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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초능력

영능력과 심령 현상의 여러 양상들 4

by Frais Feeling 2020. 5. 30.

  역사 이래 전 세계적으로 저주 이야기는 많고 우리나라에도 왕실, 민간 할 것 없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심령적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아직까지 믿을 만한 과학자가 실험하고 연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점
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심령 현상들이 미신시되고 멸시와 천대를 면치 못하고 있는 원인 가
운데 하나이다.
  영의 실존을 입증하는 이야기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지기수로 많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를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철학자 칸트의 저서 '영시자의 꿈'에  소개된 이야기인데, 어떤 네덜란드  대사가 죽은 뒤 
그 미망인이 금은세공상으로부터 남편이 생전에  구매한 은세공품의 대금 지불을  독촉받았
다. 미망인은 남편이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독촉받을 성격이  아님을 알고 영수증을 찾았지
만 발견되지 않았다. 미망인은  영능력자 스베덴보리를 자택으로 초청,  상담하였다. 3일 뒤 
한 모임에서 스베덴보리는 남편이 죽기 수개월 전에 이미  그 대금을 지불하였고, 영수증은 
2층 큰 책상 서랍에 있다고 말하였다.
  부인은 큰 책상을 이미 치워 버렸고 그 속에 있던 서류들 속에서도 영수증은 없었다고 하
였다. 스베덴보리는 책상 왼쪽 서랍 안에 비밀 공간이 있고, 그 속의 서신들 속에  영수증이 
끼어 있다고 남편이 말했다고 하였다. 모임에 참가한 여러  사람들은 부인과 함께 2층에 올
라가 큰 책상 서랍 속에서 문제의 영수증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어떤 부인은 남편이 죽기 전 어떤 판사로부터 받은 약속어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두 달 동안을 집안 구석구석까지 되풀이하여 찾았으나 헛수고였다. 그래서 교령회에
서 남편에게 물었다.
  그러나 남편은 정확한 장소를 말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딸이 영계와의 통신으로 부친과 
교신했더니 "내 책상 서랍 속에 있다."라고 글자가 새겨졌다. 책상  서랍을 모조리 뒤엎어서 
내용물을 The아놓고 뒤졌더니, 남편이 입던 조끼의 작은 주머니 속에서 어음이 발견되었다.  
미국 아이오아 주 농촌 집 헛간에서 한 농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검시관에 의해서 
운반되었고 검시한 뒤에 자택으로 돌려보낼 예정이었으며,  의복은 더럽혀져 있었으므로 시
체보관소 부근에 버려졌고, 시체는 농부의 아들이 와서 인수해 갔다.
  그런데 아들로부터 부친으 사망 소식을 들은 딸은 놀라서 졸도했다가 몇 시간 만에 깨어
나서 "아버지가 희 셔츠와 검은 양복을 입고 슬리퍼를 싵고 나에게 와서 흰 셔츠와 검은 양
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나에게 와서 흰 셔츠 안쪽에 붉은 천으로 지폐 뭉치를 싸서  끼워 
놓았다고 하셨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현장에 가서 옷을 찾아  문제의 지폐 다발을 
찾았고 의복도 딸이 말한대로 있었다.
  이상의 세가지 이야기들은 언론에도 보도되고 공인된 사건들이다.
  앞에서 필자가 소개한 영능력을 포함한 초능력의 실례들은, 모두가 과학적인 증거나 객관
적인 신빙성이 확실한 것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
들은 부지기수로 많지만, 필자가 이들을 외면한 이유는 거의  모두가 과학성과 객관성이 결
여된 과장된 것, 전설적인 것, 가공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경희대학교의 서정범 교수가 40녀간 몸소 조사하고 체험한 무당 이야기는 나
름대로 과학적 객관성과 신빙성이 있어서 그 분의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
다.
  대구의 김옥자 씨는 아버지의 무기를 이어받아 사춘기 때 신이 들렸다는 말을 들었다. 23
세에 결혼했는데, 남편이밖에 나가서 하는 행동이 눈을 감고서도 훤히 보였다.
