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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마음

15. 우정에 대하여

by Frais Feeling 2020. 5. 12.

"인생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순간에  변합니다.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므
로 오늘 이 순간을 잡으십시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순간을 활용하십시오."
  - 짐 발바노
  "하느님, 지금 그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정과 사랑은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 K감독

  1999년 3월, 듀크는 NCAA 동부지역 챔피언쉽에서 템플팀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4강
전에 오를 수 있게 되었지요. 그 경기의 막판에 우리가  이길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
래서 우리는 선발 선수들을 교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을 바라보니 코치 퀸 슈나이더의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자네도 이제 코치하는 게 무언지 아는 것  같군." 하고 말했습
니다.
  퀸이 눈물을 흘린 것은 우리가 4강전에 가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
년 내내 열심히 연습한 선수들을 위해서 울었고, 우리가 함께 꾸던 꿈이 이루어지는 것
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 사심도  없었습니다. 순수한 기쁨밖에 없었지요.  그것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정은 언제나 계속 살아있습니다
  1999년 4강전이 끝난 후, 퀸 슈나이더는 미주리 대학에서 감독 자리를 제안받았습니
다. 나는 그에 대해 긍지를 느꼈고  또 그를 위해 아주 기뻤습니다.  그가 그런 제안을 
받았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가 '졸업생을 위한 밤'에서 연설하던 10년 전의 일이 생
각났습니다. 그는 선수 생활 4년을 마치면서, 그것이 자기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
하려고 애썼지요.
  "이번에는 어떤 말로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퀸이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감독님에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려 하니 말문이 막히는군요. 어제 저녁  나는 그동
안 감독님이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해준 말을 생각해 보았습니
다. 경기에 이기는 것은 정말 부수적인 것이더군요.  감독님이 우리에게 심어주려고 했
던 그 가치들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겁니다.
  헌신, 고결함, 강인함, 정직, 집단 책임,  긍지, 사랑... 그 말들 하나  하나에는 독특한 
정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시애틀에 
있는 호텔 방에서 감독님은 친구라는 말을 사용했지요. 나는 그 말을 항상 기억하고 마
음에 간직할 겁니다."
  퀸이 언급한 그 시애틀의 대화는 바로 지난주에 했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4강전의 
준결승전에서 지고 난 후였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 우리 씨즌은  끝이 났지요. 퀸은 그 
패배를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워싱턴주의 머써아일랜드  출신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친구들과 가족 앞에서 지는 모습을 보여줬던 겁니다. 호
텔로 돌아온 후 나는 선수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네들이 이 방을 나갈 때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슛을 놓쳤다든지, 리바
운드를 잡지 못했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것을 잊어버려. 올 한해
는 정말 위대한 해였다. 여기서 며칠  머물기로 하자. 그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밤 전미 대학 선수권 대회 경기를 보러 이 자리에 나타나기 바란다. 언젠가 우
리도 전미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이길 거니까 말이야. 그러니 여기서의 체험을 한껏 누
리기 바란다. 떠나기 전에 한마디 더 하겠다. 자네들에게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
게. 자네들은 내 친구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없을 걸세."
  나는 항상 우정을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쉬카고의 컬롬버 팀 시절 모 밀린스키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과 맺은 우정에서부터, 고등 학교 내내, 웨스트 포인트 그리고 듀크
에서 감독을 할 때까지 모든 선수와 코치, 비서들, 매니저들은 모두 내 친구입니다.  그
리고 나는 그들과 친구로 남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는 계속 살아  있을 
겁니다.

    우정은 사랑과 함께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1999년 씨즌이 끝나갈 무렵, 우리 팀을 떠난 사람은 퀸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모
두 7명의 선수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트레이전 랭돈과 타이먼 돔잘스키, 그리고 저스
틴 칼드백은 졸업을 해서 떠났고, 엘튼 브렌드, 윌리엄 애버리, 코리 마겟, 크리스 버게
스는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단계에 있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프로로 가든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로 했습니다. 엘튼 브렌드와 그 부모는 전부터 NBA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 때문에 무척 고심했지요. 그들은 듀크의  농구선수가 학교를 졸업하기 전
에 프로로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무척 민감했고, 또 어느 누구의 마음도 상
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요.
