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잉그람
잉그람 인더스트리스 "매사에 균형을 유지하라"
(포브스)는 마사 잉그람을 묘사할 때 내슈빌의 '큰 부인'이라고 부른다. 이는 그녀가 공
연예술과 도시의 사회적 취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설득력이 있다. 잉그람은 내슈빌 발레단, 테네시 공연예술센터, 테네시 페파토리 극장의 창
설을 도왔고, 내슈빌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포브스)는 표면에 나서지 않는 (처음 잉그람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그녀는 이
렇게 말했다. "목록에 오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징 없는 인물일걸요.")이 매력적인 여성을
보다 심층적으로 취재하여 세계최고의 부호 중의 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포브스)는 '그녀의
재산이 3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였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사업가'라고 했다. (아마
도 그것은 (포천)이 잉그람을 전형적인 '철의 목련'이라고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인 브론슨이 1995년에 사망하자, 잉그람은 제국처럼 뻗어나간 사업을 물려받아 이를
셋으로 나누어 아들들에게 나눠주었다. 37세의 데이비드는 비디오 도매업인 잉그람 엔터테
인먼트를 운영하고, 38세의 존은 세계 최대 도서보급사업(60만 주 보유)을 경영하고 있다.
39세의 오린은 국제 수로운송업을 맡았다. 셋으로 나뉜 이 사업들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흥
미 있는 최대 사업은 잉그람 마이크로이다. 잉그람 마이크로는 미국에서 판매는 컴퓨터의
20퍼센트를 확보하고 있는데 1996년에 이 기업은 민간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이 기
업은 잉그람가의 소유이며 잉그람 패밀리 트러스트를 통해 65퍼센트가 관리되고 있다.
마사 잉그람 자신은 이 네 사업체의 핵심이다. 잉그람의 모교 바자르 대학교의 총장인 프
램시스 퍼거슨이 지적하듯이 그녀는 늘 핵심적인 존재였다.
"마사는 특별한 여성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는 그녀의 리더십 때문에 오히려 잉
그람 인더스트리스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거지요. 우리는 잉그람이 이와 같이 주장할 수 있
다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녀가 얻게 된 명성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마사는 남편의 옆방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기업의 법인 기부를 담당
했다 (잉그람은 전통적으로 모든 세금공제액의 2퍼센트를 자선사업에 기부해왔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만 주목하고, 그녀가 리더와 직원 사이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서 일해왔다는
사실은 간과해버린다. 그녀는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무료 장거리 전화를 설치했는데, 그 전
화는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제기하기 힘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직원들만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받은 전화는 투자로 이어지기도 했고, 역으로 징계나 면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그녀의 옴부즈맨 역할은 미처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직원들과의 이러한 접
촉으로 그녀는 기업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남편의 죽음 이후에 기업을 넘겨받을 준비를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것이다.
잉그람의 경영능력이 널이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은 테네시 센터에
서 근무할 때부터 이미 부각되었다. 잉그람은 남편과 일하면서 주립 대학의 일부를 경영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가족 사업에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잉그람은 이렇게 물었다.
"보수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주정부 관리는 즉각 대답했다. 여섯 자릿수의 연봉(즉 10만 불이 넘는 연봉)을 제안 받은
잉그람은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잉그람의 남편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그에 상응하는 대사를 지불하기
를 바라는 거요?"
"그래요."
브론슨은 잉그람에게 기꺼이 보수를 지급했다. 지금의 기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브론슨
의 결정은 매우 바람직했다.
컨설턴트들은 노자에서부터, 율리시스 S.그랜트, 시장에 이르는 모두에게 군대식 전략을
제공하는 것을 주된 업으로 한다. 작가들은 위니-더-푸 캐릭터에 담긴 지혜에 대한 경영 책
을 쓴다. 학계에서는 스타 트렉이나 앤디 그리피스 쇼 같은 텔레비전 쇼를 실전교육의 자료
로 삼는다.
그 같은 작업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우리와 동떨어진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지혜의 원천을 제안하고자 한다. 제목도 이미 정해놓았다. (기업
경영에 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경영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한다면 마사 잉그람부터 알아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녀의
교훈을 받아들이면, 당신이 쓰는 책이나 당신이 경영하는 사업이 성공을 거두게 됭 테니 말
이다.
"처음에는 사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1979년에 뛰어들게 되었지요."
잉그람은 잉그람 인더스트리스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는 테네시 공연예술센터의 8개년 개발 및 조정 프로젝트를 막 완료한 상태였지요.
꿈을 현실로 이룬 것입니다. 주 의회를 통해 3천6백만 달러의 공채 발행을 따냈고, 550만 달
러의 개인 기부금도 얻어냈습니다. 게다가 전문적인 리더까지 고용하자 남편은 이렇게 묻더
군요, '이제는 뭐 할 거요?' 나는 '해변 가에 다녀올게요.' 하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오래 걸리지 않겠군. 나랑 일해 보는 게 어떻겠
소? 당신은 에너지가 넘치고 사업이 당신 적성에 맞다는 것도 입증되었으니, 내게 무슨 일
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여기서 일해보는 게 어떨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와서 한번
해봐요.'"
"나는 진지하게 검토해보기로 하고 일단 유보했어요. 네 명의 아이들 때문이었지요. 24시
간을 함께 하면서 직장과 가성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그
리고는 일주일에 하루씩만 일해보기로 결정했는데, 일잔 시작하자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
이 계속 눈에 띄어 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가 없더군요."
잉그람은 도서사업을 확장시켰는데, 컴퓨터 서적은 첫 번째 큰 시도였다.
"컴퓨터 서적을 다루게 되면서 소프트웨어도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소매 고객들이 서점에서도 함께 다룰 수 있는 품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동시에 우리는 비디오 배급 사업에 뛰어들어 주 고객인 서적 소매업자들의 생산라인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때만 해도 독자적인 컴퓨터와 비디오 점포들이 있었기 때문에 소프트웨
어에 하드웨어를 더하게 된 거지요. 모든 사업이 성장을 계속했습니다."
잉그람은 남편 곁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1994년 12월
이었다. 남편이 죽은 지 6개월 후 잉그람은 기업을 인수했다.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브론슨은 아프기 전에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회장을 맡아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옆에 두라고 말했어요.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운 좋게도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이미 16년째 근무
하고 있었고, 또 사업하는 게 편했어요. 그렇지만 큰 문제들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큰 문제들이란 단기적으로 자녀들이 사업을 물려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장기적으로는 가족의 소유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의미하는 것이
었다.
두 가지 다 균형 잡힌 실천이 필요했다. 잉그람은 이에 대해 이미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가족 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항상
내 역할이었습니다. 내가 기업에 몸담기 전에도 마찬가지였고요.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역할
이라고 생각해요. 틀림없는 내 역할이지요. 우리는 5년 동안 네 명의 자녀들을 두었고 항상
안정을 추구해왔습니다. 내가 평화주의자처럼 보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악마처럼 싸울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건 최후 수단일 뿐이고, so 진정한 역할은 균형을 유지하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직업을 위한 가장 좋은 훈련은 어머니가 되는 거라고 자주 말해왔습니다. 두 가지 일 모
두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최선을 다하게 해주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외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또한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나는 회장이나 CEO의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
들들에게 되도록 빨리 기업을 넘겨줘야 한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안게 되었지요. 그 애들은
점점 더 CEO다운 역할을 해내고 있답니다."
"기업 경영과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제 사업체를 갖게 된 거야.
난 한발 물러나 있을 거란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어머니. 은행에서 돈을 빌
리는 것처럼 쉽게 30년의 연륜을 빌려올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애들은 이렇게 얘기했어요. '어머니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가 자라서 흰머리가 생길 때까지, 적어도 마흔 살이 될 때까지는
기다려주셔야 한다구요.'"
유머감각
자녀들의 동의 아래 잉그람은 수년간 경영을 하게 되었으며, 이윽고 두각을 드러내기 시
작하였다.
"나는 유머감각이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일을 좋아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하
거든요. 브론슨은 직원들이 좋은 근무조건에서 높은 봉급을 받기를 바랐지요. 그때도 직원들
이 물론 즐거워했지만, 그때보다도 지금이 복도에서 더 크게 말하고 더 많이 웃는 것 같아
요."
"아들이나 사위 사무실에 들어갈 때(그 애들 사무실은 내 사무실과 같은 층에 있습니다)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종종 들려옵니다. 아마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실 거예요. 전
에 잉그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지했거든요 브론슨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지요. 나는 내 아이들이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면서, 이러한 마음이 기업 전체로 퍼져 나가길 바란답니다. 유머감각은 참 좋
은 거예요. 사람들이 보다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거든요 즐거운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
으니까요."
여성이 더 잘 보살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
잉그람은 확실히 그렇지는 않았다. 잉그람은 수십 억 달러의 조직을 경영하는 극소수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정작 그녀는 그것이 많은 생각이 필요한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주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특히 학교에서요. 여학교 바자르와 밴더빌드의 이사회 임원
이거든요. 많은 여성들이 강조하는 점을 나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결코 내가 못난
거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항상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느껴왔지요."
"나는 장녀인데, 아버지는 결코 '오, 안됐지만 넌 여자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
버지는 '봐라, 우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사업에서 성공했는데, 많은 돈을 벌었어. 내게 무
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지켜봐라. 네 어머니는 사업 경영에 아무 관심이 없지만 넌 책임이
있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바자르에 입학하려고 할 때도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대
차
대조표나 손익계산서를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잘 모른답니다."
"여자라서 받은 불이익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 자체가 문제라고 하셨는데,
그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바자르를 졸업했을 때 아버지는 나를 후계자로 점찍어 두셨지요.
그런데 나는 브론슨과 결혼해서 떠나버렸어요. 아버지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지만 다른 사
람을 고용해야만 했어요."
잉그람은 스스로를 역할 모델이라고 여기는 가?
"호기심에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군요. 사람들은 내가 언제 회장이나 CEO가 되고 싶었
는지 많이들 궁금해해요. 그렇지만 나는 결코 회장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고 늘 대답합니
다. 나는 단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세대의 사고방식이잖아
요. 활동적인 자원봉사자나 지역 공동체의 리더는 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바로 그런 분
이 셨거든요. 시어머니 또한 그렇고요. 나는 정말이지 사업적 야심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
다."
"좀 남다른 사람이 되고 실었지요. 사업의 세계에서 그렇게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기대된다'는 프로테스탄트적인 도전정
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마지막날의 세상은 내가 지나왔기에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
어야 하니까요."
"확실히 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야망은 아니었습니다. 누구에
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면, 의무 이상으로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
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이 사업이라는 세계를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즐기
고 있습니다. 이 직위를 바란 적은 없지만 다른 기업에 있었더라도 CEO 자리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로 이 일을 좋아하니까요."
"차별화 되고 싶습니다. 이미 차별화 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차별화를 위해 지금
도 열심히 일하고 있답니다."
데이비드 존슨
캠벨 수프 "승리"
66세의 데이비드 존슨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67억 달러의 판매고를 올
리는 캠벨 수프의 회장이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과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선 손님에게 대접
할 음료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사무실의 작은 회의 테이블에 앉아 지난 10년 간 경쟁
사들로부터 획득한 시장 점유율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받는다. 다음에는 점심
식사 전에 변동이 없는지 재빨리 확인한다.
심지어 그는 질문을 받을 때에도 앞뒤로 몸을 흔들면서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적어
놓은 노트를 찾아 뒤적거린다.
존슨과 캠벨 수프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에너지 덕택이다. 1990년 CEO가 된 이후 존슨은
끊임없이 또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질주하였다. 그것은 바로 다른 소비자가 상품기업을 따라
잡아 누르는 것이다. (캠벨 수프의 순수익에 관한 분기별 증가 비교상황은 캄덴, 뉴저지, 필
라델피아 밖에 위치한 다른 식품 기업 본부를 통해 퍼져나갔다.)
존슨은 캠벨 수프가 경쟁에서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하여 비용을 삭감하였다. 20개 이상은
공장을 폐쇄했고, 기업내의 경영 단계를 줄였다. 수백 명의 관리자들을 해고하고, 5억 달러
상당의 부실사업(대부분이 수프)을 정리하였다. 여기에서 절감된 비용을 전국적 규모의 살사
소스 제조업체인 산안토니오의 페이스 푸드 관련 사업과 같이 전망 좋고 수익률 높은 사업
을 사들이는 데 썼다. 존슨은 이렇게 주문을 외웠다. '20-20-20' 이것은 연간 20퍼센트 성
장, 원가의 20퍼센트 이익, 투자한 현금의 20퍼센트 소득을 의미하는 주문이었다.
이처럼 숫자에 초점을 맞춘 결과, 캠벨 수프는 존슨의 경영 아래 일대 전환을 이루었다.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대담한 선전 문구가 모든 관리자들에게 주어진 이 의욕적인 목표와
짝을 이루게 된다.
'목표를 달성하라. 그러면 존슨은 말 그대로 당신을 위해 세레나데를 연주할 밴드를 고
용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이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존슨은 1997년에 CEO직을 사임하고 활동적인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데 이 방법도 그
리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직원들이 기업의 성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리자에 대한
보상으로 대부분의 보너스와 스톡옵션이 주어진다.
또 존슨은 이렇게 말한다. "경쟁은 항상 당신을 음모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
히 일해야 합니다."
존슨이 직원을 군대 다루듯 하는 이 같은 방식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장에서 잘 때 터득
한 것이다. 그는 이런 '주인정신'이 모든 기업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데이비드 존슨은 시카고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하였다.
그 후 콜게이트-팰몰리브, 워너-램버트, 제너럴 푸드와 같은 기업의 전 세계 지사에서 다
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승진하게 된다. 일개 세일즈맨에서 시작하여 두 번이나 CEO직을 맡게 된 것이다.
그가 수십 억 달러의 다국적 기업을 경영하기 위한 최고의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
일까?
'어린 시절 내내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장에서 보내십시오.'
"시골농장에서 자라면, 내가 주인정신이라고 일컫는 것을 아주 어려서부터 깨닫게 될 것
입니다. 무엇을 얻는가, 얼마나 잘해내는가는 재능과 능력, 약간의 신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다 일찍 배울 수 있답니다."
존슨이 배운 것은 또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 살아 남으려면 최소
한 경쟁자보다 더 잘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살아보면 장에 나갔을 때 가치를 압니다. 살찐 야이나 송아지의 가격, 그것이야
말로 모든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공개되고, 그 가치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알 게 되거든
요. 끊임없이 비교되는 가운데 우리의 가치가 매겨지고 있답니다."
