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는 이기적 기계이다
이 장에서는 오해가 많은 공격에 대한 화제에 대부분을 맞추기로 하자. 이어서 개체를 자
기의 유전자 전체에 적합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무분별하게 행하도록 프로그램된 이기적
기계라고 보기로 하자. 이것은 편의상의 말이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또다시 개개의 유전자
의 말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한 생존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자기의 아이 또는 가까운 인연의 개체가 아닌) 다른 생존
기계는 바위나 냇물이나 한 조각의 먹이 같은 환경의 일부이다. 그것은 방해물일 수도 있고
이용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자칫 반격해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생존 기계도 또한 미래를 위해 자기의 불사신의 유전자를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에 의해 선택되는 것은 환경을 가장 효과적
으로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이다. 이것에는 다른 종과 같은 종을
불문하고 다른 생존 기계를 가장 잘 이용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두더지와 지빠귀
어떤 경우에 생존 기계는 서로의 생활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예컨
대 두더지와 지빠귀는 먹거나 먹히거나 하지도 않고 교미를 할 필요도 없고 생활 장소를 가
지고 싸울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아주 독립된 존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한 예로 지렁이를 가지고-다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두더지와 지빠귀가 지렁이를 가지고 줄다리기라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빠귀
는 일생 동안 두더지를 보지 못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더지의 개체군을 근
절 또는 죽였다고 하면 지빠귀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 상세한 것이 어떻고 어떠한 우
여곡절을 겪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까지 마구잡이로 말하는 것은 나로서는 할
수 없다. 종이 다른 생존 기계끼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포식
자이기도 하고, 먹이가 되기도 하고, 기생자이기도 하고, 숙주이기도 하고, 어떤 부족한 자원
을 가지고 싸우는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또 벌이 화분 운반자로서 꽃에게 이용당할 때와
같이 특수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는 수도 있다.
동종끼리의 경쟁
같은 종의 생존 기계끼리는 더욱 직접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 여기
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자기 종에 속하는 개체군의 반수는 짝짓기 상대가
될 수 있는 개체이고, 또한 그것은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이용할 어미가 되는 개체이고, 또
한 그것은 자기의 아이들을 위해 이용할 어미가 되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같은 종의 구성원이 서로 잘 닮아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활 수단을 가지고 유전자를 지키
고 있는 기계이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둘러싼 직접적인 경쟁 상대라는 것이
다. 한 마리의 지빠귀에게는 두더지가 경쟁 상대라는 것이다. 한 리의 지빠귀에게는 두더지
가 경쟁 상대이기도 하나 다른 지빠귀만큼 중요한 경쟁 상대는 아니다. 두더지와 지빠귀는
지렁이를 가지고 다니나, 지빠귀끼리는 지렁이 및 그 밖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
그들이 동성이라면 교미 상대를 가지고도 다투게 될 것이다. 보통 수놈은 암놈을 가지고 싸
운다. 이것은 한 수놈이 경쟁 상대의 수놈에게 해로운 짓을 하면 자기의 유전자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신사적인 동물
그렇다면 생존 기계에게 논리적으로 바른 방침은 자기의 경쟁자를 죽여서 가능하면 먹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같은 종을 서로 잡아먹는 좋을 실제로 자연계에서 졸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의 소박한 해석에서 예측되는 정도로 자주 일어
나는 일은 아니다. 사실 로렌츠는 동물의 싸움, 즉 '공격'은 억제 가능한 신사적인 것임을 강
조하고 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동물의 싸움이 복싱이나 펜싱의 규칙처럼 규칙에 따
라 싸우는 형식적인 시합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은 글러브를 낀 주먹과 끝을 둥그렇게 만든
검으로 싸운다. 위협과 겁주기가 목숨을 건 결투를 대신한다. 승자는 항복의 몸짓을 인정하
고 때려 죽이거나 물어 죽이거나 하는, 우리의 소박한 생각에서 예견되기 쉬운 행동을 삼간
다.
인간만이 카인의 후예이다
동물의 공격은 억제가 가능한 형식적이라는 이 해석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특히 불쌍
한 호모 사피엔스만이 자기의 종을 죽이는 유일한 종이고 카인의 후예이며, 이 같은 멜로드
라마적인 죄를 품은 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자연주의자가 동물의 공격의
광포도를 강조하든가 억제를 강조하든가 하는 것은, 하나는 그 사람이 관찰하여 온 동물의
종류에 따라, 또 하나는 그 사람의 진화론상의 선입관에 따라 좌우된다. 로렌츠는 요컨대
'종의 이익'을 주장한다. 동물의 싸움을 글러브를 낀 주먹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표면적으
로 이것은 일종의 이타주의처럼 보인다.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은 이것을 설명한다는 어려운
일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물들이 모든 기회를 잡아서 자기 종의 경쟁자를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 물음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철저한 호전자에게는 이익(이득)과 동시에 손실도 있고, 더
욱이 그것이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B와 C는 모두 나의 경
쟁자이고, 내가 마침 B를 만났다고 하자. 이기적 개체인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당
연한 것으로 생각되나, 한편으로는 C도 또한 나의 경쟁자이고 동시에 C와 B도 서로 경쟁자
이기도 하다. 내가 B를 죽이면 친절하게도 C의 경쟁자 하나를 제거해 주는 것이 되지 않는
가. B를 살려 두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하면 그는 C와 다투거나 싸우거나 할 것이고 결국 나
에게는 간접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이 단순한 가정의 예에서 보여 주는 교훈은 그저 함
부로 경쟁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뚜렷한 이점이 없다는 것이다. 크고 복잡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눈 앞의 경쟁자를 없앤다고 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만이 오는 것은 아니다. 한 경
쟁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당사자보다 다른 경쟁자가 이득을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충 방제 관계자들로부터 배운 쓰라린 교훈이기도 하다. 농작물에 심한 피해를 입히는 해
충이 있어 좋은 근절법을 발견하여 기꺼이 이 방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그저 이 해충의
절멸에 의해 작물보다는 다른 해충이 득세하여 전보다 더욱 심한 상태로 될 뿐이다.
바다표범과 하렘
한편 어떤 특정한 경쟁자를 잘 계획하여 죽이거나 또는 적어도 싸운다는 것은 좋은 방법
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B가 암놈이 많이 있는 큰 하렘(harem; 한 마리의 수컷을 두러싼 여
러 암컷)을 가진 바다표범이고, 다른 바다표범인 나는 그를 죽임으로써 그의 하렘을 입수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할 것이다. 대개 상대를 선택하여 싸움을 걸어 봤자 손실
과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B가 반격해서 가치 있는 재산을 지키는 것은 그의 이익에 연관
된다. 만약 싸움이 벌어졌을 경우 내가 죽을 확률을 상대와 같다. 아니 아마도 내가 죽을 확
률이 더 놓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내가 싸움을 거는 원
인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가? 아마도 그는 전승으로 그것을
얻었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도전하여 다른 개체를 수없이 격퇴하여 그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뛰어난 전사임에 틀림없다. 비록 전승으로 하렘을 차지하더라도 나는 이 싸움에서 상
처 투성이가 되어 이익을 즐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싸움은 시간과 에너지를 탕진한
다. 이 시간과 에너지는 당장에는 축적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당분간 싸움보다는 먹는
것에 전념하고 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하면 장차에는 강대해질 것이다. 언제가는 하렘
을 가지고 그와 싸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서두르기보다는 조금 기다리는 것이 결국
승률이 높을 것 같다.