  그런데 나는 엘튼과 그의 어머니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고, 그들이 그것을 좋은 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며칠 뒤 허리 수술을 받고 나서 그들을 병원으로 불렀습니다. 
  "엘튼, 거기 가고 싶지?" 
  "네, 감독님."
  그러자 옆에서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듀크 팀에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그게 엘튼이나 어머니께 최선의 일이라면, 듀크도 괜찮게 여길 것이고  나도 괜찮습
니다."
  나는 이후에도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엘튼 브렌드를 비롯해 세  명의 선수가 떠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나는 병원을 퇴원하자마자 새로운 코치들을 집으로 불렀습니다. 쉐인 
베티어, 크리스 케러웰 그리고 네잇 제임스가 찾아왔고, 우리는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
해서, 그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의논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는 10분 정도만 얘기하고, 나머지 한 시간 반 정도는 다음 씨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
지에 대해 집중 논의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선수를 몇  명 잃기는 했지만,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선수들 중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
기 때문에 올해에도 잘 해낼 수  있을 가능성이 많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러면 그들  세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물었습니다. 그때 크리스 캐러웰의 대답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감독님이 그렇게 말했으니 믿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세 명의 코치들이 이런 상황을 무시해 버리는 것을 보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마치 정규 씨즌에 지고 나서 그것을 빨리 잊어버리듯이 말입니다. 결국 우리 팀에서 7
명이 떠나갔는데, 그들 모두 우리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과의 관계도 친
구처럼 서로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을 보고 나는 흡족했습니다.
  그후 4명의 선수가 더 떠난 것을 돌아볼 때, 어떻게 다음 해를 이끌어갈 것인지 열려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들과 우정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힘들었습
니다. 그렇기는 해도 일단 결정이  내려지자 나는 즉시 선수들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
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안됐습니다. 다음  해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
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그렇게 불안정한 상황에서 견디는 법과 거기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떠나가는 선수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우정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지속
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애썼습니다. 누구나  그때그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행할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리 마겟은 프로로 가기로 결정한 후 가족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나는 그
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자네가 이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자네는 진실이 항상 받아들여진다고만  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고 있네.  어떤 도움이나 충고가 필요하다면  내가 함께 하겠네.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리더는 이러한 상황에 자주 처합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24년 동안 감독 생활을 하
면서 이런 일을 처음 겪었습니다. 프로로 떠나기 위해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없었지
요.
  우리가 선수들에게 해주고자 했던 좋은 것들, 우리가 가르쳐 주고자 했던 모든 가치, 
퀸 슈나이더가 연설에서 말한 그런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자신들이 할 바를 할 따름이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서운하고 실망하고 배신당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는 이 모든 느낌을 뒤로  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
리와 함께 있을 때 잘해준 데 대해 감사하고, 그들이 잘 지내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리
고 이후에도 그들과 좋게 지내야 합니다.
  절대로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정을 보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정은 
사랑과 함께 인생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정과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감독 생활에 진작 싫증이 났을 겁니다.

    오늘을 잡고 순간을 포착해야 합니다
  나는 20여 년 동안 다양한 인간관계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러한 관계를 소
중하게 여깁니다. 그 중에서도 짐 발바노와 보낸 마지막 여섯 달은 가장 값진 체험이었
습니다.