196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콜게이트와 팰몰리브의 책임자로서 처음 경영 직을 맡았을
때, 존슨은 '방심은 금물' 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당시는 모든 것이 아주 순탄한 시기였습니다. 재고가 바닥났고 더 이상 생산해낼 수
가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임원회의를 열고는 책상 위에 발
을 올리고 자축했지요. 그처럼 일이 잘 되어간다면 한 달 동안의 휴가도 얻을 수 있겠다고
농담했고, 인생이 더 없이 멋져 모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우리에
게 당한 패배에 충격을 받은 경쟁사가 하룻밤 사이 질릴 정도로 개선 된 것입니다. 그 후 6
개 월 아마도 8개월이 채 되지 않아 우릴 깜짝 놀라게 하며 신상품을 내놓았지요. 우리는
이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긴장은 풀려 있었고 지나친 확신에 둘러싸인 안일
한 모습뿐이었지요. 그 사건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교훈 중의 하나입니다. 그 이후로 결코 경
쟁자를 과소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순간도 경쟁자가 음모를 진행중이
라고 생각하며, 절대로 팀원이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속으로 경쟁하면서 이루어집니다. 끊임없이 그 경쟁자들과 비교하고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경쟁자는 기운이 약해져서 돈을 벌지 못하길 바라며 기뻐할 것이
고, 당신을 죽일 수 있다면 이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자립, 경쟁자보다 더 열심히 뛰어 노력하는 것, 존슨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비즈니스 세계
를 바라보는 인물을 찾는다.
"우리가 잠든 밤에 경쟁자들은 음모를 꾸밉니다. 따라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작업한다는 것이 아니라 작업의 질과 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렇지 않으면 금세 간파 당하니까요."
존슨은 그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관리자들에게 적극적인 목표를 만들라고
강조한다. 단위별 인플레이션보다 2퍼센트만 빠르게 성장한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존슨은 이를 서커스에 비유한다.
"직원들은 공중그네 곡예사와 같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3중 공중회전을 할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하는 겁니다. 비즈니스는 고도의 공중그네 묘기입니다. 나는 이
렇게 일하는 겁니다. 비즈니스는 고도의 공중그네 묘기입니다. 나는 거기에 부담을 더하여
만일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보수도 지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존슨이 과장하고 있기
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급의 20퍼센트는 고정급료로
지급된다. 나머지는 업무수행 결과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강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장 떠나시오. 점점 더 힘들어질 테
니
말이오'라고 충고합니다. 그래도 이곳이 좋다고 한다면 믿기 힘들겠지요?"
"나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위험을 감수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훈련을 받으며,
우리가 산출하는 결과에 같이 죽고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이를 향
해 노력하여 성공한다면,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바로 성취감이지요."
"A학점을 받았을 때 흥분되지 않았습니까? 팀의 첫 번째로 뽑히고 상으로 학교 마크를
받았을 때 흥분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속한 팀이 승리했을 때 흥분되지 않았습니까? 바
로 우리도 이와 똑같습니다. 골인 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거지요."
"나는 항상 궁리합니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사업을 하고, 그 재미를 직원들과 공유하며,
최선을 다해 성취할까? 즉 최우수상을 받고 졸업하는 것같이 실질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까?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 방법은 간단하죠. 주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낼 거야'라고 말입니다."
존슨은 주주를 확보하기 위해 리더로서 첫 강의를 했다. 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내일이 아니라면, 과연 내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지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전쟁터 같은 사업세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사람들을 지
도하고 대화하고 성장시키고 가르친다는 관점에서 교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생이 알고 있듯이 동기는 성취의 핵심 요소이다. 존슨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거대한 동기유발 도구, 즉 돈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주
는 거대한 보상, 즉 보너스와 스톡옵션 모두가 기업의 성과에 근거한다고 가정한다면, 그리
고 캠벨 수프가 지난 수십 년 간 이룩한 멋진 성과들을 고려해 본다면 존슨은 많은 사람들
을 부자로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주주들도 돈을 많
이 벌기는 했지만, 이들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직원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
들의 삶은 보다 의미 있어졌고, 훨씬 더 살기 좋아졌으며, 그들은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게
되었지요. 돈은 그들이 빨리 은퇴하고 싶다면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 할
만큼 다한 이들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했으며 노력했으니까요. 머
리카락도 빠졌을 겁니다. 또 다른 삶을 살아갈 때가 되면 그들은 또다시 그렇게 할 수 있습
니다. 색다른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다는 사실, 멋있지 않나요?"
직원들이 기업의 성공을 공유한 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일이다. 공유란 그들이 노력한 만
큼 정당하게 보상받고, 노력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쟁자들을 물리
쳤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도록 일단의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관중
들이 놀라움 속에서 바라보는 동안 공중그네를 타고 3중 공중회전 묘기를 해낼 수 있는 사
람들이지요."
"단원들이 정말 뛰어나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물을 치워버려요.' 침묵이 감도는 가
운데 관중들은 두려움 속에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당신을 지켜볼 겁니다.
그리고 3중 공중회전 묘기를 멋지게 해내면, 그 환호와 감격은 팀원 등 관련자 모두와 공유
하는 겁니다. 해냈다는 자부심이 뒤섞인 감정이지요."
"나는 우리의 일이 삶의 일부이며 의미 있는 거라고 믿습니다. 단순히 작업을 통한 기계
적 습관이 아닌 것입니다."
66세가 되면 CEO직을 사직하고 미래의 계획에 대해 질문 받는 일을 피해갈 수 없다. '은
퇴할 것인가? 이 일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당연히 존슨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답을 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
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내게 이런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사
람들이 내 눈 밑이 검게 된 것을 보고(사실 나는 아주 창백하고, 도전적인 하루 일과를 마
칠 때면 홀쭉해지고, 머리도 하얗게 샙니다)이렇게 말하겠지요. '아주 피곤해 보이는군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그렇지만 기분은 아주 끝내주는 데요.'중요한 것은 바
로
그것입니다. 나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모든 일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도전을 맞이하면
의욕이 생겨 거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흥미로운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일하는 것이 아
주 즐겁습니다.
"오늘날 나는 이사회의 회장으로 캠벨과 인연을 맺고 있으며, 기업을 경영한 것으로 유명
합니다. 이제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기회들을 활용할 자유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바바리아에서 열리는 바그너 오페라 축제에 가거나, 아들과 흰 파도를 가르거나, 아니면 남
극탐험을 해보렵니다."
허브 켈러허
사우스웨스트 항공 "문화는 최고의 특권이다"
허브 켈러허가 무엇으로 유명한가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에 비유할 수 있다. 앞면은
그의 경영기술이고, 뒷면은 '나는 지구상의 어느 누구보다 즐겁다'는 태도이다.
한편으로는 (파이낸셜 월드)에 두 번씩이나(1982년과 1990년) 거론된 CEO이다. 그는 (피
플스 익스프레스)의 돈 버 같은 수많은 항공사들이 무너져갈 때, 어떻게 주요 항공사를 키
워내는지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켈러허는 부활절 바니에서부터 엘비스에 이르기까지 기업 내에서 그 어떤
역할도 척척해낼 수 있는 리더이다.
켈러허를 잘 아는 사람들도 그가 얼마나 자신의 임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아마 모
를 것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무든 직위를 감독하거나 직접 맡아보기도 했기 때문에, 그
는 누구보다도 기업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전형적인 모범 소년의 성향이(전형적인 모범 소년
이란 필라델피아 바깥에서 태어나 동부에서 교육받은 사람) 강조된 그의 얘기에서는, 또한
원칙을 무시하고 tll장마다 항공사를 설립하는 경향도 찾아볼 수 있다. 켈러허는 경쟁자들이
바로 옆에서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도시 안에 본사를 열었다. 이러한 출발은 머리를 맞대
고 벌이는 경쟁을 최대한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모든 항공사
의 시작에는 직접적인 경쟁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그 같은 지리적 위치는 사우스웨스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다. 이것말고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켈러허는 동일한 비행기, 동일한 공항 출구, 기본적으로 동일한 운임을
공유하는 사업에서 다른 항공사와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직원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것이 바로 어떤 직원들이 고용되었는지에 대해 말이 많은 이유이다. 켈러허는 배경 조사를
통해 누가 해당 직무에 적합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입력된
내용을 통해서 비관료적이고, 즐거움을 추구하며, 고객과 동료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을 한다
는 기반 위에 설립된 사우스웨스트의 문화에 그 지원자가 적합한지 알아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켈러허가 그 같은 문화에 적합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사우스웨스트의 모든 직원들이 그러
하듯 그는 기꺼이 짐을 나눠지고자 한다. 단편적인 예를 들어 보자. 추수감사절이면 사람들
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이것은 사람들이 집에서 칠면조 고기를 먹는 동안
사우스웨스트의 누군가는 일해야 함을 의미한다. 켈러허도 추수감사절에 수화물을 옮긴 적
이 있었다.
켈러허는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사내 문화를 확립하고 싶다며 사우스웨스트를 방
문합니다. 우리는 단지 사람들을 바람직하게 대할 뿐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사
람들은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이 훨씬 더 복잡한 대답을 원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인데,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오히려 우리의 의도를 망쳐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상징인 즐거운 작업환경 창조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느냐
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사람들이 일을 즐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둥 언제 일을 더 잘하고 보다 생산적일 것 같
습니까?"
"일할 때 인간성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사람들을 고용
하기로 했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직원들의 직장생활뿐 아니라 개인생활에도
많은 관심을 쏟으며, 직원들을 단지 일하는 로봇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
었습니다. 우리는 직원들이 진정으로 즐기며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경영방법을 많이 이용하면서, 어떻게 기업을 경영할 수 있었는지 묻습
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내 경영 방식에 알맞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켈러허는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그 같은 개념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고 재빨리
강조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인지 혹은 당신이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인지 다 압니다. 그래서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자발적이어
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켈러러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우리 직원들이 얼마 전에 시카고에 있는 미드웨이 공항에서 몇 개 출구를 확보했습니다.
미드웨이 항공이 그 출구 사용을 중지했을 때, 우리 직원들이 가서 확보한 거지요. 그 결과
우리 고객의 출구를 여유 있게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공항에서 돌아왔을 때 로
비에는 거대한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시카고 도적Ep 만세!'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한 자발
성이었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자발적인 결정, 즉 독창성을 칭찬하고자 하는 결정과 개인주의는 다른 것
이다.
40년도 더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켈러허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사회 내에서는 일에 대한 태도와 직장생활 이외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
에 대한 변화가 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같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변해
야 합니다."
"몇 년 전에 한 직원에게 사회문제에 대해 옳은지 그른지 주장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적
이 있습니다. 그는 일종의 구식 학교, 아마 군대식 학교라고 말할지도 모를 그런 학교를 졸
업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성공과 직원들의 안정과 번영, 우리의 사회
적응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역행하는 리더가 될 생각은 없었기 때문
에, 우리도 당연히 변해야 했지요. 그것은 사람들이 어전보다 더 나아진다거나 혹은 더 나빠
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이전과는 다른 동기와 초점을 가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
서 이 같은 열망에 스스로 동화되는 법을 배워야했지요."
"'오늘날 미국에는 어떠한 직업윤리도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결코 믿지 않습니다. 아예
무시해버리지요. 우리는 항상 뛰어난 직원들을 고용해왔기 때문입니다."
켈러허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나 이 뛰어난 직원들이 과거와는 다른 요인에 동기부여를 받고 고무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생활필수품 사업을 하는 사우스웨스트에서 특별히 중요시하는 사항이
다. 생활필수품 사업에서 다른 경쟁업체와 차별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서비스
이다.
"아주 간단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서비스의 황금률로 얘기합니다. 우리 직원들에게
스스로 받고 싶은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레스토랑이나 백화점에 들어갔
을
때, 판매원이 당신에게 무관심하고 당신의 필요나 요구를 무시하며 당신을 고객으로 대하
지 않는다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누구나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아니오, 우리
는 그같이 대접받는 것이 싫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위선자가 되지
마십시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십시오. 바로 당신이 받고 싶은 서비스를 말입니다."
사우스웨스트는 고객의 즐거운 비행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
우스웨스트는 지원자들이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서 면접에 특
별히 긴 시간을 들인다. 직접 고객을 대할 직원들뿐만 아니라 전면에 나서지 않는 직원들까
지도 그같이 면접하다.
"모두가 고객이라는 이론을 늘 고수합니다."
이 이론을 켈러허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객서비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이론은 경리부에 올바른 사람을 고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기업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은 결국 대중에게 제
공하는 서비스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신의 직원이 당신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셈
이지요."
"우리가 찾는 것은 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초점을 맞추기에는 너무 넓은 영역입니다. 종교를 대하듯 채용하지요 예
를 들어볼까요. 몇 년 전에 인사부의 부사장이 그러더군요. 여객기용 이동 트랩에서 일할 사
람을 뽑기 위해 34명을 면접했는데 적합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당황했다 구요. 물론 그
녀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 비용이 많이 들까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동 트랩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 위해 134명을 면접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태도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진정으로 태도에 초점을 맞춥니
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경력자,
특히 전문가적 지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천박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덜 받고 경력도 부족하며 전문가적 지
식이 떨어진다 해도, 그 태도 하나만으로 채용할 수도 있습니다. 태도는 누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태도가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필요하다면
기술을 가르칩니다."
"면접과정이 특이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체계적으로 면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조종사 지원자들에게 면접시에 양복이 아니라 사우스웨스트 항공 셔츠를 입어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양복 재킷과 넥타이,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반바지를 입혀 면접을 실시했
지요. 그렇게 입고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채용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락시켰답니다."
기술적으로 아무리 능숙하다 하더라도, 사우스웨스트 문화와 조화될 수 있는 조종사가 필
요했던 것이다.
이같이 독특한 접근법 외에도, 사우스웨스트 직원들은 지원자들과 '단순히 담소'를 나누는
데 이상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원자가 야구에 관심 있다면 야구에 대한 얘기를 할 것입니다. 지원자의 가족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고 신문에 난 기사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가치
관을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애타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사람을 원합니다.
단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관심사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적합한
지 아닌 가려내는 것입니다."
이 같은 관점은 기업이 성장하는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수년간 나는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좋아요, 당신의 직원채용 능력은 아주 탁월합니
다.
하지만 직원이 500명쯤 채용될 때까지 기다려요.' 그것은 '5,000명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
는
것과 같습니다. 사업이 커갈수록 우리 기업의 문화와 단체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들
말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문화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면 가능합니다."
켈러허는 이 같은 접근법을 유지하는 것이 사우스웨스트 CEO의 의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 이상주의, 폭넓은 철학적 개념을 놓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전혀 싫어하
지 않습니다. 나는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자신이 거대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절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 같은 소속감은 매일 기계
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를 뛰어넘어 인간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지요."
켈러허의 자세는 바로 리더로서의 모든 것이다.
"리더십이란 하인 노릇하기라고 말하고 싶군요. 뛰어난 리더는 동시에 훌륭한 추종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의 생각과 달라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업의 필요성에 기꺼이 종속시켜야 하지요. 또한 직원들을 위해 기꺼
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직원들을 위해 싸우려 하지 않는 다면 그들도 역시 당신을 위
해 싸워주지 않을 겁니다. 사업 경력을 통틀어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은, 소동이
잦은 업계에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단 한번도 결항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 점이 바로
우리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절대적 직업 안정이기도 하지요."
