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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모음/CEO

CEO가 되는 법 3

by Frais Feeling 2020. 5. 25.

돈 파이츠

캐터필라 "땅을 일구는 기계"

 

일본의 대형 불도저 장비 제조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겨냥하여 건너오고 있을 뿐 아니

, 앞으로 캐터필라와 같은 기업을 업계에서 밀어낼 것이라는 기사가 비즈니스 면을 가득

메운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미국 경제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기업 중 하나가 이 캐터필라

일 것이다. 공로는 CEO인 도널드 V.파이츠에게 돌려야 한다. 그의 지도 하에서 이 기업은

수출을 판매와 재고, 제조경비 절감에서 3위에 오를 정도까지 증가시켰다.

파이츠는 1990CEO를 인계 받자 곧바로 공동 조직에 관한 구조조정을 감행했고, 경비

절감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캐터필라를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이길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인디애나 주 티페카누의 한 가난한 농부

의 아들로 자란 그는 밖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기술자가 되었고 끝내 성공하였

.

캣에서 경력을 쌓은 파이츠가 기업의 경쟁상대를 비롯한 그 외의 모든 면을 꿰뚫고 있다

는 것은 이 기업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였다.

그 경험은 1980년대의 불경기 속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계속되는 불경기 속에서 일본의

경쟁기업들이 앞다투어 몰려들기 때문에, 캐터필라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못했다. 파이츠는

1971MIT에서 미국의 제조업자들이 일본과 경쟁할 수 있을까라는 석사 논문을 썼는데,

캣이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국 시장으로 몰려드는 일본에 대응하여, 1982년과 1984년에 걸쳐 거의 10억 달러에 달

하는 손해를 무릅쓰고 캐터필라는 제품 가격을 일본 경쟁자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맞추었다.

캣은 미국 경제가 그랬듯이 어려움을 극복했고, 기업이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비용 절감을

위해 고안된 5년에 걸친 18억 달러의 현대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동시에 기업을 분산시키

고 책임감을 기르기 위한 새로운 캠페인을 벌였다. 어느새 경영자들은 자산 목표량의 수익

에 따라오는 보상을 생각했다. 그들은 응답했고, 캣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근무한 지도 42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돈 파이츠는 짤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장기적 헌신은 어느 회

사를 막론하고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놀라운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오히려 파이츠가

더 놀란 듯했다.

"이렇게 오래 재임한다는 것은 캐터필라와 같은 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의 모든 직원들이 평생을 이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거대한 기업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제품들과 많은 접촉을

갖게되고, 저마다 생산하는 제품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여기서 일하는 것을 진정으로 즐겁게

생각한다고 느끼지요."

리더십이란 직원들이 그 조직에 계속 머무르는 것과 관계가 깊다. 그가 책임자가 된 이후,

그 기업은 으레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하나로서 빠진 적이 없었다. 73년의 긴 역

사 속에서도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혔다.

파이츠는 1990CEO로 지명되었을 때, 특히 오랫동안 간과했던 캐터필라의 직원들을 비

롯한 기업의 강점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

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워낙에 굉장한 유산과 생산라인을 가진 기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기업들뿐 아니

,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 틈에서 그것만 가지고 성공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았지요."

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회장이며 워싱턴의 세계적인 200개 기업을 대표하고 있는 파

이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에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올바른 조직과 올바른 문화를 가

지고 있어야 하며, 직원들에게 성과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문화를 가졌지만, 1980년대에는 국제 경쟁력에서 일본에 뒤 처져 있었습니다.

계적으로 선두를 달리는 오늘날의 우리 위치를 되찾기 위해 치열히 싸워야만 했지요."

경쟁력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기업 내부의 지적

자본을 찾기 위한 캐터필라의 개편이었다.

"기본적으로 말단까지 모든 조직이 잘 어우러져 운영되는 기업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가

장 말단 조직의 의견까지도 수렴하는 것, 직원들에게 사명감을 느끼게 하며 스스로의 결정

에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 훌륭한 성과가 있을 때에 반드시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것이 내 경영 철학이었습니다. 내가 CEO로 오기 전에 이미 이 기업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

해 행동을 개시했던 것 같습니다."

파이츠는 또한 두 가지 특별한 일을 함으로써 그의 방침을 더욱더 밀고 나갔다. 하나는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수익을 함께 나눠 갖는 것이었

.

그가 이루어낸 일들을 살펴보면,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가 기대하는

캐터필라의 모습은 다가오는 미래에 기업과 직원들에게 얼마나 훌륭하게 일을 수행할 것인

가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라는 시대는 지나갔다.

"전혀 빈틈없이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사항을 독재적으로 처

리하는 CEO들도 물론 있을 것이고요. 그러나 2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캐터필라와 같은

대규모의 기업을 운영할 때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들

또한 기업 목표의 한 부분이 되어주어야 하지요. 메모를 하거나 연설을 하고 법을 제정하려

는 생각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을 한 팀으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훨씬 효율적이지요."

성과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직원들을 한데 끌어 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

.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작업 결과에서 나오는 이익을 틀림없이 얻게 됨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파이츠는 그의 비전에 두 번째 부분으로 옮겨간다. 그것은 바로 직접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올바른 결정을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말단 직원들의 의견까지 수렴할 수 있어야 합니

. 또한 동시에 정보와 권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의 문화에 관련된 사항이기도

하지요,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면, 아마도 '하암' 하는 따분한 반응

나올 것입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낮은 직급에 있는 이들의 의견까지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그럼 그 직급이 얼마나 낮은 직급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찌보면 정말 진심인

지 시험해보려고 엉터리 결정을 내리려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형편없는 결정을 내렸다

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2,3가지의 결정을 한다면, 분명 주어

질 권한의 직급을 한두 단계 높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권한은 틀림없이 직접 일

하는 사람들에게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에 대해서 말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투자나 판매 혹은 가격 등 성공적인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

을 내리도록 하려는 것인지 조직은 아주 빠르게 알아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적인 것입니다. 올바른 조직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며, 그 조직 속에서

올바른 풍토가 조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항이지

. 동료들보다 더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처음 두 가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이 세 번째 요소는 중요

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하여 파이츠는 기업을 개편한 것이다.

"기업을 완벽한 이익 센터로 전환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기업은 초창기부터 본사가 운영

해왔고, 나는 내 생애를 통틀어 이에 대해 부담을 지면서 일해왔습니다. 나는 본사에 속한

직원이 아닙니다. 16년은 해외에서 살았고, 5개 대륙에서 일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리노이의

피오리아에서 멀리 떨어져 지냈고, 내가 하려는 일 혹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전혀 상관

없는 지시사항들이 담긴 전보와 편지를 받으면서 지냈지요. 내 전임자도 이와 똑같은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이에 본사 조직을 분할해서, 모든 이들이 각각의 피앤엘과 이익을 올릴 대

상을 가지고 이익 센터나 서비스 센터로 가게하고, 그들이 가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면, 서비스 제품을 구입할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야망에 불타게 될 것입니

. 이익센터를 사람들이 신뢰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상인을 찾게 됩니다. 그 가격으로 그러

한 서비스를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내가 CEO가 된 첫날,

러한 일을 할 계획이라고 미리 공고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어쨌든 계획대로

추진할 거라고 말했지요."

캐터필라는 이제 26개의 수익성 있는 센터를 가졌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작업 결과에

따라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장하는 200여 가지의 보상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의 실행은 모든 경영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이제는 결과로 모든 것이 좌우됩니

. 결과에 대한 주요 평가방법은 자산에 대한 수익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설명하기가 간편하다는 것입니다. 수익은 최상의 수준인데 자산은 저

밑바닥 수준이라고 합시다. 그 비율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높은 숫자를 나타내

는 수익률을 더 늘리거나 낮은 숫자를 보이는 자산 수치를 더 줄이는 것뿐이지요. 기술자들

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 저도 기술자 출신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파이츠는 재빨리 덧붙였다.

캐터필라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모든 면에서 성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계속 성공의 길을

가는 대신 파이츠는 정반대의 방침을 택하여, 1999129일 돌연 은퇴를 발표했다.

"CEO로 재임한 8년 동안, 우리는 100억 달러의 기업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

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주 많은 이익을 올렸지요. 이제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 기존에

는 약세를 보이던 전 소련 연방이나 중국 등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입, 이전에는 없었던 새

로운 생산라인 개발 등 포함한 야심찬 성장 프로그램을 가득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는

10년 안에 3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1년 실질 성장률이 6퍼센트에

7퍼센트 정도 오를 거라고 말해왔는데, 이는 계획한 모든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게

, 다가오는 3년 안에 반드시 일어날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3년은 훌륭한 전략을 구상하

는 기간이 아니라 훌륭한 전략을 이행하는 기간입니다. 그리하여 이미 적절하게 구상된 성

장 계획을 확실히 이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이러한 명확한 목표를 정착시키는 것 또한 CEO의 임무라고 말한다. 따라서 '몸소 실천하

는 것' 또한 리더의 몫인 것이다.

"몸소 실천한다는 것은 어떤 작업의 수행과정을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직접 수행해내

는 것입니다. 또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사람에게는 보상을 하고,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상의 기회를 주지 않는 거지요."

"또 하나 CEO로서의 성공은 자신이 승진시킨 사람이나 핵심 자리에 올려놓은 사람들에

게 평가받습니다. 말하자면 형편없는 기업에는 형편없는 사람들도 무척 많지요. 그런데 그런

기업에서는 여전히 누구에게 잘 보였는가 혹은 누구를 알고 있는가에 따라 승진이 좌우됩니

. 연줄이나 인간관계에 상관없이 성과를 증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대로 승진하게 된다면,

그 조직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입니다. 실행과정에 대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직원들은 항상 주시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어째서 뛰어난 성과와 그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승진되지 않는지 의아해할 것입니다."

