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
1.
[말로 나타낼 수 있는 도는 영구 불변의 도가 아니며,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구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무명은 천지의 시원이고 유명은 만물의 모체이다.
그러므로 영구 불변의 무에서 만물의 미묘한 이법을 보도록 해야 할 것이며,
영구 불변의 유에서 그 귀착점을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으되 그 이름은 다르다.
그 같은 바를 신비로움이라 한다.
신비하고도 신비하여 모든 오묘한 이치가 나오는 문인 것이다.]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주) 도: 노자의 형이상학에 있어서는 만물의 본체요, 궁극적 실체이며,
이법임. 서구인들은 이 도를 way(길), reason(이성, 도리), logos(이성),
nature(자연) 등으로 번역하고 있음. 발포르는 도를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 만물을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도와 만물의 관계를 설명한 일종의 번안이다. 또한 tao, taoism, taoist 등의
표기는 도의 중국어 원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상명: 언제나 변함이 없는 이름. 즉, 연구 불변의 이름을 뜻함.
묘: 인간의 감각으로는 포착이 불가능한 본체계의 미묘함을 말하는 것임.
만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도의 본질을 뜻함.
요: 결말, 끝, 귀착점을 의미함.
도에서 생성된 현상계를 지칭함.
현: 검다, 신비스럽다, 그윽하다, 불가사의하다, 심원하다 등으로 쓰임.
해
노자서 81장 5천여 자의 의미는 이 제1장 59자에 압축되어 있다. 이 장은
노자서의 서론이자 본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제1장의 이해 여부는 노자 사상 전체의 해석에 대한 열쇠가 되고
있다.
노자는 도는 무한하므로 인간의 유한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이름지을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만물의 본체로서 현상의 배후에 스며 있는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다.
도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으므로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지각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직관과 신비한 체험에 의해 체득되는 것이다.
도는 천지 만물을 생성, 발전, 소멸시키는 위대한 힘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절대적이요, 무차별적 세계이다.
의도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한다는 무위자연이란 표현은 도의
작용을 잘 설명하고 있다.
도가 만물을 생성케 하는 것은 창조적이라기 보다는 유출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창조주 신화와는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노자는 이 제1장에서 동서 철학의 근본 문제인 본체와 현상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의 형이상학은 도에 대한 일원론으로 일관되어 있다.
즉 우주 만물은 도에서 나와서 도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 속에서는 자연과 인간, 선과 악, 미와 추 비, 너와 나의 이분법적 발상은
지양되고 있는 것이다.
도의 세계를 직관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대립과 시비와 갈등의 상대적
가치판단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2.
[이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은 추악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착한 것을 착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착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를 낳게 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생성케 하며, 긴
것과 짧은 것은 서로 모습을 노출시키기 때문이며, 높음과 낮음은 서로
가지런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과 성은 서로의 존재로써 화음을 이루고 전과 후는 앞이 있으므로 뒤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의도적인 행위 없이 일을 처리하며 무언의 가르침을 베푼다.
만물의 활동을 위하여 그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며, 만물을 육성시키면서도
소유물로 삼지는 않는다.
일을 하고도 뽐내지 않고 공을 세우더라도 자신의 공로로 자부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공로라고 자부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은 항상 그에게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천하개지미지위미 소악이 개지선지위선 소부선이 고유상생 난역상성 장단상
교 고하상경 음하상화 전후상유 시이성인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만물작인이불
사 생이물유 위이불시 부유불거 사이불법>
주
이: ~ 할 따름이다, ~일 뿐이다.
음성: 음은 악기의 소리, 성은 육성을 의미함.
불거: 자부, 자만, 자처하지 않는다는 뜻.
불은 부의 차자임.
시이불거: 그 공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는다는 뜻임.
거는 없앤다, 내쫓다, 가게 한다, 떠난다의 의미.
해
도의 작용에 의해 유출된 현상의 세계는 일시적이요, 상대적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흔히 현상 세계의 일시적, 상대적 가치판단에 현혹되어 대립과 분쟁을
일삼고 있다.
도의 차원에는 보면 이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변화하는 현상의 근원에 도가 있다.
그 도는 만물을 생성케 하고도 그것을 소유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공을 이루고도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공덕은 영원히 그에게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성인은 무위자연의 도에 의하여 다스림을 베풀고 말없는 가르침으로 모든 일을
지도한다.
'하지 않으면서도 아니하는 일 없다'는 노자의 역설적 표현은 자연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일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도 무위자연의 도가 지니고 있는 공효를 일깨워 주고 있다.
3.
[현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경쟁 의식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손에 넣기 어려운 재물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도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욕심을 부추길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백성의 마음은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백성들의 마음을 비게 만들고 그들의 배는 부르게
만들며, 그들의 의지력은 약화시키며 그들의 신체는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백성들을 무지 무욕의 상태에 두게 한다.
비록 지혜와 수완을 갖춘 자가 있을지라도 감히 제주를 부리지 못하게 한다.
작위 함이 없는 다스림에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불상현 사인부쟁 불귀난대지화 사명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지부업위지 위무위칙불치
주
불상현: 현자를 떠받들지 않는다는 뜻임.
쟁: 백성들간의 경쟁 의식을 말함.
약기지: 백성들의 야심, 의지력 등을 약화시키는 것을 말함.
강기골: 백성들의 체격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
위무위: 인위적인 간섭과 규제를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최상의 통치
방안임을 강조한 말임.
노자는 제60장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며
서두르지 말 것을 역설하고 있다.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백성들의 1차적인 욕구의 충족에 치중하여 지식에의 접근을
막고자 한다. 이것은 그가 살았던 춘추시대의 정치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분열기인 이 시대의 제후들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자국의 세력권
확장에 열중하게된다.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지배계급은 백성들을 자신들의 요구 충족을 위한 소모품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인간의 욕망을 버리고 소박한 자연에 복귀하지 않고는 구제
받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지혜와 지자를 버린 무위의 다스림이야말로 치자에게나, 백성들에게나 다 함께
이상적인 통치 방안이 될 것이다. 이것을 통해 진정한 번영과 평화가 오는 것이
다.
4.
[도는 텅빈 그릇이지만 그것은 또한 무궁무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동시에 언제나 흘러 넘치는 일도 없다.
그것은 심원하여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된다.
도는 안에서의 만물의 날카로움은 무디어지고, 어려움은 풀리며, 그 빛은
부드러워져 만물의 티끌과도 같이 하건만, 그 청칭함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도가 누구집 자식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상은 천지를 다스리는 상제보다도 먼저인 것이다.]
도충 이용지 혹불찬 연혜사만물지종 좌기설 해기문 화기광 동기신담혜혹존
오불지수지자 상제지선
주
도충: 만물의 근원인 도는 '텅빈 그릇이다'라는 의미임.
충은 충(빈 그릇)과 의미가 통하며, 충(충성할 충)으로 표기된 책도 있음.
이는 같은 음끼리의 차자임.
원래 한자는 차용을 할 때 그 소리만 취하지 않아 글자와 사물의 관계는 없으며
그 경우 글자는 단순히 기계적인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의 경우 충은 발음기호의 구실만 하고 실제 의미상으로는 충(빈
그릇)이 되는 것이다.
연혜: 깊고 아득함.
종: 만물의 근본, 근원을 뜻함.
동기진: 세속의 일상적인 걱정, 근심이 제거된 상태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음.
세속적으로부터의 초월과 정적이 노자 철학의 골격이라 보고 내린 해석임.
그러나 이 장은 도의 무궁무진한 작용과 원만한 융통성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도는 날카로움을 모르며 항상 원만하게 만물을 동일한 차원으로 보는 도는
차별, 배척, 제거 등의 개념을 알고 있지 않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일 것이다.
도는 무엇하나 버리지 않고 만물의 티끌과도 함께 한다.
그러나 그 청칭한 본바탕은 오염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이상이 노자가 말한 요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필자는 '동'을 글자의 원래의 뜻을 취하여 만물의 티끌과
'함께 한다'로 풀이하였다.
상제지선: 상은 어떤 불가사의한 이미지를 의미함.
명상과 직관에 의하여 도가 하나가 되었을 때 얻어지는 모종의 신비한 체험을
뜻함. 이상을 본뜬다, 같다로 해석하는 학자도 많음.
'상제지선'은 세계에 질서를 가져다준 제왕보다 시간상 앞서 있다는 것을 표시
한 말임.
해
도는 천지를 주재하는 상제보다 먼저 있었다.
그것의 참모습은 맑고 깊어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초월적 내재 자로서 만물을 넘어서 그 안에 있는 그 무엇이다.
도는 모든 물건이 들어 갈 수 잇는 빈 용기이다.
물건의 근원을 소급하면 그것이 다 도에서 흘러나옴(유출)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조화의 근원으로 극에 달하면 원점으로 되돌아간다(극즉반).
도의 움직임을 지각하지 못하며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것을 우리는 나온 곳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실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5.
[하늘과 땅이 어질지 않아서 이 세상 만물을 추구로 보는구나.
성인이 어질지 않아서 이 세상 백성을 하찮은 존재로 보는구나.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은 것인가?
그 속은 텅비어 있지만 힘이 다하는 일없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힘은 더욱
더 나온다. 말은 많이 할수록 통하지 않게 되니 마음속에 간직해 두는 것만 못
하다.]
<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지문 기유풀무호 허이불
굴 동이유출 다연수궁 불여촌중
주
추구: 추는 마른 풀잎.
그리고 하상공 주와 왕필주에서는 추는 가축 사료. 구는 식용 동물로 해석하였
다. 어느 쪽도 다 천지는 만물에 대하여 비정하여 무관심함을 강조한 말임.
탁약: 풀무,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임.
중: 마음속을 의미함.
해
이 장도 난해하므로 옛날부터 주해에 여러 설이 있다.
그럼으로 번역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대체로 노자가 당시에 백성들이 위정자의 학정에 시달림을 받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 사이는 풀무 속의 바람과 같다.
비었으나 그 힘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천지의 법칙은 임금이 백성들을 건져내는 방책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딴판인 것이다.
노자는 자신의 도가 세상에 용납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잇다.
그러므로 자신의 교설을 말해 보아야 통하지 않으므로 말이 많으면 이수가
막힌다고 표현한 것이다.
6.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나 이를 신비스러운 암컷이라고 한다. 신비스러운
암컷의 문을 근원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이어져서 아무리 써도 힘들어하지 않는
것이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첨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주
곡신: 이 단어의 주석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음.
신비의 골짜기(신곡)로 도치하여 풀이하는 사람도 있음.
삼국 시대의 왕필은 '계곡 가운데의 텅빈 무의 곡'(곡신곡중앙무곡지)이라고
해석함.
현빈: 신비한 암컷, 만물을 생성하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칭한 것임.
현빈지문: 현빈을 생식기 즉, 자궁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음(김경탁)
면면약존: 계속 길게 이어져 끊이지 않음을 뜻함.
불근: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
도의 작용의 자연스러움을 묘사한 말임.
해
노자는 도를 골짜기의 신으로 신격화하고 있다.
그것은 항상 비어 있고 아래에 있으므로 모든 물이 모여들 수 있고 또 흘러나올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이 마치 도가 만물을 유출시키고 있는 것과 같다.
현빈은 신비한 암컷이란 뜻이다.
인류는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풍년과 다수확의 상징으로 여성의 다산
능력을 칭송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 가운데 여성의 풍만한 몸매를 표현한 토용의 숭배 사상도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
노자 또한 만물을 생성하는 도의 위대한 작용을 모성의 생식력에 비유하고
있다.
도를 여성에 비유하여 여성의 위상을 격상시킨 그의 독특한 착상에 미소짓는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7.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
하늘과 땅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스스로 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자신을 타인보다 뒤에 놓기 때
문에 결국 자신이 남의 앞에 서게 되고 자신의 이익을 제쳐 두기 때문에 자신의
거기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없기 때문
이다. 사심이 없기 때문에 능히 그 자신의 이익이 거두어 지게 되는 것이다.]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불자생 고능장생 시이성인 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비이기무사사 고능성기사>
주
천장지구: 당의 현종 황제와 양귀비의 비극적인 연애 담을 그린 저 유명한
장한가(백거이 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절로도 인용된 명구임.
'천지는 장구해도 다하는 때가 있겠지만, 내 가슴속에 품은 한이야 길이 끊일
때가 없으리라' (천장지구유시진 비한선선무절기)
자생: 자신의 생을 영위하기 위하여 남과 싸우며 남의 소유물을 빼앗아서
자신을 기르는 일(하상공 주)
사: 사리사욕 및 그것을 충족시키는 행위를 뜻함.
해
하늘과 땅이 능히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은 무위자연의 법칙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는 남을 먼저 내세우고 자신의
이익을 뒤로 미룬다. 그는 사심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자신의 복리를 취득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의 경우에도 성인은 천도의 무위자연을 요체로 삼아 그 자신
의 임지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8.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거주하는 곳을 잘 선택하여야 하며, 마음은 사려가 깊어야 좋고, 친구는
제대로 다스려야 좋으며, 일은 능률적으로 처리되어야 좋고, 행위는 때에
알맞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다투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오가 없게
되는 것이다.]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증인지소악 고기어도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실유부쟁 고무우>
주
중인지소오: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 즉, 낮고 아래인 위치를 말함.
정(바를 정): 정(다스릴 정)의 차자임, 다스림을 의미함.
우: 과실, 과오, 잘못.
해
물은 모든 생명에게 크나큰 이로움을 주지만, 자신을 항상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하고도 다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도에 가깝다고 노자는 물의 선함을 칭송하고 있다.
사람도 이와 같은 물의 선을 본받아야 한다.
즉, 남보다 아래인 낮은 곳에서 생각은 맑고 고요하고 깊어야 하며 어진 사람과
신의로써 사귈 것이며 정치는 무위로써 다스려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다툼이 없을 것이고 다툼이 없다면 잘못도 없게 될 것이다.
9.
[이미 가지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채우는 것은 그만둠과 같지 못하고 이미
날이 선 무기를 또다시 예리하게 만들면 오래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물이 집에 지나치게 많으면 이것을 지킬 수 없고 부귀하여 교만하게 되면
자기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게 된다. 공을 이루고 나면 그 공을 이룬 자는 제
때에 물러나야 하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지이영지 불여기미 취이예지 불가장보 금옥만당 막귀이승 자귀기계
공축신퇴 천지도>
주
지이영지: 이미 가지고 있는 데도 계속해서 채우는 것을 말함.
취이예지: 취의 본래의 의미는 추측하다, 계량하다임.
본문에서는 무기 등을 두드리고 벼려서 날카롭게 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음.
해
노자는 이 장에서 과욕과 겸손한 처세술을 강조하고 있다. 가득 찬 물 컵에
또다시 물을 붓는다면 흘러 넘칠 것이다. 칼날도 너무 날카롭게 갈아 두면 그것
은 곧 손상되고 말 것이다. 재물도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지키기 어려울 것이
다.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그것은 화를 불러들이는 길이다.
공을 이루고 나면 그것을 이룬 자는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법칙인 것이다.
물러나야 할 때에 미련을 갖고 자리에 연연하다가 패가 망신한 인물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울고 위로 치닫는 용은 뉘우침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만물을 성함이 지나면 곧 사멸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에 한계를 두고 좀 부족한 듯한 시점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노자는 말한다.
10.
[혼과 백을 하나로 모아 능히 분산되지 않게 한다.
기를 하나로 모아 부드러움을 이루어 젖먹이처럼 되도록 한다.
오염된 것은 없애고 그윽한 경지에서 살펴보아야 능히 하자가 없을 것이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처럼 치란이 교체되는 때에 남보다 앞서지 않고
유순한 암컷처럼 자연에 순웅할 수 있어야 한다.
햇빛이 사방에 골고루 퍼지듯이 무위로써 세상을 잘 다스리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게하고 성장시킨다.
생을 주면서도 이를 소유하지 않으며, 작용케 하면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으며,
자라나게 하지만 간섭치 않고 자연에 맡긴다. 이것을 신비한 덕이라 한다.]
<재영백포일 능무이호 전기정유 능이아호 칙제현담 무능차호 위민치국
위무지호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위호 생지축지 생이불유 위이불대
장이부재 시위현덕>
주
재영백: 재는 별다른 뜻이 없다. 그러나 '안정시킨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학자
도 있다. 영은 곧 형으로서 의심스럽고 현란하다는 뜻임. 백은 육체에 생명을 주
는 정기를 의미함. 하늘에서 받은 정신적 요소를 혼이라 하느데 반하여 땅에서
받은 신체활동을 통제하는 기능을 백이라 함. 결국 영백은 혼백을 뜻하는 말이
다. 재영백의 해석에는 옛날부터 전문가 사이에 이설이 많았음.
척제: 오염된 것을 씻어 없앰.
현람: 깊고 그윽하게 살펴본다.
천문개합: 하늘의 문이 열기고 닫히는 것처럼 태평성대의 난세가 오고가는
것을 의미함. 천문을 인간의 코로 해석하는 이도 있음.(하상공)
이것은 명상에 의하여 신비스러운 경지에 몰입할 때의 호흡조절과 관련된
해석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는 어딘가 밀교적인 부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노자서가 지니고 있는 신비주의적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해석도 나옴직하다고 본다.
현덕: 불가사의한 덕, 그윽하고 오묘한 힘.
해
인간의 혼과 백은 하나가 될 때 심신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한점에 집중시킬 때 기가 흩어지지 않고 도의 품성인 부드러움을 이루어
능히 갓난아기처럼 때묻지 않고 순수한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런 경지에 서서 마음의 눈으로 자신을 뒤돌아 본다면 아무 잘못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암컷처럼 유순하게 자연의 법칙에 쫓는 것
만으로도 세상은 태평하게 다스려 질 것이다.
그러한 다스림은 신비하고 그윽한 은덕과도 같다. 천지의 신비스러운 덕은 만물
을 생성케 하면서도 그것을 소유하거나 자신의 공으로 자처하지
않는다.
11.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아져 잇다.
그것은 바퀴통 속에 빈 구멍이 있기 때문에 바퀴의 회전이 가능하게 수레로서의
진흙 구실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흙으로 그릇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쓸모가 있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빈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게문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꾸민다. 그것이 방으로서의 구실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유익할 수
있느 것은 없는 것의 구실 때문이다.]
<삼십복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 선식이위곡 당기무 유곡지용 곡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고유이위이 무지이위용>
주
폭, 복: 차륜의 바퀴살.
곡: 수레의 바퀴통으로 그 빈 구멍이 30개의 바퀴살로 연결됨.
무: 빈 곳, 공간, 구망.
유는 무를 통하여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 됨을 강조하고 있음.
선식: 지흙을 반죽하는 것을 뜻함.
용: 쓸모, 구실, 공효를 뜻함.
호유: 출입문과 벽창문, 이것은 혈거 및 북방식의 점토벽돌의 가옥구조와
연관된 단어임.
해
우리는 유의 공효성에 때하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무의 효용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 노자는 유는 무가 있으므로 비로소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일상생활의 기물을 통하여 일깨워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차바퀴가 회전하기 위하여는 바퀴통 속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릇이 그릇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있는 빈 부분 덕분이다.
방이 방으로써 유용할 수 있는 것은 방안의 빈 곳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쓸모가 있게 되는 것은 없는 것(무)이 있기 때문이다.
만물은 다 그 나름대로의 존재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노자를 읽게 되면 우리의 상식적 가치판단이 범하기 쉬운 오류를 쉽게 깨닫게
된다. 동서양의 최고 지성들이 그에게 매혹 되는 것도 이와 같은 그의 사색의
깊이와 독창성 때문일 것이다.
없는 것(무), 빈 것(허)의 공효를 강조하는 그의 철학은 후세 동아시아의 예술에
깊은 영감을 주게 된다. 그림에 있어 여백의 미를 높게 사는 동양화의 심원한
멋은 노자의 무와 허의 사상과 정신적 맥락을 함께하는 것이다.
12.
[오색의 화려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의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 오미의 좋은 맛은 사람의 입맛을 나쁘게 만들며, 말을
타고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발광케 하며, 손에 넣기 어려운 진귀한 물품
은 사람으로 하여금 나쁜 길로 빠지게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를 소중히 할뿐
눈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배부름(내실)을 선택
하는 것이다.]
<오색령인목뱅 오음령인이용 오미령인구상 시계 전영령인심발광
납유득지화령인행방 시이성인 위복불위목 고거피취자>
주
오색: 청, 황, 적, 백, 흑의 다섯 가지의 색깔을 뜻함.
여기서는 호화스러운 옷감이나 화려한 그림 등을 의미.
오음: 궁(상성), 상(금성), 각(목성), 치(화성), 우(수성)의 다섯 음계를 말함.
이 장에서는 오음 계가 어우러져 이루어 낸 장려한 음악을 지칭하고 있음.
오미: 산(시고), 함(짜고), 신(맵고), 감(달고), 고(쓴)의 다섯 가지의 맛을 말함.
이 장에서는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최고급 요리를 지칭한 것임.
상: 여기서는 상(다칠 상)과 같은 뜻으로 입병이 나게 하다, 입맛을 망치게
한다, 미각을 둔화시키다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음.
치빙: 말을 달리는 것.
전렵: 사냥.
거피취차: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뜻임. 저것은 감각적 쾌락을 지칭한
것이며, 이것은 내실 즉 정신적 수양을 가리킨 말로 쾌락과 욕망에 대하여 제동
을 걸 수 있는 수양 인의 자세를 말임.
해
이 장에서는 노자는 문명사회가 제공하고 있는 사치와 향락 등의 감각적
쾌락주의에 몰두하지 말 것을 교훈하고 있다. 평범한 보통 사람도 쾌락에 빠지
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하물며 정치적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
고 있는 군주가 쾌락에 몰입하게 되면 백성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게 되는 것
이다. 장려한 음악, 산해진미, 수렵의 즐거움 등은 군주의 총명을 흐리게 하는
감각적인 쾌락이다.
이런 것에 몰두하고 있는 군주 주변에는 아부하는 신하들이 인의 장막으로
군주와 백성간의 통로를 차단하게 된다. 자연히 군주는 민생에 대한 관심을 버
리고, 쾌락과 욕구 충족에만 매달리게 된다. 주지육림의 쾌락에 빠지다가 멸망한
임금이나 민가를 헐어 사냥터로 삼다가 패위당한 군주의 비극을 역사가는 증언
하고 있다. 인간의 욕구 충족, 쾌락 추구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내부적인
수양을 통해 미리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성인은 배(내실)를 위하고
눈(감각적 쾌락)을 위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신적 수양을 통한 소박하고 건전한
생활인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다.
13.
[총애와 굴욕도 자같이 조심스럽게 대하여야 한다. 큰 근심(대우)을 소중하게
대하기를 자신의 몸을 돌보듯이 하라. 왜 총애도 굴욕도 다같이 조심스럽게 대
하여만 하는가? 남을 섬기는 사람을 총애를 받아도 조심하고 굴욕을 당해도 조
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총애도 굴욕도 조심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큰
근심 다루기를 제몸 돌보듯이 하라고 하는 가?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은 내
몸(생명)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육신이 없게 되면 무슨 근심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육신을 돌보듯이 천하를 소중히 대한다면 그런 인
물에게 천하를 기탁하려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의 몸 아끼듯이 천하를 사랑한다
면 그런 사람에게 천하를 맡게도 좋을 것이다.]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총위하득지약경 실지약경 시위총욕약경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고귀이신위천하
약하기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주
총욕: 총애와 굴욕을 뜻함.
총과 욕을 동전의 양면처럼 표리일체로 보고 , 총이 욕의 밑바탕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음.
약경: 놀라는 것처럼 대한다,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조심한다는 뜻임.
위하: 남을 섬기는 사람 즉 신하를 뜻함.
기: 맡긴다, 기탁한 다의 의미임.
해
남의 신하된 자는 흔히 임금의 총애와 굴욕에 얽매어 일회일비하고 있다.
그러나 화 속에 복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숨어 있다. 오늘의 음지가 내일은 양지
가 될 수 있고 이와 반대로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게 된다.
인생 만사는 새옹지마인 것이다. 여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
그러므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너무 마음을 집착한다는 것은 인생을
근시안적으로 보는 것이 된다.
신하된 자는 모름지기 항상 몸가짐을 신중히 하며 총애와 굴욕은 순환 과정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제몸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
이다. 천하를 제몸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여기고 천하의 백성을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천하를 맡겨도 좋을 것이다.
14.
[그것은 보려고 애써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라고 한다. 그것은 들
으려고 해 보아도 들리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희라 한다. 그것은 손으로 잡으려
고 해도 결코 잡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셋을 통틀어 하나라고 한다. 그 하나는 윗부분이 더 밝은 것
도 아니고 아랫부분이 더 어두운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길게 길게 이어져 무엇
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무물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그것을 형체 없는 상이라고 하며, 물체 없는 상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바로 황홀하고 말할 수 있다. 전면에서 마주 보아도 그 앞부부을
볼 수 없고, 뒤에서 보아도 그 후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의 도리를 구명하여 지금의 일을 다스린다면 능히 태초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도의 본질이라 한다.]
<시지불견 명왈이 청지불이 명왈희 박지부득 명와미 자삼자불가치힐
고혼이위일 기상불교 기하하미 승승불가명 복귀어무물 시위무태지태 무물지상
시위황홀 앙지불견기수 유지불견기후 숙고지도 이각령지위 능지고시 시위도기>
주
이희미 : 본체계는 인간의 시각, 청각, 촉각에 포착되지 않는 초감각적
존재임을 강조한 말임.
즉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는 뜻임.
치힐: 끝까지 밝혀 내는 것, 추궁하다, 구명하다.
교: 흰 것, 밝은 것, 분명한 것을 뜻함.
매: 어두운 것, 애매한 상태를 뜻함.
승승: 끊임없이 길게 길게 이어지는 무한 정한 모습을 뜻함.
무상 지상: 상은 형상을 뜻하며, 무상 지상은 형상 없는 형상이란 뜻으로
형상이 있으나 우리의 오관으로는 지각이 불가능한 본체계의 초월성을 뜻하는
말임.
홀황: 황홀한 것, 어렴풋해서 분간할 수 없는 상태.
홀: 없는 듯 하면서도 있는 모습.
황: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모습.
어: 다스리다, 통치하다, 통제하다, 관리하다, 치와 동일한 의미임.
고시: 태고의 시초.
도기: 도의 근본, 도의 본질, 도의 실마리를 의미함.