"이 사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믿어야 합니다. 리더는 직원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것이
고, 그들은 리더가 허풍쟁이나 위선자 혹은 사기꾼인지 아닌지 반드시 알아낼 것이기 때문
입니다. 직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자 한다면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마지막으로 당
신은 직원들에게 일을 위임하고 물러나 있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나는 경쟁에 대해 얘기한 쪽지를 모두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많은 경쟁자들이 있지요. 초고속 열차나 통신 매체 역시 잠재적인 경쟁자라고 생각하지만,
미래에 대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포고가 말했듯이 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세계는 계속 변화하고있습니다. 여기에 적
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피해야 할 주요 대상은 바로 편안과 오만, 성
공이 곧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성공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우리
는
계속해서 쉬지 말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켈러허는 이렇게 덧붙인다.
"다시 말해 문제는 바로 문화입니다. 기업에서 문화가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문
화를 가장 우선시해야 함은 당연하겠지요. 문화가 바로 가장 초점을 맞추어야 할 주제인 것
입니다."
"고객서비스를 주로 삼는 우리의 사업에서는 무형의 것이 유형의 것보다 훨씬더 중요합니
다. 이는 단지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다 정신적인 것은
제공해야 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고객 서비스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사람들을 단지 A
에서 B로 이동시키는 것 이외에도 '오, 우리가 해냈어'라는 느낌도 원한다는 뜻입니다. 고객
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환영받는 느낌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고객의 일생에서 따뜻한
사건이 되어 다시 당신의 비행기를 이용하기를 바라겠지요 당신은 비행기를 살수도 있습니
다. 보잉사는 당신에게도 비행기를 팔 테니까요. 당신은 카운터에서 비행기 티켓을 팔고 컴
퓨터를 사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단체정신 같은 것은 모방하기 힘듭니다.
빌커
메리디스 "끊임없이 고객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브랜드 로열티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특정한 케첩이나 특정 상
표의 식기 세척제를 구입하는지, 매년 연말이면 왜 늘 의뢰를 맡기던 회계사무소를 이용하
는지 묻는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
문
에' '그들이 이 일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믿을 만하기 때문에 믿습니다' 등의 대답을 듣
게
될 것이다.
이러한 대답을 듣고 나면, 고객이나 다른 사업체에 무엇인가 팔려고 해도 더 이상 질문할
수 없다.
그러나 브랜드 로열티가 강력한 만큼 힘을 잃을 수도 있다. 일단 힘을 잃으면 고객의 마
음을 돌려놓기란 매우 어렵다. 이것은 1980년대 수천 개의 미국 기업들이 힘든 경험을 통해
배운 사실로서, 한때 애용해주던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자, 그들은 품질 낮은 제품에 가격을
높게 매겨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영국 중세사를 가르치고자 했던 윌리엄 T.커는 오랜 시간을 들여 브랜드 로열티에
대해 연구했다. 메리디스는 (더욱 훌륭한 가정과 정원) (레이디스 홈 저널)을 포함하야 50가
지 이상의 가정과 가족 지향 잡지를 출판하는 기업으로서, 구독자와, 오래도록 친밀한 관계
를 맺어왔다. 커가 뉴욕타임스의 잡지 부서 경영 이후 1991년 말에 메리디스와 인연을 맺었
을 당시 메리디스는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 기업은 평생 메리디스의 고객이었
던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새로이 활기를 불어넣고 이율을 향상시켜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메리디스가 성공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커는 이렇게 대답한다. 조화를
이루어내고 장애물을 제거하며 무엇보다도 신뢰를 유지한 덕택이었다고 말이다.
"첫 번째로 한 일은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1980년대의 우
리는 핵심적인 출판과 방송산업에서 빗나가는 기업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을 단순하게
처리하고, 그저 무언가를 인쇄해낼 뿐이었지요. 우리는 그룹을 운영하는 실질적인 대지를 가
지고 있었고, 케이블 사업 안에 있기도 하고 벗어나 있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상황
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출판과 방송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그래
서 우리는 핵심 사업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습니다. 내 전임자가 시작한 이 과정은 최근
몇 년간 가속이 붙었고, 이 일말고 다름 모든 일을 중지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강력한 재정적 기대를 확립하고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재
정적 기대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 왔지만, 이 같은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해나갔습니다. 우선 관리자들의 이자를 보다 직접적으로 주주들과 관련짓기 위해 필요한 단
계를 밟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적절한 보상과 공평한 소유권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의
미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재정과 업무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되었고, 지난 7,8년 동안 주
당 수입을 매년 38퍼센트 수준으로 지불하고 수익률을 3배로 늘려 15퍼센트까지 끌어올렸습
니다. 동시에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된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재정적인 측면에 보다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서도 기업 특유의 소박하고, 가족 같은 느
낌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경영방식에 동의했고, 기꺼이 우리 기업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일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했습니다. 메리디스에 대해 뭐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출판업계에서 우리 기업은 최고의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
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지요."
커가 기업내부를 보살피는 이 같은 분위기는 또한 메리디스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
된다.
"나는 항상 직원들에게 보살핌과 헌신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곧 고객을 내적으로
나 외적으로 늘 살핀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상품의 품질을 살피는 것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의 잡지를 읽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시청해야 하
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만 광고를 의뢰해야 할 의무도 없지요. 그러나 내가 우리 자산을
아끼는 만큼, 다른 잡지보다 월등한 우리 잡지가 많다는 것을 자신합니다. 광고 잡지가 무려
4천여 종에 달하니까요. 광고를 실을 필요가 없는 기업도 물론 있지요. 다른 판촉이나 할인
을 이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죠. 기업마다 나름대로의 접근법이 있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우
리를 선택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물론 해당
되는 것입니다. 살피는 일은 잃듯 중요합니다."
'살핀다.'는 주제로 시작해서 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를 소개한다. 신뢰가 바로
그
것이다.
"신뢰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요일 중 하나
는 바로 고객이 우리를 신뢰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상표독점권을 가진 이유 중
하나도 우리 상표에 신뢰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보지요."
"좋은 잡지를 가진 것은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싫어하는 기사가 실려도 독자들은 '당신들 잡지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라고 묻
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잡지를 자신들의 잡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요. 따라서 적어
도 그들이 우리 잡지에 관심을 가지는 한 우리도 독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덧을 확
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커는 주의를 늦추지 말고 돌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나라의 가정에게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의 가치 기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부분이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얼마 전에 CBS관련 우리 방송국에
하워드 스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인수하라는 강한 압력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우리
기업의 철학과는 잘 맞지 않지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간부들도 꽤 있었지요."
"돈을 벌기 위해 그 프로그램을 인수하고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그래서 스턴의 쇼를 우리 방송국에서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
다. 단기적인 재정 목표를 위해 우리의 가치기준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신화와 일관성은 메리디스의 핵심적인 독점판매권에 큰 역할을 한다. 메리디스가
고객의 신뢰를 얻데 되면, 고객은 메리디스의 상품을 더 많이 구입하기 때문이다.
"출판분야에서 우리의 전략은 전체를 조명하는 '부모 같은' 잡지 역할과 동시에 세부 분
야
를 다루는 '자녀 같은' 잡지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이 작은 분야들을 더욱더 세분화시켜 보다 더 많은 잡지들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같은 이름의 '모'잡지를 이용하면서 말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부수적인 출판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커는 (더욱 훌륭한 가정과 정원)과 유사한 내용의 책을 300권이나 더 출판했습니다. 또한
특별히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100권을 추가로 출판했지요. 뉴스만을 다루는 잡지에서 떠나
(더욱 훌륭한 가정과 정원)이라는 이름 아래 엄선된 가정 관련 주제를 실었습니다."
"(더욱 훌륭한 가족과 정원)으로부터 많은 잡지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전통적인
데코레이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가정을(더욱 훌륭한 가족과 정원)의 테두리 안
에서 소개하게 되었지요. 그 후 (전통 집)을 새로 내놓았는데 시골의 데코레이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잡지였습니다. 10년쯤 후에는 (시골집)의 자매지인 (시골 정원)을 내놓는 등 이
런 식으로 점점 더 작은 분야로 세분해 들어갔습니다."
"잡지를 8백만 부쯤 찍으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거든요. 잘만 된다면 20만 부로도 그
만큼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시장을 세분화하는 만큼 기회를 더 가지게 되는 셈이지요. 우리의 최신 상품 두 가지를
생각해볼까요? (패밀리 머니)는 미국인들에게 강력한 여성 리더십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에
서 창간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였지요. 사실 모든 명세표를 관리하는 사람이 여성들임에
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에서는 여성을 주목하지 않았으니까요. 15년 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광고도 이와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 업체들은 여성들이 차를 구입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던 때였거든요. 그렇지만 이제 자동차는 10대 여성잡지 광고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작년에 40대 이상의 여성을 겨냥한 (모어)가 창간되었습니다. (모어)라는 제목이 뭐 대단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잡지에 (나이든 여성의 잡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지는 않
더란 말이지요. 개념이 같으니까요. 여성들에게 건강이라는 주제는 서로 다릅니다. 또한 여
성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관심도 다르지요.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집단 중 하
나였기 때문에 (모어)는 이런 관점에서 눈길을 끌 만한 시도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고객에게 아주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 메리디스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유리한 두세 가지 요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유지되는 훌륭한 시장
을 가졌고 그 시장을 아주 잘 활용했지요. 출판에서는 가정과 가족 출판물에 관한 독점판매
권을 가지고 있었고, 집의 개조에 대해 많은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두 채의 집을 소
유하는 것, 가족 그리고 제2의 가족을 향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 같
은 시장에서 잘 자리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메리디스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것은 유지할 것인가 입니다. 이 업계가 많이 통합되고 있었기
때문에 양적으로 더 많은 잡지를 만들지는 못할 것 같고요. 이제 우리는 내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거지요. 우리에게 내적 성장은 새로운 잡지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1년에 한가지 꼴로
새로운 잡지를 창간해온 창조적인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거지요.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좋은 아이디어야말로 우리의 관건입니다. 또한 훌륭한 편집자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송 인수를 계속 모색할 것입니다. 1998년 애틀란타의
WGNX-TV(CBS)를 구매한 것이 그 예가 되겠군요. 이 방송국은 급성장하는 대규모의 시장
에서 잠재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습
니다. 아쉽게도 이 같은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방송인수는 지속적인 소득 성장으로, 우리가 소유한 기존 방송국 사업을 향상시키게될
것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시장에서 우리 방송국의 상표를 명확하게 구축하려는 참이지요."
"7년쯤 뒤에 이 나라에서 광고가 강력하게 성장하게 되면, 이후 몇 년 동안은 분명히 광
고계의 위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비즈니스 주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문
제는 그 불경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거지요. 나는 이 문제를 오랫동안 숙고해왔
습니다. 방송과 출판업계에서의 우리의 임무는 광고사업을 단순한 시간 판매나 공간 판매에
의존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미 주문 판매를 장악했고,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기업과
광고주들의 상품을 창출해내는 시장 배치를 통합한 상태지요.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훌륭한
사업경영이었고, 광고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또 하나는, 경쟁 분야에서 단 하나의 상품으로 확실히 자리
매김 하는 것입니다. 보통 불황기에는 광고주들이 비용을 절감하지요. 주요 5대 여성잡지에
광고를 내보내는 대신, 2~3가지 잡지에만 광고를 게재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주도적
인 잡지사라는 것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진정한 도전은 성장을 유지하는 일이지요
돈을 벌어들이고 현명하게 투자하는 것, 사고의 흐름을 주도하고 수준 높은 독자들을 끊임
없이 매료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도전입니다."
커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다시 말하면, 지금 잘해내고 있는 것들을 계속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객들
로부터 얻은 신뢰를 지속시켜줄 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척 나이트
에머슨 일레그릭- 단순화하라
찰스 F. 나이트는 26년간 맡아온 에머슨 일렉트릭의 CEO직을 그만두려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멋진 얘기를 들려주었다.
세인트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기업의 이사회는, 후임 CEO를 누구로 정해야 할지
아직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네다섯 명 정도 유망한 후보자들을 면접하면서 9억 달러 수준
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소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아마 맨 마지막에 들어갔을 겁니다."
척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 앞에서 면접했던 후보들은 그들이 맡게 될 직무이자 한때는 책임을 맡기도 했던
CEO의 직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바를 얘기했다더군요. 나중에 들었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8년 동안 에머슨의 컨설턴트로 일했고, 두 개의 내부 이사회를 위해 일한 적이 있
어서 에머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회 의원들이 CEO가
된다면 어떻게 일하겠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지요. '큰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입니
다. 지금 이 기업은 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 성공을 부숴버리기보다는 잘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트는 CEO직을 얻었다.
이같은 접근법으로 에머슨을 위해 일해왔으며, 26년 동안 기업 총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나이트는 조직적으로 기업의 성공을 이루어 왔으며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따.
1998년 137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평가된 에머슨은 늘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 안에 손
꼽힌다. 41년 연속 수익과 주당 수익의 증가, 42년 연속 배당금 증가를 기록한 에머슨의 위
치는 미국 제조업계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나이트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업 전반에 대한 조직적인 접근법이다. 에머슨
내에서는 이것을 '경영절차'라고 부른다. 입안을 포함하고 지속적인 이행을 통해 주주들을
책임지며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효과가 있었다.
"경영 절차는 몇 가지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 바보같다고 생각할지
도 모르지만, 지독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입니다."
"단순화지요."
"에머슨에서 이것은 어려운 목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획과 프로그
램을 개발하고 목표를 성취하며, 목표를 이루었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또한 그 결과에 적합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쉬운 일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단순화
작업이 생각 외로 엄청난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씩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단순한 계획, 단순한 의사소
통, 단순한 조직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단순화하는 것이 경영절차의 첫 단계입니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리더의
마땅한 업무니까요. 즉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이율의 신장과 수준 높은 성취에 필요한 투자
기회를 가려내고, 이를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업무입니다. 그 외에 아무것
도 없습니다. 이 밖에도 직원들과 다른 고객의 시각에서 얘기할 수 있는 사항이 대략 150여
가지나 됩니다. 하지만 근복적으로 주주들을 위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투자 기회를 가려
내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리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테니 말
이지요."
"경영 절차의 두 번째는, 이러한 접근법의 외부에 존재하는 활력적인 기획과정입니다. 이
기획이란 투자기회를 가려내는 시점을 말합니다."
"나는 우리보다 더 기획을 중요시하는 기업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지나친 기획이 과연 있을까? 나이트는 분명히 그렇다고 말한다. 이것은 백화점 업계의 거
물인 존 워너메이커의 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내 광고는 50퍼센트밖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단지 그 절반이 어떤
것인지 모를 뿐이다. 안다면 효과 없는 그 절반은 없애 버릴 것이다."
나이트 역시 절차 중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발견한다면 즉시 기획을 줄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치게 기획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5개년 계획은 누구나 다
세우지만, 1년 뒤에는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정작 완성되는 기획은 극히 적지
요. 2,3년 이상 지속되는 기획을 도무지 본적이 없어요."
