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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이야기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

by FraisGout 2020. 5. 16.

소녀는 발레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저 애는 발레에 소질이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될 거야."
  소녀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말을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소녀 또한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권위 있는 발레단의 단원이 되어 '백조의 호수'의 
오테트 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공주 같은 배역을 맡아보는 게 최대의 
꿈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 살 때부터 발레 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이 한 시간쯤 연습을 하면 그녀 스스로 두 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다. 소녀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는 컸다. 소녀의 천부적 재능도 재능이지만 남다른 
노력과 성실성을 높이 샀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소녀 자신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 
소녀가 열 다섯 살이 되던 날이었다. 소녀는 발레의 기본 동작 몇 가지를 연습하다가 
갑자기 발목이 시큰하게 아파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려니 하고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갔으나 날이 갈수록 시큰시큰 발목 부위가 아파 왔다. 소녀는 
너무 지나치게 연습을 많이 한 탓으로 발목에 잠시 무리가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발레 연습을 중단했다. 그러나 통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중엔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관절염이었다. 
소녀에게 그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소녀는 발을 잘 쓸 수 없게 된다는 
사실보다 발레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 앞에 절망했다. 그러나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토슈즈(발끝으로 추기 위해 발끝 부분이 단단하게 만들어진 
발레용 구두)를 들고 학교로 갔다. 친구들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발레를 계속했다. 그러나 소녀는 결국 발레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절의 염증은 
가라앉아 걸음을 걷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었으나 심한 운동이 요구되는 발레만은 할 
수 없었다. 소녀는 하루하루를 방안에서 눈물로 보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소녀에게 곧 죽음을 의미했다. 
  소녀는 정말 죽어 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삶의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발레를 한번 추어 보고 죽어 버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햇살이 눈부신 봄날, 소녀는 토슈즈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신나게 발레를 추었다. 
그러나 곡 발목에 통증을 느끼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화가 났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이제는 발레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는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가 우물 속에다 토슈즈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 우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우물 속에는 파란 봄 하늘과 맑은 구름이 지나갔다. 
  소녀는 자신도 토슈즈처럼 우물 속으로 내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소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 사람이 있었다. 소녀가 다니던 
발레 학교의 젊은 여교사였다. 
  "선생님, 전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어요. 발레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소녀는 교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토닥토닥 소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 젊은 교사가 말했다. 
  "울지 말고, 이 꽃을 봐라. 그리고 저 바위도. 산다는 것에 의미 따위는 소용없어. 
장미는 장미답게 피려고 하고, 바위는 언제까지나 바위답겠다고 저렇게 버티고 있지 
않니. 그저 성실하게, 충실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제일이야. 그러다 보면 
자연히 삶의 보람도 기쁨도 느끼게 되는 거야. 너무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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