해
노자는 이 장에서 도의 절대성과 인간 지각의 한계성을 여러 말로 잘
설명하고 있다. 도는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는 포착이 불가능한 신비로운 존재이
다. 그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잡을 수도 없다. 도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한한 언어로 감각적으로는 포착이 불가능한
무한한 본체계를 표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것은 우주 삼라 만상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하나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주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천지 만
물이 그것으로 인하여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다고 말하자니 그 형
체를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형체 없는 상이요, 물체 없는 상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은 인간 감각 기관의 인식을 거부하는 점에 있어서 칸트의
물자체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은 앞으로도 뒤로도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키자
않는다. 신비하고 황홀하기만 하다.
우리는 도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태고의 시초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구 불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도 형체 없는 상, 물체 없는 상 등의 역설을 구사하여
자신의 도특한 형이상학을 전개하고 있다.
역설과 부정과 반어는 노자서의 문학성을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반어법이나 저 역설과 날카로운 풍자로 유명한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도 노자서의 신랄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동서양의 최고 지성들이 철학으로서의 노자서 못지 않게 문학으로서의 노자
서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15.
[옛날의 훌륭한 선비들은 미묘하고 깊이가 있으며 사물의 원리를 깨달아서 그
마음의 심오한 경지를 다른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심오한 모습을
억지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신중한 태도는 겨울에 맨발로 냇물을 건너기를 머
뭇거리는 것 같고, 조심스러운 모습은 마치 주변의 이웃을 무서워하여 두리번거
리는 것 같고, 그 위용을 갖춘 의젓한 모습은 점잖은 손님과 같다.
온화한 모습은 흡사 얼음이 녹아 풀리듯하며 그 순박한 모습은 갓 베어 낸
통나무 같고 그 활달한 마음은 탁트인 산골의 공동과 같으며 만사를 포용하여
시비를 가리지 않는 태도는 흡사 탁류와도 같다.
누가 능히 이 흐린 물결을 멈추게 하여 서서히 다시 맑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능히 안정된 것을 작동시켜 서서히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선비의 도를 체득한 이는 가득 차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차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도는 능히 만사를 덮을 수 있고 또한
새로이 그 무엇을 성취하려고 기도하지도 않는다.]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원불가식 실유불가식 고강위욕 예혜약종보천
유혜약외사린 엄혜기약객 환연약빙지위택 돈혜기약업 광혜기약곡 혼혜기약독
돈능독이칭지여청 돈능안이동지여생 보차도자불욕찬 실유불찬 고능폐불신성>
주
미묘현통: 도를 깨우친 모습을 표현한 말임.
미: 정밀하다, 세밀하다.
묘: 미의 극치로 변통자재한 모습을 뜻함.
현: 깊고 신비스러운 것, 유원하고 심원하여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
통: 만물의 원리와 이치에 통달한 모습을 뜻함.
강: '억지로, 무리하게 ~하다'라는 뜻임.
용: 형용해 본다, 그려본다, 표현해본다의 뜻.
환연: 얼음이 녹아서 풀리는 모습을 뜻함.
박: 통나무.
광: 비다, 넓다의 뜻임.
이장에서는 시원하게 탁 트인 모양을 표현한 말임.
혼: 여러 가지가 어지럽게 귀섞인 모양.
불신성: 새로운 것을 이루려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뜻임.
해
도의 원리에 통달한 사람은 그 미묘함과 깊이를 남이 헤아릴 수 없고 그
몸가짐은 항상 의젓하여 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남에게는 포용력이 있게 대하고 소박하면서도
활달한 것이 산골의 공동과도 같다. 청탁을 가리지 않는 그는 무엇이나 버리지
않고 받아들이므로 모든 흙탕물을 가리지 않고 흘러 보내는 계곡의 탁류와도 같
다. 그는 탁류를 정지시켜 정화하면서도 결코 이를 정체시키지는 않는다.
도에 통달한 선비는 어지러운 세상과 어울리면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고
정화시켜 도의 너그러운 품속에서 생동케 한다.
도는 언제나 비어 있고, 고요하며, 무위하므로 모든 것을 덮고 있을 뿐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지는 않는다. 탁월한 선비는 자연의 섭리에 적응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 인위적인 것을 채우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직 자연(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임)에 맡길 뿐이다.
이 장에서 노자는 도를 터득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유가의 이상적인 인간상과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맹자에는 유가의 이상적인 인간상이 묘사되어 있다.
부동 심과 호연지기를 기를 것을 강조한 맹자는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공자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다'는 유약의 말을 인용하며 공자를 최고의 이상
적 인물로 추앙하였다. 독자들은 유가와 도가의 이상적 인간상이 매우 대조적인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유가는 치욕에 대하여 염결로서 몸단속을 하며, 타협을 거부하고 시시비비를
끝까지 추궁하여 포폄으로 매듭짓는다.
도가가 세상의 모든 것을 차별 없이 포용하면서도 그 청징함을 간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가는 본질적으로 사대부 계층의 가치관을 대변하며 남성적이요,
강의함을 이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배계급의 철학으로 영속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 철학이 2천여년동안 동아시아의 지배적 정치사상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하여 도가 철학은 시비와 포폄을 초월하여 부드럽고, 겸손하며
여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대지에 뿌리를 박은 피지배 계급의 정치적 이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권력과 세속적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민
초의 어려움을 어루만져 주는 생활 철학이기도 하다.
상류 사회의 화사한 가든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비애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친절함, 부드러움, 자상함이 깃든 철학이다.
우리는 이 두 위대한 사상을 모순과 대립 관계로 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가와 도가의 두 사상은 어느 한쪽만이 있었다면 초래되었을 심리적 불균형에
안정감과 균형을 이루는 데 크나큰 공헌을 하게 된다.
동아시아의 지식인은 도가의 처세관을 통하여 유가의 위계질서 속의 의무감에서
잠시 벗어나 개성의 창달과 지성의 방랑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재직 중에는 공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던 유교적 관리가 퇴직 후에는
자연을 벗삼는 도가적 처사가 되는 것은 조금도 모순된 일이 아닌 것이다.
유가 철학이 적극적, 현실적인 양의 성격을 지니는데 반하여 도가 철학은 보다
소극적, 둔세적인 음의 성격을 띄면서 동아시아의 문화에 깊이와 폭과
다양성을 주었다는 점은 이미 기술한 바 있다.
16.
[하늘과 땅이 그 공간을 비우는 것이 극치 점에 이르고 고요한 상태를 지키는
것이 무르익으면 만물은 일제히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 살아 움직이
는 만물이 다시 고요한 상태로 되돌아감을 본다. 싱싱하고 무성하게 자라는 것
들도 결국은 각기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정)
이라고 한다. 이것을 천명으로 돌아가는 것 즉 복명이라 한다. 천명으로 돌아가
는 것을 영구 불변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 불변의 법칙에 통달하는 것을 명찰이
라고 한다. 이 영구 불변의 법칙을 알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면 불행을 불러들이
게 되는 것이다. 이 영원불변의 이법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의 그릇은 만물을 다
포용할 정도로 커진다. 만물을 어느 것이나 차별이 없이 포용함을 곧 공평함이
야말로 진정한 왕도이다. 완도는 천리이며, 천리는 곧 도인 것이다. 도는 영원하
다. 이 영원한 도를 간직하면 죽을 때까지 결코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다.]
<지허극 수정적 만물병작 모이관기복 실물운운 명귀기근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부지상망작흉 지상용 용급공 공급천 천급도 도급구 몰선불
태>
주
치허극: 겨울이 되어 모든 생물의 활동이 멈춘 듯한 공허한 풍경을 묘사한
말임.
병작: 다 함께 생성 발동하여 변성하는 것.
복: 돌아가다, 복귀하다,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함.
이는 곧 하늘의 법칙이 왕복하고 순환하기 때문이다.
운운: 초목의 꽃과 입이 무성한 모양, 운운으로 기술한 판도 있음.
상: 영구 불변의 법칙, 제 1장의 비상도의 상과 동일한 의미임.
망작: 사리에 맞지 않은 경거망동을 뜻함.
용: 너그러움, 포용, 관용을 뜻함.
공: 공평무사하여 편벽함이 없는 것.
천: 천리, 하늘의 법칙.
몰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죽을 때까지, 몰은 몰과 통함.
해
겨울이 오면 산천초목이 조악하여 쓸쓸하여 고요해진다.
빈 벌판은 커다란 구멍 같은 상태가 되며 적막하기만 하다.
이런 상태가 절정에 달하면 다시 봄이 찾아와 만물이 생기를 되찾게 되나 다시
고요함으로 복귀하는 생명의 순환을 되풀이한다. 노자는 항상 근원적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생명의 존엄성은 실체를 응시하므로 새삼 깨우칠 수 있고 유
한성은 무한성을 자각함으로 더욱 그 자체의 일회성, 특수성을 깨닫게 된다.
천지 내의 모든 생명은 다 유한하고 불안정한 존재이다. 그러나 배후에는 영원
불변의 도가 머물러 있다. 그것으로 인해 개체적인 사멸의 비애는 극복되고 있
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체의 일회성과 특수성은 도의 보편성, 영구성과 연결
하여 생명의 순환은 되풀이되는 것이다. 모든 개체는 결국 자연에서 나와서 자
연으로 돌아간다. 죽고 사는 것이 순환 과정이니 이것이 곧 자연의 영구 불변의
법칙이다. 이것을 모르고 경거망동하면 몸을 그르치게 된다. 이러한 법칙을 깨우
친 사람은 만물을 차별 없이 포용하는 큰그릇이 된다. 청탁을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포용함을 공평함이라 한다. 이 공평함이 곧 왕도이며 하늘의 법칙이다.
이러한 자연의 상도를 체득하여 몸가짐을 단속한다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다. 근원에의 복귀 사상을 서술하고 있는 노자의 이 장을
읽고 있으면 주역의 복괘(곤상,진하)가 연상된다. 복의 괘는 양기가 다시 돌아와
서서히 세력을 신장하는 괘이다.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다.
무리 없이 때에 순응하며(곤) 건전하게 작용하는 덕(진)을 갖추었으니, 나아가나
돌아오나 잘못됨이 없다. 벗들이 모여 와도 탈은 없을 것이다.
가던 길일을 칠일만에 돌아오니 번영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양의 기운이 이제 벗어나게 된다. 적극적으로 나아감이 좋을 것이다.
이 괘는 겹겹이 쌓여 있는 음기 속에 한줄기 양기가 싹트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제 고난과 괴로움을 안겨 주었던 시절은 서서히 물러가고 번영과 발전
을 약속하는 새봄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미약한 상태이므로 조급하
게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침착하고 신중하게 장래의 대계를 세워야 할 것이
다. 복은 동지를 나타낸다.
동짓날은 지일이라 하여 이날부터 양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와 같이 천지 자연은 가고 오는 순환 관계에 있다.
해는 서쪽으로 지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동쪽에서 또 다시 떠오르게
된다. 계절의 바뀜도, 나고 죽는 생사의 이치도, 모두 가고 오는 순환의 법칙인
것이다. 인생 사에도 성공 끝에 실패가 오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도리에 달관한 사람은 그때 그때의 눈앞의 이해 득실에 구애됨
이 없이 하늘의 법칙을 즐기며 근심하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또한 멀겠는가?(If winter comes, can spring de far behind?
셸리의 '서북부'에서)
17.
[최상의 군주는 아래의 백성들이 단지 임금이 있다는 것만을 알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군주는 백성들이 친근함으로 그를 칭송한다. 그 다음 수준의 군
주는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긴다. 군주에게 믿음성이 없으면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르지 않게 마련이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되며 조심하고 삼가하여야 한다.
가장 훌륭한 군주는 작위 없는 다스림으로 공을 이루며 일을 성사시켜도
백성들이 그 공을 모르고 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태상하지위지 기차관이각지 기차외지 기차민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유혜귀언
공성사축 백성개위아자연>
주
태상: 가장 훌륭한 것을 뜻함, 이장에서는 최상의 임금을 의미함.
하: 아랫사람들, 하민, 백성.
하지유지: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만을 안다는 의미.
친예: 친밀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외: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모: 업신여기다, 멸시하다.
귀언: 말을 소중하게 여겨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
해
이 장에서는 노자는 도가의 무위자연 설의 다스림을 유가의 덕치주의, 법가의
법치주의와 비교하여 기술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군주는 도에 순응하여 인위적
인 행위를 삼가므로 백성들이 그의 존재만을 알뿐 감사할 줄 모른다.
마치 공기 속에 사는 생물들이 공기의 고마움을 망각하고 있는 것과
같다(도가의 무위자연의 정치).
그 다음의 군주는 무위로써 다스릴 재능이 없으므로 인의의 방도로써 힘써
백성들에게 덕정을 베푼다. 따라서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르게 된다(유가의 덕치
주의 단계). 그 다음 수준의 군주는 법과 형벌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권위와 위신으로 통치하는 경우이다. 백성들이 전전긍긍하며 그를 두려워한다(법
가의 법치주의 단계).
최하의 군주는 법과 형벌의 공정한 집행으로 공권력의 위신을 유지할 만한
능력도 없는 인물이다.
그는 그때 그때의 임시방편적 속임수와 거짓말로 현실을 오도해 나간다.
백성들이 그를 믿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군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신의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최상의 군주는 말없이 무위로써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한다.
백성들은 그의 공덕으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잘한 덕분에 일이 저절로 이렇게 잘 되었다고 만 생각한다.
이 장에서 독자들은 그 옛날 요임금 시절의 격양가 소리를 듣게 된다.
18.
[무위자연의 큰 도가 없어지면 인의가 나오게 되고, 인간에게 지혜로움이
나오면서 큰 거짓도 있게 되었다. 또한 가족간에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효
도니 자애니 하는 것이 있게 되었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대도발 유인의 지혜출 유대위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주
대도: 무위자연의 도.
인의: 공자 사상의 핵심은 인이며, 인의는 맹자에 의해 부각된 개념이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맹자 양혜왕상). 양계초는 이것을 근거로 하여 노자서가 전국 말엽에
쓰여진 저술 서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노자서가 노자를 비롯하여 도가 사상의 총집인 점을 감안할 때 이 설은
부분적으로만 수용해야 한다.
지혜: 혜지라고 된 판본도 있으나 왕필(226-249. 삼국 시대 위의 학자. 23세에
요절. 주역과 노자에 탁월한 주석을 남김)의 주를 참조하여 지혜로 정정하였음.
대위: 큰 거짓, 사수을 뜻함.
위를 회의 문자로 보면 인위, 작위의 뜻도 있으니 굉장한 작위의 의미로 보아도
됨.
육친: 부자, 형제, 부부.
효자: 효도와 자애.
해
노자 서에는 풍자와 역설적 표현으로 그 당시의 기성 사회에 대한 문명
비평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구절이 많다.
자연의 이법인 위대한 도가 올바르게 발언을 행하여지지 않으니 인의로
규제한다고 했고, 인간의 지혜가 나쁜 방면으로 늘어갈수록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고 했다. 효행이니 자애니 하는 덕목을 강조하는 것은 가족간의 화목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충신과 열녀의 활약상이 부각되는 것은 국가와 집안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위자연의 대도가 원만히 행하여진다면 이와 같은 인위적인 노력은 불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무위자연의 도가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군주와 백성들이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노자가 꿈꾸는 이상향인 것이다.
그의 반문명적 비평 정신은 위계질서와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는 유가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19.
[아주 능숙한 재주를 끊어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은 백배로 도리
것이다. 인의 끊고 의를 버리면 백성들은 효와 자애로 되돌아 갈 것이다.
기교를 버리고 이익을 포기하면 도둑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 즉
탁월한 재주와 지혜, 어짊과 올바름, 기교와 이익을 아주 포기해 버리면 문화의
혜택이 모자라므로 백성들이 의지할 곳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돌
아갈 곳을 마련하기 위하여 갓 베어 낸 원목 같은 소박함을 보여 주어서 거기에
귀속시키면 사심과 욕구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성지기지 민리백위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차삼자 이위문부
족 고명유소속 견소절박 소사막욕>
주
절: 끊다, 없애다.
성지: 탁월한 재주를 뜻함.
국가 통치의 제도와 규범을 마련하는 성인과 현자들의 지혜와 재능을 의미함.
기: 버리다, 포기하다.
민리: 백성의 이익.
교리: 교의 기교, 기술. 이는 재리, 매매 이익을 의미함.
문: 이 문에 대하여는 옛날부터 연구자간에 이견이 많음.
장식품, 장식, 문장 표현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문명, 문화, 문식 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필자는 문화의 혜택으로 번역하였다.
견소포박: 소는 아직 염색하지 않은 흰 비단을 말하며 여기서는 본래대로의
순수함을 뜻함.
박은 갓 베어 낸 원목 즉 통나무를 뜻하며, 여기서는 인위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사물의 원래의 모습을 의미함.
모두 도를 상징한 말임. 질소, 소박, 질박 등의 말은 노자의 가치관을 잘 대변하
는 단어임. 박은 박으로 표기할 수 있다. 포박은 후세의 육조 시대에 포박 자를
저술하여 신선 사상을 선양한 갈홍의 호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사람들에게 문명의 허식과 겉치레를 벗어 던지고 알몸
그대로의 소박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주 탁월한 재주를 끊어 없애면 백성의
이익은 증대할 것이고, 인의를 버리면 백성은 효도와 자애로 돌아갈 것이며, 기
교와 이익을 포기하면 도둑은 없게 된다고 노자는 그 특유의 역설적 수사를 구
사하여 자신의 지론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지, 인의 , 교리를 끊어 버리면 생활이 단조롭게 되어 백성들이
마음을 쏟을 대상을 잃게 된다. 이럴 때 물감을 들이지 않은 순수한 비단이나
산에서 갓 베어 낸 거친 통나무와 같은 본래의 순박함을 보여주어 거기에 그들
의 마음이 귀속할 곳을 마련해 준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의 사심과 욕구는 감소
하게 될 것이다.
노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문명과 문화의 겉치레 속에 스스로가 키운 간지와
욕망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추구하는 것만을 최고의 이상으로 내세우며 일방적,
편파적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자는 인간이 만들어 낸 관념적 허구성에서 탈피하여 알몸 그대로의 진실로
되돌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철인이었다.
노자의 반문화선언은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시대의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과 유사함이 있다.
루소는 인류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무한하게 증대되는 욕망과 유한한
인간 능력 사이의 불균형으로 갈등을 겪게 됨을 지적하였다. 또한 예술과 학문
은 모두 인간의 악덕에서 생긴다고 주장하며 부패, 문약의 병폐가 바로 문화가
가져다 준 해독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도 자연 상태를 야만 상태로 규정하
여 자연에의 복귀보다는 현실 정치의 개선책(인민 주의설)쪽으로 관심사를 돌린
점에서 결국 노자와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외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우주적 질서와 인간 윤리의 합치를
이상으로 삼는 우리 동양철학의 자연관과 자연을 주로 인간과 대립되는
객관적인 대상 내지는 물질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서구인의 자연관과는 현격한
관점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20.
[학문이란 것을 없애 버리면 인간에게 근심은 사라질 것이다.
예! 하고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과 응! 하고 교만하게 응대하는 것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남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나 역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
구나. 그러나 나는 세상 사람들과 멀고도 멀어 그 끝을 모르겠노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육식을 즐기듯이 봄날의 동산에 올라 전망을 즐기
는 듯하건마는, 나만은 홀로 담담하고 고요하게 있으니 그 욕심이 없는 모습이
마치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 같구나. 나른하고 고달퍼서 돌아갈 곳조차 없
는 사람 같구나. 세상 사람들은 욕심과 희망에 들떠 있지만 나홀로 만사를 다
상실한 것 같구나. 나의 마음은 어리석은 것일까?
분별도 판단도 못하고 몽롱하기만 하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영악하고 빈틈이
없건만 나홀로 멍청하고 흐리기만 하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분별력이 있고
사리에 밝아 영리하건만 나만 홀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이 우둔하기만 하구
나. 바다처럼 출렁대며 흔들리면서 소리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이 그침을
모르겠노라. 세상 사람들은 다 유능하고 쓸모가 있으나 나만 홀로 고집 만세고
촌티가 나는구나. 그러나 나만은 홀로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생명의 본질을 귀
하게 여기노라.]
<절학무환 융지여아 상거기아 선지여악 상거아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항태뢰 아독박혜기비조 시영아지미해 래래혜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귀아우인 지심지재 돈돈혜 욕인소소 아독씨씨 욕인찰찰 아
독민민 담혜기약해 요혜약부지 중인개유이 이아독두이향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주
유: '예'하고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
아: '응'하고 교만하게 대답하는 것.
황혜: 아득하고 멀게.
미앙: 다함이 없는 것, 끝이 없는 것. 앙은 다하다 즉 전과 동일함.
희희: 즐거워하며 웃는 모양, 희희와 같은 뜻임.
태뢰: 나라의 제사에 쓰는 소, 양, 돼지의 재물을 말함.
박혜: 담담하고 조용한 모양.
미조: 기쁨, 슬픔 등의 감정 표현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해: 아기의 웃음소리.
래래혜: 나른하고 피곤한 모양, 맥이 풀려 있는 모양.
돈돈혜: 변별도 식별력도 없는 멍청한 듯한 모양, 흐리멍덩한 모습.
소소: 사리에 밝은 것, 재능과 식견을 자랑하는 것.
찰찰: 깨끗하고 분명한 것, 빈틈없고 자세한 모양, 잘고 까다로운 것.
민민: 사리에 밝지 못한 어수룩한 모습, 흐릿하고 멍청한 모습, 답답한 모습.
식모: 생명의 근원, 원천이란 뜻임(식모생지본야 왕필의 주석). 모는 도 즉 자
연을 상징하고 있음.
해
이 장에서도 노자는 기성 사회의 문화에 대한 비판을 신랄하게 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반문화선언의 계속이다. 세상 사람들은 갈고 닦는 학문이란 근심
과 번민을 가져다 줄 뿐이다. 그것은 선과 악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는 마음,
남보다 앞서려고 하는 경쟁심 등의 욕망을 일으키게 한다. 학문으로 자신을 과
대 포장하여 스스로 똑똑한 체 자만하며, 큰 일을 벌이는 자들은 노자의 안목으
로 보면 사람의 본성을 그르치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멍청한 듯,
아무것도 안하는 듯이 자연대로 살아가는 것이 도를 체득한 사람의
생활 태도인 것이다. 자연의 대도에 순응하며 배움, 경쟁심 등의 세속적인 집착
을 버릴 때 근심과 걱정 등의 인간적 번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장을 읽고 있으면 진리의 대해 앞에 홀로선 현자의 고독과 초연함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속 인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진리와 마
주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노자는 이 장에서 반어와 역설적 표현으로 자신
을 멍청하고 우둔하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세속적 지식과 욕망의 겉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의 속물 근성을 개탄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관념적 허상을 벗어 던지고 생명의 근원인 도를
존중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가 생명의 근원이란 뜻으로 식모라는 용어를 쓴
점 역시 제 6장의 현빈 등의 표현과 함께 재미있는 착상이다.
그를 페미니스트의 비조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은 이와 같은 그의
독특한 발상법 때문일 것이다.
21.
[큰 덕의 형상은 오직 도에서 나올 뿐이다. 도라는 것은 다만 황홀하기만 하여
그 형태를 포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그 속에서 사물의
본바탕이 있다. 포착할 수도 살펴볼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그 곳에 사물의 형상
이 들어 있다. 도는 아득하고 신비스러우며 어둡기만 하지만 그 안에는 정기가
스며 있다. 그 정기는 매우 순수하고 그 속에는 믿음성이 들어 있다. 아주 옛날
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 불멸의 도로부터
만물의 조상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만물의 조상 때의 상
황을 알 수 있느냐 하면 앞에서 언급한 도를 통하여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공덕지곡 유도시종 도지위물 유황지홀 황혜홀혜 기중유물 요혜명혜 기중유
정 기정심진 기중유신 자고급령 기명불거 이열중보 오아이지 붕보지태재 이차>
주
공덕: 큰 덕, 공은 크다는 뜻임.
공을 공으로 보아 공덕을 공허한 덕으로 풀이하는 이도 있으며, 통한다 두루
미친다의 뜻으로 보아 널리 통하는 덕, 두루 미치는 덕 등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용: 형용, 태도, 움직이는 모습.
황홀: 제 14장의 홀황과 같은 뜻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어슴푸레한 상태.
형용을 분별해 인식할 수 없는 상태, 꿈을 꾸는 것 같은 아리송한 상태.
상: 모양, 모습, 형상.
요혜명혜: 깊고 아득하고 신비스럽고 어두운 모양.
정: 정기.
불거: 사라지지 않음, 도의 영구불멸성을 말함.
열: 열은 통과 동일한 의미로 거느리다, 통솔하다의 뜻으로 쓰임.
중보: 만물의 처음, 만물의 시작, 만물의 조상이란 의미임.
이차: 차는 도를 지칭한 것임.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도는 만물의 실체요, 그 작용과 현상으로 구체화된 것이
덕임을 설명하고 있다. 도는 흐릿하고 황홀하므로 그 본모습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형상이 있고 실질이 있다. 도는 아득하고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러므로 그 본질은 알 수는 없으나 그 가운데 정기가 있다. 그 정기는 매우 순
수하며 또 믿음성이 있다.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그 이름은 불멸이다.
우리는 도로부터 천지, 음양, 일월의 운행과 변화의 원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는 만물의 배후에서 만물을 주재하는 만물의 제일 원인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도의 작용 때문이다.
도는 이 모든 일을 무위자연의 법칙으로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덕과 윤리적 질서는 사실 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도와 덕은 동전의 양면처럼 표리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2.
[유연한 나무는 꺾이지 않고 탄력성이 있어 도리어 안전할 수 있다.
구부리는 것은 장차 곧게 펴기 위함이다. 움푹 패인 속에는 물이 가득 찰 수 있
고 옷은 헤어져야 새옷을 입게 된다. 숫자가 적으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기
쉽지만 수가 너무 많으면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결심이 서지 않
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만 도만을 지키고 있으므로 이 세상의 규범이 된다.
성인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존재는 도리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성인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공로를 뽐내지 않기 때문에 큰공을 이룩할 수 있고 자만을 모르기
때문에 그의 공로는 오래가는 것이다. 성인은 남들과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의 그 무엇도 그와 다툴 수 없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말한 '
휘어지면 안전하다'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참으로 온전하게 천하는
그에게로 귀속될 것이다.]
<곡측전 왕측직 외측찬 폐측신 소측득 다측혹 시인성인 포일위천하식
부자현고명 부자시고영 부자벌고유공 부자부고장 실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고지소위 곡측전자 암허언재 성전이귀지>
주
왕: 굽히다, 곡과 같은 뜻.