유전자의 손익 계산
이 독백의 예는 이론적으로 말하면 싸울 것인가 아닌가의 결단에 앞서 무의식적으로라도
복잡한 '손익 계산'이 이상적으로 앞서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확실히 싸워서 이득을
볼 때도 있지만 항상 싸울 때마다 그만큼의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싸우는
동안 그 싸움을 확대시키느냐 하는 전술적 결단에는 각각 손실과 이득이 있어 그것은 원칙
적으로는 분석 가능한 것이다. 이 사실은 오랫동안 행동학자들에게 막연히 인식되어 왔으나,
자신을 가지고 이 발상을 분명히 표현하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는 행동학자로 인정되지 않는
메이나드-스미스(J.Maynard Smith)의 힘이 필요했었다. 그는 프라이스(G.R. Price)와 파커
(G.A. Parker)와의 공동 연구로 게임 이론이라고 하는 수학의 한 분야를 이용했다. 그들의
훌륭한 이론은 수학 기호를 쓰지 않고도 말로 표현할 수가 있다. 단, 엄밀도에서 어느 정도
희생을 치러야만 된다.
메이나드-스미스가 제창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원래는 해밀턴(W.D. Hamilton)과 맥아서(R.H.
MacAthur)의 착상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는 행동 방침이다. 전략의
일례를 들어보자. "상대를 공격하라. 그가 도망치면 쫓아라. 응수해 오면 도망쳐라."이해를
바라는 것은 이 전략을 개체가 의식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는 동물을 근육의 제어에 관해 미리 프로그램된 컴퓨터를 갖는 로봇 생존 기계라고 생각해
온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 전략을 한 세트의 단순한 명령으로 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것에 관해 생각해 나가는 데는 편리한 방법이다. 확실히 모르는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동
물은 마치 이들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양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즉 ESS는 개체군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것을 채용하면 다른
대체 전략에 의해 변화시킬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그것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
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개체군의 대부분이 행하고 있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개체군의 나머지 부분은 각각 자기의 성공을 최대로 하려고 하는 개체
로 성립되어 있으므로 살아 남은 것은 어떤 이상 개체에 의해서도 개선될 수 없는 전략뿐이
다. 환경에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나면 짧기는 하나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 생기고 아
마도 개체군 내에 변동이 보이는 일까지도 있다. 그러나 일단 ESS에 도달하면 그것은 그대
로 남는다. 선택은 이 전략에서 이탈되는 것을 벌할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
이 개념을 공격에 맞추기 위해 메이나드-스미스의 제일 단순한 가정적인 예 하나를 고찰
하여 보자. 어떤 종의 개체군에는 매파형과 비둘기파형이라고 하는 두 종류의 전략밖에 없
는 것으로 하자(이 이름은 세간의 관례적 용어에 따랐을 뿐이고, 이 이름을 제공하고 있는
새의 습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실제로 비둘기는 어느 정도 공격적인 새이다.)우리의 가
정적 개체군의 개체는 모두 매파든 비둘기파든 어느 한편에 속하는 것으로 한다. 매파의 개
체는 가급적 항상 맹렬히 힘차게 싸우고 심하게 다쳤을 때가 아니면 굴복하지 않는다. 비둘
기파의 개체는 그저 무게 있고 규정대로 행하며 위협을 줄 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다. 매파의 개체와 비둘기파의 개체가 싸우면 비둘기파는 그냥 도망치므로 다치는 일이 없
다. 매파의 개체끼리 싸우면 그들은 한편이 중상을 입거나 죽을 때까지 싸운다. 비둘기파끼
리 부딪힐 때에는 어느 편이든 다치는 경우가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 자세를 취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실증이 나거나 그 이상 버틸 필요가 없다고 결심하면 중지하게 된다.
또 특정의 경쟁자가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를 미리 알 수 없는 것으로 가정해 놓자. 그는
경쟁자와 싸워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 뿐 그를 유도하는 특정의 개체와의 과거의 싸움
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싸우는 양자에게 '즉점'을 주기로 한다. 예컨대 승
자에게는 50점, 패자에게는 0점, 중상자에게는 -100점, 장기전에 의한 시간 낭비에는 -10점
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들 '득점'은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통화에 직접 환산되는 것으로 보아
도 좋다. 노은 득점을 얻은 개체, 즉 높은 평균 '득점'을 받고 있는 개체는 유전자 풀 속에
다수의 유전자를 남기는 개체이다. 이 실제의 수치는 제법 넒은 범위 내로 어떻게 취해도
분석에 지장이 없는 성질의 것인데 우리가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는 요긴하다.
중요한 것은 매파가 비둘기파와 싸울 때 상대를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언제나 매파가 이기는 것은 뻔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매파형
과 비둘기파형 중 어느 석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한쪽이
ESS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면 ESS인 쪽이 진화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두 개의 ESS가
있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있을 수 있다. 만약 개체군의 대세를 공격하는 전략이 종종 매파형
이든 비둘기파형이든 간에 어떤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선례를 따르는 것이었다면 이와 같
이 말할 수가 있다. 이때에 개체군은 두 개의 안정 상태의 어느 것이든 좋으니까 종종 먼저
도달한 쪽으로 고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말하듯이, 실은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두
개의 전략은 어느 것이나 그 자체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진화한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을 표시하려면 평균 득점을 계산하여야만
한다.
전원 비둘기파로 된 개체군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싸워도 다치지 않는다. 다툼은 아마도
긴 의식적인 시합, 더러는 노려보기만 하는 싸움이어서 어느쪽이든 기가 죽으면 결판이 난
다. 이때에 승자는 싸워서 자원을 차지했기 때문에 50점을 따나, 노려보기에 긴 시간이 걸렸
기 때문에 10점의 벌금도 내야 하므로 결국 40점이 되나. 패자도 역시 시간을 낭비했으므로
10점 깎인다. 평균하면 비둘기파의 개체는 모두 다툼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지는 것으로 생각
된다. 따라서 싸움당 그의 득점은 +40과 -10을 평균하여 +15점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비둘
기파의 개체군 중의 비둘기파 개체는 모두 매우 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이 개체군에 매파형의 돌연변이 개체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는 여기서 유일
의 매파이므로 그는 모든 싸움에서 +50점을 기록하게 되며, 이것은 그의 평균 득점이 된다.