"그리고 과정 중에 더 나은 결과를 낳는 기획도 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기획은 훌륭한
경영훈련 기술인 것입니다."
회장이나 CEO로서 나이트는 각 부서의 기획 회의에서 생산되느 ㄴ기획 과정의 근본적인
부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자리를 지킵니다.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직접 보고를 받지요. 그곳에서 직원
들은 상부에 보고합니다. 모두가 출석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결정이 내려지게 됩니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잘잘못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 역시 남들과 똑같이 잘못할 수 있
으니까요."
"이 점은 강조해야 할 것 같군요. 그렇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
비난하지 않는 기업'입니다. 결정을 내릴 때 무언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누구 때문이
려니 하는 짐작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실수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토론할 뿐 누구에게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기업이랍니다."
다음은 무엇인가?
기획이 세워진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다음은 이행입니다. 이 단계는 많은 기업들이 실천합니다. 리더들은 무엇이 행해져야 할
지를 알지만 가끔 몇 가지 이유로 그것을 행하지 않을 때가 있답니다."
"우리는 이행을 잘하는 기업입니다. 시야를 정하고 어떤 목표에 초점을 맞추면 보통은 직
원들의 헌신으로 성공하지요. 서로 협력하면서 각기 자기 역할을 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이트는 이러한 관계가 상호 신뢰 위에 구축되어 있다고 자부한다.
"우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을 인식하고 고치는 대신 문제나 실패를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획 절차 기억하지요? 우리는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립니다.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비난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대신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다시 고려
하고 출발하는것입니다."
"경영 절차의 네 번째는 행동지향적 조직의 창조입니다. 사실은 조직이나 형식을 신경쓰
기보다는 일의 진행과정에 더 관심을 둡니다. 때로는 그것이 분명 옳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조직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우리 기업의 조직표가 필요하다
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직을 구성하는 복잡성과 그것이 동반할 관료적인 것
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이트는 관료적 기업인지 아닌지 그 특성을 알아볼 수 있는 세 가지 기준을 얘기한다.
그 첫 번째는 직원들의 규모. 가능한 한 적은 인원일수록 좋다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은 바로 그 때문에 지난 10년동안 늘 똑같은 규모를 유지해 왔습니다. 직원
한명을 더 고용하면 바로 70개 부서 모두에 그에 상당한 직위가 하나씩 만들어져야 하지요.
그 70명은 또 자신은일을 창조해내게 됩니다. 그러나 관료제는 모든 면에서 속도가 떨어
집니다. 절대로 그런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지요."
"두번째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과는 달리 의사소통이 엄격한 통로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가 여부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기획과 프로그램을 두고 의사소통을 하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기업의 기획과 수익 통제 수준인데, 아마도 기업이 내리는 가장 중요
한 결정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익을 최대한 낮은 수준에서 기획하고 통제합니다. 부서장은
투자기회를 가려내고 기획하고 생산라인으로 이익을 통제하는 책임을 지게 되지요."
경영절차의 다섯 번째는, 에머슨 베스트 코스트 프로듀서이다. 이것은 1980년대 초에 비용
절감을 내건 신생 경쟁사들의 도전에 부딪쳐,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이율을 보장하기 위
해 채택된 절차이다. 간단히 말해 원가절감, 경쟁자에 대한 지식, 생산목적뿐만 아니라 제조
전략, 경비 위임, 내부 의사소통 강화 등에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경영 절차는 차별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리
더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나이트는 말한다.
"리더는 긴급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행하는 능력이 필요합니
다."
"또한 성공에 대한 헌신과 타협을 불허하는 높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승리의 환경이란 사
소한 부분에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나쁜 경정의 대부
분이 사소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물론 리더십의 핵심은 직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엄격하면서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하지요. 이 '엄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여러 번 이의를 받는데요. 직원들을
불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포브스의 편집자였던 제임스 W. 마이클즈는 이것을 이해하고 1978년에 우리
에머슨을 다룬 기사에 이렇게 썼습니다. '엄격'에 관한 웹스터 사전의 정의를 인용하여 '강
함 또는 확고함의 자질을 갖춤..' 이라고 말이지요."
"마이클즈는 포브스에 '엄격함(강함, 확고함)은 기업경영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생산적인
자본을 만들어낸다. 직업을 꾸준하고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들고 낮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생산품을 생산하여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한다'고 썼습니다. 또한 '엄격함은 냉정하거나 무
책임한 것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고도 했지요."
나이트는 주주들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지난 26년 동안 모든 부서의 기획 회의를 즐겼습니다. 내 시간의 60퍼센트를 차지
하는 그 회의들을 어떤 이들은 피곤한 일로 보기도 하지만, 내게는 재충전의 시간이나 다름
없지요. 사업에 관심이 있고 차별성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사람들고 함께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습니다. 누구나 승리팀의 일원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
니까요."
데니스 코즐로스키
타이코 인터내셔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한 달에 거래 한 건 하는 신사' 이것은 비즈니스 위크가 일찍이 들어 본 적도 없는 거대
한 기업의 총수인 데니스 코즐롯키의 프로필 중 적극적인 성장전략을 말하는 것이다.
과장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른 묘사이다. 사실 코즐로스키는 인수를 통해 빠
르게 기업을 확장했는데 현재는 타이코 인터내셔널은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는 기업
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조 업체이자 방화시스템 설치기업이다. 또한 북아메리카
와 영국에 가장 큰 전기안전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이기도하고(ADT소요), 아울러 일회용
의료용품(US 서지컬), 포장재, 전류 통제장치, 전기전자 부속품, 수중 원격통신 시스템 생산
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세계 75개국에서 활동하며 1998년 수익은 1억 3천4백
만 달러였다.
코즐로스키는 이같은 성공의 열쇠를 '실적당 보수'라는 보상제도 즉 개개인의 목적 설정
을 장려하여 팀 전체에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한 데에서 찾는다.
"우리의 경영인센티브 프로그램은 단 하나의 원칙에 따르기 때문에 효과가 있습니다. 바
로 일반적인 자치권을 가진 리더와 재정적 이익이 주주들이 이익과 같다는것입니다."
리더가 주주를 위해 더 많이 벌수록 곧 자신을 위해 더 많이 버는 셈이다.
"인센티브 보상은 기업 전체의 결과보다는 각 사업단위의 업무수행에 직결되는데 이는 개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개개인의 힘이란 데니스 코즐로스키와 대화하는 도중에 종종 떠오르는 아이디어이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또한 차세대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 얘기할 때 드러난다.
"다재다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문화, 아시아 혹은 유럽, 혹은 라틴아메리
카 등의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서 나름의 중요한 몫을 할 것으로 생각하지요."
이것이 코즐로스키의 경영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해내는 일이야말로 진짜 사업을 경영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중앙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는 거지요. 물론 깜
짝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실히 해둡니다. 비록 공기업이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대하고,
시간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그들에게 신뢰를 쌓으면, 적절한 시기에 그에 대한 대가가 돌아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보상은 당연히 개개인의 업무수행에 근거한다.
"처음부터 함께 일하던 모든 사람들 혹은 인수로 인해 함께 일하게 함께 일하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조직이란 자본주의적 시스템이다. 모두가 활발히 가치창조에 참여한다
면 그 가치를 눈앞에서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가치라는 병은 뚜껑이 없고,
우리의 장려 프로그램에는 상한선이 없습니다."
"또한 나와 직접 관련된 2~3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타이코의 전체 실적에 따라 보상
받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즉 의료사업에서 일하든, 화재나 연기통제 영역에서 일하든 자신
이 관리할 수 잇는 업무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지요."
"대부분의 직원들은 회사의 주주들이기도 합니다. 직원들에게 주식을 배당한 다양한 방법
들을 고안해 놓았지만, 그 양은 보상의 10퍼센트 이하입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그들이 책
임지고 권위를 행상하며 통제하는 임무에서 나오게 되지요."
코즐로스키는 오랫동안 이 방법이 경영이나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고 생각해왔다.
"대학 때 아인 랜드가 쓴 근원과 아틀라스가 줄어들고 있다를 읽었는데, 20대 후반에 다
시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개인이 미칠 수 있는 공헌이 주된 내용이
었는데, 여기에서 개개인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다. 코즐로 스키는 수천 명의 직원들을 감시하는 거대한 중
앙 집중적 경영이 전혀 필요없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본사에는 50명의 직원들만 채용하고 있으며, 그중 40명은 세금과 공적대표로서 대외적으
로 승인해야 할 사항들을 다룹니다. 나머지 10명이 기업의 입장에서 업무를 감독하고 전략
을 세우며 인수를 수행하는 등의 일을 하지요."
코즐로스키는 업인수를 집행하는 원칙을 준수하지는 않는다.
"기업인수는 즉각적인(벌어들이는 것 이외에도) 창조행위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비용은 덜
들어야 하며 상승효과는 재빨리 감지 되어야 합니다. 기업인수는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
며, 우리가 유지할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합니다. 또한 기업인수는 우리의 주식을 다시 사들
이는 것보다 가치있는 행위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
하는 테스트로서 인수를 활용하고 있지요."
"인수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거래를 협상할 때 우리는 즉시 통합 절차를 시작합니다. 시작
시기를 놓쳐서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면 기업인수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소득마저도 잃게 되
니까요"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
코즐로스키는 타이코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도전은 '숙련된 기업인수 전략을 유지하고 창
조적인 거래만을 하며, 초점을 유지하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들을 저비용으로 생산하는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는 일뿐
만 아니라, 이 업계 내에서 확보한 중요한 시장 또한 유지 하고자 합니다."
1990년대 초에 코즐로스키가 내린 결정을 살펴보면 이 얘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결정이 타이코가 오랫동안 이어온 성공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CEO가 되었을 때(1992년) 내 임무는 기업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85퍼센트 정도를 주기적인 ㅂ즈니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요. 지금은 완전히 그 반
대지만 말입니다. 수입의 15퍼센트 정도가 주기적인 비즈니스로부터 나왔고 85퍼센트는 유
지비용에서 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유지비용이란 ADT 안전 요금으로 매달 우리가 받는
것과 해저굴절 차단 케이블 유지를 위해 기업이 우리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말하는데, 사실
상 엄청난 서비스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생산으로부터 버는 것보다 생산품에 대
한 서비스로부터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이것은 2-3퍼센트의 잉여 시장을 확보하는 것보다도
더 높은 수익을 올릴수 있었습니다."
"1992년 당시는 주기적인 사업에서 너무나 탈피하고 싶었고, 서비스에 좀더 주력하여 장
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사업을 하고 싶던 시기였습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일회용 의료용품
을 생산하는 업체로서 연간 약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켄달을 인수하는 일이었지요. 타
이코는 1억 달러 상당의 일회용 의료용품 생산업체로서 켄달을 인수하고, 뒤이어 다른 일회
용 의료용품 사업체도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회용 의료용품 생산으로 연간
50억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이것은 가장 수익률 높은 사업 중의 하나로 완전히 자리잡게 되
었습니다."
왜 우리 기업을 변화시키고 싶었는지 분명히 기억합니다. 1991년과 92년에 우리는 영어권
을 강타한 건설 위축의 여파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규모 의료기기 사업은 계속해
서 잘 성장하고 있던 때인지라, 나는 새로운 CEO로서 그때야말로 주축 사업을 전환할 이상
적인 시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나는 불을 끄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일회용 의료기기 산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
고, 바로 그날 켄달이 계열사의 소득을 발표했습니다. 당신 켄달은 우리의 레이더에 들어오
지도 않았지만, 나는 즉시 켄달을 조사했고 차입금을 이용한 기업 매수를 통해 켄달이 소유
한 클레이튼, 듀빌러, 라이스를 떠올렸습니다. '사실 나는 타이코를 잘 모르고 있으며, 왜 이
일에 관심이 끌렸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켄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다.'
그후 켄달에서 나를 뉴욕으로 초정했고 협상을 벌였으며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
다."
이후 코즐로스키는 기업을 순조롭게 재건하였고, 그의 결정 때문에 결국 타이코는 오랫동
안 성공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의 힘은 이렇게 큰 것이다.
랄프 라센(Ralph Larsen)
존슨 앤 존스(Johnson and Johnson)
"명령은 효력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200억 달러 상당의 대규모 헬스케어 기업이 아니라, 170개의 소규모 헬
스케어 기업들의 총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이자 CEO인 랄프 라센는 존슨앤존슨을 이처럼 반직관적이고 간결하게 묘사한다. 이
는 이 기업의 놀라운 성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존슨앤존슨은 반창고, 베이비 파
우더, 샴푸, 타이레놀 같은 소비자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건강 관련 제품업계
에서 시작하여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소비자 상품은 전체 수익의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존슨앤존슨은 의료기구 제조업체에서 가장 큰 기업 중의 하나로 성장하였고(인공골
반과 무릎관절에서 신경외과 수술에 관한 모든 것), 세계에서 가장 큰 의약품 기업이기도
하다.
존슨앤존슨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 모든 각 단위들을 최대한 자체적으로 경영한다. 이
같은 경영방식은 이 기업이 창조된 방식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1930년대부터 오랫동안 회
장직을 맡았던 로버트 우즈 존슨의 방식도 경영을 분산시키고, 최하 단위까지 자치적 경영
권을 부여하는것이었다. 랄프 S. 라센은 이렇게 말한다.
"존슨앤존슨은 생산 비즈니스가 아닌 지식 비즈니스에 속하는 기업입니다."
병기고의 모든 무기들을 최신화시키기 위해, 라센은 매년 말이면 뉴욕의 호텔방을 며칠간
예약하고는 각 부서의 모든 사업 계획을 읽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질문을 적어가
며 잠재적인 문제들을 탐색한다.
존슨앤존슨의 새로운 회장이자 CEO는 문제점을 분명히 발견했다.
"우리는 새로운 주기(라센이 새로이 회장직을 맡은 1989년에 시작된 주기)에 접어들고 있
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기업이 당면한 가격 인상을 유지할 수 없음이 확실했고, 절대적 근거
에 대한 GDP비율로서 측정되는 헬스케어 비용의 엄청난 상승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헬스케어 비율은 GDP의 12-13퍼센트까지 상
승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상승률은 6-7퍼센트였으며 계속 상승세를 보였고, 인플레이션 비율
을 감당할 만큼 지속적인 가격상승이 가능해 보였지요. 우리 능력의 한계는 없는 것만 같았
습니다."
"이런 조건하에서는 많은 부정을 숨길 수 있어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
서 그 어디에서도 경쟁자로서 접근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다가올 세계 경제에서는
가격인상이 매우 어려울 것이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라센이 내다보는 새로운 세계는 이전에는 한 번도 심각하게 고려된 적이 없고 존슨앤존슨
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소식이었다.
"기업 내의 직원들은 모두 우리가 어떻게 존경받는 10대 기어에 들게 되었는지 멋진 얘기
들을 읽었습니다. 우리 기업은 대단한 호평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받음직한 것도 많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요. 모든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바꾸어놓기
란 아주 어려운 일이랍니다."
