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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유전자

가족 계획

by Frais Feeling 2020. 9. 20.

        애낳기와 애키우기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혈연 선택의 산물인 다른 이타적 행동과 별도로 취급하
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간단하다. 즉 자
식의 보호는 번식의 일환으로서 통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령 생질을 수혜자로 한 
이타 행동 등은 번식에 통합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이 양자간에는 실제로 중
대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앞서간 사람들은 그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잘못 이해
한 것이다. 그들은 번식과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하나로 묶어서 다른 이타적 행
동을 이것과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새로운 개체를 낳는 것과 현존 개체를 돌보는 
것 사이에 바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싶다. 이  두 활동을 각각 애낳기와 애키우
기라고 부르기로 하자. 하나의 생존  기계인 개체는 애낳기와 애키우기라는  극히 이질적인 
두 종류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결단이란 말은 무의식적으로 행해
지는 전략적인 조처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애키우기의 결단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다. "여기에 아기가 하나 있다.  이 아이
와 아이와의 근친도는 그저 그렇다. 만일 내가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다면 이 아이
가 죽어버릴 확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나는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어야 할 것인가?" 
한편 애낳기의 결단 형식은 다음과 같다. "이 세계에 새로운 개체를 하나 낳기에 필요한 여
러 단계를 밟을 것인가, 즉 나는 애낳기에 뛰어들 것인가?" 애키우기와 애낳기는 개체가 이
용할 수 있는 시간 또는 다른 여러 자원을 둘러싸고 서로 어느 정도 경합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을 지고 있다. 즉, 개체는 다음과 같은 선택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이 아이를 키울 것
인가, 아니면 따로 하나를 낳을 것인가?"
      애낳기-안정된 전략
  종에 관한 생태학적 여러 특성의 세부에 따라  키우기와 낳기 양 전략의 여러 가지 혼합 
전략이 진화적으로 안정하게 될 수 있다. 그것은 순수한 애키우기이다. 만일 모든 개체가 현
존하는 애키우기에 몰두하여 아이를 낳지 않는  상태로 되어 버리면 이 개체군은  애낳기를 
전문으로 돌연변이한 여러 개체에 의해 곧 제거돼 버릴 것이다 애키우기는 혼합 전략의 일
부로서만 진화적으로 안정하게 될 수 있다. 즉, 적어도 누군가의 애낳기는 필히 실행되지 않
으면 안 된다.
  우리들에게 가장 낯익은 동물들-포유류와 조류-은 애키우기의 경향을 많이  나타낸다. 여
기서는 애낳기 결단에 이어 낳은 아이를 키우는 결단을 볼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애낳기와 애키우기가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양자를 혼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대로 유전자의 이기성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이 어린 형제를 키우
는 것과 어린 자식을 키우는 것 사이에는 원리적인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어느 아이나 
당신의 근친자이며, 당신과의 근친도는 어느 편이나 동일하다. 만일 당신이 양육 대상으로서 
어느 한편의 아이를 선택해야 한다 해도 그것이 당신의 자식이어야만 된다는 이유는 유전학
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당신이 형제를  아기로서 낳는다는 것은 정
의로 보아 불가능하다. 당신이외의 누군가가 그를 낳아 줌으로써  당신은 형제를 양육할 수
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앞 장에서 나는 기존의 다른 개체에 대해 개개의 생존 기계가 이타적
으로 행동할 것인가 어떤가를 결정할 경우 이상적으로는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
았다. 이 장에서는 새로운 개체를  출산할 것인가 아닌가를 정할 경우에  생존 기계가 어떤 
식으로 결정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자.
        개체수 조절과 인구 문제
  제 1장에서 '그룹 선택'을 가지고 논쟁을 소개했는데, 그 논쟁은  주로 이 장에서 다룰 문
제를 무대로 하여 전개됐다. 원인은 그룹 선택의 견해를 유포시킨 제 1의 책임자인 윈-에드
워즈에게 있다. 그 견해를 선포함에 있어 그는 '개체수  조절'의 이론을 기초로 했기 때문이
다. 그는 개개의 동물이 집단 전체를 위해 의도적이고  이타적으로 스스로의 출생률을 감소
시킨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가설이다. 그것이 인간 개개인의 직무에 아주 잘 합치되기 때문
이다. 인류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을 가지고 있다. 개체군의 크기는 출생수, 사망수, 이출  개
체수, 그리고 이입 개체수라는 네 가지 요인으로 결정된다. 세계 총 인구를 문제로 할  경우 
이출과 이입은 있을 수 없다. 남는 것은 출생수와 사망수다. 한 부부당 아이의 평균수가  출
산 가능시까지 생존하는 아이의 수로 하여 2인보다 많으면 신생아의 수는 매년 누진적으로 
증가해 갈 것이다. 어느 세대를  보아도 인구는 일정한 수로 가산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때 그때에 도달한 인구의 일정 비율로 증가해 간다. 각 시점에서의 인구 자체가 증가하기 
때문에 이것에 대응해 인구 증가수도 증대하는 것이다. 만약  저지되지 않고 증가가 계속되
면 개체군은 잠깐 사이에 천문학적 규모에 달하고 말 것이다.
