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는 유전자의 화학 공장이다
유전자의 수동적 피난처로서 생긴 생존 기계는 처음에는 경쟁자들과의 화학전과 우연한
분자 충격의 피해로부터 몸을 지키는 벽을 유전자에게 제공하는 데 불과했다. 처음에 그들
은 수프 속에서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유기 분자를 먹이로 하고 있었다. 이 편한 생활이
끝난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활발한 햇빛의 영향 밑에서 수프 속에 형성된 유기적인 먹이가
모두 다 사용되어 없어졌을 때였다. 오늘날 식물이라고 부리고 있는 생존 기계의 주요한 갈
래는 생존 기계 스스로가 직접 햇빛을 사용하여 단순한 분자로부터 복잡한 분자를 만들기
시작하여 원시 수프의 합성 과정을 더 높은 속도로 재연했다. 동물이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갈래는 식물을 먹든지 다른 동물을 먹든지 하여 식물의 화학적 작업을 가로채는 방법을 발
견했다. 생존 기계의 두 갈래는 다양한 생활 방법으로 자기의 효율을 높이려고 더욱 교묘한
책략을 발달시켜 부단히 새로운 생활 방법을 개발해 갔다. 이 두 갈래에서는 그 곁갈래에
또 곁갈래가 생겨 특수화된 생활 양식을 진화시켰다. 그들은 각각 바다에서, 지상에서, 공중
에서, 땅 속에서, 나무 위에서 나아가서는 다른 생물체 내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데만 힘써
왔다. 이 가지 뻗기가 오늘날 우리를 감동시킬 정도로 동식물의 다양성을 생성하게 된 것이
다.
개체는 세포의 군체
동식물은 여러 가지 세포로 모든 유전자의 완전한 복사가 분배되어 있는 다세포 생물로
진화해 왔다. 이와 같은 것이 언제, 왜 혹은 독립적으로 몇 번이나 생겼는가는 모른다. 어떤
사람은 몸을 세포의 군체(colony; 집단)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몸을 유전자
의 군체, 세포를 유전자의 화학 공장으로서 적합한 작용 단위라고 생각하고 싶다.
몸은 유전자의 군체일지라도 행동 양상은 끊임없이 그 자체의 개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하나의 동물은 통제된 전체로서, 즉 하나의 단위로서 행동한다. 주관적으로 인간은 자기 스
스로를 하나의 군체가 아닌 하나의 단위라고 느끼고 있다. 이것은 당연하다. 선택은 다른 유
전자와 협조하는 유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적은 자원을 건 치열한 싸움에서는 공동체
적인 몸의 내부가 무통제적인 것보다 중추에 의해 싸움에서는 공동체적인 몸의 내부가 무통
제적인 것보다 중추에 의해 통합되어 있는 쪽이 유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간의
상호 공동 진화가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개개의 생존 기
계가 상호간의 공동체적인 성질을 갖는다는 점을 간하기 쉽다. 확실히 그것을 발견 못하는
생물학자가 많고 그들은 나와는 의견을 달리한다.
다행히 저널리스트들이 이 책의 나머지 부분 속에 있는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대부분 의견의 불일치는 학술적인 것이다. 자동타의 성능을 논할 때 양자나 소립자에 관해
말해 보았자 소용이 없듯이 생존 기계의 행동을 논할 때 유전자의 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지
루하고 불필요할 때가 많다. 사실 일반적으로 개체라는 것은 그 전체 유전자를 후세대에게
보다 많이 전하려고 '애쓰는'것이다라고 생각해 두는 것이 많은 경우 편리하다. 나는 편하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따라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 이상 '이타적 행동'과 '이기적 행동'은
동물의 어떤 개체가 별개의 개체에 대해서 행해지는 행동을 말한다.
동물의 행동
이 장에서는 '행동', 즉 동물이라고 불리는 생존 기계가 대체로 이용해 온 재빠르게 움직
이는 묘기에 대해 기술한다. 동물은 민첩하고 활발한 유전자의 운반자, 즉 유전자 기계가 되
었다. 생물학자가 쓰는 의미로 '행동'의 특징은 움직임이 빠르다는 것이다. 식물도 움직이는
하나 매우 느리다. 고속도 영화로 보면 덩굴식물은 활동적인 동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
분의 식물 운동은 사실상 비가역적인 생장이다. 한편 동물은 식물보다 수십만 배나 빨리 움
직이는 방법을 발달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동물의 운동은 가역적이고 무한히 반복할 수가
있다.
동물이 빠른 운동을 하기 위하여 진화시킨 기관은 근육이었다. 근육은 증기 기관이나 내
연 기관과 같이 화학 연료로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해서 기계적 운동을 발생시키는 엔진이
다. 단지 차이점은 근육의 직접적인 기계적이 증기 기관이나 내연 기관의 경우처럼 증기압
이 아닌 긴장의 형태로 생긴다는 점이다. 그러나 근육은 가끔 끈이나 경첩이 붙은 지렛대에
힘을 주는 점에서 엔진과 유사하다. 우리의 몸에서 지렛대는 뼈, 끈은 힘줄 그리고 경첩은
관절이다. 근육의 움직임의 엄밀한 분자적 측면에 관해서는 대단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
나, 나는 근육 수축의 시간적 조절 문제에 대해 더 흥미가 있다.
당신은 어느 정도 복잡한 인공 기계, 예컨대 편물 기계, 재봉틀, 베틀, 자동 병공장, 건초
묶음기 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동력은 전동기나 트랙터로부터 공급된다. 그러나 더욱 이
상한 것은 조작 타이밍의 복잡성이다. 밸브가 올바른 순서로 개폐되고 강철 손가락이 재치
있게 건초의 단을 묵고 칼이 나와서 그 끈을 자른다. 대개의 인공 기계에서는 굉장한 발명
품인 캠(cam)에 의해 시간적 조절이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편심륜 또는 특수한 형의 바퀴
에 의해 단순한 회전 운동을 복잡하고 리드미컬한 패턴의 조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뮤
직박스에서도 같은 원리가 사용되고 있다. 그 밖에 증기 기관이나 자동 피아노와 같은 기계
에서는 어떤 패턴의 구멍을 뚫은 카드나 두루마리 종이가 사용된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단
순한 기계적 타이머가 전자 타이머로 대체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형 컴퓨터는 복잡
한 시간적 조절이 일어나는 운동 패턴을 발생시키는 데 사용되는 다재다능한 대형 전자 장
치의 예이다. 컴퓨터와 같은 근대적 전자 기기의 기본적 구성 요소는 반도체이다. 그 중에
낯익은 것으로 트랜지스터가 있다.