  26세 때 꿈에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  신문에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 보도되었다. 한번은 밤 10trud에 단군 할아버지가 눈앞에 보여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돌
아도 무척 돌았다고 하였다. 돌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서부 주유소 앞에서 지금부터 
27~28분 뒤에 봉고차끼리 충돌할 것이니  가 보라."고 하였으나 안 가려  하는 것을 강제로 
보냈다. 그런데 정확히 27분 8초만에 봉고차끼리 충돌,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 밖에도 그녀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 많아서 그녀는 무녀가  되고 점을 쳤다. 한번은 꿈 
속에서 강물에 놓인 흔들다리를 건너가보니,  왕관을 쓴 사람이 "여기는  저승이니라."고 했
다. 예쁜 소녀들이 꽃밭에서 놀고 있었고, 선녀들이 수를 놓고 있었는데, 그 수놓은 학이 공
중으로 날아갔다. 그 곳에서 죽은 친정 어머니와 삼촌도 만나 보았다. 옥황상제가  과일나무 
옆에 앉아서 길죽한 호박만한 열매를 따서 쪼개니, 빨간 속에 작은 씨가 들어 있었다.  상제
는 씨를 주면서 네 외할머니가 닦은 공덕으로 살려 주는  것이니 먹으라고 하였다. 그 씨를 
받아서 먹었더니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깨어나니 몸이 가쁜해서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경기도 평택 시의 진수복 씨는  39세 때 서울에 사는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입관이 
끝나고 상복 차림으로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마루
로 뛰어 올라가 관을 안고 "아버지!아버지!"하며 통곡을 했다. 딸의 몸에 실린 아버지는 "내 
딸아. 걱정 말아라. 내 사위야, 너도 걱정 말아라. 구시월에 집을 사고 땅을 사게 해주마."라
고 하였다.
  지금까지 얌전하던 그녀에게 아버지가 실려서 말문이 열리자, 사촌오빠에게 "이 놈, 저 놈
"하면서 과거 잘못을 꾸짖었다. 사촌 오빠는 허리를 굽혀 사죄하였다.
  화장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 꿈에 아버지가 왕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7선녀를 거느리고 
나타나 용상에 앉으시더니, 신하를 시켜 그녀에게 잣죽을 주며 먹으라고 하였다. 그  잣죽의 
맛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상을 치른 뒤 남편에게는 위출혈이 수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녀의  꿈에 이북에 사는 시아
버지, 시외할머지, 시어머니, 시댁 5대조 할아버지 등이  차례로 나타나서 남편의 병을 걱정
말라고 하였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들의 모습으 fakf하는 그녀의 말에 남편은 매우 놀랐
다.  그 뒤 그녀는 무당이 되었고 산소 이장 문제 등에서 신통력을 보였다.
  송탄 시의 남옥희 씨는 17세 때 도봉산을 바라보니, 도봉산  중턱에서 시루를 쪄 놓고 스
님이 절을 하는 모습이 환상으로 보였다.
  논산에 가는 길에는 버스 차창 밖에서 흰  말이 뛰고 태극기가 날리며 고목에 꽃이 피는 
환상이 보였다. 계룡산 옆을 지날 때는 산 중턱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오빠는 6.25 동란 때 전사하였고 둘째언니는 남자에게 배신당하여 자살하였다.  큰
언니는 무녀이고, 그녀는 5남매 가운데 막내이다. 그런데 19세 때부터 죽은 오빠와 둘째  언
니가 번갈아 가면서 그녀에게 실려 영언을 하게 되었다.
  한번은 송탄 가는 버스를 어머니와 함께 기다리는데, 막 도착한 버스를 타지 말라는 소리
가 들렸다. 그래서 다음 차를  타고 오다가 보니 앞선  차가 교통사고로 박살이 나  있었다.  
27세 때에는 둘째 언니가 실려 시집을 가라고 하였다. 28세 때에 결혼했는데, 결혼 초  난폭
하던 남편도 몇 차례 그녀의 실력을 보고는 점차 누그러졌다.  곧 남편과 아들의 병을 고친 
일, 친정 산소의 이전 문제, 또 2층에 신당을 차려  달라는 공수를 반대하던 남편에게, 거절
하면 누군가가 다칠 것이라고 그녀가 말하였는데, 며칠 뒤 아들이 차 사고로 입원하게 되자 
남편이 수락하는 등, 그녀의 실력이 입증되었던 것이다.
  서울의 김문정 씨는 3세부터 7세까지 경기를 자주 하였고, 9~10세 때는 6.25 피난으로  집
이 없어서 상여 속에서 자기도 하고 무덤에 가서 놀기도 하였다. 15세 때 극단 배역을 맞았
는데, 어머니의 반대로 실망하여 16세 때  자살을 기도, 약을 먹고 혼수 상태에서  구조되었
고, 17세 때에는 목을 매어 실신 상태에서 회복하였으며, 18세 때에는 물에 빠졌다가 구출되
었다.
  31세에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싫어서 35세 때에는 39kg 정도로 말랐으며, 40세 때에 이혼
하였다. 이혼 직후 교통사고로 골반에 금이 가서 1년 동안이나 입원하였다. 