파이츠의 비전은 간단했다. 자신의 직업과 성공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도록 할 것. 그리

고 성공에 대해 보상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비전을 실행하였고, 캐터필라의 직원들은

그에 응답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도사"

 

빌 게이츠는 오랫동안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간과하기도 한다.

 

1.빌 게이츠가 만들어낸 기업이 주는 엄밀한 의의

2.빌 게이츠가 아직 45세도 채 못 되었다는 사실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대충 얼버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빌 게이츠만큼 예찬에 가까운

명성을 얻은 기업가가 이전에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기사들이 그가

얼마나 똑똑한가 혹은 얼마나 부자인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빌 게이츠의 거의 모

든 수익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에서 나오며, 1999년 봄, 게이츠의 재산은 약 800억 달러로

서 세계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지고 있다.

빌 게이츠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은 전형적으로 이렇게 시작된다. '가장 똑똑한 산업계

거물이자 작은 국가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군소의 신보다도 강력한 힘을 자

랑하는 윌리엄 헨리 게이츠 3..."

게이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명사가 되었다. (포천)에서 바바라 월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고, 가끔은 풍자의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패러디인

윈블로 '98에서는 '은하계의 가난한 얼간이에서 최고의 통치자로 출세'한 주인공 빌 게이

를 흉내내게 된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얼마나 많은 일을 집에서 하며,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퉁명스럽게 대하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가 애용하는

골프 클럽의 상표까지도 유명세를 탈 정도이다. 그는 캘러웨이의 빅 버사 드라이버를 사용

한다.

이렇듯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간혹 게이츠가 이

루어놓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버린다. 빌 게이츠는 인텔의 앤디 그로브와 함께 전세

계의 퍼스널 컴퓨터 사업을 일으키는 데 앞장서왔다. 게이츠와 어릴 적 친구인 폴 알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설했는데, 거기서 탄생시킨 운영체제는 세계 퍼스널 컴퓨터의 80퍼센트

이상을 주름 잡고 있다. (이들이 모든 시장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면서 공격적인 사업을

펼쳤기 때문에, 미국 역사상 가장 대단했던 재판 중 하나인 독점 금지에 관한 재판이 열리

기도 했다.)

지성과 개성이 어우러진 게이츠의 리더십은, 이 책에 실린 다른 리더들과 별로 다르지 않

았다. 열심히 주어진 일을 파고들며 자신의 임무를 치밀하게 수행함으로써, 직원들이 필사적

으로 따라하고자 노력하는 최고의 기준을 세웠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종사하는 직원에게는

게이츠의 리더십과 접근법을 반영하려는 경향이 우리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리더들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접근법은 냉혹할 정도로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게이츠는 생활방식부터 시장활

동 방식에 이르는 모든 것을 바꾸어줄 기술력에서는 줄곧 태연할 정도의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책 (미래로 가는 길)에 나와 있는 다음의 구절은 미래의 의사소통 방법을 묘사

하고 있다.

 

당신은 내부에서 받는 모든 통신의 명시적인 전달방법을 정하게될 것이다. 저녁식사 동

안에 누가 전화를 걸 수 있는지, 차안에 있을 때나 휴가를 떠나 있을 때 당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한밤중에 자다가도 어떠한 전화나 메시지를 보낼 것인지 결정하

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나머지 소프트웨어 산업의 모든 돈은 연구에 투자되었다. 그러나 컴퓨

터와 인터넷이 앞으로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널리 보급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투자만으

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는 제자리에 않아서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몇 년 안에 모든 규모의 정보처리 기능을 겸비한 새로운 기종의 퍼스널 컴퓨터

를 개발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커다란 발전이 될 것입니다. 고성능 무선 호출기와 휴대폰

에서 '휴대용 퍼스널 컴퓨터'나 신문처럼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전자 서적에 이르기까지 모

것을 만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군더더기 없고 투명한 방식으로 인터넷에 연결되

어 사용자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소프트웨어는 말하고, 듣고, 보고, 배우는 컴퓨

터를 탄생시킬 것입니다. 미래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가장 기본적 사양만

을 갖춘 오늘날의 미숙한 소프트웨어를 되돌아보게 되겠지요."

사업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너무나 잘 아는 게이츠는 새로운 산업 개발에 대해 광범

위하게 연구했으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동차 산업과 컴퓨터 산업의 초기는 놀라운 만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이것은 그의 연설에서 자주 언급하는 주제이다.

"컴퓨터와 같이, 초기의 자동차들은 열광팬들이 주로 애용했습니다. 초기의 컴퓨터를 구입

한 사람들은 퍼스널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썩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가장 효율

적인 방법이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나가서 과시하기를 즐겼습니다. 자동차 산업 초기 최고의 잡지

(마이 오토모빌)(호스리스 에이지)를 보면 알 수 있지요."

"과거의 (호스리스 에이지)를 살펴보면, 컴퓨터 산업의 핵심 잡지인 (바이트)와 비슷하다

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잡지는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심도있게 다루고자 했으며, 그 내

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스리스 에이지)가 장기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이 부분만큼은 절대적으로 성공했다고 봅니다."

"퍼스널 컴퓨터의 부트 과정이 나쁜지 아닌지 잘 모르기는 해도, 아주 진부한 과정입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려면, 우선 컴퓨터 뚜껑을 열고, 카드를 넣고, 스위치들이 어

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명령을 내릴 때 내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리소스 충돌을 파악해

야 하는 시대가 있었지요.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사람들도 컴퓨터 용량을 늘리거나, 컴퓨터

가 가진 기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주변 기기들을 추가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요."

"초기의 자동차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진흙투성이 길에 바퀴가 빠져 꼼짝할 수 없

을 때도 있었지요. 사실 운전사의 본래 개념은 누구를 태워다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 고장났을 때 즉시 자동차를 수리해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지요. 물론 그 개념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자동차들이 차를

더욱 믿을 만하게 만들어서 모든 이들이 스스로 차를 다룰 수 있도록 했지요. 컴퓨터의 경

우는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게이츠는 자동차와 퍼스널 컴퓨터가 혁신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자동차는 실질적인 면에서도 놀라운 혁신의 중심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와 같은 활동 요

지도 갖추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새로운 기업들이 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고 신제품이 속

속 등장했지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모두다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중에는

자동차에 아주 핵심요소로 자리잡은 것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 시스템의 도입으로

자동차에 라디오를 설치했고, 헤드라이트를 설치하여 어두운 밤에도 어려움 없이 운전할 수

있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되었던 일들이 점차 가능해졌습니다. 전력 도

입이라는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루어지면서 파워핸들과 심지어는 자동으로 창문을 올리고 내

리는 기능까지도 생겨났습니다. 너무 힘들여 운전할 필요가 없어졌지요."

"퍼스널 컴퓨터에도 이 같은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컴퓨터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급속도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등 기하급수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더

많은 개발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측면에서 볼 때, 게이츠는 컴퓨터 산업이 자동차 업계의 발전을 연구하

는 데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비즈니스 분야의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앨프레드 슬로언이 쓴 (제너럴 모

터스와 함께한 나의 인생)이라는 책입니다. 앨프레드 슬로언은 제너럴 모터스를 이끌면서

놀라운 성공을 이룩한 사람이지요. 슬로언은 진정한 현대 경영의 기술을 만들어낸 인물입니

. 그는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의 모델 연도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슬로언은 통합의 필요성을 주장했는데, 이것 또한 컴퓨터 산업에서도 유사한 점입니다.

그는 자동차 개발의 관건은 효율성을 높이는 거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곧 통합의 정도를

높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수많은 복잡한 부품들이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산업에서도 부품 단계와 같은 많은 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자동차 부품들을 하나씩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정비소에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일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

는 것입니다. 윈도 98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똑같은 기능의 수많은 소프트웨

어 부품들을 나가서 구입해와야 한다면, 아마도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자동차의 외부적인 관련 산업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신종 자동차 전시회와 이를

위한 전시실도 필요하고, 운전자들의 안전교육은 필수이며, 전국적으로 점검 센터를 운영해

서 필요한 때면 언제나 가스를 주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장거리 여행 도중에 쉬

어갈 수 있는 휴게실도 필요하지요. 1925년에는 처음으로 모텔이 등장했습니다."

"컴퓨터 산업에서 이러한 외부적인 사업은 아주 흥미로운 분야지요. 병목 현상도 일어날

수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훈련받고 있습니다. 하이테크놀러지를

둘러싼 새로운 직업과 서비스들은 이미 기술 공급을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

닐 수 없습니다. EDS나 아더 앤더슨과 같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대형 상점을 운영하는 신

생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이들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결코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미치는 파장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사고방식이 바

뀔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나면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에 나

중에는 과거로 되돌아가서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게이츠는 자동차의 광범위한 보급 이래로 발생한 많은 예를 들었다.

"예를 들면, 쇼핑센터를 생각해봅시다. 평균 규모가 30년 전보다 4배 이상 거대해졌습니

. 자동차를 가진 고객들이 외출해서 더 많은 물건을 사고 짐을 옮기게 되는 일이 이전보

다 늘어났기 때문이지요. 외곽에 쇼핑센터를 세울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은 모두 자동차가 주

는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동차와 컴퓨터의 같은 점은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곳에

서 살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다른 곳에 있는

사람과 컴퓨터 게임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나도 전국에 퍼져 있는 친구들과 인터넷을 이용

해서 컴퓨터 카드게임을 즐긴답니다. 인터넷으로 서로 연락하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져 있어

서 정작 얼굴을 보게 되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습니다. 짧은 명령어를 치는 것이 더 익숙합

니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하는 것

을 더 선호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조금은 못되졌다고나 할까요/"

"자동차가 사람들의 거주지나 쇼핑 방식을 형태로 변화시켰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의 파급

효과는 이보다 훨씬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의 탐색기능을 사용하여 관심분야에 대한

전세계적인 전문적 기술을 얻겠다는 생각, 다시 말해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확한 지식을 얻으려는 필요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지역적이 돼야 하는 서비스 활동이,

조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시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변화

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모든 일이 언제쯤 가능할까? 게이츠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날 거라고 말한

.