뉴런과 컴퓨터
생존 기계는 캠과 펀치 카드 등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행동의
시간적 조절에 쓰고 있는 장치는 컴퓨터와 공통점이 많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조작은 전혀
다르다. 생물 컴퓨터와 공통점이 많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조작은 전혀 다르다. 생물 컴퓨터
의 기본 단위인 신경 세포, 즉 뉴런은 그 내부 작용이 트랜지스터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확실히 뉴런에서 뉴런으로 전해지는 신호는 디지철형 컴퓨터의 펄스(pulse) 신호와 조금은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개의 뉴런은 트랜지스터에 비해 정교한 데이터 처리 단위이다.
세 개의 다른 부품과 연결되는 트랜지스터에 비해 하나의 뉴런에는 다른 성분과의 연결이
수십만에 이른다. 뉴런은 트랜지스터보다 정보 처리의 속도는 느리나 과거 20년간 전자 산
업계가 추구해 온 소형화라는 점에서는 많이 앞서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에는 수십억 개의
뉴런이 있는데 하나의 두개골에는 겨우 수백 개의 트랜지스터밖에 넣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식물은 움직여 다니지 않고도 생활하기 때문에 뉴런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대부분의 동물
집단에서는 뉴런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동물의 진화에서 일찍이 '발견'되어 모든 집단에게
계승되거나 또는 독립적으로 몇 번인가 재발견됐을 것이다.
뉴런은 세포이다
뉴런은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세포이고, 다른 세포와 같이 핵과 염색체를 가지로 이TEk.
그러나 그것들의 세포막은 가늘고 길며 철사 모양의 돌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
의 뉴런에는 축삭 돌기라는 특별히 긴 '철사'가 한 가닥 있다. 축삭 돌기의 폭은 현미경적인
것이나 길이는 수미터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한 가닥의 길이가 기린의 목의 전체
길이에 이를 정도로 긴 축삭 돌기도 있다. 축삭 돌기는 보통 다발로 되어 있어 많은 섬유로
된 굵은 케이블을 형성한다. 이것이 신경이다. 신경은 몸의 어떤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마
치 전화 케이블 간선처럼 메시지를 운반한다. 어떤 뉴런은 축삭 돌기가 짧고, 신경절 또는
더 큰 경우에는 뇌라고 하는 밀집된 신경 조직의 집합 속에 수용되어 있다. 뇌는 기능상 컴
퓨터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어느 것이나 복잡한 입력 패턴을 분석
하여 저장되어 있는 정보와 조회하고 나서 복잡한 출력 패턴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유사하
다.
뇌-근수축의 제어와 조정
뇌가 생존 기계의 성공에 실제로 공헌하는 방법으로서 중요한 것은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
이다. 뇌가 이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근육으로 통하는 케이블이 필요하다. 그것이 운동 신경
이다. 그러나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이 유전자의 효과적인 보존에 이어지는 것은 근수축의
타이밍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타이밍과 어떤 관계가 있을 때뿐이다. 깨물 것이 입 속
에 있을 때만 턱 근육을 수축시키고, 뛰어 쫓아야 할 이유도 그 대상이나 뛰어 도망해야 할
이유가 존재할 때에만 다리의 근육을 주행시의 패턴으로 수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문
에 자연 선택은 감각 기관, 즉 외계의 물리적 사건의 패턴을 뉴런의 펄스 신호로 바꾸는 장
치를 갖추도록 되어 있어 동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뇌는 감각 신경이라는 신경삭에 의
해 감각 기관-눈, 귀, 맛봉오리-등에 이어져 있다. 감각계의 작용이 매우 난해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들이 가장 고가인 최량의 인공 기계에 비교해서도 훨씬 복잡한 패턴 인식을 행하
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타이피스트는 전원 필요 없게 되어 말을 인지하는 기계와
손으로 쓴 문자를 읽는 기계로 교체되어 있을 것이다. 타이피스트는 앞으로도 수십 년은 필
요로 할 것이다.
진화 중에 감각 기관이 뇌를 거치지 않고 근육과 연결되어 있던 시기가 있었다. 말미잘은
현재도 이 상태에서 별로 진화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의 생활 양식에서는 그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근수축의 타이밍 사이에서 더욱 복
잡하고 간접적인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매개물로서 어떤 종류의 뇌가 필요했다. 굉장
한 진보는 기억이라는 진화적 '발명'이었다. 이 장치에 의해 근수축의 타이밍은 직전의 과거
의 사건만 아니라 먼 과거의 사건의 영향도 받게 될 수 있었다. 디지털 컴퓨터에서도 기억,
즉 메모리가 그 본질적인 주요 부분이다. 컴퓨터의 기억은 인간의 기억보다 확실하지만 그
용량은 작고 정보 수정의 기술은 많이 떨어진다.
생존 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는 합목적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동물의 유전자의 생존에 필요하도록 잘 계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기는 싫다. 물
론 그럼에는 틀림없으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의도적인 행동에 잘 닮아 있다는
것이다. 동물이 먹이를 '찾거나'배우자를 찾거나, 또는 잃은 새끼를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우
리들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을 때 경험하는 어떤 종류의 주관적 감정을 그 동물이 가지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감정에는 어떤 것에 대한 '욕망', 바라는 것을 '머리에 그리는
상' 또는 '목적' 내지 '설계도'가 포함되어 있다. 누구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는 것처
럼 우리는 적어도 현대의 생존 기계에서는 이 합목적성이 '의식'이라는 특성을 발달시켰음을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철학자는 아니
지만, 다행히도 목적에 따라 동기가 주어지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 생존 기계의 일을 말하는
것은 쉽고 생존 기계가 실제로 의식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미해결 상태로 남길 수도 있으
므로 우리의 현재 목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들 생존 기계는 기본적으로 극히 단순하
여 무의식의 합목적적 행동의 원리는 공학의 어디에나 흔히 널려 있다. 이 고전적인 예는
와트(James Watt)의 증기 기관의 조속기이다.