"결국 이러한 생각들을 고정시키기 위한 프로세스를 생각해냈습니다. 주기적으로 기업에
대해 사례 연구를 하기로 한 거죠. 첫 번째 사례 연구를 '경쟁기준 설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사례에서는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은 일과 실수들, 들쭉날쭉한 비용에 대해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SG&A(판매와 일반적인 집행비용)가 40퍼센트인데, 경쟁사는 30퍼센트 약간 웃도
는 수준이라는 등의 내용이었지요. 목록은 계속 집계되었으며, 이것은 우리의 상황이 겉보기
만큼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사례 연구는 직원들이 아주 진지하
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준 중요한 절차였습니다."
"동시에 사례 연구를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급 리더들은 생각했던 것
만큼 좋은 상황이 아니므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민감해졌거든요."
당연히 존슨앤존슨의 일부 직원들과 경영 책임자들은 이러한 나쁜 결과에 책임을 져야만
했다.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해두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방향을 바꾸어 직원과 관리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제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라센은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모두가 참여한다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명령은 존슨앤존슨 내부에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명령한 사람이 지쳐버릴 때까지, 직원들
은 명령을 그냥 흘려버립니다. 상사가 눈앞에 있을 때는 하는 척하지만, 진정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놀라운 분산 경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독자적으로 일하지요. 따
라서 그들에게 우리의 의도가 옳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도한 바
에 걸맞은 핵심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거든요."
핵심적인 일이 일어났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라센은 '미래 창조'라고 명명한 두 번째
사례 연구를 실시하였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첫 번째 사례 발표에서 직원들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를 원했고,
그것을 다시 저리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얘기한 것은 틀렸습
니다. 존슨앤존슨의 2005년을 계획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리에게 보고하십시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시기는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는 클린턴 정부의 헬
스케어 개혁에 대한 논쟁이 진행중인 시기였지요."
"그 논쟁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한편
으로 그것은 존슨앤존슨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헬스케어 비
용 논쟁으로 세상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의 합리적이 헬스케어 체제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방어자세 대신 어떻게 생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 설계로 인해 기업 내에 에너지가 넘치게 되었고 전격적으로 재구성을 하게 되었습니
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었어요. 전적으로 우리 직원들이 해낸 일이지요. 우리가 이룩했던 모
든 일은 사실 그저 더 열심히 일하거나 더 오래 일해서 된 것이 아니라, 매사에 도전함으로
써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라센은 몇 가지 예를 들었다.
"20개도 넘는 우리 소유 국내기업들은 모두 각기 경리부를 가지고 수표를 발행하고 있었
습니다. 그 일에 아마도 백 명 이상이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제야 우리는 부
서의 비용에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정보 기술이 발달해서 이 모든 일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데 말이야." 따라서 한 부서
에서 각각의 기업이름으로 수표를 발행함으로써 많은 비용을 절감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수천 명의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매일 근무시간 기록표를 쓰고 있었습니다. 수
천 장의 종이가 소모되고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연 이 근무시간 기
록표가 필요할까요? 대부분의 직원들이 매일 출근하고, 그것도 정시에 출근하는데 말입니다.
휴가를 떠나거나 시간 외 근무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800번 서비스를 이용하면 돼
요. 전화를 걸어서 예외 등록만 하면 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믿지요? 속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속일 수는 없지요. 그랬다가는 당장에 해고될 테니까요. 몇 명이나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인터넷으로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60퍼센트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급여지불 여부, 근무시
간 기록표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지요. 전반적으로 그 기능들을 없앤 상태입니
다."
일단 올바른 방향이 지정되고 뒤이은 성공으로 용기를 얻으면 직원들은 곳곳에서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낸다.
"부서마다 제각각 화학 제품을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20개 이상의 부서가 다
우나 FMC같은 기업에서 물품을 구입한 거지요. 그래서 소모품 구입부서를 만들어 화학제
품들을 일괄적으로 구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기업 전체의 계약 가격을 협상했지요.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어요."
계속 얘기되는 이러한 사항들은 모두 존슨앤존슨의 분산경영에서 나온 것이다. 독립된 부
서에서 급여를 지불하고 물품을 구입하도록 만든 것이다.
일단 라센과 그의 팀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 역시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신조는 지켜지고 있는가?
흥미롭게도 존슨앤존슨이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비결은 기업의 유명한 신
조와 맥을 같이한다. 기업의 윤리는 장차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 것인가 청사진을 제
시하는 것이었다.
라센은 이같ㅌ은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신조는 모든 일의 기반이 됩니다. 이같이 복잡한 세계에서 존슨앤존슨이 분산경영 방식
으로 경영될 수 있었던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조입니다. 170~180개의 각기
다른 부서들이 제대로 운영되는 것은 그 부서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신조라는 아교가 있기
때문이지요."
"신조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신조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면, 아마도 존슨앤존슨에
서 견뎌내기 힘들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는 기업에 해를 끼칠 일을 저지를 것이 분
명하기 때문에, 조직이 그를 거부할 테니까요. 조직은 마치 신체가 외부 장기를 거부하듯이
그 사람을 몰아낼 겁니다."
"우리에게 신조는 북극성과 같습니다. 빙 둘러앉아 업무 과정을 제안할 때면, 누군가 이러
게 말합니다. ;이제 이 내용을 어떻게 우리 신조와 조화시킬까요?'"
이렇게 해서 존슨앤존슨은 낭비를 없앴다.
"신조에 따르면 기업이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상대는 바로 고객입니다. 우리는 헬스케
어 전반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다짐합니다. 그렇지만 유전
관련 제품으로의 진출에 대한 압박, '만사 OK'식의 생산라인과 제각각인 품질 수준이 큰
부담이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가려내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나는 최상의 품질
을 생산하고 싶어. 세계애서 가장 경쟁력 있는 헬스케어 기업이 되고 싶다구.'"
"이 한마디에도 각각의 단어들이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경쟁력
있는'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공격하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
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품질을 떨어뜨릴 겁니까?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가장 경쟁력 있다는 것은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입니다. 우리
가 원하는 것은 아주 잘 훈련받아 업무 수행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최고가 되고 싶을 뿐만 아니라,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을 이루고, 또한 폭 넓은 기반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투자 전문가들은 의약품 사업에만 열중하라고 해요. 수익
률이 높은 분야니까요. 의약품 사업은 키우고 다른 사업은 정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
게 말했지요. '아닙니다. 우리는 폭널은 기반을 원합니다. 헬스케어 경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집어낼 만큼 똑똑하지 못하거든요."
방향이 설정되자 존슨앤존슨의 직원들은 기업을 보다 효울적으로 만들기 위해 힘차게 출
발했다. 지난 5년동안 존슨앤존슨은 연간 집행비용을 무려 20억 달러나 절감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존슨앤존슨의 직원들은 아무도 비용절감 조치와 직결되는 보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센도 이 점을 인정한다.
"우리에게는 상투적인 보상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기획안들이 특정 목표와 보너스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만, 나는 우리 기업 방침에 따라 그런 식의 보상에 자연스러운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은 헬스케어 업체입니다. 인명을 구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이지 비용을 줄
이고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지름길로 달려가는 식으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아니
거든요. 그래서 기업에 대한 장기적인 공헌도에 따라 보수를 지급합니다. 주관적이 보상이기
때문에, 아주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지요."
"우리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가장 문제가 많은 사업에 투입
하지요. 가령 우리는 엔도 수술직(수술에 직접 필요한 것에 관계된 사업)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US 서지컬이 본격적으로 그 사업에 도전했지요. 우리는 형편없이 뒤쳐
졌고 도무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고작 10퍼센트 정도 시장을 점
유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재능있는 한 임원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아주 좋은 실적 기록을 가진 사람이었
기 때문에, 그에게 이 일에 도전해 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선뜻 하겠다고 대답했지요.
그리고는 이내 멋진 팀을 구성하더군요."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 업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우리는 시장 주도를 원합니다.'"
"그는 5년 안에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보상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팀의 보너스를 매년 엄격하게 계
산된 숫자 달성에 묶어두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만큼 달성하지 못하면 그에 상
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단서가 있었지요. 이러한 보상이 뛰어난 사람들을 이끌어냈다
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목표는 분명하게 설정되었고, 사람들은 의욕에 넘쳤습니다. 멋지게
일을 끝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우리가 지시한 목표보다 더 어려운 목표라도 기꺼이 설정
할 사람들이었지요. 그런 그들에게 레몬을 짜내듯이 정교하게 조작된 재정목표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막상 본격인 일이 시작되면 그들은 높은 목표보다
는 낮은 목표를 세우기를 원하게 마련이거든요."
"보수는 후하게 지급됩니다. 특히 뛰어난 직원들에게는 대단히 후한 대가를 치리지요. 내
게 보상이란 뛰어난 직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비싼 대가이며, 평범한 직원들을 위한 최대의
비싼 대가라고 할 수 있어요."
"아, 그 수술직 관련 사업팀 말이지요. 그들은 4년 만에 해냈습니다. 처음 2년 정도는 별
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더군요. 다른 기어버럼 엄격한 보너스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들은 벌써 징계되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들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라센도 멋지게 해왔다.
켐 레이(Ken Lay)
엔론(Enron)
"300억 달러짜리 구멍가게"
깜짝 퀴즈: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이름은?
500대 재벌기업인에게 매년 이 퀴즈를 냈는데, 언제나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의외의 인물
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물론 동료들은 놀라지 않았지만), 대다수가 엔론이라는 기업 이름
은 댄 것이다.
엔론?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 기업이자 전자기업인 그 엔론 말인가?
바로 맞추었다.
500대 기업의 총수들은 엔론을 거명함으로써 케네스 L. 레이가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사
업에 성공적을 진출하고 새로운 사업 전략을 수행했음을 인정하였다.
레이의 이같은 여러 움직임 중 공통점이 있다면, 각각의 움직임마다 에너지 사업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레이는 끊임없이 규제 철폐에 대한 압
력을 넣었는데, 그것은 다른 공공 사업자들과 자주 대립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레이
는 규제라는 족쇄가 없어진다면 자신의 기업이 더욱 잘 해낼 거라고 확신했다.
레이는 그 점을 입증하기 위해 사업에 재정적 요소를 부가하여, 다른 에너지 사업을 하려
는 기업들의 시설 설치와 그 유지를 도와주었다. 엔론캐피털앤트레이드리소스 부서는 지금
도 전세계에 미국 가스전기 기업의 상해보험, 장기계약 융자와 여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레이는 기업의 이익 센터를 작게 쪼개어 더 많은 관리자들에게 기업의 규제 측
면으로나 비규제 측면으로나 사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였다.
이 모든 변화는 엔론을 300억 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기업 대신 초석으로 느끼도록 계획된
것이다.
긍정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부정적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은 켄 레이가 오늘날 기업
을 경영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에 플로리다가스의 사원으로 일하던 시절, 레이가 기억하는 것은 기업이 너무나도 편
안한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석유와 가스를 취급하던 기업의 직원들은 전부 합쳐 1천여명 정
도였는데 각기 소그룹으로 나누어 일하고 있었다. 레이는 그 기업의 전반적인 느낌이 자신
이 누구인지 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익명성을 가진 기업
이라기보다는 중소도시 번화가의 작은 상점에서 일하는 것 같앗다고 말한다.
레이는 작은 기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상사가 우선권을 행사하는 것을 그는
아주 싫어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어떤 직위를 충원하는데 두 명의 후보자를 두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상사는 둘이 똑같
이 그 직무를 수행할 수만 있다면 보다 적은 급여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려 하겠지요.
다른 후보자가 두세 배 더 유능하다 해도 말입니다.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CEO가 되면 모
든 주요 직책에 파격적인 인물을 기용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어디에서나 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엔론에서 노력하는 바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요 직책을 개방하면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그 직책에 임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임용이 이루어지면 그 밑으로부터 좋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겠죠."
레이가 그런 식으로 최고 임원을 고용할 때면, 이상하게도 그 임원은 할수 있는 한 소규
모의 관리자 단위에서 끝까지 일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엔론은 무수한 다른 기업과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같이 거대한 사업체를 운영
하면서 우리는 조직을 평평하게 유지하고 되도록 직원들과 많이 접촉할 수 있는 경영을 하
려고 노력하지요."
"직원들이 매우 큰 관료적 기업이 아니라 작은 기업 혹은 기능부서의 일원으로 느낄수 있
는(플로리다가스에서 일할 때와 같은)환경을 만들려고 우리 경영팀은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
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빌딩 내의 활기찬 분위기를 보면 느낄 수 있지요. 또한 단결캠페인
을 위한 개시 집회나, 우리 농구팀을 지원하는 사람들, 우리가 속한 공동체 활동을 위한 많
은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노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레이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한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치체계나 개개인의 중요성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동료집단이나 조직의 상하관계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도록 애를 쓰지요. 우
리가 만들려는 환경은 (바로 이것이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인데) 우리 직원들이 타고난 잠
재력을 진정으로 깨닫게 해줄수 있는 그런 환경입니다. 엔론은 각자의 잠재력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훈련과 격려, 자극을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경영철학은 상당 부분이 기본적인 나의 가치체계로부터 나오지만 나의 초창기 경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 때 내 상사였던 어떤 사람은 기업 전체에 꼭 필요한 직원은 여
섯 명에서 여덟 명이며 충분하며, 나머지는 교환해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
니다. 많은 상사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지요."
"하지만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 내의 모든 사람들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
들수록 기업 전체에 좋은 영향을 가져올 것입니다."
"기업의 말단직원에서부터 최고위층의 직원들까지 모두가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입니다."
말을 실행에 옮기기
레이는 직원들과 기업에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엔론의 규제를 없애나갔
다. "규제된 사업과 규제되지 않는 사업이 섞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규제되지 않는 쪽 사람
들은 결정이 빠른 사업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것이고, 규제되는 환경에 배치되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레이는 기업의 이러한 두 부분을 통합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서 좋았다"고 말한
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뀌지는 못했지요. 사실 우리는 여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적어도
상업분야에서는 규제 사업으로부터 보다 시장 주도적이고, 위험부담을 가지는 환경으로 전
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점점 더 우리의 설비를 살피면서, 그들의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최대화할 수 있는지 계산하는 무역업자와 거래인들이 증가하고 있지
요. 이제는 직원들도 우리의 규제 사업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내려는 무역업자
들의 행동을 점점 더 주시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은 점점 더 통합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통합된 것은 아니지만
점점 더 통합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레이가 말하는 통합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옮기는 것이다.
