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김씨 집에 사는 황소 한 마리가 우연히 주인 김씨와 막내딸 순이가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아빠, 나 중학교 보내 주세요."
"또 그 소리."
"보내 주세요. 아빠. 나보다 공부 못하는 옆집 숙이도 간단 말이에요, "
"넌 내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알아듣겠니? 나도 널 중학교에 보내고
싶다. 나라고 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겠니? 그렇지만 우리 형편이 그렇지 않다. 네
위로 오빠 둘 공부시키는 것만 해도 정말 힘들다. 우리 집에 너마저 학교 보낼 돈은
없어."
"그럼 이대로 국민학교 졸업하고 말란 말이에요?"
"그럼 이대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말란 말이에요?"
"어떡하니?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다. 널 중학교에 못 보내는 이 애비 마음도 정말
아프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말은 꺼내지 마라. 이 일은 황소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되는 일이다."
황소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자기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순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황소는 착하고 공부 잘하는 순이를 중학교에 가게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순이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황소는 그날부터 자신이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바늘구멍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황소는 매일 밤하늘을 향해 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어느 날 하늘의 음성이 들려 왔다.
"황소야, 네가 네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너의 그
생각을 버려라."
"아닙니다. 버릴 수가 없습니다."
"네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도?"
"그렇습니다, 제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며칠 뒤, 첫눈이 내린 날 밤이었다. 하늘에서 빛줄기 하나가 내려와 황소의 눈앞을
환하게 밝혔다. 황소는 천천히 그 빛줄기를 따라갔다. 빛줄기는 어느 커다란 성문
안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황소는 그 빛줄기를 따라 눈 내리는 밤길을 끝도 없이
걸어갔다.
다음 날 아침, 순이가 눈을 쓸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나가자 사립문 앞에 황소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바늘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황소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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