피드백
이것에 포함되는 기본 원리는 음(-)의 '피드백(feedback)'이라는 것으로 이에는 여러 가지
의 형태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목적 기계', 즉 의식적 목적을 가지고 있
는 양 행동하는 기계 내지 물건은 사물의 현재 상태와 '바랐던' 상태와의 차이를 재는 일종
의 측정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 차이가 클수록 기계는 더 열심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
다. 이렇게 해서 기계는 자동적으로 차이를 줄이려고 한다. 이것이 음의 피드백이라고 불리
는 이유이다. 그리고 '바랐던'상태에 도달하면 기계는 멈춘다. 와트의 조속기는 증기 기관의
힘으로 도는 한 쌍의 볼(ball)로 되어 있다. 볼은 각각 돌쩌귀가 붙은 암(arm)의 끝에 붙어
있다. 볼이 빨리 돌수록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여 암을 수평 위치로 밀어 올리는데 이에
반하여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 암은 엔진에 증기를 보내는 밸브에 연결되어 있고, 암이
수평 위치에 접근하면 증기의 공급이 감소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엔진이 지나치게 빨
라지면 공급되는 증기의 양이 줄고, 엔진은 느려지게 된다. 엔진이 너무 느리면 밸브에 의해
보다 많은 양의 증기가 엔진으로 자동적으로 보내져 엔진은 다시 속도를 되찾는다. 이와 같
은 목적 기계는 종종 도가 지나치거나 시간이 지연되는 것 때문에 진동을 일으킨다. 이 진
동을 억제하는 부속 장치를 조립하는 것이 기술자에게 요구되는 솜씨이다.
와타가 조속기에 대해 '바랐던' 상태는 하나의 일정한 회전 속도이다. 분명히 이 기계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계의 '목표'란 단순히 기계가 도달해야 하는
상태라고 정의된다. 현대의 목적 기계는 더욱 복잡한 '살아 있는 것과도 같은' 행동을 달성
하기 위해 음의 피드백과 같은 기본 원리를 확대하여 이용하고 있다. 예컨대 유도 미사일은
얼핏 적극적으로 목표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사정 거리 내의 표적을 발견하면
표적이 도망치려고 지그재그로 가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 등을 계산하여 때로는 그것을 '예
측'까지 하여 추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것이 행해지는 방법의 상세한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음의 피드백, 실행 전에 결함을 예기하고 행하는 피드백
과정의 제어(feed-forward), 그리고 기술자에게는 잘 이해되어 있고 현재로는 생물체의 활동
에 널리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기타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원격 조정하는 식으로
외부에서 전달되는 의식은 전혀 없다. 가령 문외한이 그 신중하고 의도적으로 보이는 행동
을 보고 미사일이 인간 조종사에 의해 직접 조정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해
도 말이다.
컴퓨터 장기
유도 미사일과 같은 기계는 본래 의식 있는 인간의 손으로 설계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마치 의식 있는 인간에 의해 직접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흔히 있는 잘
못이다. 이와 같은 오해의 또 하나의 예는 "컴퓨터는 기사가 명한 것밖에 못하기 때문에 컴
퓨터는 진정한 의미로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오해인
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가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장기는 이 점을 설명하는 데 매우 좋은 예이므로 간단히 다
루어 보기로 하자.
컴퓨터는 아직 명인과 상대할 정도로 장기의 명수는 못되나 잘 두는 아마추어의 실력 정
도는 될 것이다. 대개 아마추어의 상수 실력 정도는 된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마추어의
상수 수준에 달하고 있는 것은 프로그램 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장
기를 두는 데 어떤 컴퓨터를 이용하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프로그램 작성자의 역
할은 무엇일까? 첫째로 분명히 그는 인형을 실로 조작하는 인형사처럼 계속 컴퓨터를 조작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가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프로
그램을 짜서 컴퓨터에 넣는다. 이때부터 컴퓨터는 독립한다. 즉, 자기의 수를 컴퓨터에 입력
시키는 대전자를 제외하면 인간의 개입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프로그램 작성자는 가능성이
있는 말의 위치를 모두 예측하고 만약 일어날지도 모르는 각각의 말의 위치에 대한 솜씨를
기다란 리스트로 하여 컴퓨터에 입력시켜 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장기에서 가능성이 있는 말의 위치는 너무 많아서 그것을 전부 다 써 넣기도 전에 이 세상
이 끝나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필승의 작전이 발견될 때까지 가능성이 있는
모든 수와 가능성이 있는 모든 수 읽기를 헛되게 시험토록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짤 수는 없
다. 가능한 장기 게임은 은하계의 원자 수보다도 많다. 그래서 컴퓨터가 장기를 두도록 프로
그램을 짜는 것에 관한 상세한 미해결 문제에 이 이상 깊이 개입하는 것을 그만하자. 사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가장 잘 된 프로그램일지라도 아직 명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프로그램 작성자의 역할은 오히려 아들에게 장기를 가르치는 아버지의 역에 가깝다. 그는
컴퓨터에게 개별적으로 가능한 수 모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경제적으로 나타낸 규
칙에 따라 게임의 기본적인 수를 가르킨다. 그는 그라 뜻 그대로 알기 쉽게 "비숍은 대각선
으로 움직인다"라고 하지 않고 수학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단, 더 간단히)말한다. "비숍의
새운 좌표는 본 X 좌표와 본 Y좌표의 양방에 동일 정수(단, 부호는 필히 동일하지 않아도
좋다)를 더 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리고 그는 같은 종류의 수학적 또는 논리적인 말로 쓰여
진 어떤 '충고'를 프로그램에 짜 넣는다. 보통 우리말로 하면 "왕은 무방비 상태로 두지 말
라."라고 하는 힌트나 기사에 의한 '겹장'과 같은 유효한 책략이 그것이다. 이 상세한 것은
흥미를 끌게 하나 너무 개입하면 옆 길로 너무 빠져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컴
퓨터가 실제로 승부를 할 때 그것은 이미 독립하고 있고 명수의 도움은 필요없다. 프로그램
작성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특수한 지식의 리스트와 전략과 기술에 대한 힌트 간에 균
형이 맞게 짜 넣어서 컴퓨터의 상태를 가급적 좋게 하는 것이다.
유전자-생존 기계 행동 제어
유전자는 또한 직접 스스로 인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자기의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 그것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
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 후에는 생존 기계가 독립하기 시작하여 유전자는 그
속에서 그저 점잖게 앉아 있게 된다. 그것들은 왜 그렇게 수동적이 될까? 왜 부단히 고삐를
잡고 지시를 척척 하지 않을까? 시간적 지연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그 해답이다. 이 사실은
공상 과학 소설(SF)에서 끄집어낸 다른 예를 들면 잘 알 수 있다. 호일(Fred Hoyle)과 엘리
엣(John Elliot)의 저서 (안드로메다의 A)는 마음 설레는 책이다. 그리고 우수한 공상 과학
소설이 다 그렇듯이 그 배경에는 흥미 깊은 과학적인 문제점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 묘하
게도 이 책은 이들 기초가 되는 문제의 가장 중요한 점에 대해 뚜렷한 서술이 부족한 것처
럼 보인다. 그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내가 여기서 그것을 똑똑히 설명했다고 하더
라도 저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200광년이나 멀리 있는 안드로메다좌에 어떤 문명 세계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문화
를 먼 외계에까지 전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직접 여행 따위
는 논외이다. 광속은 우주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속도의 이론적인 상
한선이다. 거기에다 기계 공학적 문제를 생각하면 사실상의 한계는 광속보다 훨씬 더 낮다.