그는 순득점이 15점밖에 없는 비둘기파에 비해 막대한 이익을 누린다. 그것과 매파의 유전
자는 그 개체군 내에 급속히 퍼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매파의 각 개체는 이미 부팆
핀 경쟁자가 모두 비둘기파라고 기대할 수는 없게 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매차의 유전자
가 순조롭게 퍼져서 개체군 전체가 매파로 됐을 때 이번에는 모든 싸움이 매파끼리의 싸움
이 되야만 할 것이다. 이제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매파끼리 부딪치면 한쪽이 다치기 때문에
-100점이 되는 반면, 승자는 50점을 딴다. 매파 개체군의 각 개체는 싸움의 반은 이기고 반
은 진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싸움당 평균 득점은 +50과 -100의 평균, 즉 -25점이다. 여기서
매파의 개체군 내에 비둘기파가 한 개체 있다고 하자. 확실히 그는 모든 싸움에서 패하는데,
그러나 한편 결코 부상하는 일이 없다. 매파 개체군 내의 평균 득점이 -25점인 데 비해서
그의 평균 득점은 매파 개체군 내에서 0이다. 따라서 비둘기파의 유전자는 그 개체군 내에
퍼지는 경향이 있다.
이 이야기의 말투로 보면 마치 개체군 내에 부단히 진동이 있는 양 생각될지도 모른다.
매파의 유전자는 압승하여 우세를 점한다. 그러면 대다수가 매파로 되는 결과로 인해 비둘
기파의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수를 늘려 간다. 하지만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금 매파
의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수를 늘려간다. 하지만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금 매파의 유
전자가 성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식으로 진행될 것 같으나 이와 같은 진동이 일어날 필요는
없다. 어디에나 매파와 비둘기파의 안정된 비율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임의의
득점 시스템으로 계산해 보면 안정된 비율은 비둘기파가 5/12, 매파가 7/12인 것을 알게 된
다. 이 안정된 비율에 달하면 매파의 평균 득점과 비둘기파의 평균 득점은 꼭 같아진다. 이
때문에 선택이 이쪽보다 다른 쪽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만약 개체군 내의 매파의 수
가 점점 늘기 시작하여 그 비가 7/12 이상으로 되면 비둘기파가 나머지 이익을 받기 시작하
여 그 비율이 원래대로 되고 안정 상태가 된다. 안정된 성비는 50대 50인 것과 같이 이 가
정적 예로는 매파 대 비둘기파의 비는 7대 5이다. 어떤 경우에도 안정점 부근에서 진동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히 큰 것이 될 수는 없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그룹 선택설에 약간 유사한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그룹 선택설에 닮은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이 설명이 개체군에도 안정된 평형 상태
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흐트러뜨리며 또다시 그 점까지 되돌아오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ESS는 그룹 선택보다는 훨씬 미묘한 개념이다. 그것은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성공하느냐 어떠냐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이 사실은 우리의
가설적 예의 임의 득점 시스템을 사용하면 잘 설면된다. 매파 7/12, 비둘기파 5/12로 된 안
정된 개페군 내의 한 개체의 평균 득점은 6과 1/4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개체가 매
파이든 비둘기파이든 같다. 그런데 이 6과 1/4이라는 것은 비둘기파 개체군 내의 비둘기파
개체의 평균 득점(15)보다 훨씬 낮다. 전원이 비둘기파로 되는 것을 동의만 한다면 어느 개
체도 유리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그룹 선택설에 의하면 전원이 비둘기파로 되는 것을 동의
한 집단은 어느 것이나 ESS 비에 머물러 있는 경쟁자 집단보다 성공할 것이다(실은 전원
비둘기파로 되려고 하는 합의된 집단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은 아니다. 매파 1/6
과 비둘기파 5/6로 되는 집단에서는 싸움당 평균 득점이 16과 2/3이다. 이것이 생각한 것
중에서 가장 잘 된 합의인데 당장의 목적에서 하면 무시된다. 전원 비둘기파로 각 개체가
15점의 평균 득점을 갖는 집단이 ESS 집단보다 모든 단일 개체에게 훨씬 좋다). 따라서 그
룹 선택설은 전원 비둘기파의 합의로 향해 진화할 것으로 예언함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매
파가 7/12의 비율로 포함되어 있는 무리는 그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러나 합의의 부수 조건의 난점은 장기간에 걸쳐 전원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합의마저 배신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확실히 어떤 개체도 ESS 집단에 있는 것보다 전원 비둘기파의 집단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안됐지만 합의를 한 비둘기파의 집단에 태어난 한 개체의 매파
는 너무도 팔자가 좋아서 아무도 매파의 진화를 막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합의된 집단
은 불신 행위에 의해 내부로부터 붕괴되어 가는 운명에 매여 있다. 여기에 이르면 ESS는
안정하다. 그것은 ESS가 그것에 가세하고 있는 개체 입장에서 특히 유리해서가 아니고 단
지 내부로부터의 불신 행위를 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인간
인간에게 있어 각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합의를 하거나 협정을 맺거나 하는 것은 가령
그것이 ESS라는 의미로 안정되어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이것이 되
는 이유는 개인이 전원 의식적으로 장래를 예견하고, 그 협정의 규약에 따르는 것이 자기의
장기적 이익에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협정마저도 그 협정을 깨면 단기간에 큰 이
득이 되기 때문에 그러게 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우세하게 될 위험을 갖고 있다. 이 사장
좋은 예는 아마도 가격 협정일 것이다. 가솔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고가로 정하면 가솔린
업자 전원은 장기간 이익을 차지한다. 장기간 높은 이익을 의식적으로 예상하고 결탁한 가
격 협정 집단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조만간에 자기만 가격을 인하하여 빨리 많
이 벌고 싶다는 유혹에 말려드는 업자가 생겨난다. 그러면 당장에 그의 인근 업자도 가격을
내리게 되며 순식간에 인하 파동이 전국으로 퍼진다. 그래서 가솔린 업자 이외의 우리에게
는 안된 일이지만 그들의 장래에 대한 의식적 배려가 재차 머리를 들고 새로운 가격 협정이
결성된다. 이와 같이 의식적으로 예견을 하는 재능을 갖춘 인간에게마저 장기적 이익에 기
초하는 협정 또는 합의는 내부로부터의 붕괴의 위험선에서 동요를 계속하고 있다. 하물며
다투고 있는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야생 동물에서는 집단의 이익이나 합의의 전략이
진화한다고는 거의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방식이 어디에
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가설적 예에서는, 어느 한 개체는 매파나 비둘기파 중의 어느 한쪽이 된다고 하는
단순한 가정을 했다. 그리고 결국 매파와 비둘기파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비율로 됐다. 이래
서 매파의 유전자와 비둘기파의 유전자의 안정된 비율이 유전자 풀 내에 확립되는 것이다.
유전학 용어로는 이 상태를 안정 다형(stable polymorphism)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학적으
로는 다형을 생각하지 않고도 다음과 같이 하여 똑같이 ESS가 달성될 수 있다. 어느 개체
라도 각각의 다툼에 있어서 매파처럼 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고 하면 전 개체가 같은
확률로, 즉 우리의 예대로 말하면 7/12의 비율로 매파처럼 행동하는 ESS가 달성된다. 실제
로 이것은 각 개체가 이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할 것인가 비둘기파처럼 행동할 것인가를(대충
이기는 하나 7대 5의 비율로 매파편에 많이) 결단하여 각각의 다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것은 이 결단이 매파쪽으로 기울었다고는 하나 어떤 다툼에도 경쟁자는 자기의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를 추정하는 수단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7회의 다툼에 계속 매파로 행동하고 다음 계속해서 5회의 다툼에 비둘기파
로 행동하는 등등의 방식은 안 된다. 만약 어떤 개체가 이처럼 단순한 순서를 택했다고 함
면 그의 경쟁자는 얼른 이 순서를 깨닫고 이용할 것이다. 단순한 순서의 전략을 취하는 상
대를 이용하는 방법은 그가 비둘기파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그에게 대해
매파로 행동하는 것이다.