와: 웅덩이, 도랑, 우묵이 패인 곳.
폐: 옷이 떨어지다, 옷이 헤어지다.
포일: 만물의 근원이요, 제일 원인인 도 하나만을 굳게 지켜 변함이 없는 것을
뜻함.
식: 규범, 모범, 본보기.
자벌: 자기의 능함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
상전이귀지: 참으로 온전하게 천하는 그에게로 귀속하게 될 것이다.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우리에게 오로지 도 하나만 지켜 남들의 모범이 될 것을
상조하고 있다. 갈림길이 많으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고
사물이 많으면 쉽게 선택을 못할 경우가 있다. 성인은 도 하나만을 고수하여 세
상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
지 않는다. 또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거나 칭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존재는 더욱 잘 드러나며 공덕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휘어지는 나무는 유연성이 있어 안전하고 구부러지는 자벌레는 장차 몸
을 곧게 펴기 위함이다.
우묵하게 패인 곳이 있어야 물이 고일 수 있고 옷은 헤져야 새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남과 경쟁하여 이기겠다는 생각이나 앞선 존재가 되겠다고
애쓰지 않는다. 사람이 살다 보면 지는 것이 도리어 이기는 것이 되는 수가 많
고 무능한 것이 유능한 것보다 유리한 경우도 있다.
구부러져 대들보가 될 수 없는 나무는 오랜 세월 재수명을 다 누릴 수 있으나
곧은 나무는 재목으로서의 쓰임새 때문에 목수에 의해 먼저 베이게 된다.
성인은 끈덕진 승리에의 집념이나 집요한 자기 주장을 할 줄 모른다.
모가 나게 처신하지 않는 그는 도무지 누구하고도 다툴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남과 다투지 않고 천하의 본보기 가 된다면 진실로 천하의 마음은
그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23.
[들으려고 해도들을 수 없고 말은 자연의 무언의 말이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 동안 계속 물지 못하고 소나기도 온종일 내리지
못한다. 회오리바람을 불게 하고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것은 누구의 조화인가?
그것은 천지가 하는 일이다. 하물며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도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도에 동화되고 덕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덕과 일치되고 실덕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실덕과 하나가 된
다. 도와 동화되면 도 또한 그를 얻은 것을 좋아할 것이며 실덕과 하나가 되면
실덕 또한 그를 얻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나에게 믿음이 부족하다면 남도 나를
믿지 아니 할 것이다.]
<희언자연 고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숙위차자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고종사어도자 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동어실자
실역락득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주
희언: 들을 수 없는 소리, 들을 수 없는 말, 즉 도를 의미함.
표풍: 회오리바람.
취우: 소낙비, 소나기.
종조: 날이 밝은 뒤 아침까지의 시간, 새벽부터 아침까지.
고종사어도자: '도에 좇아 도의 가르침대로 하는 이는 무위를 으뜸으로 하며,
말하지 않음을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왕필의 주)
이황: 하물며
실: 잘못, 과실, 실덕.
실자동어실: 실덕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실력과 하나가 된다.
해
도에서 나오는 말은 들으려고 해도 도무지 들을 수가 없다. 도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진리를 저절로 알려주고 있다. 자연이란 저절로 그렇게 된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도는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
이다. 소나기, 회오리바람 등은 자연현상의 일종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현상도 변덕스럽거나 난폭한 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잔인하거나 난폭한 일을 오래 행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사람은 각자의 수양 정도에 따라 도에 동화되기도 하고 실덕에 동화되기도
한다. 사람은 도의 무언의 가르침과 진실을 배워야 한다.
대체로 사람의 모든 주장은 이해관계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진실성과는 거리가 먼 궤변인 경우도 적지 않다.
맹약을 저버리고 식언을 예사로 하는 것도 인간의 자기본위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도는 믿음성을 저버리는 일이 없다.
밤과 낮의 바뀜, 춘하추동의 교체는 태초이래 단 한 번의 어김도 없이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도리는 우리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고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상대를 대해 주지 않는다면 저쪽 역시 우리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 노자는 사람이 부자연스런 행위를 그만두고 도를 체득하
여 인생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진리를 배워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말하고 있
다.
24.
[발끝을 제껴 디딘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리고 걸으면 오래
걸을 수 없다. 가랑이를 벌리고 걸을 수 없다. 스스로 나타내는 자는 오히려 분
명히 나타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도리어 공로가 없게
되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도의 차원에
서 보면 먹다 남긴 음식이나 남의 집을 방문하다가 거절당한 것처럼 사람들이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체득한 이는 이와 같은 일은 하지 않
는다.]
<기자불위 과자불행 자건자불명 자시자불영 자벌자불공 자무자부장 기재도야
왈여식췌행 물혹악지 고유도자불처>
주
기: 기와 같음, 발바닥을 땅에 대지 않고 발끝으로 제껴 디디는 것.
과: 양쪽 다리를 넓게 벌린 자세.
여식췌행: 여식은 식사후 먹다 남긴 음식.
췌행은 불필요한 방문, 거절당한 방문, 무의미한 행위 등을 뜻하고 있음.
물: 여기서는 타인, 남을 지칭하고 있음.
해
노자는 이 장에서 인간 본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질적, 정신적 허영심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하 등의 유익
함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자랑하는 것, 으시대는 것 등은 남들이 먼저 외면하게
되며 또 적대감마저 유발하여 적을 만드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그것을 도는 여식췌행이라 하여 먹다 남긴 음식이나 거절당한 방문처럼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한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이와 같이 부자연스럽고 어리석
은 행위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자만심, 허영심 등의 무가치한 것들을
버리고자 하는 것은 결국 참되고 진실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생활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25.
[혼돈 상태에서 성립된 것이 있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겼다. 그것은 고요하
고 적박하여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상대할 짝도 없이 홀로 서 있으며 홀로
서 있으나 항상 변함이 없다. 어디에나 가지 않는 데가 없으나 결코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은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편의상 이름하여 자를 지어 도라고 부른다.
억지로 큰 것이라 이름짓기도 한다. 무한정 크기 때문에 어디에나 퍼져 나가
며, 어디에나 퍼져 나가기 때문에 멀리까지 간다.
멀리까지 갔다가 그것은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
은 크고, 땅도 크다. 임금도 또한 크다. 이 세계에는 큰 것이 네 가지가 있다.
임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은 땅의 법도를 본받고, 땅은 하늘의 법도를 본
받으며, 하늘은 도의 법도를 본받고 자연의 법도를 본받는다.]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오혜 도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부지기명
자지왈도 강위지명왕태 대왈석 석왈원 원왈반 고도대 천대지대 왕역대
혹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주
혼성: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뜻.
즉 도는 하늘과 땅이 아직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편성과 항존성을 지닌 영원불멸의 존재이다.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다 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 때문이며,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인 것이다.
노자의 만물생성론과 그리스인의 우주생성론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착상이 될 것이다. 그리스인에 의하면 신은 무질서와 혼돈 상태인 카오스의 세
계에서 질서와 조화의 코스모스의 우주로 세계를 개조하였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조물주가 아니라 혼돈의 우주에서 새로운 원리를 부여
하여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 낸 일종의 창설자요, 건축 설계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적혜요혜: 고요한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상태.
독립: 도의 짝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홀로 서 있다고 한 것.
불개: 고치지 않는다, 언제나 변함이 없다. 도의 불변성과 항존성을 표현한 말
임.
불태: 위태롭지 않다, 도는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이 없다는 뜻임.
천하모: 만물의 근원, 천하의 어머니, 만물의 생성자.
원왈반: 반은 반의 뜻이니 돌아온다는 말임. 도는 무한정하게 퍼져 나가지만
언제나 원위치로 돌아 오고 있다는 뜻임.
역중: 우주내, 이 세계 안을 뜻하고 있음.
법: 법칙으로 한다, 법도로 삼는다, 본받는다.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본질에 대한 원리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도는 하늘의 땅이 생기기 전에 혼돈 가운데에서 먼저 생겼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는 도는 그와 짝이 될 만한 것이 없어 다만 홀로 서
있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위로나 아래로나 언제 어디에서도 그 움직임에
변화는 없다. 그것은 불멸의 존재로서 손상되거나 위태롭거나 가감이 되지 않는
다. 그것을 우리는 천하 만물의 어머니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의 본래의 이름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편의상 도라고 지칭할 뿐이다.
억지로 이름짓는다면 큰 것(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는 우주의 끝까지
안가는 데가 없다. 그래서 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원위치로 돌아온다.
도는 우주 만물의 구석구석 어디에나 스며 있다. 그것이 바로 도의 보편성이다.
노자는 이 우주에는 큰 것이 네 개지 있음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도와 하늘과 땅과 임금이다. 사람은 땅의 이법을 본받고, 하늘은 도의 이법을
본받게 된다. 자연은 작위 하지 않지만 천하 만물이 저절로 육성되고 운행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사람은 도의 인식을 통해 무위자연의 위대한 섭리에 합일
할 수 있는 것이다.
26.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밑바닥이 되고, 안정된 것은 움직여 소리내는 것의
임금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인 왕자는 하루종일 가벼운 수레를 타고 여행하더라
도 무거운 짐수레를 버리고 안정된 마음으로 초연히 있으면서 구애받지 않는다.
어찌 만승천자의 몸으로 천하 백성들 위에서 자신의 몸을 가볍게 다룰 수
있겠는가? 가벼이 행동하면 밑바탕을 잃게 되고 조급히 움직이면 군주의 자리를
상실하게 된다.]
<중위경근 정위조군 시이성인종일행 불이치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내가만승지
주 이이신치천하 치칙실본 조칙실군>
주
조: 조급하게 움직이는 것, 거동이 침착하지 못하고 성급한 것,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
성인: 여기서는 탁월한 군주를 가리킴.
치중: 여행, 행군시에 식량 등의 필수품을 실은 짐수레.
영관: 화려하고 볼 만한 구경거리.
연처: 편안히 있는 것.
초연: 무관심한 태도, 구애되지 않는 모습.
만승지주: 전차 1만대를 소유하고 있는 임금 즉 천자를 지칭한 것. 수레 한 채
를 1승이라 함.
해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 되고 고요함은 시끄러움의 으뜸이 된다.
처세에 있어서도 경거 망동하거나 성급하게 움직이면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에게
쉽게 제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가짐과 행동은 언제나 무
겁고 신중하고 고요하게 가져야 한다. 성급하거나 가벼이 움직인다는 것은 침착
하지 못한다는 것이요, 그것은 그의 마음이 무엇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임금은 여행이나 행군할 때 속도가 느린 무거운 짐수레를 중심으로
하여 가기 때문에가볍게 먼저 가고자 하지 않는다.
보급품이 충실하여야 아무런 걱정 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비록 화려하고 볼만한 구경거리가 있다더라도 초연히 있으면서 설레거나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천자는 만백성의 으뜸이다. 그러므로 그의 몸가짐은 신중
하고 행위는 백성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몸가짐을 함부로 가볍게 하면서 날뛰다가 임금의 소중한 지위마저 상실하는
어리석은 군주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사람의 처세 특히 백
성의 대표자인 임금의 몸가짐과 행위는 반드시 신중하고 침착해야 함을 강조하
고 있다. 그는 또한 우리가 일을 처리할 때도 지엽적인 것, 말단적인 것에 구애
되거나 현혹되지 말고 밑바탕이 되는 근본적인 것에 우선 치중해야 함을 교훈하
고 있다.
27.
[아주 훌륭한 행위에는 자국이 남지 않고 도에 맞는 좋은 말에는 흠이 없으며,
셈에 능숙하면 산가지가 필요 없다. 잘 닫은 문은 빗장을 쓰지 않아도 그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잘 묶어 놓으면 구태여 밧줄로 묶지 않아도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구제하여 쓰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 또한 물건을 구하여 유용하게 어떤 물건도 버리는 법이 없다.
이것을 외면에 드러나지 않은 밝은 지혜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
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 되고 선하지 못한 사람의 경계와 교훈이 된다.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거나 그 경계와 교훈이 되는 사람을 사랑한 줄
모르면 비록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우매한 것과 같다. 이것을 도의 오묘
한 작용이라 한다.]
<선행무철적 선언무하적 선수불용주책 선폐무관건이불가개 선결무승약이불가
해 시이성인 상선구인 구무엽인 상선구물 고무엽물 시위습명 고건인자 불선인지
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지미 시위요묘>
주
철적: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
하적: 흠, 잘못, 허물, 원래는 옥의 티를 말함.
주책: 대나무나 뼈 같은 것으로 만든 산가지.
옛날 셈할 때 쓰던 물건임, 불용 주책을 불주책을 무주책으로 기술한 판본도
있음.
관건: 문빗장, 자물쇠.
승약: 새끼줄, 밧줄, 노끈 따위로 묶는 것.
습명: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밝은 지혜.
습은 되풀이하다, 거듭하다, 감추다, 전하다, 들어가다 등으로 새겨 옛날부터
주해에 통일을 보고 있지 못하다.
자: 도움이 되다, 소용이 닿다, 취하다의 뜻임.
타산지석과 같이 선한 사람의 수양에 경계와 교훈의 자료가 된다는 뜻임.
요묘: 요묘와 같음 의미임. 신비하고 그윽한 도의 자용, 깊이를 헤아릴 수 없
는 도가 지니고 있는 진리를 의미함.
해
이장에서 노자는 무위자연의 도를 체험한 사람의 감화력을 말하고 있다.
무위자연의 도는 일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때문에 선이니 악이니
하는 차별적인 가치판단을 이미 초월하고 있다.
노자는 원래 선과 악을 어떤 절대론적 기준으로 성급하게 구분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악은 선과 절대적으로 대립되는 존재가 아닌 상대적인 것
으로 아직 선에 이르지 않는 상태 즉 선이 결여진 상태인 것이다.
악은 선과 더불어 본질적 근원적으로는 동일한 바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노자의 선은 악을 용서하고 포용할 줄 아는 여유와 너그러
움이 있다. 서구인들이 선악의 문제를 너무 극단적인 이분법적 대립 관계로만
파악하여 일방적 자기집착 내지는 자기 독선에 빠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
다. 기독교의 원죄 의식에 뿌리를 둔 과거 서구 문학 사상 최고 수준의 걸작품
들은 모두 선과 악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괴테의 '파우스트',
허만 멜빌의 '백경', 도스토에프스키의 '까라마쵸프가의 형제들' 등의작품들은
다 인간 정신의 내면에 깃든 선과 악, 특히 악의 정체에 대한 심층 해부와 분석
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구식 선악관의 세례를 받은 일부 동양의 현대인들은 동양 사상(특
히 노장사상과 불교)이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자기 반성, 깊이 있는
사색 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것은 아직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 것, 진
리성의 결여를 입증하는 것으로까지 몰아 부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전술한 대로 선이나 악이다 하고 딱부러지게 흑백론적 기준으로 구분
짓는다는 것에 벌써 무리가 있으며, 선이 이미 선이다 하고 목소리를 높여 자기
주장에만 열중한다면 그것 자체가 벌써 선은 아닐 것이다. 도의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데서 오는 정신적 미숙함일 것이다.
무위자연의 도는 자기 주장이나 강변 없이 우주 만물을 길러 내며 그 자신의
품속에서 숨쉬도록 허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성인은 모든 물건을 잘 활용하듯이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으로,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타산지석으로 그 나름대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는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지도, 남의 수양에 타산지석이 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배척하지도 않는다. 그
는 이 모두를 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에 맡겨 각자의 소임을 다하도록 할뿐
이다.
28.
[수컷의 억셈과 능동적인 힘을 발휘할 줄 알면서도 암컷의 유순함과 겸허함을
지킨다면 모든 물줄기가 모여드는 계곡과 같이 천하의 인심은 그에게로 쏠리게
될 것이다. 천하의 물줄기가 모여드는 골짜기와 같이 된다면 덕은 언제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고, 그는 젖먹이 상태로 되돌아 기게 될 것이다.
흰빛처럼 세상에 빛나는 존재가 될 길을 알면서도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은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는 천하의 모범이 된다면 덕은 언제나 그에게서 차질
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무한한 도의 경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세상의 영예를
누릴 방도를 알면서도 참고 욕된 위치를 지킬 수 있다면 모든 물이 흘러드는
골짜기처럼 세상의 인심은 그에게로 귀속하게 될 것이다. 모든 물이 흘러드는
골짜기처럼 된다면 덕은 언제나 넉넉한 것이고, 아직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도의 꾸밈없는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갓 베어 낸 통나무가 다시 쪼
개지고 다듬어지면 여러 가지의 기물이 나오는 것처럼 도의 상태가 표출되면 인
재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성인은 그들을 발탁하여 관리의 우두머리가 되게 한
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스릴 때 큰 원칙만을 지키고 자질구레하게 세분하지는
않는다.]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주
식: 본보기, 모범.
특: 어긋나다, 차질이 생기다.
무극: 무한한 도의 궁극의 상태, 한없는 도의 시원의 상태.
이 단어는 훗날 주렴 계의 태극도 설에 수록되어 송대의 형이상학의 중요한
개념이 됨.
박: 산에서 갓 베어 낸 거친 통나무, 순수한 것. 여기서는 도를 상징함.
대제: 무위자연의 도에 따라 큰 원칙만을 지켜 백성들을 꾸밈이 없이
소박함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정치를 말함.
해
노자는 이 장에서 무위자연의 도를 체득한 사람의 생활 태도를 암컷의
유순함, 골짜기의 겸허함, 젖먹이의 때묻지 않은 순진함, 갓 베어 낸 원목의 질
박함 등으로 비유하여 기술하고 있다. 흰빛처럼 빛날 수 있으면서도 검은빛처럼
남의 눈에 발견되지 않은 자신을 고수할 수 있다면 세상의 본보기가 될 수 있고
유덕자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도의 궁극적
본질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영예를 누릴 방안을 알고 있으면
서도 짐짓 남이 알아주지 않은 낮은 위치에서 청류와 탁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이므로 그 유덕 함을 지키는 것이다.
노자가 즐겨 쓰는 박이란 단어는 산에서 갓 베어 낸 통나무를 말하며, 그것은
아직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소박하고 순수한 자연 즉 도의 상징인 것이다.
그 통나무가 갈라지고 다듬어지면 우리가 일상 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멋진 그릇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 원리를 보다 구체적 일상 생활의 예와 결부시켜 설명한
말이기도 하다. 즉 때묻지 않은 원목이 그릇이 되는 것처럼 불가사의하고 신비
스러운 도의 본바탕이 구체화, 현상화된 것이 바로 덕인 것이다.
그러한 덕을 지닌 사람을 성인은 발탁하여 여러 관원의 으뜸으로 삼기도 한다.
성인은 세상을 다스림의 도에 있어 큰 원칙만을 지킬 뿐 잘게 나누지 않는다.
즉 무위자연의 도는 쫓으면 그만이지 번거로운 제도 행정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29.
[장차 천하를 차지하고자 인위적인 노력을 한다면 그것이 실패로 끝날 것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천하는 불가사의하고 오묘한 그릇과 같아서 사람의 의도적
인 작위로서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의도적으로 다투려고 하는 자는
파괴할 것이며 인위적으로 장악하려는 자는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만물은 어떤 것은 앞장서고 또 어떤 것은 남의 뒤를 추종하며, 어떤 것은 가늘
게 숨을 쉬고, 어떤 것은 세게 내 뿜는다. 어떤 것은 굳세고 어떤 것은 나약하
다. 어떤 것은 꺽이고 어떤 것은 떨어진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심한 것, 분수를
넘치는 것, 지나치게 큰 것은 버린다.]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천하신곡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고물
혹행혹수 혹구혹취 혹강혹영 혹재혹휴 시이성인 거심 거사 거래>
주
리: 나약한 것.
좌: 꺽이다, 절과 같음.
휴: 떨어지다, 즉 타와 같은 의미임.
사: 욕구 충족이 너무 지나치거나 바라는 것이 분수에 넘치는 것.
태: 지나치게 큰 것을 뜻함, 교만한 마음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음.
해
천하 만물에는 어느 것이나 모두 무위자연의 법칙이 스며 있다.
이 무위자연의 법칙에는 예외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도인 것이다.
사람이 자연의 도에 순응하지 않고 어떤 일을 무리하게 인위적인 작위에 의해
성취하고자 한다면 그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천하를 차지한
다는 것은 천명과 인심이 그에게로 돌아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법가의
패도 주의는 물론이오, 유가의 덕치주의로서의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법가의 경우는 권모와 술수로서 인간 불신을 밑바탕으로 하여 권력 장악과
그것의 유지를 지상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유가의 덕치주의의 경우도 무
리한 인위적인 제도 행정이나 규제 등으로 무위자연의 다스림과는 거리가 먼 것
이다. 도에 맞지 않는 일은 일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에도, 인심과도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모름지기 위정자는 겸허한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며 무위자연의 도에 귀의할
때 비로소 백성의 으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30.
[도로써 임금을 보좌한다면 이는 군사력으로 천하의 패자가 되도록 하지
않는다. 그러한 일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르기 마련이다. 군대가 주둔하는 곳에는
가시나무가 무성하게되고, 큰 전쟁을 치르고 난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르게
된다. 그러므로 용병술이 뛰어난 이는 목적만 달성하면 곧 그치고 감히
그것으로 강대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전쟁의 목적을 이루더라도 우쭐대지 말며,
전쟁의 목적을 이루더라도 자랑하지 말며, 전쟁의 목적을 이루더라도 교만 해
지지 말아야 한다. 무력을 쓰는 일은 만부득이한 경우에 한할 것이며 목적만
달성하면 강한 체 말고 겸허해야 한다. 만물은 강장 하면 곧 쇠퇴하게 마련이다.
지나치게 강하고 억센 것은 도에 어긋난다. 도에 어긋나는 것,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 사지소처형극생인 대병지후필유흉년
고선자 과이기 불감이취강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 과이부득이 과이물강
물장즉노 시위부도>
주
인주: 군주. 임금을 뜻함, 전국시대의 말기에 보편화된 용어임.
기사호환: 무력으로 남을 정복하는 일은 응보가 쉽게 돌아온다는 뜻임.
사: 군대.
설자: 이 장에서는 용병술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고 있음.
과: 이루다, 성취하다, 달성하다의 뜻임. 성실, 과단, 과감성, 결행 등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음.
장: 지나치게 왕성한 상태.
노: 늙다, 노쇠하다, 쇠퇴하다.
조이: 오래가지 못한다, 빨리 그친다.
해
임금을 보좌하는 이는 군사력으로 나라가 강국이 되도록 의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굴복시키면 그 나라 또한 설욕하려고 하여
쟁란이 그칠 새다 없게 된다. 싸움은 싸움을 불러들이고 피는 피를 부를 뿐이다.
전쟁은 사람들을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환경으로 몰아 넣는다. 논밭은
황폐하여 흉년아 들고 기근과 전염병 등이 따르게 마련이다.
백성들은 사망자, 불구자와 이산가족의 발생으로 신음하게 되고 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용병에 탁월한 이는 무력을 사용하지더라도 최소한도의
목적달성으로 그치고 승리로 교만해지지는 않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트라이치게, 철학자 니이체 등은 전쟁을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인생의 목적 같은 것으로 규정하여
찬양한 바 있다. '그들은 힘이 정의이다.' '강자만이 살 수 권리가 있다.'
'전쟁터에서 발휘하는 용기는 남자의 최고의 미덕이다.'고 외치며 군사적 영광을
모든 가치관의 정점에 두었다. 그러나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인하여 망하게
되며, 정복자는 자신의 성을 모래 위에 쌓을 수는 있으나 반석 위에는 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무력에 의한 분쟁해결은 보다 큰 무력을 불러들일 뿐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문명비평가 토인비는 한 문화권이나 어떤 국가가 군국주의적
성향을 지니며 정복전쟁에 열중하는 것은 그것이 지닌 표면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긴 안목으로는 그 문화권 내지 국가는 이미 쇠퇴기에 들어섰음을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 경고하고 있다. 노자 역시 '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다.'
라고 말하며 당대의 야심많은 제후들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공벌을 일삼으
며 무고한 백성들을 희생케하는 시대의 아픔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부르짖고 있는 평화애호정신은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인류의 영원한 미해결 과제가 되고 있다.
31.
[성능이 좋은 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도를 체득한 사람은 무기의 사용을 꺼려하는 것이다.
군자는 평상시에는 왼쪽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용병하는 때에는 오른쪽을
소중하게 여긴다.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며 군자가 가까이 할 물건이
못된다. 하는 수 없이 그것을 쓰게 될 때에는 담담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싸워서 이기더라도 잘 하였다고 기뻐해서는 안된다.
전투에 이긴 것을 잘 하였다고 기뻐한다면 그것은 곧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사람 죽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뜻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경사에는 왼쪽을 상석으로 하고 흉사에는 오른쪽을 상석으로 한다.
군대에서는 부장은 왼쪽에 자리잡게 하고 사령관은 오른쪽에 자리잡게 한다.
왜냐하면 전투 행위를 애도할 일로 간주하여 상례를 여기에 적용한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으므로 그 일로 슬퍼하여 눈물 흘리고 싸움에 이겼을
지라도 장례식의 예로써 이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부가병자 불상지기 물혹오지 고유도자불처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병자불상지기 비군자지기 부득이이용지 염화위상 승이불미 이미지자 시락살인
실락살인자 측불가이시지어천하후 고사상좌 흉사상우 편장군거좌 상장군거우
언이상계처지 살인지중 이상비읍지 전승이상례처지>
주
가병: 성능이 좋은 무기, 병은 무기를 뜻함. 가병을 미병으로 표기한 관본도
있음.
불처: 그곳이 마음 편안히 머물지 않는다. 즉 무기 사용을 꺼려한다,
기피한다는 뜻임.
거: 평상시.
영담: 편안하고 담담한 모양.
미: 잘하였다고 기뻐하는 것.
편장군: 부장임, 편을 돕는다, 보좌한다는 뜻임.
상장군: 대장군 죽 총사령관을 말함.
해
이 장에서는 앞장에 이어 전쟁의 폐단을 고발하고 있다.
무기는 흉기이며 전쟁은 사람다운 사람이 할 일이 못되는 것이다.