또한 외계 전체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
무선 전파는 우주의 다른 장소와 교신하는 좋은 수단이다. 모든 방향으로 신호를 발송하는
힘이 있으면 아주 많은 세계(그 수는 신호가 가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한다)에 도
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선 전파가 광속으로 가더라도 그 신호가 안드로메다로부터 지구
까지 오는 데는 200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거리로 말미암아 결코 통화가 성립되
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로부터 송출된 메시지가 각기 12대를 지난 사람들에 의해 전달된
다는 사실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와 같은 거리에서 서로 말을 교환한다는 시도는 분명히 헛
된 일이다.
이 문제는 곧 우리에게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선 전파가 지구와 화성 사이를 오가는
데는 약 4 분이 걸린다. 우주 비행사는 짧은 문장으로 말을 교환하는 습관을 버리고 통화라
기보다 편지와도 같은 긴 혼잣말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페
인(Roger payne)이 지적한 대로 바다는 어떤 독특한 음향 특성을 갖추고 있다. 일정한 깊이
에서 헤엄치고 있는 혹고래들의 엄청나게 큰 소리의 노래는 이론상 세계의 모든 곳에서 들
려야 할 것이다. 그것들이 실제로 매우 먼 곳에 있는 친구와 교신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그렇다면 그것들은 아마도 화성에 있는 우주 비행사와 같은 곤란에 직면하
고 있음에 틀림없다. 수중의 음속으로 하면 그 노래가 대서양을 횡단하여 회답이 오기까지
는 약 2시간이 걸린다. 나는 고래들이 서로 말을 교환하지 않고 8분간이나 계속 독백을 하
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들은 그 후 노래의 처음으로 돌아와 또다시 그 노
래 전부를 되풀이하여, 매번 약 8분씩 완전한 사이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이야기 속의 안드로메다 사람도 같은 일을 했다. 회답을 기다려 봤자 별다른 수가 없으므
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모아 멀리멀리 이어지는 방대하고 끊기지 않은 메시지를 담아
수개월을 한 사이클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우주로 계속해서 발사했다. 그러나 그들의 메
시지는 고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거대한 컴퓨터의 건설과 프로그램 작성에 관
한 암호화된 지령이었다. 몰론 그 암호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숙련된 암호
해독자의 손에 걸리면 거의 어떤 암호라도 해독되고 마는 것이다. 특히 암호 작성자가 일부
러 간단히 풀 수 있도록 만든 경우는 그렇다. 조드렐 뱅크(Jodrell Bank) 전파 망원경에 걸
린 이 메시지는 실제로 해독되어 컴퓨터가 조립되고 프로그램이 작동됐다. 결과는 인간의
파멸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안드로메다 사람의 의도는 당연히 이타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
이다. 이 컴퓨터는 세계를 장악하여 독재 정치를 수행하다가 결국 영웅의 도끼에 의해 파괴
된다.
우리의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안드로메다 사람이 지구상에서 생긴 일을 조작하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라는 문제이다. 그들은 컴퓨터가 척척 해내는 것
을 직접 제어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정
보가 그들에게 미치려면 200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주인에게서 일반적인 방침의
지시를 받는 것까지도 불가능했다. 넘을 수 없는 200년이란 벽 때문에 그 지령은 모두 미리
짜여져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그것은 장기를 두는 컴퓨터의 경우와 똑같이 프로그램되어
있었을 것이나 국부적인 정보의 흡수에 관한 능력과 융통성은 훨씬 컸을 것이다. 이것은 그
프로그램이 지구상만 아니고 진보된 기술을 가졌다면 어떤 세계에서도, 즉 안드로메다 사람
이 상세한 상태를 알고 있지도 않은 어떤 세계에서도 통용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예언한다
안드로메다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나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컴퓨터
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의 유전자도 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유전자는 암호화
된 지령을 보낸 안드로메다 사람에 상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령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조작 인형을 실로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유전자가 우리를 직접 조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
찬가지로 시간 지연 때문이다.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을 제어하는 데 작용한다. 이것은 세계
를 조정하는 강력한 방법인데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배(embryo)를 만드는 데 는 몇 개월
동안 인내 있게 단백질 합성의 실을 조작해야만 한다. 반면에 행동의 특징은 빠르다는 것이
다. 그것은 수개월이라는 시간 단위가 아닌 몇 초 또는 몇 분의 1초라는 시간 단위로 작용
한다. 이 세상에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부엉이가 머리 위를 휙 지나가고 키 큰 풀숲이 부시
럭거리며 포획물이 있는 곳을 알려서 1/1000초 단위로 신경계가 팔딱 흥분하여 근육이 떨리
고 누군가의 생명이 구해지기도 하고 또는 잃기도 한다. 유전자는 이와 같은 반응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안드로메다 사람처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컴
퓨터를 조립하여 '예측'할 수 있는 한 불의의 사건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사전에
프로그램하여 미리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 두는 것뿐이다. 그러나 장기 게임이 그렇듯이 생
물은 너무도 많은 경우의 사건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있어 도저히 그 모두를 예측할 수는
없다. 장기의 프로그램 작성자의 경우처럼 유전자는 스스로의 생존 기계에 생존술의 각론이
아니라 살기 위한 일반 전략이나 일반적 비결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연(J.Z. Young)이 지적하였듯이 유전자는 예언과 비슷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
존 기계의 배가 만들어질 때, 그 배에게 닥칠 생명 위험이나 문제는 미래의 일이다. 어떠한
맹수가 어떤 숲속에 숨어 있는가, 어떤 발빠른 포획물이 눈앞에 튀어나와 지그재그로 도망
치거나 하는 것은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언자도, 어떤 유전자도 말할 수 없다. 그
러나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다. 북극곰의 유전자는 곧 생겨날 생존 기계의 미래가 춥다
는 것을 틀림없이 예측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생각하고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 전
혀 생각조차도 못한다. 그것들은 그저 묵묵히 두터운 모피를 만든다. 이것은 그것들이 이전
의 몸으로 항상 해 온 것이고 그것들이 또 유전자 풀 속에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
것들은 또 지면에 눈이 올 것을 예언하고 그 예언은 모피를 백색으로 위장한다. 북극의 기
후가 급변하여 아기곰이 열대의 사막에서 태어나든디 하면 그 예언은 빗나가 그들은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아기곰은 죽고 그 속의 유전자도 망하고 말 것이다.