      인구 조절
  여기서 인구 문제를 우려하는 사람들까지도 때때로 보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사
람들이 아이를 몇이나 낳느냐뿐만 아니라 몇 살때에 출산하느냐에 의해서도 인구 증가가 좌
우된다는 것이다. 인구는 각 세대마다 그때의 전체수에 일정한  비율로 증가하는 경향을 나
타내므로, 만약 각 세대의 간격을 전보다 길게 하면 매년  증가하는 인구는 완만하게 될 것
이다. 즉, '부부당 아이는 2인까지'라는  표어 대신에 '아이를 낳는 것은  30세부터'라고 해도 
거의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여하튼 인구의 가속적인 증가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
게 된다.
  이점을 분명하게 납득시킬 깜짝 놀랄 정도의 계산의 예를 아마도 우리는 모두 보아 왔을 
것이다. 예를 들면 라틴아메리카의 현재 인구는 약 3억이다. 그리고 현재 이미 그 많은 사람
들은 부족한 영양 조건하에 놓여  있다. 그러나 만일 현재의 비율로  인구 증가가 계속되면 
직립 자세의 인간이 빈틈없이 도열하여 전 대륙에 인간 양탄자를 깔아 버리는 상태에 도달
하는 데 500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뼈와 가죽만으로 되어 있다9이것은 결코 황당 
무계한 상상이 아니다)라고 가정하여도 이 사태는 변치  않는다. 천년이 지나면 꽉 찬 인가
들의 어깨에 각각 100만이 넘는 인간이 겹쳐 쌓이게 된다. 이 커다란 인간더미는 드디어 우
주를 향해 광속으로 팽창하게 되어  2,000년 후에는 현재 알려져 있는  우주 저편에 도달해 
버릴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것이 가정에 의한 계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
로는 위와 같은 식으로 인구 증가가 진해되지는 않는다. 이것을 저지하는 극히 유력한 현실
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즉, 기아, 전염병, 또는 만일 운이 좋으면 산아 제한 같
은 것이 그 이유의 일부이다. '녹색 혁명'이나 그 밖의 농학상의 진보에 의뢰해도  소용없다. 
식량 증산은 인구 문제를 일시적으로 완화시킬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장기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음은 수학적으로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의학의 진보가 인구의 위기 촉진에 일
익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농학의 진보도 인구 증가 속도를 촉진시켜 오히려 인구 문제를 
악화시킬지도 모른다. 매초 수백만 대의  비율로 로켓을 발사하여 우주로  대량 이민이라도 
보내지 않는 한 무제한의 산아수는 필연적으로 사망률의 놀라운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이
것은 단순한 논리적 진리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나 이 단순한 진리를 이해 목하고 효과적인 
피임 수단을 강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신봉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은 인구를 '자연적인' 
수단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들이 직면해 난처하게  될 수단이란 바로 하
나의 자연적인 수단이다. 그것은 기아라고 하는 수단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먼 장래에 대한 계산에 의해 우리가 불안하게 되는  것
은 그 전제로서 인류라는 종 전체의 장래 행복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인구 과인의 파괴적 
귀결에 미리 주의를 주기 위한 의식적인 선견 능력을 인가(아니  일부 사람)은 서로 기다리
고 있다. 한편 생존 기계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유전자라는 이기적인 존재에 의해  지배되며, 
게다가 이 유전자라는 존재는 장래를 선취하거나 종 전체의 행복을 걱정하는 것으로는 아마
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이다.  윈-에드워즈가 정통적인 진화학의 이론
가들과 구분되는 것은 이 점에서이다. 그는 진정한 이타적 산아  제한이 진화할 수 있는 길
이 있다고 한다.
      동물의 개체수 조절
  윈-에드워즈의 저작이나 그의 견해를 통속화한 아드리의  책이 강조하고 있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논의의 대립없이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야생 동물의 
개체군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천문학적 속도로 증가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때로는 출생
률과 사망률이 서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야생 동물의 개체군이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
기도 한다. 또 유명한 나그네쥐의 경우와 같이 급격한 대번식과 급격한 개체수의 감소, 그리
고 절멸에 가까울 정도의 개체수의 저하가 교대로 일어나 개체군이 대폭적으로 변동하는 식
의 예도 많이 있다. 그 결과 가끔 적어도 국지적인 개체군이 완전히 절멸해 버리는 수도 있
다. 캐나다 스라소니의 예-이 예에서는 H회사가  판매한 모피수의 경년 변화에서 개체수가 
추정됐다-와 같이 개체군이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수도 있다. 동물 개체군이  할 수 없는 일
은 제한 없이 증식을 계속하는 일이다.
  야생 동물은 노쇠하여 죽는 일이 거의 없다. 실제로 노화도  되기 훨씬 이전에 굶거나 병
들고 또는 포식자에게 먹혀 버리게 된다. 최근까지는 인간도 이 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
개의 동물은 어린 단계에서 죽고 알의 단계에서 생을 마치는  개체도 많이 있다. 기아와 그 
밖의 사망 원인이 궁극적 이유로 작용해 개체군의 무제한  증가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에 
인간이라는 종에 관해 검토한 것으로도 분명하듯이 사태가 이렇게 되어야 할 필연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동물이 출생률을 조절하기만 하면  기아가 생길 필연성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물들은 정확하게  이것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  윈-에드워즈의 저서를 
읽고 상상할 정도로 큰 견해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이  출생률을 조절하고 있다는 견해
에는 유전자의 이기적 이론의 신봉자들도 즉시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종을 취해도 
한 둥지의 알 수(clutch-size) 또는 한배의 새끼 수(litter-size)는 어느 정도 일정한 수를 나
타내는 경향이 있다. 무제한의 새끼를 낳는 동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출생률이 조절되
는가, 바꿔 말하면 자연 선택 과정에 의해 가족 계획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하는 관점을 가
지고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동물의 산아 제한은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실행되는 
이타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번식을 하고 있는 개체의  이익 때문에 실행되는 이기적인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의견의 차이는 이 중의 어느 견해를 취하느냐에 있다. 이 두 이론
을 차례로 기술하기로 하자.