 수입이 없던 그녀는 살기 위해 만신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 자신도  굿을 하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점을 칠 때는 점괘가 영화 필름처럼 보였다. 또 때로는  그녀에게 실린 영이 사르르 몸에
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영이 손님의 무덤을 다녀와서 약 1분 뒤에 다시 들어오
는데, 산소의 위치와 내용이 상세히 보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환상과 한청을 자주 경험했다고 한다. 곧 신당의  조상들이 일제히 눈물을 흘리거
나 달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 초승달에 매달려 짜릿짜릿한  기분을 느낀다든지 흰 수염
의 산신령이 긴 지팡이를 들고 미루나무로 들어간다든지, 산당에서  꽝하고 엄청나게 큰 물
건이 깨지는 소리, 또는 덩덩 하는 장구 소리가 들린다든지 하는 일이다.
  부산의 배연옥 씨는 17세 때부터 투시력이 생기고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25세 때부터 
신병으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환상이 보였다. 몇 달 뒤  시아버지의 영을 만나니 그는 책
임지고 신을 내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부산 약수암에서 내림굿을 하니, 말문이 터지고 시아
버지, 친정 할머니 등 신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어느 장군이 투구를 쓰고 칼을 든 채 들어서서 작두를  타라고 명했는데, 그때 마침 남편
이 도착하였다. 작두를 타는 데 발이 베어져 피가 흘렀다. 그녀는 작두에 올라서서 남편에게 
"야! 이놈아. 빌어라.""하고 공수를 주었으나 발지 않았더니, 계속 피가 흘렀다. 겁이나 남편
이 빌었더니 그제서야 피가 멎었다.
  그녀는 작두를 탈 때 정신이 맑아져서 하늘을 날 듯 기분이 황홀했다고 한다.  충남 보령
군의 김정옥 씨는 24세 때 결혼했는데, 연년생으로 낳은 세  딸이 아버지를 닮아서 모두 약
골로 자주 병을 앓았다. 무당 친구에게  무당이 되라는 권유도 받았고, 함께 신을  모시자는 
남편의 간청도 있었으며, 꿈에 탑과 부처님이  자주 보이고, 절벽에서 줄이 내려와 이  줄을 
잡아야 산다고 해서 줄을 잡고 올라가곤 하였다. 이러한 꿈이  되풀이 될 수록 식구들의 병
과 가난을 면하려면 신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굿을 먼저 하는데, 강력한 힘에 이끌린 그녀가  벌떡 일어나 온갖 춤을 다 
추었다. 그리고 공수가 내렸다. 시어른들의 내력과 마을 사람들의 동정이 쏟아져 나왔다. 뿐
만 아니라 보령군의 대학 설립  문제, 동기간의 장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공수가 
내렸다.
  굿이 끝나고 시어머니와 오소산에 기도를 갔는데, 할아버지가 실려서 "나는 이 산에서 몇 
십 년 동안 도술과 의술을 닦았다. 여기서 명기를 잘 받아서 우리 아기에 많은 재물을 벌어 
주고  족들의 건강도 주겠다. 너는 앞으로 많은 중생을 구제하라."는 공수를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술과 고기를 안 가져왔구나."하며  섭섭해 하시던 할아버지에게 2개월 뒤 
술과 돼지 머리를 가지고 다시 오소산에 갔다. 산신각에 놓은 돼지머리를 짐승이 먹으면 재
수가 있다고 해서 그냥 내려왔는데, 도중에 뱀을 보았다. 갑자기 목이 벌렁해지고 뱀이 개구
리를 잡아 먹으며 끼르륵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더니, 혀가 뱀같이 날름거리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도 그런 현상이 계속 되었다. 가끔 있는 현상이지만 밤에는 더욱 심했다.  3개월간 
이 중상 때문에 고생하다가 오소산에 다시 가서 산신각의 돼지 머리를 치우고 청소한 뒤 잘
못했다고 비니까, 즉시 그 중상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 뒤 집에  신당을 차려놓는 일, 점을 
치는 일 등이 무엇에 이끌리듯 저절로 잘 풀려서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성남 시의 나채옥 씨는 바람기 많은 아버지를 닮아서 조숙하여 여중 1년 때  미술 
선생과 입맞춤하고 꿈 속에서 성관계가 있었다. 3학년 때에는 술, 담배를 배우고, 신기가 있
어서 동생의 교통사고를 원격시하였다.
  여고 2학년 때 친구 5명과 함께 해양대학생 5명을 청주에서 사흘간 만나고 처녀성을 잃었
다. 18세 때에 취직하여 아내 있는  남자를 알게 되었으나, 그녀와 결혼하려는 오빠  친구의 
강요로 싫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견딜 수  없어 울릉도로 피신하였고, 그 뒤 여수,  충무, 
마산을 전전한 다음 부산에서 다방에 취직,  또 남자를 알게 되어 동거를 하였다.  어머니의 
반대로 다시 천안 다방으로 옮겼으나, 이때부터 임신 비슷한 증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청주집에 귀가한 그녀는 몸무게가 38kg으로 야위어 있어서 굿을 두  번이나 했더니, 부처
님과 연꽃이 다가오고, 꿈에서 할머니가  "네가 나에게 굴복을 안 하면  네 몸은 계속 아플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할머니는 친정 외할머니인데 무기가 있었으나 양반 집안이라 절에 들어가서 일생을 마
친 분이었다.