프로그래머 유전자
복잡한 세계를 예언하는 것은 불확실한 일을 동반하는 것이다. 생존기계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도박이다. 그리고 평균하여 잘 되는 결정을 내리도록 뇌를 미리 프로그램해 놓은 것이
유전자의 일이다. 진화의 카지노에서 쓰이는 통화는 생존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유전자
의 생존인데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개체의 생존을 그 타당한 비슷한 일로 보아도 좋다. 만
약 물을 마시러 물가로 내려 간다면 물가에 접근하는 포획물을 숨어서 기다리는 포식자에게
먹힐 위험이 많다. 물가로 가지 않는다면 결국은 목이 마라 죽을 것이다. 어느쪽을 택하든지
위험은 있으며 자기의 유전자가 살아 남는 기회를 긴 안목으로 보아 최대로 하도록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아마도 최선의 수단은 목마름을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다가 정 못 참을 지
경일 때 내려가서 오랫동안 견딜 수 있도록 물을 잔뜩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가에
가는 횟수를 줄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물을 마실 때에 오랫동안 머
리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신하는 가장 좋은 요령은 조금씩 마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가 옆을 뛰어가는 도중에 황급히 조금씩 마신다. 작전 요령으로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지
는 여러 가지의 복잡한 사정에 따른다. 가령 포식자의 수렵 습성들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각
각의 포식자의 입장에서 최대의 효과를 올리도록 진화하고 있다. 안정성의 성공 여부에 관
해서는 무엇인가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는 하나, 물론 동물이 의식적으로 계산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유전자가 가급적 개체로 하여금 도박을 할 수 있도록 뇌를 만들어 준 그 개체
는 당연히 보다 잘 살아 남고, 따라서 그 같은 유전자를 늘려갈 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유전자는 도박꾼이다
도박의 비유를 좀더 써 보기로 하자. 도박꾼은 주로 거는 돈과 승산과 상금이라는 세 가
지 요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금이 크면 기꺼이 큰 돈을 걸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
는 도박꾼은 큰 돈을 모을지도 모른다. 또는 큰 손실을 볼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론 큰 돈을
거는 도박꾼은 적은 돈을 걸어서 적은 상금을 노리는 승부사와 비교하여 벌이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주식 시장에서 투기적인 투자가와 착실한 투자가의 경우에도
그렇다. 어떤 점에서 주식 시장의 예는 카지노의 예보다 더 많이 닮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카지노는 주인에게 유리하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돈을
많이 건 승부사는 조금 건 승부사보다 할당이 나쁘고 조금 건 사람도 전혀 안 건 사람보다
는 재미 볼 확률이 나쁘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것을 무시
하면 건 돈이 큰 도박이건 돈이 적은 도박이건 둘 다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된다. 동물에
도 큰 판돈이 적은 도박이건 둘 다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된다. 동물에도 큰 판돈을 거는
도박꾼이나 작은 판돈을 거는 도박꾼이 있을까? 제 9장에서 보게 되듯이 수놈은 큰 돈을 건
모험적인 큰 도박꾼이고, 암놈은 착실한 투자가로 봐 줄 수가 있다. 여러 수놈이 암놈을 놓
고 싸우는 일부 다처형의 종류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박물학자는 판돈도
크고 위험도 큰 승부사로 볼 수 있는 종과 더 작은 승부를 거는 종이 생각날 것이다. 그렇
다면 여기서 유전자가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가 하는 보다 일반적인 테마로 이야기를 돌
려 보자.
시행 착오
다소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예측해야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학습 능력을 짜 넣는 것이다. 이 경우 프로그램은 생존 기계에게 다음
과 같은 지령을 행할 것이다. "여기에 보수가 되는 사물의 리스트가 있다. 즉, 달콤한 것, 오
르가슴, 따스한 기후, 방실거리는 아이, 그리고 싫은 사물의 리스트가 있다. 즉, 여러 가지의
고통, 토할 기분, 공복, 울고 있는 아이이다. 만약 무엇인가를 하고 그 후에 싫은 것이 생기
면 또다시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이점은 최초의 프로그램에 짜 넣어야만 될 자세한 규칙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과 자세히 예측 못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어떤 예측들은 여전히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유전자는 사탕의 섭취나 교미가 유
전자의 생존에 적합하다는 의미로 입속의 단맛이나 오르가슴은 '좋은 것'이어야 된다라고 예
측하고 있다. 이 예를 따르면 사카린과 수음의 가능성은 예측되지 않으며, 사탕이 부자연스
럽게 과다한 오늘날의 환경하에서 사탕의 과다도 예측되지 않고 있다.
장기를 두는 컴퓨터의 프로그램 속에도 학습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인간이나 다른 컴퓨터를 상대로 승부하는 데 따라 실제로 장기가 숙달된다. 그
것은 규칙과 전술의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는데 결정의 수순에는 다소 거칠은 경향도 짜 넣
어져 있다. 이와 같은 컴퓨터는 과거의 결정을 기록해 가며 승부에 이길 때마다 승리로 이
어지는 전술에 더 많은 비중이 놓여지게 되어 다음에 그 전술을 또다시 선택할 확률이 조금
놓아지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의 하나는 시물레이션(simulation:모의 실
험)이다. 한 장군이 어떤 작전 계획이 좋은가 하는 여부를 알고 싶을 때 그것을 예언하기는
어렵다. 날씨도, 자기 부대의 사기에도, 적의 작전에도 미지의 요소가 있다. 그것이 좋은 계
획인지 어떤지를 아는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시험해 보는 것인데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한 젊은이가 얼마가 있든 한계가 있고 가능한 작전 계획이 매우 많은 것만 보아도 여러 모
양의 계획을 닥치는 대로 모두 시험해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목숨을 걸고 착실히 행
하는 것보다 모의적으로 여러 가지의 작전 계획을 시도해 보는 편이 좋다. 이것은 공포탄을
써서 '북'과 '남'이 싸우는 대훈련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과 자재면에서 비경제적이
다. 덜 허비하려면 큰 지도상에서 인형 군대와 장난감 탱크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면 좋다.