  짐과 나는 대학 때 서로 다른 팀에 속해 농구를 했습니다. 그는 럿거스 팀이었고 나
는 사관학교에 속했죠. 우리는 모두 포인트 가드였고  팀 리더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코치 초창기에 서로 다른 편에 속해 코치를 했습니다. 그는 아이오와 농구팀을 이끌었
고, 나는 웨스트 포인트의 코치였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소수 민족이 많이 사는 지역 출신이
었습니다. 그는 뉴욕의 이탈리아계 출신이었고, 나는  쉬카고의 폴란드계 출신이었습니
다. 우리는 모두 결혼해서 3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일에도 모두 열정적이
었습니다. 짐은 외향적이고 활발한  편이었지만, 나는 좀 내성적이면서  격식을 차리는 
편이었지요.
  우리는 지도하는 스타일이나 팀을 운영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나는 1980년과  1981
년에 ACC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짐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감독이었고 나는 듀크 
대학의 감독이었습니다. 그 당시 ACC는 버지니아 대학의 테리 홀랜드,  메릴랜드의 레
프티 드라이젤, 클램슨의 빌 포스터, 노스캐롤라이나의 딤 스미스 등 아주 훌륭한 감독
들을 갖춘 전미 최고의 농구협회였습니다.  짐과 나는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온  바비 
크래민스와 함께 ACC의 새내기 같았지요.  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프로그램이나 딤 
스미스가 전설적이라는 점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존중하기는  했지
만, 두려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30대 초반의 젊은이였고, 신세대 그룹이었습니다. 
그래서 짐과 나는 더욱더 친해졌던 것 같습니다. 마치 여덟 살이나 아홉 살 무렵 운동
장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항상 점잖게 행동하고  싶어했던 
반면, 짐은 항상 뭔가 문제를 일으킬만한 일을 찾아다녔지요.
  이를테면 격식을 차리며 회의를 하다  휴식시간이 되면, 우리는 함께 모여  말했습니
다. 
  "자네, 저 거짓말을 믿겠나?"  
  "도대체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 거야? 돌아가면 내가 이 주제를 내 놓을테니 자네는 
저 주제를 내놓게.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을 지지해 주는 거야. 알았어?"
  우리는 그런 일을 많이 했습니다. 재미있었지요.  때로는 장난꾸러기들처럼 행동했습
니다. 사실 정말 무례할 때도 있었지요. 코치 모임을 할 때 짐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
습니다. 항상 딤 스미스가 나중에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스타는 가장 나중에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듯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짐이 크래민스와 내 손
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들어봐. 이제 딤이 제일 늦게 들어오지 못하게 조처를 취하세. 나를 따라와."
  그래서 우리 셋은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딤이 나타나서 회의실로  들어갔지요. 짐이 제일 마
지막에 들어와서는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았습니다.
  짐과 나는 아주 사이가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흠을 잡기도 했지만 서로를 존중
했지요. 우리는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었고,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우리 둘  다 상당한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짐이 먼저  성공했지
요.
  내가 두 번이나 연속으로 참패했을 때 짐은 정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1983년 듀크
가 11승 17패로 지고 우리가 레스토랑에 함께 모여 있을 때, 짐과 노스캐롤라이나 팀은 
전미 선수권 대회를 획득했습니다. 
  1991년 듀크 팀이 처음으로 전미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승리했을 때, 나는 짐과 함께 
비행기를 탔습니다. 우리는 일등석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지요.
  "나는 자네가 1983년 전미 선수권 대회를  얻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네.  자네가 
나를 살려주었거든."
  내가 대화중에 말했습니다.
  "무슨 말인까?"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이 국가  챔피언쉽을 얻은 데  대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듀크 팀이 얼마나 나빴는지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없었거든. 노스캐롤라이나는 
마치 신데렐라처럼 많은 경기에 이긴  데다 ACC 토너먼트에서도 이겼으니 어디  우리 
같은 팀에 눈길을 줄 여지가 있었냐 말이야. 그러니까 자네가 나를 살려준 거지."
  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가 대꾸했습니다.
  "우린 지금 40대 초반인데 우리한테 문제 있는 거 같지  않아? 우리는 너무 빨리 많
은 것을 이룬 것 같지 않냐 말일세."