  동물들은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가능한 한  출생률 이하의 새끼를 낳는다는 것이 윈-
에드워즈의 사고 방식이다. 그러나 그는 보통의 자연 선택에서  종의 이타주의는 진화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평균 이하의 출생률이 자연 선택에서  선택된다는 것은 언뜻 생각하
면 표현으로서는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제1장에서 소개한 바대로 그룹 선택의 이
론에 도움을 구한 것이다. 그는 구성원인 개체가 자기의 출생률에 제한을 가하는 식의 집단
은 구성원의 증식이 빠르기 때문에 먹이 공급에 위태로움을 받게 되는 대항 집단에 비하면 
절멸의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기 규제적인 번식자로 구성되는 집단이 자연계에 
파급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한다. 윈-에드위즈가 생각하는 개체의 자기 규제는 광의로 하
면 산아 제한과 같은 것이나, 그가 의미하는 것은 실은 더 특수한 것이다. 그는 동물의 사회 
생활 총체를 개체수의 조절 기구로 보려고 하는 하나의 웅대한 착상을 제안하고 있다. 예컨
대 제5장에서 이미 언급한 세력권제와 순위제는 많은 동물 종에 있어서 사회 생활의 두  중
요한 특징으로 되어 있다.
        세력권
  많은 동물들은 어떤 범위의 지역을  '방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박물학자들은 그 지역을 가리켜 '세력권'이라고 한다. 동물계에서 매우 흔한 현상이다. 이 현
상은 조류나 포유류, 어류뿐만 아니라 곤충이나 말미잘 등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세력권
은 울새의 경우처럼 넓은 임야일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지역은 새끼를  키우고 있는 새가 
먹이를 취하는 주된 장소로 되어 있다. 또 세력권은  검은등갈매기의 경우처럼 적은 면적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세력권 내에 먹이는 없으나 중앙에 집이 있다. 윈-에드워즈는 세력
권을 가지고 싸우는 동물들이 한 조각의 먹이와 같은 현실적인 목적물 대신에 특권을 보증
하는 표가 되는 대용 목적물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개의 경우 암놈
은 세력권이 없는 수놈과는 부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귀던 수놈이 패
하고 다른 수놈이 그 세력권을 차지하면 암놈은 얼른 그 승자쪽으로 자리바꿈을 하는 일도 
종종 있다. 성실히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종의 경우에서도 암놈은 수놈과 개체적으로 결합된
다기보다는 오히려 수놈이 소유하는 세력권과 결혼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개체군이 너무 커지면 세력권을 못 가지는 개체가 생겨 그들은 번식 할 수 없게 될  것이
다. 윈-에드워즈에 의하면 세력권의 획득은  번식의 티켓 또는 허가증을 입수하는  것과 같
다. 성립될 수 있는 세력권  수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소위 번식  허가증 발행수가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허가증을 누가  획득하는가를 가지고 개체는 서로 싸울 것이다.  그러나 
개체군 전체가 낳을 수 있는 새끼의 총수는 성립 가능한  세력권 수에 의해 제한되고 만다. 