부득이하여 적의 침략 등으로 전쟁을 해야 할 때에도 전쟁을 즐기는 듯한
마음가짐으로는 안될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천하에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맹자도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능히
천하를 통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천하 만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길은 오직 어진 정치를 베푸는 것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묵자도 간결하고 통쾌한 표현을 구사하여 전쟁을 규탄하고 있다. 죄없는 사람
한 명을 죽인다면 그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범인임에 틀림없고 열 명을
죽인다면 열 배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므로 열 배의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은 죄없는 백성을 죽이고 남의 나라를 빼앗는 행위이므로
몇 사람을 살상하거나 타인의 가축을 약탈하는 데 비하여 그 죄악이 훨씬 큰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전쟁 행위를 불의라 하지 않고 도리어 그
공을 찬양하고 문장으로 후대에 전하고 있다. 이 일이 어찌 큰 모순이
아니겠는가. 노자, 맹자, 묵자 등은 탁월한 식견을 지닌 현인들로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상호간의 공벌약탈의 참화를 고발하고 평화를 역설하였다.
이들이 전쟁을 성토하고 평화를 부르짖는 논조에는 보편적인 인류애에 바탕을
둔 인도주의 정신이 깔려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32.
[도는 영원히 이름이 없다. 박은 비록 작지만 천하의 그 누구도 감히 신하로
부리지 못한다. 만일 임금이 도를 간직 할 수 있다면 천하 만물은 스스로
그에게 물려들 것이며, 하늘과 땅은 서로 사랑하여 단이슬을 내릴 것이며
백성들은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가지런하게 될 것이다.
원목이 갈라지고 다듬어져서 여러 가지 기물이 만들어지듯이 만물은
생성되면서부터 자신의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유한 자로서의 한계성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만족할 줄 알고 그쳐야 할 시점에서는 그쳐야 하는 것이다.
만족과 그침을 알면 결코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도가 천하에 머물러 있는 것은
비유하면 시냇물과 골짜기의 물이 강과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도상무명박수소 천하막능신지 후왕약능보지 만물장일보 천지상합지강감로
민초지명이명균시제유명 명역기유 실역장지지 지지소이불태 벽도지재천하
유천속지어강해>
주
도상무명: 도는 인간의 감각 작용에 포착되지 않는 초월적 존재이다.
그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에 어떤 구체적인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라는 명칭도 편의상 임시방편적인 것에 불가하다. 그러므로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고 기술한 것이다.
감로: 단 이슬, 현명한 천자가 선정을 베풀어 태평성대를 이루면 하늘이
감명을 받아 상서로운 징조로 단 이슬을 내린다고 함.
자균: 저절로 가지런하게 된다. 모든 일이 질서와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음.
지지소이불태: 만족하여 그칠 줄 알면 결코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과도한 욕망은 화를 불러들인다는 것이 노자 생활 철학의 일관된 생각이다.
지지가이불태로 된 판본도 있다.
해
도는 형상이 없으니 볼 수가 없다. 그것은 또한 소리가 없으니 들을 수가
없고 형체가 없으니 잡을 수도 없다. 그러한 도를 우리는 딱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 기관의 지각을 거부하고
있는 그것은 만물의 배후에 스며 있는 형이상학적 실체이다.
그것을 없다고 말한다면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만물은 도에
의하여 생성되고 유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할 수 없는 세계와
감각할 수 있는 세계는 근원적으로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도는 산에서 갓베어낸 통나무와 같이 인위적인 요소가 없는 순수하며 소박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적은 존재로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것을 지배하거나 예속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임금이 도를 체득하여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베풀 수 있다면 천하의
만백성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다투어 모여들 것이다.
천지, 음양은 서로 화합하고 친화하여 단이슬을 내릴 것이며 만백성은 위에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다스려 질 것이다. 원목이 잘라지고 다듬어지면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그릇이 만들어진다.
도에 의하여 생성된 만물도 자신의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유한성에
대한 지각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한계성, 유한성에 대한 깨우침은
만족과 그침을 알게 해준다. 만족과 그침을 모르는 인생은 스스로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도가 천하에 머물러 있는 것은 강과 바다의 시냇물과
계곡 물의 관계와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냇물과 계곡 물은 저절로 강과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다.
무위자연의 정치에는 천하 만민이 스스로 몰려와 제도 행정을 마련하지 않아도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33.
[남을 아는 사람은 슬기롭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더욱 현명하다.
타인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지만,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강한 사람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넉넉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는 뜻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은 사람은 오래갈 수 있고,
죽을힘을 다하여 생명의 길을 찾는 노고를 사양치 않는 이는 장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인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공 자승자강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부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주
강행: 끊임없이 힘써 노력하는 것. 주역의 건괘의 상전에도 '하늘의 운행은
건실하고 적극적이어서 한순간의 휴식도 없다. 군자는 이 괘상을 본받아 마음을
놓지 않도록 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동일한 발상인
것이다.
사이불망자수: 죽을힘을 다하여 생명의 길을 찾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 이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도와 하나가 될 때
그 정신적 합일을 이상으로 하고 있는 노자이므로 이와 같은 발상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해
남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남을 이긴다는 것은 유능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즉 자신의 지나친 욕망,
나태해지는 마음, 비겁함 등의 인간적 약점이란 타고난 성격이므로
그것을 극복하기란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논어에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라고 했고, '산중의 적은
물리치기 쉽지만 마음속의 적은 물리치기 어렵다'는 왕양명의 말도 자기 극복의
어려움을 강조한 말이다. 즉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리적
반란에 의해 남을 공격을 받기 전에 이미 패배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넉넉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자기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면 그의
마음은 언제나 결핍으로 가난을 느낄 것이다. 절대 빈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만족감이란 정신적 요소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를 체득하여 욕망의 겉치레에 끌려들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은 언제나
만족과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근면 역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역경에도 '군자는 스스로 노력하여 쉬임이 없다'고 하며 근면성과 성실성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자기의 분수와 본분을 지켜 자기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를 잃지
않으면 장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과 세계에 대하여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적
비판론에 빠지지 말고 인생을 긍정하며 열심히 살아간다면, 정신적으로는 그런
사람의 삶이 오래 사는 것이 된다. 도의 영위함을 체득하여 도와 하나가 되는
정신적 바탕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장수가 될 것이다.
34.
[위대한 도는 흘러 넘치는 물처럼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어느 곳에나 퍼져
있다. 만물은 그것을 의지하여 살지만, 도는 그들을 거절하지 않는다.
공을 이룩하고도 그 명성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물은 옷처럼 감싸고 길러 내지만 이를 주재라고 하지 않는다. 도는 언제나
욕심이 없으므로 작은 것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그러나 만물이 그에게로
귀의하건만 이를 주재하지 않으니 큰 것이라고 명칭 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는 끝내 스스로 크다고 자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그 큰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지지이생이쟁 공성불명유 의양만물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주 이기종불자위대 고위성기대>
주
범혜: 물이 흘러 넘치는 모양.
우주 만상의 어느 곳에나 골고루 스며 있는 도의 편재 성을 잘 표현한 말임.
장자에도 '도가 어디 있느냐?' 하는 동곽자의 물음에 대하여 장자는 어느
곳이든 없는 곳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막연하니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는 그의 재촉에 대해 장자는 도는 청개구리와
개미에 있다고 하였다.
도가 하등동물에 있다는 장자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는 동곽자에 대하여 도는
와벽(기와, 벽돌)과 뇨닉(오줌)에 있다고 말하여 그를 노엽게 하고 있다.
이것은 도의 편재 성에 대한 우문현답이다.
의양: 옷으로 몸을 감싸고 음식물로 몸을 자라게 하는 것.
의피로 된 파본도 있고 애양으로 기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음.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도의 편재 성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도는 우주 만물의
구석구석 그 어디에나 스며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도의 마음이 비고, 고요하며,
언제나 욕심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작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생성케 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공덕으로
생각하거나 자랑할 줄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를 크다고 칭송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주 만상의 구석구석 어디에나 스며 있는
도의 항존성과 편재 성에 대해 노자의 일원론적 발상은 불가의 우주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나가 모두 되고 모두가 하나 되며, 하나가 일체가 되고 일체가
하나 되며, 한 티끌 가운데 대우주 들어 있고, 대우주 티끌마다 낱낱이 또한
같네. (의상 조사 법성계에서) 독자는 의상 조사의 우주의 본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이 노자의 그것에 상당히 접근되어 있음을 수긍할 것이다.
35.
[대상을 잡는 이가 있다면 천하는 그에게로 돌아갈 곳이다. 그에게로 가면
해롭지 않고 안락하고 태평하다. 감미로운 음악과 맛있는 요리로 사람을
불러모은다면 지나가던 나그네도 발길을 멈추게 된다. 도에서 나오는 말은
담백하여 별다른 맛이 없다. 그것은 보아도 보이지 볼 만한 것이 못되고, 들어도
들을 만한 것이 못된다. 그러나 그것은 무궁무진하므로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다함이 없는 것이다.]
<칩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악여이 과객지도지출구 담호기무미
시지불족견 청지불도이 용지불족기>
주
대상: 도는 형상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볼 수는 없다.
다만 마음의 눈으로 그려볼 수 있다. 그래서 이미지 즉 상이라 표현한 것이다.
상은 상과 뜻이 같음.
안평태: 안락하고 편안하다는 뜻임. '태'는 '대'로 기술된 판본도 있으나 뜻은
같다. 이 경우 '대'는 '태'로 읽어야 한다.
악여이: 음악과 맛있는 요리.
기: 다하다.
해
성인은 도를 체득하여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만백성이 모두 그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하는 안락하고 태평하여 백성들은 다투어 격양가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화려한 선율의 음악이나 미각을 짜릿하게 하는 산해진미는
지나가는 길손의 발길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 쾌락일 뿐
계속해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일수록 빨리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에서 나오는 말은 아무런 자극적 요소가 없다. 그것은 담박하여 맹물과
같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의 눈, 코, 귀, 혀 등의 감각 기관을 자극할 수 있는
개미와 짜릿한 흥분 같은 것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도는 우주 내의 모든 것을 차별 없이 포용하며,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하여는 자기 나름의 생을 구속 없이 누리게 하여 감싸주고 덮어 주는 것이다.
36.
[장차 그것을 오므리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펼쳐 주어야 한다.
장차 그것을 악화시키려면 반드시 우선 그것을 강화시켜야 한다. 장차 그것을
폐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장차 그것을 빼앗으려면
먼저 그에게 주어야 한다. 이것을 드러나지 않은 깊은 지혜라고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이기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장욕흡지 필고장지 장욕약지 필고강지 장욕발지 필고여지 장욕탈지
필고여지 족위미명 유약승강강 어불가탈어연 국지이기 불가이시인>
주
흡: 쭈그리다, 오므리다, 수축하다.
고: 먼저, 잠시, 우선.
장: 벌리다, 펼치다.
미명: 드러나지 않은 슬기, 숨겨진 지혜.
국지이기: 부드러움으로 억센 것을 이겨내는 성인의 심오한 지혜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유익한 기구인 것이다.
해
이 장은 사람을 다루는 처세술의 방책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움츠리는 자벌레는 몸을 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함이요, 그것을 약하게 하고자
하면 그것을 강하게 만들어야 하며 폐지하고자 하면 먼저 흥왕케 해주어야
한다. 빼앗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하여 우선 일보
후퇴할 줄 알아야 한다. 사물의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따르기 마련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고기를 잡고자 하면 우선 그물과 배를 마련해야 한다.
즉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항상 처세에 있어서도 우회적 간접적인 방법이 도리어 목적 달성에 유효한
경우가 많다. 실을 피하고 빈틈을 찔러야 이길 수 있다는 손자의 가르침은
노자서의 이 장과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므로 이 장은 노자 철학의 일반적 성격에 비하여 좀 색다른 데가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 장이 법가 계열의 냉혹한 인간 조종술과 매우 상통하며
특히 한비자의 주도편과 성경을 같이함을 주목하여 후세 전국 말기의 법가
계열의 학자에 의해 덧붙인 문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참고로 한비자 주도편의
문장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말한다.
군주는 자신의 의도를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군주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면 신하는 이에 영합하여 스스로 겉을 꾸미게 되는
것이다. 군주가 자기의 뜻을 드러내면 신하는 장차 스스로 표리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좋아하는 것도 버리고 싫어하는 것도 버리라.
그렇게 하면 신하는 소질 즉 스스로의 타고난 순수한 본바탕을 드러낼 것이다.
기교도 버리고 지혜도 버리라. 그렇게 하면 신하는 스스로 갖추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한비자 사상의 밑바탕에는 노자의 무위 사상이 스며 있고 노자의
형이상학, 생활 철학 위에 법술가적 방책을 가미한 것이 그의 정치철학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37.
[도는 언제나 자연스러울 뿐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
그러나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이 세상의 지배자들이 도를 능히 지킬 수
있다면 천하 만물은 장차 제 스스로 길러지고 번성하게 될 것이다.
길러진 만물이 분수를 모르고 작위 하고자 한다면 나는 장차 이름 없는 박의
순수함으로 그것을 억누를 것이다. 이름 없는 도는 바로 자연 그 자체로서
아무런 욕망도 없게 마련이다. 만물이 욕심을 내지 않은 고요한 상태로 있게
되면 이 세상은 스스로 안정을 이루고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도상무위 무명불위 후왕약능보지 만물장자화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무명지박 실역장무욕 불욕이청>
주
무위 이무불위: 하는 바가 없으나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부정을 통하여 긍정을 이끌어 내는 노자의 역설적 수사법에는 고도의 세련됨이
있다.
화: 길러 냄, 화육.
진지: 억눌러서 안정케 하는 것.
무명지박: 이름 없는 순수한 박, 박(통나무)은 과연 그대로이므로 도를 상징함.
해
도는 스스로 그러할 뿐 작위 함이 없다.
그러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의 변화를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의 임금이 이 도를 체득하여 무위자연의 이법으로 만백성에
임한다면 이 세상은 저절로 잘 다스려져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만백성이 무위의 다스림에 만족치 못하고 작위와 욕망으로 자기
확장을 꾀한다면 결국은 분쟁과 다툼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대체로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히면 안정을 얻지 못하고 쉽게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겉치레 적이고 외부 지향적인 욕망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원점으로 복귀하여야 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마음의 안정을 얻어 고요히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천하 만민이 이와 같은 상태에 있게 되면 임금의 무작위의 다스림도 효능을
보게 되어 그들의 생업은 저절로 안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다투어 가며 태평가를 부르게 된다.
무위자연의 상편 제 1장에서 37장까지 도경은 끝을 맺게 된다.
그리고 하편 제 38장에서 제 81장까지의 덕경으로 연장된다.
그러나 도경과 덕경은 형식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 면에서는 별다르게
분리할 만한
특징이 없다.
하편
38.
[최상의 덕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는 덕이 있다고 자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덕이 있는 것이다. 수준이 낮은 덕을 지닌 사람은 덕을 잃지
않으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덕이 없는 것이다.
최상의 덕을 지닌 사람은 자연에 맡길 뿐 작위 함이 없다. 수준이 낮은 덕을
지닌 사람은 인위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러므로 작위 함이 있는 것이다.
최상의 의을 지닌 사람은 의로운 정치를 베풀되 이를 인위적으로 행하게 된다.
최상의 예를 지닌 사람은 인위적으로 예에 맞는 정치를 행하려고 애쓴다.
만일 사람들이 예법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팔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겨 예법을
강요한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에 인이 강조되며, 인을 잃은 후에 의가
부각되며, 의를 잃은 후에 예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무릇 예법이 강조되는
것은 인간사회에 충신이 희미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어지럽게 되는
시발점인 것이다. 미래의 일을 미리 내다본다는 것은 지혜로움의 극치이다.
그러나 지혜로움은 어리석음의 발단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장부다운
사람은 두터운 것을 선택하고 얇은 것을 포기하며, 실질적 인을 취하고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것은 버리는 것이다. 작위적인 것은 버리고
도다운 것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상덕하덕 족이유덕 하덕불신덕 족이무덕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이지
이유이위 상인위지이무이위 상례위지이막대응 칙양벽이잉지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실례자 충신지전 이난지수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족이장부처기후 불거기전처기귀 불거기화 고거피취차>
주
상덕: 최상의 덕.
하덕: 최하급의 덕.
상인: 최상의 어진 일, 최상급의 인정.
상의: 최상의 의를 최고 가치로 삼고 행하는 정치.
상례: 최상의 예법을 방책으로 하여 행하는 다스림.
잉지: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 남에게 자신의 의사를 강요하는 것.
전식: 장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것, 선식과 동일함.
화: 겉으로는 화려하고 번지르르하지만 내용상으로 실속이 없는 것.
거피취자: 겉만 번지르하면서 실속이 없는 예와 지를 버리고, 실속을 갖춘
도와 덕을 취하는 것이다.
해
이 자에서 노자는 실천윤리에 대하여 등급을 매기며 유교적 윤리관에 대하여
비판 의식을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최상급의 덕을 지닌 사람은 자기 자신이 덕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이 없다.
그러므로 사실은 덕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이 정치를 맡게 되면 자연에
맡길 뿐 덕정을 베풀려고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오히려 덕정을 베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수준 이하의 덕을
지닌 사람이 행하는 정치는 덕을 잃지 않으려고 작위 한다.
작위와 집착심을 지닌 정치는 덕을 잃지 않으려고 작위 한다.
작위와 집착심을 지닌 정치는 이미 덕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정치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요리사가 작은 생선을 자주 뒤적거리면 결국 가루가 되어 먹을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되도록 규제를 풀고 간섭을 하지 말며
무위자연의 대도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최상의 어진 마음을 지닌 군주가 행하는 정치는 인정을 베풀도록 인위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업적을 선전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이다.
최고의 의를 목표로 하여 행하는 정치는 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떨쳐 버리지는 못한다.
최고의 예법을 방안으로 힘을 행사하여 강요한다.
인간사회에서 행하여지는 실천윤리에는 등급이 있다.
상덕이 사라진 뒤에야 하덕이 생겼으며, 덕이 상실되고 인이 있게 되었으며,
인이 상실된 후 의가 있게 되었고, 의를 잃어버린 뒤에 예가 고개를 들게
되었다. 천하 만민의 마음속에 층신이 퇴색되면서 예가 강조되었고, 이것은 결국
천하가 편안치 않게 된다는 징조인 것이다. 미래의 일을 미리 내다보는 것을
선견지명이라 한다. 이와 같은 슬기로움도 긴 안목으로 보면 어리석음의 발단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참다운 대장부는 사물의 진면목을 지닌 도에
의지하며 겉만 버지르르한 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노자의 윤리적 가치관은 유가의 그것과 대척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유가의
고정관념에 파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39.
[옛날에 오직 하나인 도를 얻은 것들로서, 하늘은 도를 얻어서 맑고, 땅은
도를 얻어서 안정되고, 신은 도를 얻어서 영험스럽고, 골짜기는 도를 얻어서
가득 차며, 만물은 도를 얻어서 생장하고, 임금은 도를 얻어서 세상을 바르게
다스린다. 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오직 하나인 도이다.
하늘을 맑게 해주는 도가 없으면 땅은 장차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신을 영험스럽게 해주는 도가 없으면 신의 영험스러움은 그치게 되고 말
것이다. 골짜기를 가득 채워 주는 도가 없으면 골짜기는 장차 마를 것이다.
만물을 생성케 하는 도가 없으면 만물은 장차 절멸하고 말 것이다.
임금을 바르게 다스리도록 해주는 도가 없으면 그는 장차 몰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하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임금은 자신을 고니, 과니, 불곡이니 하며 낮추어 말한다.
이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최고의 영예는 찬양 받지 않는 것이다.
성인은 사물을 구슬처럼 귀하게 돌처럼 천하게도 보고자 하지 않는다.]
<석지득일자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년 신득일이명 곡득일이흡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기정지일야 천무이청 위공열 지무이녕 장공발 신무이년
장공음 곡무이반 장공혼 만물무이생 장공궐 후왕무이위정 장공별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족이후왕자위고과불곡 비비이천위본야 비호 고지거무거
불욕녹록여옥 낙락여석>
주
하나: 하나는 도를 가리킨 말임.
도는 천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근원이며 그것과 필적하게나 비교될 대상이
없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절대성과 항존성을 지닌 형이상학적 실체이다.
도는 짝없이 독립해 있는 영구 불멸의 존재이기도 하다.
노자의 우주론은 도에 대한 일원론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의 세계관은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브레이크의 그것과 비교해 봄직하다.
'하나는 전부요, 전부는 하나이다.'(One is all, Allis one)
영: 영험한 것, 신성스러운 것.
정: 정과 뜻이 같으며 바르게 하는 것임.
고: 옛날 군주들의 일인칭임,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하는 말임.
외롭다는 말로 작은 나라의 임금을 뜻함.
과: 군주가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일인칭임, 덕이 부족한 사람이란 뜻임.
불곡: 군주의 일인칭임, 덜 익은 곡식처럼 인격적으로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는 뜻임.
녹록: 옥돌의 아름다운 모양을 형용한 말임, 녹록으로 기술한 파본도 있음.
낙락: 돌이 굴러 흩어진 모양, 낙락으로도 표기함.
해
노자의 철학 체계는 도일원론으로 일관되어 잇다.
도는 천지 만물의 시원이며 그것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인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므로 언제나 변함이 없으며(항존성), 어디에나
있다(편존성). 도는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법칙이기도 하다.
태양과 지구의 운행, 동식물의 생장, 춘하추동의 교체, 신의 영험스러움은 다
도의 이법에서 나온 것이다.
만일 도의 이법이 없다면 태양과 지구가 제위치를 지키는 것도, 동식물이 나고
자라는 것도, 봄과 여름의 바뀜도, 신의 영험스러움도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만백성의 으뜸인 임금은 도의 이법을 다스림의 근본으로 해야 한다.
임금의 도의 이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이밈 그의 몰락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귀한 것도 알고 보면 천한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해야만 능히 그 높이를 이룰 수 있다.
진실로 높은 것, 존귀한 것은 언제나 교만을 모르고 스스로를 낮추어 아래에
처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군주가 자신을 지칭하는 '나'라는 뜻의 말을 고니,
과인이니, 불곡이니 하는 표현으로 일컫는 것은 존귀함을 비천함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군주의 존귀한 지위도 아래에 미천한 만백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에도 '백성이 귀하고, 사직(요즘 말로 국가
안보)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벼운 것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실체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이 도의 눈에 보이지 않은 작용으로 존재하고 있다.
역경에는 역도가 있다. '천지화육의 일을 포괄하여 다스려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모든 만물 하나 하나를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성취시키면서도 어느
하나 빠뜨리는 것이 없으며, 교체 순환하는 밤낮의 법칙에 있어서도 두루
통하여 안다'. 독자들은 역경 속에 표현된 성인의 역도와 노자서의 무위자연의
도와는 정신적으로 밑바탕 위에 있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0.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며, 부드럽고 약하다는 것이 도의
작용이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주
반: 반은 반을 뜻하며 근본으로 돌아가다의 의미임.
약: 부드럽고 약한 것.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제압한다고 강조하고 있음.
유: 천지, 우주의 삼라만상을 말함.
현상계이므로 인간의 감각 기관에 의한 포착이 가능함.
무: 도를 지칭한 말임, 형체도 빛깔도 소리도 없는 존재이므로 인간의 감각
기관에 의한 포착이 불가능함. 우주 만물의 배후에서 우주 만물을 길러 내는
신비한 존재임. 본체계이므로 인간의 직관에 의하여 간취됨.
해
도는 우주의 삼라만상에 골 구로 스며 있고 가지 않는 곳이 없으나 언제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도의 작용은 무리가 없고 위력적인 힘도 구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폭풍우, 회오리바람,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도 무리한 것은 오래되지 못한다.
사람도 무리한 짓을 하면 자신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되는
것이다. 물은 부드럽고 수동적이나 강하고 억센 것을 능히 제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의 작용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다 유에서 나온다. 이유는 무의 작용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현상 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무는 곧 도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그것은 형상이 없으므로 우리의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될 수 없다.
또한 논리적 사고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도는 물자체이므로 오직 천재적 직관에 의해 간취할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만물생성론의 순서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 도, 무, 유, 우주 만물 순이다.
41.
어난 선비가 도를 들으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실천하고, 중간 정도의 선비가
들으면 그것을 반신반의하고, 낮은 수준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그것을 크게
비웃는다. 낮은 수준의 선비가 비웃지 않는 도라면 도라고 할 만한 것이 못될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전해 오는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참으로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뒤에서 물러서는 것
같고, 평탄한 길은 울퉁불퉁한 것 같고, 최상의 덕은 텅빈 골짜기 같고, 아주 흰
것은 오히려 검은 것 같이 보이고, 아주 확고부동한 덕은 도리어 불안정하게
보이고, 절박하고 순수한 것은 변덕한 것 같이 보인다.
아주 큰 방향은 모서리가 없고, 큰그릇은 이루어지는 것이 늦으며, 다시없이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 도는 숨어 있으며 이름이 없다.
무릇 도는 이 세상 만물에게 은혜를 골고루 베풀어주고 또 잘 길러 가꾸어 주는
것이다.]
<상사이도 근이행지 중사이도 약존약망 하사이도 대소지 불소부족이위도
고건인유지 명도약미 진도약퇴 이도약퇴 상덕약곡 대왈약욕 광덕약부족
건덕약투 질진약투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회성 대상무형 도은무명 실유도
선대조성>
주
약존약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뜻임.
반쯤은 믿고 반쯤은 의심하는 태도를 말함.
대소지: 범속한 사람들이 인식을 부족으로 도를 크게 비웃는다는 뜻임.
건언: 입언, 법언, 격언.
이도약뢰: 이는 평탄하다는 뜻임, 뢰는 엉킨 실뭉치를 말함.
평탄한 길을 오히려 울퉁불퉁한 길로 보인다는 뜻임.
욕: 욕(때묻을 욕)과 의미가 통하므로 새까맣게 때가 묻어 있다는 뜻임.
건덕약투: 건덕은 확고부동한 덕을 말하며, 투는 도둑질하다 훔치다
구차스럽다의 뜻임.
확고부동하게 세워진 덕은 외관상으로는 불안정하게 보인다는 뜻임.
투: 변하는 것.
대음회성: 참으로 큰 소리는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이다, 도의 초월성을
뜻함.
대상: 큰 형상 즉 도를 지칭한 말임.
선대: 천하 만물에게 은혜를 골 구로 베풀어준다는 뜻임.
해
도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본질을 밝히고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탁월한 선비는 도를 들으면 곧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게으르지 않다.
평범한 보통 수준의 선비는 그것을 들으면 완전히 깨닫지 못하므로
반신반의한다. 속되고 어리석은 하급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괴탄한 소리로 알고
크게 비웃는다. 도는 만물의 이법이다.
