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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모음/이야기

땅 위의 직업

by FraisGout 2020. 5. 16.

강원도 사북에 간 김 기자는 막장 광원 감장순 씨를 따라 수직 갱으로 들어갔다. 
먼저 탈의실에 들어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헤드 램프가 달린 헬멧을 쓴 뒤, 작업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7백 미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갱차를 
타고 수평으로 1천 2백 미터까지 가서, 다시 갱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미로와 같은 갱 속은 춥고 어두웠다. 지하 사무실에서 막장으로 가는 지도를 
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갱 양편으로 탄가루가 섞인 검은 지하수가 
급히 흘러갔다. 갱 바닥은 탄가루와 뒤범벅이 돼 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졌다. 김 
기자는 오직 헬멧에 부착된 희미한 불빛만 의지하고 김장순 씨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 30여 분쯤 걸었을까. 더 이상 갱도가 없는 곳이 나타나고, 갱벽 
한가운데를 비스듬히 위로 뚫은 새로운 갱도 하나가 나왔다. 두세 사람 정도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좁은 갱 속을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들어가 보니 그곳이 바로 지하 막장이었다. 
  광원들은 좌우로 버팀목을 세우며 안으로 안으로 파 들어가고 있었다. 김장순 씨가 
한 번씩 곡괭이를 내리찍을 때마다 탄 덩이가 떨어져 나왔고, 떨어져 쌓인 탄덩이는 
경사진 배출구를 통해 갱도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김 기자는 곡괭이 질을 하는 김장순씨를 지켜보며 막장에 널브러져 있는 버팀목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막장 안은 지열 때문인지 몹시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도 없는 땅 속 저 깊은 곳, 어딘지도 모르는 
한 지점에 한 마리 벌레처럼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막장에서는 잠을 못 자게 합니다. 담배도 못 피이지요. 그런데 어떤 때는 앉은 채로 
깜빡 졸 때도 있습니다. 
  김 기자는 곡괭이 질을 하는 중간 중간 한 마디씩 던지는 김장순 씨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를 취재한다는 일이 자기로서는 너무나 건방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김장순 씨가 막장을 나온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는 다시 갱 속에 있는 지하 
사무실로 가 그곳에 보관해 둔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어둠 속에서 손도 씻지 않고 
작업복도 입은 채 그대로였다. 
  "드세요. 우린 여기서 이렇게 점심을 먹습니다. 그래도 이때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김장순씨가 김 기자의 몫으로 싸 온 도시락을 건네주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었다. 김 기자는 김장순씨가 건네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광원이 된 지 몇 해나 
되는가, 고향의 농협 빚은 다 갚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건 물론 땅 위의 직업을 갖는 일이지요.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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