전쟁 게임
물론 매파와 비둘기파의 이야기 너무도 단순하다. 이것은 자연계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나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모델'이다. 모델에는 이 모델처럼 극
히 단순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을 이해하기에 또는 어떤 아이디어를 얻기에 필요한
것이 있다. 단순한 모델은 보다 정교하게 할 수도 있고 점점 복잡해질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잘 되면 모델은 복잡해질수록 현실 세계에 닮아 온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모델을 발전시키
는 시초는 다시 몊 개의 전략을 추가하는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만이 가능성이 있는 유일
한 전략은 아니다. 메이나드-스미스와 프라이스가 도입한 보다 복잡한 전략은 '보복파
(Retaliator)'라고 불린다.
보복파형과 허풍파형
보복파는 모든 싸움에서 처음에는 비둘기파와 같이 행동한다. 즉, 매파처럼 철저하게 심한
공격을 하지 않고 규정대로의 위협 시합을 한다. 그러나 상대가 공격을 걸어 올 때면 보복
한다. 바꿔 말하면 보복하는 매파에게 공격당했을 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하고 비둘기파를 만
났을 때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보복파는 조건 전략자이다. 이러한 행동은 상대의 행동
에 따라 정해진다.
또 하나의 조건 전략자는 '허풍파'이다. 허풍파는 누군가가 반격해 올 때까지는 누구에게
나 매파처럼 행동한다. 반격을 당하면 즉시 도망친다. 또 다른 조건 전략자는 '시험 보복파'
이다. 시험 보복파는 기본적으로는 보복파를 닮았으나 때로는 다툼을 조금 실험적으로 확대
시켜본다. 그리고 상대가 반격하지 않으면 이때 매파형의 행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만약 반
격을 당하면 비둘기파처럼 관습대로의 위협으로 되돌아간다. 공격을 받은 경우에는 보통의
보복파와 똑같이 보복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지금까지 말한 다섯 개의 전략자 모두를 서로 자유로이 행동하도
록 시키면 보복파만이 진화적으로 안정됨을 안다. 시험 보복파는 거의 안정적이다. 비둘기파
는 그 개체군이 매파와 허풍파의 침략을 허락하므로 안정이 안 된다. 매파도 그 개체군이
비둘기파와 허풍파의 침입을 허용했으므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복차의 개체군은 보복파
자신보다 잘하는 전략이 다른 것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전략자에게도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
둘기파는 보복파의 개체군 내에서는 같은 정도로 잘할 수 있다. 즉, 다른 조건이 같다면 비
둘기파의 수가 점점 불어나게 된다. 그런데 비둘기파의 수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나면 시험
보복파가(그리고 덧붙여 말하면 매파와 허풍파도) 유리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비둘기파에 대해 대처하는 법이 보복파보다 좋기 때문이다. 시험 보복파의 개체군
내에서 그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전략 중에서 보복파뿐이었고 이 전략으로서 어느
정도 낫다는 데 지나지 않는 의미에서이다. 따라서 보복파와 시험 보복파의 혼합된 것이 아
마도 양자간의 조용한 진동을 유지하면서 소수파인 비둘기파의 수의 진동과 관련지으면서
우세를 점하여 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어느 개체라도 항상 있는 정해진
전략을 취한다는 다형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 각 개체는 보복파, 시험 보복파 및 비둘기파가
복잡하게 뒤섞인 행동을 취할 수가 있을 석이다.
이 이론상의 결론은 대부분의 야생 동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동물의 공격 중 '글러브를 낀 주먹'적 측면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했다. 물론 상
세한 것은 승리나 부상이나 시간의 낭비에 주어진 '점수'의 정확도에 달려 있다. 바다코끼리
에 있어서 승리에 대한 보수는 큰 하렘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래서 승리의 득점은
매우 높게 해 놓아야만 한다. 싸움이 격렬한 것도, 중상을 입을 확률이 높은 것도 벼로 이상
할 것이 없다. 시간의 손실이라는 비용은 부상에 의한 비용과 승리의 이익에 비하여 아마도
적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추운 지방에서 사는 작은 새에게는 시간의 낭비라는
비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손실일 것이다. 새기가 있는 박새는 30초마다 한 번꼴로
먹이를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낮에는 일초일초가 귀중하다. 매파 대 매파 싸움에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시간까지도 이와 같은 작은 새들에게는 아마도 부상의 위험 이상으로 심각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자연계의 모든 현상의 비용과 이익에 실제의 수치를 맞추어 보기
에는 아는 것이 너무도 부족하다. 우리는 제멋대로 정한 수치에서 결론을 간단히 내리지 않
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중요한 일반적 결론은 ESS가 진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ESS가 집단
의 합의에 따라 달성되는 최적 조건과 같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상식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전
메이나드-스미스가 생각한 또 하나의 전쟁 게임은 '지구전'이다. 이것은 위험한 싸움을 결
코 안하는 종과 다분히 부상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갑옷으로 덮인 종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종에서의 다툼은 모두 형식적 자세에 의해 해결된다. 다툼은 항상 어느 편
이든 물러섬으로써 끝난다.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등을 돌릴 때까지 자기
진지에 버티고 서서 적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위협하기 위하여 무한히 시간을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동물은 없다. 달리 해야 할 큰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자원은
가치가 있을지 모르나 무한히 가치가 있을 리는 없다. 그것은 그래야 할 시간적 가치에 불
과하다. 경매할 때와 같이 각 개체는 그 자원에는 그럴 만한 가격밖에 쓰지 않을 각오를 하
고 있다. 시간은 이 두 경매인의 경매 통화인 것이다.