"처음으로 자동차가 등장해서 미국인의 75퍼센트가 자동차를 사용하게 되고,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까지 약 한 세기가 걸렸습니다."

"퍼스널 컴퓨터의 경우에는 그 성장이나 대중적 인식은 더욱더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습

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요. 오늘날의 컴퓨터는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가격이 많

이 싸졌지요. 생활은 풍족해지지만 그에 따른 발전 속도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으로

3년 안에 컴퓨터가 절대적인 필수품이 될 거라고 내가 보고 있습니다. 2001년까지 전국 60

퍼센트의 가정이 퍼스널 컴퓨터를 보유하게 될 것이며, 미국 국민의 85퍼센트가 인터넷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각 가정이 이렇게 빠르고 거대한 규모로 새로운 일에 동참한다는 것

은 전례가 없던 일이지요."

"그래서 퍼스널 컴퓨터가 몰고 올 바람은 실로 놀랄 만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출발선상에 서 있는 것뿐이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하드웨어 산업의 측면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에게 쓸 만

한 자원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게이츠는 말한다.

"하드웨어쪽 종사자들은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것을 주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 용량이 4

기가바이트가 안 되는 기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기가 대신에 1기가바이트의 드라이버

를 가진 하드디스크를 생산하는 규모 경제학상 제조원가에 비해 그것을 제대로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5년에서 10년 동안에 이것이 해결된다면, 그야말로 수백 기가바이

트의 저장 공간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더 훌륭한 아이디어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비자의 요구 사항이라고 게이츠는 말한다.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정보를 다 알고 싶어합니다. 사진을 계속 보관할 수 있기를 원하

며 좋아하는 음악이나 비디오 클립을 계속 갖고 싶어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장치에

저장해놓고, 언제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기를 바라지요. 하드웨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

은 이 흥미로운 일들이 가능하도록 많은 틈을 줄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러한 기능을 공급하는 문제를 앞에 놓고 있으며, 아직까지 불충분한

이 분야를 위해서는 중대한 연구가 필요할 거라고 게이츠는 말한다.

"나는 진정으로 연구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져다줄 보상을 ale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이 연구분야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

. 그 결말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지요. 그 필요성 또한 너무나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정보화 시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다가가는 정보처리 능력은 가장 손에 땀을 쥐

게 하는 문제입니다."

"정보의 과잉 공급 또한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인터넷에 들어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거지요.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질문내용을 타자

로 치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과 똑같이 말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것입니다. 이것

이 원활해지도록 지불해야하는 상업적인 비용은 극적일 정도입니다."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습니다. 오늘날 퍼스널 컴퓨터에 관한 정보를 얻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방법을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해야 하지요. 우리

는 서로 다른 이름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색 명령어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생

각해보십시오. 아직도 우리가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그래서 연구할 필요

가 있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만들어놓은 목록에 '쉽게 사용하기'

어 놓습니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입을 자신이 호언했던 부분에 쏟아 넣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목표로 삼았던 규모에 도달한 것은 대략5,6년 전이었습니

. 그후 자연언어와 그래픽 같은 분야에 뛰어들었지요.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러한 일을 시작

한 것은 약3,4년 전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가 되

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오직 얼마나 빨리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가 뿐입니다. 이것은 항상 기업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지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 수익은 기업이 소유한 레드먼드,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영국에 있

는 연구기관을 거쳐 더 넓게 확장된다.

"사실 기업이 연구에 투자할 때 비로소 산업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야에서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위대한 업

적들이란 서로 공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

는 지금의 현실을 넘어서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산업이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연구는 장기적인 전망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5년이나 10년 안에 어떤 대단한 결

과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주식시장에서 보통 100배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산업으로서는 사실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는 연구보다 주식시장으로 들어간 소액 자금이 주가를 5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단기간의 연구는 그저 근시안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게이츠는 말한다.

"3년 전 가장 좋은 보험에 들거나 혹은 차를 샀던 기억을 돌이켜본다면, 그 당시에 퍼스

널 컴퓨터가 그러한 업무를 도와줄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그러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1920년의 자동차 산업과 비교해봅시다. 필요한 일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자기 위치

를 제대로 잡아야 할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연간 30억 달러를 이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일을 추진하는 게이츠의

모습은 특별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매일매일 직장에 나간다는 사실을

사랑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 새로운 기회, 새로이 배워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

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직업을 wmf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루 거스너

IBM "당신은 무엇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 성공요인을 쓰려고 보면 쓸 수 없음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V.거스너 2세는 록스타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명사이다. 단추를 잠그는 셔츠와 깨끗

한 청바지가 일반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산업에서, 거스너는 항상 IBM의 회장에 걸맞은 암

청색 양복을 애용했다. 그것이 그의 모습이다.

컴퓨터 전시회에 가는 고객들과 경쟁기업에 종사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여전히 그의 자서전

을 사모은다.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10년 전에 엘비스나

비틀즈를 만나기 위해서 예약해두었던 것과 같은 상기된 어조로 루 거스너를 만난 것에 대

해서 이야기한다. 이 사람은 지오파디 퀴즈의 명쾌한 대답과도 같았다.

이러한 명성과 추종을 불러일으킨 것은 거스너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었다. 중요한 내부

회의가 있을 때마다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도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신속한 결정을 내리

기 위한 방편으로서 서면 브리핑을 요구한다. 또한 거스너는 외부 인사들을 흔쾌히 접대하

면서 "나는 회의시작 2분전에 도착하고, 회의가 끝나면 즉시 떠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작은 회의를 진행하는 능력만으로 자문 회사인 맥킨지의 역사에서 우리의 가

장 젊은 파트너가 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여유 있게 만드는 능력만으로 거스너가

50세가 될 때까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의 전환과, 막강한 알제이알 나비스코의 바이아웃

의 운영이 가능했던 것도 물론 아니다.

사실 과거 그의 업적은 현재 직업을 위한 준비단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스너의 '빅 블루'의 재임기간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IBM으로 선회

2)걸출한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IBM 만들기

 

많은 사람들은 잊었지만, IBM은 이사회가 거스너를 채용하기 전까지 기업을 개별적인 부

서로 나누어(정부의 위임 없이) 주주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기업은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에 서 있

었다. 제품들은 시장으로 더 빨리 나가고 있고, 서비스 사업은 다시금 향상되었다. 기업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는 먼 옛날의 일이 되었다.

비즈니스 잡지의 커버스토리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던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

. "IBM이 돌아왔다."

 

루 거스너의 최대 결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다.

IBM 이사회에 의해서 채용되어 199341IBM을 인계 받은, 가장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사람으로서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거스너는 신속히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엄청

난 부담을 떠맡았다.

모건 스탠리를 위시한 증권 인수업자들이 IBM의 해체를 돕고 주식을 일반인에게 하나하

나 분배하기 위해서 채용되었다. 극소 전자공학과 디스크 드라이브 사업 같은 다양한 부서

들이 폐기되어야 했다. 투자 공동체를 비롯한 모두가 거스너의 성명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거스너는 결코 파산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기대했던 일들을 해냈다. 다운사이징과 그 외의 야심찬 새로운 목표들을 공

표했지만, 자신을 '강렬한, 경쟁적인, 집중력 있는, 무뚝뚝한, 강인한' 사람으로 선뜻 소개했

던 그는 궁극적으로 빅 블루를 해체시키지 못했다.

거스너의 생각을 알았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동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면서 IBM의 고객이던 시절을 자주 생각하곤 했습

니다. 제품하나 또는 서비스 하나 때문에 IBM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생산라인의 깊이와 연구 업적, 고객서비스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었지요."

간단히 말해 그는 해법을 산 것이었다. 단지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업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 때문에 IBM과 거래했던 것이다. 자신이 운영하게 될 기업에 대해서 연구한 휴,

거스너는 IBM이 작은 부분들의 총합보다 더욱 큰 기업이며, 정보기술 공학 산업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가장 적절한 제품이라고 결론지었다. IBM의 고객들이 통합을 존중한다고 믿었

. IBM경영을 시작한 첫 두 달 동안 주요 고객들, 산업 리더들과의 일련의 모임에서 그러

한 직감을 확인했다. 그 후 거스너는 IBM을 하나의 덩어리로 유지할 거라고 공고하였다.

이러한 깜짝 놀랄 만한 결정을 내린 후 얼마 되지 않아 거스너는 또 다른 결정을 내렸다.

IBM을 위한 중요한 비전을 새로이 창조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이것은 기업이 지금 당

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 말은 초기의 기자 회견에서 거스너가 언급한 "IBM

이 바로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이상입니다." 라는 말에 대한 많은 이들의 해

석이기도 하다. 오히려 거스너는 IBM의 현재 상황으로는 정보기술 공학이 그린 미래에 대

한 꿈같고 유토피아적인 모습이 현재의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IBM의 고

객들과 주주들은 컴퓨터 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우선 시

작해야하는 기초적인 일들이 많았다. IBM은 안정을 되찾고, 수익성을 되돌리며, 성장해야

했다. 시장과 고객에게 다시 연결되어야 했다. 또한 더욱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신속히 유

통시켜야 했다. 이것이 모두 리더십을 되찾고 이상을 만드는 합법적인 기준을 게우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였다.