  "그게 무슨 소린가?"
  "우리가 너무 빨리 성공했단 말일세. 이제 사람들은 우리에게 항상 뭔가를 기대할 거
야. 우리는 50대 중반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20승  12패인 감독들에게는 해마다 
이기라는 기대를 하지 않잖아? 그런데 우리가 지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그러고 보니 자네가 옳은 것 같네. 우리가 기대치를 너무 빨리 너무 높이  올려놓은 
것 같군."
  짐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이걸 얼마나 유지할지 모르겠네. 감독하는 것 말이야."
  짐이 그렇게 말한 것은 감독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
른 것들도 사랑했습니다. 그의 머리에서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러한 것
들을 시도해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후,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선수 
담당자의 일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
다. 짐은 조용조용히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말을 아주 잘하고 그런 면에서 연
예인 같았기 때문에 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자비하게 혹평을 받았습니
다. 
  그 다음에 계속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짐의 인생, 가정, 명성에 큰 피해를 입기 시
작했고, 결국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짐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후 그는 ABC와 ESPN의 방송 기자가 되었는데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는 경기를 잘 알고 있었고 열정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짐 발바노는 텔레비전 화면
을 아주 잘 받았습니다.
  짐과 나는 그 이후로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우리가 서로 경쟁하지 않게 된 것도 커다
란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없어졌으니까
요.
  나는 짐이 텔레비전 방송 캐스터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독 생활에
서 아주 빨리 성공한 것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짐은 50대 
중반까지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92년 여름, 짐은 허리가 아팠습니다. 테스트를 받아본 결과  뼈 안에 흔치 않은 암
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미키와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짐이 아직 젊은 
데다 암을 초기에 발견했으니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11살이던 우리 딸 제이미는 걱정을 했습니다. 제이미는  학교에서 '스트레스가 암을 유
발시킨다'는 글을 쓰고 있었는데,  거기에 대중매체가 짐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어 
암을 유발시켰다고 적었습니다.
  짐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힘든 시기를 거쳐
야 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도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했는데, 시청자들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는 '강함을 보여주고 약함을 숨기라'는  감독의 
금언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겁니다.
  어느 날, 나는 우리 팀이 연습을 할 때 짐을 초대했습니다.  연습이 끝난 후 내가 선
수들에게 도움될 말을 좀 해주라고 청했더니, 그는 "물론이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의 말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내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자네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인생이 순식간에 바뀌지. 지금 내 인
생의 목표는 다음 씨즌에도 다시 여러분과 함께 대화를 하는 거라네." 라고 짐은  말을 
시작했습니다.
  "자네들은 모르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절대  몰라. 나는 항상 현재에 충실하려
고 애써 왔는데, 지금은 더욱  그렇다네. 왜냐하면 나에게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야. 자네들도 현재에 충실하게.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다네. 절대  오늘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게. 정말 순간순간이 중요해.  자네들 앞에 시간이 무한
정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말게. 그렇지 않다네. 그러니까 오늘을 잡고 순간을 포착하게. 
그리고 그것을 최선을 다해 활용하게."
  짐은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할 필요도 없었지요. 선수들의 눈에는 눈물
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짐이 진실성과 그 유창한 말솜씨로 그들의 마음을  건드려 놓았
던 겁니다.
  짐은 점퍼를 벗고 넥타이도 풀고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 시
간 남짓 선수들과 농담도 하고, 스릴과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공을 던지는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가 다시 운동장에 섰습니다. 다시 감독을 하고 있는 겁
니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코트를 함께 걸어나올 때  그는 점퍼를 어깨에 걸치면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고마워, 지미. 선수들에게 정말 도움이 됐네."라고 말했
습니다. 그러자 "내가 오히려 좋았네. 정말 고마워!" 라고 짐이 대답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짐은 듀크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처음 그
를 방문하면서 그가 정말로 내 방문을 원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자주 방문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기도 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이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씨즌 동안 될 수 있으면 자주 그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씨즌이 끝난 후에는 거의 매일 병실에 들렀습니다. 