백성들은 날마다 이 도에 따라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것의 존재함이나 고마움을
잊고 있는 있는 것과 같다.
도는 만물의 배후에 숨어 있으므로 있어도 없는 것 같고 그 이름조차 없다.
다만 크나큰 힘으로 천하 만물을 길러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 장 또한 역경의 계사 전과 그 정신적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품성이 어진 자는 이것을 보고 인이라 하고, 품성이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보고
지혜라고 하며 지자가 아닌 일반 백성들은 이것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를 체득한 이는 드믄 것이다.
천지의 도는 인으로 그 작용을 나타내며 자연의 변화를 통하여 은밀하게 만물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성인이 중생을 인위적, 의식적으로 지도하는 것과 같은
일을 도는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성대한 덕이고 위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천지
만물을 총괄하고 포섭하는 일 이것이 대업이며, 끊임없이 작용하여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 이것이 성대한 적이라 한다.'
노자서와 주역은 같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동복 형제이다.
그러므로 노자서의 이해에 역경 연구가 크게 도움이 됨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42.
[도는 한 기운을 낳고 한 기운은 음과 양 두 기운을 낳으며, 이 두 기운은
서로 화합하여 세 번째 기운인 충화를 낳으며, 이 충화의 기운에서 만물이
나온다. 만물은 음기를 업고 양기를 안고 있으며 충화로서 조화를 이루어
자라나고 번성한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으로 고(외롭다)니,
과(부족하다)니, 불곡(모자라다, 미숙하다, 못난이)이니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 군주들은 이런 말을 자신들의 호칭으로 쓰고 있다.
그러므로 사물은 손해를 보는 것이 도리어 이익이 되는 수가 있고, 그 이익이
되는 것에 도리어 손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이 가르치는 것을 나 또한
가르치려고 한다. 억세고 사나운 사람은 온당하게 죽을 수 없다.
나도 이 말을 나의 가르침의 좌우명으로 삼으려고 한다.]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인지소악
유고과불곡 이왕공이청 고물혹손지이익 혹익지이손 인지소교아역교지
강량자무득기가 오장이위교부>
주
일: 하나 즉 도를 지칭한 것임, 노자의 도일원론은 열자의 혼륜, 장자의 태일,
주역의 태극과 형이상학적 발상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음기와 양기.
삼: 음기와 양기, 그리고 이 두 기운의 화합에 의하여 발생한 충화의 기운을
말함.
강량자: 성질이 억세고 사나운 자, 강은 강포한 것.
부득기사: 온당하게 죽을 수 없다는 뜻,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불행한 죽음을
당한다는 뜻.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도에 의하여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도는 만물의 원리로서 하나의 기운을 낳고 이 하나의 기운은 음과 양의 두
기운으로 분화되며, 이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친화하고 화합하여 충화의 새로운
기운을 낳게 되는 것이다.
천하 만물은 음양의 두 기운과 충화의 기운으로 생성되고 화육되며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도가 만물을 생성케하는 현상은 유출이지
창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유일신에 의한 천지창조 설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노자의 조에 의한 만물생성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경의 계사 전과 열자의
천서 편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같다.
주역 계사 전상에 기록되어 있는 태극에 의한 만물생성론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역의 원리로서 만물의 근원인 태극이 있고, 이것이 양의(음양)를
낳고, 양의는 사상(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낳고, 사상은 팔괘(건, 곤, 이, 감,
진, 손, 간, 태)를 낳는다.
이 팔괘는 길사와 흉사를 정하고, 이 길사와 흉사는 성패를 좌우하는 큰 사업을
낳는다.' 열자의 천서 편에 기술되어 있는 그의 본체론은 다음과 같다.
'기, 형, 질이 갖추어져 있으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혼륜이라 하며 이
혼륜은 보려고 하여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고 하여도 들리지 않고, 쫓아가도
붙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역이라고도 한다. 역은 형체가 없다.
역이 변화하여 하나가 되고, 하나가 변하여 일곱이 되고, 일곱이 다시 변하여
아홉이 되고, 아홉이 변화하여 극점에 이른다. 이것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하나가 된다. 하나는 형이 변화하는 실마리이다.'
독자들은 노자와 주역과 열자의 만물생존론에서 공통된 요소룰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물의 생성은 음양의 화합과 충화의 기운으로 이루어지며 대립과
투쟁은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도의 이법을 올바르게 깨달은 이는 자신의 몸가짐을 온화하고 겸손하게
가지며 친화와 화합으로 시종일관한다.
그러므로 만 인중 지존의 위치에 있는 임금은 자신의 호칭으로 고니, 과인이니,
불곡이니 하며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겸손함과 온후함은 남과 더불어 화락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손실이 이익이 되고 이익이 도리어 손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연의 섭리란 흘러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빈 것은 채워 주며
강한 자는 억제하고 약한 자는 부축해 준다.
자연의 섭리에는 조화와 균형이 있다. 천도(자연의 섭리)는 인생의 위대한
스승인 것이다. 사람들은 약한 것보다는 강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부드러운
것보다는 억센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한 것에서 도리어 강함을
보아야 하며 부드러운 것은 능히 억센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억세고 사나운 사람은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 나는 이 말을 나의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고자 한다.
43.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바위를 향하여
달려간다. 형체가 없는 공기는 빈틈이 없는 곳에도 무난히 스며든다.
말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에 필적할 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드문 것이다.]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 무유입무간 오족이지무위지유익 불신지교
무위지익 천하희급지>
주
지유: 지극히 부드러운 것, 물을 지칭한 것임.
치빙: 말을 타고 달려간다, 돌진한다.
지견: 아주 단단한 물건, 바위를 뜻함.
무유: 비고 없는 것, 기를 뜻함.
왕필, 오증설 참조.
무간: 간은 빈틈을 말함, 무간은 빈틈이 없는 곳을 뜻함.
무유입무간은 형태가 없는 공기는 빈틈이 없는 곳에도 어려움 없이 스며든다는
뜻임.
해
이 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약한 물이 지극히 단단하고 굳센 바위를
마멸시키며, 형체 없는 공기가 빈틈없는 곳에도 별 어려움 없이 스며들 수
있음을 예증하고 있다. 그리고 무위가 인위적인 것보다 유익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44.
[명예와 생명은 어느 쪽이 더 절실한가? 생명과 재물은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이런 것을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사람을 병들게
하는가? 그러므로 재물을 지나치게 아까워하면 반드시 많이 쓰게 되고, 재물을
지나치게 많이 쌓아 두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고 그칠 수 있을 것이다.]
<명흥신곽친 신흥화곽다 독흥망막곽병 족고심애필대불 다장필후망 지족지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주
명: 명성, 명예.
친: 사랑하다, 친밀하다, 친애하다, 절실하다.
다: 소중함, 가치 있음.
병: 근심, 걱정, 번민, 번뇌.
애: 아끼다, 사랑하다, 집착하다.
후망: 잃는 것이 많다는 뜻.
욕: 모욕, 굴욕, 치욕.
영의 반대어.
장구: 오랫동안 지속함, 즉 편안함을 오랫동안 누린다는 뜻임.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세상 사람들이 명예와 재물에 현혹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을 경계하고 있다.
그것에 현혹되고 집착하다가 끝내는 패가망신한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들 수
있는 것이다.
명예와 재물보다는 자신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만족감, 행복감이란 어떤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자이면서도 가난에 대한 공포와 결핍 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가난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봉사와 만족감으로 살아가는 여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권세욕, 명예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의 자세에 따른 문제일 뿐이다.
명예나 재물에 대하여 적당한 한계에서 만족하여 그칠 줄 알면 치욕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만족할 줄 아는 만족은 언제나 넉넉한 것이다.
45.
[가장 잘 이루어진 것은 오히려 모자란 듯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그
효용은 다함이 없다. 가장 크게 차 있는 것은 마치 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작용은 그침이 없다. 가장 크고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가장 흠잡을
데 없는 기교는 서투르게 보이고, 가장 유창한 웅변은 더듬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긴다.
맑고 고요함으로써 천하의 바른 것이 되는 것이다.]
<대성약결 기용불폐 대성약충 기용분빈 대직약굴 대공약졸 대변약납 조새
쟁승열 청정위천하정>
주
대: 크다, 위대하다, 무한하다의 뜻임.
인간의 상식적 가치관을 초월하는 본체계를 말함.
노자는 '크다'는 말을 도와 동의어로 쓰고 있음.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이 보인다.
노자는 이 장에서도 특유의 역설적 수사법을 구사화여 도의 진면목을 바로 보지
못하는 상식적 가치판단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역문에서는 대를 '가장 잘'로 표기하고 있음.
졸: 서투른 것, 졸열.
조: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것.
정: 바른 것, 바르고 곧은 것, 정을 우두머리의 뜻으로 풀이하는 이도 많음.
해
위대한 완성은 부족한 듯이 보이고,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탁월한
기교는 서투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도의 세계이다. 도의 세계가 이렇게
인식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과 경험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세계에 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예에 안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추사의 탁월한 작품도 서툰
글씨처럼 보게 마련이고, 미술에 조예가 없는 사람은 칸딘스키의 추상화에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도는 완성되고 충만한 세계이지만 일반의 상식적
안목으로는 부족한 것으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이 장에서도 노자는 그 특유의
역설적 표현을 종횡으로 구사하여 우리의 상식적 가치판단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노자를 읽고 있으면 우리의 상식적 가치관의 허와 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46.
[이 세상에 도가 행하여지면 잘 달리는 말은 농사에 쓰이게 되지만, 이 세상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군마가 도성 밖의 가까운 곳에 우글거리게 된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은 없고 남의 것을 넘보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없다. 그러므로 만족함을 아는 만족은 언제나 넉넉한 것이다.]
<천하유도 각주마이번 천하무도 융마생어교 과막대어부지족 계막대어욕득
고지족지족 상족후>
주
각: 물리치다.
분: 거름을 주다, 평화시에는 말이 농사에 쓰이게 됨을 뜻함.
융마: 전쟁에 쓰이는 말, 군마.
화: 해로움, 재앙, 불행, 복의 반대어.
구: 허물, 재앙, 잘못.
막대: ...보다 더 큰...는 없다, 막심으로 된 판본도 있음.
교: 도성, 읍성의 변두리 지역.
해
옛날 도가 천하에 제대로 행하여 질 때에는 침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날쌔고 빨리 달리는 말도 전쟁에 쓰이지 않으니 농사에 사역되어
민생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천하에 도가 제대로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제후들이 서로 공벌약탈을 일삼아 급기야는 암말까지도 전쟁에 징발되어
진중에서 새끼를 낳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불행한 일은 인간이 제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남의 것을 탐낸다는 사실이다.
특히 백성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임금이 남의 나라 영토와 재물을 넘보고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불행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
군국주의는 남의 나라뿐만이 아니라 제나라 백성에게도 크나큰 재난을 안겨다
준다. 1814년 나폴레옹 군대를 추적하여 파리에 입성한 프러시아의 명장
블뤼히어는 나폴레옹의 화려한 궁전을 보고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궁전을 두고 모스크바를 빼앗으려고 한 나폴레옹은 어리석은
인간이다." 이렇게 인간은 끊임없이 군사적 영광, 권세욕, 물리적 욕망 등에
탐닉하게 된다. 특별히 유능한 인물일수록 더욱 만족함을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상유지에 만족치 못하는 그들의 정력이 그들을 위대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자의 안목으로 보면 이것 역시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그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장에는 노자의 반전 평화주의뿐만이 아니라 그의 독특한 지족사상도
잘 피력되어 있다.
47.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며, 창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이법을 알 수 있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가지 않고도 알 수 있으며, 보지 않고도 이름 지울
수 있으며 작위 하지 않고도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불출호 지천하 불규보 견천도 기출강우너 기지유묘 족이성인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주
유: 들창, 창, 창문.
천도: 하늘의 이법, 자연의 원리.
해
성인은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창틈으로
내다보는 일이 없어도 하늘의 이법을 알 수 있다.
이 세상 만물이 만물로서 그렇게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은 그것의 배후에 스며
있는 자연의 이법 때문이다. 성인은 이 자연의 이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 자연의 이법은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깨우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신비한 직관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가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이름지을 수 있으며, 하지
않고도 모든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원래 지식과 지혜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인간의 관심이 사물의 피상적 겉모습 쪽으로 쏠리면 쏠릴수록 참다운 지혜의
세계와는 담을 쌓게 된다는 것이 노자의 지론이다.
48.
[학문을 하면 나날이 할 일이 늘어가고, 도를 체득하면 나날이 할 일이
줄어든다. 줄고 또 줄어서 하는 일이 없는 경지에 이른다.
하는 일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행하지 않아도 모든 일은 저절로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하를 차지하는 것도 언제나 하는 일이 없는 것으로 한다.
하는 일이 있기에 이르면 이미 천하를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웃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취천하 상이무사
취기유사 부족이취천하>
주
위학일익: 학문을 하면 나날이 할 일이 늘어간다는 뜻임.
세속적인 학문은 파고들면 들수록 의문은 늘어가고 지적 욕구도 강해진다.
의문은 또다른 의문을 낳게 하며 여기에 경쟁 의식, 모르는 것에 대한 고민
등으로 우리의 마음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다.
노자는 세속인 들의 박학과 지적 호기심에 대하여 시종일관 고답적 자세와
냉소주의적 태도로 임하고 있다.
위도일손: 도를 닦으면 나날이 할 일이 줄어든다는 뜻임.
세속적인 학문을 버리고 무지 무욕의 경제에서 오로지 도 하나만을 체득하면
번뇌와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날로 덜어낸다는 것은 도를 체득한다는 말이다.
무사: 무위를 뜻함.
유사: 의도적으로 행위 하는 일이 있는 것.
해
배움이란 지식을 쌓는 일이므로 의문도 늘어나고 경쟁 의식 등으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이에 반하여 도를 닦는 일은 마음을 수양하는 일이므로 지식욕,
소유욕, 경쟁심 등의 겉치레를 하나씩 하나씩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오로지 도 하나만을 체득하여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달관된 경지에 이른 사람을 우리는 자유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무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행하지 않아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는
것이다. 천하를 차지하여 다스리는 일도 작위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
무위자연의 다스림이야말로 천하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첩경인 것이다.
인간을 구속하고 갈등케하는 여러 가지 욕망에서 벗어나 무지, 무욕의 경지에
도달하면 지식이 주는 간교함과 문명사회가 제공하는 관념적 허위 의식에서
벗어나 태고의 순박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시니컬한 이 교설은 예악과 배움을 중시하는 유가의 주장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그의 무위, 청정의 사상은 후세 중국인들이 인도의 불교를
수용하고 해석하는데 크나큰 도움을 주게 된다.
노자의 도덕 경을 최초로 외국어 범어로 번역한 분이 불경 번역을 필생의
업으로 삼았던 당의 현장 법사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9.
[성인에게는 일정 불변한 마음이 없으므로, 천하 만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착한 사람을 나는 착하게 대한다. 착하지 못한 사람도 나는
착하게 대한다. 그렇게 하면 모두 덕과 착함을 갖추게 된다.
믿음성이 있는 사람을 나는 믿음으로 대한다. 믿음성이 없는 사람도 나는
믿음으로 대한다. 그렇게 하면 모두 덕과 믿음성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은 천하에 대하여 자신의 집착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천하의
마음과 혼연일체케 한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의 귀와 눈은 성인에게 쏠린다.]
<성인무삼상심 이백성필위심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백성개주기이목 성인개해지>
주
상심: 고정된 마음, 집념, 일정 불변한 마음, 아집.
덕선, 덕신: 성인은 착한 사람이나 착하지 않은 사람이나 다 선의로 대한다.
그의 무차별한 덕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선하고 믿음성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흡흡: 마음을 비우고 아집을 버린 상태.
이런 상태에서는 천하의 모든 것을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흔기심: 천하 만민과 혼연일체된 마음.
선악에 의한 애증도 친소에 의한 차별도 모두 초월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선의로 대하는 마음을 뜻함.
주기이목: 이 세상 모든 백성들이 성인의 선의와 포용력을 알고 그에게
관심을 쏟는다는 뜻임.
해지: 어린아이로 대우한다.
무지, 무욕의 순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한다는 뜻임[왕필의 주석 참조]
해
성인에게는 고정된 마음이 없다.
아집과 편견과 선입관을 그는 일찌감치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만백성의 마음을 살펴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한다.
성인은 선한 사람도 선하지 못한 사람도 다 선의로 차별 없이 대우한다.
성인은 도를 체득한 사람이다.
도의 초월적인 입장에서 보면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인간의 상대적 가치
판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도는 이와 같은 세속적 가치판단에 대아여
중립이다. 도와 하나가 된 성인이 임금이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릴 때 자신의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이 세상의 만백성의 마음과 혼연일체가 된다.
그는 선인도 불선인도 신의가 있는 사람도 신의가 없는 사람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우한다. 백성들은 자연히 임금의 거동에 관심을 쏟게 된다.
성인은 천하 만백성을 무지 무욕의 상태에 머물러 있게 보살펴 준다.
이렇게 성인은 차별 없이 덕을 만백성에게 골고루 베풀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하늘의 이법이 선한 사람의 밭에도 선하지 못한 사람의 밭에도
골고루 단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하늘의 이법에 사사로운 친소, 후박, 애증이
없듯이 성인의 덕화도 만백성에게 차별 없이 미치는 것이다.
50.
[사는 곳으로 나가고 죽는 곳으로 들어가는 경우에 살 곳으로 가는 사람이 열
중 셋이요, 죽는 곳으로 가는 사람이 열중 셋이 된다. 그리고 삶에 집착하다가
도리어 죽을 곳으로 가는 사람이 또한 열중 셋은 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생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으니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뭍에서는 들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싸움터에서는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들소는 뿔로 찌르지 못하고, 호랑이는 발톱으로 할퀴지
못하며, 무기는 날을 대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는 죽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출생입사 생지도십유삼 사지도십유삼 인지생동지역십유삼 부하고
이기생생지후 개이선섭생자 육행불우시호 입군불피 갑병시무 소투기각
무소석기과 병무소용기도부하고 이기무사지>
주
섭생: 생명을 기르고 유지하는 일, 양생과 같음.
시: 들소.
갑병: 갑옷과 무기, 병은 무기를 뜻함.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사람의 생사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세상 사람중 오래 사는 사람이 열 사람중 세 사람 정도이고 사지로 가는 사람이
열 사람중 세 사람이며, 그리고 자기만은 꼭 살아야겠다고 집착하다가 도리어
죽을 길로 가는 사람이 열 사람중 세 사람은 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너무 삶에 대한 집념이 강하기 때문에 도리어 죽음의
길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도 죽음도 다 하늘이 주신 것이며 명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산 자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므로 이와 같은 순리에 몸을 맡겨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이라는 의연한 자세를 견지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의 정신적으로는
생사를 초월한 것이 된다.
노자는 이 장에서 "섭생을 잘하는 이는... 들소는 뿔로 찌르지 못하고 호랑이는
발톱으로 할퀴지 못하며..." 하고 신비주의적 분위기가 감도는 말을 하고 있다.
그의 이와 같은 발상은 중국의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도교의 신선 사상과 양생
술로 발전하게 된다.
51.
[도가 만물을 낳고 덕은 그것을 기르고, 물체마다 형태를 이루게 하며 힘으로
그것을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만물은 어느 것이나 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덕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은 누가 명령을 해서 시키는 일이 아니건만
언제나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길러 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생장시키고 육성케하며, 안정시키고 돈독하게 하고
키워 주고 감싸준다. 도는 만물을 낳고도 제것으로 하지 않고, 그렇게 하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키워 주면서도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이라고 한다.]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부존 도이귀덕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고도생지 덕축지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복지 생이부도
위이부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주
도생지: '도가 그것을 낳고', 여기서 지는 대명사로 만물을 지칭하고 있음.
축: 기르다, 사육하다.
세: 힘, 형세.
정지독지: 그것을 안정시키고 돈독하게 한다, 정은 정과 같고 독은 독을 뜻함.
정은 형태를 부여하는 것, 독은 바탕을 이루게 하는 것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많음.
양지복지: 길러 주고 감싸주다.
복지는 돌보아 주다, 감싸주다, 비호하다의 뜻임.
현덕: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
현은 검다는 뜻 외에도 아득하다, 맑고 고요하다, 신비하다, 불가사의하다의
의미가 있음.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도와 덕의 존귀함과 겸허함을 칭송하고 있다.
천하 만물의 생성은 다 도 즉 자연의 이법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것의 성숙이 도의 작용인 덕에 의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존귀한 일을 하는 도와 덕은 스스로 존귀하다고 내세우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존귀한 것이다.
도와 덕은 만물을 생성화육하는 데 명령을 내리는 일이 없다.
그것은 간섭이니 통제니 규제니 하는 말을 모른다.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할뿐이다. 도와 덕은 만물을 감싸주고 보호하건만 그것을 제것으로 한다든가,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랑하는 일도 없다.
우리는 이것을 도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52.
[천하에는 시초가 있다. 그것이 천하의 어머니이다. 이미 어머니를 알았으니,
다시 그 아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그 아들을 알고 다시 그 어머니인
도를 지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욕망이 일어나는
구멍을 막고 물욕이 들어오는 문을 닫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수고롭지 않을
것이요, 욕망의 구멍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작은 것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밝은 것이요, 부드럽고 약한 것을 잘 지키는
것이 강한 것이다. 그 겉에 드러나지 않은 빛으로 밝음의 본바탕인 도에
되돌아가게 한다면 자신의 몸에 재난을 초래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을 도의 영원함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기득기모 이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부태
색기태 폐기문 신부근 개기태 제기사 신부구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
주
시: 처음, 시초, 태초, 이것은 도를 가리킨 말임.
모: 어미, 근본, 근원, 이것도 도를 지칭한 말임.
자: 아들, 자식, 도를 모체로 하여 생성된 우주의 삼라만상.
색기태: 태는 구멍을 뜻함, 모든 욕망이 생기는 내부의 구멍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뜻임.
폐기문: 외부에서 들어오는 유혹과 물욕의 문을 닫는다는 뜻임.
근: 노고, 수고로움.
광: 빛, 광선, 여기서는 지혜를 상징한 말임.
복귀기명: 그 밝음의 본바탕인 도에 되돌아 간다는 뜻임.
여기서 밝음은 지혜와 도를 상징하고 있음.
습상: 습은 습과 뜻이 통하며, 습상은 도의 영원함을 배운다는 뜻이다.
해
도는 천하만물의 시초요 어머니이다. 먼저 도를 알면 천하만물의 원리를 아는
것이 된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사물의 지엽적인 것과 피상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며, 도에 어긋나는 무리한 행위를 하여 몸을 망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욕망이 일어나는 자기 내부의 구멍을 막아 버리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물욕과 정욕의 문을 닫아 버린다면 마음의 안정을 얻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수고로움이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을 잘 보는 것을 밝음이라고 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을 지킬 수 있는
것을 강함이라고 한다. 도는 스스로 강한 체하지도 무리한 힘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천하의 그
무엇도 그것을 지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도는 진실로 강한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슬기로움으로 만물의 본바탕인 도에
되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몸에 재앙을 끼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도는 만물의 근원적 지혜요, 영구 불변의 실재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이와 같은
도의 근원적 지혜와 영구 불변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53.
[만약 나에게 조그마한 지혜라도 있어서 위대한 도를 행할 수 있다면,
그때에는 오로지 작위 함이 있을까 두려워 할 것이다. 위대한 도는 매우
평탄한데도 백성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궁궐은 깨끗한데 백성들의 논밭에는
풀이 무성하고, 창고는 비어 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오색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비단 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차며, 맛있는 음식도 싫증을 내며, 재물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으니, 이것은 바로 도둑의 사치이지 도가 아닌 것이다.]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이시외 대도 심이 이민호경 조심제 전무심 창심허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재>
주
개연: 조그마한, 미세한.
시: 인위, 작위를 뜻함.
시를 이의 차자로 보고 바르지 못하다,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는 뜻으로 새겨
사의 동의어로 해석하는 이도 많음.
외: 두려워하다, 떨다, 무서워하다.
이: 평탄하다의 뜻임.
경: 지름길.
조심제: 궁궐은 매우 깨끗한데 단장되어 있다는 뜻임. 조는 궁궐을 뜻하며,
제는 깨끗하게 소제되어 있다는 뜻임.
백성들의 논밭은 풀이 무성하다는 뜻의 전심무와 상대되는 말이므로 지배계급의
이기주의적 사치에 대한 비난임.
도과: 도둑의 사치, 위정자의 가렴주구를 통렬히 비난한 말임.
해
나에게 큰 도를 행할 만한 지혜가 있다면, 작위 함이 있을까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무위자연의 도는 안전하고 편안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사악하고 신속한 지름길만을 가고자 한다. 작위 함은 백성들로 하여금
무위자연의 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것은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서 속임수와
착취로써 백성을 대한다면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백성들의 논밭은 전쟁과 부역으로 풀만이 무성한데 지배계급은 호화로운
궁궐에서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고 고급 요리에도 싫증을 낼 정도의 사치를
부리고 있으니, 이것은 남의 재물을 약탈하여 잘사는 도둑의 소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이 도와는 거리가 먼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노자는 이 장에서 지배계급의 가렴주구에 대하여 통렬히 비난하고 있다.
그는 사회 밑바닥의 서민의 입장에서 당시 사회 지도층의 부정과 부패에 의한
사치와 횡포에 대한 규탄은 맹자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사람을 죽이는데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에 다른 점이 있습니까?"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를 잘못하여 죽이는 것에 다른 점이
있습니까?"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러면 임금의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얼굴에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 가지 고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은 미워하거늘 하물며 나라의 정치가 짐승을
몰아 가지 고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일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어찌 백성의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임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노자와 맹자는 모두 춘추 전국의 난세에 태어나 위정자의 횡포한 정치와
부조리한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철인이었다.
다만 맹자의 경우는 그 치유책으로 인의에 의한 왕도 정치를 주장한 데
반하여, 노자의 경우는 무위 이치를 처방전으로 제시하였음은 두 현인의 세계와
인생을 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54.
[제대로 세운 것은 뽑히는 일이 없고, 제대로 안은 것은 빠지는 일이 없다.
이러한 도를 자손에게 전하여 제대로 잘 지키면 집안이 번창하여 제사가 그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로써 집안을 다스리면 그의 덕은 넉넉할 것이다.