1995년 가을, 드디어 이 모든 일들을 끝마친 후, 거스너는 그의 이상을 만천하에 드러냈

. 그것은 후에 전자산업이라고 불리는 네트워크 컴퓨팅 작업이었다. 인터넷과 같은 강력한

전 세계적 통신망에 좌우되는 컴퓨팅 모델의 첫 번째 명확한 표현이었다. (이것은 넷스케이

프의 IPO 이전의 일이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 이전

에 일어난 일이다.)

최근 CNBC와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거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 중심에 설 것을 광

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모든 일은 누가 우리의 고객이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파

악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모든 네트워크 컴퓨팅, 전자산업 세계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이 분야를 주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었던 덕분입니다."

거스너는 고객의 시각에서 IBM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덧

붙였다.

"기업 내부에 존재하던 많은 중점 사항들을 제거했습니다."

장기간 IBM에서 근무해온 직원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도 그러한 중점 사항 때문에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고 동의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오직 앞만 내다볼 것이다

거스너는 기업이 외부인에 의해 운영된다는 인식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IBM 경영인들은 거스너가 기업의 공동 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방법을 예로 든다. 그는 기업의 회의운영 방법, 오버헤드 프로젝터의 사용금지, IBM 사람들

이 사용하던 '금속조각', 즉 프로젝터와 함께 사용하던 슬라이드를 교체했다.

거스너가 오버헤드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제도적인 기업회의의 주제,

즉 어두컴컴한 회의실, 발표자보다 차트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야 하는 길고 긴 발표, 무엇

보다도 간부들 설득하기 위한 시간에 드는 과다한 경비 지출 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없앰으로써, 사실 여전히 가끔씩 이것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거스

너는 단순히 회의를 소집하는 것보다 직원들의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을 우선 시 했

. 회의 참석자들이 결정할 사항을 확실하게 미리 준비하도록 했고 단지 정보를 나누거나

내부적인 탁상공론만을 계속하는 일이 없도록 몰아붙였다.

이 모든 변화는 이론적으로는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조직 내의 사람들이 그 이면에 담겨

있는 뜻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단순히 이론에 그치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거스너에게 인계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거 제시하는 변화에 낙담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인계 받은 직후에 날마다 제공되었던 바이아웃 패키지를 마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IBM의 대다수 직원들은 거스너의 생각을 믿었으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힘차게

일을 진행했다.

거스너는 이러한 반응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기업의 과거를 다시 되돌리려는 리더십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인내심을 갖고 일해온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무시켰습니다. 그들은 최고였으며 우리의 성공은 나 혼자 이룬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을 해낸 사람들은 28만여 명에 이르는 우리 직원들입니다. 우리는 중점을 두

어야 할 일을 바꾸었고, 선입견을 떨쳐버렸습니다. 최고의 재능을 소유한 사람들이 이것을

한데 모아 융합시킴으로써 기업을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숫자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거스너가 CEO로 취임한 이래로, 주주들의 총수익은 연

이율 47퍼센트로 증가했으며, 1993년에서 1998년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자산가치가 1,460

달러까지 증가했다. 게다가 IBM은 전자산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인터넷에서 파생된

진가를 개인과 산업, 제도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강력한 힘을 다시 한

번 발휘하게 된 것이다.

 

교훈

IBM이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쳤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냐고 물었다. 거스너는 전혀 놀라

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오늘날의 많은 대기업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성공증후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성공증후군이 일어나는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습니다.

것은 신뢰받고 검증된 것이기에, 그 성공은 오랫동안 매달리게 되지요, 세계가 변화하고 있

다는 것을 아는 것과 10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경영에 관한 관례를 다시 고쳐 쓴다는 것

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IBM은 다음과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내부적인 평가 척도를 가지고 IBM을 평가하였습니다. 과거에 시행되던 것과 같

이 직원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시하는 내부적 구조를 세웠는데, 한동안은 매우 성공적이었

습니다. 정작 산업과 고객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을 때, 실질적으로 관료주의가 시장에서 더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낡은 행동 방식을 유지했던 것

입니다. 그리하여 1993년 봄, 결국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급한 대처

방안이 필요하던 그 시기에, 우리는 변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유능한 수천 명의 직

원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은 기꺼이 변화에 동참해주었습니다."

IBM은 앞으로도 자기 만족적 사고방식을 경계할 거라고 거스너는 힘주어 말한다. 그가

설명한 것처럼 한번 직업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심각한 난관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이 안내서를 작성하고 법칙을 상세히 정리할 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

상 현 상태를 살피거나 의문을 갖지 않게 됩니다. 대개 모든 성공한 기업들은 그 성공을 정

착시키려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며, 자신의 성공을 그대로 정착시키려고 하면 내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내부의 일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에 어려움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기업의 발전은 내부에서 바라만 보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끌

어들이는 데서 비로소 이룩되는 것입니다."

 

레이 길마틴

머크 "보다 높은 목표를 위해서 일하라"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전설을 바꾸는 사람이 되려하지 말고, 전설을 바꾸는 이를 뒤따르는 사람이 되라."

옳은 말이다. 슈퍼스타의 뒤를 잇게 되면 그와 영원히 비교되는 운명에 놓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운동선수, 연예인 혹은 사업가들이 슈퍼스타의 뒤를 잇기를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먼드 길마틴은 이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머크 앤 컴퍼니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P.로이 버젤로스의 후임이 레이먼드 길마틴

으로 결정되었을 때도, 일반적인 불안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러 면을 생각해볼 때, 숙련된 기술자인 길마틴이 선택된 것은 뜻밖이었다. 그는 지난 5

년 간 병원과 의료기기 공급업체인 벡톤 디킨슨 앤 컴퍼니를 운영했다. 1994년 머크를 맡게

된 그는 제약 분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외부인이었다.

헬스케어에 관한 세계의 인식은 변했다. 그 속에서 길마틴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벡톤 디

킨슨 앤 컴퍼니에 있는 동안, 그는 몇 단계의 업무처리 과정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함으

로써 유명해졌다. 이러한 구조조정으로 벡톤 앤 컴퍼니는 바로 의약품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되었다. 벡톤 앤 컴퍼니의 미국 내 판매율은 80퍼센트 이상이 정부 관리기구와 대규모의 구

매단체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길마틴은 협력단체의 고객들이 오늘날의 제약회사에

기대하는 바를 훤히 알고 있었다.

길마틴은 머크의 CEO직에 오르면 정밀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떻게 하면 버젤로스가 남겨놓은 최고의 업적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지

금 당장 눈앞에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것을 결심했다.

"도전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업은 한동안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신약품 개발이 시급했습니다. 또한 메드코의 인수작업을 해야

했으며, 가격 억제 쟁점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의약품 가격을 낮

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의약품 유통시스템에 대한 정밀조사를 명령했다.)")

"어떤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의 뒤를 그럴듯하게 이어갈 것인가 따위에는 관심 없었습니

. 기업과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커다란 도전상대였습니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주가가 4배나 급등했다. 신약품이 개발되는 중이었으며 메

드코와의 통합 또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도대체 길마틴은 무슨 일을 한 것일까?

"1994616일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30~40명의 경영진들과 인터뷰했습니다.

본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했지요."

1)우리의 가장 커다란 당면 과제가 무엇인가?

2)당신이 CEO라면,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하겠는가?

"이 인터뷰로 기업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외부 사람이고 사람들이 우리의 성공을 인정했기 때문에, 나와 얘기한 사람들은 아

주 솔직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한 내용들을 기초로 머릿속에 있던 많은 생각들에

우선 순위를 매길 수 있었지요. 그뿐 아니라 그들은 기업의 경영에 대해 자신감을 심어주었

습니다. 당장 시급한 문제로 여기고 있었던 그 다음 단계, 즉 적재적소에 훌륭한 경영진을

배치하고자 하는 일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요."

"이 같은 경영진을 구성하는 데 두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능력

과 성취 실적이었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머크에 종사하는 다른 많은 직원들에게 인

정받는 사람을 핵심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인물, 직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이 필요했던 거지요."

길마틴의 선택 비결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것이었다. 리더십에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크에서 절대로 바뀌지 말아야 하는 단 한 가지는 제약회사가 무엇을 대표하는가에 관한 인

식이었다.

새로운 경영진을 선출하기 위한 준비에서, 길마틴은 과거 1925년에서 1950년까지 사장으

로 재임했던 설립자 조지 W.머크가 세워놓은 이 기업의 핵심 가치를 연구했다.

"그는 '약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것을 항상 염두 한다면

이익은 자연히 뒤따라올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키기 위해 약품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지요. 우리의 주가는 이러한 신념을 성실히 이행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포천)의 조사결과를 보니, 머크가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베스트 10에 들었더군요. 그리

고 직원들이 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일하는 점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기자에게 내가 에이

즈 약품에 재해서 소개했는데, 이것은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어떤 단백질 분해제보다도 가

격이 저렴합니다. 이 약품의 특성상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요. 조지 W.머크의 철학

에 대해서 이미 말했듯이, 재정적인 수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간절하게 약

이 필요한 사람에게 약을 공급해줘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격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내외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격

려해준 셈이었지요. 말로만 원대한 목표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생동으로 보이는 게 중요합니

."

길마틴을 능력 있는 후보자들이 이러한 가치를 함께 나눌 만한 됨됨이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보다도 선발 후보자 명단에 오른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결과를 달성했는지 살폈다.

길마틴을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찾고자 했을까?

그는 이 질문에 길게 설명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경영위원회를 통해 머크의 리더십에서 중요한 특성을 찾아냈습니다.