  그렇게 방문하는 동안 잠과 나는 정말로 친해졌습니다. 우리는 함께 앉아서 감독 생
활과 농구에 대해서, 가정과 삶에 대해서 여러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이야
기를 시작하면 주위에 아무도  없기를 바랐습니다. 모두가 나가주기를  바랐지요. 짐의 
아내까지도요. 그래서 가족은 복도 건너편에 있는 대기실에 앉아 기다릴 때도 있었습니
다. 우리는 마음놓고 떠들었습니다. 밖에서 들어보면 아주  활기찬 소리가 들리고 때로
는 시끄럽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짐은 정말 활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감독과  심판들의 흉내도 내고, 
살아가면서 혹은 감독 생활을 하면서 흥미있던 순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도 했습니
다. 그야말로 그는 나와 함께 인생을 다시 살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그의 병실을 걸어
나올 때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물었습니다.
  "짐, 자네 느낌은 어떤가? 정말로 말해 보게."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다네. 나는 죽는 게 무서워. 겁이 난다구."
  그러더니 그는 그 느낌 때문에  생각나는 일이 있다며,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
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고통을 잊어버렸고, 우리는 또다시 웃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이고 좋은 상황으로 바꾸려  애
쓰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마이크, 겁이 나. 죽는 게 두려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죽어
가고 있어." 라고 불쑥 내뱉었습니다. 그러더니 얼른  말을 바꾸어 다른 사람들이 암을 
어떻게 대하는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암을 감독들처럼 대했으면 좋겠어.  그들도 '뭔가 다른 것 해보자.'라고 
말해야 하는데.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겁나지는  않아. 감독을 할 때처
럼 어떤 일이 잘 되지 않으며 다른 것을 시도하지. 도움이 될만한 것을 시도해. 우리가 
감독을 하면서 포기한 적이 있나? 절대 없지. 절대로!"
  그는 놀라운 열정으로 말을 계속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 들어오면서 침울한 표정을  짓거나 얼굴을 찡그려. 믿을 수  있겠어? 
내가 왜 그런 표정을 보고 싶겠나?  나는 우리 선수들 앞에서 절대  그런 모습 보이지 
않을 거야. 절대 선수들보고 '우린 오늘 질 거다, 쯧쯧...'하고 말하지는 않을 거야."
  짐 발바노는 진정한 감독이었습니다.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팀 선수들에게 도
움이 되는 표정을 보여주어야 하는 겁니다. 
  나는 그 대화를 나눈 후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여기서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볼 겁니다. 하지만 지미 앞에서는  풀죽은 
모습을 보여주지 마십시오. 그의 병실에 들어갈 때는 밝은 표정을 지으십시오. 그게 그
가 원하는 겁니다 .지미의 기분을 북돋다 주도록 애써주십시오."
  짐은 암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그 망할 병이 자기를 갉아먹고 있
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암을 이
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짐 발바노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
리고 마침내 경기 계획을 짜냈습니다.
어느 날 내가 그의 방에 들어서자, 그는 그 전략의 개요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는 재단을 만들고 싶어.  자네가 그것을 돌봐주었으면 좋겠네.  내 생각에 그것은 
'암 연구를 위한 재단' 이었으면 좋겠어. 기존의 방법이 아니라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으
로 암을 치료하려고 애쓰는 의사들이나 연구자들에게 돈을 대주는 그런 재단을 만들고 
싶어. 의사들이 정부에 암 연구 보조금을 신청하면 정부에서는 여섯 명 중 한 사람에게
만 연구비를 대주지. 나머지 다섯 사람에게도 주면 어때?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가 없어. 보조금은 모두 5만 달러인데, 그것도 많지가 않은 것 같아.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어. 이 재단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에게 돈을 
직접 줄 수가 있지.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낸 사람 말이야. 나는 나 스스
로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줄 수는 있네."