이들 개체는 모두 어떤 자원, 가령 암놈이 어느 정도의 시간에 가치가 있는가를 미리 저
확히 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자. 조금만 길게 계속할 각오를 한 돌연변이 개체는 항상 이길
것이다. 따라서 정해진 경매값을 지킨다는 전략은 불안정하다. 가령 자원의 가치가 아주 정
확히 추정되어 전개체가 옳은 갑을 불렀다고 해도 이 전략은 불안정하다. 이 시간을 최대화
하는 전략에 의해 경매를 하는 두 개체는 똑같은 순가에 포기하여 어느편도 자원을 입수하
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이 경우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권리를 포기
하는 편이 개체에게는 상책이다. 지구전과 실제의 경합과의 커다란 차이는., 요컨대 지구전
에서는 경쟁자가 모두 희생의 치름에 반해 이익을 얻는 자는 한쪽뿐이라는 점이다. 딸서 대
항하고 버티는 시간을 최대화하려고하는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 내에서는 처음부터 포기한다
는 전략이 성공하여 개체군 내에 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바로 포기하지 않고
몇 초 기다렸다가 포기하는 개체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전략은 현재 개체군
내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즉시즉각파에 대하여 행동할 때 유리한 것이 틀림없다. 거기서
선택은 포기의 시간을 점점 연장하는 방향으로 돌려, 어쨌든 다투고 있는 자원의 참된경제
가치에 따라 허용되는 최대치에 다시 접근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수식을 쓰지 않고 말로써 마치 개체군이 모든 전략을 두루 살펴보는 진
동을 말하는 듯이 묘사해 왔다. 그러나 수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때도 역시 그 묘사는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어떤 전략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수학식으로 표시되
는데 그것과 같은 것을 말로 하면 이렇게 된다. 각 개체가 지구전을 계속하는 시간은 예언
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자원의 진가를 평균하는 것 외에는 예언을 못한다. 가령
자원이 실제로는 5분간의 가치가 있다고 가정하자. ESS로 5분 이상 과시 행동을 계속하는
개체가 있다면, 5분 이하밖에 계속 못하는 개체도 있고, 또 꼭 5분간만 계속하는 개체도 있
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경우 어느 정도의 시간을 계속할 작정인가를 상대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지구전에서는 포기하려고 하는 눈치를 상대가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
엇보다도 중요하다. 수염을 조금 움직이든지 하여 패배를 드러내고 말까 하고 생각하고 있
을 때에 실수하여 그 눈치를 표출하게 되면 그 순간 불리하게 된다. 가령 수염을 움직이는
것이 1분 후에 즉각 공격을 한다는 확실한 징조라면 극히 단순한 승리의 전략일 것이다.
"상대의 수염이 움직이면 처음의 계획이 무엇이었든 1분간 더 참는게 좋다. 상대의 수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게다가 자기가 포기하려고 했던 시간까지 이제 1분도 안 남았다고 생
각될 깨는 즉각 손들고 그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편이 좋다. 자기의 수염은 결코 부동
이다."이런 이유로 자연 선택은 수염을 움직이는 것이나 그 밖의 행동을 표출해 버리는 짓
을 즉시 벌할 것이다. 무표정한 얼군(포커 페이스)이 진화해 갈 것임에 틀림없다.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편이 좋은 것은 왜 그럴까?
역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안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체가 지구전에서 정말
로 장시간 버틸 각오가 있기 전에는 목의 털을 세우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의 반대
되는 계략이 진화될 것이다. 즉, 상대가 목털을 세우면 즉시 굴복하는 작전이다. 그러나 여
기서 거짓말이 진화되기 시작한다. 실제로는 장시간 버틸 각오가 없는 개체가 언제나 털을
세우고 용이하게 빨리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거짓말쟁이의 유전자가 퍼져나
갈 것이다. 드디어 거짓말쟁이가 대세를 차지하면 선택은 이제 그 허점을 깨닫고 도전하는
개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거짓말쟁이는 다시 수가 감소할 것이다. 지구전에서
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진화적으로 안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무표정
한 얼굴은 진화적으로 안정적이다. 결국 항복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
한 일이다.
자기 보호를 위한 싸움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 온 것은 메이나드-스미스가 '대칭적'다툼이라고 하는 것뿐이다.
즉, 경쟁자끼리의 싸움에 있어서 전략 이외의 모든 것은 똑같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는 같은 강도였고, 무기나 갑옷으로 동등하게 무장했고, 승리에 의해 얻은
것도 동등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이것은 모델을 이용하기에는 편리한 가정인데 별로 현
실적은 아니다. 그래서 파커와 메이타드-스미스는 비대칭적인 투쟁을 생각해 보았다. 예컨
대 만약 전투 능력과 몸의 크기가 개체에 따라 다르며 각 개체가 자기와 비교해서 상대가
어느 정도로 큰가를 잴 수 있다고 하면 이 일이 거기에 생기는 ESS에 영향을 미칠까? 아마
도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비대칭적인 다툼에는 세 가지의 주된 것이 생각된다. 첫째는 지금 말한 대로 몸의 크기라
든가 전투 능력이 개체에 EK라 틀리는 경우이다. 둘째는 승리에 의해 얻어지는 이익의 크
기가 개체에 따라 틀릴 경우이다. 가령 아무리 참고 버텨도 여생이 짧은 노인은 앞으로 긴
생식 생활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와는 달라서, 비록 부상을 입었다 해도 질 수는 없는 입
장일 것이다. 세 번째는 이 설의 색다른 결론인데, 완전히 임의적이고 일견하여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이는 비대칭이 ESS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비대칭의 덕택으로 다
툼이 급속히 수습이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경쟁자의 한쪽이 더러는 다른 쪽보다
먼저 싸움터에 도착해 있을 경우 대개 이것에 해당된다. 그들을 각각 '거주자'와 '침입자'라
고 부르기로 하자. 논의의 편의상, 거주자나 침입자에게 일반적인 이익은 없다고 가정한다.
후술하거니와 이 가정이 실제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있으나 이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가령 거주자가 침입자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유는 없어도 이 비
대칭 그 자체에 의해 정해지는 어떤 ESS가 진화한다는 점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인간이
크게 떠들지 않고도 동전을 던져 분명하게 다툼의 결판을 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거주자와 침입자
조건 전략, 즉 "자기가 거주자라면 공격하고, 침입자라면 퇴각하라."라는 것이 ESS일지도
모른다. 또 비대칭이 임의라고 하는 가정이 있으므로 "거주자라면 퇴각하고 침입자라면 공
격하라."라는 역의 전략이 안정적일 가능성도 있다. 어떤 개체군에 있어서 이 두 개의 ESS
중 어떤 것이 채용될지는 어느 쪽이 먼저 대세를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개체는
벌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에 의하면 그것이 ESS인 것이다.
이를테면 개체가 '거주자가 이기고 침입자가 도망'이라는 전략을 취한다고 하자. 이것은
그들이 싸움의 반은 이기고 반은 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들은 결코 다치지 않고 시
간도 허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다툼이 임의의 규정에 따라 즉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에 새로운 돌연변이의 반역자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는 항상 공격하며 결코 물
나지 않는 순수한 매파 전략을 취한다고 하자. 상대가 침입자일 경우에는 그가 이길 것이다.