아무 때나 선반에서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적 차원에서 지시할 수 있는 것

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잘되는 못되는 이일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다음의 네 가지 기본

특성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1)자신을 알고 개발할 것 2)사업을 알고 개발할 것 3)자기 사람들을 알고 개발하며 지원

할 것 4)의사소통

"자신을 알고 개발한다는 것은 윤리와 통합의 기준에 따른 자기 관리입니다. 자신의 분야

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그 분야를 올바로 이해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

.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올바른 판단력과 경쟁의식을 가진 훌륭한 사업가를 기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는 조직과 사람들을 개발하기 위한,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

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지도원칙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성취하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필요한 정

보를 얻기 위해서 조직 내의 모든 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엄청난 힘

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요."

길마틴은 머크가 추구하는 기업 내의 그림이 명확해지자 곧 전략적인 방향, 즉 포괄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노동절을 지낸 후 적소에 경영진을 배치했습니다. 10월 초부터 시작된 이 작업을 두 달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당시의

고정관념에 다소 위배되는 사항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한 한 가지는 과거에 이 기업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혁신적인 연구

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전체 산업을 살펴볼 때, 이것은 아주 확실한 결정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보건 유통시스템과 전문경영인으로 관리되는 보건 기업이 속

출함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변화 때문에, 경영전문가가 관리하는 보건 기업이 그러한 혁신

적인 연구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을 믿지 않았고, 결국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지요.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중대한 변화였습

니다. 평범한 약품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었으니까요."

"우리가 계획한 연구에 부적합한 모든 사업을 중지했습니다. 특수 화학약품 사업을 철수

하는 등 연구에 불필요한 모든 사항을 제거하였습니다."

"두 번째 핵심적 결정은 인수와 합병을 통한 성장이 아니라 내부 개발에 투자하자는 것이

었습니다. 1994년에 내린 이러한 결정은 우리의 연구 망을 이용해 발견한 사실, 즉 내부 개

발을 통해 성장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잠재력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고정관념에 대항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비롯한 모든 사업의 역사를 보면, 내부 개발을 통해 성장한 기업이 인수

와 합병으로 성장해온 기업보다 주주들의 자산 가치를 더 크게 창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큰 규모의 제약회사들이 서로 협력한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보건기

업의 구매자들은 기업의 규모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직 최고의 치료법만을 찾고 있지요.

기업의 규모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연구에서 어떤 규모를 넘어서기만 한다면,

신약품을 개발하기 위한 많은 것을 이미 얻은 것입니다. 그것들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방편

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연구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이 곧 생산성이 높아진

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거지요."

"세번째의 중대한 결정은 메드코와 함께 할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메드코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유통업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의약품 관리기구였지요. 그래서 두 기업이 각자 성장하는 것보다

함께 손잡고 성장하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

습니다."

"그래서 제약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려면, 메드코가 머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머크는 메드코에게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두 가지가 문제였지요. 곧 메드코는 내부적으로

이미 조직돼 있던 약품가격 관리용 운영 프로그램을 통해 머크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이 세 가지 결정이 기본적으로 우리의 전략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목표를 설정

하는 것, 최상급 성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지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재빨리,

손쉽게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기회란 마케팅, 연구, 제조 등의 주요

분야에 걸친 장애물을 넘어뜨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더욱 많은 사명감과

권한을 갖게 되지요."

이 세 가지를 실행에 옮긴 후 얻은 중요한 결론은 더 훌륭한 약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고의 약품을 개발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연구 전략의 직접적인 결과지요. 많은 환

자들이 사용하고, 병리학적인 새로운 지식과 화학적 성분을 통해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약품을 만들어보기로 했지요. 그래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는 약품으로 높은 판매고

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편의를 위해서 하루에 한 번, 경구 복용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부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에서 특효가 있는 약품이지요. 아주 효능이 높습니다. 즉 복용

후 고통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작용도 거의 없지요. 약품개발 과정에는 일반적인 특성들이

있는데, 마치 머크의 모든 연구소에서 무슨 주문을 알아낸 것만 같았지요. 또한 가격 억제

압력을 처리하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시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기업을 일으킬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종사 분야가 가진 복잡성입니다. 우리는 2002년까지

24가지의 치료법을 알아낼 것입니다.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거듭 확장해왔기 때문에, 많은

치료법과 지리적으로 결부되어 무척 복잡합니다. 각각의 치료법에서 강력한 경쟁자를 가지

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중심을 지키는지

아십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 기업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뉘어 있는

경계를 가로질러 일할 수 있는 것과, 치료방법의 프랜차이즈에 집중하고 더 많은 책임감과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특히 이렇게 규모가 커지는 조직일수록 더욱 사명감을 가

질 수 있어야 하며, 권한의 위임을 통해 더 많은 결정을 내리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러한 경

영방식을 가져야 하지요. 그래야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직접 행동할 수 있어 효과적이지요."

"그리하여 내 임무는 기업 전체의 전략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전략을 수행하

기 위한 구성을 하며, 적절한 경영 과정을 실행하도록 하는 거지요. 조직의 모든 일원들이

기업을 위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

."

기업의 운영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길마틴도 동의한다.

"기업 운영에 관해서 오늘날 CEO에게는 전보다 더 힘든 일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렇

지만 CEO라는 직업에 더욱 흥미를 느낍니다."

길마틴은 기꺼이 설명한다.

"최근 언론사는 조직에서 일이 성사되거나, 그렇지 못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CEO만을

꼽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비즈니스 위크)(포천)의 맨 앞장에

기사를 싣는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연구 조직을 지휘하는 에드 스콜닉일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 직원들이거나 말이지요."

"내 임무는 전 조직을 결집시키는 것입니다. 연구지식은 없을 뿐더러 바라지도 않습니다.

지금 세계구석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을 선별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야 하며, 유능한 인재를 올바로 식별하여 적절한 위치에 적합한 사람들

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CEO는 아주 훌륭한 전략적 사상가여야 합니다. 수많은 리더십 방

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직원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고, 조직에 신뢰를 줄 수 있는 리

더십 방식이야말로 진정 훌륭한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직원들은 작업을 24개월이 아니라

15개월만에 끝내가 위해서 기꺼이 전념해줄 것입니다."

"자신감과 믿음을 고취시키는 리더십은 많은 면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카리스마가 전혀 없어서도 안

됩니다."

 

에이스 그린버그

베어스턴스 "가난해도 부를 향한 열망이 있는 똑똑한 이들을 고용하라"

우리가 50인의 리더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그 리더들의 삶이 결코 놀라운

일들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많은 리더들은 골프를 즐기는 등 사적으로나 사

업상으로나 활동적인 사람들이었으며, 자식 자랑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

.

그린버그의 자서전 첫머리에서 그가 서닝데일 컨트리 클럽과 딥 데일 클럽의 회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는 그린버그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조금 더 접근해 들어갔다.

그린버그는 1977년에 전국 브리지 선수권에서 우승한 적이 있고, '아마추어 마술가 협회'

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린버그는 아홉 살 때 해리 블랙스톤 경의 마술쇼를 본 이후 마술에 매료되었다. 이 증

권사 회장에게 가장 좋아하는 속임수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난 속임수는 쓰지 않습니다. 기적을 행하죠."

마술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그였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지 않

았다.

인터뷰 당시 그린버그는 줄무늬 양복이 아닌 헐렁한 바지와 스포츠 재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상패가 즐비하게 진열된 사

무실 안에서 촬영하는 것은 싫다며 거부했다. 결국 사진가는 복도에서 요요를 하는 그린버

그를 찍어왔다.

그의 자서전인 (회장님에게서 온 메모)은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사실 제목만 보아도

어떤 책일 거라고 짐작 갈 것이다. 이 책은 그린버그가 하임킨켈 말린츠 아나이니컬의 목소

리를 빌어 지난 20년 간 직원들에게 보내온 메모를 모아놓은 것이다. 아나이니컬은 사내에

'유명한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알려져 있는데, 실은 순전히 그가 만들어낸 가상인물이었

.

그중 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발신 : 수석 전무이사

이하 전무이사들과 어소시에이츠 디렉터

수신 : 알랜 G.그린버그

일시 : 1991814

 

지난주에는 두 건의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지요. 맥도날드사가 7백억 개째의 햄버거를

판매한 일과 베어스턴스사가 10,000번째의 팩스를 구입한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베어스턴스를 위해 일해주었던 세일즈맨 팩스가 은퇴

한 것입니다. 팩스는 이 기업에서 근무한지 33년이나 되었고, 이제는 완전히 노쇠하였습니

. 팩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요트를 구입했는데, 지친 그의 영혼은 이제 남은 여생을 요양하

며 쉬고자 한답니다.

아나이니컬의 인척은 이 소식을 듣자 그 속에 숨겨진 교훈을 찾아냈다고 한다. 여러분은

찾았는가?

그 교훈은 결국 비용 절감으로 직접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야말로 우리는 '패배자들의 모임'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패배

모임에 동참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나이니컬은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충고는 다분히 사실적이었다.

'고객에게 예의를 갖추라.'

'만족스러운 상황일수록 손실이 없는지 살펴보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무시하라.'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라.'

그린버그는 우리와의 대화 중에 업무절차에 관한 재정적 조언을 해주었고, 그것을 그의

메모에 다시 추가하였다.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방 공채를 사들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린버그를 이용하는 방법이지요. 도대체 그린버그가 어떻게 하냐구요? 일단 세금을

납부하면, 더 이상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들어 드립니다."

그의 책은 매우 재미있다. 흥미를 끄는 점은 메모의 목소리 톤이 항상 베어스턴스의 실적

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즉 기업의 상황이 좋은 때는 끊임없이 비용 절제의 필요성과,

객의 전화에 즉시 응답해 최대한 좋은 기업 이미지를 심어줄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상황이

어려울 때는 직원들을 고무시키려고 무던히 노력하며 그 노력은 곧잘 성공하곤 했다.