컴퓨터와 시뮬레이션
최근에는 군사 전략뿐만 아니라 경제학, 생태학, 사회학, 기타 미래의 예측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가 대부분의 시뮬레이션을 맡아 보고 있다. 그 기술은 다음과 같이 작
용하고 있다. 세계의 한 측면을 컴퓨터로 꾸민다고 해도 이것은 컴퓨터의 뒷뚜껑을 열면 속
에 시뮬레이크된 것과 같은 형의 작은 모형이 보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를 두는 컴
퓨터의 기억 장치 속에 기사나 졸이 놓인 장기판으로 보이는 '상상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장기판과 그 편재 위치는 전자적으로 기호화된 수치표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는 세계의 일부를 2차원으로 압축한 축소 모형이다. 컴퓨터가 필요로 하는 지도는 아마
도 거리와 다른 지점을 각각 위도와 경도라는 두 가지 수치로 표시한 도표임에 틀림없다.
어떻든 간에 컴퓨터가 머리 속으로 세계의 모형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
다. 그것을 조작하고 처리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실험하는 형태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리고
오퍼레이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보고를 해 온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뮬레이션 기술 중에
모델 전쟁은 이기는 수도 있고 지는 수도 있으며, 시뮬레이트 된 항공기는 날 수도 있고 추
락할 수도 있다. 경제정책은 번영으로 이끌기도 하고 파멸에 귀착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
도 컴퓨터는 실생활에서 걸리는 시간의 몇 분의 일로도 전과정에 걸리는 일을 한다. 물론
훌륭한 세계 모형이 있으면 좋지 못한 모형도 있고, 좋은 모형조차도 그저 유사한 것에 불
과하다. 시뮬레이션의 결과일지라도 실제로 생기는 것을 반드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
은 아니다. 그래도 엉터리 시행 착오보다는 훨씬 낫다. 시뮬레이션은 대리 시행 착오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됐지만 이것들은 오래 전에 쥐 심리학자에 의해 사용된 말이다.
시뮬레이션이 그렇게 좋은 방안이었다면 생존 기계는 벌써 옛날에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
다. 무엇보다도 생존 기계는 인간이 쓰고 있는 기타 여러 가지의 공학 기술을 우리가 등장
하기 훨씬 이전에 발명해 낸 초점 렌즈와 반사 망원경, 음파의 주파수 분석 장치, 항공 서보
조정장치, 수중 음파 탐지기, 인력 정보의 완충 기억 장치, 그 밖의 긴 이름이 붙은 무수한
기술(이들의 상세한 것은 중요치 않음)이 그것이다.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아마
도 당신 자신이 미래의 미지수를 견적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요구당했을 때 당신은 반드시
시뮬레이션이라는 형태를 취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길을 각각 취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상상한다. 머리에 그리는 것은 세계의 모든 모형이 아닌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한정된 일련의 모형이다. 당신은 그것을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기도 하고
그것들의 형태로써 추상 개념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당신의 뇌 속에 있는 장소가
상상하고 있는 사실의 실험 공간 모형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컴퓨터의 경우와 같
이 뇌가 어떻게 세계의 모형을 표현하느냐는 세부보다는 뇌가 그 모형을 사용하여 가능한
사건을 예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래의 시뮬레이션을 행하는 생존 기계는 명
백한 시행착오에 근거하지 않고는 학습이 안 되는 생존 기계보다 일보 진보되어 있다. 명백
한 시행의 난점은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명백한 착오의 난점은 생명이 위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뮬레이션은 보다 안전하면서도 신속하다.
시뮬레이션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인 의식의 발생으로 장점에 이른다. 왜 그와 같은 것이
생기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는 현대 생물하기 당면한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이다.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을 할 때에 의식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으나, 그것들이 장래에 그렇게 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해야 한다. 다분히 의식이 생기는 것은 뇌에 의해 세계의 시뮬레이
션이 완전하게 되어 그 자체의 모형을 포함해야만 될 정도로 되었을 때일 것이다. 분명히
생존 기계의 사지와 몸은 그것이 시뮬레이트 되어 있는 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
에 틀림없다. 아마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뮬레이션 그 자체가 시뮬레이트 되어야 할 세계의
일부로 생각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자기를 알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되는데, 나는 이
로 인해 의식의 진화가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의 하나는 무한 복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형의 모형이 있다면 왜 모형의 모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다
이 책의 논지로 말한다면, 의식에 의하여 어떤 철학적 문제가 생기든 의식이란 실행상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궁극적인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된다고 하는 진화 경향의 극
치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뇌는 생존 기계의 일을 매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
고 그것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도 손에 넣고 있다.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후술하
는 바대로 인가는 이런 점에서 대단히 특수한 경우인 것이다.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나는 이타적이든 이기적
이든 간에 동물의 행동이 그저 간접적이라는 것만으로도 매우 강력한 의미에서의 유전자의
제어하에 있다고 하는 견해를 확립하려고 하고 있다. 생존 기계와 신경계를 조립하는 방법
을 지령하는 것에 따라 유전자는 행동에 기본적인 힘을 내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 무엇을
할까를 순간순간 결정해 가는 것은 신경계이다. 유전자는 방침 결정자이고 뇌는 실시자이다.
그러나 뇌는 다시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차츰 실제의 방침 결정까지도 맡게 되어, 이때에
학습이나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끔 됐다. 어떤 종도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되어 있
지 않으나 이 경향이 계속적으로 진행되면 논리적으로는 결국 유전자가 생존 기계에 단 하
나의 종합적인 방침을 지령하게끔 될 것이다. 즉, 우리를 살려 두는 데 가장 좋다고 생각되
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될 것이다.
컴퓨터의 비유와 인간의 의지 결정과의 비유는 어느 것이나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
리는 여기서 현실 문제로 돌아와 진화는 실제로 유전자 풀 속의 유전자 생존에 차이가 있다
는 것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된다. 따라서 행동 패턴-이타적인
것이든 이기적인 것이든- 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가 행동을 '위한'또
다른 경제적 유전자, 즉 대립 유전자보다도 유전자란 신경계의 발달에 영향을 주고 신경계
를 이타적으로 행동하기 쉽도록 하는 유전자이다. 그러면 이타적 행동의 유전에 대한 실험
적 증거는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없다. 그러나 놀랄 것은 없다. 왜냐하면 행동에 관해서도 유
전의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불행히도 완전히 이타적인 것이
라고 할 수는 없으나 매우 복잡하여 흥미로운 행동 패턴의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이타적 행동이 어떻게 유전할 수 있는가를 가리키는 모형으로서 필요하게 될
것이다.