상대가 거주자하면 부상이라는 큰 위험을 당하게 된다. 평균하면 그는 ESS의 임의의 규칙
에 따라서 행동하는 개체보다 득점이 낮아진다. "거주자라면 도망하라. 침입자라면 공격하
라." 라는 역의 규정을 시도하려고 하는 반역자는 더욱 나쁘다. 그는 때때로 부상을 당할 뿐
만 아니라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무언가 우연한 일로 인하여 이 역의 규정에 따르
는 개체가 대세를 잡을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때에 그들의 전략은 안정된 규범이
되어 이에서 벗어난 자는 벌을 받는다. 한 개체군을 여러 세대에 걸쳐 관찰하다 보면 때마
침 한 안정 상태에서 다른 안정 상태로 돌변해 버리는 모습을 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생활에 있어서 정말 임의의 비대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거주자
는 대개 침입자보다 실제로 유리한 입장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토지의 지형을 잘 알고
있다. 또 거주자가 오래도록 거기에 있었음에 반해 침입자는 싸움터에 출전해 왔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계에서 두 개의 안정 상태 중 "거주자는 이기고 침입자
는 진다."라는 상태의 편이 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즉 "침입자가
이기고 거주자가 진다."라는 역의 전략은 자기 붕괴를 초래할 경향을 본래 가지고 있다. 메
이나드-스미스는 이것을 '역설적 전략'이라고 했다. 이 역설적 ESS의 상태에 있는 개체군
내의 개체는 항상 거주자로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즉, 어떤 다툼에 있어서도
항상 침입자인 양 애써 노력할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 시간과 에너지의 손실은 따로 하고라도 이 진화 경향은 '거주
자'라는 범주를 자연히 소멸시키는 성이 된다. "거주자는 이기고 침입자는 진다."라는 또 한
편의 안정 상태에 있는 개체군에서는 자연 선택이 거주자가 되려고 애쓰는 개체에게 유리하
게 작용한다. 각 개체에게 있어 이것은 어떤 구역에 틀어박혀 가능한 한 그 곳에서 이탈하
지 않고 그 곳을 '지키자'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이와 같은 행동은 자
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영역의 방위'라고 한다.
가시고기의 영역 싸움
이 형의 행동적 비대칭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실례는 우수한 행동학자인 틴
버겐(Niko Tinbergen)이 스스로 터득한 천재적인 단순 명쾌한 실험에 의해 제시한 것이다.
그는 두 마리의 큰 가시고기 수놈이 들어 있는 수조를 갖고 있었다. 물고기는 각기 수조의
반대측의 구석에 집을 짓고 자기 집 둘레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틴버겐은 이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각각 큰 유리 시험관에 넣어 이 두 개의 시험관을 가지고 물고기들이 시험관을 통
하여 싸우려고 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래서 매우 흥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두 개의 시험관
을 수놈 A의 집에 가까이 접근할 경우에는 A가 공격 자세를 취하고 수놈 B는 퇴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험관을 수놈 B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니까 형세는 역전됐다. 틴버겐은 단순히
두 개의 시험관을 수조의 한 끝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수놈이 공격하고 어떤 수놈
이 퇴각하는가를 알 수가 있었다. 어느쪽 수놈도 분명히 단순한 조건 전략을, 즉 "거주자가
되면 공격하고 침입자가 되면 퇴각한다."라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생물학자는 자주 영역 행동의 생물학적 '이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에는 여러 가지의
가능한 답이 있는데 그 중의 몇 가지에 대해서는 후에 언급하겠다. 그런데 이제 이 질문 자
체가 무용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역 '바위'란 그저 두 개체와 토지 구확과의 관
계를 정하는 도착 시간의 비대칭 때문에 생긴 ESS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임의가
아닌 비대칭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크기와 일반적인 전투 능력일 것이다. 체구가 크다
는 것은 필히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할 수 없으나 역시 그 하나이
기는 하다. 싸움에 있어 큰 편이 항상 이긴다면, 그리고 각 개체가 자기가 상대보다 큰지 작
은지를 화실히 알고 있다면 무언가의 의미 있는 전략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즉 "상대가 자
기보다 크면 도망가라. 자기보다 작은 놈은 공격하라." 크기의 차이가 그다지 확실하지 못하
게 되면 일은 다소 복잡해진다. 체구가 크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면 지금 말한 전략
은 아직 안정하다. 그런데 부상의 위험이 크게 되면 제 2의 '역설적 전략'도 생각된다. 즉,
"자기보다 큰 놈에게 싸움을 걸고 작은 놈은 피하라!"이 전략이 역설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완전히 상식에 반한다고 생각된다. 이 전략이 안정하다는 이유는 이것이
다. 모두가 역설적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에서는 누구도 부상을 입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다
툼에 있어서 관계자의 한쪽, 즉 몸이 큰 편이 항상 도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은 상대를
괴롭힌다는 '상식적'전략을 취하는 평균적 크기의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그 개체는 맞부딪친
상대의 반수와 격한 다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자기보다 작은 상대에게 부딪치
면 공격을 하고 그 작은 개체는 역설적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심하게 응전해 오기 때문이
다. 상식적 전략파는 역설적 전략파보다 이길 확률은 높으나 한편 저서 크게 다칠 위험도
많이 있다. 개체군의 대부분이 역설적 전략을 취하고 있으므로 상식적 전략자는 어느 역설
적 전략자보다 다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회성 거미
역설적 전략은 가령 안정하다고 해도 아마도 이것은 학문적으로 흥미 있는 것에 불과하
다. 역설파가 상식파보다 높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수적으로 상식파보다 현저
히 많을 때에 한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상태가 처음에 어떻게 해서 생길 수 있는가를 상
상하기는 어렵다. 가령 그것이 생겼다 해도 개체군 내의 역설파에 대한 상식파의 비율이 아
주 조금 증가하는 것만으로 또 하나의 ESS, 즉 상식파의 ESS '유인 지역'에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이 경우 유인 지역이라는 것은 상식파가 유리하게 되는 개체군 비율의 집합으로
정의되는 영역이다. 즉, 한 개체군이 이 유인 지역에 도달하면 상식적 전략의 안정점을 향하
여 피할 수 없이 말려드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역설적 ESS의 예를 발견하는 것은 흥분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정말로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나는 너무 빨랐던 것 같
다). 이 글을 쓴 후에 나는 메이나드-스미스 교수로부터 버제스가 멕시코 산의 사회성 거미
인 Oecobius civitas의 행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쓴 것을 들었다. "이 거미는 어떤 방해물
때문에 숨었던 장소에서 쫓겨나면 바위 위로 올라가 몸을 숨길 수 있는 빈틈을 찾지 못하면
같은 종의 다른 개체의 집으로 달려든다. 도망쳐 들어온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에 거기에 거
주하던 거미는 침입자를 공격하지 않고 바로 나와 자기의 숨을 곳을 새로이 찾는다. 이 때
문에 일단 최초의 거미가 쫓겨나면 잇따른 도주가 계속되어 이것이 수분 사이에 종종 그 집
단의 개체가 자기의 살림집에서 옆집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사회성 거미", Scientific
American 1976년 3월호)
순위제
만약 동물이 과거의 싸움에 관해 무언가 기억하고 있다면 어떠할까? 그것은 그 기억이 개
별적인 것인가 일반적인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귀뚜라미는 과거 싸움에서 있었던 일에 대
해서 일반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 최근에 많은 싸움에서 승리한 귀뚜라미는 매파적으로 된
다. 최근 계속 지기만 한 귀뚜라미는 비둘기파적으로 된다. 이것은 알렉산더(R.D. Aleander)
에 의해 자세히 제시됐다. 그는 모형 귀뚜라미를 사용하여 진짜귀뚜라미를 기습했다. 이 처
리를 가한 후로 그 귀뚜라미는 다른 진짜 귀뚜라미와의 싸움에서 지기만 했다. 각각의 귀뚜
라미는 자기의 개체군 내의 평균적 개체의 전투 능력과 비교한 자기의 전투 능력을 평가하
기를 부단히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의 싸움을 기억하는 귀뚜라미와 같은 동
물이 밀집된 집단을 이루고 지내면 모종의 순위제가 발달하는 것 같다. 관찰자는각 개체를
순번대로 나열할 수가 이TEk. 순위가 낮은 개체는 순위가 높은 개체에게 항복하는 경향이
있다. 개체끼리 서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승리에 습관된 개체는 더욱더 이
기에 되고 패배에 버릇이 된 개체는 정해 놓고 지기만 한다는 것이 형상의 모두이다. 처음
에는 완전히 두서없이 이기고 지고 하다가도 자연히 어떤 순위에 따라 가는 경향이 있는 이
것은 집단 내의 심한 다툼을 점차로 줄여 가는 효과가 있다.