  짐의 방을 나와 차에 올라탄 나는 운전대에 손을 얹고 방금 짐이 한 말을 생각해 보
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모으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지미를 위해 뭔가 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하지만 지금 그와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여기 놀라운 인간, 내 친구 짐  발바노가 불치의 병인 암으로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자기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삿대질을 하
며 욕을 해도 사람들은 이해할 겁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
을 흘려도 사람들은 이해할 겁니다.
  그렇지만 짐은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할말 없습니다, 선생님.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연민도 필요합니다. 짐 발바노는 다른 사람을 배
려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배려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
을 배려하고 있는 겁니다.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는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암 
치료를 위한 주춧돌을 놓는 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경기 계획은 '지미 
V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계속될 경기입
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길 경기입니다. 짐 발바노의 마지막 경기는 가장 훌륭한 경기였
습니다.
  1993년 4월 28일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짐이 위독합니다. 빨리 오십시오!"
  나는 캠퍼스를 가로질러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병실에  들어 갔습니다. 짐은 의
식을 잃은 채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딸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나는 그
들을 가볍게 안아주며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뒤편에 서 있었습니다. 
  아주 조용했다가 힘들어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몸을 떨더니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상했지만, 
나의 어떤 부분은 짐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독
의 사고방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말입니다. 짐도 이기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정말 크게 졌습니다.
  그는 죽기에는 너무 젊었습니다. 내어줄 것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가 없습니다.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닙니다. 가족과도 보내야 할 시간이 아직 많은데,  그
런데 갑자기 시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기가 끝나버렸습니다. 짐에게는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버렸습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절망을 느꼈습니다. 감독은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
니다. 그런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
다. 내가 거기 있는 것이 그의 아내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벽 안으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무기력하게 여겨져서 다음 몇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
할 것 같았습니다.
  짐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내 앞에 누워 있는 데도 말
입니다. 짐의 가족과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안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
말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나느  squddnjs을 나와 혼자 캠퍼스를 걸었습
니다.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짐을 생각하며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태양은 빛나고 있었고, 나무에는  꽃망울이 맺혀 있었습니
다. 한창 피어 있는 꽃들도 있었습니다. 참새들이  여기저기 째재잭 날아다니고 있었습
니다. 짐 발바노를 추억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었습니다.  생명과 기쁨과 아름다움이 가
득한 날이었습니다.
  나는 대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왜 내가 아니고 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이도  같고, 자라난 환경도 비슷하
고, 직업도 같은데, 왜 내가 아니고 짐이란 말인가?'
  신앙이 아니면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대답을 들을 수가 없어서 내 친구를 위
해,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잘 알게 해주시어,  저도 언젠가 우리 가족을 떠날 날
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전에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짐이 세상을 떠난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그의 마지막 6개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과 그와 나눈 대화들을 생각해 봅니
다. 짐과 나눈 대화 중 두가지가 특히 인상에 남습니다. 
  짐은 무언가 이루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데는 
너무나 적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내가 잘못했어.  자네는 그러지 말게." 
라고 말했습니다.
  때때로 나는 교회에 가서 내 친구 짐을 위해 촛불을 켭니다. 나는 그에 대해 생각하
고, 그와 함께 보낸 시간과 아주 특별한 우리의 우정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정은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K감독의 조언 
  -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노력하십시오.
  - 리더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사람들이 떠날 때는 그들이 해준 일에  대해 고맙게 여기고, 그들이 잘 되기를 빌
어주십시오.
  - 우정은 사랑과 함께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어 줍니다.
  - 성장하기를 멈출 때 당신은 퇴보하기 시작합니다.
  -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십시오.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대는 새롭고  색다른 걸 시도해 보십시오. 절대 포기하지 마
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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