꿀벌의 유충버리기
꿀벌은 부저병(foul brood)이라는 세균성 전염병에 걸린다. 이것은 봉방 속의 유충을 해치
는 병이다. 양봉가가 키우고 있는 꿀벌에서는 어떤 계통이 다른 계통보다 이 병에 걸리기
쉽고 이러한 계통간의 차이는 적어도 몇 개의 예로서 행동의 차이에 의한다는 것을 알고 있
다. 말하자면 위생적이 계통은 병에 걸린 유충을 발견하고 봉방에서 끄집어 내어 벌집 밖으
로 버리고 병을 빨리 근절해 버린다. 한편 감염되기 쉬운 계통은 이 '유충버리기'를 안하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 쉽다. 이 위생법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행동이다. 일벌은 병에 걸린
각각의 유충 봉방을 발견해 그 봉방의 뚜껑을 떼고 유충을 벌집의 출입구로 끄집어내어 쓰
레기장에 내던져야 한다.
꿀벌을 이용하여 유전 실험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귀찮은 일이다. 일벌 자
신은 번식하지 않으므로 한 계통의 여왕벌과 다른 계통의 수벌을 섞어서 그것에서 생긴 일
벌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한 사람은 로센부러(W.C. Rothenbuhler)였다. 그는
잡종 제 1세대의 꿀벌이 모두 위생적이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즉, 위생적인 어미의 행동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에 알았는데 위생적 형질의 유전자는 인간의 푸른 눈의
유전자처럼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성이었던 것이다. 로센불러가 잡종 제 1세대
와 위생적 형질의 계통과를 '역교배'해 본 결과(물론 여왕벌과 수벌을 써서) 아주 좋은 결과
를 얻었다. 태어난 꿀벌은 3개의 그룹은 전혀 위생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세 번째 그룹은
어중간한 생동을 했다. 맨 나중 그룹은 병에 걸린 유충이 있는 봉방의 뚜껑을 뜯는 데는 성
공했는데도 유충을 버리는 데 관한 두 종류의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위생적
계통은 그 양쪽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감염되기 쉬운 계통은 이 두 개의 유전자의 라이
벌인 대립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어중간한 일밖에 못하는 잡종은 아마도 뚜껑을 떼는 유전
자를 (2배수로) 가지고 있으나 버리는 쪽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로센불러는 완
전히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꿀벌의 그룹 중에 유충을 내버리기 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뚜껑을 떼는 유전자를 잃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그룹이 숨겨져 있지나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뚜껑을 열어 주고 이 추측의 정확함을 잘 증명했다. 비
위생적으로 보이는 벌의 반수는 이때에 완전히 정상처럼 '유충버리기' 행동을 보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앞 장에서 나온 수많은 중요한 문제점을 예증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가령
유전자로부터 행동에 이르는 배발생상의 원인의 화학적인 사슬이 어떠한 것인가를 전혀 모
르면서조차도 '무슨 무슨 행동을 위한 유전자'라는 논법을 써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의 사슬에는 학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예컨대 뚜껑을 떼
기 위한 유전자는 벌이 병에 감염된 밀랍의 맛을 좋아하게 하므로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즉, 그들로서는 병에 걸린 유충을 덮고 있는 밀랍의 뚜껑을 먹는 것이 보수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유전자의 일하는 법이 이렇다 할지라
도 다른 조건이 같을 때에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벌은 뚜껑을 뜯고, 갖지 않은 벌은 뚜
껑을 떼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뚜껑을 떼기 위한' 유전자라고 해도 좋다.
둘째로 그것은 유전자들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생존 기계의 행동에 '협력해서' 작용을 미
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유충을 버리는 유전자는 뚜껑을 떼는 유전자가 없다면
필요 없게 되고, 그 역도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전 실험에서 분명히 아는 바대로 이 두
개의 유전자는 세대를 통한 그들의 여행에서 원칙상 전혀 따로따로 행동한다. 그 작동을 보
는 한 그것들은 단일 협동 단위가 되나 복제에 임해서는 두 개가 자유롭고 독립된 인자가
되는 것이다.
논의를 진행시키 위해 모든 종류의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유전자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물에 빠진 친구를 건지기 위한' 유전자에
대해 기술하고, 당신이 그와 같은 개념을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위생적인 꿀벌의 이야
기를 상기하라. 복잡한 근수축이나 감각 통합, 더 나아가서는 의식적인 결단에 이르기까지,
친구를 구조하게 만드는 유일한 원인이 유전자는 아니라는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학습과
경험 또는 환경의 영향이 행동의 발달에 관여하는가 여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않고 있다.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다른 조건이 같고, 또 다른 다수의 중요한 유전자나
환경 요인이 존재하고 있다면 한 단일 유전자가 대립 유전자에 비해서 물에 빠진 친구를 더
한층 잘 도와줄 법한 몸을 만들 수가 있음직도 하다는 것이다. 두 개의 유전자간의 차이가
실은 어떤 단순한 양적 변수의 근소한 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때도 있을 것이다. 배발생
의 상세한 과정은 흥미를 끄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화적인 고찰에는 관계가 없다. 로렌츠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유전자는 종합 기본 프로그램이다
유전자는 종합 기본 프로그램이고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짠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가 생애에서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
에 의해 심판받는다. 그 심판은 생존하느냐 소멸하느냐 하는 냉혹한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
이 일견 이타적 행동처럼 보이는 것에 의해 재촉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후에 또 다루
기로 하고, 여하튼 생존 기계와 생존 기계를 위해 결단을 하는 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체의 생존과 번식이다. 이 '군체' 내의 모든 유전자는 이 두 가지에 우선권을 인정하기로
합의하고 있다. 그래서 동물은 먹이를 찾아 잡기 위하여, 자기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병이나 사고를 피하기 위하여, 자기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병이나 사고를 피하기 위하
여, 매우 나쁜 기후 조건에서 몸을 지키기 위하여, 이성을 보고 교미를 유도하기 위하여, 그
리고 자기들이 향수하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어쨌든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구태여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원한다면 주위의 야생 동물을 잘 관찰해 보라. 그러나
특별한 종류의 행동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후에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이야기를
할 때에 재차 이 문제를 언급해야만 할 것 같아서이다. 그것은 대체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생존 기계의 커뮤니케니션
한 생존 기계가 다른 생존 기계의 행동 또는 신경계의 상태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생존 기
계는 그의 상대와 커뮤니테이션했다고 할 수가 있다. 이것은 끝없이 주장하고 싶을 정도의
정의는 아니지만 당면한 목적에는 충분하다. 영향이라 함은 직접적인 인과적 영향을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예는 무수히 많다. 새와 개구리,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개가 꼬리치는 동작
이나 털을 세우는 행동, 침팬지의 이빨을 내보이는 행동, 인간의 몸짓이나 말씨 등 생존 기
계의 많은 동작은 다름 생존 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자기의 유전
자의 번영을 꾀한다. 동물들은 이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
는다. 옛부터 새의 노랫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이미 다루어 보았듯이 흑고래의
매우 정교하고 신비스런 노래는 그 음역이 무척이나 넓다. 즉, 그 주파수 범위는 가청 범위
이하의 웅웅거리는 소리부터 초음파의 쌩쌩거리는 소리까지 인간의 청력 범위를 훨씬 넘고
있다. 땅강아지는 착실히 옛 축음기의 나팔(hom)이나 메가폰과 같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아래에서 울어 자기의 울음소리를 큰 소리로 증폭한다. 꿀벌은 먹이의 방향과 거리에 대해
다른 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 어둠 속에서 춤을 춘다. 그 커뮤니케이션의 교묘
함은 인간의 언어에 필적한다.