홍뇌조의 경우와 같이 한 번 보아서 확실히 개체가 자기 규제를 실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
는 에도 몇 개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경우 세력권을 획득 못한  개체는 단지 번식을 못 할
뿐더러 세력권의 획득을 향해 싸우는 것까지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
은 마치 한 마리도 안 남고 아래와 같은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인 것과도 같다. 즉,  서로 경
합하는 계절이 끝날 때까지 만일 네가 아직 번식을 위한 공인된 티켓을 입수하지 못할 경우
에는 너는 스스로 번식을 중지해야  하며, 또 번식 기간에는 행운의  친구에게 방해를 주지 
않도록 하며, 그들이 종의 번식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운 순위제
  원-에드워즈는 순위제에 관해서도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동물의  많은 집단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발견된다. 개체가 서로 개체로서의 특징을 배우고 다시 누구와 싸울 경우에는 이
길 수가 있고, 누구에게는 항상 패하는가를 학습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육 조건하의 동물 집
단에서 특히 잘 볼 수 있는  것인데 야생 상태의 동물 집단에도 그  예가 있다. 제 5장에서 
언급한 대로 어쨌든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그들은 싸우지  않
고 항복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박물학자는 순위제 또는 '세력순위(pexk order; 닭에서 최
초로 기재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를 다음과 같이 기재하게 된다. 순위제란 사회에 계 
층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며 그 질서 밑에 있는 모든 개체는 자기의 지위를 분별하여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은 생각지도 않는다. 물론 때로는 치열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어떤 개체가 바로 위의 지위에 있던 상급자를 이기고  승진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제5장에
서도 언급한 대로 일반적으로는 하위의 개체가 자동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에 실제로  싸움이 
계속되는 일은 거의 없고, 심한 상처도 별로 입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막연한 그룹 선택론자적인 방법으로 이 사태를 '좋은 것'으로 생
가가혹 있다. 그러나 윈-에드워즈는 훨씬 대담한  해석을 이것에 더하고 있다. 순위가 높은 
개체는 하위의 개체보다도 번식의 가능성이  크다. 암놈이 상위의 개체를 선택하거나,  또는 
하위의 개체가 암놈에게 접근하는 것을 상위의 개체가 힘써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에
드워즈는 높은 사회 순위가 번식의 자격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티켓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암놈을 둘러싸고 싸우는 대신에 개체는 사회적인  지위를 걸고 싸워 만일 상위의  사회적인 
지위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은 번식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 자인한다는 것이다. 물
론 하위의 개체는 부단히  높은 사회적 지위를  향해 애쓸 것이니까-'간접적'으로는 암놈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다-직접 암놈이 개입된 문제에 관해서는 자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
에드워즈에 의하면 순위가 높은 수놈만이 번식할  수 있다는 규칙이 이와 같이 '감수'  되는 
결과, 세력권 행동의 경우와 같이 개체수는 별로 증가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과잉한 
수의 새끼를 낳아 놓고서는 그것이 잘못이 있음을 깨닫고 나서 괴로운 표정을 짓는 대신에 
동물의 개체군은 순위와 세력권을 가지고 형식적인 다툼을 이용하여 실제로 기아에 의한 희
생자가 나올 수준보다 약간 적게 개체수를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시 행동
  원-에드워즈의 착상 중에서 가장 놀랄 만한 것은 '현시(epideictic) 행동'이라는 사고 방식
일 것이다. 현시란 말은 그가 만든 말이다. 많은 동물은 자신의 생활의 많은 시간을 큰 무리 
속에서 지내고 있다. 이 종의 무리짓기 행동이 자연 선택에 의해 촉진되었다는 것은 어째서
일까. 이에 관해서는 다소간 상식적인  각종의 이유가 시사되고 있고 몇  개에 관해서는 제 
10장에서 말하고자 생각하고 있으나,  윈-에드워즈의 생각은 그것들과는 아주  먼 이야기이
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저녁 때에 찌르레기가 큰 무리를  이루거나 많은 모기가 문 기둥의 
상공을 윙윙거리고 있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기 개체군의 밀도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개체군 밀도가 높을  때는 출생률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므로, 그들이  개체군의 
밀도를 추정한 후에 어떤 수단을 강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치에  맞는 
말이다. 이것은 항온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내부에 온도계를 반드시 배치해야만 
하는 것과 꼭 같은 이유이다.  윈-에드워즈에게 있어 현시 행동이란 개체군  밀도의 추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동물이 의도적으로 모여  무리를 지어보는 것 외에는 별것이  아니
다. 그러나 그는 의식적인 개체수 추정이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개체군 밀
도에 관하여 개체가 수용한 감각 자극을 생식 시스템에 결부시키는 자동적인 신경, 또는 호
흐몬 메커니즘을 생각하고 있다.
  이상에서 간단하게나마 나는 윈-에드워즈의 이론을 올바르게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내가 이것에 성공했다면 독자는 지금 그의  이론이 언뜻 보아서 그럴듯하게 납득된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언뜻 보아 그럴듯하다고 해서 그 증거까지 유력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책의 여기까지를 읽은 독자는 의심하고 덤빌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
