌연변이 유전자
가 일단 더 많이 존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여기서 알렉산더가 새로운 돌연변이 유전자
를 생각하고 있는 점은 별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양친의 한쪽으로부터 전달되
는 드문 유전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된다. '적응도'라는 것은 번식의 성공도를 
가르키는 특수한 전문적 의미를 가진 용어이다. 알렉산터의 기본적 논지는 다음과 같다.  어
린 시기에 부모의 번식 성과의 총량을 잡아채는 꼴로 공평한 분배량 이상이 투자를 자신의 
것으로 하는 유전자는 확실히 자기의  생존 확률을 늘리는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부모가 될 경우 이  죄과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이기적인 유전자는 
그의 아이들에게 전해져 그 때문에 그의 번식 성과는 전체로서 감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 
덫에 자기가 걸린 격이다. 즉, 그 이기적 유전자는 결국 번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다툼에 
이기는 것이 항상 부모쪽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식이 이긴다는 논리 
  그러나 우리는 이 주장에 즉시 의심을 품게 될 것이다. 그 논의가 있지도 않은 유전적 비
대칭성을 전제로 하여 이루지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양자간에 마치 기본적인 유전적 차이
가 있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이란 말을 쓰고 있다. 전에도 보았거니와 부모와 자식 간에는 
부모가 자식보다 나이를 먹고 아이들이 모체로부터  출생한다든가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
인 유전적 비대칭성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측면에서 상대를 보아도 근친도는 50%
이다. 나의 근본 취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알렉산더의 문장을 '부모', '자식' 및 기타 몇 개의 
관련된 말로 바꿔서 또 한 번 밝혀 보자. "가령 어떤 부모가 자식에 대한 이익 분배를 균등
하게 하려고 하는 유전자를 가진다고 하자. 어미 때에 개체의 적응도를 상기의 수단으로 상
승시키는 등의 유전자는 어린 시절에는 상기의 상승분 이상으로 자기의 적응도를  감소시키
는 어린 시절에는 상기의 상승분 이상으로 자기의 적응도를 감소시키는 지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까." 그러므로 알렉산더와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즉, 부모와 자식간의 모든 다
툼에 있어서 항상 이기는 쪽은 자식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 어떤 논의도 너무 단순하다. 내가 위의 인용을 해 보인  목
적은 알렉산더와 반대의 결론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고 단지 인위적으로 비대칭성을  가정
한 이 방법의 논의가 성립될 수 없음을 나타내려고 했을 뿐이다. 알렉산더의 논의를 뒤집어 
본 나의 논의도 모두 다 한 개체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점에서 예에서는 그것이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잘못이 '적응도'라는 전문 용어를 사
용할 때에 극히 일어나기 쉬운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이 용어의 사용을 피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진화에 있어서  그 관점이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실체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이기적 존재인 유전자이다. 어린 아이의 체내에 있는 유전자는  성체
를 이기는 능력에 대해 선택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  부모의 체내에 있는 유전자는 자
식을 압도하는 능력에 대해 선택을  받을 것이다. 같은 유전자가 자식의  몸과 부모의 몸을 
순서대로 점거한다는 사태에 하등의 모순은 없다. 유전자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최
대한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택된다. 유전자라는 것은 현실로 주어진 기회를 이용한다. 유
전자가 어린 아이의 체내에 있을 때에 이용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유전자가 부모의 체내
에 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기회와는 다른 것이다. 즉, 유전자의 최적 방책은 생활사의 상기 
두 개의 단계에 있어서 서로 달라질 것이다. 알렉산더의 주장처럼 부모 단계에서 최적 방책
이 필연적으로 어린아이 단계의 최적 방책을  때려 없앤다고 상정할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알렉산더에 대한 반론은 또 다른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부모와 자식 
관계와 다른 한편으로는 형제 자매의 관계 사이에 있지도 않은 비대칭성을 암묵 중에 가정
하고 있다. 독자는 트라이버스의 논의를  기억할 것이다. 그에 의하면,  어떤 아이가 공평한 
분배량 이상의 투자를 입수하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이에 대응하는 대가가 그에게  주어
지게 된다. 즉, 유전자를 절반씩 나누어 갖는 형제 가매을 죽음의 위험에 내놓는 것은 그 자
신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고로 형제 자매에 대한 가로채기 행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제 자매라는 것은 50%의 근친도를 가진 혈연자의 하나의 특
례에 불과하다. 이 이기적인 아이로서는 그 자신의 장래의 아이들도 그의 형제 자매와 똑같
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공정한 분배량 이상의  자원을 가로챌 경우에 생기는 실
적적인 모든 개가는 그것으로 인해 잃게 되는 형제 자매만으로  잴 수는 없을 것이다. 이기
적인 개체의 아이들은 형제 자매 간에서 부모 상속의 이기성을  발휘 할 것이며, 이 때문에 
잃게 되는 아이의 수도 실제로는 상기의 대가 중에 가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 시절에 
이기성을 발휘하는 개체는 그 성격이 아이에게 전승됨으로 인해 긴 안목으로 볼 때 번식 성
적을 저하시키게 된다는 알렉산더의 견해는  이렇게 되면 요점을 찌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 그의 고찰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방적식의 대가의  항에 아이의 손실도 가하지 않으
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이 점을 고려했다고 해도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이 '혈연자'중
에 형제 자매만이 아닌 장래 아이들까지도 포함하면 더 좋다. 개체는 자기의 복리를 형제보
다 두 배는 더 배려할 거시다라는 것이 트라이버스가 설정한 기본 전제였다. 그러나 동시에 
개체는 자기의 장래 아이 하나보다는 자시 자신을 두 배로 소중히 여긴다. 부모와 자식간의 
이해 대립에서 부모쪽이 본래 우세하다고 한 알렉산더의 결론은 잘못이다.