"내부 이동을 포함해서 많은 인원들을 옮겼습니다. 현재 유럽을 담당하는 임원은 불과 몇
년 전에는 플로리다가스운송회사에 근무하던 사람인데, 그 기업은 수송관을 다루는 규제 기
업이었땁니다. 그는 수익성이 매우 높은 주요 센터 중의 하나로, 이제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
고 경쟁력을 얻어가는 유럽 엔론 전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성공비결 중 하나는 기업 전체를 통해 기업가 정신을 담는 커다란 주머니를 만든 데 있
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보아 그것은 우리가 채용한 사람들로부터 얻은 결과지요. 그래서 더
욱 똑똑하고, 결과 지향적이며, 창조적이고 성취력이 높은 사람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업적에 보상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어 기업의 성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레이는 이것이야말로 기업이 정리되든 아니든 사업을 운영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
"바람직한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일관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가치기준도 없어 직원들은
관심을 잃게 되고, 그러면 만족스러운 작업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레이는 바람직한 환경 조성의 책임은 바로 책임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CEO으로서의 임무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
이야말로 진정으로 모든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습니다."
레이는 이러한 책임감이 그대로 직원들에게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늘 고위급 임원들에게 경영기술보다는 리더십을 가지라고 요구합니다. 경영기술과 리더
십을 둘 다 갖춘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이끌고 싶
은 조직에 대해 분명히 파악하고 있고, 다른 직원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간부가 되기를 바
란답니다."
"그런 다음에 최고 관리자들에게 강한 '전략적 기술과 추진력'을 요구하지요." 레이는 바
람직한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만들려는 환경이란, 비록 3천억 상당의 기업 안에서지만 직원들이 마치 사업가처
럼 일하도록 격려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거대 조직의 임무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
로를 노출시키고, 각각의 팀마다 하나의 작은 기업으로서 필요한 업무가 분명히 있음을 확
인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레이는 기존의 가장 큰 기업 중의 하나를 취해서 초석이 되도록 만들었다.
셸리 라자루스(Shelly Lazarus)
오길비 앤 마더(Ogilvy & Mather)
"360도 브랜드화"
수치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인들이 매일 수백 개의 광고
문구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
해서,.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출근길에 우리는 광고판을 지나치고, 신문과 잡지의
광고를 읽게 되며, 기업 로고가 우리와 동료들의 옷 등에 새겨져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쓰
는 사무용품에도 기업 로고가 새겨져 있다. 고개를 돌리는 곳 어디에나 광고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업적 메시지들이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작 질문을 받으면 지난 24시간 동안 접한 광고들의 단 한조각도 제대로 머릿속에 기억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광고를 요구하며, 고객들이 돈을 지불하는 광고업계
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듣기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일부 기업들이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이 같은 혼잡을
뚫고 나가자'고 결정하면, 다른 쪽에서는 유머를 이용하거나 엇박자식의 접근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셸리 라자루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고객이 상품에 대한 지속적인 메시
지를 보낸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광고뿐 아니라 포장과 판매 상품에 대한 소책자, 주문
서 등 그 기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이용하는데, 이렇게 메시지를 내보내면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말한다. 잠재적인 고객이 일단 그중 하나의
고아고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면, 그것은 앞서 보았던 다른 광고들에 대한 인상도 강화된
다는 것이다.
고객명단에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포드 IBM, 유니레버와 같은 선두기업들도 포함되어
있다. 라자루스의 접근방식이 이들 주요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포드자동차의 엔지니어들이 약간의 회의감을 품고 논의를 시작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어떻게 광고하는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자동차 기업의 경영절차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도 셸리 라자루스는 그 사람들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첫 번째로 해줄 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제가 상대적으로 자동차라는 분야에 대
해 잘 모르기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포드가 재규어와 다르고, 마
즈다와 다르고, 또 뷰익이나 폴크스바겐과도 분명 다른텐데, 어째서 모든 전시장이 다 똑같
아 보이는 거죠?"
모두들 잠잠해졌다. 사실 모든 판매업자들이 다 똑같아 보였던 것이다.
라자루스는 이 점을 찰나에 인식시켰다.
"당신의 물건에 관심이 있고 그 물건을 자기 사업장에 들여놓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
해보세요. 이 사람이 귀한 시간 중 한 시간을 내어 당신의 상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일단 어디를 먼저 볼까요? 바로 하나도 개성없는 이 전시장이죠."
"그럼 생동하는 브랜드 그 자체인 나이키 타운과 비교해보시죠. 왜 포드는 나이키 타운처
럼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물론 포드도 할 수 있다. 포드의 광고 전략을 기획집행하는 임무를 맡은 오길비센터는 총
체적인 브랜드 체험을 요구하였다.
"브랜드화!" 전시장은 단순한 선전이 아닌 라자루스가 '360도 브랜드화'라고 부르는 유일
한 본보기이다. 전시장은 그 기업이 고객을 접촉할 때마다(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상을
심어주는 중요한 곳이다.
"포드와 일할 때 절차는 단순했습니다. 매번 그들과 만날 때마다 요지를 파악하고 연구해
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게 포드인가요?'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부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는데, 단지 그때까지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아마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는 바로 요즘에 포드의 웹사이트에서 몇 가지 정말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데, 그 사이트는 온통 이질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더군요."
이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과 동일한 외관과 느낌을 주
는 웹사이트를 찾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라자루스는 주저 없이 자원 낭
비라고 말한다.
"360도 브랜드화 얘기로 돌아가지요. 접촉하는 모든 면에 상표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인터넷도 마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찍이 우리 오길비는 고객과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0년 전, 누구도 브랜드
효과에 대해 얘기하지 않던 시절의 얘기예요. 그런데 드디어 지난 12개월 동안 이 상호 작
용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우리 사업의 아주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브랜드 효과는 새로운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객들이 처음에는 귀를 뚫은 청년
네 명이 운영하는 회사로 찾아갔답니다. 고객들은 이 청년들이 화려한 이미지로 가득찬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이제 고객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웹사이트가 고객에 대한 통찰력과 상표에 대한 통찰력에 의
해 정보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브랜드 파수꾼인 우리에
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웹사이트 작업이 앞으로 우리 사업의 일부로서 엄청나게 성
장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우리의 판매 도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할 거라고
믿고요. 그 도구란 고객 한분 한분과 대화하면서 기록했던 내용을 모아둔 것인데, 앞으로도
훨씬 더 흥미롭고 풍부하며 다양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브랜드가 나타내는 것
웹사이트, 전시장, 소책자, 자동차에 붙어 있는 가격표, 혹은 텔레비전 광고 모두 그 목적
은 하나다. 상표 이미지, 그 상표의 진정한 의미를 고객에게 확실히 전하려는 것이다.
라자루스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한다.
"IBM 광고 위탁 업무를 담당하는 한 최고참 실력자가 고객에게 상표 이미지를 부각시키
기 위해 고전적인 '판매 관련 표현들'을 배치하려고 작업중이었습니다. 이분이 6개월 동안
추진한 프로젝트는, 디즈니월드 엡콧센터에 새로 설치될 IBM 전시장 개발팀에게 인터넷 브
랜드에 대해 자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테마공원의 디자인이나 브랜드 효과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그가 그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다고해서 그가 청색톤의 핵채 계획이
나 활자체만을 사용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철저하게 작업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각 디자인, 도면, 인
간 공학, 언어, 간판, 전체적인 경험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IBM 브랜드답다' '다정하다' '다가가기 쉽다'고 말하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었지요."
라자루스는 브랜드의 힘에 대해 좀더 설명하기 위해 포드 얘기로 되돌아갔다.
"나는 브랜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브랜드 효과를 설명하는 걸 좋아합니
다. 사람들은 소비자 입장이기 때문에, 이러한 얘기를 듣게되면 금세 나에게 동조하게 되거
든요. 잠깐만 브랜드에 대해 설명해도 사람들은 그 원리를 곧 이해한답니다."
사람들이 곧잘 이해하기 때문에, 오길비와 포드의 업무관계는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었
다.
"일부 우리 직원들은 상품개발팀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을 받습니다. 판매를 초월한 경영이
'좋아, 그걸 선택하겠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거죠.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브랜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내가 처음 상품을 고안할 때부터 함께
일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면, 난 정말로 포드라는 상표를
드러낼 수 있는 멋진 상품을 디자인할 텐데 말입니다.'
제품 디자인 절차를 역추적하면,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표를 위에 붙일까
요?' 하고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재규어? 마즈다? 머큐리? 링컨? 포드?"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활동반경이 점점 더 넓어지기 때문이지요."
흥미롭게도 360도 브랜드화는 오길비의 고객들이 다른 모든 난잡한 상업적 메시지에서 벗
어날 수 있는 돌파구였다. 기업의 이름이나 사조를 신선한 과일 위에서 발견하게 되거나, 배
너 광고가 모든 웹사이트에 뜨고, 몇 가지의 상업적 이미지들을 보면서 하루에 한 시간을
보내도록 강요받는 세게에 산다면,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
다.
바로 이것이 라자루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대목이다.
"약 1년 전, 오길비의 관리자들에게 고객의 총예산 중 몇 퍼센트 정도를 우리와 일하는
데 쓰는지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광고 예산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
가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거든요. 내 관심은 바로
그 사람들이 상표가 소비자를 자극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하는가입니다. 이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관심은 변화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적합할 것인가?
대부분의 광고대행사가 그렇듯이(사실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처럼), 오길비에는 나름
대로 일을 처리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라자루스는 기업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그 문
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어떻게 했을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자가 우리 기업에
적합한지 아닌지는 그 즉시 느낄 수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도전적인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이
는 많은 사람들과 애기해봤습니다. 그중에는 저녁을 같이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 문화 속에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길비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은 아니란 뜻이죠."
그 문화는 어떤 것인가?
"다른 대단한 기업들처럼 우리 기업도 가치 추구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을 헐뜯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비록 동료나 고객들에게 유머러스하다 해도 오길비에서
는 잘 해내지 못할 거라는 거죠.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그리고 고객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는 비정치적인 문화, 정치를 싫어하는 문화가 지배적입니다.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도록
놓아두지 않습니다. 단지 그렇게 하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조
직인데, 기업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있을 때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사으 ㅣ까다로운 경영에 대해 상사 주위에 서서 분개하고 소리치며 화를 낸답니
다."
"앞으로 1년 동안 기여해줄 것 같은 사람은 붙잡고 싶을 때가 많지만, 사실 이런 문화 속
에서는 힘든 일입니다. 모두들 서로를 책임지도록 하고 있거든요."
라자루스는 기업 문화를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직원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녀가 관심을 쏟은 이러한 문화의 기원은 기업을 창립할 때로 거
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이제 막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간의 데이비드 오길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의 천재성에서 조직의 운영방법에 대한 강렬한 시각이 생겨났고, 그러한 관
점에서부터 직원들 사이에 생생하게 작용하는(놀라울 정도로 지적 정열이 요구되는)원칙들
이 발전하게 되었답니다."
오길비가 라자루스의 스승은 아니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광고계의 신화인 그녀는 비록 1
년에 3개월 정도, 한 번에 3주 정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그런 중에도 오길비가 라자로스에
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데이비드를 알게 된 건 어떤 의미에서 그분이 아주 민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는 기업 내에서 이름이나 직위를 제대로 알고 잇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나
는 데이비드가 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저 관심이 가
는 인물을 찾아낼 뿐이었지요. 내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임신 9개월째였어요. 그는 임
신 9개월의 몸으로 출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매일저녁 여섯시에 내 책생에
서 밖을 바라보면 데이비드는 복도에 서 있었는데, 그냥 거기 서서 쳐다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들어와서 나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덕분에 그를 아주 잘 알게 되었지요."
"나는 항상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말했어요. 그것이 바로 데이비드의 경영 방식이었기 때
문이에요. 그는 내가 여자이고 임신했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점을 좋아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이들에게 도전처럼 보였기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아주 오랜 전 일
이잖아요. 내 아들이 벌써 스물네 살이니 말이지요. 지금도 임신하면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기업이 많지 않습니까? 당시 제너럴 포드는 임신복을 입자마자 빌딩을 떠나게 할 정도였기
때문에, 데이비드에게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던 겁니다."
데이비드의 이미지 속에서
판타지1
라자누스는 여성 CEO으로서, 편치는 않지만 그녀가 역할 모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일, 입는 옷, 사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고 생각할 만큼
뻔뻔스럽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점차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사실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는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도 놀랍니다. 그런데 바
로 오늘 아침에 참석했던 산업회의에서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와 울면서 얘기하더군요. '내
소개를 하고 싶어요. 4년전에 한 행사장에서 하신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 나는 임신중이었답
니다. 당신이 균형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고, 지난 4년동안 그 얘기를 교훈삼아 살아왔
어요. 그건 너무 충격적이었고, 더 중요한 건 그것이 바로 제 딸아이에게 일어났다는 거예
요.' " "사실 좀 놀랐습니다. 나는 내 연설을 듣고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생
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나는 일하는 가정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항상 운동회나 소풍
따위에 가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다른 직장 여성이나 고객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힘이 납니다."
라자루스는 역할 모델로서 늘 젊은 여성들에게 경력에 대해 조언한다.
"늘 얘기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장에서 하는 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균형을 찾고 싶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거면 자연히 자녀들을 사랑하게
될 거에요."
"균형이 깨지면 그때부터 여성은 힘들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지 않
게 됩니다. 그러면 늘상 화제였던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어 직장은 점점 더 최악
이 되어갑니다. 삶이 분노로 가득 차게 되는거지요."
"여기에서 나는 두 가지 관찰 결과를 얻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하
는 일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질 때 가장 성공적이라는 걸요."
"따라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첫 번째 충고는, 사랑하는 무언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찾아
낸 것이 다소 지루하고 특별히 흥미롭지 않더라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말고 찾아야 합니
다."
"두번째 충고는 직장생활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
니다. 일과 사적으로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상황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적어도 이
것은 접근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갈등에 접근 또는 회피하는 방
법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고 성취감을 주는 문제해결 접근방식이랍니다."
라자루스는 분명 그녀 자신과 고객이라는 두 측면에서 균형을 찾아낸 게 틀림없다.
빌 매리어트(Bill Marriott)
매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
"고객과 직원 보살피기"
매리어트 인터내셔널 직원들은 그들의 CEO가 기업의 성공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인물이
라고 얘기한다.
윌라드 매리어트는 형상의 중간위치에 있음직해 보였고, 어떤 결정이 나든지 상관없이 호
텔 체인의 주요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여러대의 전화를 동시에 받는 마술을
부리는 중이었는데, 내선 1번에는 잠재적인 뉴욕주 소유주, 내선 2번에는 경영 고문이 연결
되어 있었으며, 내선 3번은 그의 아버지와 연결중이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가장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리어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지는 버지니아의 매리어트 초원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온통 물웅덩이로 뒤덮였으니
복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하셨지요. 나는 잠시 듣다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버
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한 2∼3일 걸릴 거에요. 지금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규모가 될지도
모를 거래를 협상중이거든요.'"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얘야, 사소한 일을 돌보지 못한다면 기업에
서도 마찬가지란다.'"
그 물웅덩이 문제는 즉시 처리되었다.
그리고 맨하탄 타임스 광장이 부활할 거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않았을 당시에 세워진 매리
어트 마퀴스는 호텔 체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호텔 중의 하나가 되었다.