됐지만 증거는 별로 쓸모없다. 증거를 구성하는 다수의 사례는 확실히 그의 견해에 따라 해
석하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같은 식으로 보다 정통적인  '유전자의 이기성'의 관점에서도 설
명이 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계획 이론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에 입각한  가족 계획 이론을 세운  제1인가는 위대한 생태학자 책
(David Lack)이었다. 더욱이 그는 그 이론을 유전자의 이기성에 입각했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연구는 주로 야생 조류의 한 둥지의 알  수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의 이론이나 
결론은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새도 그종에게 특유
한 한  둥지의  알 수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가령 북양가마우지(gannet)와 바다오리
(guillemot)는 한 번에 한 개의 알을 품는데,  제비는 3개, 박새는 6개 또는 그 이상의  알을 
품는다. 물론 이 한 둥지의 알 수에는 변이도  있다. 한 번에 알을 2개밖에 안 낳는  제비도 
있고, 박새처럼 12개의 알을 낳는 수도 있다. 한 마리의 암놈이 산란하여 품는 알의 수는 다
른 특성과 같이 비록 부분적이기는 한 유전적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이 없
을 것이다. 실제로 사태가 그 정도로 단순한 것은 있을 수 없음에 틀림없으나, 말하자면  알
을 2개 낳게 하는 유전자, 4개 낳게 하는 대립 유전자 등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유전자 풀 속에서 수를 늘려 가는 것은 이들 유전자 중 어떤 것일까. 유전
자의 이기적 이론으로는 이 문제가 크로즈업 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알을 2개 또는 3개 낳
게 하는 유전자에 비하면 알을 4개 낳게 하는 유전가 유리한 것은 뻔한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나 "많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식의 단순한 논의가 옳지 않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
면 분명하다. 만약 그 논의가 옳다면 4개의 알을 낳기보다는 5개가 더 좋고 또한 10개,  100
개가 좋고 나아가서 무한히 산란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논의
는 논리적으로 부조리에 부딪치게 된다. 다수의 알을 낳으면  이익뿐만 아니라 대가를 치러
야 함은 분명하다. 애낳기의 증가는  아이에 대한 보호 효과의 감소를  지불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 임의의 환경 조건하에 있는 임의의 종에 관한 특정의 한 둥지의 최적 알 수가 존재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 랙 이론의 요점이다. 랙과 윈-에드워즈의 견해가 갈라지는 것은 "누
구의 입장에서 보아 최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하는 방법에 있어서이다.  윈-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모든 개체가 목표로 하는 최적  알 수는 집단 전체에 있어서의 
최적 알 수라는 것이다. 한편 랙은  다음고 같이 주장한다. 각각의 이기적인 개체는  어미가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최대로 할 수 있는 한둥지의 알 수를 선택하는 것이다. 3개의 알
이라는 것이 제비로서 만일 한 둥지의 최적의  알 수라면 이것에 대한 랙의 해석은 다음과 
같이 된다. 네 마리의 새끼를 키우려고  하는 개체가 최종적으로 키워 낼 수  있는 수는 세 
마리밖에 키우지 않으려고 하는 경쟁자가 키울 수 있는 새끼 수보다 결국 적어지게 되는 것
이다. 명백한 이유로서 생각되는 것은 네 마리의 새끼를  키운다면 각각의 새끼에게 분배되
는 먹이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숙 단계에까지  자라 살아 남는 것이 거의 없게 된다는 
결론일 것이다. 이것은 4개의 알에게 분배되는 난황의 양, 그리고 부화 후 새끼에게  주어지
는 먹이의 양, 둘 모두에 해당되는 것이다. 즉, 랙에 따르면 개체가 한 둥지의 알 수를 조절
하는 이유에는 이타적인 점 같은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산아 제한을 행하는 것
은 집단을 위한 자원을 과잉으로  이용 못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자기의 새끼 
수를 최대화하기 위해 그들은 산아 제한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우리들이 산아 제
한에 결부시키고 있는 이유와는 아주 정반대의 목표이다.
      개끼 수 조절
  새끼를 키우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선 알을 만들기 위해  어미 새는 대량의 먹이와 에
너지를 투자해야만 한다. 아마 배우자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어미 새는 알을 품고  알을 
보호하기 위해 집을 만드는 데도 많은 노력을 한다. 다시  어버이 새는 수주간에 걸쳐 인내
로서 알 품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새끼가 부화하면 어버이 새들은 자기를 혹사하여 거의 쉬
는 일도 없이 새끼의 먹이를 나르고 있다. 이미 소개했거니와  박새의 경우 한 마리의 어미 
새는 낮 동안 30초마다 평균 1회의 비율로 먹이를 둥지로 나른다. 우리 인간과 같은 포유류
의 경우 사정은 틀리다고는 하나, 특히 어미에게 있어 번식이  큰 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
다. 만약 어미가 먹이와 양육을 위한 노력 등과 같은  한정된 자원을 새끼들에게 너무 많이 
분산시키면 어미가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는 어미 새가 적당한 목표로 출발한 경우에 비해 
적어지고 말 것이다. 어미 새는 애낳기와 애키우기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한 마리의 어미 새 또는 한 쌍의 작이 구할 수 있는 먹이와 자원의 총량이 그들이 키
울 수 있는 새끼 수를 결정하는  제한 요인이 된다. 랙의 이론에 의하면  자연 선택은 이들 
한정된 자원ㅇ들로부터 최대의 유리함을 유도하도록 산한시의 한 둥지의 알 수(또는 한배의 
새끼 수)를 조정한다.