      자식의 히든 카드(hidden card)
  유전적 관계에 관한 상기의 기본 논점에 덧붙여 알렉산더는 더 실질적인 논의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비대칭성을 논거로 
한 것이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있어서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부모쪽이고 따라서 
부모는 양자의 관계를 결정하는 입장에 있다. 자식은 부모에 비하면 작고 부모를 공격할 수 
없다. 여기서 만일 부모가 일을 게을리하면 아이는 이에 대처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식이 무엇을 바라든 부모는 자기의 의향을 자식에게 강요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이 논
의에 뚜렷한 잘못은 없다. 이 경우에 전제되는 비대칭성은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는 '자식'에 비하면 확실히 몸도 크고 힘도 세며 또한  세상 일에 능하다. 모든 권한은 부모
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식도 실은 몰래 에이스(ace)를 몇  장 감추고 있다. 
예를 들면 먹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부모는 각각의 아이의 공복도를 필히 알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먹이를 분배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생각할 수 있
는 사장 이상적인 상태에서라면 먹이를 가장 유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에 대해선 다른 
아이보다 조금 많이 먹이를 준다는 방책이 상기의 방책보다  효율이 높아질 것이다. 각각의 
아이가 부모에게 자기의 공복도를 전하려고 하는 시스템은 부모를 위해서 이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다룬 바와 같이 어쨌든 이런 종의 시스템이 진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
나 자식편에서 볼 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매우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
들 자신은 자기의 공복도를 정확히 알고 있음에 반해 부모는 아이들이 공복도를 정확히 말
하고 있는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면 부모도 알아차릴 수 
있겠으나 작은 거짓을 탐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또 어린아이가 어떨 때 만족하는지를 아는 것이 부모로서 유리한 것이고 어린아이
측에서도 자기가 만족했을 때에는 그것을 부모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 좋을 일이다. 미소와 
만족한 듯한 목소리를 내는 신호가 자연 선택되는 것은 어떤 행위가 아이에게 가장 유리한
가를 부모가 학습시킬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이가 미소짓고 있는 모양이나 새끼 고양
이의 울어대는 소리는 어미에게 일종의 보수이다. 이것은 이로  속의 쥐에게는 먹이가 보수
가 되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보수이다. 그러나 방실거리는 미소나 크게 지르는 소리가 일단 
보수로서 작용을 확립해 버리면 아이는 이것을 이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입장에 있게 된
다. 미소나 만족한 듯한 소리를 이용해서 부모를 조정함으로써  아이는 공정한 배분량 이상
의 보호 투자를 부모로부터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무승부
  즉, 세대간의 다툼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어느 쪽이 승률이 많은가라는 질문에는 일반적인 
해답이 없다. 최종적으로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이상적  상태 사이에서 어떤 타
협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다툼은 뻐꾸기와 그의 양모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다툼과 유사하
다. 부모와 자식간의 다툼에서 적대자는 서로 어느 정도의  유전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어서 
뻐꾸기와 양모의 경우만큼 대립이 심하지 않음은 확실하다. 부모와  자식은 일정한 한도 혹
은 일정한 감수 기간 중에서만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자기의 부모에 
대해 뻐꾸기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전술이나 사기 수법, 그리고 이기적인 노동의 착취 수법 
등을 행사할 것이다. 더욱이 뻐꾸기의 경우에는 완벽한 이기성의  행사가 예상되는 데 반하
여 자식은 자기의 부모에 대해 뻐꾸기만큼 철저하게 이기적이지만은 않다.
  이 장과 배우자간의 대립 문제를 취급하는 다음 장은 형제 아이들에 대해 또는 서로 상대
에 대해 헌신하고 있는 인간의 부모들에게는 아주 냉소적일 뿐만 아니라 비참한 감을 주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또 한번 내가 "의식적  동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
니다."라는 것을 강조해야 겠다. 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충동에 의해  아이들이 의도적으로 
부모를 속인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돌이켜봐야 할 것이 있다. "아이는 
사기나...거짓, 속임수, 이기적인 착취...등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라는 식
으로 내가 말할 경우 '해야  할'이라는 말을 내가 어떤 특수한  의미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행동이 도덕적이라서 바람직하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순히 그와 같이 행동하는 아이쪽이 자연 선택에서 반드시 유리할 것이며, 그 때문에 야생 
동물을 관찰할 경우 가족 안에는 사기 행위와 이기적 행위가 보일 것으로 기대할지 모른다. 
"아이는 속이는 행위를 해야 할 것이다."라는 표현의 진의도 아이에게 사기 행위를 하게 하
는 경향을 가진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서 유리하게 나타남을 지적하는 더 불과하다. 나의 
논의에서 인간적인 교훈을 도출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의 생물학적 본성의 일부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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