 

에이스 그린버그는 브리지, 마술, 개 훈련, 거래 등 거의 모든 일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

람이다. (워런 버핏)

 

여기에 리더십과 남을 격려하는 능력도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베어스턴스는 산업 세계에

서는 흔히 부풀려지기 마련인 도덕적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바로 이 점이

그린버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이다. 많은 경쟁에 시달렸을 베어스턴스가 충분히

겪었음직한 이런 악재를 어떻게 피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기업에서 평생 일한

사람도 퉁명스러워진다.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지요. '물고기는 머리끝부터 비린내가 난다' 맞나요? 기업 총

수들은 사업 경영에 대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리더의 사생활이 난잡하거나, 여기저기에

돈을 뿌리고 지출이 큰 계좌를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행실은 기업 전체로 스며들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 리더의 행실은 곧장 직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거지요."

1993년에 CEO 자리를 제임스 케인에게 넘겨준 그린버그는, CEO가 본보기를 보인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CEO가 어떤 인물을 고용하는가 라고 말한다.

"나는 항상 현재는 가난해도 가슴속에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득 품은 똑똑한 인재

를 찾습니다. 이것은 변함 없는 나만의 기준이지요. 이중에는 경영대학원에 입학하는 사람들

도 있기는 합니다. 권위 있는 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소용한 사람이 틀림없다면 학위 취득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

. 대신에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로 알고 싶다면, 그와 함께 사업하는 사람, 그의 고객, 그가

고용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베어스턴스는 채용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주기를,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일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도덕적 기준을 어떻게 확고히 지켜나가는 것일까? 그들은 도덕이 직원 모

두의 책임이라고 분명히 인식시킨다. 그리고 과실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즉시 현금으

로 보상함으로써 도덕 기준을 준수한다.

"이것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알아내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몇 년씩 걸리는 내부 감사위원회에 의존할 필요도 없지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발견

하면, 그 곁에 않아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장 빠르니까요."

"일부 다른 기업에서는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직원들을 밀고자로 만드는 기업

으로 알려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는 내부 고발자들

은 아주 좋아합니다. 내부 고발을 장려하고, 밝혀진 실책의 5퍼센트에 상당하는 금액을 즉석

에서 현금으로 보상하고 있는데, 5만 달러, 6만 달러의 수표를 써서 보상한 적도 있답니다."

"처음 이 방법을 시행했을 때는 대기업들로부터 직원들을 밀고자로 만드는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고 심한 비난을 받았지요. 글쎄요, 해군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나 일

부 대학에도 '당신이 고발하지 않으면 당신도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는 정책이 있다고 들

습니다. 이것이 학교에서 효과가 있다면 기업에서도 효과가 없으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우리의 사업을 망치려는 자들이 있을 때, 그러한 계획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잘못

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를 파산시키려는 직원과는 함께 할 수 없으니까요."

이 결과 직원과 주주들은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린버그에게는 주주의 입장에서도 기쁜 일

이며(그가 쓴 책에서 늘 상기시키듯이 그리버그도 대주주의한 사람이다), 기업의 실적에 따

라 보수를 받는 직원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 기업은 이 세상의 어떤 기업체와도 다릅니다. 집행위원회의 보수는 기업의 실적에

따라 지급됩니다. 기업이 전혀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분기 당 20만 달러를 받습니다. 명목뿐

인 옵션이나 책략, 무보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업 실적이 좋은 경우에는 우리도 한몫 잡

게 되는 거지요."

"부패 기업에서는 소위 기업총수라는 사람들이 추가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옵션을 취소하고 새로운 옵션을 받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 그렇게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이익만을 근거로 보수를 받는 고위경

영 간부 집단은 있을 수 없지요,. 그들은 확실하고 안전한 것은 원하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베어스턴스의 직원처럼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번다면 당연히 여기에 스스로 만족하

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베어스턴스의 직원들도 그와 다르지 않

지만, 그들은 단 한가지의 독특한 경로로만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300여 명에 달하는 모든 관리자들은 매년 총수입의 4퍼센트를 자선 사업에 기부해야 합

니다. 보통은 그 이상을 기부하지요. 얼마를 기부하는지 그 액수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지

, 기부했는지 여부는 확실하게 감독하고 있습니다."

"왜 기부를 강요하느냐 고요? 나는 이 나라에서 살 수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

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토박이 미국인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에 와야만 했던 아주 운 좋은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운이 없는 이

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이유지요."

'열심히 일하라. 당신의 고객에게 신경을 쓰라. 도덕적으로 행동하라. 받은 만큼 되돌려

.' 이 말은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한 상식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린버그는

우리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지요. 가장 비상식적인 것이 바로 상식이다. 이 말을 믿어야 합니

."

 

행크 그린버그

AIG "하얀 지빠귀를 찾아라"

 

다음은 오래된 우스갯소리이다.

 

질문 : 당신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수익률 높은 보험 기업을 어떻게 운영하겠습니까?

: 아주 자알~

 

그러나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의 성공을 말하자면, 이 케케묵은 우스갯소리는 상당부

분 사실이다. 모리스 R.행크 그린버그 회장은 새로운 시장을 하나씩 개척하고 AIG의 숙련

된 리더들에게 운영을 맡기면서 국제시장에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일단 기업의 발판을 구축하자 그린버그는 공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위험부담은 피했다. 기업 구성비율을 보면 한눈에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구성비율이

란 재산, 상해 보험의 수익률을 특징짓는 핵심 개념이다. 이는 손실과 비용(분자)에 대한 프

리미엄(분모)의 퍼센트 비율로 표현한다.

100보다 작은 구성비율을 보험 수익률을 가리키며, 비율이 낮을수록 기업의 수익률은 높

아진다. AIG의 해외산업 구성비율은 사업 주도가 90이다. 이것은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10

퍼센트의 프리미엄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전반적인 이익을 가늠하는 투

자 수입에 의존하면서 평균을 높이는 데 만족한다. AIG의 이러한 검소한 경영 덕분에 한국

에서 청동 훈장을 수여 받기도 하였다.

 

AIG와 행크 그린버그는 기업과 CEO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모두 개혁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며, 극도로 개인주의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

.

보통 CEO는 자신의 이미지에 맞추어 기업을 세운다. 그래서 기업과 그 리더는 성격이 비

슷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AIG는 예외였다. AIG는 기업과 리더가 각각 따로 창출되었다.

결과는 보험과 금융 관련 서비스 분야에서 가장 수익률 높고 존경받는 기업의 탄생으로 이

어졌다.

AIG1919년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탄생하였는데, 그린버그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

명한다.

"C.V.스타는 캘리포니아 주 포트 브래그 출신의 미국인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 후 할

일을 모색하던 중에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으로 진출한 다음, 동양의 진

주라 할 수 있는 상하이로 진출했습니다. 이곳에서 지역탐사 등 약간의 조사를 마친 후 작

은 보험회사를 개업했고, 기존의 보험회사와 손잡아 나갔습니다."

"스타의 이러한 결정은 근본적인 효과를 발휘했는데, AIG가 국내 기업이라기보다는 처음

부터 국제적 기업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죠."

"스타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글로브와 루트거스 같은 기업에 해외 총지사권(독점판매권)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 미국에 가는데 두 달 정도 걸리던 시대였습

니다. 그래서 아시아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미국 기업의 총지사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세일즈 정신이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는 무엇을 보고하

는지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기업을 파산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죠."

스타는 대단한 세일즈맨이었다는 사실 외에도 또 다른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는 본사로부

터 거의 아무런 원조도 받지 못했지만, 넓디넓은 세상에 진출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

었다. 그린버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결국 그는 총지사를 AIU에 포함시켰습니다. AIU, 즉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보험사는 원

래 글로브와 루트거스, 그리고 많은 미국 기업들의 해외영업을 대표하는 총지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AIU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AIU는 그 당시 전 세계를 e대상으로 활동하던, 보다 생각이 트인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

이 분명했습니다. 당시에는 믿을 만한 교통수단이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1950년대와 60년대

에는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었고, 70년대에 이르러서도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항공교통이 그나마 편리해졌지만, 교통수단은 여전히 불투명했지요,. 따라

서 우리는 회사 주변에 독립적인 교통수단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 덕택에 오늘날 우리 기

업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린버그 자신이 바로 AIG의 탄생과 동일한 유형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그는 뉴욕의 농장에서 자랐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립을 해야 했습니다. 열세 살 때는 새

4시에 일어나서 족제비를 잡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숲 속을 걸어다니기도 했지요."

그린버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대에 복무하였다. 그 후 학위를 취득한 다음 할 일을

찾다가 결국 AIG를 창설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는 아메리칸 홈이라는 유일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전혀 돈

을 벌어들이지 못했어요. 자신의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당신의 회사를

다른 기업에 이해시킬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린버그는 아메리칸 홈을 책임지고 완전히 변화시켰다. 그 변화는 바로 인습타파주

의자를 고용함으로써 가능했다.

"아메리칸 홈은 생기가 없고 전혀 창조적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죠. 그래서 과거와의 인연을 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

람들을 중심으로 기업을 일으켜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득은 선이다.

 

그린버그는 체질을 바꾸는 방법으로, 아메리칸 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쳐나갔다. 그리

'자신이 판 보험을 이익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보험회사들이 보험업에서 이익을 얻는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경영에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자신이 판 보험을 해약하고,

프리미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든 간부들은 보험계약 결과로만 평가됩니다. 투자분야가 완

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로부터 신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프리미엄을 창

출하고, 프리미엄을 거둬들이고, 그들의 위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함으로써 신용을 획득

합니다. 우리는 리더를 세우지 직원들을 세우지 않습니다."

다른 회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이것말고 다른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다고 그린버그는 말한다.