빌 매리어트의 경영 아래 세심한 주의와 변화에 대한 욕구는 매리어트 인터내셔널의 특징
이 되었다. 빌 미리오트는 엄청난 규모로 기업을 확장시키며, 리츠 칼튼과 르네상스 호텔을
비롯한 11개의 브랜드를 경영하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고급 주거공동체를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매리어트의 패스웨이 프로그램으로 생활보조금 수령자들을 고용해서 훈련시켜 매리어
트의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의 그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
에서 환영받았다, 많은 이들이 모방했다.
매리어트는 매리어트의 아버지가 75년 전에 시작한 ANW 루트비어 노점상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지만, 그 특징 중 하나는 아직도 지키고 있다. 빌 매리어트는 아버지가 직원의 행
복을 최우선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매리어트의 아버지는 직원들 스스로 일하고 싶어 일한다
면 손님들에게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행복한 직원은 곧 행복한 고객으로 직결된다.
당시의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는 진실이다.
각 기업의 CEO에게는 자신들이 존경하는 선망의 대상의 누구냐고 질문하는 것은 늘 흥
미로운 일이다. 빌 매리어트는 숨 한번 쉬지 않고 네 명을 줄줄이 읊어댔다.
물론 첮번째는 그의 아버지였다. 빌 매리어트 경은 1920년대 장차 매리어트 인터내셔널로
성장할 조그만 길가 노정상을 연 인물이다.
두 번째 인물은 더욱 놀라웠다.
"아버지말고는 항상 독일의 롬멜 장군을 말합니다. 롬멜 장군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어떻게 유럽을 가로질러 왔는지에 대해 얘기하지요. 그는 45일 만에 프랑스를 점령했는
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공적이었습니다. 그의 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일 프랑스가 다리를 폭파시켰다 해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서 강을 건널 만한 다른 길을
모색했을 겁니다. 그는 늘 맨 앞의 탱크를 타고 선두 지휘했습니다."
"또한 콘라드 힐튼이 특출나게 훌륭한 리더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분을 매우 존경합니다.
처음으로 진정한 호텔 체인점을 만든 사람이죠. 불행히도 차후 계획을 자지고 있지 않아, 그
의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호텔이 아주 위험한 사업이라고 생각했고 재투자를 충분히 하
지 않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위치, 위치, 위치"라고 말했던 그의 말은 틀림없었지요. 힐튼은 아주 좋
은 위치를 몇 군데 확보하고 있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맥도날드를 창립한 레이 크록입니다. 정말 천재였지요. 그는 품질, 화장실의
청결도, 즉석요리 햄버거에 대해 신경을 썼고, 감자튀김은 좋은 기름을 써서 요리해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나도 그것을 먹고 자랐지만, 이 사람은 정말 거대한 기업을 만들었습니
다."
우리는 이 네사람이 매리어트의 창조품에 끼친 영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리어트는 힐튼처럼 몇몇 기업이 가장 좋은 장소를 찾지한 호텔업게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장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리고 롬멜을 좇아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며 장애물을 극복한
다. 게다가 메리어트의 CEO는 크록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상품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기업의 업무수행 과정을 분석해보면 빌 매리어트의 아버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대에 진입하면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던 매리어트는 이제 다시
한번 접대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5년 부동산을 개별적인 공공 기업, 호스트 매리어
트에 불하하였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아들이 말하는 기업의 장래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
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인 숙박기업으로서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상표를 가지
며, 또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1927년에 확립한 문화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고객을 돌보
고 동시에 고객을 관리하는 직원들을 돌보는 거지요."
"아버지는 직원들이 행복하면 손님들에게도 친절하여 고객들이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사
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직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역점을 두는 부분입니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한 기업이지
만,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에 신경쓰고, 너무 많은 부채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업
의 성장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바로 모든 것이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제조하지 않는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매일 집에서 멀리 떠나온 수백만의
고객들, 그리고 고객이 사랑하는 이들과 얽혀 지냅니다. 손님들은 지쳐 있습니다. 그들의 발
은 피곤해 합니다. 야단스러게 항공기에 탑승했거나, 원하는 차를 빌리지 못했거나, 호텔로
오는 길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혹 목적한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고객들은 우리 호텔의 프런트에 도착할 때까지는 무슨 일에든 시달렸을 것입니다. 직원들은
그러한 고객들을 보살피지요. 따라서 이것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직원들을 돌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그들이 고객들을 잘 보살펴주기를 바랄 수 있겠습
니까?"
"퉁명스러운 객실 담당을 만나거나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는 날, 내려가서 아침식사를 해
야 하는데 직원이 인사하지 않는다면, 아마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방문 앞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람에게 훌륭한 고객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매리어트가 경영하는 2천 개에 가까운 호텔에서 이것을 이행하는 것은 별개
의 문제다.
"이것은 모든 직원들에게 전달됩니다. 우리 호텔의 총지배인 대부분이 바로 그 위계를 통
해 승진한 사람들로서, 이 문화를 믿고 실천하며 이행하는 사람들이지요. 항상 이러한 점을
되풀이하며, 우리의 믿음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것입니다. 고객뿐
만 아니라 고객을 돌보는 직원들까지도 말이지요. 직원들이 이 기업에는 기회가 있다고 느
끼기를 바랍니다. 매리어트에서 일하면서 우리 직원들은 성장하고 발전하고, 기여하고, 훈련
받고, 배우고, 더 잘살 수 있습니다. 매리어트가 이 사람들을 인간으로서, 개개인으로서 늘
보살피니까요."
모든 직원에 대한 보상이 고객들의 만족도에 근거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
은 아니었다.
"우리는 고객의 만족을 주의깊게 살핍니다. 모든 호텔이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프런트 사무실에 가보면, 체크인과 체크아웃의 처리 속도와 프런트 데스크의 친절도에 대한
점수를 볼 수 있습니다. 객실관리부에 가보면, 객실과 화장실의 청결도에 대한 점수 그래프
를 볼 수 있습니다. 식품부에서는 제공되는 아침식사가 어땠는지를 나타내는 도표가 있습니
다. 이를 통해 고객들이 서비스와 객실 담당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볼 수 있는데, 이는 아주
정확한 측정입니다. 나는 그 정확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CEO를 포함은 모든 직원이 가까이에서 평가될 뿐만 아니라, 기업의 내부 평가도 물론 존
재한다.
"고객만족도 점수 외에도 우리는 1년에 두 번 종합의견 설문조사를 실시하는데, 여기에서
는 우리 호텔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근무조건과 상사에 대한 제반 사항들을 조사하게 됩
니다"
매리어트는 호텔의 지배인들에게 효율성 있는 체제운영을 요구한다. "지배인들이 받는 보
상의 30∼40퍼센트는 다름 항목, 예를 들면 직원과 고객의 만족도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보상제도는 매리어트가 달성하려는 가치들을 강화시킨다.
빌 매리어트도 그의 호텔을 방문할 때마다 은연중에 그러한 가치들을 강화시킨다.
문자그대로 걷기
"나는 기업을 산책하며 돌아다닙니다. 주방, 세탁실, 객실관리부, 프런트 사무실, 후방 사
무실, 객실, 주차장, 창고를 돌아다니는데 특별히 무엇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알
고 싶은 것은 '호텔이 깨끗한지? 세련되었는지? 우리 직원들이 어떤지? 다들 행복해하는지?
즐겁게 일하고 있는지? 총지배인은 어떤지? 그가 직원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하는 것들이지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총지배인은 50야드 떨어진 곳에 직원이 서 있어도 '
좋은 아침이군요. 샘. 조앤은 어때요? 좀 나아졌나요? 지미 녀석은 잘 지내지요? 아직도 야
구팀에서 뛰나요?' 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우리 호텔이 다른 호
텔과 달라야 하는 점이니까요."
"호텔사업은 많은 경우, 특히 해외에 있는 호텔은 마치 왕자와 같은 사업입니다. 유럽의
대형 호텔이나 일본 호텔의 총지배인들은 그야말로 왕입니다. 정말로요. 그들은 사무실에 앉
아서 룸서비스로 아침식사를 하고 은쟁반으로 서빙을 받는답니다."
"내가 뉴욕의 에섹스 하우스를 구입해서 식당에 갔을 때 지배인이 이렇게 묻더군요. '어
떤 테이블을 원하십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지요?어떤 테이블을 원하느냐니요?' 기업 리더들을
위해서는 공원 옆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고, 혼자면 가장자리의 일반 테이블에 앉을 수 있습
니다."
"나는 말했지요. '그럼 다른 시간에는 도대체 누가 그 테이블을 사용하나요?'"
"'오, 아무도 그 테이블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테이블은 항상 총지배인님을 위해 예약
되어 있는 자리입니다."
매리어트는 바로 이것을 방지하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기업을 역동적이고 학습효과가 있으며 사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 기업으로 만들이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활력을 불어넣는 거지요. 내가 직접 뛰어다닙니다. 나에게
보고하는 사람들과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호텔 지배인과 객실 담당직원, 브랜드 관리자와
도 대화합니다. 나에게 직접 보고하지 않는 직원들과 만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하는 것입니
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대화를 받아들입니다. CEO는 서열에 따라 직원들과 접
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유럽지사 부회장과 함께 유럽에서 1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는 나보다 3단계 아래
임원이지만 유럽의 더 나은 경영개선을 위해 서로 예기를 나누었지요. 우리는 일주일 내내
26개의 호텔을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모두 10개국을 함께 돌면서 나는 이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ㄴ디ㅏ. 또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리어트는 그것이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CE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아닐까요? CEO는 매일아침 일어나 사무실로 내려온
후에는 하루종일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의 원동력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운동선수와 같습니다. 기운 없는 운동선수를 데리고 있으면, 운동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힘쓰
지 못할 겁니다.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라인배커(미식축구 수비스)나 쿼터백, 풀백을 데
리고 있다면 성공적으로 경기를 이끌어갈 사람은 얻은 것과 같겠지요."
"물론 정직은 말 그대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직원들은 CEO를 신뢰해야 하며, CEO
와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CEO가 수익이 될 거라
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중요성과 직원들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기르고, 이를 위해 늘 노력합니다. 이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만큼 중요
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에너지, 통합성, 정직, 이익을 신경쓰는 것만큼 직원들에게 신경을 쓰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사항들이랍니다."
로우 노토(Lou Noto)
모빌(Mobil)
"당신이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1998년 12월 1일, 미국 사업계 역사상 가장 붐비는 한 기자회견에서 모빌과 엑슨은 서로
합병하여(거래를 완료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탄생할 것임을 발표하였따.
바로 일주일 전, 우리 일행은 모빌의 회장이며 CEO인 루치오 A. 노토와 버지니아 주 페
어팩스에 자리한 기업 본부에 나란히 앉아서 지난 5년 동안 그의 기업에서 일어나 변화에
대해 얘기했었다.
사교적이고 뛰어난 얘기꾼인 노토가 엑슨이 선호하던 모빌의 성공적인 자산 재배치, 판매
와 탐색능력, 전세계에 뻗어 있는 기업망에 대해 우리와 대화한 것은 분명하다.
엑슨 모빌로 알려진 통합기업은 연간 수익이 2천억 달러에 달하고, 인터넷상 수입이 무려
120억 달러(이전에는 세금공제 전의 시너지 효과로 측정해서 30억 달러 정도였다)로 예상되
고 있다. 전세계 140개국 이상에서 12만 명 정도의 직원을 고용하는 규모를 자랑할 것이며,
값싼 석유가 뜨고 있는 변덕스러운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경쟁업체로서의 규
모와 영향력을 가지게 될 거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순전히 기업의 미래 규모만을 계산한다면, 많은 산업 분석가들은 잠시 주춤하겠지만, 자세
히 검토해보면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이 두 기업이 서로 잘 조화될 거라고 말한다.
규제 조항은 합병 전에 기업이 밝힐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제한하였다. 이에 대한 위임 문
서가 주주들에게 발송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엑슨의 회장이자 CEO인 리 R. 레이먼드와 그
의 팀이 실제로 모빌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추축할 따름이다.
그들의 최종 결정은 대체적으로 노토가 CEO를 맡은 1994년 이후 기업의 발전사에 근거
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한다.
때때로 새로이 CEO가 된 사람은 마치 루이스 캐롤의 원더랜드에 사는 것 같은느낌을 가
져야 하는데, 이 새로운 리더가 복도를 뛰어다니며(은유적으로) '머리를 잘라라. 머리를 잘
라라' 하고 외치고 다니면, 임원들은 떼지어 '다른 관심거리를 찾기 위해' 기업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비교적 흔히 발생되므로 더 이상 많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새로운 CEO는
최고위팀으로 명명된 것이므로, 오래지 않아 모든 임원들을 해고한다는 결정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루치오 노토는 이사회가 그를 모빌의 회장이자 CEO으로 임
명했을 때, 이미 이 게임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매급 해고도 없었고 구조조정도
재조정도 없었다.
"왜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하겠습니까?"
노토는 그 특우의 직설적인 어투로 묻는다.
"기업은 좋은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이 예상하던 기업 해체 대신에, 거대한 석유의 힘을 구축하기로 결정
했다. 노토는 이 결정에서 임시로 몇몇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고참 관리자들을 그대로 유지
시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 처음부터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그의 결정이 깊은 생각에서 나온 여러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경영팀을 이루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모빌에 대해 많이 알지를 못했습니다. 국제
경영이나 재정 같은 일부분에 대해서야 알지만 본사 안에서보다 외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그래서 '이봐요, 친구들, 내가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거든요. 내가 이 일을 하
도록 뽑혔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팀을 이루어서 일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일을 해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요'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했지요. 그렇지 않았다가는 완전히 바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이 CEO가 되면 눈에 띄는 건 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강한 기업을 발견했거든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CEO로 일했던 앨런 머레이는 모빌을
위해서 실로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더군요. 우리의 사업을 완벽하게 정리해놓았더란 말입니
다. 머레이가 CEO직을 넘겨받았을 때 우리는 카터 대통령 정권하에서 몽고메리 워드, 컨테
이너, 그 외 여러 개의 부가 산업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산업경기가 점점
더 나빠 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업은 석유산업 정책에 반하는 사업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기업이 지나친 규제를 받지 않ㅇ르 거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을 때, 부가사업을 매각해버렸
다. 노토는 어느새 석유, 가스, 화학 제품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초점이 비료적 제대로 맞추
어진 사업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래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큰 부동산사업과 백금사업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끝날 때
쯤 리더 그룹은 좀더 분야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했죠. 머레이가 이미 어려운 일을 해놓
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만족스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백금사업과 부동산사업을 매각하
는 것은 워드와 컨테이너의 가치를 얻는 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지요."
일단 모빌이 주력 사업으로 흐르기 시작하자, 노토는 보다 융통성 있는 기업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첫 번째로 수행한 것은 놀랄 만큼 완벽하게 관료제를 없앤 것이었다.