동물 행동학자의 전통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신호는 송신자와 수신자 쌍방이
서로 이익을 받도록 진화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병아리는 길을 잃든지 춥든지 하면 큰 소
리로 삐약거려 어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 음성은 보통 어미를 불러대는 직접 효과를
가지고 있고, 어미는 그 병아리를 찾아 모은다. 이 행동은 자연 선택이 길을 잃고 울던 병아
리와 그 울음소리에 적절히 반응하는 어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의미로 상호 이익을 위
하여 진화했다고 할 것이다.
바란다면(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이 울음소리를 어떤 의미를 가진 것, 즉 정보(이
경에는 '길을 잃었다'라고 하는 정보)를 번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제 1장에서 말한
새의 경계음은 '메가 있다'라는 정보를 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정보를 받아서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은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이 정보는 진실한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틀
린 정보를 전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동물들의 거짓말
동물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오해를 초래하기 쉬우므로 미리 고려해 두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가드너 부처(Beatrice and Alen Gardner)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들의 유명한 '말
하는' 침팬지 와슈(Washoe; 이 침팬지는 아메리카식 수화법을 쓴다. 그 대단한 솜씨는 언어
학자간에도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상기한다. 청중 중에는 몇 사람
의 철학자가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그들은 와슈가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지의 문제로 심한
토론을 했다. 나는 가드너 부처가 토론할 더욱 흥미로운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이 책에서는 철학자들보다 훨씬 솔직하게 '속인다'든가 '거
짓말을 한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속이려고 하는 의식적인 의도에 관힘을 표시했다.
나는 단순히 속이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효과를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컨
대 어떤 새가 매가 없을 때에 '매다'하는 신호를 써서 그 때문에 동료를 겁주어 쫓아버리고
먹이를 혼자 독점했다고 하면 이 새는 거짓말을 했다고 하겠다. 이 새가 고의로 속이려고
의도하고 작정한 것은 아니다. 의미하고 있는 것은 거짓말쟁이 새가 다른 새의 희생에 의해
먹이를 획득했다는 것과 다른 새가 도망친 것은 정말로 매가 있을 경우에 적합한 방법으로
거짓말쟁이 새의 소리에 반응했기 때문이라는 것뿐이다.
포식자도 의태한다
먹어도 독이 없는 많은 곤충은 앞 장에서 말한 나비처럼 다른 맛없는 곤충이나 핌을 쏘는
곤충의 모습을 흉내냄으로서 몸을 지키고 있다. 우리들 자신도 잘못하여 노란색과 흑색의
얼룩이 있는 장수말벌을 벌로 오인하는 수가 많다. 꿀벌로 의태한 몇 마리의 장수말벌은 그
속임수가 더한층 완벽하다. 포식자도 또한 속인다. 아귀(angler fish)는 해저에 파묻힌 채로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유일하게 보이는 부분은 머리의 끝에서 뻗어 있는 디가란 '낚싯대'
끝에 있는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몸의 부분이다. 작은 물고기가 접근하면 아귀는 그 작은
물고기 앞에서 지렁이 닮은 미끼처럼 움직여서 숨어 있는 자기의 입 가까이로 유인한다. 그
러다가 아귀는 급속히 입을 벌려서 작은 물고기를 삼켜 버린다. 아귀는 꿈틀거리는 지렁이
와 같은 것에 접근한다는 작은 물고기의 성질을 이용하여 속이는 것이다. 아귀는 '지렁이가
있다'라고 하여 그 거짓말을 '믿는' 작은 물고기는 모두 잡아먹는다.
어떤 생존 기계는 다른 생존 기계의 성적 용망을 이용한다. 벌난초는 벌을 자기의 꽃과
교미시킨다. 그 꽃은 암벌과 꼭 닮았다. 벌난초가 벌을 속여서 필요한 것은 화분을 옮겨 주
게 된다. 개똥벌레는 빛을 깜빡거려 교미 상대를 끈다. 각각의 종은 특유한 깜빡거림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그에 의해 종간의 혼란과 그 결과 생기는 유해한 난교를 방지하고 있다. 특
정 등대의 깜빡거림 패턴을 찾는 선원처럼 개똥벌레도 같은 종임을 신호하는 깜빡거림 패턴
을 찾는다. Photuris 속의 암놈은 Photinus 속의 암놈의 깜빡거림 신호를 흉내낼 경우
Photinus 속의 수놈을 유인할 수 있음을 '발견' 했다. Photuris의 암놈은 이것을 실행하고 있
다,. 그리고 Photinus의 수놈이 이 속임수에 속아서 접근하면, 그는 즉석에서 Photuris 암놈
에게 먹혀 버린다. 사이렌(Siren)과 로렐라이(Lorelei)의 이야기야 얼핏 떠오르는데, 콘 월
(Cornwall) 지방의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초롱불을 가지고 배를 벼랑으로 유인하여 난파선에
서 나온 화물을 약탈했다는 옛 해적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진화할 때에는 어떤 것이 그 시스템을 자기만의 목적에 이용하려
고 하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종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진화를 배워 왔기 때문
에 자칫하면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은 포식자와 먹이 그리고 기생자 등과 같이 다른 종에 속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개체의 유전자의 이해가 다양화되어가면, 항상 거
짓이나 속임이나 커뮤니테이션의 이기적 이용이 생길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동
일 종의 개체간에서도 말할 수 있다. 후술하는 바대로 아이가 어버이를 속이거나 남편이 처
를 속이고 형제끼리 거짓말을 한다든가 하는 것조차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신호는 본래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진화된 것으로 그 후에
불순한 친구들에 의해 악용되게끔 되었다고 믿는 것도 역시 너무 단순하다 동물의 모든 커
뮤니케니션에는 처음부터 바로 속인다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동물
의 모든 상호 작용에는 적어도 무엇인가의 이해 충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
서는 진화의 관점에서 본 이해 충돌에 관한 유력한 사고 방식을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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