"우리의 핵심 사업은 보험업입니다. 보험업이 주축 사업이지요. 주축 사업에서 실패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어떤 사업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핵심 사업요소는 투자가 아니며,

보험업의 위험부담입니다. 따라서 위험부담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업에서 이익을 얻

을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린버그가 원하는 인재의 모습이다.

"경영 간부를 일본이나 동유럽 속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고용할 것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공장 돌아가는 것과는 다른 인물을 원할 뿐이지요.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하얀 지빠귀'라고 부르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신념을 가진 사람, 변화를 이끌어내

계속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게 전부지요."

누구도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이는 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AIG 같은 근로환경에서 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린버그도 AIG의 근로환경에 잘못된 점은 없다고 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응당 치러야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대가말고 관심을 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지요. 자연에 대해 생각하면서 20일 동안 숲 속만 거닐 수는 없죠. 멋진 일이기는 하

지만, 앞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것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시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필요한 조건이냐고요?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몰두해야 하는 일

이냐고요? 물론입니다. 일 속에 자기 정화의 기제가 있느냐고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는 특정 환경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을 영입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도전적이고, 자극

적인 환경, 그러한 기업을 원합니다."

CEO를 겸하는 그린버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CEO는 원대한 뜻을 품고 있으나 상아탑에 갇혀 사는 사람이어서는 안됩니다. 나가서 직

접 경영해야 한다는 거지요. 보험사업은 누구나 같은 출발 선상에서 시작해서 지점과 자본

을 얻게 되는데, 바로 이 시점부터 서로의 동질성은 끝나고 차별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별성이 있는 일을 하십시오."

제한된 자본으로 많은 돈을 벌고 싶다면? 그린버그는 당연히 성공과 돈을 강조한다.

"국제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매일 다른 문

제를 다루며, 다른 문화를 접하십시오. 만일 보험에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그건 도전입니다.

각 시스템이 여러모로 다릅니다. 보험업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업을 미네소타에서 하든 캔사스에서 하든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건 아닙니다. 국제

적인 기업은 도전 그 이상을 흥미로운 일입니다. 즐기십시오. 만일 당신이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앤디 그로브

인텔 "상사는 훈련의 책임이 있다"

 

(포브스)의 전임 편집자 제임스 W.마이클즈는 앤드류 S.그로브를 일컬어 역사적으로 편

집증을 존경받을 만한 것으로 만든 사람으로 평가될 거라고 하였다. 사실 그로브의 성공 덕

택에 편집증은 더 이상 정신병이 아니며, 마이클즈는 심지어 "편집증은 생존 도구"라고까지

정의했다.

오늘날 경제 기사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받는 마이클즈는, 그로브가 쓴 (편집증만이 살아

남는다)를 앨프레드 슬로언의 (제너럴 모터스와 함께 보낸 나의 인생) 이후 가장 뛰어난 비

즈니스 책으로 꼽는다. 결국 마이클즈는 저널리스트일 뿐이고, 인텔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성공스토리 중의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타임)1997년 그로브를 '올해의 인물'

선정했듯이 우리는 그를 미국 전역에 가장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로브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인텔의 반도체는 미국인의 전반을 변화시켰다.

19975월 사장직을 맡기 전까지 그로브는 30년 동안 기업의 모든 주요 부서를 경영했

, 이후 10년 동안 인텔의 회장이자 CEO로 일했다. 그는1968년 인텔이 연간 수입 2,790

러의 기업으로 출발할 때부터 함께 했다. 오늘날 인텔은 미국경제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굳

힌 기업 중의 하나이며, 그로브가 그 성공의 상당 부분에 기여했음을 인정한다.

스무 살에 헝가리에서 약간의 돈만 가지고, 영어도 잘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치고는 아주 성공적인 결과를 이룬 것이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오직 편집증만이 살아남는다'는 모토가 생겨난 이유를 알 수 있

.

그는 안드라스 그로프에서 태어났고, 1956년 헝가리 봉기가 일어나자 뉴욕행 수송선을 타고

미국으로 왔다.

도착 즉시 그는 미국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숙부와 함께 수만 명의 이민자들이 하던 대로

뉴욕 시립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서부로 가서 버클리 대학

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로브는 인텔의 공동 창업자로서 초창기에는 직원이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

다 경쟁에 대한 두려움 혹은 그가 '전략적 변곡점'이라 일컫는, 즉 사업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의 지배를 받아왔다.

여기에서 그로브의 경계심에 대한 단편적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리더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분야에서는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은 곧 직원에 대한

훈련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텔 내에는 '늘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금언이 가득하다. 인텔은 미국 반도체 시장의 마

이크로프로세서 부문의 85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그로브가 쓴 첫 번째 저술인 (고산출 경영)에는 한 저녁식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직원의 훈련이 왜 중요한지 쉽게 설명해준다.

 

전화예약을 받는 여직원은 당황하며 자신이 신입사원이라 요령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어쨌든 우리는 저녁식사를 예약했다. 그런데 레스토랑에 도착해서야 그곳은 주류 면허가 정

지되어 고객들이 각자 와인을 준비해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당자는 손을 비비며 물었다.

"전화 예약하실 때 얘기를 듣지 못하셨나요?"

우리는 와인 없이 저녁식사를 해야했다.

테이블에 손님이 앉을 때마다 지배인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확실치는 않

지만, 전화예약을 받는 여직원에게 예약손님에게 그러한 상황을 알려주라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지배인은 계속 얼빠진 변명을 하고 돌아다녀야 했고, 손님

들은 아무도 와인을 마시지 못했다. 이는 직원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이 같은 상황은 자주 발생한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직원은 아

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비능률적이다. 일을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

이다. 훈련이 부족한 직원은 곧장 고비용으로 연결된다. 또한 그로브가 저녁식사를 하러 갔

던 날처럼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더 심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다음 예

를 보자.

 

인텔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실리콘 제조공장에서 '이온 임플랜터'라고 부르는 정교한

산기계의 일부 부품에 약간 이상이 발생했다. 기계의 조작자는 그 레스토랑의 직원처럼 신

입사원이었는데, 기계작동에 필요한 기본 기술은 익혔지만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법을 배우

지 못했다. 이상신호가 울렸는데도 그는 기계를 계속 작동시켰다. 그래서 하루치 분량의 거

의 공정을 마친 실리콘 웨이퍼들이 이상 상태로 기계 안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상 상태를

알았을 때는 이미 백만 달러 어치의 원료가 기계를 통과한 후였고, 모두 폐기될 수밖에 없

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내는 데는 2주 이상이 걸렸다. 따라서 고객에게 배달 날짜를 지

키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로까지 나아갔다.

 

훈련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은 아주 사소한 불편에서 시작되지만 엄청난 재앙까지

몰고 온다. 그러나 훈련의 중요성을 아는 책임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경험이 풍부한 리더들

도 보통 부하 직원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 혹은 '교육은 전문가가 해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로브는 이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한다. 훈련이야말로 바로 리더의 업무라고 강조한

. 이 같은 그로브의 주장은 알고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로브는 기본적으로 리더가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리더가 '더도 덜도 아

기업의 산출 그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리더의 생산성은 기업의 산출에 의해서 가

된다는 것이다.

리더는 이것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기업의 산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세 가지 기본 방침을

만들 수 있다.

 

나머지 다른 조건이 같으면 직원들은 더 열심히 일한다.

리더는 직원들이 더 잘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리더는 직원들이 더 똑똑하게 일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도록 개개인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이 리더의 임무라면 왜 훈련시키지

않는가! 그로브는 놀랄 따름이다. 그가 말하듯이 훈련은 '리더가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경

쟁력 강화 활동 중 하나'인 것이다.

그로브는 엔지니어였다. 그래서 관리자들에게 자기 부서의 구성원 10명에게 앞의 세 가지

내용을 강의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방침을 양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관리자 한 사람이 한

시간 강의를 위해 세 시간을 준비하므로 총 12시간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셈이었다.

강의로 관리자 아래 10명당 각각 1퍼센트씩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결

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10명의 사람들이 1년에 2천 시간을 일한다. 따라서 그들의 총 노동시

간은 2만 시간이 된다. 1퍼센트 증가는 그들의 총생산이 200시간만큼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리더가12시간의 투자 효과를 거두는 것은 곧 1,667퍼센트의 이득이 되는 것

이다.

이러한 훈련의 효과를 깨닫는다면, 훈련이 리더의 임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

.

 

이것은 관리자 스스로가 자기 일을 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미 올바로 시행되는 일에만 훈련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은 그로브도 인정한다.

잘못 시행되는 문제를 고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로브가 말하는 훈련은 '체계

이고 계획적인 것이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다. 다시 말해 훈련은 하

나의 과정이지 행사가 아니다.'

책임자는 이 같은 훈련의 중요성을 직접 실행함으로써 입증해야 한다.

인텔은 그로브가 말한 대로 실행한다. 예를 들어 1997년에 인텔은 직원훈련에 무려 50

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였다. 인텔 대학교에는 엔지니어, 기술자, 관리자, 리더를 위한 3천 개

이상의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여기에는 직원들이 인텔의 사업방식에 동화할 수 있도록 넓

고 새로운 것은 지향하는 필수 프로그램도 있다. 각각의 집단들은 특정 작업기술을 위한 훈

련계획을 개발한다. 그리고 모든 매니저들이 1년에 최소한 네 과목을 강의하도록 되어있다.

그로브도 강의를 할까? 물론이다. (고산출 경영)에는 다음과 같이 대목이 있다.