"비교적 깔끔한 경영부서를 가지고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내가 처음 CEO가 되었을 때 경영팀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 위해 이
틀 동안 윌리엄스부르그로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난 사항의 하나는 직원들의
새로운 업무수행을 위해서 적합한 모델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 역할을 지원하
는 많은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또한 지위에 걸맞는 많은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동
감독이 부서 감독에서 '왜 비용이 12센트가 아닌 13센트가 들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러면 거기서부터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노토는 기업을 재조직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그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요소는 기대되는 수입 노선을 벗어난 초구조의 부담을 짊어진 석유, 가스, 화학 제
품의 세 가지 사업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여기저기에 감독을
두는 대신 이곳저곳에 홍보하는 사람을 두어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일관성이 없기 문이었습니다. 한 부서에서 이루어지는 최고의 업무수행 방식이 바
로 옆 부서에서는 적용되지 않았으니 말이지요."
"구조는 고비용과 복잡성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든 직원
들이 자기의 영역 안에서는 훌륭하게 업무 수행을 해내고 있었는데, 누구도 전체적인 조직
의 절차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실제 가능성보다 비관적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재편성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건 악몽이었지요. 우리는 '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평생고용 산업을 다루고 있었으니까요. 나만 하더라도 모빌과 37년
을 함께해왔고, 평생 직장으로 여겼죠. 이건 당시 아주 전형적인 일이었습니다. 재조직은 그
관행을 깨뜨린 격이지 않습니까? 의리를 끊어버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
답니다."
노동력의 7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4,700명의 직원들이 해고되었다.
"갑작스레 우리가 직원들과 맺어오던 오래된 사회계약이 붕괴된 겁니다. 그러자 의문이
생기더군요. '어떻게 약속을 지켜나갈 것인가? 직원들에게 과연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
"첫번째로, 직원들에게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사업과제를 제공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조치였지요. 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 낭비니까요. 두 번째로, 직원들에게 자
기개발의 기회를 제공했는데,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경
험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직 익
숙하지 않았습니다. '짐, 자네는 잘하고 있네. 그렇지만 특별히 새로운 기술을 더 익히지 않
으면, 두 계단 상승의 기회를 줄 수가 없군." 이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시작하려
고 합니다."
이같은 새로운 사회계약은 중요한 의문점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남아 있는 6만 2천 명의
직원들로 이루어진 이 새롭지만 약간 기울어 있는 조직을 노토는 어떻게 이끌려는 것일까?
대답은 이렇다. 그는 모빌을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효율성 있는 조직으로 바꾸고
자 했으며, '근거있는 위험부담'을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세상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실질적으로 500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
는 내기에 100달러를 걸어 모두 잃는다면, 당신의 후견인에게 다른 기회를 찾아보도록 당신
을 격려하라고 말하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감수하려는 위험부담입니다. 그렇지만 당
신이 100달러를 걸고 105달러나 101달러를 번다면, 나는 당신을 해고할 겁니다. 당신이 목적
을 달성했는지 여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도박이니까요.'"
"우리는 오로지 성공 지향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화 밑바탕에는 위험
부담이 더 적은 모험을 하는 기업이 존재합니다.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싶은 이는 없을 것
입니다. 목표는 크게 세워놓고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테니까
요. 즉 나는 실패를 조장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럴려면 성공하지 못하
면 해고당할 거라는 규칙을 없애야 합니다."
"그 규칙을 바꾸지 않으면 최선의 업무수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노토는 모빌의 최고 업무수행이 사업방식과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두드러지게 결과를 나타낸 분야는 가솔린 소매업이었다.
고객의 소리 듣기
"CEO직을 맡은 첫날 멀리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늘 중앙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중앙
이 아니라 경쟁자를 바라보아야 했고, 보다 중요하게는 고객 들을 바라보아야 했지요. 그것
은 과거와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었습니다. 드디어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
입니다. 솔직히 말해 고객은 모빌 광고의 기본인 자동차 엔진 주위를 달리는 젊은이에게 야
유를 퍼부을 수도 있습니다. 편리함을 원하는 고객도 있을 것이고, 속도감을 원하는 고객도
물론 있겠지요. 서비스센터에서 여러 사항을 원하는 고객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고
객이 뭘 원하는지 진정으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자제품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마케팅 혁명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한일은, 주유 펌
프에 직접 돈을 투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주유 펌프에 직접 돈을 투입하는 것은 비교
적 간편하지요. 그리고 누구나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시작한 것은
바로 우리 모빌입니다."
"다음 단계는 '스피드 패스'였는데, 이 상품은 과학기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반영했지요. '스피드 패스'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예를 들어 말하지요. 그
러니까 자신의 신분을 우선 밝히고, 가솔린 대금을 지불할 것인지 말한 다음, (일부 지역에
서는) 어떤 등급을 원하는지 얘기하면, 직원은 열쇠고리나 차양판에 부착할 수 있는 작은
꼬리표를 드릴 겁니다. 그러면 직원은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구입했는지 전자장치로 추적
하지요. 스피드 패스는 1997년 5월에 주요 10개 주유소에 도입되었고, 다음해부터 전국적으
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첫 5년 동안에만 130만 명이 스피드 패스 자동 무선레이더를 사용
했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요? 사람들이 기묘한 장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고객이
편리성과 신속성을 원한다고 예기했기 때문이지요."
"이제 동전의 한 면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 면은 고객들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보여주
지요. 고객들은 주유 펌프 같은 신속성과 스피드 패스 같은 편리함을 추구합니다. 게다가 한
번에 되도록 많은 물건을 쇼핑하고 사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가스를 충전하기 위해 멈춰 서
있는 동안에 몇 가지의 물건을 고르고 싶어하는 거지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짐작이 가나
요? 가스충전소에 소매점을 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파는 제품에는 모빌 상표를 달
았지요. 모빌이라는 우리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고객들은 음식에 모빌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좋
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죠. '모빌 석유는 참 좋아요. 하지만 내가 먹을 음식
위에 모빌을 얹지는 마세요.'"
"석유와 대조적으로 가스충전소의 일부를 가게로 만들기 위해서, 판촉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당신들은 새로
운 독점 판매권이 필요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색깔을 가지고 나가
야 한다구요.' 이마에 모빌이 인쇄된 나같은 사람과 일하는 게 어떨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
다. 그들은 나를 시범 장소로 데려갔고, 나는 거의 심장마비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그 가
스충전소는 멋지고 깨끗하면서도 파란색과 빨간색을 강조한 활기찬 모빌 충전소였던 것니
다. 특히 크리스털처럼 깨끗해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더군요. 옆방은 기업에서 '운영
중인' 편의점이었는데, 마치 원형 곡예장 같았습니다. 노란색, 녹색, 자주색으로 디자인되어
밝고 활기찼으며, 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객이원한다고 얘기했
던 것이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고객은 그곳에 들러 브랜드가 새겨진 카레와 아침식사를 하고 싶어합니다.
점심때는 그곳에 가서 브랜드가 새겨진 샌드위치와 패스트푸드를 사고 싶어하지요. 그리고
저녁때도 고객은 그곳에 들러 저녁에 먹을 것을 사가지고 나오고 싶어하게 됩니다. 브랜드
를 자꾸 보고 싶어하게 도지요. 누구도 모빌 치킨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충격받은 우리는 고객을 대하는 사업방식에 일대 혁명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그
래서 로토와 다른 여러 곳에 고객이 원하는 것을 배치해 두었고, 서비스센터 앞 주차장을
확보하였습니다. 이 업계에서 20년 전에 일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무덤에
서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판매전략을 바꾸는 화려한 전망의 일환이었을까?
"나는 '전망'이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 말에는 어딘가 일종의 형식적이고 '자, 이제
전망 탐색을 시작해봅시다'하는 식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같거든요. 그러나 기업에 근본적
인 책임을 지고 있다면, 잘해내기 위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또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결정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호히 없앨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
의 소리를 듣고 이에 신속히 반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적으로는 자신감을 강조할 필
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한마디로 말해서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빌과 엑슨이 합병될 것을 생각하니, 이 교훈은 마치 무슨 암호처럼 들린다.
폴 오닐(Paul O'neill)
앨코아(Alcoa)
"사람들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문제이다"
20~30년 전에 만들어진 미래 영화를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집안의 모든 일을 하는 로봇이나 출퇴근시 타고 다니는 호버
크래프트(고압공기를 아래쪽으로 분산하여 기체를 공중에 띄우는것)가 모두 '우주시대' 에
딱 맞는 금속인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질 거라는 것이다.
알루미늄은 이전보다 더 많은 곳에서 사용되지만, 판매는 대체로 GDP보다 저조하다.
1987년 새로운 리더를 뽑으면서 앨코아위원회는 이러한 실망스러운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상품가격뿐만 아니라 가격경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오늘날 경영자의 특
징을 고루 갖춘 사람을 찾았다. 그들은 위원회의 회장으로 한때 인터네셔널 페이퍼의 회장
으로서 상품가격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폴 오닐을 선택하게 된다.
제럴드 포드의 경영예산위원회 부이사였던 오닐은 최고의 가격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방법
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12년 동안 앨코아에 근무하면서 다른 산업리더들과 함께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가격을 올리면서 동시에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는 사뭇 이례적이었다.
그 결과는 사뭇 이례적이었다.
투자자들은 제약기업과 같이 알루미늄 기업에 시장매수를 하지 않았으나, 앨코아의 주식
은 알루미늄 기업 사이에서 높은 가격과 이윤으로 계속 거래되었다. 그리고 오닐은 기업의
시장 자본율을 3배나 높이게 된다.
이러한 튼튼한 성과를 기초로 오닐은 기업의 시장 자본율을 3배나 높이게 된다.
흥미롭게도 그는 성공적인 경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순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오닐은 앨코아가 직면한 도전에 관해 질문받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잘해왔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시장자본 평가는 45억에서 오늘날에는 50억내지
55억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경쟁사들의 수준은 45억에서 120억 내지 130억이지요. 우리는
판매와 이익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영선두주자로 두닥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오닐은 이런 성공에 혹 거만해질지도 모르는 위원들을 경계했다.
"자만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시도 안심할 수 없지요. 다른 사람
이 상상할 수도 없는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적인 개선을 해나가야 합니다."
오닐에게는 어떠한 일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군인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 여러 곳을 옮겨다녔지요(일리노이,
미주리,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하와이, 알래스카 등).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러한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곳에 다른 유형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면
서 융통성과 적응력을 키웠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옮겨다니는 것은 또한 전문가적인 삶에
필수불가결한 거지요."
오닐은 개인 사업으로 전환하기 전, 연방정부의 경영예산부에서 15년 동안 일해왔다. 그래
서 그는 새로운 생각과 경험에 개방적이었고, 동신에 비즈니스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남
다른 시각을 갖추었다.
"자기 중심적으로 빠져들지 않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직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변화시키기 어려운 곳은 바로 미국이지요. 부분적으로는
타고난 독립심과 원인을 알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도
때로는 실패할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든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하고 있는 일을 더 자하도록 따라하는 데에 구구절절 그 이유
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바로 채택하며, 다시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닐은 "정열과 열정"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고자 한다. 또한 그밖에 다른 중요한 점도 찾
아내려고 노력한다.
"배우려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인 교육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새로운 정의와 방식을 찾아서 그것을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내용과 통합하려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요."
핵심 신념
물론 융통성, 적응력, 배우려는 태도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핵심 신념을 가져야 한다.
오닐은 앨코아가 가장 안전한 제조기업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
전문제가 리더십을 제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믿었다.
"안전은 가장 중요한 성과측정 기준입니다. 실제로 작업을 단축시킵니다. 또한 이 수치가
지도하는지 관리하는지 구별할 수 있는 지표라고 믿지요. 수치가 향상된다면 지도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믿음의 어떤 근거가 되어줄 것이고, 수치가 향상되지 않는다면 내가 냉소적인
관리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왜 여기에 초점을 맞추냐고요? 평범한 기업과
좋은 기업의 차이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통하느냐, 돈보다 더 중요한 신념을 가ㅈ고 있느
냐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좋은 관계를 가질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은 모든 사람이 과
심을 갖고 있는 곳에서 드러납니다. 자진해서 고통에 뛰어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만약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보다 먼저 조직이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관심이 있
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밖의 것은 이차적입니다. 그러면 좋은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가 영원한 기관을 설립한다면 가장 먼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벽돌을 쌓
아올려야 합니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관계를 맺되, 우선 조직이 인간적으로 그들에
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신념이 단지 매년 보고서에 적힌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실이
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기에 안전은 앨코아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내부사항이다.
"알다시피 이것은 사탕발림이 아닙니다. 내 데스크탑 컴퓨터는 매일 매분마다 얼마나 많
은 노동시간을 손해보고, 사건이 어디서 어떤 상황에 일어났고 어떤 치료 조치가 취해졌는
지 모든 상황을 나에게 알려주는 실시간 안전자료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내가 여기에서 근
무한 첫날부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해 많이 걱정합니다. 그러나 위험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현재보
다 더 나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평균 산업재해율이 1/3인 미
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어던 사고도 일으키지 말아야한다. 현재까지 그 목표는 제로이
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18개월 동안 사람들은 복도 주변
을 서성거리며 수군댔지요. 헝클어진 머리스타일의 오닐이 이 분야의 산업이 얼마나 다루고
힘든지 깨닫고 나면 아마도 이것에 대해 입을 다물게 될 것이고, 우리는 다른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현재 우리 평균 산업재해율은 1/20정도이며, 매일 개선되
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 포관적인 문제이다
안전에 대한 고나심이 높아져갈 때, 오닐의 바람은 앨코아가 완벽하고 견실한 기업으로
알려지는 것이었다.
환경에 책임지는 것은 가치 목표지만, 그는 이것 또한 리더십의 문제로 보았다. 환경문제
의 사회적 책임은 실제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보다 넓은 관점에서 환경문제오 안전문제는
하나의 문제로 용합되어야 했다.
"3년 전에 텍사스 자기업 중 하나인 멕시코 공장에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하
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비록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사태는 심각했지
요. 사람들은 내가 이 사태를 모를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옳았음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이 일
에 책임있는 그 지역 관리자가 이 사실을 독립환경고문에게 보고했습니다. 그에게 신의 가
호가 있기를! 그 보고서에는 기온 역전현상이 발생해서 공기가 공장 내부 지게차의 일산화
탄소와 결합되는 바람에 사람들을 질식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부서 책임자는 본사 환경안
전위원회에 보고해야 했지요. 28년간 기업을 위해 봉사하면서, 기업 이익을 10억에서 15억까
지 성장시켰던 그 사람은 이 일로 해고되었습니다.?
"사람을 해고시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강대강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경제가치에 따라 생존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뇌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곳에서도 뇌물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자기업들도 똑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입한 건물이 석면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
록 헝가리 법은 이에 대해 규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석면을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특정
한 법이 아닌 옳다고 생각한 논리에 따라 사람들을 대우하는 거지요. 사람들은 석면에 노출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소한 일탈을 경험하게 되면, 그러한 일탈 행위가 기준이 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일
을 일관성 있게 진행할 수가 없죠. 가치관은 투명하고 항상 실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좋은 기업이 될 수 있죠.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좋은 기업을 만들 수는 있
으나 오래 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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