      합리적 출산
  새끼를 과다 출산하는 개체가 불리하게 되는 이유는 개체군 전체가 그 때문에 절멸해 버
리기 때문이 아닌 단적으로 그들의 새끼 중에 살아 남는  수가 적기 때문이다. 과잉 산란에 
관한 유전자군은 이것들을 지닌 새끼들이 거의  성숙할 수 없으므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문명인 사이에는 가족 구성원의 크기가 개개의 부모가 조
달할 수 있는 한정된 자원들에 의해서는 이미 제한받지 않는다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어떤 
부부가 자기들이 양육 가능한 이산의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구가, 즉 그 개체군 중 해당 부
부 이외의 부분이 개입하여 과잉분의  아이들을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한다.  물질적 자원을 
전혀 못 가지는 부부가 다수의 아이를 여성의 생리적 한계에 이르도록 낳아 기르려고 해도 
실제로 이것을 저지하는 수단은 없다. 그러므로 복지 국가라는  것은 극히 부자연적인 실체
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키울 수 있는  수 이상의 아이를 가진 부모는 손자를  많이 가질 수 
없고, 따라서 그들의 유전자가 장래의 세대에게 이어지는 일은 없다. 자연계에는 복지  국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출생률에 대해 이타적인 자제를 할  필요는 없다. 자제를 
모르고 방종을 가져오는 모든 유전자는 즉시 벌을 받는다. 그 유전자를 보유한 아이들은 굶
주리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과도한 인원을 거느린 가족의 애들이 굶어 죽어도 그냥 
두던 옛날의 이기적이 s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족을 경
제적인 자급 자족 단위로 하는 것을 폐지하고 그 대신에 국가를 경제 단위로 한 것이다. 그
러나 아이에 대한 생활 보장의 특권은 결코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피임
  피임은 종종 '부자연스럽다'고 비난된다. 그렇다.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곤란한 무
제는 복지 국가에서도 매한가지라는 점이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복지 국가를 극히 바람직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복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들 또한 부자
연스러운 산아 제한을 실행해야만 g나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 상태에  있는 것보다 더 비참
한 결과에 이를 것이다.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래 불안정한 것이다.  그것
은 이용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이기적이 개체에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가 키울 수 있는 이상의 아이를 가지고 잇는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그들이 의식적으로 악용을 꾀한다고 비난할 이유는 못 된다. 다만 나는 그들이 다수
의 아이를 만들도록 의도적으로 선동하고 있는 지도자나 강력한 조직에 대해서는 그 혐의를 
풀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세력전과 번식 허가증
  야생 동물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한 둥지의 알 수에  관한 랙의 논리는 윈-에드
워즈가 인용하는 기타 모든 사례, 예컨대 세력권 행동, 순위제 등에 일반화시킬 수 있다. 예
를 들면 윈-에드워즈와 그의 동료들이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는 홍뇌조를  택하기로 하자. 
이 새는 히스속 식물을 먹이는데, 습원을 분할하여 소유자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보다 다
량의 먹이를 포함하는 세력권을 만든다. 번식기 초기에 그들은  세력권을 두고 싸우는데 패
자는 자기의 패배를 인정하는지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력권을 갖지 못하는 낙오
자가 되며, 그 계절이 끝날 즈음에는 대체로 아사해 버린다. 번식할 수 있는 놈은 세력권 소
유자일 뿐이다. 그런데 세력권을 갖지  못한 새들도 생리적으로는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음의 사실에서 밝혀져 있다. 세력권 소유자가 죽으면 낙오자 중의  한 마리가 즉시 그 후
계자 자리에 앉아서 번식을 시작한다. 이 극단적인 세력권 행동에 관한 윈-에드워즈의 해석
은 이미 알다시피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낙고자들은 번식을 위한 허가증 또는 티켓을 놓치게 
된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번식 행위를 보류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좀 귀찮은  일로 보인다. 낙오자들은 왜 
사력을 다하여 한사코 세력권 소유자를 내쫓으려고 하지 않을까. 비록 지쳐서 쓰러질지라도 
그들이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조금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잃는 것이 엄연히 있는 것이 아닌지. 위에서 보았듯이 만일 세력권 소유자가 사
망하는 일이 있으면 낙오자에게 그 세력권을 입수하여 번식할  시회가 돌아온다. 만일 낙오
자가 이 방법으로 세력권을 입수하여 번식할 기회가 돌온다. 만일 낙오자가 이 방법으로 세
력권의 후계자로 정착할 가능성을 기다리는 편이 투쟁에 의해 세력권을 얻을 수 있는 가능
성보다 크다면 비록 적은 에너지라도 무익한 싸움으로 허비하기보다는 세력권 소유자  중에
서 누군가가 죽기를 기대하며 대기하는 편이 이지적 개체로서  그에게는 유리하다. 윈-에드
워즈의 입장에서 보면 집단의 번영을 꾀함에 있어서 낙오자들의 역할은 대역자와 같이 무대 
옆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의 번식을 위해 전시 무대  위에서 세력권 소유자 중 누군
가가 쓰러지면 즉시 그 놈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분명해진 것처럼 
낙오자가 나타내는 행동은 순수하게 이기적인 개체로서 그들의 입장에서 보아도 가장  좋은 
전략일지도 모른다. 제 4장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동물을 도박사로 볼 수가 있다. 때때로 도
박사로서 가장 좋은 방책은 공격 작전이 아닌 관망이 작전일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식으로 동물이 비번식자의 지위를 언뜻 보아서 수동적으로 '감수'하고 있는 듯이  보
이는 많은 다른 예도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에 의해 더 용이하게 설명할 수가 있다. 어떤 경
우에도 설명의 기본형은 같다. 즉, 그 동물의 가장 좋은 결정은 일단 자제하고 장래의 더 좋
은 기회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하렘의 소유자들에게 새치기를  꾀하지도 않는 낙오된 바다
표범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좋은 기회가 닥쳐오기를 기다리
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호기는 오지 않고 결국 그가 자손을 못보고 죽을망정 이 도박은 이길
지도 모를 도박이었다. 그 한 마리에 관해서는 결과적으로 이 도박이 패배할 것을 알았다고 
해도 역시 그것은 이길 수도 있는 도박이었다. 또 개체수의 급증으로 번식의 중신 지역에서 
수백만의 큰 그룹을 이루고 쏟아져오는 나그네쥐들도  그들이 지나쳐 온 그 지역의  개체군 
밀도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더 밀도가  낮은 생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기적 존재인 그들 모두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장소를 계속 고
집하면 그들은 새로운 생활 장소를 발견 못하고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
가 나야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도 다음의  가능성을 변명하는 것은 아니다. 즉, 원래
의 지역에 잔류하는 것은 더 좋지 못한 도박이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개체군 과밀-출생률 감소 초래
  개체군의 과밀이 때로는 출생률의 감소를 초래케 된다는 것은 많은 자료로 잘 알려진 사
실이다. 이 사실이 윈-에드워즈의 이론뿐만 아니라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과도 합치하기 때
문이다. 예를 들면, 옥외의 울타리 안에 먹이를 충분히 공급하고 생쥐를 자유로이  번식시키
는 실험이 행해진 적이 있다. 이 개체군은 어느 수까지는  증가했는데 그 후에는 평형 상태
가 되었다. 개체수가 평형 상태로 된 것은 과밀 결과  암놈의 번식 능력이 감퇴되었기 때문
임을 알았다. 새끼 수가 줄어든 것이다. 이와 비슷한  효과는 이외에도 종종 보고되고 있다. 