이러한 도로써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은 커질 것이다. 이러한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은 넓게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몸을 미루어서 남의 몸을 살피고, 내 집안 일을 미루어서 남의
집안 일을 살피며, 내 고을 일을 미루어서 남의 고을 일을 살피고, 내 나라 일을
미루어서 남의 나라 일을 살피며, 천하 만백성의 마음을 미루어서 천하의 도를
살핀다. 나는 어떻게 천하가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바로 이와 같은 도의 위대한 공덕에 의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 이제사불철 수지신 기덕내진 수지가 기덕내여
수지향 기덕내장 수지방 기덕내풍 수지천하 기덕내보 고이신관신 이가관과
이향관향 이방관방 이천하관천하 오하이지천하지연재 이차>
주
선포자불탈: 참으로 잘 체득된 도는 빠져나가는 법이 없다. 포는 도를
간직하고 지키는 것을 뜻함.
철: 그치다, 멈추다.
이차: 위에서 말한 도의 위대한 공덕으로 이 세상의 일을 알 수 있다는 뜻임.
해
잘 세운 것은 쉽사리 쓰러지지 않고, 잘 끌어안은 것은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잘 심어지고 체득된 도는 우리를
지탱케 해주는 등불인 것이다.
이와 같은 참된 도에서 나온 참된 덕을 지닌다면 자자손손이 그 음덕으로
번창하여, 오래오래 제사가 이어지는 죽은 후의 경사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자기 몸의 덕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그것을 마음을 닦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몸을 살피고 미루어서 남의 처지를 알게 되면,
천하의 모든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이 장은 대학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와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마을을 헤아려 본다는 혈구 지도를 연상케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장은 후세의
유가의 영향을 받은 이의 논술이 삽입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55.
[덕을 깊이 간직한 사람을 비유한다면 어린아이 같아서 벌이라든가 전갈도
쏘지 못하고 독사도 물지 않으며, 맹수도 할퀴지 못하고 사나운 날짐승도
덮치지 못한다. 어린아이의 뼈는 약하고 근육도 부드럽지만 쥐는 힘이 억세다.
남녀의 교합하는 정을 알지 못하는 데도 생식기는 일어선다. 정기가 몸속에 꽉
찼기 때문이다. 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으니 조화의 극치이다. 조화를 아는
것을 영구 불변이라 하며, 영구 불변의 진리를 아는 것을 밝게 살핀다고 한다.
작위 하여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며, 마음이 기를 거세게
부리는 것을 억세고 사나운 것이라고 한다. 만물은 기세가 너무 왕성하면 곧
쇠퇴하게 된다. 그런 것은 도가 아니며 도 아닌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험덕지후 비어적자 봉채훼사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 골약근유이약고
미지빈모지합이최작 정지지야 종일호이불애 화지지아 지화왈상 지상왈명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물장즉로 시위부도 부도조이>
주
함: 머금다, 지니다, 간직하다.
적자: 어린아이.
봉채: 벌과 전갈.
훼사: 이무기와 뱀.
석: 벌레가 쏘는 것.
확조: 독수리, 매 등의 사나운 새. 확은 후리치다, 움켜쥐다의 뜻임.
박: 후리치다 , 잡다, 두드리다.
전작: 전은 최 즉 어린아이의 생식기를 뜻하며 작은 일어난다의 뜻임.
애: 목이 쉬다.
화: 음양의 조화.
상: 상은 일반적으로 좋은 징조의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나쁜 징조 또는
불길한 징조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음. 본문에서는 불길한 징조를 뜻함.
강: 억세고 사나운 것, 자연의 순리에 따르지 않는 인위적인 집착이나 폭력을
뜻함.
물장즉로: 만물은 기세가 왕성하게 되면 곧 쇠퇴하게 된다는 뜻임.
주역의 건괘상전에도 '절정에 도달한 용이다, 후회함이 있으리라, 가득 찬 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구양수는 추성부에
'만물은 절정기를 지나게 되면 마땅히 죽게 되는 것이다.'고 표현하고 있다.
모두 똑같은 발상인 것이다.
해
노자는 이 장에서 어린아이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도와 덕에 비유하여
칭송하고 있다. 그는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그런 것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자기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어린이는 욕심이 없다.
부드럽고 약하지만 싱싱한 생명력이 용솟음치고 있다. 남녀의 교합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 생식기는 일어서고 있다. 온종일 울부짖어도 목이 쉬는 일이
없다. 그것은 생명의 정기가 몸속에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조화의 극치이다. 이와 같은 조화를 아는 것을 영구 불변의 법칙이라 한다.
그리고 영구 불변의 법칙을 아는 것을 밝게 살핀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무지 무욕을 본받지 못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부질없는 일일뿐
더러 불길한 징조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음의 기를 부려 거칠고 억세게
행동하는 것도 무위자연의 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름지기 어린아이의 무지 무욕과 순진 무구함으로 돌아가
조화로운 도와 하나 될 때 참다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지성 무욕을 도와 덕의 진수로 보는 노자의 독특한 발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워즈워드의 시세계와 공감을 나누고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여라. 바라기는 내 생명의 나날들이여. 타고난
자비로서 맺어지거라."
56.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유혹의 문을 닫으며,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며 분규를 해소시키고 그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신비한 조화와의 하나
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도의 신비한 조화와 하나가 된 사람은 남들이
친근하게 할 수도 없으며, 소원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지자불언 언자부지색기태 폐기문 죄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블가이득리 불가이득해 불가득이귀 불가이득천
고위천하귀>
주
화기광 동기진: 그 빛을 부드럽게 하여 그 티끌과 함께 한다.
여기서 빛은 앎에 의한 지혜와 분별을 뜻하며, 티끌은 세속 내지는 세속임을
의미한다. 도를 체득한 이는 자신이 자부심을 버리고 세속 인과 분규를 풀어
없애고 지혜를 내세우지 않으며 세속 인과 원만하게 어울릴 줄 안다.
만물은 언제나 동일한 차원에서 보는 그는 차별, 배척, 제거 등의 개념을 알고
있지 않다. 그는 세속에 살고 있으면서 세속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맑고 깨끗한 본 바탕은 오염되거나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동: 도의 신비한 작용. 도의 오묘한 조화. 도의 신비한 조화와의 합일.
해
아는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원래 도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에 관하여 말한다.
도를 아는 사람은 욕망을 일으키는 자신의 내부를 단속하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욕의 문도 닫아 버린다. 그는 자신의 지혜로움을 내세우지 않고 분규를 풀고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려 분쟁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없애 버린다.
도와 하나가 된 사람은 자신의 탁월한 지혜를 감추고 세속 인과 원만히
어울리며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한다. 세속과 함께 하건만 세속에 물들지 않고
그것을 초월할 수 있다. 도를 체득한 이는 날카로움과 둔함, 밝은 것과 어두운
것, 강함과 약함, 억셈과 부드러움 등의 극단적인 것을 잘 조화시켜 언제나
신비한 작용으로 동일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남들은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으며, 이익을 줄 수도 없고 해악을
끼칠 수도 없으며 존귀하게도 비천하게도 할 수 없다.
그는 이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초월한 진정한 자유인인 것이다.
그를 얽매이게 하거나 구애받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이 장에 나오는 도와의 신비한 합일이라는 말은 노자 철학의 초월적,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잘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뒷날 남북조 시대의 도교
사상의 핵심적 개념이 된다. 노자의 철학은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여 무지
무욕의 경지에서 오로지 도 즉 자연과의 합일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서양 철학이 이성과 논리를 내세우며 자연을 해부하고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객관적 지식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자의 이와 같은 초월적 신비주의는 뒷날 도교의 신선사상등으로 발전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57.
[나라는 바른 도로 다스리고, 전쟁은 임기응변의 기계로 해야 하지만, 천하는
일없는 것으로 차지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아는가.
바로 다음에 열거하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하지 말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들이 날카로운 무기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라는 더욱더 어지러워진다. 사람들이 기교가 많으면 많을수록
물건이 더 많이 나온다. 법령이 반포되면 반포될수록 도둑은 더욱더 늘어만
간다. 그러므로 성인은 말한다. 내가 행하는 일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감화되고, 내가 고요히 있는 것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며,
내가 꾀하는 일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넉넉해질 것이며, 내가
바라는 것이 없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질박해질 것이다.]
< 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오하이지기연재 이차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빈다이기 국가자혼 인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창 도적다유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
주
정: 바른 것, 바르게 하는 것.
기: 기이한 꾀, 속임수, 임기응변의 책략.
기휘: 꺼려서 피하는 일, 금기.
이기: 날카로운 무기.
기교: 교묘한 솜씨, 기교와 같음.
기물: 교묘한 솜씨로 만든 물건.
정: 고요하게 있으면서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
노자는 대도를 고요하게 마음을 비우고 작위 함이 없는 것으로 보고 그것에서
유출된 인생도 정허무위, 정허무욕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자의 본체관과 그것에서 연역된 그의 윤리관은 정지적인 것을 특성을 하고
있다. 정허를 강조하는 그의 철학은 후세의 송대의 철학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송대 성리학의 발단을 연 태극도 설에는 '성인은 만사를 정율하기 위하여
중정인의로써 천하 만민을 가르치는 데 고요함으로써 으뜸을 삼는다.
요함으로 오성의 감동이 없고, 타고난 오성이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갖추어져
있으므로 이것을 인극이라고 한다.
성인은 이 인극에 선다.'고 하며 정을 근본으로 하는 윤리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주희 주정 금욕 사상도 노자의 정허무욕설에 근거를 두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박: 순박, 소박, 질박.
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청정무위로 해야 하며, 전쟁에서는 임기응변의
책략으로써 해야 한다. 천하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위무사로써 임해야 할
것이다. 위정자가 무엇을 해보겠다고 나서면 자연히 백성의 생활은 위축되고
가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집집마다 예리한 무기를
많이 비축하면 할수록 나라는 점점더 혼란에 빠진다.
성들의 기교가 발달되어 교묘한 솜씨로 만든 물건이 생겨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그리고 나라의 법령이 정비될수록 백성의 간지도 늘게 되어 지능적인 범죄는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 말을 강조한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없으면, 백성은 저절로 바르게 되며, 내가
무사 무위하게 처신하면 백성의 살림은 저절로 넉넉해 지는 것이다.
내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들도 그것을 본받아 저절로 순박해진다. ' 노자의 이와
같은 냉소주의적 발언에는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한 정치에 대한 고발이 깔려
있다.
위정자들은 고통이나 참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적 공명심과
탐욕에서 전쟁이나 거창한 사업 등을 떠벌리기를 좋아하였다.
백성들은 자연히 과중한 군사 복무와 세금과 부역 등으로 신음하게 되었다.
노자는 이 점이 안타까왔을 것이다.
그는 위정자에 대하여 제발 욕심 좀 버리고 백성을 이대로 내버려두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무사 무위가 최상의 정책임을 역설하는 그의 논조에는
시대의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모든 사상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노자의 정치철학도 그 시대의 현실적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58.
[그 다스림이 무엇을 한다고 내세우는 일이 없이 혼후하기만 하면 백성들은
순박해지고, 그 다스림이 잘고 까다로우면 백성들은 항상 욕구불만에 빠지게
된다. 화 곁에는 복이 기대어 섰고, 복 속에는 화가 숨어 있다.
아무도 그 종국을 알지 못한다. 그 종국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올바르다는 것이
다시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변하고, 착하고 훌륭하다고 하던 것이 다시 악하고
요사스러운 것으로 변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하여 헤매이며
어리둥절하게 된 것은 진실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이 방정하다고 해서 남도 그러기를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청렴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남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곧다고 해서
그것으로 남 앞에 멋대로 나서지는 않는다. 진리의 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함부로 비추려 하지는 않는다.]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화혜복소의 복혜화소복 숙지기극
기무정사 정부위기 선부위요 인지미 기일고구의 시이성인 방이불할
염이불귀직이불사 광이불요>
주
민민: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 없는 어둡고 총명하지 않는 상태, 혼후한
분위기.
순순: 순후함.
찰찰: 잘고 까다롭게 살피는 것.
결결: 한쪽이 떨어져 나간 것, 이지러진 모양, 욕구불만에 빠진 상태.
방: 방정, 방형, 네모 반듯한 것.
귀: 해치다, 상처를 입히다.
사: 방자한 것, 제멋대로 설치고 나서는 것.
요: 번쩍번쩍 빛나는 것, 광채가 나는 것.
해
그 정치가 무엇을 하겠다고 내세우는 바가 없이 흐릿하고 또 총명함이
없다면, 백성들도 경쟁 의식을 모르고 순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치가 모든 것을 분명하게 살피고 잘고 까다롭게 군다면, 백성들도
약삭빠르게 되어 경쟁 의식에 의한 욕구불만도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무사 무위의 정치가 최상의 정치인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순탄한 경우도 있고, 또 역경 속에서 악전고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화와 복은 돌고 도는 순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 결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선이니 악이니, 바르다, 바르지 못하다 하는 것은 모두 상대적인
가치판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의 선이 오늘은 악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올바름이 내일에는 부정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며 헤매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의 방형 모서리로 남을 해치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청렴결백으로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자신의 빛나는 지혜를 함부로 과시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 장에서는 노자는 그 특유의 냉소주의적이며 역설적인
표현을 구사하여 무사 무위 정치의 우울성을 강조하고 있다.
노자는 사물을 분석하고 해부하는 논리적 사고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도에서 나와서 도에 돌아가는 것으로 보는 하나로서의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너무 살피고 따지고 하는 일보다는 도와
일체감을 갖고 무위 무욕의 경지에서 저절로 다스려지도록 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변함없는 지론이다.
59.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일에는 농부처럼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농부는 자연의 섭리를 알고 그것에 일찍 복종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연의 섭리에 일찍 복종하는 것은 덕을 계속해서 쌓아 나가는 일이 된다.
덕을 계속해서 쌓아 나가면, 이기지 못할 일이 없다. 이기지 못할 일이 없으면,
그 도는 무궁무진한 것이 된다. 도가 무궁무진하게 되면,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 나라의 근본을 차지하면, 그 나라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뿌리가 깊고 튼튼한 것은 오랫동안 살아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위조복 조복위지중적덕 중적덕 즉무불극
조지기극 가이유국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
주
색: 농부, 인색, 검소 등으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음.
조복: 일찍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그것에 '복종'한다는 뜻임.
모: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근본 즉 도를 지칭한 것임.
장생구시: 생명을 오래 오래 유지하는 것을 말함.
적덕: 덕을 계속 쌓는 것. 덕을 계속 쌓아 나가면, 이기지 못할 일이 없다.
주역 곤괘의 문언 전에는 착한 일을 거듭 쌓아 가는 집안에는 반드시 자손 대에
이르기까지 경사가 있게 되고, 악한 일을 계속 쌓아 가는 집안에는 반드시 자손
대에 이르기까지 재앙이 내리게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표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의미상으로는 거의 같은 말인 것이다.
해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일에 농사짓는 일처럼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농부는 자연의 섭리에 일찍이 순종하며, 그것에 의하여 농업을
영위할 뿐이다. 때에 맞추어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며 결실기에는 거두어들인다.
이 모든 일은 햇빛과 토양과 강우량과 온도 등 자연의 혜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농부는 열심히 땀흘려 일하나 그 성패의 결과는 자연의 섭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그는 분수에 넘치는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일찌감치 자연의 이법에 복종하며 그것을 공경할 줄 아는 그는
그와 같은 경건한 자세를 통하여 남모르게 덕을 쌓아 나가는 것이다.
덕을 쌓아 나가는 사람에게는 경쟁자나 적대자가 있을 수 없다.
도와 덕을 지닌 이에게 천하 만민은 즐겨 복종하게 된다.
그는 나라를 가질 수도 있다. 뿌리깊은 나무가 쉽사리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위자연의 도로 나라의 근본을 삼으면, 그 나라는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는 것이다.
60.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삶는 일과 같다. 무위자연의
도로써 이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자신의 신령한 힘을 나타내지 못한다.
귀신이 신령한 힘을 나타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힘으로 백성을 해치지도
못한다. 귀신이 백성을 해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인도 또한 백성을 해치지
못한다. 대체로 양쪽 다 백성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덕을 합하여 다함께
도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치대국 약팽소선 이도리천하 기귀불신 비기귀불신 기신불상인 비기신불상인
성인역불상인 부양불상상 고적교귀언>
주
소선: 작은 물고기, 작은 생선을 말함.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삶는 일과 같다는 말은 무위자연의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최상의 정치라는 뜻이다.
작은 생선을 조리할 때 자주 뒤적거리다 보면, 가루가 되어 먹어 볼 것이 없게
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법령을 조령모개식으로 자주 바꾼다든가, 행정력을 명령, 간섭, 규제, 단속
일변도로 행사한다면 백성들은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고 생업에 열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노자의 도처에는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과 환멸을 표현한 귀절이 많다.
그의 이와 같은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둘러싼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위정자의 탐욕과 착취, 계속되는 전쟁, 초근목피로 이어가는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상, 간섭과 규제 일변도의 행정력 등이 그의 독특한 정치철학의 산실이 된
셈이다.
이: 이와 통하여 군림하다, 다스리다의 뜻임.
신: 신령을 뜻함, 귀신의 불가사의한 힘.
성인: 본문에서는 천하의 지배자를 지칭하고 있음.
해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일과 같다.
이 말에는 노자의 정치철학이 잘 표현되어 있다.
위정자가 법령을 너무 완벽하게 정비한다든가, 간섭과 규제와 금지 위주의
행정력으로 백성의 생활에 압박을 사한다면, 그들은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더구나 위정자가 쓸모 없는 공명심에서 백성들을 노력동원등에
투입하게 한다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하여 위정자가 무사 무위의 도로써 백성들에게 임한다면 그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게 된다.
원래 백성들은 그들의 생존의 근거가 재난이나 착취 등으로 위협을 받게 되면
귀신의 힘등에 의존하여 살길을 찾고자 한다.
안정과 만족한 생활에서는 백성들은 귀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도 자신의 신령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위자연의 도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만물에 길러 주고 덮어 주고 감싸준다.
위대한 도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는 귀신도 성인도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치지 못한다. 귀신도 성인도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없게 되면, 그들은
덕을 합하여 위대한 도로 돌아가게 된다.
61.
[큰 나라는 강물의 하류와 같은 것으로 천하의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곳이다.
큰 나라는 천하의 암컷이다. 암컷은 언제나 고요하게 수동적 자세로써 수컷을
이기는 것이다. 수컷을 이길 수 있는 고요함을 지니면서도, 오히려 수컷의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겸허한 태도로써 작은 나라를 대한다면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의존하게 되고 작은 나라도 겸허한 태도로써 큰 나라를
대한다면 큰 나라는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쪽은 겸허한
태도로서 남에게 받아들여진다. 큰 나라는 남의 나라를 합쳐서 남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요,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들어가서 그를 섬기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양자 모두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땅히 큰 것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국자하류 천하지교 천하지빈 빈상이정승모 이정위하 고대국이하소국
칙취소국 소국이하대 국칙취대국 고혹하이취 혹하이취 대국부과욕 겸축인
소국부과욕인사인 부량자각득기소욕 대자의위하>
주
교: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곳.
빈상이정승모: 암컷은 언제나 고요하게 수동적 자세로서 수컷을 이기는
것이라는 뜻임.
주역 곤괘의 문언전에도 '곤의 기상은 지극히 부드러우나 그 작용은 강하고
굳세다. 곤은 또한 지극히 고요하나 그 덕은 방정하고 편벽 됨이 없다'고 하며
여성의 덕을 찬양하고 있다.
두 책 모두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굳센 것을 이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자의위하: 큰 나라가 마땅히 겸허한 태도를 보여야 된다는 뜻임.
해
노자는 언제나 고요하고 겸허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위대한 도의 참모습이기도 하다.
고요하다는 것은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요,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동요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겸허하다는 것은 안으로는 남의 위에 있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밖으로는 언제나 부드러운 태도로써 수컷을 이긴다.
그것은 언제나 약함과 수동적인 자세로써 강하고 능동적인 수컷을 이겨내는
것이다. 수동적인 것이 결국은 능동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노자 특유의 반어요
역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노자의 부드러움은 단순한 부드러움이 아니라
겉으로는 부드러우나 안으로는 굳센 면을 갖춘 부드러움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힘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무력에 의한 정복이란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큰 나라가 먼저 겸허한 자세로 작은 나라를 대하게 되면, 작은 나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심으로 큰 나라에 의존하려 한다.
작은 나라는 자신의 실력과 분수를 알고 있으므로 큰 나라를 섬겨 자신의
위상을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천하에는 분쟁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강과 바다는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능히 이 세상의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62.
[도는 만물을 생성하는 오묘한 밀실이다. 도는 착한 사람에게는 보물이요,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호되는 곳이다. 도에서 나온 아름다운 말은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한 것이며, 도에서 나온 기품 있는 행위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존귀한 것이다. 착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천자를 옹립하고 삼공을 임명했을 때, 비록 아름드리 구슬은 안고
남보다 먼저 사두마차로 달려와서 그것을 바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만히 앉아
이 도를 진상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 도를 소중하게 여긴
까닭은 무엇인가. 도에 의하여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비록 죄를 짓더라도
사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도자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비언가이시 존행가이가인 인지불선
하기지유 고입천자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구이득 유죄이면야 고위천하귀>
주
오: 어둡고 깊숙한 방, 밀실을 뜻함.
도는 만물을 감싸주고 덮어 준다. 그러나 그 작용은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하다.
그래서 밀실이라고 한다.
미언가이시: 도에서 나오는 유익한 말은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하다는 뜻임.
존행가이가인: 도에서 나오는 기품 있는 행위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존엄한
것이다.
삼공: 백관 중에서 최고위급 관원, 태사, 태부, 태보를 말함.
공벽: 아름드리 둥근 큰 구슬, 팔을 벌려 두손끝이 겨우 맞다을 만한 큰
구슬을 말하는 것. 벽은 크고 둥근 구슬을 뜻함.
사마: 말 네필이 끄는 마차
유죄이면야: 죄가 있어도 구제된다는 뜻임.
만물을 보호하고 육성해 주는 도는 그 너그러운 품속에 모든 것을 차별 없이
포용한다는 뜻임. 야를 야로 쓴 판본도 있으나 뜻은 같다.
해
도는 만물을 길러 주고 감싸주는 오묘한 존재이다. 그것의 작용은 신비하고
불가사의하다. 그러므로 도는 착한 사람을 비호한다. 그러나 과거에 지은 착하지
못한 사람도 비호한다. 시비와 선악과 포폄은 모두 인간적 차원에서의 구분이다.
그것은 결국은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 기준에 의하여 구분되고 선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모든 가치판단이란 동전의 양면처럼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절대선 이니 절대 악이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도는 이와 같은 상대적 가치판단의 세계를 초월하여 근원적 시점에서 만사를
차별과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도를 우리는 함부로 값을 매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와 삼공에게 이 무위자연의 도를 알게 해 준다면,
그것은 사두마차를 몰고와서 아름드리 구슬을 안겨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도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관건이다.
도에 의존하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고, 죄가 있더라도 사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도는 이 세상 만물을 감싸주고 길러 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63.
[하지 않는 것(무위)을 행하고, 일없는 것(무사)을 일삼으며, 맛없는 것(무미)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고 적은 것을 많게 여긴다.
원한이 있으면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은 어려워지기 전에 손대고, 큰 일은
그것이 커지기 전에 해결한다. 이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작은 데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결코 큰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무릇 쉽게 응낙하는 것은 믿음성이 적게 마련이고, 쉬운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운 것이 많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오히려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도난어기이 위대어기세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시이성인 종불위대 고성기대 부경락 필과신
다이다난 시이성인 유난지 고종무난>
주
무위: 도에 순응하여 의도적인 행위가 없는 다스림.
무사: 도에 순응하여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행하기 때문에 별다르게 할 일이
없다는 뜻임.
미무미: 맛없는 것을 맛본다는 것이니 도를 체득한다는 뜻.
보원이덕: 원한은 덕으로 갚으라는 뜻임.
노자 윤리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말임.
곧음(정의)으로 원한을 대하고, 덕은 덕으로 갚으라는 공자의 가르침과는 대조를
이룬다. 시비와 선악과 포폄을 초월하는 노자의 윤리관과 원망과 은덕을 다같이
은덕으로 갚는다는 것을 불공평한 행위로 보고 차별적 가치판단을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공자의 윤리관은 후세 학자들의 논쟁 대상이 되어 왔다.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이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이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시작된다는 뜻임.
일이란 쉽고 미세할 때 처리하라는 말이다.
역경에도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고, 자식으로 아비를 죽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살펴본다면 점진적인
것이다. 그 징조를 통찰하여 대책을 세우고 일찍 처리하는 데에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에 말하기를 서리를 밟으면 곧 굳은 얼음이 형성될 때가
오게 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은 모든 일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만사를 쉽고 미세할 때 처리하라고 강조한 점에
있어서 노자와 발상을 같이 한다.
해
하지 않는 것을 행하면, 할 일이 없게 된다. 이것이 무위자연의 다스림이다.
그것은 도에서 나온 것이므로 별다르게 자극적인 맛이 없다.
그저 순수하고 담박한 맹물과 같다.
그러나 우리의 갈증을 풀어 주는 데는 담박한 맹물 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무위자연의 다스림이란 어려운 일은 어려워지기 전에 손대고, 큰 일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풀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 일어나고, 이 세상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은 미세할 때 손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것이다.
크게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나 작게는 집의 축대를 손질하는 일 등은 다
미연에 방지하고 미세할 때 손쓰는 것이 최상책인 것이다.
성인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손쓰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64.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가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손대기 쉽다.
취약한 것은 깨어지기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지기 쉽다.
일은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처리하고, 혼란은 그것이 오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자란 것이고 9층의 높은 대도 한줌
흙이 여러 번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천리의 먼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작위 하는 사람은 실패하고, 집착하는 사람은 잃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의도적으로 하는 일이 없으므로 실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잃지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건대 거의 성사가 될 무렵에 실패하고 만다.
끝마무리를 시작할 때 처럼 하면, 실패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을 바라고, 손에 넣기 어려운
보물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운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의 허물을 도에 복귀시키고, 만물이 자연의 이법에 따르도록
도울 뿐, 감히 인위적으로 행하지는 않는다.]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함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루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무집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즉무패사 시이성인
욕불욕 불귀난득지화 학불학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 이불감위>
주
기취이반: 취약한 것은 흩어지거나 깨어지기 쉽다는 뜻임.
함포지목: 두팔로 끌어안아 겨우 손끝이 맞닿을 정도의 큰 나무, 아름드리
거목.
호말: 터럭, 털끝, 지극히 작은 것.