ESS와 순번제
이상과 같은 현상은 일종의 '순위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순위제라는 말을
개체가 인지하고 있을 때에만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과거 싸움의 기억은
일반적이라기보다 개별적이다. 귀뚜라미는 서로 상대를 개체로서 인지하고 있지는 않으나
닭이나 원숭이는 인지하고 있다. 어떤 원숭이에게 있어 과거에 자기를 이긴 적이 있는 원숭
이는 앞으로도 자기를 이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럴 때의 개체로서의 최선의 전략은 이
전에 자기를 이긴 적이 있는 개체에 대해서는 비교적 비둘기파적으로 행동한다. 이전에 맞
부딪친 적이 없는 한 떼의 닭을 서로 맞세워 놓으면 보통은 마냥 싸움질을 한다. 그러나 때
가 지나면 결국 싸움은 약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귀뚜라미의 경우와 같은 이유에서는 아니
다. 닭의 경우, 각 개체는 서로 다른 개체에 대한 '자기의 지위를 배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종 집단 전체에게 좋은 거이다. 그 증거로서 주목되고 있는 것은 순위가 확립되어 있어서
심한 싸움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닭의 집단에서는 끊임없이 구성원이 갈리고 있으므로 그
결과 항상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집단보다 산란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는 흔히
숭위제의 생물학적 이점, 또는 '기능'은 집단 내의 공개적인 공격을 줄이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방법은 옳지 않다. 순위제 그 자체는 진화적 의미로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집단의 특성이지 개체의 특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단 수준에
서 볼 때 순위제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개체의 행동 패턴에는 기능이 있다고 할는지 모르나
'기능'이라는 말을 아주 버리고, 개체의 인지와 기억이라는 두 개의 조건을 가미한 비대칭적
인 다툼의 ESS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고찰하는 편이 훨씬 좋다.
지금까지 같은 종의 개체간의 다툼에 관해 고찰해 왔는데 종간의 다툼에 관해서는 어떨
까? 처음에 말한 바대로 다른 종의 구성원은 같은 종의 구성원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직접적
인 경쟁 상대는 아니다. 이 때문에 다른 종간에 자원을 가지고 다툼이 생기는 것은 적당 생
각되며 그 예상에는 확증이 있다. 가령 울새가 다른 울새에 대해서는 영역을 지키나 박새에
의 영역 지도를 중복해서 그릴 수가 있다. 이 두 종의 영역은 완전히 불규칙하게 겹쳐저 있
다. 그들은 따로따로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것 같다.
ESS와 동종 사냥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다른 종의 개체들도 매우 심하게 충돌한다. 가령 사자는 영양을 잡
아먹고 싶어하나 영양은 자기 몸에 관해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보통 자원
을 걸고 다툰다고 볼 수 없으나 이론적으로 말하면 왜 인정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때의 자원은 고기다. 사자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의 먹이로서 고기를 '좋아하고 있다.'
영양의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를 위해 일하는 근육이나 기관으로서 그 고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두가지 고기의 용도는 서로 양보할 수 없으므로 이권의 충돌이 생긴다.
자기 종의 구성원도 역시 고기로 되어 있다. 그러면 왜 서로 잡아먹는 것이 비교적 드문
가? 검은 머리갈매기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성숙한 것이 때때로 자기 종의 새끼를 먹는다.
성숙한 육식 동물이 가지 종의 다른 성숙한 개체를 먹으려고 의도하고 적극적으로 추격하는
일은 결코 없다. 왜 없을까? 우리는 여전히 진화에 대한 '종의이익'이라는 견해에 너무 익숙
해져 있어서 "사자는 왜 다른 사자를 사냥 않는가?"라고 하는 등의 아주 타당한 질문을 잊
어버리기가 쉰다. 또 하나 절대로 들을 수 없는 타입의 우수한 질문에 "영양은 왜 반격하지
않고 사자로부터 도망하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
사자가 사자를 잡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겐 ESS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먹기 전략
은 앞의 예에서 매파형 전략과 같은 이유로 불안정하다. 보복의 위험이 너무도 크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다른 종간의 다툼에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개 표적의 동
물이 보복을 않고 도망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은 다분히 다른 종의 두 개체간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같은 종의 구성원간의 경우보다 큰 비대칭이 조립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서로간의 다툼에서 큰 비대칭이 있을 때 ESS는 항상 그 비대칭에 의존하는
조건 전략으로 되는 것 같다. 다른 종간의 다툼에서는 이용되는 비대칭이 많이 있으므로
"작으면 도망하라, 크거든 공격하라."라는 식의 전략이 매우 진화되기 쉽다. 사자와 영양은
다툼에 본래 존재하는 비대칭이 부단히 증대하도록 강조해 온 진화적 방식에 의해 일종의
안정 상태에 도달해 있다. 그들은 각각 추격의 수완과 도주의 술책에 고도로 숙련되어 있다.
사자에게 '맞서는' 전략을 취하는 돌연변이의 영양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는 영양보
다 잘 될 것이 없을 것이다.
ESS 개념
우리는 다윈 이래의 진화론에 있어서 ESS 개념의 발명을 가장 중요한 진보의 하나로서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개념은 이권 충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해당된다.
즉, 그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 통용된다. 동물 행동의 연구자는 '사회 조직'이라고 하는 것에
관해 말하는 습관이 되어 있다. 사회 조직은 스스로의 생물학적 '이점'을 갖춘 독자적 실체
로서 취급되는 수가 너무도 많다. 지금까지 든 예로 말하면 '순위제'가 그것이다. 생물학자가
사회조직에 관해 말한 여러 설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룹 선택주의자의 가설이 숨어 있는 것
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메이나드-스미스의 ESS 개념이야말로 독립된 이기적인 단위의
집합이 어떻게 해서 단일의 조직하된 전채를 닮게 되는가를 비로소 분명히 가르쳐 주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은 종 내의 사회 조직뿐만 아니라 많은 종으로 이루어진 '생태계'나 '군집'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여하튼 나는 ESS 개념이 생태학에 혁명을 가져오게 될 것
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개념은 제 3장에서 기술했다. 좋은 팀워크를 필요로 하는 조정 선수(체내의 유전자에
해당)의 예에서 생긴 문제에도 적용된다. 유전자는 그것 단독으로 '우수한 것'으로서가 아니
고 유전자 풀 내의 다른 유전자를 배경으로 해서 일할 때 우수한 것으로 되면 선택되어 남
는다. 우수한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와 양립하여 서로 도와 몇 세대에 걸쳐서 몸의 공유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식물을 씹는 이빨의 유전자는 초식 동물의 유전자 풀 내에서는 우수
한 유전자이나 육식 동물의 유전자 풀에서는 나쁜 유전자인 것이다.