이 같은 종의 효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할 때가 많다. 더욱이 원인에 그
런 이름을 붙여 보는 것만으로는 설명을 어떻게 연관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개체군의 과밀
화에 따라 출생률을 감소시킨다는 성질을 가진 암놈에게 자연 선택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은 도대체 왜 그럴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출산
  원-에드워즈의 답은 분명하다. 암놈이  개체군 밀도를 측정해 출생률을  조정하는 성질을 
가진 덕택에 먹이의 과밀 이용을 일으키지 않고 사는 집단이 그룹 선택에 유리하기 때문이
라고 한다. 상기 실험의 경우 먹이가 결코 부족하지 않았는데 생쥐가 이 조건을 이해한다고 
상정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들은  야생 생활에 적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리고 
야외 조건하에서라면 과밀은 앞으로 최래될 기근을 나타내 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의 견해는 어떠한가? 거의 같은 의견인데, 단 하나의 결정적인 의견
의 차이가 있다. 동물은 그들 자신의 이기적인 입장에서 보아  최적 수의 새끼를 갖는 경향
이 있다고 하는 랙의 견해를 상기해야 한다. 그들이 낳은  새끼의 수가 적거나 또는 과다하
든지 하면 그들이 최종적으로 키워 낼 수 있는 새끼의 수는 만일 그들이 꼭 맞는 수의 개씨
를 낳아서 키울 때의 그 수보다 적어지고 말 것이다. 이 '꼭 맞는 수'라고 하는 것도 개체군
의 과밀한 해에는 개체군이 희박한 해에 비해 보다 작은 수가 될 것이다. 과밀이 기근의 전
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본래부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만약 암놈이 기근을 예측하는 
확실한 증거에 접할 경우 스스로 자기의  출생률을 감소시키는 것은 명백히 암놈의  이기적 
이익에 걸맞은 것이다. 이 경고적인 징후에 이 방법으로 반응하지 않는 경쟁자들은 가령 그 
암놈보다 많은 새끼를 낳았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키워 낼 수 있는 새끼수는 그 암놈보다 적
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최종적으로 윈-에드워즈와 거의  똑같은 결론에 도달
하게 된다. 단 우리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진화론적 추리를 거쳐 거기에 도달한다.
      밀도 조사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은 '현시 행동'의 문제도 쉽게 처리한다. 독자는 윈-에드줘즈의 다음
과 같은 가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즉, 동물들은 모든 개체가 개체군의 밀도 조사를  쉽
게 실행하여, 이에 따라서 자신의 출생률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큰 그
룹을 이루고 일제히 과시를 한다고 한다. 실제로 현시적인 집합이 있다고 하는 직접적 증거
는 없으나, 가령 그런 종의 증거가 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은  당혹
할 것인가? 걱정할 것은 못 된다.
  찌르레기는 매우 많은 수가 한데서 잠을 잔다. 지금 가령  단지 겨울 동안의 과밀 상태가 
봄에 산란 능력을 감퇴시킨다는 것뿐만이 아니고  또한 서로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이  산란 
능력 감퇴의 직접적 원인이 됨을 알았다고 상정해 보자. 이 점을 증명하려면 찌르레기의 요
란한 잠자리 음과 조용한 잠자리 음을 테이프에 녹음해 놓고 각각의 음을 들려준 찌르레기
를 상호 비교하는 실험을 통해 전자의 음에 내놓았던 개체 쪽이 산란수가 적음을 제시하면 
좋을 것이다. 정의에 따르면 이로 인해 찌르레기의 울음소리는  현시적인 과시의 하나인 것
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은 생쥐의 예를 든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은 미래를 예측한다.