 

나는 준비와 과정에 대한 평가와 생산적인 회의진행, 우리의 역사, 목적, 조직, 경영방침

등 인텔 전반의 소개를 3시간에 걸쳐 강의한다. 수년간 우리의 전문직 직원들에게 강의해왔

으며, 이밖에 다른 영역의 강의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기술 분야를 가르치기

에는 나는 너무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흥미롭게도 그로브와 인텔은 훈련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신입 직원들에게 단계별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아이디어, 원칙,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로브는 각자의 업무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수

그로브가 제시한 첫 번째 훈련 비결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직원들이 훈련받아야할 모든 것을 목록화 하라. 목록에는 전화예약 손님에게 와인을 가

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에서부터 기업과 부서의 가치 기준 등의 가장 추상적인

일까지 모든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로브는 목록을 혼자 작성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필요로 하는지 직접 물어보아야 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에 당신

은 무척 놀라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로브는 다른 관리자들이 그다지 주의하지 않는 성과측정 같은 것은 이용해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간파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수행평가는 업무와 모니터링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어째서?

성과측정은 직원들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좋고 유일한 방법이기 때

문이다. 능률이 떨어진 직원에게 구체적인 방안을 일일이 제공할 수는 없겠지만, 기업의 총

수는 여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담당자는 바로 기업의 총수이고, 이들이 2퍼센트

향상된다면 최일선 직원에게서는 2퍼센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브는 이 모든 자원들을 이용하면, 어떤 분야를 개선시킬 것인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 말한다. 일단 목록을 작성하면 그로브는 직접적이고 간단한 조언을 남겨준다.

 

1)개선이 필요한 분야의 우선 순위를 정하라.

2)생산성에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아이템부터 시작하라.

3)실행에 옮기라.

 

찰스 하임볼드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 "가장 중요한 CEO의 업무 중 하나는 사자들끼리 서로 잡아먹지

않도록 하는 것"

 

찰스 A. 하임볼드의 사회적 경력은 모두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의 경영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스케어 기업에서 하임볼드의 첫 번째 직책은 약물, 헤에케어 상품(클레어롤), 소비자 의

약품(엑세드린), 의료기기 등을 판매하는 집행 위원회 서기였다. 이후에는 뉴욕의 법률 기업

인 미들뱅크, 트위드, 하들리&맥클로이에서 대리인으로 일했다. 헬스케어 기업에서 그는 풍

부한 경험을 가진 상급 책임자들이 심의하는 걸 지켜보았다. 어떤 사안이 결정되고 그렇지

못하는지 직접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내린 결정과 자신이 그 입장에서 내렸을 법한 결

정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하임볼드에게는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간의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연간 예산안과 회의 계획을 직접 보고 기업내의 업무를 배

울 수 있었다. 하임볼드가 CEO직을 맡게 되었을 때는, 이미 각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끌고자 하는 부서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

었다.

 

찰스 하임볼드가 CEO에 취임했을 당시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과학적 기반이 탄탄한 제약회사로서, 우리는 보다 강력하게 소비자를 독점하려고 노력했

습니다. 스큅과의 합병은 최근에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합병은 내가 CEO직을 맡기 전에 이루어졌는데,

겔브(하임볼드의 전임자)가 성사시킨 그 합병은 정말이지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하임볼드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싶었다. 그러나 1994년 그는 세 가지 장

애물에 부딪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우리는 헬스케어를 개혁했습니다. 그 개혁 때문에 이 업계에서 기업의 시장가

치가 천억 달러나 떨어지게 되었지요. 따라서 이 개혁은 연구 개발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습

니다. 혁신적인 신약품 개발에서 가격의 통제는 연구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였기 때문입니

. 정부관료들의 변덕이 가격을 결정하는데, 어떤 기업이 신약품 개발에 지원할 투자비용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 기업의 중요한 특허 제품이 만료 시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었습

니다. 전 세계 매출액의 14-15퍼센트를 차지하는 최대 단일 상품인 카포텐(혈압 관련 약품)

의 특허권이 만료될 시점에 있었던 거지요. 카포텐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었습니다.

특허 만료 1년 전에 65억 달러에 달하던 카포텐의 국제 판매량이 만료된 후에는 125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손실을 채우기 위해 적극적인 계획을 고안해야만

했지요."

"세 번째 장애물은 바로 심장부 이식 상황이었습니다. 그 업계에서 판매량의 25퍼센트,

2천만 달러 정도의 판매량을 올리던 우리 기업에 이것은 결국 3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부

담을 안겨주었답니다."

"내가 CEO를 맡았을 당시, 이것들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였습니다. 따라서 부정

적인 이러한 요소들로부터 확실하고 야심찬 목표, 또는 우리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취임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열린 첫 번째 경영회의에서 나는 전원 모두를 소집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2000년 말까지 판매량과 주가를 두 배로 올리는 것입

.' 이것은 지난 2,3년 간 이룬 것보다 성장률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했지요."

"이 목표를 신뢰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저한 성

장을 이룬 기업을 인정받기 위해 수입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이른바 '더블-더블' 목표를 달

성할 것이며, 진행중인 주요 생산성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에 투자할 거라고 말이지요,"

"당시에는 회의주의가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더불-더블 목표를 고수하며 밀고 나

갔습니다. 그 결과 36종의 상품과 연간 1억 달러 이상을 판매하는 생산라인을 보유하게 되

었지요. 그리고 5천만 달러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20개 생산라인과, 매해 적어도 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9개의 생산라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성장을 일궈낸 것입니다. 마치 완

벽한 방수장비를 갖춘 항공 모함과 같지요. 이제 손해볼 일이 생긴다 해도 흔들리지 않고

갈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소비자를 만족시켜 판촉운동에서 이길 수 있습

니다." 하임볼드는 이 같은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성장목표 달성을 위한 여러 전략을 수행

했다.

"우리는 몇 개의 중소기업을 인수했습니다. 그 중에는 아르헨티나의 소규모 제약회사,

루의 제약회사, 프랑스의 꽤 큰 기업도 있었지요. 그 중에서 뛰어난 매니저 집단을 선발해서

봉급을 올려주고, 외부로부터 매니저를 추가로 채용했습니다. 그리고는 기준의 상품을 가지

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했으며, 신상품의 특허를 따내어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의 배급 체

계에 분배하였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경영방법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업방식이었습니다. 기업

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내구성을 길러주었던 거지요."

또한 직원들은 지나간 잘못이나 문제를 따지기보다는 잠재력과 적극적인 시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임볼드는 끊임없이 직원들과 대화하고. 훈련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새

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특히 과거보다 훨씬 나아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그들

을 격려했다. 그리고 판매와 수익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늘

자신했다.

"기대하고 확신하게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래,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거

.' 바로 이것이 내가 바라는 마음가짐입니다. 나는 오직 우리 직원들이 이것을 믿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하임볼드는 그러한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를 실천했다. 이를 통해 브리스톨-마이

어스 스큅의 성공은 직원들과 공유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도든 직원들이 스톡

옵션을 가졌다는 것이 그중 하나의 증거이다. 다른 하나는 하임볼드가 먼저 모범을 보임으

로써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직원들은 내가 판매능력을 갖추고 소비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퀘벡에 엄청

난 눈보라가 치면, 내가 즉시 퀘벡에 전화를 걸어 우리 직원들이 무사한지, 비상용품은 구비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그들은 내가 직원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면서 성공을 일궈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평가받는 순간 비로소 임무가 끝난다

미래의 희망은 단 하나, 자신이 계획한 방법이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그것은 하임

볼드가 끊임없이 탐구하며, 기업이 목표를 향해 얼마나 순조로이 나아가고 있는가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많이 요구하는 편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해달라고 부탁한 후에는 그것이 완료

되었는지 빨리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결과를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

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계속 점검 받고 그 결과를 평가받는다면 사람들은 좀더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늘 평

가자가 그 수행과정을 지켜본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요."

늘 그렇듯이 하임볼드가 새로운 초점으로 점검할 때는 항시 경쟁심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하임볼드가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에 내세운 장기 계획도 다른 어떤 대기업보

다 빠른 주식성장을 하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CEO의 업무 중 하나는 사자들끼리 서로 잡아먹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자연스런 경쟁력이 내부가

아닌 외부를 향하도록 만드는 일이지요.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적정수

의 적합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한곳에 너무 많은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먹이를 너무 많은 사자가 노리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책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마법 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바

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책임의식을 안고 일하도록 만드십시오. 또한 성공의

결과를 모두 함께 공유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추이를 지켜보기

만 하면 됩니다."

허브 에센스 헤어케어 클레어롤이 바로 여기에 알맞은 사례이다. 이 제품은 1970년대 가

장 인기 있는 샴푸였지만 1980년대에 판매량이 급감하더니 1990년대까지 계속 감소하였다.

그러나 이 상품은 경영팀에서 개발한 새로운 포장과 판매 계획으로 강화되어, 1995'X

''30'에게 호소하는 판매캠페인을 다시 시작하였다. 현재 이 제품의 판매량은 연간

5억 달러가 넘는다. 하임볼드는 허브에센스가 10억 달러 짜리 상품이 되는 일도 그다지 어

렵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노력은 기업의 핵심 약품에까지 확대되었다.

하임볼드가 경영할 때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의 연구개발비는 증가하였는데, 1998년에만

무려 16퍼센트가 증가하였다. 또한 특허를 따기 위한 노력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글루코파지

가 바로 그 경우이다.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은 1995년 특허 받은 당뇨병 치료제를 미국

시장에 내놓았다. 하임볼드는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의 판매력이

강하게 작용하여 불과 6개월만에 9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러한 성공 후에도 의사교육

프로그램을 강화시키고 마케팅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96년에는 판매량을 10배 이상

증가시켰다. 1998년에 전체 판매액은 무려 86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2000년에는 글루코파

지 판매액이 10억 달러에 다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임볼드는 힘든 계획을 세우고 각 분야 우선순위를 매겨 팀을 주도함으로써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에 새로운 차원의 성장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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