위자패지: 작위 하는 사람은 실패한다는 뜻임.
민지종사: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건대.... 이 경우의 민은 인으로
해석해야 함.
기성: 거의 이루어질 무렵. 거의 완성하게 될 때.
욕불욕: 세상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을 바란다는 뜻임.
복중인지소과: 여러 사람의 잘못을 도에 복귀시켜 고치게 한다는 뜻임.
해
안정된 것은 유지해 나가기가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처리하기가 쉽다.
취약한 것은 깨어지기가 쉽고, 미세한 것은 흩어지기가 쉽다.
모든 일은 발생하기 전에 처리하고, 나라는 혼란이 오기 전에 다스려져야 한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씨앗 하나가 자란 것이고, 9층 누대도 흙덩이가
한줌씩 쌓이고 쌓여서 그 높이를 이루게 된 것이다. 만사는 작고 미세할 때
처리해야 잘 다스려 질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모든 일을 미연에 잘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는 무리하게 작위 하는 일도 없고, 너무 일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실패도 잃어버림도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매우 열심히 해 나가다가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미리 방심을 하고, 끝마무리를 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마무리를 시작할 때처럼 정신차려 한다면 결코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인은 얻기 어려운 재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위자연의 도를 체득할 뿐이다.
그는 이 무위자연의 도에 세상 사람들의 허물을 복귀시켜 그것을 고쳐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만물을 자연의 섭리에 따르도록 할 뿐 감히 의도적인 일을
행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65.
[그 옛날 무위자연의 도를 잘 행한 사람은 백성을 밝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그것으로 그들을 어리석고 순박하게 했다.
백성들을 제대로 잘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지혜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적이요,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이다. 이 두 가지는 정치에 있어서 영구
불변의 법칙임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이와 같은 법칙을 아는 것을 그윽하고
불가사의한 덕이라고 한다. 그윽하고 불가사의한 덕은 깊고도 멀다.
그것을 지닌 사람을 만물과 더불어 도에 복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무결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 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자다 고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복 지차양자역해식 능지해식 시위현덕 현덕신의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어대순>
주
명민: 백성을 밝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든다는 뜻. 여기서 밝음이란 세속적인
간지에 의해 교활하게 된 것을 말함.
우지: 어리석게 한다는 뜻, 본문에서는 순수하고 소박한 상태에 있게 한다는
의미임.
지다: 지혜가 많다는 뜻임, 본문에서는 교지와 세속에 닳고닳은 약삭빠름을
말하고 있음.
계식: 법칙, 법식, 규정을 뜻함. 해식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음.
현덕: 그윽하고 불가사의한 덕, 신비하고 오묘한 덕.
여물반의: 만물과 더불어 순수한 도에 복귀한다는 뜻임, 반은 반과 같음.
연후내지대순: 그런 뒤라야 완전무결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해
옛날에 도를 체득한 이는 지혜로써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다스리면 백성들도 순박함을 잃어버리고 교활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다스리는 것은 나라에 해로움만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무위 무사의 정치는 백성들을 어리석고 순박하게 만들어 나라를
복되게 한다.
지혜란 인간의 정신적, 물리적 욕망을 자극하게 된다.
그것의 충족을 위해서는 서로 싸우고, 속이고 빼앗는 등 인간은 구제 불능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와 같이 혼란에서 구제 받고자 한다면
태고의 순박함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순박함이야말로 참되고 순수한
도의 본모습인 것이다.
도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을 알고 만물과 더불어 참된 근원인 도에
복귀한다면, 그것이 완전무결한 도의 작용에 순응하는 길이다.
이 장은 자고로 노자가 우민 정치를 부르짖는 대목이라 하여 학자들간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노자가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문명사회가 낳을 것으로 인간의 갖가지 욕망을
자극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인간은 서로 싸우고 빼앗고
죽이는 등 니전투구의 혼란상을 조성한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는 평화와 행복이란 찾아볼 수 없고 인간은 서로 구제
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자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부정적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시인도 가지고 있는 소박한 일차적 욕망(먹고, 마시고,
잠자는 등)은 그도 긍정하고 있었다.
노자가 염려하는 것은 문명사회가 제공하는 지혜와 지식에 의한 이차적
욕망이었다.
즉 권력에의 의지, 물욕, 명예욕, 허영심 등은 병든 문명사회가 만들어 낸
정신적인 공해로 보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인간의 자기 구제는
불가능하다고 그는 본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충족하기 위하여 인간은 서로 속이고, 빼앗고, 모함하며,
국가간에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지는 등 문명사회의 지식과 지혜에 의한
병폐는 심각한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 현과 우도 문명이 일어난 후
사회생활이 다원화, 분업화되면서 생겨난 것이므로 그와 같은 겉치레가 없는
순수 태고의 순박한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지론이다. 그의 이와
같은 지론은 후세 법가 계열의 학자들에 의하여 오용된 감이 있다.
즉 진의 상앙, 한의 한비, 진의 이사 등의 냉혹한 인간 조종술과 우민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권모술수에 의한 잔혹한 정책은 노자의 참된
뜻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권모술수의 이론적 배경을 노자에서 구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의 진의를
왜곡시킨 것이며 아이러니컬한 일이기도 하다.
66.
[강과 바다가 능히 모든 골짜기의 제왕이 되는 것은 그것이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모든 계곡의 제왕이 되는 것이다.
도를 체득한 성인이 백성의 위에 서고자 하면 반드시 그 말을 낮추며 백성의
아래에 있는다. 백성들의 앞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자신을 백성의 뒤에 있게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들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며, 앞에
있어도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치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백성들이
즐거이 떠받들고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도무지 다툴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는 것이다.]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 시이성인 욕상민
칠이언하지 욕선민 필이신후지 시이성인 처상이민부증 처전이민불해
시이천하낙추이불염 이기부쟁고 천하막능여지쟁>
주
백곡왕자: 왕자는 이 세상의 모든 백서들이 의지하는 지배자이다.
강과 바다는 많은 계곡의 물줄기가 흘러들어 물의 제왕이 된 것이다.
왕자의 경우나 강과 바다의 경우나 모두 자신을 낮은 위치에 두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선하지: 골짜기의 밑에 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는 대명사 '그것'으로서 골짜기를 지칭하고 있음.
민부중: 백성들이 무거워 하지 않는다는 말임.
성인은 무위 무사와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성인의 정치에 전혀 압박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임.
낙추: 즐겁게 추대하다, 기꺼이 떠받들다.
이기부쟁: 도를 체득한 성인은 도무지 다툴 줄을 모른다는 뜻임.
해
강과 바다는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계곡의 물이 모여드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능히 그 크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군주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언제나 겸허한 태도와 너그러운 아량으로 만백성의 복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은 뒤로 미루면, 천하 만민의 마음이 그에게로
쏠리게 될 것이다. 대저 남의 위에 서고자 하면 우선 남의 아래에 처할 수 있는
겸허함과 남을 먼저 내세우는 아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 했다.
천하 만민이 떠받드는 이는 진정한 의미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량이 넓고 포용력이 있는 그는 도무지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다툴 줄
모른다. 그렇게 처신하는 그에게는 적개심을 품고 맞서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67.
[세상 사람들은 나의 도는 크기는 한 어리석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로지 크기 때문에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다. 만일 어리석게 보이지
않았다면 이미 잘고 보잘 것 없는 것이 된지 오래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그것을 지니고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첫째는 자애, 둘째는
검소, 셋째는 감히 천하의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기가
있다. 검소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어 쓴다. 감히 천하의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큰그릇이 되어 남의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자애를
버리고 용기만을 취하려고 하고, 검소한 것은 버리고 널리 쓰려고만 하며, 남의
뒤에서 서려고 하지 않고 앞에만 나서려고 한다. 이런 일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자애로움을 지니고 싸우면 이길 수 있고, 자애로움을 지니고 지키면
견고한 것이다. 하늘이 장차 그를 건져내고자 할 때에는 자애로써 그를 지켜
주는 것이다.]
<천하개위아도대사불초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구의기세야부 아유삼보
보이지지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고
능성기장 부자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
주
불초: ...와 같지 않다, ...만 못하다, 어리석다, 못나다, 현명하지 못하다.
구의기세: 잘고 보잘것없는 것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이라는 뜻임.
삼보: 불교에서는 불(부처님), 법(부처님 말씀), 승(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수행자)을 지칭한 말임.
원래는 노자의 도덕 경에 나오는 말로 중국인이 인도의 불교 경전을 번역할
때 차용한 것임. 한자 문화권의 최고 지성이 불교를 해석하고 수용하는 데 노자
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점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불교의 경론 삼백권을 한어로 번역하여 이름을 떨친 후진의 고승 구마라습은
노자도덕경에 주석을 달았으며, 소설 서유기의 주인 공으로도 유명한 당의
현장 법사는 노자를 범어(산스크리트어, 완성이란 뜻이며 고대 인도의 지식층이
사용한 말, 지금도 쓰이고 있음)로 번역하여 인도의 사상계에 소개하였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광: 널리 베풀어 쓰는 것.
기장: 기는 그릇 즉 쓸모 있는 인재를 말하며, 장은 어른, 우두머리를 뜻함.
사: 사(버리다)와 같음.
해
세상 사람들은 노자의 도를 크기는 하나 막연하고 실효성이 없는 교설로 보고
있다. 그것은 뚜렷하게 현실에 적용할 수도 없고 해석상에도 문제가 많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반짝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통속적인 이념이
아닌 것이다.
노자의 도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인간성에 호소하는 보편타탕성이 있음에
틀림없다. 도덕 경이 2천여년 동안이나 동양의 최고 지성(근대에 와서는
서구인까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것만 보아도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문명사회가 만들어 낸 위선과 허위 의식에 대하여 노자처럼 날카롭게
메스를 가한 이도 드물 것이다.
특히 고도로 발달된 기술 문명 사회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자연과 인간의 대화가 인류의 사활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의 교설에 더욱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이 장에서 노자는 삼보를 역설하고 있다.
그의 삼보란 자애, 검소, 자신을 남 앞에 내세우지 않는 것(겸양)이다.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로 위세를 부리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싸워서라도
두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경향이 많다.
욕망 충족을 위한 무자비한 경쟁과 쟁탈은 인간성마저 상실케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는 하늘이 사람을 구제할 때에는 자애로써 지켜 주고 감싸준다고
말하고 있다. 자애를 강조하는 노자의 논조에는 보편적 인류애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68.
[탁월한 전사는 무용을 떨치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이는 노여움을 보이지
않으며, 가장 잘 이기는 이는 적과 함부로 다투지 않으며, 사람을 잘 쓰는 이는
상대방에게 내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남의 힘을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한 하늘의 지극한 높은 이법과 일치하는 일이라고
한다.]
<선위사자불무 선전자불노 선승적자불여 선용인자위지하 시위부쟁지덕
시위용인지력 시위배천고지극>
주
사: 무사, 전사
무: 무용을 발휘하다, 용맹을 과시하다.
무란 남보다 먼저 나아가 적을 무찌르는 것을 의미함.
불여: 정면으로 맞상대하여 싸우지 않는다는 뜻임.
배천지극: 하늘의 지극히 높은 이법과 일치하는 것.
배천고지극의 고자는 후세에 삽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하늘의 이법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형이상학적 이상일 것이다. 이것은 도가와 유가의 공통된
이념이요 이상이기도 하다. 역경에는 '역도의 광대함은 천지와 일치하고, 변통은
춘하추동의 교체와 일치하며, 음양의 변화는 해와 달의 교체와 일치하고, 쉽고
간편한 선성은 인간의 지덕과 일치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송대 성리학의 개척자의 한 사람인 주림 계의 태극도설에는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을 합일하고, 귀신과 그 좋은 일 궂은 일을 합일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천도와 인도를 동일한 성격으로 간주하며 그것의 합치를
이상으로 하는 것은 동양 철학의 특성이기도 하다.
해
싸움을 잘하는 용사는 자신의 용맹을 함부로 과시하지 않는다.
그는 정면에서 적과 맞상대하며 싸우려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가 진정으로
싸움 자체를 즐길 생각도 없을 뿐더러 전술상으로도 현명한 방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재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남에게 자신의 몸을 낮추어
겸양한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결코 남의 힘을 이용해 보겠다는 약삭빠른
처세술에서 나온 태도는 아닌 것이다.
그가 이렇게 처신하는 것은 남의 재능을 아끼고 그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남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옛날 주의 문왕은 위수에서 낚시로 소일하던 태공망 여상을 예를 갖추어 모셔
와 주나라를 흥왕케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한 바 있다.
또한 촉한의 소열제는 비육 지탄을 삼키고 있을 때 젊은 서생인 제갈양의
초려를 세 번씩이나 방문한 바 있었다.
이에 크게 감격한 공명은 일개 객장으로 늙어 가던 유비를 그의
천하삼분책으로 제왕의 자리에까지 인도한 바 있다.
이것은 그릇이 큰 인물이 인재를 쓰는 참된 의미의 용인술인 것이다.
원래 중국인들의 기략에는 적의 성채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을 하책으로 보고
그 마음을 공략하여 감복케 하는 것을 상책이라고 한다.
남과 다투지 않고 너그러움과 겸손과 자애로써 처신하는 것은 하늘의 지극히
높은 이법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
69.
[용병술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다. '나는 감히 전쟁의 주동자가 되지 아니하고
피동 자가 되겠다. 감히 한치를 나아가기보다는 한자씩 물러나겠다.' 이와 같은
것을 가르켜 행군을 하지만 행군을 하지 않는 듯하고, 소매를 걷어붙이지
않으니 팔이 없는 듯하고, 치고 들어가지 않으니 적이 없는 듯하며, 무기를
잡아도 잡지 않은 듯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적을 업신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근은 없다. 적을 업신여기면 나의 삼보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를 일으켜 싸우게 될 때는 싸움을 슬프게 여기는 쪽이 이기게
된다.]
<용병유언 오불감위주이위객 불감진촌이퇴척 시위행무행 양무비 잉무적
집무병 화막대어경적 경적기어오보 고항병상가 애자승의>
주
주: 주동자, 전쟁 주동자.
객: 마지못해 싸우는 응전자, 전쟁의 피동자.
행: 행군 .
행무행: 마지못해 싸움터에 나아가기 때문에 행군을 하기는 해도 행군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함.
잉: 치고 들어가는 것.
항병: 군사를 일으키는 것, 병력 동원.
상가: 서로 맞부딪쳐 싸우는 것. (왕필의 주석 참조)
해
노자는 이 장에서 전쟁의 주동자가 되지 말고 피동 자가 되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전쟁의 참상과 그 파괴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도발하는
것의 잘못을 지적한 말이다.
전쟁 도발이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상대방의 침략으로 이쪽의 자위와 방어 목적에서만이 전쟁의 정당성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못해서 싸움터에 나가는 쪽은 먼저 적의 진영으로 쳐들어가는 일이
없으며, 무기를 잡아도 살상을 즐길 일이 없으므로 잡지 않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전투에 임하여 상대를 업신여기는 것은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상대를 업신여기면 그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기 쉽다.
함부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막대한 희생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된다.
비록 나라가 크고 강하다고는 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경고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상대의 침략으로 군사를 동원하여 싸우게 될 때에는
전쟁의 참상을 애통해 하는 쪽이 이기게 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이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을 보여 준다면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병사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전 주의자요 평화주의자인 노자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가 춘추 전국의 난세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전쟁의 참화일 것이다.
전쟁 도발을 규탄하는 노자의 지론에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외경이 짙게 깔려
있다.
70.
[나의 말은 아주 이해하기가 쉽고, 또 아주 실천하기도 쉽다. 그런데도 이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실천하지도 못한다.
말에는 만물의 원리가 있고, 일에는 주관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므로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이는 드물지만 나를 모범 삼는
이는 존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있지만 그의 품속에는 보배를 품고 있는
것이다.]
<오언심이지심이행 천하막능지막능행 언유종 사유군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지아자희 칙아자귀의 시이성인피갈희옥>
주
종: 근본, 근원, 원리, 도.
군: 주재자, 주관하는 사람, 임금.
우주의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궁극적인 원리를 지칭하고 있음.
칙: 본받다, 규범으로 하다, 모범으로 삼다, 법칙으로 하다.
칙으로 발음함.
피갈회옥: 몸에는 거친 베옷을 입고 품속에는 보배를 지니고 있다는 뜻임.
도를 체득한 성인이 일개 서민으로서 허름한 차림으로 살아가므로 세인들이
그의 참된 진가를 알지 못한다는 뜻임.
해
나의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실천하기도 쉽다. 그것은 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도의 자연스러움을 본받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말과 일에는
원리가 있고 근원이 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근원을 캐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도를 아는 이는 드물다. 만일 그것을 알고 본받게 된다면, 그는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고 일개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가므로 세인들은 그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옥에 흙이 묻어
있으므로 행인들이 그저 예사로운 돌덩이 정도로 알고 주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범속한 사람들은 사물의 이면과 그 본질을 캐고자 아니하고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노자는 진리를 깨달으며 홀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독과 비애를 피력하고 있다.
노자 서에서는 이와 같은 감회를 독백 조로 기술하고 있는 장이 많다.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관심에는 달관한 그도 인간적인 슬픔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대목은 논어(헌문편)에도 나온다.
공자께서 한탄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이 말을 들은 자공이 말씀드렸다.
"왜 선생님을 몰라준다고 말씀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으리라. 일상생활의 비근한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차근차근 하늘의 이법에 통달하게 되었으니 나를 아는 것은
저 하늘일 꺼야!"
한평생 자신의 정치철학을 채택해 줄 밝은 임금을 만날 수 없었던 공자의
탄식과 무위자연의 도를 현실 정치에서 단 한 번도 펼쳐 볼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노자의 비애에서 현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그들의 고독과 좌절감은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71.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오직 병을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에게는 이와 같은 병이
없다. 그것은 자신의 병을 병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지부비지상 부지지병 부유병병 시이불병 성인불병 이기병병 시이불병>
주
상: 가장 좋다.
병: 결점, 폐단.
해
알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태도이다.
모르면서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은
도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도란 인간의 감각 능력을 초월한 것이므로 우리의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논리를 초월한 직관일
뿐이다. 성인은 도의 신비성과 불가사의함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의 지식의 세계란 형이하의 세계에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감각할 수
있고 구체화될 수 있는 상식의 세계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의 세계에
만족해하며 그것을 진리 인양 과신하고 있다. 그러나 상식의 세계, 경험의
세계를 있게 하는 것은 형이상의 세계 즉 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를 체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지식은 막연한 억측과 주먹구구식의 판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개인적 편견과 기호에 좌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자각이 없이 자신의 지식에 세계를 진리의
세계로 확신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병폐요 폐단이다.
병폐를 병폐로 알고 있으면 즉 자신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무지와 무력을
자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병폐가 되지 않는다.
성인은 도의 신비성과 불가사의함을 깨닫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병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말하고 있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
(논어 위정편) 그러나 노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근원적인 것에 대한 인간 인식의
한계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72.
[백성들이 두려워 할 만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큰 징벌이 내리게 된다.
백성들의 주거나 행동을 속박하지 말고, 그들의 생활과 생계 수단을 억누르지
말라. 억누르지 않는다면 싫어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알면서도 그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도 잘난 체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력의 다스림을 버리고 무위의 다스림을 택한다.]
<민불외위 대위지의 무협기소거 무염이소생 부유불염 시이불염 시이성인
자지부자현 자애부자귀 고거피취차>
주
대위: 큰 위력, 큰 징벌.
부자현: 현은 드러내다, 나타내다, 보이다의 뜻.
현은 현과 통합, 따라서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임.
거피취자: 억압과 형벌 위주의 정치를 버리고 무위와 무사의 정치를 택한다는
뜻임.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억압 위주의 법가적 통치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힘과
으름장으로 유지되는 질서란 결코 오래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은혜와 덕망인 것이다. 백성들이 위정자의
통치권에 복종치 않으면 보다 큰 위력 즉 극형을 예사로 하게 된다.
그리고 백성들의 주거나 행동거지에 대하여 세세한 교제와 압박을 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활 자체가 속박이 되어 버린 백성들은 유민이 되거나 도적이
되어 통치 질서에 대하여 도전하게 된다.
원래 인간 불신에 의한 인간 조종술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법가의 정치철학이다.
그것은 성악설에 근거를 주고 정치에서 윤리와 도덕을 애초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불신은 불신을 낳고 혼란은 더 큰 무질서를 조성케 한다.
성인은 자연의 이법을 체득하고 있으나 스스로 그것을 드러내 보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존귀하다고 하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지
않는다. 위력과 형벌의 정치를 버리고 무위와 무사의 정치를 그는 택한다.
천하는 저절로 잘 다스려지며 백성들은 태평가를 부르게 된다.
73.
[형집행을 잘 결단하는 이는 사람을 죽이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살린다. 이 두 가지 행위에는 이로운 점도 있고 해로운 점도 있다.
하늘이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도 오히려 이 일을 어렵게 생각한다. 하늘의 이법은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고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며, 여유 있는 태도로 일을 잘 꾀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엉성한 것 같아도 죄있는 자는 놓지는 법이 없다.]
<용어감즉살 용어감불감즉활 차양자 흑리흑해 천지소오 숙지기고 호리혹해
천지소오 숙지기고 천지도 부쟁이선승 불언이선응 불소이자래 천연이선모
천망희희 소이불실>
주
감: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
천연: 태연한 모습, 여유 있는 모습.
선모: 잘 꾀하다, 잘 계획하다, 잘 도모하다.
희희: 넓고 큰 모양.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모순과 맹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늘의 뜻이 누구에게 벌을 내리고, 누구를 용서해 줄려는 지는 도를
체득한 성인도 모르는 것이다.
성인도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 어찌 형벌을 함부로 집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의 이법은 억지나 작위 함이 없이 만사를 저절로 잘 다스려 나간다.
하늘의 법망은 너무 크고 성긴 것 같다. 그러나 죄있는 자를 놓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무위와 무사의 다스림을 행하며 죄지은 자는 하늘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74.
[백성들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이는 것으로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하며, 또한 나쁜 일을 저지르는
자가 있어 그를 잡아 처형할 수 있다 하더라도, 누가 그 일을 집행하겠는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일을 맡은 하늘이 하는 일이다.
죽이는 일을 맡은 하늘을 대신하여 죽이는 것은 마치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사람으로서, 손에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은 드문 것이다.]
민불뢰사 내하이사구지 약사민사외사 이위기자 오득집이살지 숙감
상유사살자살 부대사살자상 시위대대장착 부대대장착 희유불상수의
주
기: 올바르지 못한 일, 사악한 일, 정도에 벗어난 행위.
사살자: 죽이는 일을 맡은자, 하늘의 섭리를 말함.
대사살자: 하늘의 섭리에 맡기지 않고 인위적으로 형벌을 집행하는 것.
대장: 솜씨 좋은 목수, 노련한 목수.
착: 깎다, 찍다, 쪼개다.
해
이 장에서는 형벌로써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려 죽는 것도 무섭지 않다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게
되면 위정자가 죽이는 것으로 백성을 위협할 수는 없다.
위정자가 형벌 위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뿐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늘의 이법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고 처단하는 것을 마치 노련한 목수를 대신하여 서툰
자가 나무를 깎는 것과 같다. 결국은 자신의 손만 다치게 되는 것이다.
위정자가 무위자연의 도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저절로 복종하게
마련이다. 가혹한 형벌과 빈틈없는 관료 조직으로도 민심을 잃은 정권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는 예를 우리는 무수히 알고 있다.
75.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는 것은 위정자가 세금을 많이 거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굶주리게 되는 것이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렵게 하는 것은
위정자가 인위적으로 꾀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다스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백성들이 죽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위정자가
자신의 삶만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쉽사리 죽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삶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그 삶에 연연하는 사람보다 더욱 현명한 것이다.]
<민지기 이기상식세지다 시이기 민지난치 이기상지유위 시이난치 민지경사
이기상구생지후 시이경사 부유무이생위자 시현어귀생>
주
상: 위정자, 군주.
유위: 의도적으로 꾀하는 것, 인위적으로 도모하는 것, 작위 함이 있는 것.
이기상구생지후: 위정자가 너무 자신의 삶만을 지나칠 정도로 추구한다는
것임. 즉 백성들을 다스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만 잘살아 보겠다고
부귀와 영화에 집착하며 백성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뜻임. 위정자의
탐욕과 이기주의를 성토한 말임.
귀생: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생에 대한 애착으로 거기에 속박 당하는 것.
해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는 것은 위정자의 과중한 세금 징수 때문이다.
위정자가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게 되면 그것은 곧 백성들의 생활에 적지
않은 부담과 속박을 가져오게 한다.
위정자가 자기만이 잘 살아보겠다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윗사람이 잘해야 아랫사람들도 잘하게 되므로 이 일에 대한 책임은
위정자에게 있는 것이다.
위정자가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이법에 맞는 다스림으로 나라 일에 임한다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잘 풀리게 된다.
사람이 삶에 애착을 느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삶에만 매달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삶을 헤치는 일이 될
것이다. 언제나 담담하게 마음을 비운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 집착하여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욱 현명한 사람이다.
76.
[사람은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게 되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만물과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물렁물렁 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굳세고 강한 것은 죽음의 부류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부류이다. 군사도 지나치게 강하여 교만해지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도 크고
우람해지면 꺾이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있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건강 만물초목지생야유취 기사야고고 고건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시이 병강즉불승 목강즉공 강대처하 유약처상지>
주
병강즉불승: 군사도 지나치게 강하여 교만해지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뜻임.
병강즉멸로 표기된 판본도 있음.
목강즉절: 나무가 크고 우람해지면 그 재목으로서의 쓰임새 때문에 베어지게
된다는 뜻임.
해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부류에 속하고, 굳세고 강한 것은 죽음의 부류에
속한다.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딱딱해진다. 군대가 지나치게 강하여 상대방을 얕보게 되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된다.
나무도 크고 우람한 것은 재목으로서의 용도 때문에 곧 목수의 도끼에 찍혀
쓰러지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랫자리에 있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윗자리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처세 또한 부드럽고 약한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다.
77.
[하늘의 이법은 활을 메우는 것과 같은 것인가. 높은 데를 억누르고, 낮은
데를 올려 주며 남은 부분은 덜어내어 부족한 부분에 채워 준다.
하늘의 이법은 이와 같이 남은 것을 덜어내어 모자라는 것에 보태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는 일은 이것과 달라 모자라는 사람의 것을 덜어내어 넉넉한
사람에게 보태어 주는 것이다.