양립할 수 있는 한 세트의 유전자가 하나의 단위로서 정리하고 선택되는 것은 충분히 상
상할 수 있다. 제 3장에서 본 의태하는 나비의 경우에는 정말로 그랬었던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ESS 개념의 훌륭한 정도는 독립적인 유전자의 수준에서 선택에 의해 같은 결과가
쉽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는 점이다. 유전자끼리는 같은 염색체상에서 연관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이 점을 설명할 때 조정 선수의 예는 부적합하다. 이 점에서 가장 적합한 것은 다
음과 같은 예이다. 실제로 레이스에 이기기 위해 보트 팀의 선수끼리가 말로서 자기의 활동
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자. 또한 코치가 마음대로 하는 선수 풀에서 어떤 선수는
영어밖에 못하고 어떤 선수는 독일어밖에 못한다도 하자. 영국인이 항상 독일인보다 배젓기
가 낫든지 서툴든지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므로 혼합의 보트 팀은
영국인만의 보트 팀이나 독일인만의 보트 팀에 비하면 이기게 되는 횟수가 적게 되기가 쉽
다.
코치는 이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선수를 마구 섞어서 이긴 보트에 탔던 선수에
게 점수를 주고 진 보트에 탔던 선수는 점수를 뺀다. 이기는 선수 풀에 종종 영국 선수가
많으면 보트에 타는 독일인은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함으로써 그 보트가 지는 원인이 되기 쉽
다는 것이다. 반대로 선수 풀에 종종 독일인 쪽이 많을 때에는 영국인이 레이스에 지게 하
는 원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종합적으로 최상의 보트팀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개의 안정
상태가 하나가 될 때, 즉 전원이 영국인이든지 전원이 독일인이든지 하는 상태이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코치가 언어별로 나눈 그룹을 단위로 하여 선택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러나 그는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레이스에 이기는 외견상의 능력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선수
를 선발하는 데 불과하다. 한 선수가 레이스에 이기는 경향은 종종 후부자의 풀에 어떤 다
른 선수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 소수파의 후보는 자동적으로 벌을 받으나 그것은 젓는 것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소수파이기 때문일 뿐이다. 이처럼 유전자가 서로 양립되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사실이 있다고 해서 -나비의 예에서 본 것같이- 유전자의 집단이 단위
로 되어 선택된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히 있는 것은 아니다. 단일 유전자라고 하는
낮은 수준에서의 선택이 더 높은 수준에서의 선택이라는 인상을 주는 수도 있다.
이 예에서 선택은 단지 적합성만을 선택하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서로 보완해 주는
유전자가 선택되는 경우이다. 유추해서 말하면 이상적으로 균형잡힌 보트 팀은 오른손잡이
네 사람과 왼손잡이 네 사람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이때에도 또한 코치는 이
사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선수의 '성적'을 기준으로 하여 선발하는 것으로 가정하자. 그런
데 선수 풀에는 종종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에 왼손잡이의 선수는 모두 유리한 상태에 있
다. 즉,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보트를 이게 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수한 선수인 것처럼 보인
다. 반대로 왼손잡이가 많은 풀에서는 오른손잡이가 유리함에 틀림없다. 이 것은 비둘기파의
개체군 내에서 성공하는 매파의 개체나 매파 개체군 내에서 성공하는 비둘기파 개체의 경우
와 같은 것이다. 다른 점은 비둘기파와 매파의 예는 개체 간의, 즉 이기적인 기계 간의 상호
작용임에 비해 이때에는 체내의 유전자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점이다. 코치가 맹목적으로 '좋
은' 선수를 뽑아도, 결국은 왼손잡이 네 사람과 오른손 잡이 네 사람으로 되는 이상적인 보
트 팀이 된다. 그것은 마치 그가 균형잡힌 한 벌의 단위로서 그들을 몽땅 뽑은 양 보인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 그는 한 수 아래의 수준이고, 즉 개개의 후보 수준으로 선택되고 있
다고 생각하는 것이 명쾌하고 분명하다. 왼손잡이 네 사람, 오른손잡이 네 사람이라는 진화
적으로 안정된 상태(여기서 '전략'이라는 말은 오해를 갖기 쉽다)는 단순히 외견상의 성적에
기초하는 낮은 수준에서의 결과로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유전자 풀은 유전자의 장기적인 환경이다. 유전자 풀에서 살아 남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것이 '우수한 '유전자인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관찰됐다는 사실조차 없다. 그것은
동어 반복이다. 흥미를 끄는 문제는 유전자가 좋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첫
접근으로서 유전자가 좋다는 것은 유능한 생존 기계, 즉 몸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썼다. 그러
나 이제는 이 견해에 단서를 붙여 두지 않을 수 없다. 유전자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유전
자의 세트, 즉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에 의해서도 침입받지 않는 유전자 풀로 정의되는 상태
에 도달할 것이다. 돌연변이나 재조합이나 이입에 의해 생기는 새로운 유전자는 대부분이
자연 선택에 의해 벌을 받아 즉시 도태될 것이다. 그리고 진화저긍로 안정한 유전자 세트는
복원된다. 때마침 어떤 새로운 유전자가 그 세트에 침입하는 데 성공하여 유전자 풀 내에
퍼져나가는 데 성공하는 수도 있다. 그러면 불안정한 과도기를 거쳐 드디어 진화적으로 새
롭고 안정한 조합을 이룬다. 매우 적게 진화가 된 것이다. 공격전략의 예에서 말한 것처럼
개체군에는 둘 이상의 대체 가능한 안정점이 있어 때때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연 비약이
일어나는 수도 있다. 진화란 부단한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된 수준에서 안정된 수준으
로의 불연속인 전진의 반복인 것 같다. 마치 그 개체군 전체는 한 개의 자동 조절 단위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착각이다. 실제로 그것은 단일 유
전자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에 의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는 '성적'으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 성적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 즉 현재의 유전자 풀이라는 배경 중에서의 행동
에 기초하여 판정되는 것이다.
메이나드-스미스는 모든 개체에서 볼 수 있는 공격적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사태를 극히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안정된 비율을 생각하는 것은 쉽다.
몸은 큰 물체이므로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각의 몸에 있는 유전자간의 이
와 같은 상호 작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 중의, 즉 유전자 풀
내에서의 유전자의 중요한 상호 작용의 대부분은 개개의 몸 속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들의
항소 작용을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세포 내에서 특별히 발생 중인 배의 세포 내에
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잘 통합된 모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진화
적으로 안정된 세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요 테마인 동물 개체간의 상호 작용의 수준으로 말머리를 돌려야겠다.
공격을 이해하려면 개개의 동물을 독립된 이기적인 기계로 보은 것이 적절하다. 이 모델은
관계하는 개체끼리가 형제자매, 사촌끼리, 친자와 같은 근친자일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이다. 근친끼리는 그들의 유전자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개의 이기적
인 유전자의 충성심은 다른 몸 사이에 분배되어 있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 정에서 설명하
도록 하자.
이야기 모음/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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