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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이야기

딸의 어머니

by Frais Feeling 2020. 5. 15.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서울로 보냈다. 딸이 서울로 가서 
남의집살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선뜻 허락하는 말을 했다. 딸이 보내 주는 
돈으로 논밭이라도 몇 마지기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딸은 아름답고 영리했다. 처음에는 
이 집 저 집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일을 했으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남들이 천대하는 궂은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녀는 젊음과 미모로 돈 많은 남자들을 끌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이 
남자 저 남자한테로 옮겨 다녔다. 옮겨 다니면 옮겨 다닐수록 그녀에게는 돈과 쾌락이 
주어졌다. 사고 싶었던 옷과 보석과, 타고 싶었던 고급 승용차와, 살고 싶었던 집을 
마련하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고향에 있는 어머니마저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곧 늙음이 찾아왔다. 그녀의 젊음과 미모만을 사랑하던 남자들은 더 젊고 
더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을 찾아갔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 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고향을 떠난 후 단 한번도 어머니를 찾지 않은 일이 후회되었다. 
그녀는 서둘러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녀가 고향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깊은 밤이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자 잠겨 
있어야 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어머니의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웬일일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어머니는 아직도 주무시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조용히 마루로 올라서자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순아, 너냐?"
  "네, 어머니!"
  어머니가 활짝 방문을 열었다. 몰라볼 정도로 늙은 어머니였다. 그녀의 가슴은 
무너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어머니, 절 용서하세요."
  "용서는 무슨, 이렇게 에미를 잊지 않고 찾아온 것만으로도 고맙다."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으셨어요?"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은데, 대문이 열려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나는 네가 집을 떠난 후 지금까지 대문을 잠가 본 적이 없다."
  "어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무슨 일이 있는가 했어요."
  "지금까지 내 방의 불도 끈 적이 없다. 난 항상 널 기다리고 있었다."
  "아, 어머니."
  그녀는 한동안 어머니의 가슴에 묻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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