자신의 남은 것으로 이 세상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직 도를 체득한 성인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일을 하고 나서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 나서도
자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천지도 기유장궁호 고자억지 하자거지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즉불연 손부족이붕유여 무사균 유사불균
숙능유여이붕천하 유유도자 시이성인 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현현야>
주
공성이불처: 공을 이루고나서도 자신의 것으로 자부하지 않는다는 뜻임.
역경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겸괘 93의 효사에는 노고 하면서도 겸손하다.
군자에게는 끝까지 길한 일이 있을 것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노고 하여도
자랑하지 않고 큰공을 세우고도 자신의 덕으로 자만하지 않으니, 독실한
마음가짐의 극치인 것이다. 이것은 큰 공을 세우고도 남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이른 말이다. 겸손의 미덕을 강조함에 있어 노자와 역경은 그 발상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기불욕현현: 자신의 탁월함과 훌륭한 점을 나타내고자 하지 않는다는 뜻임.
현은 현과 같음.
해
하늘의 섭리는 넉넉한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에 보태어 준다.
그것은 언제나 만물을 평등하게 대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행위는 이것과는 딴판이다.
가난한 백성의 재물을 갖가지 명목으로 빼앗아서 위정자의 사치와 향락에
쓰이게 한다. 그러므로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다. 이와 같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자신의 남은 것을 덜어내어 천하의
만백성에게 보태어 줄 사람이 있겠는가.
이 일은 오로지 성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언제나 겸허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세운 공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탁월함을 나타내고자 하지
않는다. 도를 터득한 그는 하늘의 섭리를 인간 사회에 실행해 보이는 것이다.
이 장 역시 하늘의 섭리의 공평무사함에 대한 찬양과 인간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78.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 데는 물보다 더 유능한 것은 없다. 물과 바꿀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는 이치를
이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능히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말했다. 나라의 욕됨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를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불상사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 한다. 도에서 나온 올바른 말은 진실과는 반대되는 것 같다.]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 막지능승 이기무이역지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막능행 시이성인운 수국자구 사위사직주 수국지불상 시위천하왕
정언약반>
주
사직: 사는 토지신, 직은 곡신을 지칭함.
땅과 곡식이 없으면 백성이 살아갈 수가 없고 나라도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나라마다 사직단을 만들어 토지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었다. 이 제사의 제주는 임금이었다.
사직은 곧 국가나 조정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정언약반: 도에서 나온 올바른 말은 세상 사람들이 신봉하고 있는 상식이나
진실과는 어긋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임.
해
이 세상에서 물은 가장 부드럽고 약한 존재이지만, 억세고 단단한 것도 물의
힘을 당해 내지는 못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모진 것을 이긴다는 이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지만 이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은 나라의 온갖 욕됨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며, 괴롭고 해로운 일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큰그릇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에서 나온 올바른 말은 언제나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나 진실과는 어긋나는 것처럼 들린다.
이 장에서 노자는 다시 한번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이치를 물의 경우를 들어 역설하고 있다.
79.
[큰 원한은 화해를 하여도 반드시 마음속에는 응어리가 남게 된다.
그것이 어찌 좋은 일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좌계를 지니고 남에게
지불을 독촉하지 않는다. 덕있는 사람은 좌계를 지니면서 남에게 내어 주는
일을 하고, 덕없는 사람은 현물세를 징수하는 사람처럼 받는 일을 한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운 친함이 없이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에 선다.]
<화대원 필유여원 안가이위선 시이성인 집좌계이불책어인 유덕사계 무덕사철
천도무친 상여선인>
주
여원: 남은 원한, 화해한 뒤에도 남게 되는 마음속의 응어리.
좌계: 계는 어음을 말하며, 나무 조각으로 어음을 만들어서 두쪽으로 나누어
왼쪽은 물품 보관자가 지니고, 오른쪽은 물품을 받을 자가 지닌다.
좌계를 지닌 자는 우계를 지닌 자에게 물품을 내어 주게 되는 것이다.
철: 주나라 때의 십분지 일세를 말함. 맹자에는 이 제도가 좀 더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또 주나라 사람은 구백묘되는 밭을 여덟 가구에서 제각기 일백묘씩 나누어
받고 남은 백묘는 여덟 가구에서 공동 경작하여 그 농산물을 세금으로 당국에
바쳤는데, 사실은 모두 10분의 1세 였습니다.
주나라 사람의 철법은 전체를 통하여 균일하게 세금을 부담하게 한다는
뜻이며...'
해
큰 원한은 한 번 품게 되면 화해한 다음에도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이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아예 원한 관계가 성립될 소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다툼이란 이해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성인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항상 양보하고 베푼다는 마음가짐으로 남을
대한다. 그러므로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하늘의 이법은 사사로운 편애가 없지만 이처럼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내려 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얼핏 보기에는 인위적인 것이 유능하고 실효성이 있을 것 같으나 긴
안목으로 보면 천도에 따르는 성인의 처세가 가장 현명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잠시 유가의 천, 천도, 천명과 도가의 도, 천도의 개념상의
차이점에 대하여 언급하기로 하자.
공자의 천, 천도는 만물의 주재자이며 지식과 의지를 지닌 인격적인 존재이다.
논어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라든가.
'하늘이 나에게 덕(세상을 구제할 사명)을 내리셨는데 환퇴 그가 나를 어찌
하겠는가?'.
또는 '하늘이 아직 그 문화를 없애고자 아니하셨는데 광인들이 나를 어찌
하겠는가?'
또는 '군자는 세 가지 일을 두려워한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높은 어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고 피력하고 있다.
요컨대 공자의 천, 천도, 천명은 만물의 주재자요 종교적 의미를 지닌
존재라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노자의 도, 천도는 인격적 요소가 배제된 존재이다.
그것은 무심하게 이루어지는 활동력인 것이다.
노자서 37장에는 '도는 언제나 자연스러울 뿐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
그러나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고 기술되어 있다.
도는 이처럼 욕망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낳아 주고 길러 주고
감싸주고 보살펴 준 만물에 대하여 그것을 주재한다든가, 공덕을 자랑한다든가
소유하려는 의지가 없다. 그것은 비인격적이며 무의도적으로 행하여지는
활동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자의 도, 천도에서 종교적 의의가 배제된
자연 자체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80.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들은 비록 편리한 기구가 있어도 쓰지 않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죽음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하면 먼 곳으로 이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지 않을 것이며,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벌여 놓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노끈을 맺어서 문자로 쓰던
소박했던 옛날로 되돌아가게 한다. 그들은 자신의 집에 편안히 살며 자신들의
습속을 즐긴다. 이웃나라가 서로 마주보면서 닭울음과 개 짓는 소리가 들려
와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도 서로 가고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도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인국상망 계건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
기: 편리한 기물, 편리한 기구.
진지: 벌여 놓는다는 뜻임.
결승: 노끈을 맺는다는 뜻임.
옛날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노끈을 맺어 계약 등의 의사표시를 하게 했음.
해
노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제후들이 서로 침략을 일삼던 정치적
혼란기였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사치와 향락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였으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기구와 관료 조직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의 정치철학이 모든 인위적인 간섭을 배제하는 무위
이치를 이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 배경과 연관된 것이다.
노자는 이상 국가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작은 나라에서 적은 수의 백성들이 검소하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
그들은 사치를 모르며 편리한 기구를 사용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사는 곳에
애착심을 가지므로 옮겨 다니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문자를 모르고 새끼줄을 맺어 약정을 맺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여기엔 그들은 닭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가까운 이웃나라와도 서로
왕래가 없을 정도로 무심하고 무욕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노자의 이상 국가에서 순박한 촌락 공동체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81.
[믿음성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성이 없다.
착한 사람은 달변가가 아니며, 달변가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한다. 무위 무욕의 성인은
자신을 위해 쌓아 두는 것이 없다. 이미 남을 위해 다 썼건만 자신에게는
더욱더 많아진다. 하늘의 이법은 만물을 이익 되게 하고 해롭게 하지 않으며,
성인의 이법은 일을 행하여도 남과 다투지 않는다.]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자불변 변자불선지자불박 박자부지 성인부적 기이위인
기유유 기이여인 기유다 천지도 이이불해 성인지도 위이부쟁>
주
부적: 성인은 욕심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쌓아 두는 것이 없다.
위이부쟁: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애시당초 남과 다를 소지가 없는 것이다.
해
노자는 도덕 경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말은 미사여구는 없으나 믿음성이 있다. 그러나 미사여구로 장식된 말은
믿음성이 없다. 착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으며, 변론가는 착하지 않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도를 체득하지 못한다.
성인은 도무지 욕심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쌓아 두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넉넉함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일이란 이로움이 없으면 반드시 해로운 일도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늘의 도는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해로움을 끼치는 일은 없다.
성인은 하늘의 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는 무위로써 만사를 다스리므로 남들과 다투지 않는 것이다.
노자의 5천여 자의 말씀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의 하나는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가 없다는 점이다. 노자는 우리의 일반적 지식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근원적인 것에 대한 독창적인 사색의 세계로 우리는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은 인간의 2차적 욕망(지배욕,과시욕,허영심) 등을 자극하여 경쟁심, 다툼
등의 사회 불안, 인간 불신의 근원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은 인간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한 개신 그만큼 해악을
끼치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상고의 소박했던 결승 문자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외친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그를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사람이다.
무정부주의자라는 등 비판의 말들이 많다.
바닷물은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는 일이 없다.
그만큼 이 책은 해석상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으나 큰그릇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책벌레로서 동서고금의 걸작들을 적지 않게 설렵해 온 필자는
노자의 이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다시 한 번 감탄한다.
Non plus ultra (이 이상 최고는 없다고).
노자 도덕 경의 해제
1. 노자 사상의 배경
누가 나더러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세 권만 들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주역]과 [논어]와 [노자]1)라고 말하고 싶다.
[노자]는 한문으로 쓰여진 저작 중 가장 심오한 철학서의 하나로 동양인뿐만
아니라 서구인에게도 관심과 연구 대상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역대 전문가들의 노자 주석서는 중국의 경우 600여권에
달하며 영어 번역판만 해도 44종에 달한다.
그 외에 연구 논문은 전세계에 수십만 종이나 되어 정확히 집계하기란
불가능하다. 이것만 보아도 학자들이 얼마나 노자 연구에 열을 올리는가 짐작이
갈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의하면 노자 [도덕경]의 저자인 노자는 초의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라 한다. 그의 성인 이, 이름은 이, 자는 담이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자가 백양, 시가 담이라고도 한다. 또는, 성이 노, 이름이 담이라는
설도 있으나 사기의 기록이 가장 정확한 듯하다.
그는 주의 장서실의 관리로 재직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서쪽의 관문을 지날 때 관의 영 윤희의 부탁으로 5천여 자의 저술을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불과 5천여 자에 지나지 않는 이 책은 문약의풍 즉 '문장이
간결하고 뜻은 깊다'고 했다.
옛날부터 노자 [도덕경]의 성립과 그 저자에 대해 학자들은 많은 의문을
제기해 왔다. 학자에 따라서는 [노자]를 춘추시대가 아닌 전국시대의 저서로
단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풍우란의설) 심지어 한 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오늘날에 와서 이 문제의 진위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저서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짧은 글이긴 해도 도가라는 하나의 학파가 내놓은 도가 사상의
총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골자는 이미 노자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여러 문헌의 기록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내린 결론이다.
노자 도덕 경이 나오게 된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는 중국적 사고의
모델이 마련되던 시대이다.
봉건제도에 의해 그 종주국으로 대접받던 주왕실도 춘추시대에 와서는 각국의
제후들이 자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강화에 열중하게 되자 점차 권위가 흔들리게
된다. 이 시대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문화가 이행되는 시점에 있었다.
철제 농구의 사용은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으며 이재에 뛰어난 자는
부를 축적하여 거부가 되기도 했다.2)
'부를 축적하는 데 농은 공보다 못하다'는 이 시대 사람들의 말은 상공업의
발달을 증언해 주고 있다. 주 왕실은 쇠퇴하고 봉건제는 해체되고 있었다.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제후들은 약육강식의 투쟁을 벌이게 된다.
춘추시대의 140여 나라가 말기에 12국으로, 전국시대에 와서는 다시 7개국(진,
위, 조, 제, 한, 초, 연)으로 압축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제후들은 자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지모와 수완을 갖춘 인재를 구하고 있었다.
이에 독서인 출신들이 대거 기용하게 된다.
혈연, 지연의 구애를 받지 않고, 고정된 신분 사회는 밑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춘추 말에서 전국시대에 걸쳐 수많은 사상가가 출현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서 였다.
이른바 제자백가, 백가쟁명의 시대이다.
이 시대 지구의 반대편에서 생활하던 그리스인들은 자연에 대한 경이감에서
철학의 발단을 열었다. 그들의 자연 철학은 소피스트3)와 소크라테스에 의해
인간에 대한 관심사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자연 철학과 인간학은 애초부터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천도와 인도를 하나로 보고 형이상학적 사고의 바탕을
만들게 된다. 노자가 나온 배경은 이와 같다.
이 책은 모든 지식과 지혜를 터득한 사람의 사색이요, 거대한 대륙적 지혜의
총화이다.
주
1) '늙은 선생님'을 뜻하는 존칭, 노자, 장자의 '자'는 스승을 의미함.
2) 화식 열전 참조. 이것은 사마천의 사기 제69권에 수록된 고대 중국의 경제
상황에 관한 기사로 거부들의 열전이고, 고대 중국 경제사 연구의 기본
사료이다.
3) 수사학, 웅변술, 토론의 테크닉 등을 가르쳤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의
일파(BC 5세기경)로서 궤변학파로 불리기도 함. 진리의 상대성을 역설하여
현대의 실용주의 철학과도 맥을 통하고 있음.
2. 노자의 본체론
노자가 도덕 경으로 명칭 화된 것은 전한 시대 말부터이다(마서륜의 설).
상편은 1장에서 37장까지요, 하편은 38장에서 81장까지이다.
상편은 주로 도론 즉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었고, 하편은 주로 덕론 즉 인간
윤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도론과 덕론은 확연하게 분리된 것이 아니고 상. 하편에 다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도에 대한 개념 분석으로 시작해 볼까 한다.
도란 형체도 빛깔도 소리도 없는 어떤 존재이다.
도는 만물의 근원이지만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만물이 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형상 없는 형상으로 홀로 존재한다.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곳에나 있다.
그것은 초감각적 실체이기 때문에 이름이 없다. 도라는 명칭도 편의상 붙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막연히 그것을 크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크다는 말은 무한이란 뜻이다.
우주 만물의 배후에는 우주 만물을 길러 내는 어떤 신비한 존재가 있다.
그것은 또한 만물을 생성, 변화, 소멸시키며 무물의 상으로, 고요하고 적막하여
언어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고 공을 이룩하고도 공명을 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물을 기르면서 군림하지 않고 대립 속에서 대립을 초월한다.
이 노자의 도는 유가의 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가에서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의 도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의 도리, 도덕, 처세훈이다.
이에 반하여 노자의 도는 만물을 생성, 변화, 발전, 소멸시키는 형이상학적
실체를 언급한 것이다. 그것은 역의 태극에 비할 만하다.
그는 도의 현상 세계 생성 원리를 삼변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도로부터 충허의 일기가 발생하고, 이것이 음양으로 분화된다.
이것은 다시 교감 화합하여 형기질을 구성하게 된다.
이 삼자가 구비되어 만물이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도는 부정적 서술에 의해서만 표출된다.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므로 이 비존재는 초존재이며 동시에
근원적인 존재이다. 노자는 천지의 본체를 곡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곡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신비스러운 암컷이라 한다.
현빈, 즉 신비스러운 암컷의 문을 천지의 근본이라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아무리 써도 힘들어하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무의 효용을 강조한다.
그릇이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내부에 빈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의 용도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의 구실 때문이다.
이것은 유는 무에 의지하여 무를 기다려서 비로소 유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때의 무는 단순히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무가 아니고 미와 작용을 지닌
것이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성되고 유는 무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무는 나타나지 않은 본체 즉 도요, 유는 천지로서 구체화, 형상화되고 있다.
도란 물 자체로서 영원불변의 힘으로 두루 보편적으로 작용하며 조금도
위태함이 없는 것이다. 도는 만물의 본체요 하나로서 절대이며 그와 필적할
상대가 없다.
그것은 만물의 근본원리로서 무형, 무색, 무취이다.
그것은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라고 한다. 그것은 들으려고 해도 들리는 법이 없다.
그래서 희라고 한다. 그것은 손으로 잡으려고 해도 결코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미라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셋을 통틀어 하나라고 한다.
노자는 도를 초월적 내재자로 보고 그것은 극에 달하면 되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도는 시공을 초월하며 만물의 보편성으로 깃들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3. 노자의 윤리론
중국인들은 표면적으로는 유가의 도덕률을 으뜸 삼아 왔으나 그 이면에 있는
도가적 경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유가가 사회적 위계질서와 수신제가에 의한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데 반하여
도가는 무위자연의 대도에 인간성이 합일되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노자는 도가 허정무위하므로 그것의 소산인 인간의 성정도 허정무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혜와 기교를 탈피하여 순박한 도의 섭리에 귀일하는 것을
윤리의 이상으로 삼았다. 가장 좋은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는 법이 없다.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의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8장).
그는 강한 것에서 약함을 보고, 약한 것에서 도리어 강함이 있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유약과 소극과 수동을 중요시한 그는 암컷의 입장의 유리함을
강조한다. 이것은 빼앗겨서 뺏는 기술, 즉 약자가 결국 이니시어티브를 쥐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유연한 나무는 꺾이지 않고 탄력성이 있어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처세를 부드럽게 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골짜기처럼 낮은 위치에서 갓난아이의 순진 무구의 상태에서야 도를
체득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상덕을 지닌 사람은 시비와 선악의 상대적 차원을 넘어 자연에 되돌아가서
허정과 무위와 덕을 이룩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노자의 무위는 글자 그대로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즉 하는 일 없이도 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는 인간이 순박한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을 강조하여 이것을 흔히 산에서 갓
베어 낸 통나무의 경우에 비유한다.
즉 이와 같은 순박함을 감히 신하로 부릴 자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는 도의 무위함을 체득한 유덕자의 무작위, 무심을 갓난아이의 무욕과
무심에 비유한다. 갓난아이는 무심, 무욕하므로 즉 마음을 비우고 바라는 것이
없으므로 대립하는 상대가 없는 것이다. 그는 정사, 시비, 선악, 미추는 상대적
개념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얼핏 보아서는 모순되고 대립하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살펴보면 같은 뿌리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그의 무위, 무지, 무욕의 사상은 상대적, 일시적 가치 추구에 집착된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성 본연의 상태로 복귀시키는 데 있으며 인간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였다.
사람들은 상대적, 일시적 가치판단에 구속되어 싸움과 혼란으로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자는 이와 같은 병폐를 시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자, 검, 불감위 천하선을 인생의 삼보로 삼고 있다.
즉 자애와 검소와 겸손을 생활 지침으로 강조한 것이다.
그는 자연의 법칙인 큰 도가 없어지므로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 나오게 되고
가족간에 화목이 되지 않으므로 효도니 자애니 하는 것이 있게 되었다고
지적하며, 윤리 면에서 유가와 다름을 분명히 했다.
은원에 대한 견해도 공자와 노자는 입장을 달리한다.
일찍이 공자는 '곧음으로 원한을 대하고, 덕은 덕으로 갚아라' 하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추상같은 춘추 필법의 주창자요, 포폄사관의 효시인 공자다운
말이다. 이에 반하여 노자는 '원한은 덕으로 갚아라'1)고 교훈하고 있다.
일부 서양 학자들은 이와 같은 노자의 교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윤리가 자기확장적 경향이 강한 데 반하여 노자의 윤리는
자기 억제적 성격을 본질로 한다. 그러므로 그의 교설은 그리스도의 설교와는
의미를 달리한다.
노자의 도가 윤리와 공자의 유가 윤리 사상은 음과 양처럼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 지식인들에게 깊고 풍부한 정신적 바탕을
마련해 준다. 이 두 사상은 오케스트라의 리듬과 멜로디처럼 어느 한쪽이
없었다면 초래되었을 치명적인 획일화에서 벗어나 사상의 깊이와 폭과 다양성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주
1) 유가의 정명주의에 의해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를 말한다.
교훈주의적 사관의 일종임.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여 비행을 규탄함. 고대의 사서
춘추 등에 잘 피력되어 있다. 공자가 춘추를 지으니 난신 적자가 떨었다는
맹자의 말은 이것을 의미한다. 송대의 주희는 통감 강목에서 강대국 위를
비정통으로, 약소국 촉한을 정통으로 기록한 것도 이 사관의 좋은 예가 된다.
4. 노자의 정치철학
대저 천하가 혼란하면 경세제민의 방책으로 여러 부류의 정치 철학이 나오게
마련이다. 노자의 정치철학은 유가의 그것과 비교할 때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유가는 예악에 치중하며 정명주위로써 난신 적자가 날뛰는 난세를 바로잡을
것을 역설하였다. 공자 자신은 정권을 담당하면 명분1)을 바로 잡을 것을
급선무로 한다고 말한다. 공자의 정명주의는 명실일차론이다.
즉 이름과 사물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만의 임금이 아닌 아름다운 임금이 진정한 군주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의 요체를 '군군신신부부자자'의 여덟 글자로 압축하여 강조하고 있다.
즉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의 뜻이다.
난세의 문제를 풀어 가는 노자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노자는 무위와 치로써 정치의 요결을 삼는다. 무위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체념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을 깨닫고 그 법칙을 인간 윤리와
정치철학에 응용하자는 것이다.
그는 강조한다. '큰 나라를 다스림에는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하라'2)고. 이 말은
되도록 간섭과 규제를 풀고 자율에 맡기는 것이 정치의 요결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백성들이 위정자의 가렴주구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의 외침이기도 하다.
노자는 춘추 전국의 난세에 태어나 당시의 극악한 정치형태를 목격한
사람이다.
그는 무위자연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아 태고 무위의 경지에 복귀하여 순박한
생활을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인위적인 법률과 제도 행정 등은 유해한 것으로 보고 비난하였다.
그는 백성은 지혜가 많으면 다스리기 어렵고, 지를 버리면 나라에 이익이
된다고 역설하였다.
이것은 문명이 진보할수록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욕구도 증대할 것이요,
여기에 시비와 선악의 가치 척도로써 분쟁을 일삼을 것을 내다보고 하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어떤 독선적인 집단이 정의와 선에 대한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는 단두대로, 허위는 옥좌에...'라는 절규는 이유 있는 항변인
것이다. 노자는 이와 같이 문명 진보에 의한 인간의 간지의 증대와 거기서 오는
폐단을 막아 보자는 의도이다. 그는 말한다.
성인이 치국하는 도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비우게 만들되 그들의 배는 부르게
만들며, 그들의 의지력은 약화시키되 그들의 육체는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백성을 무지 무욕의 상태에 두게 한다.
그러므로 지혜와 수완을 갖춘 자가 있을 지라도 감히 재주를 부리지 못하게
한다. 무위 즉 작위 함이 없는 다스림에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3)
노자는 이상 국가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나라가 작고 백성의 숫자가 많지 않으면 이를 감화시켜 다스리기 쉽다.
백성들은 순박하고 사치를 모르는 습성을 익혀 좋은 기물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곳에 애착을 가져 이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나물밥을 달게 먹고 베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순박한 풍속을 즐길
것이다. 이웃 나라와 경계를 마주해도 늙어 죽을 때까지 왕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노자의 유토피아이다. 즉 순박한 촌락 공동체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허정무위설은 중국 고래의 철학적 전통과 맥이 통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논어에 등장하는 14은사의 언동은 다분히 도가 적이다.
즉 초의 광접여나 미자편(논어 제18)에 나오는 장저, 걸익, 하조장인 등의
냉소적이고 둔세적 언동은 도가적 인생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노자의 철학은 유가와 더불어 중국적 세계관의 정형을 이루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의 학문은 한 초에 와서 '황노학'으로 성장하며 진평, 조참 등은 한의
재상으로서 노자의 무위 이치의 정신을 잘 살려 치적을 올린 바 있다.
이것은 진나라가 법가를 기용하여 그 제도 행정이 너무나 백성들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을 감안한 조치이기도 하다.
한무제때 동중서의 건의로 유학이 정치 이념으로 정착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도가적 경향이 여전하여 무위 이치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5. 현대인과 노자
선철이 남긴 철학적 지혜중 노자의 교설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사상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고도 산업 사회인 오늘까지 면면이 최고 지성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것은 인간성에 호소하는 영원한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에 순응하고 자연의 순리에 이탈하지 말라는 그의 주장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나 세 속의 평범한 사람들에겐 이 말이 하나의 시대
착오로 들릴지도 모른다. 노자 자신도 이 점을 의식한 듯 '나의 말은 아주
이해하기 쉽고 또 실천도 용이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며 능히 실천하지도 않는다'고
탄식하고 있다.
노자는 인간이 서야 할 궁극적인 삶의 자세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모든 일은 명료하게 보이는 것이다.
욕심은 편견을 낳고 있다. 그것으로는 사물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없다.
노자의 교설은 현대의 산업 사회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서양의 과학 문명은
논리의 필연성을 지나칠 정도로 추구하여 사물에 대한 해부와 분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은 합리주의를 내세우며 자연을 개발해 왔다.
그들에겐 자연이란 정복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자부심 아래 자연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판단에 집착하여 욕망 추구의 투쟁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적자생존을 금과옥조로 삼던 그들이 식민지 쟁탈전에 혈안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당시의 그들은 '동양은 동양이요 서양은 서양이다.
이 둘은 영원히 만나지 않으리라'(키플링의 시에서)를 노래부르며 자신들의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과시하였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도 자신의
세계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것은 현대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동양의 지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20세기의 최고 지성들인 야스퍼스, 하이덱거, 슈바이처 등이 노자 교설에 깊이
매료되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제 곧 21세기에 진입하는 우리들은 고도의 과학 문명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생활이 과거의 농경 사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풍족하고 안락한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합리주의에 의해 성취된 근대 과학 덕분이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항상 흘러 넘치는 자를 응징한다고 했고, 주역에서는
높이 지나치게 올라간 용은 후회함이 있다고 했다.
현대 사회는 물질문명에 따른 비인간화, 민족간의 분쟁, 공해 문제 등의
병폐로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와 존망에 관계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자연관, 인생관 등에 근본적인
반성이 따라야 할 것이다. 참을 지키고 순박함으로 돌아가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현대 문명의 위기 해소에 어떤 하나의 해답이 될 것이다.
이야기 모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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