  유전자 풀 속에서 양육 능력 이상으로 가족을 확대시키는 유전자는 자동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그 수가 감소한다는 가정하에서 논의를 시작하자. 따라서 허실없이 산란하려는 개체에
게 주어진 일은 이기적인 개체로서 어미의 입장에서  본 한 둥지의 최적 알 수가 다가오는 
번식기에 있어도 도대체 몇 개로 되느냐를 예측하는 것이다. 예측이라는 말은 제4장에서 말
한 것 같은 특수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독자는 그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암놈은 대관절 
어떻게 해서 한 둥지의 최적 할 수를 예측하는 것일까? 어떤 변수가 어미의 예측에 영향을 
줄까? 우선 대부분의 종은 해마다 변화하지 않는 고정적인 예측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예
컨대 북양가마우지의 한 둥지의 최적 알 수는 평균 한 개로 정해져 있다. 물론 고기가 특히 
풍부한 해에는 일시적으로 두 개로 증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양가마우지에
게 어떤 특정한 해가 어류가 많은 해로  되는지의 여부를 사전에 아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 
북양가마우지의 암놈들이 두 개의 산란으로 해서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낭비하고 마는 위험을 
취하는 것을 예상할 수 없다. 알  두 개를 낳게 되면 평균적인 해의  조건에서 그들의 번식 
성적은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찌르레기를 포함하여 상기와 다른 조건하에 있는 종에서도 볼 수 있을 것
이다. 이들 종에 있어는 봄에  특정한 먹이 자원의 생산이 양호하게  될는지 어떤지를 겨울 
동안에 예측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농촌 사람들 사이에는 예컨대 호랑가
시나무 열매의 많고 적음이 봄날씨를 예측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등등 미래의 
단서가 되는 많은 속담들이 있다. 어떤 특정한 늙은  아낙네의 이야기가 정확한지의 여부는 
덮어놓고라도 논리적으로 존재 가능한 여지는 있다. 그렇다면 이름난 점쟁이가 자기의 이익
이 되도록 한 둥지의 알 수를 해마다 조정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호랑가시
나무 열매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예측 수단인지는 몰라도 생쥐의 경우와 같이 개체군 밀도
가 좋은 예측 수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이 있다고 생각된다. 새끼를 낳고 먹이를 줘야 
하는 봄에 같은 종의 경쟁자들과 먹이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찌르레
기 암놈은 원칙적으로 알 수가 있다. 만약 겨울에 암놈이 같은 종 개체의 지역 밀도를 어떤 
방법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 이것은 봄이 되어 새끼를 위해 먹이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곤
란할지를 예측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철에 개체 밀도가 현저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산란수를 조금 감소시킨다는 것이 암놈의 이기적 견지에 맞는 신중한 대응
책이 된다. 즉, 자기의 한 둥지의 최적 알 수에 대한 암놈의 추정치는 감소하게 된다.
      Beau Geste 효과
  개체가 실제로 자기 손에 의해 개체군의 밀도 추정을 근거로 하여 한둥지의 알 수를 감소
신다는 성질을 나타내게 되면 즉시 다음과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 즉, 실제의 밀도가 어떻든 
경쟁자에 대해서는 개체군이 굉장히 큰 것처럼 꾸미는 것이 개개의 이기적 개체에게는 유리
하게 도는 것이다. 예컨대 찌르레기의 예에서, 가령 겨울 잠자리의 소란정도가 개체군의  크
기를 추정하는 수단으로 되어 있다면 개개의 개체는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를 크게 지는 것
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동물은 마치 동시에 몇 개의 개체가 거기에 있는 것처
럼 보이게 하는 일이 있지나 않은가 하는 견해는 크렙스(J..R. Krebs)가 별도의 문제를 다루
었을 때에 시사했던 것이다. 그는 프랑스 외인 부대의 일단이  이와 같은 전술을 쓰는 장면
이 나오는 소설을 참조해 거기에 'Beau Geste 효과'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찌르레기의 경
우 이 행위의 목적은 주위 동료들이 그것에 속아서 그들의 한 둥지의 알 수를 진짜  최적치 
이하로 감소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찌르레기의 그것처럼  이 목적을 잘 달성
한다고 하면 그것은 당신의 이기적인 이익에 합당한다. 당신은  당신과 같은 유전자를 지니
지 않은 개체를 감소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의 고찰에서 나의 결론을 말하면 현시
행동이라는 윈-에드워즈의 착상은 실제로 우수한 고찰 방법일지 모른다. 아마도 그의 이 견
해는 그가 그것에 준 진화론적  설명이 오용된 점을 제외하면 시종  옳았을지도 모른다. 또 
상기의 고찰에서 더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그룹 선택 이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떠한 증거가 나타났다고 해도 랙의 가설은 그것을 유전자의 이기
성에 의해 설명해 보이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장의 결론은 개개의 어미 동물이 가족 계획을 실행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공
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출생률의  최적화인 것이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아 남는 자기 새끼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힘쓰고 있고, 이것을 위해서는 새끼의 수가 과다
든 과소든 상관이 없다. 개체에게  과도한 수의 새끼를 가지도록 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 거처할 수 없다. 그런 종류의 유전자를 체내에 가진  새끼들은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 
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 크기의 양적인 고찰은 이상으로 매듭짓기로 하자. 다음에 다룰 것은 가족 내부의 이
해 충돌 문제이다. 모친으로서 자기의 아이를 모두 공평히 대하는 것이 이익일까  손해일까. 
자칫하면 모친은 특정한 아이를 편애하는 것은 아닌지. 가족과는  단일 협력 집단으로서 통
일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가족에게까지도 이기주의나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인지. 같은 가족 내의 전 구성원은  동일한 최적치의 달성을 향해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간에는 무엇을 최적치로 할 것인가를 가지고 '의견의 불일치'가 있는 것일까. 다음 장에
서는 이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보자. 배우자간에 이해  충돌이 있나 없으나 하는 문제
도 이와 관련된 것인데, 그것에 관해서는 제9장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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