  친할아버지도 꿈에 자주 보였는데, 그 분은 왜정 때  항일운동을 하다가 왜경에게 허리를 
찔렸고, 나중에는 간암으로 복수가 차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녀가 배가 부르고 허리가  아
픈 것은 할아버지의 지병이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천안을 거쳐 성남에서 다방에 나갔는데, 그 곳에서 알 게 된 남자에게 "조상 
가운데 초상집에 갔다 와서 마루에 뻗어 죽은 사람이 보인다."고 하니 그 남자가 자기 형이
라고 깜짝 놀랐었다.
  그녀가 자주 울고, 앓는 소리를 해서 그 남자의 권유로 굿을 했는데, 무복을 입자  말문이 
열렸다. "만신 노릇을 해야 한다. 안 하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야 한다. 17~18세 때에 신이 
왔다. 나를 모시지 않아서 지금껏 고생했다."라고 할머니가 실려서 공수가 나왔다.
  "이것을 거부하면 몸이 아프니  주위와 인간 관계를 정리하고  무당이 되라."는 할머니의 
말이 들려 왔다. 결국 무당이 되고 말았는데, 점을 칠 때는 손님의 마음이나 병이  그녀에게 
이입되기 때문에 쉽게 알 수가 있다고 한다.
  박옥순 씨는 서너 살 때부터 무엇이든지 아는 듯한 소리를 했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무기
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남편의 학대가 심해서 그녀가 네 살 때 약을 먹고 자살하였다.
  다섯 살 때 귀가 먹고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며 머리와 배가 아팠다.  22세 때 결혼을 
했는데, 남편의 술주정이 심해서 폭력을 피해서 가출을 여러 번 하는 동안 5남매가  생겼고, 
남편은 그녀가 46세 때 죽었다. 
 32세 때부터 손금과 관상을 보았고, 39세 때 내림굿을  하고부터는 신령과 함께 대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신령의 말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7, 13, 22세의 선녀와 5, 7, 17세의 동자가 실려 있고 할아버지도  실려 있다고 
한다. 그녀는 아기 신을 받으려면  받을 수 있고 안  받으려고 하면 실리지 않는다고  한다.  
신이 몸에 들어올 때는 양 어깨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발끝에서 위로 올라오거나 
머리에서 내려오는 경우도 있으며, 손끝에서 또는 가슴으로부터 들어오는 수도 있다고 한다.  
신이 들어올 때는 짜릿짜릿한 느낌이 있지만, 일단 들어오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며 기분이 좋다고 한다. 어깨로 들어올 때는 어깨춤이  추어지고 신바람이 난다는 것
이다.
  경기도 하남 시에 사는 윤씨는  왜정 때 13세에 결혼하고 18세에는  첫딸을 낳았다. 20세 
때 꿈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피륙을 받고 지팡이를 짚은 장님  셋을 따라 갔더니, 송파의 선
창가로 간다고 하여 계속 따랐다. 어느 집에 이르러 이제 다 왔다고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
는 것을 보고 꿈에서 깨었다. 일어나서 박에 나가보니 아직 새벽이라 어두컴컴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송파로 가야한다고 길을 나서니, 꿈에 본 세 장님이 보여서 물었는데, 송파
로 간다고 하여 무조건 따라갔다. 마을에 이르러 어느 집으로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가서 방
문을 여니, 신당이 차려져 있었다. 그곳은 무당의 집이었다.
  그녀가 들어서자마자 손뼉을 치니, 주인 할머니가 일어나서 징을 쳤다. 그녀는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뛰었다.
  주인 할머니는 옥수를 떠놓고 빌면서 "어디서 왔는지 영검한 말씀 해주려고 왔는데, 저렇
게 누워 있는 우리 집 고지기가 언제 일어나서 단 밥 먹고 살겠는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할머니의 어깨를 내리치며 "4월에 죽는다."고 딱 잘라 말하고, 그 자리에서 
벌떡 나자빠졌다. 수소문해서 달려온 남편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 뒤 내림굿을  했
더니, 신어머니가 무릎을 탁 치며 "이제는 못 막는다. 순경도 못 막는다. 신랑이 호랑이라도 
못 막는다."라고 소리쳤다. 처음에 반대하던 남편도 그녀의 실력을 보고는 차츰 이해하게 되
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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